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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8 18:17:26

창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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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별궁
창의궁
彰義宮
파일:창의궁 터.png
<colbgcolor=#c00d45> 위성사진으로 본 창의궁 터 현재 자리
위치 한성부 북부 순화방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9 일대[1])
설립시기 1712년
해체시기 1907년
파일:135 1 창의궁 배치도.jpg
<colbgcolor=#c00d45> 창의궁 배치도
1. 개요2. 기타

[clearfix]

1. 개요

조선시대별궁으로, 영조가 연잉군 시절 머물렀던 잠저(潛邸)였다. 이곳에서 정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화억옹주, 효장세자, 화순옹주가 태어났으며, 말년의 숙빈 최씨가 궁에서 나와 거처했던 곳이기도 하다.

본래 이곳은 효종의 4녀 숙휘공주의 남편 인평위 정제현의 옛 집이었으나, 숙종이 매입해 4남인 연잉군(훗날의 영조)에게 하사했다. 숙종은 건물 한 채를 '양성헌(養性軒)'이라 이름 짓고, 아들을 향한 애정을 담아 를 지어 현판으로 걸었다.[2]

1721년(경종 1년), 연잉군이 왕세제가 되면서 궁궐로 거처를 옮기자, 그의 사저는 동궁 소속의 궁가가 되었으며, 근처의 '창의문(彰義門)'[3]에서 따와 '창의궁(彰義宮)'으로 개칭되었다.

영조는 즉위 후, 창의궁의 정당(正堂)에 '건구고궁(乾九古宮)'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건구공궁 소지(小識)》에 따르면, '건구(乾九)'는 《주역》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승천하지 않고 숨어 있는 , 즉 잠룡을 의미한다. 이는 왕이 되기 전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파일:건구고궁.jpg
<colbgcolor=#c00d45> '건구고궁(乾九古宮)' 현판[4]
또한, 영조는 한성부 좌윤[5] 홍석보의 주청에 따라 왕이 잠저에 머물던 시절의 호적을 따로 떼어 보관하도록 했다. 또한, 장보각(藏譜閣)을 세워 자신의 초상화 2본과 어필, 서찰 등을 봉안했다.

영조는 어머니와 옛 집을 쉽게 잊지 못했다. 육상궁을 참배한 후, 신하들의 만류에도 종종 창의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754년(영조 30년),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 효장세자와 손자 의소세손사당을 이곳에 두기도 했다.

정조 또한 사도세자초상화를 창의궁에 봉안하고, 정기적으로 참배하며 때때로 머물면서 전교를 내렸다. 이후, 순조 때는 요절한 효명세자의 사당도 추가로 세워졌다.

창의궁은 고종 때까지 유지되었으나, 1908년(융희 2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그 자리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이 들어섰으며, 8.15 광복 이후 적산(敵産)으로 분류된 뒤 재분할되어 현재는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2. 기타

파일:IE001733962_STD.jpg}}} ||
<colbgcolor=#c00d45> 창의궁 터 근처의 백송
파일:창의궁 비석.jpg}}} ||
<colbgcolor=#c00d45> 창의궁 터 알림표지석

[1]지번주소 종로구 통의동 35번지 일대.[2] "높은 누각, 넓기도 한 것이, 임금 수레 전에도 왔다네. 광명전(경희궁 북쪽 높은 지대에 위치한 전각이다.) 바로 저긴 것이, 때때로 올라가 마음을 위로하리라."[3] '자하문'으로도 알려져 있다.[4] 사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5] 현재의 서울특별시 부시장 격.[6] 다만, 친증조부손 관계가 아닌 양자 관계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