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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07 12:45:40

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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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

한국어:단군릉
한자:檀君陵
영어:Mausoleum of Tangun

1. 개요2. 상세3. 정말 단군의 무덤인가?4. 왜 개건하였는가?5. 여담6. 같이보기

파일:attachment/단군릉/단군릉.jpg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060930053636a000a010-001.jpg

1. 개요

평양직할시 강동군 문흥리(이북 5도 기준으로 평안남도 강동군 강동면 문흥리) 대박산 동남쪽 기슭에 있는 유적. 북한에서는 고조선시대 단군왕릉이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단군릉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형 돌무덤으로 높이는 22 m, 너비는 평방 50 m쯤 된다. 북한 정부는 국보 제174호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2. 상세

평양 근교에 있는 '단군릉'이란 무덤의 명칭은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1] 박은식한국통사등에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 무덤이 실제로 단군의 무덤인지는 확인된 바 없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런 거 없다.'였다. 굳이 있는 단군릉을 건드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진짜 고조선 단군의 무덤일 리는 없다는 것이었고 크게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1993년 북한에서 발굴조사를 한 뒤부터 이 무덤이 정말로 '단군릉'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일성의 대리석으로 피라미드형 무덤을 만들라 등을 지시해 그에 따라 개건확장한 후, 1994년에 위와 같은 모습으로 공개하였다.

조선로동당은 이 유적의 역사를 완전히 날조했다. [2] 김일성이 건들기 이전 모습은 아래 사진과 같았다.

파일:external/blogimg.hani.co.kr/71030_39514.jpg

사진에서 보다시피 '단군릉'이라고 씐 석비를 제외하면 그 형태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무덤이다. 사진에 보이는 단군릉이라는 비석은 일제강점기 1936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단군릉(檀君陵)이란 명칭을 앞면에는 한자로, 뒷면에는 한글로 새겼다.

평이한 옛 무덤을 '우리나라의 원시조'란 이유로 김일성이 고구려 시조 동명왕릉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만들라 지시했고, 이에 따라 피라미드처럼 확장공사하였다. 이를 두고 남한 언론에서 단군릉 복원이란 표현을 썼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렇게 알지만, 사실 북한에서는 단군릉을 비롯한 유적들을 '복원(復原)'이 아니라 개건(改建)했다고 표현한다.[3] 이는 '복원'의 뉘앙스와 달리 20세기에 새로이 만든 건축물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는 표현이다. 물론 확실히 복원보다는 개건이란 표현이 그나마 적절하지만, 북한이 내놓은 결과물은 개건이란 단어가 표현하는 일반적인 수준을 한참 뛰어넘기 때문에 문제. 여기에 대리석을 씌우질 않나, 조각상을 세우질 않나, 원래 단군릉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무덤 자체는 장군총의 모습을 본뜨라고 김일성이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3. 정말 단군의 무덤인가?

원래 북한은 일단은 유물론에 입각한 공산주의 국가(?)답게 단군을 "봉건 사가나 부르주아 민족주의 사가에 의해 실재한 고대국가나 인물인 것처럼 과장되었다." 하면서 단군이라는 인물 자체를 부정하거나,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그 시대에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 정도로 보았다. 더욱이 50년대까지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를 회의적으로 보거나, 고대 노예제국가가 아니라 원시 공동체사회로 보기도 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성립되었음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 없다는 것. 이 가운데 사료연구 및 고고학적 성과[4]가 뒷받침되자, 이후에는 7~8세기 요동~한반도 지역에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여겼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학문의 자유가 나름대로 보장되었으며, 해방 전후로 유명한 학자들이 다수 월북한 터라, 남한보다도 어떻게 보면 우수한 학문적 성과가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자유는 그 당시에도 어디까지나 비정치적인 분야에 한했으며, 이후 제정일치국가(...)로 나아가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1993년 단군릉 발굴과 함께, "단군이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라고 언급하면서, '종래에 신화적 전설적 인물로 간주되어 온 단군이 실존인물이며 우리 민족의 원시조'라고 주장을 바꾸었다. 그 근거는 무덤 안에 있던 두 남녀의 유골을 전자스핀 공명법으로 측정한 결과였다.

그러나 전자스핀 공명법으로 뼈나 치아를 연대측정할 수 있긴 하지만 그 편차가 너무 큰 데다 아직 신뢰성에 문제가 많다. 그래서 전자스핀 공명법은 대부분 수천만 년 전 화석의 연대측정에 이용하는 편이다. 어쨌든 북한은 이 측정법으로 다른 기관 두 곳에서 각각 24회, 33회 측정했고, 매번 5011년(오차값 ±267년) 전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므로 신뢰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남한에서는 이런 발표야말로 연대측정 결과를 조작한 증거라고 본다. 편차가 크고 신뢰도가 낮은 방법으로 수십 번 측정했는데, 결과가 매번 단 1년 차이도 없이 계속 똑같은 연대가 나왔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 남한 학자들은 단군릉이 고구려의 전형적인 반지하 외칸 석실무덤으로, 내부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금동관을 고려하면 무덤의 주인은 고구려의 지방귀족이었다고 추정한다. 또한 이 무덤을 '단군릉'이라고 칭한 기록이 남은 이유는 고구려가 망하고 수백 년이 지난 뒤, 옛 사람들이 '평양에 있는 오래된 무덤이니 혹시 단군의 무덤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으로 본다. (더욱이 과거 사서의 기록에서도 고구려 유물과 함께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즉 굳이 표현하면 전(傳) 단군릉, 즉 '단군릉이라고 전하는 무덤'에 가깝다. 구형왕릉의 북한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5]

심지어 1994년 북한에서 발행한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론문집』에서도 단군릉의 원 양식은 고구려식 무덤이 맞고, 출토된 금동관 역시 고구려 금동관이 맞다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전자스핀 공명법으로 매장된 유골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그 측정치가 기원전 3000년 이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무덤의 주인은 고구려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북한은 고구려인들이 장수왕 시기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할 때 자신들의 시조왕인 동명왕릉을 새 수도 평양으로 옮겨오면서, 평양에 이미 존재하던 기존 단군릉을 고구려식으로 새로이 고쳤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우선 아직까지 고구려에서 고조선 시대에 이미 있던 단군릉을 새로 개축했다는 기록은 발견된 바 없다. 또한 굳이 잘 있는 무덤을 파헤쳐서 무덤을 고구려식으로 개조한 뒤 유골에 고구려식 금동관을 씌우고 다시 묻었다 함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단군 숭배 의식이 있어서 단군릉을 다시 만들었다면서, 금관도 아닌 급이 낮은 금동관을 씌우고 고작 지방귀족 무덤 수준으로 축조했다는 말인데... 그럼 대체 원래의 단군릉은 얼마나 초라했다는 소리일까?

4. 왜 개건하였는가?

남한이 아닌 북한을 한반도 역사의 정통계승자로 놓기 위한 정치적 계산도 포함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아직까지 왜 이렇게 해놨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이와 관련해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는, 조선중앙력사박물관 관장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의 장정신 관장이 대담 중에 "주체를 올바로 세우는 뜻에서 3대 시조릉에 대한 개건사업을 전개했다."고 한 말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즉, 고조선의 단군, 고구려의 동명성왕, 고려의 왕건, 그런 식으로...
이렇듯 1993년 발굴과 1994년 개건은 학술적이기보다는 상당히 정치적이다. 지금의 북한 영역을 중심으로 한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북한으로 이어지는 역사정통론을 내세워서 사실상 '자신들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왜곡행위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국내외적으로 남한에 비해 정통성이 부족한 부분을 북한이 어떻게든 메꾸려고 하는 자세에서 나온 결과물일수도 있다.

5. 여담

6. 같이보기



[1] 숙종(1697), 영조(1739), 정조(1786) , 순종(1909) 때 강동의 단군묘 수리, 제사 지시 기사가 나온다.[2] 진짜 단군의 무덤이 아니라도 오랜 세월 단군릉이라고 알려져 제사를 받았고, 실제로 오래된 무덤임은 분명하므로 전(傳) 단군릉으로서 역사적 가치는 분명히 있었다. 이 무덤이 남한에 있었다면 사적으로 지정되었을 것이다.[3] 이렇게 '개건'된 북한의 또다른 유명한 문화유적으로 동명왕릉정릉사가 있다.[4] 특히 요하 지역에서 '강상무덤'과 '누상무덤'을 비롯한 순장무덤이 발굴되면서, 이런 순장무덤을 만들 정도면 이 시기에 고대국가가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과거 80년대 한국 학계는 북한의 이러한 연구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현재에는 순장무덤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집단매장된 공동무덤으로 본다.[5] 단 구형왕릉은 애당초 무덤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는 만큼, 일단 고대의 무덤임이 확실한 원래 단군릉과도 좀 다르긴 하다.[6] 지나치게 고조선 영역을 넓게 잡았다 문제점이 있지만, 현존하는 기록 대부분을 집약해서 분석하였다. 80년대 한국의 고조선 연구 열풍에 기여하기도 했다.[7] 이전의 서술에는 김일성의 입장어명으로 요동 중심설이 정설이 되었다고 서술하지만, 김일성의 말은 학술평가가 끝나 공식화된 결론에 동의한다고 승인한 것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공식입장에 끝까지 반대한 이들은 60년대 후반 무렵 소식이 끊겼다.[8] 御天節. 대종교의 경축일로, 단군이 치화를 끝내고 하늘로 올라감을 기념한다. 날짜는 음력 3월 15일. 1995년 어천절은 양력 4월 14일이었다.[9]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대종교 16대 교주로 소개하나, 대종교 자료를 보면 14대 '총전교'라고 쓴다. 대종교 교주 호칭이 원래는 '도사교'였는데, 3대 도사교 윤세복 시절에 호칭을 '총전교'로 바꾸었다. 따라서 3대 도사교가 1대 총전교인 것. 여기서 대수 계산의 차이가 생겼다.[10] 1994년 김일성이 죽은 뒤로 남북정상회담이 파토나는 등 남북관계는 경색된 데다, 김일성 생일과 가까운 날짜였다.[11] 안호상 방북은 종교적 행동으로 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벌이던 통일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홍익인간 이념'으로 하나되어 민족통일을 이루자 주장하며, 통일운동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에서 민족주의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니 '민족통일의 공통분모'라면서 참가한 것. 그에 따라서 남북이 함께 어천절 행사를 하자고 주장했다.[12] 여담으로 안호상이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이승만 독재에 부역하며 반공주의 입장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했는데, 정작 말년인 1995년에는 방북을 하여 단군릉을 만든 업적을 들어 김일성 주석을 찬양했다.(...) 진정한 종북 그야말로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13] 또 다른 체제선전용 피라이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