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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라크-시리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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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라크 시리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2.2. 고대 말2.3. 중세2.4. 근세2.5. 근대2.6. 20세기2.7. 21세기
2.7.1. 2000년대2.7.2. 2010년대2.7.3. 2020년대
3. 문화 교류4. 교통 교류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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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 이라크, 시리아의 3국간 관계에 대한 문서다. 3국은 이슬람 협력기구 회원국들이다. 그리고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에 영향력이 강하며 시아파 벨트에 속해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고대 시리아 일대에서 사용되던 아람어는 아시리아 제국 시대 이래 중동 지역의 랑구아 프랑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서는 아람어를 제국의 공용어로 지정하였고 이러한 연유로 고대 당시에는 오늘날 시리아와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 외에도 페르시아 전역에서 아람어가 폭 넓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멸망하고 헬레니즘 제국 시대를 거쳐 로마 제국 시대에는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기독교가 유행하면서 시리아 속주를 거쳐 고대 페르시아 일대를 지배하던 파르티아로도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아람어를 사용하는 상인들의 네트워크는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속주 일대에서 파르티아 동부에 이르는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루트는 기독교가 동방으로 전파되는 루트이기도 했다.

서기 3세기 파르티아가 멸망하고 사산조 페르시아가 발흥하던 당시 마니라는 이름의 예언자가 등장하여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 유대교 및 불교와 자이나교 교리를 포함하는 마니교라는 종교를 창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만큼 오늘날의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 지역의 문화적 교류가 긴밀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2. 고대 말

오늘날 이란 그리고 이라크의 동남부 지역에 기반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이라크 북서부 그리고 시리아 일대를 두고 동로마 제국과 대립하는 관계였다. 이란인들의 본진에 해당하는 이란 고원은 건조 지역으로 생각보다 생산성이 낮았고 이란에 기반한 왕조들은 티그리스 강유프라테스 강 일대로 조금이라도 더 팽창해야만 좀 더 안정적인 세입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이 서로 소모전을 벌이느라 국력이 소모된 상황에서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 무슬림들이 발흥하여,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한다. 이는 오늘날의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시리아에 해당하는 지역 모두 이슬람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2.3. 중세

정통 칼리파 시대 이슬람 제국은 사산조 페르시아를 모방하여 디완이라는 행정 구역을 설치하여 제국 내정을 관리하기 시작하였으며, 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나고 들어선 우마이야 칼리프조는 수도를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이기도 한 다마스쿠스로 천도하였다. 시리아 일대는 한동안 중세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동로마 제국과 법과 행정 시스템이 이슬람권으로 수용되었다.

오늘날 이란 동부에서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 해당하는 호라산 지역에서 압바스 가문이 발흥하여 우마이야 칼리프조를 전복하고 새로 압바스 칼리프조가 들어섰다. 압바스 칼리프조는 수도를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에 해당하는 바그다드로 천도하고 내정을 운영하였으며,[1] 인도와 그리스 및 고대 페르시아의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후원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시리아 일대의 기독교도들과 호라산의 페르시아인 학자들이 크게 활약하였으며 세 지역 사이의 지적,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서는 아람어권이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해당하는 아랍어권으로 급속히 흡수, 대체되었으나 이란 지역에서는 중세 페르시아어가 아랍어로 완전 대체되지 않고 계속 사용되었다. 다만 이란 일대에서도 종교와 행정, 학술 언어로는 아랍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바, 중세 페르시아와 호라산 지역은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의 이중 언어 사회가 유지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압바스 칼리프조가 우마이야 칼리프조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후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섰으며, 이후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팽창한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 일대를 정복하면서 압바스 칼리프조는 지중해 서부 영토 상당수를 상실하였다. 이 와중에도 압바스 칼리프조는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을 중심으로 한 영토를 유지 보존하는데 성공하였고 몽골 제국의 침략 이전까지 이 세 지역은 서로 긴밀한 연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2.4. 근세

오늘날 아제르바이잔과 다게스탄 일대에서 발흥한 시아파 광신도 집단 사파비야 수피 교단이 이스마일 1세의 지휘 하에 이란 일대로 남하하여 사파비 제국을 건국한다. 사파비 제국은 자국 영내 순니파들을 시아파로 강제 개종시키는 작업에 착수하는데 이를 계기로 이란은 시아파 주민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오스만 제국은 16세기 초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고 시리아 일대를 병합한 이후 이라크를 두고 사파비 제국과 전쟁을 치렀다. 오스만 제국은 이라크 북서부를 정복하였으나 이라크 전역을 정복하는데는 실패하였고 사파비 제국은 이라크 동남부 지역 영토를 유지하였다. 이는 오늘날 이라크의 종교 지형에 직접 영향을 주었는데, 이라크의 쿠르드족 그리고 북서부 지역의 아랍인들은 순니파로 남게 된 반면 이라크 남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하류 지역의 아랍인들은 사파비 제국 종교정책의 영향으로 시아파가 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은 자국 내 시아파들을 사파비 제국 영토로 추방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사파비 제국에서는 순니파들이 학살을 피해 오스만 제국 각지로 망명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시리아의 시아파 및 알라위파, 드루즈교 인구는 지리적으로 순니파 거주 지역을 가로질러 사파비 제국과 바로 이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으며, 대개 교통이 불편한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순니파 지주들의 소작농으로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했다.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은 서로를 주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상호간의 교류는 다소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양국은 자국 내 무슬림들이 반대편과 교류하는 것은 막았지만 대신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이 교류하는 것은 막지 않았고, 오히려 장려하는 편이었다. 사파비 제국의 수도 이스파한을 중심으로 한 이란의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은 생사를 생산하여 이라크를 거쳐 오늘날의 시리아의 도시에 해당하는 알레포에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에게 이를 판매하였고,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를 다시 비단으로 가공하여 지중해 너머 유럽인들에게 수출하였다. 근세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2.5. 근대

근대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환자 소리를 들으며 약체화하는 과정에서 아랍인들의 민족 의식이 각성하기 시작한다. 이집트메흐메드 알리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반기를 들고 시리아 일대를 점령하자 여기에 자극받은 아랍인들 사이에서 반튀르크 아랍 민족주의가 부흥하였다. 이렇게 반튀르크 감정을 바탕으로 부흥한 아랍 민족주의는 한 편으로는 20세기 시리아와 이집트 그리고 이라크의 세속주의 성향 민족주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남기게 되었으나, 이 반외세 감정이 오스만 제국이 몰락한 이후 이란인 시아파들에게 향하면서 이슬람교 개혁 운동인 살라프파 운동이 강경 반시아파 성향을 띄게 되는 원인도 제공하게 된다.

2.6. 20세기

이라크와 시리아에는 20세기 중반 아랍 사회주의 성향의 바트당 정권이 들어섰으며, 이란에는 친미 팔레비 왕조이란 혁명으로 전복되고 이슬람 신정 정치를 추구하는 이란 이슬람 사회주의 공화국이 들어섰다. 이란 혁명 와중에 이란 내에서도 이슬람 사회주의 혹은 무신론 성향 사회주의 성향 활동가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호메이니를 위시로 한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밀려났다.

다만 이란에도 이슬람 사회주의의 영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이란 혁명 당시 이란인 대학생들 사이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시아파 이슬람 신학을 조합한 알리 샤리아티의 사상과 이론이 큰 인기를 끌었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 내에서도 혁명을 주도한 도회지 대학생들의 입장을 어느정도 수용하여 정부 정책에 있어서 알리 샤리아티의 이론이나 방향을 일부 반영했기 때문이다.[2]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가 시아파 벨트로 묶이게 된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다단한 역사를 거쳤다. 시리아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절 프랑스 식민 당국은 시리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던 순니파 아랍인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순니파들에게 미움을 받던 소수 종파 알라위파를 지원하였고, 독립 이후 시리아 바트당에서 알라위파가 실세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시아파 12이맘파 내에서도 원래는 알라위파를 이슬람으로 인정하지 않던 입장이었으나,[3] 알라위파의 변화된 입지를 반영하여 1974년부로 이들을 시아 이슬람의 일파로 인정하였다. 원래부터 주변 아랍 국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란은 이란 혁명 이후 반미 국가가 되면서 서방세계와도 고립되면서 동맹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리아 입장에서도 시리아 바트당과 이라크 바트당이 서로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고, 결국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에 따라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과 시리아 바트당 정권 사이에 긴밀한 동맹 관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2.7. 21세기

2.7.1. 2000년대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면서 이라크 인구의 60% 상당을 차지하던 이라크 시아파들이 실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6년 11월 21일에 이란이 이라크 정세의 안정을 위해 이라크와 시리아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요청했다.# 3국은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007년 1월 11일에 이란과 시리아는 부시 대통령의 새 이라크 정책에 대해 비난했다.# 2월 27일에 이라크 안정화 방안 첫 국제회의가 개최돼 미국, 이란, 시리아가 참가하기로 했다.#

2.7.2. 2010년대

2014년도 이후 발흥한 순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ISIS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은 이라크를 직접 지원하는데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이란에서 이라크 정부군의 IS 격퇴를 적극 지원하였다. 이란은 이미 이라크의 ISIS 격퇴를 지원하기 이전부터 시리아에서 알라위파 정권을 지원하던 상황이었다. 시리아와 이라크 모두 이란군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삼국은 협력이 활발해 지게 되고, 서방 세계 및 걸프 아랍 왕정국가들은 이를 두고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를 이른바 시아파 벨트로 묶어서 분류하게 됐다.

2010년대 초 시리아 내전이 일어났다. 2011년에 아랍 연맹에서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키자 이라크와 이란, 레바논은 우려를 나타냈다.#

2013년 1월 9일에 이란은 이라크와 시리아를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7월 14일에 이라크가 이라크 영공을 통한 이란의 시리아 무기 공급을 막을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9월 8일에 이란의 자리프 외무장관이 시리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이라크를 방문했다.# 12월 4일 이라크 총리가 이란을 방문해 시리아 내전, 석유생산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이라크 내전이 확대되었다. 한 때 다에쉬가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란은 다에쉬를 견제하기 위해 시리아, 이라크와 군사협력을 실시했다. 그리고 미국도 이란과 협력을 잠시 했다. 2014년에 이라크 사태가 일어나자 시리아는 공습을 했고 이란은 무기를 지원했다.# 12월 10일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의 외무장관 회동이 열렸다.#

2015년 7월 25일에 이란은 터키의 시리아, 이라크 영토 공습에 대해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27일에 이라크는 러시아, 이란, 시리아와 다에쉬 격퇴를 협력하기로 했다.# 10월 13일에 이라크는 러시아, 이란, 시리아와 정보 기관을 구성해 다에쉬와의 전투에 나섰다.#

2016년 2월 4일에 러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는 다에쉬의 자금줄을 차단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2월 4일에 바그다드에서 러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4개국이 고위급 안보회의를 개최했다.#

2019년에 이란은 미국의 제재를 받자 시리아, 이라크와 협력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월 19일에 시리아군, 이란군, 이라크군의 수뇌부가 회동을 가졌다.# 이란, 이라크, 레바논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8월 27일에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공습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9월 30일에는 이라크와 시리아가 국경을 재개방해 이란의 시리아와 이라크 진출이 원활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12월 30일에 미군이 시리아와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

2.7.3. 2020년대

2020년 11월 29일에 시리아-이라크 국경에서 이란의 고위장교가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했다.#

2021년 2월 26일에 미군이 시리아내 친이란 민명대 군사시설을 공격했고 시리아, 이란의 외무장관이 전화통화를 통해 양국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6월 28일에 이란과 이라크는 미국이 시리아 접경 지역의 친이란 민병대 군사시설을 포격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이후, 이라크내 미군 시설에 대한 공격이 생겨났다.#

2022년 1월 5일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가 이라크와 시리아의 미군기지를 공격했다.# 3월 13일에 이란혁명수비대는 이라크 내 이스라엘 전략시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5월 8일에 아사드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이란과 이스라엘의 알력이 격화되면서 이란의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점차 어려워지던 와중 2024년 11월 말부터 반군의 공세가 갑자기 격화되기 시작하였고, 12월 9일 결국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었다.

3. 문화 교류

3국 모두 이슬람교를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란과 이라크는 시아파 비중이 높고 이라크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종파에서 시아파에 속해 있다. 시리아는 순니파 인구가 대부분이지만, 바트당 정권 시절 소수의 알라위파가 군부와 국가 경제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란은 12이맘파에 속해 있고 시리아는 알라위파가 정권을 잡고 있다. 이란은 아랍어가 제1외국어에 속해 있다.

4. 교통 교류

3국을 이어주는 항공노선, 철도, 도로가 존재한다. 철도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잇는 철도가 개통됐다.#

5. 여담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방문한 경우에는 ESTA를 받을 수 없다.#

6. 관련 문서



[1] 이후 다시 한 번 이라크의 사마라로 천도가 이루어졌다.[2] 이란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계층 중 농촌의 성직자 계급들은 문맹 퇴치 운동을 반대하는 입장에다가 탈레반처럼 여성의 기본 교육권을 박탈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혁명을 주도한 도회지 대학생들의 입장도 있고 해서, 이란에서는 탈레반 수준의 극단적인 여성 인권 후퇴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오늘날에도 이란 대학생의 2/3는 여학생이다.[3] 12이맘파 자파리파를 대표하는 신학자 셰이크 투시 아부 자파리는 알라위파를 시아파와 별개의 이단이라는 파트와를 내렸던 바 있다.[4] 이란은 가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