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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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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10월 28일 ~ 1992년 12월 31일[1]
(망명 정부 1939년~1945년)
<colbgcolor=#11457e><colcolor=#fff> 위치 체코슬로바키아
국가 체코슬로바키아 국가
수도 프라하
언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종교 가톨릭, 국가 무신론[2]
민족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루신인, 우크라이나인, 헝가리인
독일인(1919–1945)[3]
주요 지도자 토마시 마사리크
에드바르트 베네시
클레멘트 고트발트
알렉산데르 둡체크
면적 140,446km²(1921), 127,900km²(1992)
인구 1360만 7385명(1921), 1560만 명(1992)
통화 체코슬로바키아 코루나
성립 이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보헤미아 왕국, 모라비아 변경백국, 헝가리 왕국, 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
1차 멸망 이후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2차 멸망 이후 체코, 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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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식명칭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 1918–1939, 1945–1960)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 ČSSR, 1960–1990)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Česká a Slovenská Federativní Republika, ČSFR, 1990–1992)[4]
약칭 체코어: Československo
슬로바키아어: Česko-Slovensko[5]
영어: Czechoslovakia

1918년부터 1992년 12월 31일까지 동유럽에 존재하던 공화국.[6] 체코슬로바키아가 결합된 명칭이다. 1992년 이후 '벨벳 이혼'이라 불리는 분리 결정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각각 분리되어 사라졌다.

재미있는 건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민족도 같고, 언어도 비슷하고, 문화도 비슷한데 중세 시절의 대 모라비아 왕국(800?~907) 이후 1918년 이전까지는 거의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대부분 다른 나라로 지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대 모라비아 왕국이 동쪽에서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온 마자르족에게 멸망한 후 체코에는 보헤미아 공국-보헤미아 왕관령이라는 독립 국가가 들어섰지만 슬로바키아는 그러지 못하고 마자르족이 세운 헝가리 왕국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합스부르크 제국 시기에는 제국의 틀 안에서 한 나라에 속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제국 시기에도 체코는 독립된 제후국인 보헤미아 왕국이었던 반면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질 때 통합한 이후 약 70년 간 한 나라로 지냈던 게 역사상에서 사실상 유일한 케이스이다.

2. 역사

2.1.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1918–1938)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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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 의해 왕관이 윤허된 보헤미아 왕국 - 체코와, 천년 동안 헝가리의 일부로서 지배되었던 슬로바키아를 합쳐서 만든 나라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으로 독립하였다. 문제는 민족자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가인데 민족 구성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흡사했다는 것. 수데티(Sudety) 지방, 이른바 주데텐란트독일인이, 남부 슬로바키아 지방에 헝가리인이, 테신[7] 지방에 폴란드인이, 카르파티아-루테니아 지방에 우크라이나인루신인이 살고 있었다.[8]

전후 전간기 동안 독일인 문제로 위기를 맞았으나 연정의 형식을 통해 독일인들을 권력 집단의 주요 축으로서 끌어들이므로서 민족적 불만을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 성립 이후 본국에서의 막대한 후원을 등에 업은 주데텐 독일당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9] 체코슬로바키아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파일:external/ethnomusicologyreview.ucla.edu/praeger_im_2.jpg
1945년 이전 주데텐 독일인의 분포도.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 동방식민운동으로 독일인이 대거 이주했고, 특히 30년 전쟁으로 이런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성립 당시에는 독일인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특히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주데텐란트에는 독일인들이 있었다[10]. 독일 민족의 통일을 외치던 나치 독일은 이 '동포'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고 주데텐 독일당을 이용해 독일인들을 자극하여 말썽을 일으키게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선전을 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미 오스트리아독일에 흡수당하였던 전적이 있었으므로 위협의 메시지는 분명하였고 이 일로 인해 또다시 전쟁을 발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영국네빌 체임벌린 내각은 재빠르게 움직여 아돌프 히틀러와 직접 대면하였으나 협상을 원치 않았던 히틀러는 주데텐란트를 모두 내주도록 해주겠다는 협상 조건을 묵살하고 무조건 무력을 동원해 점령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영국과 프랑스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결국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이탈리아가 제안하고 중재자를 자처한 뮌헨 회담에 참석하여 나치 독일과 '협상', 주데텐란트를 독일 국방군이 직접 점령하는 데에 동의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 압력을 넣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배제되었던 이 회담의 결과에 굴복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에 주데텐란트를 할양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 지도에 따라 헝가리에 슬로바키아 남부 지역과 루테니아를, 폴란드에 테셴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2.2. 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1938–1939)

뮌헨 협정 이후 제2공화국이 선포되고, 사임한 에드바르트 베네시를 대신해 에밀 하하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주데텐란트를 빼앗긴 체코슬로바키아는 더 이상 독일에 대항할 능력이 전무했다. 주데텐란트에는 독일과의 전쟁을 대비해 국경 요새가 건설, 확장되어 소(小)마지노라고 부를 만한 수준에 이르렀었는데, 이것들을 모조리 빼앗긴 것이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른바 통일당이라는 것을 유일 집권당으로 삼아 독재 국가화하고, 중앙은행의 준비금을 베를린으로 옮기는 등,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나치에 완전히 종속되어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 되었다.

이 때를 틈탄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의 압력에 의해 체코-슬로바키아로 국가가 개편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데텐란트를 복속한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은 나치 독일은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을 사주, 이용하고 이들이 체포되자 즉시 군대를 움직여 슬로바키아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마저 병탄했다. 이후 슬로바키아를 분할시켜 1939년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란 괴뢰국을 성립시키는 한편 나머지 영토는 형식적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계승하는[11]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을 설치했다. 후에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가 결성되어 영국의 도움을 받아 연합국에 가담하여 추축국에 대항하였다.

2.3. 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1945–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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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함으로서 해방이 되었지만 같은 시기 소련군이 영내로 진주하였다. 그리하여 전쟁 이전 헝가리 왕국에 빼앗겼던 카르파티아-루테니아 지방우크라이나인이 거주하던 지역을 빌미로 다시 찾지 못하고 소련(우크라이나 SSR)에게 빼앗겼다.

전쟁이 끝난 직후, 망명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신 정부가 수립되었다. 제2공화국과 망명 정부에서 대통령을 했던 베네시가 다시 대통령으로 재추대되었고, 자유주의 정당 4곳과 사회주의 정당 4곳이 좌우합작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공산당은 원내 1당을 차지하며 연립정부의 추축을 맡았다.

베네시 정부는 제5열 노릇을 한 (전투를 피해 동유럽에서 피난온 독일인 난민 포함) 450만명의 독일계 국민과 60여만 명의 헝가리계 국민들에 대하여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에서 영감을 얻은 시민권 박탈→부동산 및 예금을 비롯한 재산 몰수강제퇴거로 이어지는 강력한 대통령령을 포고했다. 그 다음에 자연인 1명당 500코루나 이하까지 화폐수표어음예금주식국채를 등가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는데, 이 때문에 외국인들이 큰 손해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상업공업광업 국유화를 실행했다. 1945년에 노동자 1만 명 이상을 고용하는 주식회사를 국유화하고, 1946년에 1천 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을, 1947년에 1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유한회사를, 마지막으로 1948년에는 10명 이상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을 국유화했다.

그러나 1947년 체코가 마셜플랜을 거절하면서 공산당의 지지율이 추락하였고, 이대로라면 공산당이 정권을 빼앗기거나 아니면 정권에서 차지하는 몫이 작아질 것이 뻔했다. 결국 초조해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쿠데타를 지시했다. 2월 21일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행동을 개시했고, 소련 대사 발레리안 조린은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 결과 2월 25일 에드바르트 베네시 대통령이 공산당이 장악한 정부를 인정함으로써 제3공화국은 붕괴되었다.

2.4. 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1948–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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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1960–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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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199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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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종결되고 1989년 11월 동유럽 혁명 결과 동년 12월 바츨라프 하벨이 새 대통령에 선출되어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1990년 3월 헌법 개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해체되고 국호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바꾸었으며 1991년 6월에는 체코 주둔 소련군도 철수를 완료했다.

하지만 곧 체코 정치세력과 슬로바키아 정치세력 간의 일련의 알력을 빚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국명 분쟁이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점은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소속국의 지위와 국체였다. 동구권 붕괴와 경제적 혼란 속에서 급속한 개혁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는데, 체코와 슬로바키아 양자의 인정을 모두 받아야 했던 당시 연방제 내에서는 수틀리면 어떤 개혁 시도든 쉽게 봉쇄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하여 유럽연합 가입을 이룩하려고 했던 체코와, 상대적으로 EU나토 가입에 별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시장 개혁과 정부 역할 축소에 반발했던 슬로바키아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된 슬로바키아 입장에서 체코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별 다른 민족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나라가 무너질 정도로 큰 충돌도 아니었으며, 슬로바키아의 독자적인 외교권을 인정하되 통화 정책 등을 계속 연방 정부에서 수행하는 등의 합의안도 더러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정치인들은 평화적으로 연방을 해체하기로 합의를 보았고,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1992년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해체되었으며 1993년 1월 1일부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별개의 국가로 분리되었다. 양국은 협정에 따라 당시 인구 비율이었던 2:1로 모든 걸 나눠 가졌다. 심지어 국채까지. 기존의 UN 회원국 지위도 어느 한쪽이 승계하지 않고 아예 말소 처리하고 새로 가입할 정도로 철저하게 청산 절차를 밟았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의 요청과 유엔사의 동의에 따라 한국 전쟁 정전 협정에 따른 중립국감독위원회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것은 체코가 물려받았다.[12] 해외 주재 대사관도 대체로 체코가 물려받았는데, 아마도 다른 나라의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대사관이 거진 체코의 프라하에 모여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분리되었을 적에도 벨벳 혁명처럼 아무런 군사적 마찰없이 해체됐기 때문에 이를 벨벳 이혼(sametový rozvod, zamatový rozvod)이라고도 부른다. 다만 체코가 약속을 전부 다 지킨 것은 아니었는데, 처음 약속을 깨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기[13]를 그대로 사용한 것. 사실 체코도 새로 국기를 제정하려 했으나 국기 제정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기존의 체코슬로바키아 국기에서 의미만 바꾸어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3. 국가


전반부는 체코의 국가 1절, 후반부는 슬로바키아의 국가 1절을 이어서 연주하였다.


뮌헨 협정 이전에는 소수민족이었던 독일계 주민들을 위한 독일어 가사도 존재했다.

4. 국장

파일:체코슬로바키아 대형 국장.svg
대형 국장
파일:체코슬로바키아 중형 국장.svg 파일:체코슬로바키아 소형 국장.svg
중형 국장 소형 국장

1920년부터 1938년까지는 세 종류의 국장을 사용했다. 이 중 대형 국장은 제1공화국 시기에 주로 사용했고, 뮌헨 협정 이후에 수립된 제2공화국 시기에는 중형 국장을 사용했다. 소형 국장은 시기에 상관 없이 즐겨 사용했으며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1945년 수립된 제3공화국부터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에도 1960년까지 사용했다.[14]

5. 여담

6. 관련 문서



[1] 위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에서 영토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나치 독일압력에 의해 헝가리 왕국에 빼앗기고 전쟁 후에는 소련에 할양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지방은 루테니아라고 불리는데, 폴란드 동부의 갈리치아 일대와 더불어 2차대전 후 소련에 할양되는 운명을 맞게 되어 루테니아와 갈리치아는 소련 영토가 되었고 소련 해체 후에는 독립국 우크라이나자카르파탸주가 되었다.[2] 사회주의공화국 수립 이후[3] 독일인은 300만 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인구의 22%을 차지해 16%을 차지하고 있는 슬로바키아인보다 수가 더 많았다. 헝가리인들도 슬로바키아 일대에 수십만명이 거주했다, 독일인들과 헝가리인들은 1945년 종전 이후 베네시 선언에 의해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로 추방당했다. 다만 독일인들과는 달리 헝가리인들은 완전히 추방되지 않아 지금도 슬로바키아 남부에 소수가 잔존해 있다.[4] 페데라티브니(Federativní)는 체코어 표기이며 슬로바키아어 표기는 페데라티우나(Federatívna)이다.[5] 체코인들이 하이픈 없는 형태를 선호하고 슬로바키아인들이 하이픈 있는 형태를 선호하는 차이가 있다.[6] 현재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모두 중부유럽으로 분류되지만 냉전 당시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동유럽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동유럽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다. UN도 동유럽으로 분류한다.[7] 독일어로는 테셴, 폴란드어로 치에신, 원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였던 것이 제1차 세계 대전 후 영토 분할 과정에서 도시가 둘로 분단되었고, 때문에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분할 과정에서 도시의 사회 인프라가 폴란드령 치에신과 체코령 체스키테신 간에 편중되어서 이에 따른 불편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솅겐 협정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8] 때문에 오헝제국을 해체해서 또 오헝제국을 만들었다는 촌평을 받기도 한다.[9] 1935년 총선에서는 독일인들의 몰표에 힘입어 주데텐 독일당이 득표율 제1당이 되었을 정도였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인들의 68%가 주데텐 독일당에 투표했다고 한다.[10] 만약 히틀러가 집권하지 않고 2차 세계 대전이 없어서 체코 거주 독일계가 추방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체코도 벨기에처럼 체코인-독일인 연방제 국가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11] 실제로는 독일에서 파견된 총독이 통치. 2대 독일 총독이 그 유명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12] 그러나 북한이 분리해 나온 체코의 체코슬로바키아 승계를 거부하면서 활동 개시 후 1년 남짓 지난 1994년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고 중감위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체코 대표단이 북한의 퇴거 통보에 항의하자 물과 전기 공급을 끊는 등 상당히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었다.[13]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기는 보헤미아의 깃발에 슬로바키아를 의미하는 파란색 삼각형을 추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14] 사실 세 국장 모두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헌법에 그대로 남아있었으므로 대형 국장과 중형 국장이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제2공화국 이후로는 대통령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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