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04:58:50

화교(삼국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서진의 인물이자 화흡의 손자에 대한 내용은 화교(서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華嶠
(? ~ 293)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고대 중국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숙준(叔駿)으로 화표의 셋째 아들이자 화흠의 손자. 청주 평원군 고당현 사람.

2. 생애

재주와 학문은 깊고 넓으면서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똑똑했으며, 사마소가 대장군이 되자 벽소되어 대장군연속이 되었다가 상서랑에 임명되었다. 거기장군의 종사중랑으로 옮겨졌다가 265년에 서진이 건국되자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고 태자중서자가 되었다가 안평태수로 임명되었지만 늙은 어머니가 있어 가지 않았으며, 산기상시, 중서저작, 국자박사, 시중 등을 역임했다.

289년에 사마염이 연회의 즐거움에 빠져 큰 질병에 대한 근심이 있었고 화교는 양생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라고 진언했지만 사마염은 병은 금방 나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사마염은 290년에 사망했으며, 291년에 화교는 선창정후에 봉해졌다가 이 해에 양준이 주살되자 낙향후로 고쳐 봉해졌고 상서로 옮겼다.

화교는 사물에 대해 널리 들은 것과 아는 것이 많았고 쓴 글은 사실에 충실했으며 훌륭한 역사가의 뜻이 있어 화교는 비서감에 임명되면서 산기상시를 더했고 중서로 돌아갔다. 화교는 절에서 중서, 산기, 저작의 문서들을 모았고 법도, 음률, 천문, 산술 등에 대해 요점을 모아 문하의 사람들에게 편집해 모으도록 해 정리했다.

처음에 화교는 한기가 번잡하고 문체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해서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낭의 일로 관제에 대한 일을 했기 때문에 낙양에 보관된 문서를 모두 볼 수 있어 한기에 대한 개정을 할 수 있었고 순욱, 화교, 장화, 왕제 등은 모두 화교의 문장을 칭찬했다. 순박하면서 핵심을 파악하고 시종일관으로 사실에 입각하고 쓴 문체로 황실 도서관의 책으로 삼아야 한다고 평가받았다.

이후 태위에서 사마량, 위관 등이 동궁부로 갔고 사마량, 위관 등은 동궁에서 역사 강의를 했는데, 화교의 한후서를 황실 도서관에 들였고 화교가 저술한 논의, 난박, 시부 등이 수십만 마디가 있었다. 화교는 관제에 대해 상주해 황태자를 동궁으로 되돌아가게 하자고 제안하거나 비를 내리는 행사, 인재 등용, 치수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으며, 화교는 우가 물에 대한 관리를 따로 두는 등 여러 가지를 제안했고 화교가 제안한 것은 대부분 채용되었다.

293년에 사망했고 소부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간(簡)이다.

화교는 술을 즐기는 것을 항상 취해있었고 편집한 것 중에서는 십전은 완성하지 못했으며, 십전은 하초가 상주해 그의 아들들과 사관이 협력해 완성했으며, 화교가 쓴 저작들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당나라 때까지 50여권만 현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