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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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賈渾(? ~ 305)
서진의 인물. 자는 불명. 출신지 불명.
2. 생애
태안 연간(302년 ~ 303년)에 개휴(介休)의 현령으로 부임하였다.영흥 원년(304년) 10월, 대선우 유연이 좌국성(左國城)을 수도로 삼아 한(漢)을 건국하고, 전한, 후한, 촉한의 황제들의 제사를 지낸 뒤 진나라에 반란을 선포하였다. 유연은 대릉(大陵)에서 병주자사 사마등의 장수 섭현(聶玄)을 대파하고, 건무장군 유요를 보내 상당군의 현지(泫氏), 둔류(屯留), 장자(長子)와 태원군의 중도(中都)를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뻗어나갔다. 이때 한나라의 관군장군 교희(喬晞)도 유연의 명을 받고 개휴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한군에게 붙들려 끌려온 가혼은 투항하길 거부하며 말했다.
"나는 진나라의 현령으로서 지역을 능히 지킬 수 없었는데, 구차하게 역적놈에게 구걸하여 목숨을 구한다 한들, 무슨 낯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교희가 노하여 가혼을 죽이려 하자, 교희의 장수 윤숭(尹崧)이 청했다."장군께서는 그를 놓아주시고 이로써 폐하를 섬기게끔 권유하십시오."
하지만 교희는 듣지 않고 가혼을 처형하였다. 이후 교희는 가혼의 처 종씨(宗氏)를 강제로 취하려 했으나, 종씨가 그를 꾸짖고 욕하자 그녀마저 살해해 버렸다. 이 소식을 보고받은 유연은 노발대발하여 친히 교희를 찾아가 4계급 강등시키고, 가혼 부부의 시신을 거두어 예로써 장례를 치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