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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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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최경철 · 86 신재웅 · 89 양원혁 · # 이병규 [[틀:LG 트윈스 2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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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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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3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8_r2_500.png 1997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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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3LG 퓨처스 투수코치 김광삼..png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99
김광삼
金光三 | Kim Gwangsam
출생 1980년 8월 15일 ([age(1980-08-15)]세)
경기도 성남시[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울쌍문초등학교 (졸업)[2]
신일중학교 (졸업)
신일고등학교 (졸업)
포지션 투수(1999~2007) → 외야수(2008~2009) → 투수(2010~2016)
투타 우투좌타[3]
프로 입단 1999년 고졸우선지명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9~2016)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1~2002)
등장곡 린킨 파크 - New Divide[4]
응원가 이지연 - Love for Night[5][6][7]
지도자 LG 트윈스 육성군 재활코치 (2017~2018)
LG 트윈스 육성군 투수코치 (2019)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20)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21~2022)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23)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23~2024)[8]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24~)[9]
종교 개신교[10]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선수 경력
2.2.1. 데뷔 후~2009년2.2.2. 2010 시즌2.2.3. 2011 시즌2.2.4. 2012 시즌2.2.5. 2014 시즌2.2.6. 2015 시즌2.2.7. 2016 시즌
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LG 트윈스의 1군 불펜코치. 투수로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인하여 2007년 시즌 후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2010년 다시 투수로 전환하여 은퇴할 때까지 투수로 뛰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서울쌍문초, 신일중을 거쳐 고교시절부터 장래가 촉망받는 투수 유망주였다. 신일고등학교 시절 봉중근-안치용-김광삼 그리고 현재윤은 국내 전국 4개 메이저대회 중 대통령배를 제외한 3개 대회(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에서 모두 우승하며 신일고의 3관왕을 이끌었고 세명은 최우수타자, 최우수선수, 최우수투수, 대회MVP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투수 뿐만 아니라 타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봉중근-안치용-김광삼의 신일고 클린업 트리오는 당대의 무적이었고, 이 때문에 김광삼의 입단 당시 LG는 그를 타자로 키워야 하나, 투수로 키워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잠시 하기도 했었으나 결국 투수로 키우기로 결정하였다.

2.2. 선수 경력

2.2.1. 데뷔 후~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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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시절

파일:downloadfile-277.jpg

타자 시절

1999년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신인이던 1999년 스프링캠프 때 구단 최고참인 김용수의 방을 찾아가 은퇴하면 41번을 물려달라고 요구하는 당돌함과 배짱도 갖추고 있었다. 김용수도 김광삼의 당돌함과 용기를 높게 사서 은퇴하면 등번호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김용수의 등번호는 7개월 후 LG구단에 의해 영구결번으로 지정. 그래서 초기에 단 번호는 52번이었다.

데뷔 후 2년간 영점을 잡은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해 병역 문제를 해결한 후 제대한 2003년부터 선발진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4점대 초중반의 ERA로 팀의 상태를 감안하면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05년에 부상을 당한 후부터 부상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결국에 타자로 전향했다.

부상 때문에 결국 2007년 투수를 포기하고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 그 해 별 다른 활약은 없었지만 13타수 5안타 .385로 치는 재능은 있었다. 2009년에는 기대치에 못 미치던 활약을 보인[11] 김상현이 내놓은 등번호 7번을 달면서 완전히 야수로 정착하는 듯 했으나…[12]

2.2.2. 2010 시즌

2010년에는 다시 투수로 전향한다. 타자를 하면서 부상 부위의 통증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승화가 내놓고 간 22번을 달았다. 그리고 2009시즌에 달었던 등번호 7번은 오지환으로 넘어갔다.

그가 등판하려는 날에는 우천취소가 많아 우비소년이라 불렸다.

포텐셜 자체는 당대 LG 투수 유망주 중 가장 뛰어났던 KIA의 김진우, 한화의 류현진처럼 15승~20승의 에이스로 성장할 재목이었으나 이순철 강점기 당시 개판 오분전이었던 팀상황과 부상으로 인해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4월 6일 사직 롯데전에서 2007년 8월 17일 잠실 삼성전 이후 2년 8개월(1,032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 복귀전에서 4.2이닝 7피안타 6실점(5자책)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11일 두산전에서 5.1이닝 9피안타 4실점(3자책)으로 버텨주었고 타선 지원이 뒤따르면서 2005년 9월 28일 문학 SK전 이후 1,656일 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선발승 기준으로는 2005년 9월 8일 잠실 KIA전 이후 1,676일 만의 기록이다.

4월 17일 광주 KIA전에서 5이닝 5피안타 2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하고 시즌 2승째를 거뒀다. LG는 KIA전에서 위닝시리즈를 따내며 2009 시즌 KIA전 승수를 단 2경기 만에 채웠다. KIA전 승리 이후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에 대해 박종훈 감독은 "아픈데는 없으며 오히려 5선발군 중 가장 앞서 있는 선발투수"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4월 24일 심수창이 2군으로 내려간 뒤 박종훈 감독은 시즌 2승째를 거둔 김광삼이 이제 제4선발이라고 못박았다. #

5월 2일 문학 SK전에서 선발등판하여 5이닝 2실점으로 승리요건을 갖추었지만 투구수가 적었음에도 6회 이후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펜 방화로 인하여 시즌 3승이 날아갔다.

5월 8일 잠실 KIA전에서 4.2이닝 6피안타 1볼넷 3탈삼진을 기록했으나 4회에 김상훈에게 통한의 실투로 만루홈런 한방을 맞으면서 4실점했다. LG가 6회 2점, 7회 1점을 각각 추가해 4-4 동점을 만들며 패전투수가 되지는 않았다.

5월 13일 청주 한화전에서 4회까지 4-0의 리드를 안고 있었지만 4회말 2사 2루에서 신경현에게 투런 홈런, 5회말 1사 1루에서 최진행에게 동점 투런 홈런을 내주면서 4.1이닝 4실점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결국 LG는 한화 상대로 피스윕을 피하지 못했다.

5월 19일 대구 삼성전에서 5.1이닝 6피안타 2볼넷 4탈삼진 3실점으로 시즌 3승째를 기록했다. LG는 선발 김광삼의 호투와 타자들의 고른 활약 속에 10-4로 승리했다.

5월 25일 KIA전에서 6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2실점 호투로 시즌 처음으로 QS를 기록하고 승리요건까지 갖췄으나 오카모토가 8회 동점홈런을 내주면서 승패없이 물러났다. LG는 접전 끝에 5-4 승리를 거뒀다.

5월 30일 목동 넥센전에서 8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시즌 첫 QS+에 도미넌트 스타트로 시즌 최고의 호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상대 선발 고원준 역시 8이닝 무실점을 보여주면서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LG는 연장 11회에 터진 박병호의 결승타로 1-0 승리를 거뒀다. 공교롭게도 김광삼이 호투한 2경기에서 오카모토가 구원승을 챙겼다. 5월까지 김광삼의 기록은 9경기 3승 1패 ERA 4.66이다.

6월 5일 잠실 SK전에서 3회까지는 무실점 호투했으나 4회에 집중타를 맞으며 3.2이닝 7피안타 3실점의 아쉬운 피칭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LG는 추격쥐 끝에 끝내 SK전 8연패를 끊지 못했다.

6월 11일 광주 KIA전에서 6회까지 4피안타 2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해 시즌 3번째 QS와 함께 시즌 4승째를 올렸다. LG는 이날 박병호의 대활약에 힘입어 윤석민이 선발등판한 KIA에 6-3으로 이겼다. KIA전에서 2승을 올리며 강한 모습을 보였다.

6월 19일 잠실 롯데전에서는 3.1이닝 3사사구에 10피안타에 탈삼진 없이 8실점(7자책)의 시즌 최악투를 기록했다. 1회에 홍성흔에게 선제 솔로포를 내준데 이어 3회에 3실점하면서 4-4로 맞선 4회초 이대호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강판당했다. 그러나 이날 5타수 5안타를 기록한 이진영과 결승타를 기록한 손인호 덕분에 LG가 9-8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패전투수는 면했다.

6월 25일 대전 한화전에서 1회 5점의 리드를 안고도 3.1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다. LG는 난타전 끝에 13-8 승리를 거뒀다.

7월 1일 잠실 넥센전에서 2회초 무사 만루를 내준 뒤 김민우에게 몸 맞는 공을 기록하며 실점하고 김지용으로 교체되었다. 김지용이 연속 희생플라이를 내줘 김광삼의 실점은 3실점이 되었고 김광삼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3경기 연속 조기 강판으로 LG 마운드에 고민을 남겼다.

결국 구위 저하로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21일 잠실 두산전에서 20일 만에 1군에 복귀했지만 1이닝 4실점으로 부진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28일 잠실 SK전에서 6회초 1아웃까지 5.1이닝 5피안타 2사사구 3탈삼진 2실점으로 모처럼 호투했다.[13] 승리요건을 갖추었으나 불펜 방화로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는데 LG는 SK로 트레이드 이적한 권용관의 끝내기 실책으로 연장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8월 3일 광주 KIA전에 선발등판했는데 2이닝 2피안타 3사사구 3실점으로 승패없이 물러났다. 이날 선발 더마트레가 손가락 물집으로 강판되자 김선규에 이어 등판한 것인데 투구수가 41개에 불과했다지만 선발 투수가 다음날 등판하는 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KIA전에서 4회 2사 후 마운드에 올라 7회까지 3.1이닝 4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으로 막고 구원승으로 시즌 5승째를 올렸다.

8월 11일 문학 SK전에서 6.2이닝 7피안타 5사사구 3탈삼진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1회에 3실점, 2회에 1실점하고 7회 2아웃까지 안정적으로 던져줬는데 초반 실점과 함께 타선이 김광현에게 꽁꽁 묶인 점이 아쉬웠다.

8월 18일 잠실 한화전에서 9이닝 2피안타 4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으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완봉승을 기록했다. 수많은 굴곡을 딛고 2010 시즌 어쨌거나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선발투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수많은 굴곡을 딛고 2010년[14]에는 드디어 첫 완봉승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어쨌거나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선발투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동료들 또는 해설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LG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중에 하나. 투수에서 타자, 타자에서 다시 투수로 전향할 때마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고 한다. 타자로 활약할 당시의 경험이 후에 투수로서 던질 때 많이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

투수로서 수비력이 상당히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수는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자가 치는 순간 투수 역시 수비하는 야수가 되는데 김광삼의 경우 수비력만 놓고 보면 리그 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타자 경험도 풍부한 덕인 듯.

8월 24일 두산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선발등판했으나 2-2로 끝난 후 내린 비로 인해 강우콜드 무승부를 기록했다. 김광삼은 5이닝 3안타 2실점(1자책) 탈삼진 3개로 호투했지만 승패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2-1로 앞선 5회말 2사 1,3루 상황에서 보크로 인해 동점을 내주며 시즌 7승에 실패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LG 벤치의 항의로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9월 4일 문학 SK전에서 4이닝 6피안타 4실점의 부진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9월 18일 잠실 KIA전에서 3이닝 5피안타 6실점으로 부진했으나 타선 도움으로 패전 위기에서 벗어났다.

9월 24일 시즌 마지막 등판인 문학 SK전에서 6이닝 3피안타 2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7승째를 거뒀다. 이 승리로 LG는 SK의 시즌 최다승을 저지했다. 김광삼 개인으로서도 자칫 6점대 ERA로 마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날 호투로 ERA를 5.68로 낮추며 시즌을 마쳤다.

김광삼은 2010 시즌 5선발 후보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점차 입지를 넓히면서 시즌 7승을 거두었고 데뷔 첫 완봉승을 올렸다. 7월에 잠시 2군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줄곧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으며, 투수로 다시 전향한 후 첫 시즌임을 감안한다면 비록 5점대 후반의 ERA로 마쳤지만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2.2.3. 2011 시즌

시즌초에 컨디션 난조로 2군에서 가다듬은 뒤에 16일 처음으로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선발등판했다. 5.2이닝 83투구수 5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고 첫승을 기록했다.

선발과 중간을 오가는 스윙맨의 역할이 주어졌는데 봉중근의 복귀 후에는 LG의 중간에서 큰 역할이 기대되는 선수이다.

4월 22일 KIA전에서도 호투를 보여주며 승리투수가 되었는데 상대 투수가 좌완에이스 트레비스 블랙클리였음을 생각한다면 1승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승리였다. 김선빈의 2루 도루 후 실점한 게 아쉬웠는데 타이밍은 아웃인 듯 했지만 심판이 세이프를 선언했고 그 후 안타를 맞아 1실점했다.

22일 경기에서 6.2이닝 투구수 84개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다.

여담이지만 22일 경기에서 호투 이외에도 기가 막힌 호수비를 여러 번 선보였다. 한 마디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수준이었다. 자기가 2루 가까이까지 가서 타구를 처리하고 날아다니면서 안타성 타구를 땅볼로 만들어버렸는데 네이버 중계댓글에서는 김광삼의 새 별명으로 투루수 라고 칭할 정도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안용완 트레이너[15]에게 승리를 바칩니다"라고 인터뷰를 해 다시 한 번 훈남임을 인증하였다[16].

불같은 새털 직구를 던져대던 심수창을 2군으로 밀어내고 5선발로 정착한 김광삼이다. 6일 삼성전에 선발 등판해 장원삼과 맞대결이 기대된다.

봉중근이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황에서 다시 4선발로 올라선 김광삼은 22일 롯데전에 선발 등판해서 6.0이닝 투구수 97개 볼넷 2개 탈삼진 2개 4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면서 QS에 성공했다. 1회에 정신 없는 실책으로 비자책이 3점이나 되었지만 그 이후 아주 잘 막아줬다. 완급조절도 좋았고 직구구속도 148km/h까지 나오며 롯데 타자들을 요리했다.

6월 8일 한화전에서 2회에 타구를 손으로 막는 괴력을 발휘하다가 손가락에 충격이 왔고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다 안타를 많이 허용하면서도 꿋꿋이 막아내는 투혼피칭을 선보였다. 손가락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꿋꿋이 버티며 5.0이닝 투구수 82개 8피안타 2사사구 1K 2실점 2자책점 호투를 했으나 불펜진의 분식회계로 승을 날리고 말았다. 8일 경기에서 가장 칭송을 받을 것! 으로 예상했으나 당일 경기에서의 임찬규 보크 오심 때문에 폭풍같이 관심이 그 쪽으로 쏠리면서 오늘 김광삼이 손으로 막아낸 투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묻혀버리고 말았다.(...) 제 2의 들쿠달스가 되고만 김광삼만 지못미. 6월 15일 삼성전에서는 4.2이닝 4실점으로 아쉽게 패전투수가 되지만, 6월 21일 넥센전에서는 6이닝 1실점의 쾌투로 한 달만에 승리투수가 된다.

하지만 이후 계속된 장마로 1, 2, 3선발만 주구장창 돌리는 박종훈 감독 때문에 실전등판이 한달동안 없다시피해서인지 페이스가 떨어지며 부진했다.

2.2.4.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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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김광삼 선발에 팬들은 상당히 부정적이였지만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선발에 문제가 생기면서 선발진에 무난히 합류하였다.

4월 12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서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여 맞춰 잡는 피칭을 펼치며 6이닝 70투구수 4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0:4로 승리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월 18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 1회말에 안타 1개, 볼넷 3개로 1실점을 했지만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막고 5회까지 꾸역꾸역 버티면서 5이닝 86투구수 3피안타 4사사구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했다. 팀이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내려왔지만 팀이 6:1로 역전승을 하며 패전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이날 팀 승리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등극함과 동시에 2경기 연속 호투를 하며 선발 자리를 완전히 꿰찬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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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두산전 1-2로 뒤진 연장 11회말 LG의 공격. 1사 1,3루에서 3루 최동수와 교체,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주자로 뛰었다. 1득점 성공.

시즌이 끝난 뒤인 10월 17일 미국 LA의 조브 클리닉에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수술과 뼈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재활에는 1년이 소요되어 2013시즌에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2.2.5. 2014 시즌

팬들은 돌아와서 선발의 한 축을 맡아주길 기대했지만 수술 부위에 뼛조각이 떨어져나와 다시 수술을 받게 되었고 퓨처스리그에서 4월에 2번 등판을 한 이후 시즌을 접게 되었다.

2.2.6. 2015 시즌

3월 22일 쇼핑호스트로 일하는 여자친구와 결혼하였다.

7월 31일 SK와의 경기 전 1군으로 콜업되었다. 2012년 9월 8일 잠실 KIA전 이후 1,056일 만의 콜업으로 이 날 선발투수로 나오게 되었다. 1회부터 홈런을 맞으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4이닝 2실점으로 평범한 성적을 내고 교체되었다. 팀은 그대로 패배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17]

8월 11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시즌 2번째로 선발 등판하게 되었다. 5회 2사까지 0실점으로 막았고 팀도 1점을 뽑아서 1아웃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출 수 있었으나 역전타를 맞으면서 강판되고 만다. 4.2이닝 2피안타 2볼넷 3실점 무자책. 팀이 재역전하며 패전은 면하게 됐으며 팀도 승리하였다.

8월 16일 KIA전에서 시즌 3번째로 선발 등판하였다. 1회부터 호되게 맞으면서 1실점하고 1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폭우가 쏟아지며 노게임이 선언되었다.

8월 19일 롯데전에서 다시 시즌 3번째로 선발 등판하였다. 5회말 2사까지 2:1로 앞서 있어서 이번에도 승리투수 요건을 갖출수 있었으나 손아섭에게 동점타를 맞으면서 또 강판되고 만다. 이날 기록은 4.2이닝 2실점. 팀은 패배하고 만다.

8월 3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4번째로 선발 등판하였다. 3회까지 타자들이 9점이나 지원해 주면서 기분좋게 시작했으나, 2.1이닝 6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조기 강판당했다. 이날 경기는 해당 문서 참조. 동점을 허용한 유원상이 패전의 멍에를 썼다. 경기가 끝난 후 1군에서 말소되었다.

2.2.7. 2016 시즌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퓨처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4월 22일 기준으로 3경기 3승 1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으나, 8월 28일 이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가 4회초 삼성 이성규의 직선 타구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18] 그 와중에도 김광삼은 "공 어딨어! 공 어딨어!"를 외치며 공을 찾아 1루로 던지려 했고, 덕아웃으로 실려 와서도 "계속 던지겠다" 라고 의지를 보였지만, 이 날 같이 경기를 뛴 선배 이병규"야 김광삼! 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당장 병원부터 가야 할거 아냐!!" 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빨리 병원에 가라고 설득하여 결국 김광삼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을 3군데나 옮기며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두개골 골절, 뇌출혈, 뇌외출혈 등등 5가지 증상을 동시에 진단받았다. 대략 전치 8주의 중상으로 복귀고 뭐고 간에 후유장애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병규의 불호령이 없었다면 진짜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후 입원치료 끝에 무사히 퇴원했고, 우려하던 후유증은 없었다.

부상 후유증으로 선수 본인이 은퇴를 원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결국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류택현을 대신해 육성군 투수코치를 맡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재활코치로 선임됐다.

3. 지도자 경력

2017년 시즌부터 재활군 코치로 활동한다. 재활을 오래 경험해(...) 선수들을 잘 이해해줄 것 같다는 게 구단 측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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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일 홈경기에서 경헌호와 함께 짧게 은퇴식을 치렀다. 많은 팬들이 10:3 대패로 인해 먼저 경기장을 나갔지만, 남아있는 팬들은 큰 환호성을 보내줬다.

여담으로, 은퇴식 도중 김광삼의 아이들이 계속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김광삼의 부친이 잡으러 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8년 12월 5일 육성군 투수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2021년 1월 23일 1군 불펜코치로 임명되었다. 1군 투수코치인 경헌호와 더불어 LG 마운드를 관리하며 초보 감독인 류지현을 잘 보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22시즌도 경헌호 코치와 함께 LG 투수들을 잘 다독여주면서 마운드 안정화에 큰 기여를 했고, 팀이 정규시즌 2위를 하는 데에 숨은 공로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3 시즌부터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경헌호 코치가 건강 문제로 인해 휴식을 취하게 되면서 1군 불펜코치를 맡게 되었다. 2023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어 통합 우승을 달성하면서 선수 때 해보지 못한 우승을 코치로써 이뤘다. 이호준 코치가 밝힌 바에 따르면 한국시리즈 5차전 9회초 2아웃 상황부터 덕아웃에서 계속 눈물을 흘렸고 우승이 확정되자 거의 오열했다고 한다. 선수 시절부터 쌓였던 서러움이 북받쳤던 것으로 보인다.

2024 시즌에도 1군 불펜코치를 수행하던 중 8월 29일 부로 잔류군으로 내려간 최상덕 코치[19]를 대신해서 1군 메인 투수 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가 1군 투수 코치를 맡자마자 손주영디트릭 엔스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팀도 최종적으로 3위에 안착하면서 최상덕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가 많다.

LG 마운드의 터줏대감이던 경헌호 코치가 SSG 랜더스로 이적하면서 2025 시즌 1군 투수코치 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1999 LG 11 31⅔ 10.23 1 4 0 0 52 5 29 18
2000 12 18 7.50 0 0 0 0 27 5 9 10
2001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2
2003 25 111 4.46 7 9 0 0 115 7 63 69
2004 31 151 4.41 8 7 0 1 164 9 87 109
2005 23 103⅓ 4.96 7 7 0 0 115 13 61 76
2006 6 17⅔ 4.08 0 2 0 0 19 0 16 10
2007 4 7⅓ 12.27 0 0 0 0 12 0 8 3
2010 24 111 5.68 7 6 0 0 125 10 64 60
2011 22 93 4.74 4 5 0 0 108 8 45 41
2012 20 104⅓ 4.92 7 9 0 0 114 3 47 46
2013 1군 기록 없음
2014
2015 4 15.2 5.74 0 1 0 0 16 2 10 11
2016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1시즌)
182 764 5.21 41 50 0 1 867 62 434 453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3 LG 1 - 0 0 0 0 0 0 0 0 0 0 - -
2004 1 - 0 0 0 0 0 0 0 0 0 0 - -
2008 13 0.385 5 1 0 0 1 0 0 0 0 3 0.385 0.462
2009 1 0.000 0 0 0 0 0 0 0 0 0 0 0.000 0.000
2012 1 - 0 0 0 0 0 1 0 0 0 0 - -
KBO 통산
(5시즌)
17 0.294 5 1 0 0 1 1 0 0 0 3 0.294 0.353

5. 관련 문서



[1] 링크[2] 원래 하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서울 도봉구로 이사오면서 부친께서 야구를 좋아하는 터라 전학가는 동시에 야구선수로 전향했다.[3] 우완투수이지만 왼손잡이이다.[4] 트랜스포머 2의 테마곡이다.[5] 김광삼! 날려라 날려버려 김광삼! 날려라 날려버려 김광삼! 날려라 날려버려 안!타! 김!광!삼![6] 타자 시절 응원가다. 잠시 박용근이 썼다가 kt로 트레이드되며 현재는 주인이 없는 상태.[7] 여담으로 김광삼은 이 응원가를 딱 하루만 썼다고 한다.[8] ~8월 28일[9] 8월 29일~[10] 경기를 승리하고 퇴근할 때도 찬송가를 들을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참고로 선발투수로 등판했을 때도 국민의례 때 기도문을 외우기도 했다.[11] 어디까지나 시즌 개막 전 기준. KIA와의 트레이드 후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2] 1번을 제외한 한 자릿 수 등번호는 투수가 거의 달지 않는 번호. 최근에는 투수들이 0번을 달기도 한다.[13]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는 1실점 상태였으나 후속 투수 김광수가 승계주자 실점을 했다.[14] 8월 18일 잠실 한화전[15] LG 1군 트레이너, 며칠 전에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였다.[16]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7&sid2=213&oid=111&aid=0000232213[17] 허나 1군 선수들과 동행 중이다.[18] 이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면 퓨처스 평균자책점 1위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라 더욱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19] 당초 1군 투코이던 김경태가 건강 문제로 인하여 2군으로 가면서 7월 16일 부터 임무를 교대했지만 8월 내내 LG 불펜이 안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불과 한달 반 만에 문책성 강등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