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4 21:15:10

노지(삼국지)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1. 개요

魯芝
(190~273)

삼국시대 위나라진나라의 관료로 자는 세영(世英).

2. 생애

옹주 부풍군 미현 사람으로 대대로 명성과 덕망이 있어 서쪽 주의 호족이었다고 하며, 아버지가 곽사에게 해를 입었으므로, 포대기에 싸여있을 무렵부터 정처없이 떠돌아 17살 때 옹주로 옮겨 살았다.

삼분[1]과 오전[2]을 깊이 생각해 연구했고 군에서 상계리로 천거해 주에서 별가로 벽소했으며, 곽회가 옹주자사가 될 때 노지를 매우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효렴으로 천거되었다가 낭중에 제수되었고 마침 제갈량이 농우를 침입하면서 곽회가 조정에 청을 올려 노지를 별가로 삼았으며, 제갈량이 침입한 일이 평정되자 공부에 천거되어 대장군 조진의 연이 되었다가 전임해서 조식의 문학연이 되었다.

정무가 사공 왕랑에게 노지를 천거하자 왕랑이 예를 갖추어 임명했고 후에는 기도위, 참군사, 행남안태수가 되었다가 벼슬을 옮겨 상서랑이 되었으며, 조진이 관우 지역의 도독이 되자 대사마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진이 죽자 사마의가 대신하게 되면서 노지는 조정의 부름으로 표기군사가 되었다가 천수태수에 전임되었으며, 촉나라가 여러 차례 침략하자 호구가 줄어들고 도적들이 들어차자 노지는 군대를 주둔시키고 지켰다가 성곽과 도시를 다시 만들어 몇 년 사이에 옛 지역이 모두 회복되었다.

광평태수가 옮겨질 때 천수군의 이민족과 한족들이 은덕을 사모해 궁궐로 나아가 글을 바쳐 노지를 천수태수로 있게 해달라고 하자 조예가 이를 허락하면서 가상히 여겨 황패[3]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고 칭찬하면서 토구장군을 더했다. 조상이 정권을 잡게 되자 불러들여 사마로 삼았으며, 노지는 여러 차례 바른 말과 좋은 계책을 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평릉 사변 때 사마의가 조상을 죽이기 위해 조상이 성을 나간 틈을 타 성문을 닫자 노지는 대장군부에 남아있다가 사달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상의 군사를 인솔해 조상에게 가려고 했으며, 신창도 호출해서 같이 가려고 했다. 신창과 함께 조상에게 향하면서 낙양성 남서쪽의 첫 번째 문인 진문(건성문)을 부수고 조상에게 갔다.

사마의가 병권을 거두라는 명을 전할 때 조상이 죄를 받으려 하자 주부 양종과 함께 울면서 말했다.
공이 이윤, 주공의 지위에 있으신데 하루 아침에 죄를 얻어 축출당하시면 비록 누런 개를 끌고 다니고자 하셔도 어찌 다시 그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천자를 끼고 허창을 지키며 큰 위엄에 기대시고 공문을 날려 사방의 군사를 불러들이신다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를 버리고 처형장으로 나아가려 하시니 어찌 통곡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조상이 나약하고 의심하서 따르지 않았고 조상은 결국 사마의에게 주살되었는데, 관리가 주청해서 노지와 양종의 죄를 청하려고 했지만 사마의가 주인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을 권하기 위함이라면서 용서했다.

얼마 후 기용되어 사지절을 내려 영 호흉노중랑장, 진위장군, 병주자사에 임명[4]되었다가 사방을 안정시켜 대홍려가 되었다.

조모가 즉위하자 관내후에 봉해지면서 식읍 200호를 받았으며, 관구검의 난이 평정된 후에는 식읍 200호가 더해지면서 양무장군, 형주자사가 되었으며, 제갈탄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소가 사방의 군사를 징집할 때 형주의 문무관을 거느리고 가장 먼저 달려왔다. 제갈탄이 평정되자 무진정후로 작위가 올려지고 식읍 900호가 더해졌으며, 대상서로 전임되어 형법을 맡았다.

조환이 즉위하자 태성향후에 봉해지면서 식읍 800호가 더해졌으며, 청주제군사로 전임되었다가 진무장군, 청주자사가 되었다. 전임해서 평동장군이 되었다가 음평백에 봉해졌으며, 사마염이 즉위하면서 진나라가 세워지자 진동장군이 되면서 후로 봉해졌다.

사마염은 노지가 펑렴하고 충성스러우면서 바른 도를 지키는데다가 거처하는 자택이 없었으므로 군사들에게 50칸의 집을 짓게 했는데, 노지의 나이가 70세가 되면서 늙었다는 이유로 10여회 동안 표를 올리자 광록대부로 삼으면서 특진의 지위를 내려 속관과 노비를 주었고 문에 수레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행마를 세우게 했다. 사마염이 양호를 거기장군으로 삼으려고 하자 지위를 사양하면서 노지에게 양보했지만 노지를 이를 따르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노지의 사람됨을 중히 여기는 것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3. 가족 관계


[1] 삼황에 관한 책이다.[2] 오제에 관한 책이다.[3] 전한 때 유명한 관리로 자는 차공(次公)이다.[4] 조상전의 주석인 위진세어에는 어사중승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배송지가 이르길 하후담이 지은 노지의 명이나 간보의 진기에는 병주자사로 삼았다는 했으니 위진세어와는 같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