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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임페리얼

파일:대우자동차 국문 로고_좌우.svg 대우자동차플래그쉽 라인업
수퍼 살롱 임페리얼 브로엄
파일:대우 영문 로고_상하.svg
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autowp_ru_daewoo_imperial_2.jpg
초기형[1]
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autowp_ru_daewoo_imperial_3.jpg
1990년형[2][3]
파일:imperial_logo_bkb2.png파일:3000_logo_bkb.png

1. 개요2. 제작배경
2.1. 대우 가문의 고급차 황금기2.2. 난세는 영웅을 원한다
3. 활약상
3.1. 우여곡절 끝의 탄생3.2. 상대 측의 역습3.3. 준수한 성능3.4. 국내 최초로 시도한 캠백 & 랜도우 탑 스타일
4. 꿈도 펴 보지 못하고...5. 이후 대우 가문의 고급 대형 세단 흑역사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DAEWOO Imperial[4]

1. 개요

1989년 2월에 출시된 대우자동차플래그십 후륜구동 준대형 세단. 그랜저를 선봉장으로 내세운 현대자동차의 역습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시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멋진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품질 문제와 판매 부진으로 1993년에 단종되었다. 이 때부터 슬슬 대우자동차의 대형차 모델에는 마가 끼기 시작했다(...). 판매대수는 민수용 기준 고작 863대다.[5] 2012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경찰 측에서 1,871대를 대량 발주했다는 소식이 있다. 이것까지 합친다면 약 2,700대 정도가 생산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로얄 라인업에서 최고 계급을 차지하는 승용차였으며, 대우자동차에서 최초로 직렬 6기통 3,000cc 엔진을 장착한 세단이기도 하다. 로얄을 붙이지 않은 이름 덕에 로얄 시리즈와 다른 차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후드탑 더블 D 마크를 달아서 그렇지 엄연히 로얄 시리즈의 총사령관이다. 슈퍼살롱의 기반이 된 오펠 제나토어[6]의 차체와 후륜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엔진도 제나토어에 장착되었던 184마력 모트로닉 직렬 6기통 3.0리터 SOHC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7]

2. 제작배경

2.1. 대우 가문의 고급차 황금기

파일:attachment/대우 로얄/royalelineup.png
왼쪽부터 로얄살롱 후기형, 로얄살롱 초기형, 레코드 로얄(새한), 로얄듀크, 임페리얼이다.(작화는 청설모 화백.[8])

1980년대는 대우자동차의 고급차 독점 시대였다. 그 이유는 신진 크라운[9]부터 대우의 고급차는 최고라는 인식이 높으신 분들께 깊게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제 1차 오일 쇼크로 많은 타격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오일 쇼크가 호재가 되었는데, 제1차 오일 쇼크로 인하여 1973년 연말부터 1978년 초반까지 상공부에서 6기통 승용차 생산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4기통이었던 레코드 1900은 한동안 국산 최고급차의 지위를 독점하기도 했고,[10] 특히 제 2차 오일 쇼크로 인하여 1978년 연말부터 1981년 초반까지 1984년의 장관 및 국무위원급 관용차 엔진을 4기통으로 제한하는 조치는 엄청난 호재로 작용하여 경쟁자들을 한동안 따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11] 1983년 회사를 대우자동차로 개명하면서 현대자동차를 꺾고 1972년에 출시된 레코드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우려먹으며 고급차 시장을 독점하였다. 정부 덕을 많이 봤다 당시 로얄 살롱과 로얄 프린스 그리고 로얄 듀크 등 고급차 라인을 생산하면서 대우 왕좌를 지켜 나갔다. 이때 대우의 고급차 라인업인 로얄 시리즈에 있어서 상세한 설명은 대우 로얄에서 볼 수 있다.

2.2. 난세는 영웅을 원한다

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autowp_ru_hyundai_grandeur_1.jpg
그렇게 영광을 누리던 와중에 상대 진영각그랜저가 1986년 7월 24일에 데뷔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랜저는 시리우스 2,400cc 엔진으로 진화하며 당시 2,000cc이던 로얄 시리즈를 배기량/마력면에서 가볍게 제압했고,[12] 미쓰비시와의 공동 개발(기술 제휴)로 출시한 덕에, 미쓰비시의 부품을 대거 국산화하며 생산했으므로 내구성도 좋았고 제작단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과거 새한자동차 시절이던 1979년에 오펠 제나토어 초기형 기반의 2,800cc급 6기통 대형 세단을 내놓으려고 했으나, 당시 장관급 관용차의 4기통 제한으로 4기통 엔진의 레코드 로얄이 엄청난 호재를 보면서 6기통 대응이 필요없게 되었고, 6기통 대형 세단 발매를 취소한다. 한동안 정부 덕을 톡톡히 보고 안주하고 있었던 대우자동차는 현대 그랜저에 의해 로얄 시리즈가 무너지며 아연실색했다. 결국 대우자동차에서 이제 전부터 희망했지만 만들지 않았던 6기통 대형 세단 프로젝트를 꺼내게 된다.

3. 활약상

3.1. 우여곡절 끝의 탄생

출시 당시 광고. 상당히 위엄돋는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앞서 말했듯 그랜저의 역공으로 대우 측은 마지막 Plan B 카드를 꺼내게 되는데, 10년전에 백지화되었던 6기통 대형 세단 계획을 부활시켜 1989년 2월에 임페리얼을 발표하고 3월에 판매를 시작했다. 임페리얼도 로얄 시리즈처럼 오펠 레코르트 계열 차체를 바탕으로 했는데, 오펠 레코르트 시리즈 중에서도 상위 버전인 오펠 제나토어를 기반으로 만들었다.[13] 이전동안 대우가 로얄 시리즈로 호재를 보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새로운 차체를 바탕으로 한 신기종을 들고 온 현대의 역습으로 대우는 잠시 경계했다. 당시 2.0리터 엔진밖에 없던 로얄 시리즈에게 2.4리터 엔진의 그랜저는 당연히 무시하지 못할 존재였다. 하지만 현대의 재역습에 대우도 만만치 않았는지라, 이번 임페리얼의 개발을 통해 경쟁에서도 방어진을 치고, 이전동안 안 해 본 6기통 엔진의 노하우도 익히고 그간 시도해 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확실히 임페리얼은 4기통 제한이 풀리고 처음으로 등장한 6기통 세단인지라 당시 시리우스 2.4리터가 최고인 그랜저에 비해 우위를 점했다.

3.2. 상대 측의 역습

파일:external/autoimg.danawa.com/move_0304_1_5.jpg
그러나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적장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고, 동년 9월에는 현대차 측에서 164마력 V6 3.0리터 SOHC G6AT 엔진으로 중무장하고, 휠까지 삐딱하게 신고[14] 그랜저 3000이란 이름으로 재기하자 대우 측에서는 잠시 주춤한다. 저 저 각돌이놈 휠 삐딱하게 신은 거 좀 봐라? 작정하고 삐뚤어진 자식이 더 강하다던데.. 알다시피 대우는 신진자동차 시절이었던 1972년 크라운의 단종 이후로는 오랫동안 정말 4기통 세단밖에 만들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현대는 2.0리터가 넘는 4기통 고배기량 엔진은 물론이고 포드 20M이나 포드 그라나다라는 V6 모델을 생산한 노하우도 있어서 처음에는 대우가 불리해 보였다. 좀 더 말하자면 대우는 이전 동안 4기통 엔진으로 호재를 보고 있어 6기통 엔진은 손도 대지 않았는데, 대우자동차를 암묵적으로 유리하게 해 준 4기통 제한도 풀리고, 소싯적 6기통 엔진을 조금이나마 만져본 적 있던 적진에선 기다렸다는 듯[15] 6기통으로 역공하니 또다시 멘붕할 만도 했다.

하지만 대우는 처음에 의외로 잘 버텼다.

3.3. 준수한 성능

사실 기본 성능으로만 보면 오히려 현대 그랜저를 뛰어넘었다.

당시 생소했던 보쉬ABS를 탑재하였고, ABS BY BOSCH 오펠제 직렬 6기통 3,000cc CIH 모트로닉 전자제어 가솔린 엔진을 장착하여 국내 최초의 3,000cc 엔진 장착 차량이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16] 4단 자동변속기아이신에서 만든 것을 달았다. 156마력의 출력과 최대 시속 195km/h를 자랑하여 성능상으로는 그랜저에 우위를 점하였고, 일부 자동차 매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연비는 8.06km/ℓ.[17] 전술한 대로 현대자동차가 164마력에 170km/h(안전속도)[18]를 발휘하는 그랜저 V6 3.0 SOHC 모델을 출시하긴 했지만서도, 성능만 두고 본다면 임페리얼의 엔진은 각그랜저 V6 3.0의 엔진에 비해서도 전혀 꿀릴 것이 없는 엔진이었다. 오히려 마력이나 속력만 보자면 각그랜저 V6 3.0 SOHC보다도 어느 정도 앞서 갔으며, 직렬 6기통 엔진인지라 메리트도 있었다.[19] 스펙상으로는 로얄 시리즈의 총사령관을 맡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3.4. 국내 최초로 시도한 캠백 & 랜도우 탑 스타일

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cadillac_seville_phaeton_1.jpg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autowp_ru_cadillac_deville_74.jpg
1986년~1988년형 캐딜락 스빌 세단 페이튼 1987년~1993년형 캐딜락 플리트우드 식스티 스페셜의 후면부 모습
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autowp_ru_chrysler_new_yorker_5.jpg파일:attachment/대우 임페리얼/imperialrear.png
1988년~1993년형 크라이슬러 뉴요커 세단.[20] 1990년형 대우 임페리얼의 뒷부분[21]
사진의 차량 모두 수직 C필러에 가죽을 덧댄 모습이다.
당시 국산 고급차로는 최초로 C필러 부분을 직각으로 세우고 인조가죽을 덧대어 꾸민 랜도우 탑(Landau Top)이 또다른 개성이었다. 초기형은 랜도우 탑(가죽)이 없이 그냥 각진 C필러의 캠백(Kammback)이었고, 90년형으로 나오면서 랜도우 탑이 달렸다. 이러한 스타일은 원래 북미의 캐딜락 드빌이나 캐딜락 스빌, 크라이슬러 뉴요커(1990년식) 등등의 차에 있던 스타일이었는데, 뒷좌석 위주의 쇼퍼 드리븐 성향을 한껏 드러내는 모습이었는지라 이전의 다른 국산 고급 세단들에 비해 좀더 간지나는 스타일을 자랑했다.

그 외에도 고급차 포지션이었던만큼 세부에도 신경을 썼는데, 인테리어에서는 항공기를 연상시키는 센터페시아와 천연 송아지 가죽 마감을 사용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다. 계기판도 로얄 살롱 슈퍼처럼 트립 컴퓨터가 장착된 LCD 디지털 계기판이었다.

4. 꿈도 펴 보지 못하고...

하지만 개성있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직렬엔진 특유의 날카로운 캬르릉 소리가 나는 엔진음 및 생소한 캠백 / 랜도우탑 스타일 C필러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오너[22]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거기에 어렵사리 독일 오펠에서 구해 온 제나토어의 156마력 모트로닉 직렬 6기통 3.0리터 SOHC 가솔린 엔진은 주행 성능이 비단결 같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잦은 오버히트가 발생하는 등 품질 문제가 빈번해 큰 불만이 쏟아졌는데, 특히 여름철만 되면 오버히트가 굉장히 심해 도로에서 차가 퍼지는 일도 허다했다. 냉각계 쪽에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가장 문제점은 원래부터 다소 열이 많은 엔진인데도 불구하고 냉각계통 부품 중에서도 아주 핵심적이라 할 수있는 부품인 팬클러치와 라디에이터가 아랫급 4기통 2.0모델과 공용이었다.[23] 때문에 정비사들의 입에서도 육두문자가 나올 정도로 엔진의 내구 품질이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출시 초기에는 부품 수급 문제로 150대 정도 생산한 후 잠시 양산이 중단됐다가 생산이 재개되는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주문 생산을 고집해서, 월 200대 정도 주문을 받아 생산했다.

결국 유럽산 엔진과 캠백 / 랜도우 탑 스타일의 현지화 실패, 잇따른 잔고장과 심한 오버히트 등을 이유로 형편 없는 평가를 받으면서 대우자동차는 대형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대차게 망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임페리얼은 민수용 기준 총 863대만 생산된 후 1993년에 소리 소문 없이 단종됐다. 되레 임페리얼과 비슷한 엔진 성능을 지녔던 같은 시기에 나온 그랜저 V6 3.0 SOHC는 오히려 임페리얼보다 내구성이 좋고 조용하여 대한민국적인 취향에 딱 맞아 떨어지는 지라 유럽+미국 스타일인 임페리얼과 달리 좋은 성적을 내게 되었다. 결국 단점으로 인해 장점들이 가려진 셈.

이후 임페리얼은 극소수의 개체만 남은 레어템이 되었다. 2011년 보배드림에 임페리얼이 매물로 올라올 때 화제가 되어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매입하는 사람도 없는 데다가 아무도 이 차를 인수하려 엄두를 내지 못해서, 결국 보배드림 측에선 자동차 박물관에 판매하고 말았다.

5. 이후 대우 가문의 고급 대형 세단 흑역사

임페리얼이 단종되자 대우자동차의 플래그십 모델은 잠시동안 2.0~2.2 리터인 슈퍼살롱 브로엄이 담당하게 되었고, 한때는 브로엄의 가솔린 3.0이 팔리기도 했다.[24]

임페리얼이 단종된 이듬해인 1994년에 아카디아가 대우의 기함 지위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일본제 차량이었던 아카디아 역시 국내에서 평가가 좋았던 차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현대 다이너스티, 국내 최대 전장과 국내 최대 배기량을 무기로 내세운 기아 엔터프라이즈, 벤츠의 혈통을 물려받은 쌍용 체어맨의 출시로 입지가 좁아지면서 신통찮은 성적을 냈고, 대우자동차는 고급차의 한을 풀기 위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며 1999년에 아카디아를 단종시키고 체어맨에 3분할 그릴를 달고 자사의 플래그십 세단으로 내세웠지만, 대우그룹의 부도로 다시 떨어져 나가면서 영원히 고통받게 되었다(...).[25]

그나마 아카디아상대적으로 임페리얼에 비해 잘 나간 편이었지만, 문제는 그놈의 차값...

이후 스테이츠맨이 나오기 전까지 대형차 라인업이 비어 있었다. 이로 인해 최상위 라인업은 한때 매그너스가 맡았다. 매그너스의 경우에는 체어맨과 결별 후 사실상 브로엄의 후속이자 차기 플래그십 차량으로 내놓을 계획이었는데, 직렬 6기통인 XK 엔진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4기통 2.0리터 엔진 모델만 출시하였는데, 판매량은 성공적이었으나 당시 경쟁차종인 EF쏘나타, 옵티마, SM525V도 V6 2.5리터 엔진이 제공되었기때문에 오히려 평범한 중형차로 각인되어 세그먼트 포지셔닝에서는 완벽히 실패했다.

GM대우로 바뀐 후 홀덴 카프리스호주에서 수입하여 들여오면서 스테이츠맨베리타스로 데뷔시켰으나, 대한민국 실정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판매 부진을 면하지 못해 수입이 중지됐다. 2010년 9월 베리타스의 판매 중지 후 뷰익 라크로스를 조립 생산해 동년 10월 알페온으로 데뷔시켰으나, 그랜저, K7, SM7같은 경쟁자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평가만 받고[26] 2016년 3월에 단종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임페리얼의 데뷔 때부터 제대로 마가 낀 대우자동차 대형 세단의 흑역사는 대우자동차의 아카디아, 쉬라츠, GM대우의 스테이츠맨베리타스, 한국GM의 알페온, 쉐보레의 임팔라까지 이어지게 된다.[27] 결국 한 단계 아래의 준대형급인 알페온을 플래그십 모델로 출시해서 사실상 대우자동차/GM대우/한국GM/GM 한국사업장의 대형 세단은 영원히 흑역사로 남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알페온마저 흑역사가 된 후 한국GM에서 임팔라의 도입을 결정하고, 미국에서 수입하여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처럼 OEM 수입차로 판매하고 있으며 임팔라 역시 준대형급이다. 그리고 임팔라마저 초기 신차 효과가 빠지면서 흑역사가 되어 버렸다.(...) 덤으로 GM 본사가 세단 라인업을 줄이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2019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임팔라를 대한민국에서 단종했고, 한국GM의 대형 세단 자리는 또 다시 공석을 맞이했다. 대신 2022년, 풀사이즈 SUV인 쉐보레 타호가 정식으로 수입되면서 임팔라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대체했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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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선: 출시 계획이 백지화된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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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필러가 수직에 가깝게 내려 온 '캠백(Kammback) 스타일'이 특징. 3.4번 문단 참조.[2] 직각 C필러 부분에 가죽으로 덧대서 고급스러움을 살린, 캐딜락 드빌이나 캐딜락 스빌, 1988~93년식 크라이슬러 뉴요커를 연상시키는 랜도우 탑(Landau Top)을 적용하였다.[3] 가죽으로 덧댄 것이 랜도우 탑이며, 직각으로 꺾어 놓은 C필러를 가죽을 덧대지 않고 차체 그대로 노출시킨 초기형 것이 캠백이다.[4] 크라이슬러의 대형차와 같은 이름을 쓴 이유가, 두 차량 모두 최초로 ABS를 장착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5] 그래도 바네트, 엘프보다는 사정이 그나마 낫다. 임페리얼은 그나마 기억해 주는 사람이라도 있지, 바네트는 포터, 그레이스, 봉고한테 패배하고 엘프는 마이티, 타이탄, 트레이드에게 패배한 것도 모자라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다. 그걸 느껴보고 싶다면, 구글에 대우 임페리얼, 대우 바네트, 대우 엘프 2를 검색한 뒤 나오는 사진 수를 비교해 보자(...).[6] '세나토어'라고도 읽을 수 있으나 독일차이므로 제나토어 또는 제나토르가 맞다. 영어로는 '세너터', 독일어로는 '제나토어(또는 제나토르)'다.[7] 이 덕에 몇몇 부품은 로얄살롱이나 슈퍼 살롱과 호환된다고 한다. 가끔 리스토어하는 사람들이 폐차장에서 얻어오기도 하는 모양이다.[8] 청설모 선생이 연재했던 자동차 카툰의 "로얄살롱"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다. 내용은 다음 링크를 참조할 것. Part1 Part2 Part3 Part4[9] 신진자동차 시절 토요타와 제휴할때 조립한 토요타 크라운이 신진 크라운이다. 물론 저우언라이 때문에 토요타의 예고없는 제휴 철회로 인해 크라운의 생산도 중단되자, 이후 오펠 레코드를 들여오며 GM과 협력하게 되고 이후 대우 시절까지 GM과 협력하게 된다.[10] 이것 때문에 현대 그라나다의 출시가 4년이나 지연되었다.[11] 덕분에 1979년에 계획되었던 6기통 2,800cc 기함 모델 출시는 없던 일이 되었다.[12] 처음 등장한 버전은 시리우스 2,000cc 버전이었으나, 이 역시 대우 로얄 시리즈에겐 적지 않은 위협이었다.[13] 오펠 제나토어는 로얄 시리즈 중 수퍼살롱의 기반이 된 차체이기도 하다. 게다가 임페리얼은 제작시 수퍼 살롱과 몇몇 부품은 호환될 정도라고 한다.[14] 사진 다만 휠 디자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이상하게도 그랜저는 3,000CC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중후함에 어울리지 않게, 로고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새겨진 삐딱로고 휠을 신고 있다. 다행히 저 삐딱로고 휠은 나중에 H로고로 바뀌면서 정렬로고 휠이 된다. 이 시기에는 세계구급으로 대유행이었는지 로고가 삐딱하게 새겨진 휠이 달린 차들이 적지 않았다. 당장 현대 쏘나타의 Y2 모델만 봐도 그렇고 닛산의 고급형 인 닛산 세드릭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우 로얄 프린스의 후기형 휠캡이나 대우 프린스 전기형 알루미늄휠과 후기형 휠캡, 에스페로의 휠캡 역시 삐딱로고였다.[15] 기다린 것이 맞다. 그랜저/데보네어는 애초에 6기통 전용 모델로 만들어진 차종(데보네어는 2.0리터 모델도 V6다)이며 현대 역시 그랜저 발매 이전부터 적절한 시기에 6기통 모델을 출시할 생각을 하고 준비하고 있었다.[16] 1989년에 임페리얼이 출시되기 전까지 그랜저2.0리터 시리우스 MPI 엔진, 2.4리터 시리우스 MPI 엔진만 있었다. 2.0에는 수동 5단/자동 4단, 2.4에는 자동 4단. 다만 임페리얼이 나오고 바로 그랜저 V6 3.0리터 SOHC 엔진 버전이 1989년 9월에 나왔다.[17] 그랜져 3.0 V6는 7.8km/ℓ[18] 2세대 그랜저에 달린 V6 3.0 DOHC G6AT 엔진의 최고속도는 의외로 낮은 189km/h였다.(V6 2.5는 195km/h, V6 3.5는 210km/h)[19] 1990년대 당시 직렬 6기통 엔진은 유럽의 후륜구동 대형 고급 세단들에 주로 쓰였다. 7시리즈, S클래스XJ 등의 고급 세단들 라인업의 중간 클래스인 2,500~3,500cc대 엔진들도 직렬 6기통이었으며, 볼보 960이나 오펠 세나토르 B같이 준대형 고급 세단들 중에서도 직렬 6기통을 달아 차별화를 꾀한 차들도 상당했었다. 특히 BMW의 직렬 6기통 엔진은 비단결같은 주행성능을 지닌다 하여 실키식스(silky six)라는 별칭까지 가지고 있었을 정도. 물론 나중에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BMW볼보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한 다른 대형 세단들은 V형 6기통으로 교체되지만, 메르세데스-벤츠는 직렬 6기통 엔진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사족으로 현재까지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을 단 대한민국 고급 세단은 벤츠의 M104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체어맨W I6 3.2/3.6 DOHC가 유일했으나, 체어맨이 단종되어 더 이상 새로 생산되지 않는다. 제네시스 GV80직렬 6기통 엔진현대자동차그룹이 첫 자체개발한 유닛이지만, 이쪽은 커먼레일 디젤 엔진이다.[20] 사진참조[21] 매일경제신문 1990.02.19일자 광고[22] 주로 뒷좌석에 앉는...[23] 출시 전에 모 잡지에 나왔던 스파이샷에는 라디에이터 아래에 오일 쿨러도 있었고, 라디에이터 앞에는 전동식 모터팬을 2개나(!) 설치해서, 커다란 팬 2개가 라디에이터 전체를 거의 가리다시피 한 상태였다. 직렬 6기통 엔진을 무리하게 넣다 보니 라디에이터와 엔진 블록 사이가 좁아져서 냉각 팬을 워터펌프에 직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듯. 결국 오버히트 문제는 해결을 못 한 채로 출시한 셈이었다.[24] 임페리얼에 탑재되었던 3.0 리터 엔진과 4단 자동변속기를 갈고 닦은 후 그대로 슈퍼살롱 브로엄에 적용시켰으며, 거기다 3.0 브로엄에는 특별히 임페리얼의 휠을 신겼다. 다만 생산기간은 8개월로 굉장히 짧았는데, 대우 아카디아가 출시되면서 그대로 단종된 것이고, 당시 도로에서도 매우 보기 힘들정도의 희귀차종이었다.[25] 1999년 출시 예정이였던 대우 쉬라츠가 있었다. 만약 이 차량이 출시되었다면 국내 최초 8기통 엔진 타이틀 뿐만 아니라 각종 첨단 옵션들이 대거 장착되어 대우자동차 대형 세단의 성공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쉬라츠는 대우의 쌍용자동차 인수와 IMF 사태까지 겹쳐 이에 따른 극심한 경영난으로 부도가 나며 완전 폐기되었다.[26] 첫 등장 당시에도 널찍하고 안락한 차체에 비해, 엔진 힘이 턱없이 딸려서 "할배온"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니(...) 보령미션 부조화도 여전했다. 이 때 알페온의 V6 3.0 DOH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6T50 자동변속기는 알페온이 단종된 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말리부 2.0T에 장착됐다.[27] 참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스테이츠맨에 깔린 후륜구동 플랫폼이 V-플랫폼이라는 것이다. 이게 그 전설의 장수만세 오펠 레코드 플랫폼, 즉 임페리얼을 포함한 로얄 시리즈와 프린스, 브로엄에 깔린 플랫폼이다. 이 후륜구동 플랫폼에서 나온 끝물 모델이 스테이츠맨이라는 것이다. 베리타스에 깔린 것은 제타 플랫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