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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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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SL 벤피카/무리뉴 체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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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2004 · 2005 · 2010

2011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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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알렉스 퍼거슨
3위
주제 무리뉴
2012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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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주제 무리뉴
3위
펩 과르디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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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무리뉴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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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RTP)이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포르투갈인 100명'을 선정. 단, 중복 투표가 포함됨.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알바루 쿠냘 아리스티드스 드소자 멘드스 아폰수 1세 루이스 드 카몽이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주앙 2세 인판트 동 엔히크 페르난두 페소아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바스쿠 다 가마
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살게이우 마이아 마리우 소아르스 파도바의 안토니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에우제비우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프란시스쿠 사 카르네이루 조르즈 누누 핀투 다코스타 누누 알바르스 페레이라 주앙 페레이라 드알메이다 조제 모리뉴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아고스티뉴 다실바 에사 드 케이로스 에가스 모니스 디니스 1세 페르난두 노브레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주제 에르마누 사라이바 아니발 카바쿠 실바 움베르투 델가두 조제 아폰수 루이스 피구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마르셀루 카에타누 페드루 누네스 안토니우 비에이라 플로르벨라 이스팡카 페르디난드 마젤란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마리아 지 루르드 핀타실구 주앙 1세 소피아 드멜루 브레이네르 안드레젱 안토니아 페레이라 아메리쿠 신부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안토니우 다마지우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마누엘 1세 주제 사라마구 아라곤의 이사벨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카타리나 에우페미아 카를루스 파레드스 조제 소크라트스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후이 드카르발류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브리테스 드알메이다 알베르투 주앙 자르딩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바스쿠 곤살베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벨미루 드아제비루 소자 마르틴스 마리아 두카르무 세아브라 안토니우 안드라드 카를루스 1세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마리자 비제우의 엘레노르 호자 모타 안토니우 테이셰이라 헤벨루 아폰수 3세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비토르 바이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오텔루 사라이바 드카르발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에르만 조제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마리아 2세 카를루스 페스 아폰수 코스타 폰트스 페레이라 드멜루 가구 코티뉴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히카르두 아라우주 페레이라 마누엘 소브리뉴 시몽이스 마누엘 마리아 바르보자 두보카즈 엘리우 페스타나 조르즈 삼파이우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안토니우 샹팔리모 안토니우 로부 안투느스 질 비센트 마리아 엘레나 비에이라 다실바 미겔 토르가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나탈리아 코헤이아 에드가르 카르도주 페르낭 멘데스 핀투 루시아 수녀 알프레두 다실바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요한 21세 다미앙 드고이스 주앙 4세 조아킹 아고스티뉴 아델라이드 카베트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알메이다 가헤트 안토니우 젠틸 마르틴스 안토니우 바리아송이스 파울라 헤구 마리아 조앙 피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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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 벤피카
Sport Lisboa e Benfica
파일:José Mourinho(25-26).jpg
<colbgcolor=#d00027><colcolor=#ffffff> 이름 주제 무리뉴
José Mourinho[1]
본명 조제 마리우 두스산투스 모리뉴 펠리스
José Mário dos Santos Mourinho Félix
출생 1963년 1월 26일 ([age(1963-01-26)]세)
포르투갈 제2공화국 세투발[2]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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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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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6cm / 체중 82kg[3]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d00027><colcolor=#ffffff> 선수 히우 아브 FC (1980~1982)
CF 벨레넨세스 (1982~1983)
세심브라 (1983~1985)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 (1985~1987)
감독 스포르팅 CP (1992~1993 / 수석 코치)
FC 포르투 (1993~1996 / 수석 코치)
FC 바르셀로나 (1996~2000 / 수석 코치)
SL 벤피카 (2000)
UD 레이리아 (2001~2002)
FC 포르투 (2002~2004)
첼시 FC (2004~2007)
인테르나치오날레 (2008~2010)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3)
첼시 FC (2013~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2018)
토트넘 홋스퍼 FC (2019~2021)
AS 로마 (2021~2024)
페네르바흐체 SK (2024~2025)
SL 벤피카 (2025~)
국가대표 없음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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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00027><colcolor=#ffffff> 종교 가톨릭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
후원사 아디다스
가족 배우자 마틸다 파리아(1989년 결혼 ~ )
마틸드 무리뉴
아들 주제 무리뉴 주니오르
}}}}}}}}} ||

1. 개요2. 감독이 되기 전3. 지도자 경력
3.1. 감독 스타일3.2. 무리뉴 사단
4. 특징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통산 기록5.4. 수훈
6. 어록7. 주제 무리뉴에 대한 언사8. 가족9. 이름 표기10. 여담11. 둘러보기

1. 개요

포르투갈축구 선수 출신 감독. 현재 SL 벤피카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큰 활약 없이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가 1987년에 24세의 이른 나이로 은퇴하였다.[4] 선수 은퇴 후에는 체육 교사, 통역관 등을 거쳐[5] 스포르팅 수석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포르투,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S 로마의 감독을 맡아서 유럽 4개 리그 우승[6] 및 4개국[7] 모든 대회 우승[8], 유럽 3대 클럽 대항전[9] 우승 등의 기록을 세워 '스페셜 원(Special One)[10]'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명장으로 거듭났다.

2. 감독이 되기 전

본인이 축구 선수로서 재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이른 나이인 24세에 은퇴했다. 부모님도 이것을 알았는지 선수 시절 아들에게 "선수로서 기술을 익히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안목을 기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두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 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해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11]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 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트직으로 재직했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스포르팅을 시작으로 포르투,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주고 받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선수와 코치로서 이때 처음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을 하던 시절 일화가 있는데 1996-97 시즌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바르셀로나가 패했던 경기에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당시 빌바오 감독이었던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펩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무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무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통역관뿐만 아니라 전술 어드바이스, 선발 선수 관리 등을 수행하며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쌓았다. 마찬가지로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과는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이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통통 튀는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태프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구단을 떠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은 요한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사-수석 코치 시절에는 무리뉴가 크루이프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긴장해서 말도 못 걸고 벌벌 떨었다는 일화가 있다. 원정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우연히 크루이프 옆좌석에 배치됐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더듬으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안쓰러운 나머지 크루이프가 먼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무리뉴도 답변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101greatgoals.com/Van-Gaal-y-Mourinho.jpg 파일:external/cloud1.todocoleccion.net/26353483_7051609.jpg 파일:search.p22static.jpg
판할과 무리뉴 과르디올라와 무리뉴[12] 엔리케, 과르디올라와 무리뉴[13]
파일:external/img.desmotivaciones.es/mourinho_15.jpg
"바르사는 내 마음 속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거야"
주제 무리뉴, FC 바르셀로나 통역사, 1997년 우승 축하 행사에서
하지만 훗날 그는 바르사의 철천지 원수가 되어 나타난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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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감독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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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무리뉴 사단

4. 특징

4.1. 독설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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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3년 차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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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rowcolor=#c6b57c> 구단 기간 경기 득실 승률
SL 벤피카 2000.09.20 ~ 2000.12.05 11 6 3 2 17 9 +8 54.55%
UD 레이리아 2001.07.01 ~ 2002.01.23 23 12 8 3 34 20 +14 52.17%
FC 포르투 2002.01.23 ~ 2004.06.02 127 91 21 15 254 96 +158 71.65%
첼시 FC 2004.06.02 ~ 2007.09.20 185 124 40 21 330 119 +211 67.03%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06.02 ~ 2010.05.28 108 67 26 15 185 94 +91 62.04%
레알 마드리드 CF 2010.05.31 ~ 2013.06.01 178 128 28 22 475 168 +307 71.91%
첼시 FC 2013.06.03 ~ 2015.12.17 136 80 29 27 245 121 +124 58.8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05.27 ~ 2018.12.18 144 84 32 28 244 121 +123 58.33%
토트넘 홋스퍼 FC 2019.11.20 ~ 2021.04.19 86 44 19 23 166 103 +63 51.16%
AS 로마 2021.07.01 ~ 2024.01.16 95 50 19 26 149 98 +51 52.63%
통산 1,090 683 224 183 2,099 949 +1150 62.66%

5.4. 수훈

6. 어록

난 어릴 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 시간 미래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나는 내가 세계 제일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능가하는 감독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첼시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오만으로 듣지 않아 줬으면 하지만 최고의 감독을 손에 넣었다.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Special One)다.
(UEFA컵과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고 첼시로 이적한 직후 기자 회견에서)(참고)
유럽 3대 리그 모두에서 우승을 거머쥔 건 나 하나뿐이다. 앞으로는 '특별한 존재(Special One)'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Only One)'라고 불러주길 바란다.[39]
내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취임 기자 회견)
중압감은 1등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2등이나 3등에게 오는 말이다.
축구에 관한 내 철학은 축구에는 오직 단 하나의 승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2등은 꼴찌 중에 1등일 뿐이다.[40]
맨유에서 차지한 리그 2위는 나의 경력에서 가장 큰 업적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보다는 솔직한게 낫다. 나는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바르사 기자: 당신은 바르사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바르사에 무례하느냐?
무리뉴: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 구단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 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꿈이다. 꿈. 우리에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순수한 꿈이다. 그들에게 있어 챔피언스 리그는 집착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영광을 따라잡기 위한 집착. 열등감에서 비롯된 집착이다. 우리는 다르다. 순수한 꿈을 위해 싸운다.
(2009-10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꺾은 후의 기자 회견)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 듯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승리를 보장받을 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41]
리버풀 팬들은 늘 첼시를 보고 역사가 없다며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로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리버풀의 역사는 위대하고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존중한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17년간 리그 우승을 못했고, 반면 첼시는 지난 3년간 두 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역사는 박물관에,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한다.
말대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선수들 앞에서 나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주장의 임무다.
(첼시 부임 이후 존 테리를 주장에 임명하면서)
고개를 들어라. 저 턱 밑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준 선수들에게 환호하라. 그들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인테르가 이겼으니까. 한편으로 나는 불행하다. 왜냐하면 첼시가 져버렸으니까. 또한 나는 행복하다. 인테르 팬들이 기뻐하고 있으니까. 나는 불행하다. 첼시 팬들은 슬퍼하고 있으니까. 불행으로 행복을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인생이다.[42]
오늘 시합을 가지고 선수들을 비난하고 싶거든 우선 나를 죽이고 나서 해라.
나는 경기력이 나쁜 선수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외부에서의 공격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지킨다. 하지만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팀워크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선수를 지켜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43]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은 시합이 끝난 후 매스컴 앞에서 선수를 비판하는 것이다. 패배나 무승부 후에 도망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이 보호받고 안정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매스컴을 기쁘게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러뜨려야할 적은 나이며, 기분 나쁜 녀석은 나이며, 건방진 녀석은 나이며, 무능한 감독은 바로 나다. 내가 그러한 대상이 되는 것은 팀에 있어서 긍정적인 것이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라. 그리고 기 죽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무리뉴: 압박감? 무슨 압박감?
기자: 두 경기 연속으로 진 것에 대해서.
무리뉴: 자녀에게 먹을 걸 사다 줘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는, 전 세계 수백만의 부모가 느끼는 것. 그런 걸 압박감이라고 한다. 축구에선 없다.
두려운 것은 신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걱정이다.
팀이 이긴다면 그것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팀이 진다면 그것은 내 전술이 잘못된 것이다.
축구에는 시인이 많지만 시인은 많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44]
경기 전후로 인터뷰에 응할 때는 언제나 그것도 시합의 일부로서 대처하고 있다. 경기 전의 기자 회견에 나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경기는 시작되고 있다. 경기 후의 기자 회견까지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를 네 번 우승시키는 감독이 나올 때까지는 내가 No.1이다. 그때가 오면 내가 No.2를 해주겠다. 현재로선 유다가 No.1이란 뜻이다.
(2017년 FA컵 준결승에서 첼시에게 0-1로 패배한 직후의 인터뷰. 경기중 자신을 배신자라 야유했던 첼시 서포터들에게)
Q. 첼시 감독 시절이던 2015년, 절대 토트넘 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지 않았느냐?
A. 그땐 내가 짤리기 전이었다.
나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자는 기회를 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는 자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 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동일한 원칙을 가진 선수들은 나와 문제가 전혀 없었고 또 없을 거다. '난 오늘은 75%만 뛰어야지. 난 오늘은 한 95%만 해야지.'라는 태도를 가진 선수들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선수들에게 100%을 요구할 것이고 나 또한 100%로 임하기 때문이다.[45]
I have nussing to say. (할 말이 없다)[46]
중국 요리를 평가할 의향은 있지만 중국 선수는 모른다.[47]
첫 두 질문을 받아보니, 중국 축구가 왜 그렇게 쓰레기인지, 그리고 중국이 수많은 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뭣 때문에 축구만은 예외인지 난 알겠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영 프로답지 않거든.[48]
의 언행엔 성숙한 면이나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다. 아마도 어려웠던 유년기 때문이거나 가정 교육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퍼거슨 경은 자기 애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49]
손흥민은 공격적인 선수다. 빠르고 전환도 좋다. 특히 자유로운 공간을 허용할 경우 손흥민은 매우 위협적이다.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팀을 상대로 볼을 빼앗아 빠른 공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내 생각에 손흥민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50]
나는 선수 간 비교를 하지 않는다. 손흥민과 케인은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다. 그것이 전부다.[51]
그건 당신들(기자, 미디어)에 달린 문제다. 소니는 스스로 증명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냈다. 매 시즌마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물론 팀이 더 좋아지면 기량을 끌어올리기 더 쉽겠지만 소니가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없다.[52]
오, 대한민국의 왕. 무슨 일이시오. 질문이 있으시다고? 그럼 대답해 드려야지.[53]
기자: 과르디올라챔스 우승보다 EPL 우승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둘 다 우승해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리뉴: 우리는 언제나 따낸 트로피가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챔스를 우승했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챔스 우승이다. 그리고 리그에서 우승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리그 우승이다. 그리고 둘 다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는 '우승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웃음)
해당 시즌 맨시티는 챔스에서 탈락했지만 리그에서 우승을 이뤘고 무리뉴의 맨유는 어떠한 대회에서도 우승하지 못했다. 본인의 상황을 은근슬쩍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전) 한 (나폴리)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토트넘 시절 그를 데려오기 위해 Facetime으로 만났다. 하지만 당시 토트넘은 날 도와주지 않았다. 이 선수의 가격은 10m 유로였지만 토트넘은 5m을 오퍼했다. 7~8m 유로 정도면 됐을 텐데 토트넘은 돈을 쓰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아마 쓸 수 있을 것이다. 난 이 선수와 Facetime으로 두세 번 정도 만났고 선수도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데려오지 못했다. 지금 나폴리에서 뛰는 "수준 낮은"[54] 김민재 이야기다.[55]
(경기 후) 디발라가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폴리에는 정말 강하고 빠른 두 명의 중앙 수비수가 있다. 특히 김민재는 환상적인 선수다. 이런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해서 생각해야 한다.[56]
내가 지휘했던 팀에 대해서는 어느 곳이나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토트넘 하나뿐.
토트넘에서 최악의 형태로 경질된 것에 대한 비아냥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후 멘트를 보면 재임기간이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려있어 오랫동안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른 탓에 팬이나 서포터즈들과의 유대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니솔샤르보다 더 나은 사람을 아버지를 두고 있어 다행이라는 점이다. 나 역시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라면 그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훔쳐야 한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솔샤르 감독이 파울을 당한 손흥민이 3분 동안 쓰러져 있던 것을 보고 “손흥민이 내 아들이었다면 밥을 주지 않았을 것.” 이라고 인터뷰 한 것을 접한 후에.
각 팀마다 축구 유산(football heritage)이라는게 있다. 감독은 새 팀을 맡을 때마다 유산을 물려받는다. 맨유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건 2008년. 이후 맨유는 2012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2013년에는 나의 레알 마드리드에게 16강에서 탈락했다. 2014년에는 8강 탈락. 2015년에는 아예 유럽 무대에 나오지 못했다. 2016년에는 다시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유로파 리그로 가서 거기서도 탈락. (중략) 맨유는 지난 7년간 네명의 감독을 선임하면서 한번은 아예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두번은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이것이 축구 유산이다. 맨유가 마지막으로 리그에서 우승한건 2013년이다. 이후 4년간 7, 4, 5, 6위에 머물렀다. 지난 4년간 최고 성적이 4위다. 이것이 축구 유산이다. 맨체스터 시티는 지난 7년간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이 4위였고, 그 사이 2번을 우승했다. 이번 시즌을 포함하면 3번이고. 이것이 축구 유산이다. 또 무엇이 유산인지 아는가? 오타멘디, 더 브라위너, 페르난지뉴, 실바, 스털링, 아구에로는 지난 몇년간이 아닌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투자의 결과다. 저번 시즌 맨유를 떠난 선수가 몇명이나 되는지 아는가? 그들이 지금 어디서 뛰는지. 어떻게 뛰고 있는지, 뛰고는 있는지를 알아보라. 이것이 축구 유산이다.
2018년.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세비야 FC에게 패배해 탈락한 직후 해당 경기의 패배와 리그에서의 부진을 묻는 기자들에게. 무려 12분 이상이나 계속 된 무리뉴의 답변중 일부다. 다만 무리뉴는 맨유에 부임하면서 '나는 맨유의 지난 몇년간의 실패를 방패로 쓸 수도 있지만 그러지는 않겠다'라고 했던지라 비아냥 당하기도 했다.

7. 주제 무리뉴에 대한 언사

나는 주제를 좋아한다. 그에게는 악마와도 같은 두뇌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유머 감각이 있다. 그가 보기에는 프리미어 리그란 건 노련한 보안관이 오랜 세월 주저앉아있는 마을과 같겠지. 그리고 자기는 그 마을에 홀몸으로 굴러들어온 건맨이라는 기분으로 있는 게 아닐까.
유명 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빅클럽에서 감독으로서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작은 팀에서 시작했지만 FC 포르투에서 리그 우승, UEFA컵,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해냈다. 첼시와 인터 밀란에서의 활약은 잘 알려져 있다. 무리뉴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알렉스 퍼거슨
그가 훌륭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두 안다. 그는 여러 구단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그래서 우리 회장이 데려온 것#
무사 시소코
무리뉴 감독은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우리 선수단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집중을 유지하고 하나된 상태를 유지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의 중요성을 심어줬다. 이제 AS 로마 선수단은 그와 함께 (컨퍼런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니콜로 차니올로
무리뉴 감독은 사람으로서 정말 좋은 분이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곧바로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내가 봤던 사람 중에 가장 특별한 사람이다. 무리뉴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마다 엇갈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타고난 리더이며, 이기기 위한 축구를 한다.
사무엘 에투
반 할과 무리뉴. 다른 감독들은 모두 본인들의 축구 철학에 따라 '아름다운 축구'를 하고 싶어해서 경기에 이기더라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그런데 반 할은 그런 것이 거의 없었고, 무리뉴의 경우는 전혀 없었다. 경기가 엉망이었어도 이기기만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커스 래쉬포드. 겪어왔던 감독들중 가장 인상 깊었던 감독을 묻는 질문에.

8. 가족

파일:Jose Mourinho Felix and son.jpg
아버지 펠릭스 무리뉴와 함께 찍은 사진

9. 이름 표기

José Mourinho라는 이름을 유럽 포르투갈어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주제 모리뉴'가 된다. 이름 부분의 경우 Jos'É'로 "제"에 강세가 들어가, 강세가 없는 o는 약모음 u로 소리가 변해 주제가 되고, Mourinho에 있는 ou는 포르투갈어에서 단모음 o로 읽으며, 이를 반영한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ㅗ로 표기하므로 모리뉴라고 해야 맞지만 한국에서는 '무리뉴'가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이름인 José는 /ʒuˈzɛ/로 발음되며, 포르투갈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ʒoˈzɛ/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지만, 포르투갈 사람은 무조건 /ʒuˈzɛ/로 발음한다.

축구 팬들이 부르는 이름 중에는 모리뇨, 모링요, 모링유, 모링뇨, 모링뉴, 무링뉴, 무링유, 무링요, 무링뇨, 무리뇨, 무리뉴, 모우린호[57]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이는 유럽 포르투갈어에 대한 무지와 축구계에서의 브라질 포르투갈어의 위상 그리고 브라질 지역별 포르투갈어의 다양성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조세 뭐뤼뇨'에 가깝게 불린다. 참고로 그의 고향 세투발에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제 마리우(Ze Mario)'라고 부른다고. 무리뉴는 이 호칭이 자신을 자신답게 느껴지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 축구 뉴비와 고인물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무링요라는 이름에 익숙한지의 여부다. 위에 길게 서술된 '무리뉴 vs 모리뉴'도 고인물에게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무리뉴가 2004년 포르투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첼시를 맡아 세계 축구계의 중심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그의 이름은 언론에 무리뉴와 무링요가 혼재돼 나타났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2004년과 2005년 2년간 검색되는 모든 기사의 59%가 무리뉴, 41%가 무링요로 표기되어 있으며 모리뉴라고 표시된 기사는 단 3건(0.3%)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중계에서 대부분의 해설자나 캐스터가 무링요 감독이라고 불렀고 대부분의 언중도 입에 착 감기는 발음인 무링요라고 불렀다. 무리뉴는 언론에만 등장하는 이름일 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리뉴라고 쓰는 사용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차차 표기의 대세가 무리뉴로 옮겨가면서 무링요라는 언론 표기는 거의 사라져갔고 무링요라 발음하던 중계진도 대부분 무리뉴라고 고쳐서 발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리뉴의 진정한 이름은 무링요라고 생각하며 무링요를 그리워하는 올드비가 많다.

2006 독일 월드컵 이전까지는 외국 축구 선수를 뭐라고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으나[59] 2006 월드컵을 계기로 외국 축구 선수의 발음을 정확히 하자는 언론사들의 반성을 계기로 무리뉴처럼 -요로 표기하던 nho로 끝나는 브라질, 포르투갈인들의 이름도 -뉴로 표기하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60] 대표적인 예가 호나우딩요, 무링요, 카르발요, 호빙요.[61]

"예전에도 무링요보다는 무리뉴라고 표기한 기사가 많았네요."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무리뉴라고 표기된 초창기 기사의 상당수는 José를 스페인어식으로 표기한 '호세 무리뉴'로 표기되어 있다. 반면 무링요라고 표기된 기사의 대부분은 '조세 무링요'라고 표기되어 있다.

무링요라고 불렸던 과거 때문에 간혹 콜롬비아인 수비수 제이손 무리요하고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10. 여담

10.1. 악성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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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래 José의 포르투갈어 표기는 조제이지만 통상적으로 주제 무리뉴로 알려져있기에 그대로 두었다.[2] 수도 리스본에서 가까운 항구 도시다.[3] 현재 체중.[4] 상기한 이력 때문에 그를 비선수 출신 감독으로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5] 이 덕에 스포츠 과학, 심리학에 능통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람을 대한다. 통역관 출신인 만큼 외국어에도 장점이 있다.[6] 프리메이라 리가, 프리미어 리그, 세리에 A, 라리가[7] 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8] 리그, FA컵, 리그컵, 슈퍼컵 등 각 리그 내에서 우승 가능한 모든 타이틀을 획득했다.[9] 챔피언스 리그, 유로파 리그, 컨퍼런스 리그[10] 다만 이 별명에 대해 2021-22 시즌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결승전을 앞둔 인터뷰에서는 '그건 너무 옛날 이야기'라고 말해서 2000년대 전성기에 다소 거만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면을 보였다.[11] 이때 실제로 여학생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다고 한다.[12] 무리뉴 앞에 있는 선수는 바르셀로나 시절의 루이스 피구. 펩 옆에 있는 선수는 전 바르셀로나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13] 공교롭게도 이 세 사람 모두 FIFA 올해의 감독 수상자이자 트레블을 이룬 감독이다.[14] Baltemar Brito #[15] Rui Faria #[16] José Morais #[17] André Villas-Boas #[18] Ricardo Formosinho #[19] João Sacramento #[20] Salvatore Foti #[21] Luca Fatiga #[22] João Tralhão #[23] Pedro Machado #[24] Silvino Louro #[25] Emilio Álvarez #[26] Nuno Santos # 누누 산투 감독이 아니다.[27] Sandro Zufic #[28] Antonio Dias #[29] Stefano Rapetti #[30] Carlos Lalín #[31] André Villas-Boas #[32] Michele Salzarulo #[33] Giovanni Cerra #[34] #[35] 2015년 포르투갈 축구 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시상식에서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축구 선수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36] 리그감독협회[37] 국제스포츠기자협회[38] Grand Officer of the Order of Prince Henry[39] 이후 펩 과르디올라도 라리가, (무리뉴와는 달리 세리에 A는 아니지만) 분데스리가,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면서 3대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쥔 감독이 됐다. 또한 카를로 안첼로티도 당시에는 세리에 A, 프리미어 리그만 있었지만 이후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면서 3대 리그 우승 감독이 되었고 2021-22 시즌에는 라리가마저 우승하면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4대 리그 우승 감독이 됐다. 심지어 안첼로티는 리그앙도 우승했기 때문에 UEFA 계수 상위 5대 리그를 모두 우승해 본 유일한 감독이다.[40] 그런데 2017-18 시즌 맨유가 2위를 확정한 후 1위를 놓쳤다면 2위가 최고의 결과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내로남불이라며 까이고 있다.[41]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적 시장에 거액을 쏟아붓는 첼시에 돈으론 성공을 살 수 없다고 비판했지만 둘의 사이는 엄청 좋다.[42] UCL에서 인테르의 감독으로서 첼시에게 승리한 후.[43] 실제로 2019-20 시즌 토트넘에서 손흥민탕기 은돔벨레에 대한 무리뉴의 평가는 극과 극인데 평소 팀에 헌신적인 손흥민이 레드카드를 먹고 퇴장 했을 때 무리뉴는 그를 옹호했지만 은돔벨레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팀에 방해가 되자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44] 참고로 이 말은 야약스와의 유로파 리그 결승 후 아약스 감독인 피터 보츠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롱볼 게임 때문에 우리는 오늘 우리의 게임을 하지 못했다. 양측 서로 기회가 별로 없는 지루한 게임이었다"란 말을 반박한 것이다.[45] 출처: 아마존 토트넘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 1화에서.[46] 2015년 첼시 감독이었을 당시 졸전을 거듭하는 와중에 리버풀에게 홈에서 3:1 패배를 당한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 특유의 억양과 맞물려 지금까지도 해외에서 무리뉴를 깔 때 등장하는 어록.[47] 인테르 시절이었던 2009년 8월 중국에서 열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경기 후 (라치오에게 2-1 패배) 인터뷰에서 중국측이 중국 선수에 대한 평을 원했다거나, 무리뉴를 호색한으로 몰고갔다, 중국까지 와서 경기를 하는 걸 보니 세리에A에 돈이 없는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무리뉴를 도발했다는 루머가 한때 나돌았으나 사실과 다르다. 당시 인터뷰를 실은 기사(아카이브로 대체)가 존재하지만 저런 내용은 없다. 다만 중국 축구가 쓰레기라는 말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48] 앞서 취소선 처리된 위 인용문이 나온 것으로 날조되었던 인터뷰에서 실제로 한 말이다. 중국 선수, 중국 여자 이야기는 날조지만 중국 기자들이 개념없는 질문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앞서 질문 두 개가 있었는데, 원문 기사에 의하면 첫 번째 질문은 이제 막 계약한 사무엘 에투의 풀타임 투입은 누가 억지로 시킨거 아니냐, 두 번째 질문은 라치오도 당신이 불평했던 똑같은 폭염이 흐르는 경기장에서 경기했는데 왜 걔들은 (인테르를) 이겼는가 하는 도발성 질문들이었다.[49] 이 말 자체는 전형적인 무리뉴의 독설이고 2006-07 시즌 무리뉴가 호날두에게 사과하면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자 호날두의 문제를 매우 잘 나타냈다며 재평가받고 있다. 반대로 후술할 손흥민에 대해선 월드 클래스급이라며 언사도 해 줬다.[50] 토트넘 감독 부임 전에 남긴 평가다.[51] 호날두, 드록바, 즐라탄 등 이제까지 함께해 온 위대한 스트라이커와 비교해 달라는 기자에 질문에 대한 답변.[52]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에 얼마나 다가섰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풀이하자면 이미 월드 클래스 수준에 도달했지만 언론의 주목도가 낮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도 "세상은 신중하고 조용하고 겸손하면서도 무난한 삶을 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손흥민이 덜 주목받는 것에 아쉬운 마음을 내보였다.[53] 아마존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에서 장난치며 한 말이다.[54] 당시 김민재를 낮게 평가한 토트넘 보드진에 대한 비꼼의 의미가 담겨 있다.[55] 만약에 토트넘 경영진이 무리뉴의 말을 믿고 김민재를 영입했으면 지금 토트넘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56] AS 로마 감독으로서 각각 나폴리와의 경기를 앞두고 '나폴리에도 디발라와 같은 핵심 선수가 있다면 누구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한 코멘트와 나폴리와의 경기 후 디발라 관련 질문을 받고 한 코멘트다.[57] 로마자 표기를 그대로 읽으면 저 발음이 되는데 주로 한국에서 무리뉴에 대한 멸칭으로 쓰인다. 주로 '무리뉴는 실종됐고 지금 보고있는 인물은 모우린호다'라는 드립으로 활용된다.[58] 이쪽은 언론에서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효도르'라는 표기는 대단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성 부분의 표기가 어렵다.[59] 한국어 해설이 처음 도입된 피파 2001~2002를 해 보면 기그스, 리발도, 로베르또 까를로스, 케안등등 지금 들어 보면 웃음이 나오는 해설로 가득하다.[60] 사실 nho를 브라질에서는 -요나 -유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해서 아주 틀린 표기는 아니다. 호나우지뉴를 호나우징유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은근 있다.[61] 이외에도 당시에는 셰브첸코가 일반적이었던 표기였으나 솁첸코로, 드로그바 → 드록바, 콜러 → 콜레르, 키웰 → 큐얼 등 많은 선수의 이름에 정정이 있었다.[62] 특이하게도 2019-20 시즌은 코로나19 사태로 리그가 중단됐다가 여름에 재개된 후 쿨링 브레이크와 중간 방역 작업으로 무리뉴가 원하던 작전 타임과 유사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리그 재개 이후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본래 선수 휴식을 위한 쿨링 브레이크가 대부분의 구단이 작전 시간으로 사용한다고 비판이 나오자 결국 차기 시즌부터는 다시 작용하지 않았다.[63] 실제 등번호는 11번. 발다노와 10번 마라도나, 7번 부루차가는 당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 대표팀의 삼각편대였다.[64] 다만 크레스포와 사이가 나쁘거나 한 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크레스포는 무리뉴에 대해 긍정적인 인터뷰를 많이 했고 무리뉴도 레알 재직 시절 크레스포를 초청하여 경기 전 훈련을 함께 참관할 정도. 기사[65] 다만 벵거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66] EPL 역대 최고 승점 기록(95점), 한 시즌 최소 실점 기록(15실점), 최다 홈 무패 행진(77경기), 최연소 챔스 100경기 달성(49세)[67] 참고로 포르투갈에서 신장 176cm는 평균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평균 신장이 작은 편에 속한다.[68] 다만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고 크리스마스 때 가족과 함께하는 사진으로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물론 선수들은 자유다.[69] 딱 한 가지 비스무리하게 맞아들어간 것이 한국-독일 경기였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봤을 때는 독일이 이기겠지만 한국이 독일을 이겨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70] 이후에 무리뉴의 수석 코치로 오랫동안 일했던 주제 모라이스 감독 또한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재임했던 시절에 했던 각종 선행과 미담이 밝혀지며 '모버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71] 박지성은 뛰어난 축구지능과 전술 이해도를 가지고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으로 필드를 누비며 팀을 돕는데 이는 무리뉴의 전술에서 핵심이 될 수 있는 유형이다. 실제로 박지성이 맨유 이적을 타진하고 있을 때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잔류를 요청하면서 다음 시즌에 자신과 커넥션이 있는 첼시로 보내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첼시로 갔다면 무리뉴의 밑에서 뛰었을 것이다.[72] 무리뉴 성격상 공손하게 악수할 성격이 아니니 그 짤이 차범근 클라스라는 제목으로 유행을 타기도 했다.[73] 그런데 재밌게도 무리뉴가 챔스 우승으로 이끌고 떠난 FC 포르투인테르 두 구단 모두 슈퍼컵에서 유로파 리그 우승 구단에게 패배했다. 포르투는 2004년 발렌시아에게 1:2로, 인테르는 2010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0:2로 패배했다.[74] 2003년에는 AC 밀란에게 0:1로, 2017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1:2로 패배.[75] 요크셔 테리어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