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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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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RTP)이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포르투갈인 100명'을 선정. 단, 중복 투표가 포함됨.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알바루 쿠냘 아리트리데스 드 수사 멘데스 아폰수 1세 루이스 드 카몽이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주앙 2세 인판트 동 엔히크 페르난두 페소아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바스쿠 다 가마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살게이우 마이아 마리우 소아르스 파도바의 안토니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에우제비우
16위17위18위19위20위
프란시스쿠 사 카르네이루 조르제 누누 핀투 다 코스타 누누 알바르스 페레이라 주앙 페레이라 드 알메이다 주제 무리뉴
21위22위23위24위25위
아고스티뉴 다 시우바 에사 드 케이로스 에가스 모니스 디니스 1세 페르난두 노브레
26위27위28위29위30위
주제 에르마누 사라이바 아니발 카바쿠 실바 움베르투 델가도 조제 아폰수 루이스 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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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루 카에타누 페드루 누네스 안토니우 비에이라 플로르벨라 이스팡카 페르디난드 마젤란
36위37위38위39위40위
마리아 지 루르드 핀타실구 주앙 1세 소피아 드 멜로 브레이네르 안드레센 안토니아 페레이라 파더 아메리쿠
41위42위43위44위45위
안토니우 다마지우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마누엘 1세 주제 사라마구 아라곤의 이사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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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테스 지 알메이다 알베르투 주앙 자르딩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바스쿠 곤살베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56위57위58위59위60위
벨미로 데 아제비로 수사 마르틴스 마리아 두 카르모 세아브라 안토니우 안드라지 카를루스 1세
61위62위63위64위65위
마리자 비제우의 엘레노르 호자 모타 안토니우 테이셰이라 레벨루 아폰수 3세
66위67위68위69위7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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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위72위73위74위75위
마리아 2세 카를루스 로페스 아폰수 코스타 폰테스 페레이라 드 멜루 가구 코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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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위87위88위89위9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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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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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749> 페네르바흐체 SK
Fenerbahçe S.K.
파일:무리뉴2024.jpg
이름 주제 무리뉴
José Mourinho
본명 주제 마리우 두스산투스 모리뉴 펠리스
José Mário dos Santos Mourinho Félix
출생 1963년 1월 26일 ([age(1963-01-26)]세)
포르투갈 제2공화국 세투발현 세투발[1]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 체중 82kg[2]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02749> 선수 히우 아브 FC (1980~1982)
CF 벨레넨세스 (1982~1983)
세심브라 (1983~1985)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 (1985~1987)
감독 스포르팅 CP (1992~1993 / 수석 코치)
FC 포르투 (1993~1996 / 수석 코치)
FC 바르셀로나 (1996~2000 / 수석 코치)
SL 벤피카 (2000)
UD 레이리아 (2001~2002)
FC 포르투 (2002~2004)
첼시 FC (2004~2007)
인테르나치오날레 (2008~2010)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3)
첼시 FC (2013~201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2018)
토트넘 홋스퍼 FC (2019~2021)
AS 로마 (2021~2024)
페네르바흐체 SK (2024~ )
국가대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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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749> 종교 가톨릭
에이전트 조르즈 멘데스
가족 배우자 마틸다 파리아(1989년 결혼 ~ )
마틸드 무리뉴
아들 주제 무리뉴 주니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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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감독이 되기 전3. 지도자 경력4. 특징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통산 기록5.4. 수훈
6. 어록7. 주제 무리뉴에 대한 언사8. 라이벌9. 가족10. 이름 표기11. 여담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가 1987년에 24세의 아주 이른 나이로 은퇴하였다.[3] 선수 은퇴 후에는 체육 교사, 통역관 등을 거쳐[4] 스포르팅 수석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포르투,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S 로마의 감독을 맡아서 유럽 4개 리그 우승[5] 및 4개국[6] 모든 대회 우승[7], 유럽 3대 클럽 대항전[8] 우승 등의 기록을 세워 '스페셜 원(Special One)[9]'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명장으로 거듭났다.

2. 감독이 되기 전

본인이 축구 선수로서 재능이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이른 나이인 24세에 은퇴했다. 부모님도 이것을 알았는지 선수 시절 아들에게 "선수로서 기술을 익히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분석하는 안목을 기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의 의사에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두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 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해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10]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 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트직으로 재직했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스포르팅을 시작으로 포르투,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주고 받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선수와 코치로서 이때 처음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을 하던 시절 일화가 있는데 1996-97 시즌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바르셀로나가 패했던 경기에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당시 빌바오 감독이었던 루이스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무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펩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무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무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무리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무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무리뉴는 통역관뿐만 아니라 전술 어드바이스, 선발 선수 관리 등을 수행하며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쌓았다. 마찬가지로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과는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무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이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통통 튀는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태프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구단을 떠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무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은 요한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사-수석 코치 시절에는 무리뉴가 크루이프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긴장해서 말도 못 걸고 벌벌 떨었다는 일화가 있다. 원정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우연히 크루이프 옆좌석에 배치됐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더듬으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안쓰러운 나머지 크루이프가 먼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무리뉴도 답변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101greatgoals.com/Van-Gaal-y-Mourinho.jpg파일:external/cloud1.todocoleccion.net/26353483_7051609.jpg파일:search.p22static.jpg
판할과 무리뉴 과르디올라와 무리뉴[11] 엔리케, 과르디올라와 무리뉴[12]

파일:external/img.desmotivaciones.es/mourinho_15.jpg
"바르사는 내 마음 속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거야"
- 주제 무리뉴, FC 바르셀로나 통역사, 1997년 우승 축하 행사에서

하지만 그는 바르사의 철천지 원수가 되어 나타난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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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단

3.2. 감독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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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징

4.1. 독설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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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3년 차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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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rowcolor=#c6b57c> 구단 기간 경기 득실 승률
SL 벤피카 2000.09.20 ~ 2000.12.05 11 6 3 2 17 9 +8 54.55%
UD 레이리아 2001.07.01 ~ 2002.01.23 23 12 8 3 34 20 +14 52.17%
FC 포르투 2002.01.23 ~ 2004.06.02 127 91 21 15 254 96 +158 71.65%
첼시 FC 2004.06.02 ~ 2007.09.20 185 124 40 21 330 119 +211 67.03%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06.02 ~ 2010.05.28 108 67 26 15 185 94 +91 62.04%
레알 마드리드 CF 2010.05.31 ~ 2013.06.01 178 128 28 22 475 168 +307 71.91%
첼시 FC 2013.06.03 ~ 2015.12.17 136 80 29 27 245 121 +124 58.8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05.27 ~ 2018.12.18 144 84 32 28 244 121 +123 58.33%
토트넘 홋스퍼 FC 2019.11.20 ~ 2021.04.19 86 44 19 23 166 103 +63 51.16%
AS 로마 2021.07.01 ~ 2024.01.16 95 50 19 26 149 98 +51 52.63%
통산 1,090 683 224 183 2,099 949 +1150 62.66%

5.4. 수훈

6. 어록

난 어릴 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 시간 미래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나는 내가 세계 제일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능가하는 감독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첼시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오만으로 듣지 않아 줬으면 하지만 최고의 감독을 손에 넣었다.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Special One)다.
(UEFA컵과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고 첼시로 이적한 직후 기자 회견에서)(참고)
유럽 3대 리그 모두에서 우승을 거머쥔 건 나 하나뿐이다. 앞으로는 '특별한 존재(Special One)'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Only One)'라고 불러주길 바란다.[33]
내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취임 기자 회견)
중압감은 1등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2등이나 3등에게 오는 말이다.
축구에 관한 내 철학은 축구에는 오직 단 하나의 승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2등은 꼴찌 중에 1등일 뿐이다.[34]
맨유에서 차지한 리그 2위는 나의 경력에서 가장 큰 업적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보다는 솔직한게 낫다. 나는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바르사 기자: 당신은 바르사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바르사에 무례하느냐?
무리뉴: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 구단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 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꿈이다. 꿈. 우리에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순수한 꿈이다. 그들에게 있어 챔피언스 리그는 집착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영광을 따라잡기 위한 집착. 열등감에서 비롯된 집착이다. 우리는 다르다. 순수한 꿈을 위해 싸운다.
(2009-10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꺾은 후의 기자 회견)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 듯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승리를 보장받을 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35]
리버풀 팬들은 늘 첼시를 보고 역사가 없다며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로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리버풀의 역사는 위대하고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존중한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17년간 리그 우승을 못했고, 반면 첼시는 지난 3년간 두 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역사는 박물관에,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한다.
말대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선수들 앞에서 나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주장의 임무다.
(첼시 부임 이후 존 테리를 주장에 임명하면서)
고개를 들어라. 저 턱 밑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준 선수들에게 환호하라. 그들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인테르가 이겼으니까. 한편으로 나는 불행하다. 왜냐하면 첼시가 져버렸으니까. 또한 나는 행복하다. 인테르 팬들이 기뻐하고 있으니까. 나는 불행하다. 첼시 팬들은 슬퍼하고 있으니까. 불행으로 행복을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인생이다.[36]
오늘 시합을 가지고 선수들을 비난하고 싶거든 우선 나를 죽이고 나서 해라.
나는 경기력이 나쁜 선수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외부에서의 공격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지킨다. 하지만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팀워크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선수를 지켜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37]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은 시합이 끝난 후 매스컴 앞에서 선수를 비판하는 것이다. 패배나 무승부 후에 도망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이 보호받고 안정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매스컴을 기쁘게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러뜨려야할 적은 나이며, 기분 나쁜 녀석은 나이며, 건방진 녀석은 나이며, 무능한 감독은 바로 나다. 내가 그러한 대상이 되는 것은 팀에 있어서 긍정적인 것이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라. 그리고 기 죽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무리뉴: 압박감? 무슨 압박감?
기자: 두 경기 연속으로 진 것에 대해서.
무리뉴: 자녀에게 먹을 걸 사다 줘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는, 전 세계 수백만의 부모가 느끼는 것. 그런 걸 압박감이라고 한다. 축구에선 없다.
두려운 것은 신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걱정이다.
팀이 이긴다면 그것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팀이 진다면 그것은 내 전술이 잘못된 것이다.
축구에는 시인이 많지만 시인은 많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38]
경기 전후로 인터뷰에 응할 때는 언제나 그것도 시합의 일부로서 대처하고 있다. 경기 전의 기자 회견에 나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경기는 시작되고 있다. 경기 후의 기자 회견까지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를 네 번 우승시키는 감독이 나올 때까지는 내가 No.1이다. 그때가 오면 내가 No.2를 해주겠다. 현재로선 유다가 No.1이란 뜻이다.
(2017년 FA컵 준결승에서 첼시에게 0-1로 패배한 직후의 인터뷰. 경기중 자신을 배신자라 야유했던 첼시 서포터들에게)
Q. 첼시 감독 시절이던 2015년, 절대 토트넘 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지 않았느냐?
A. 그땐 내가 짤리기 전이었다.
나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자는 기회를 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는 자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 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동일한 원칙을 가진 선수들은 나와 문제가 전혀 없었고 또 없을 거다. '난 오늘은 75%만 뛰어야지. 난 오늘은 한 95%만 해야지.'라는 태도를 가진 선수들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선수들에게 100%을 요구할 것이고 나 또한 100%로 임하기 때문이다.[39]
I have nussing to say. (할 말이 없다)[40]
중국 요리를 평가할 의향은 있지만 중국 선수는 모른다.[41]
첫 두 질문을 받아보니, 중국 축구가 왜 그렇게 쓰레기인지, 그리고 중국이 수많은 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뭣 때문에 축구만은 예외인지 난 알겠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영 프로답지 않거든.[42]
의 언행엔 성숙한 면이나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다. 아마도 어려웠던 유년기 때문이거나 가정 교육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퍼거슨 경은 자기 애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43]
손흥민은 공격적인 선수다. 빠르고 전환도 좋다. 특히 자유로운 공간을 허용할 경우 손흥민은 매우 위협적이다.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팀을 상대로 볼을 빼앗아 빠른 공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내 생각에 손흥민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44]
나는 선수 간 비교를 하지 않는다. 손흥민과 케인은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다. 그것이 전부다.[45]
그건 당신들(기자, 미디어)에 달린 문제다. 소니는 스스로 증명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냈다. 매 시즌마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물론 팀이 더 좋아지면 기량을 끌어올리기 더 쉽겠지만 소니가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없다.[46]
오, 대한민국의 왕. 무슨 일이시오. 질문이 있으시다고? 그럼 대답해 드려야지.[47]
기자: 과르디올라챔스 우승보다 EPL 우승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둘 다 우승해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리뉴: 우리는 언제나 따낸 트로피가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챔스를 우승했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챔스 우승이다. 그리고 리그에서 우승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리그 우승이다. 그리고 둘 다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는 '우승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웃음)
해당 시즌 맨시티는 챔스에서 탈락했지만 리그에서 우승을 이뤘고 무리뉴의 맨유는 어떠한 대회에서도 우승하지 못했다. 본인의 상황을 은근슬쩍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전) 한 (나폴리)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토트넘 시절 그를 데려오기 위해 Facetime으로 만났다. 하지만 당시 토트넘은 날 도와주지 않았다. 이 선수의 가격은 10m 유로였지만 토트넘은 5m을 오퍼했다. 7~8m 유로 정도면 됐을 텐데 토트넘은 돈을 쓰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아마 쓸 수 있을 것이다. 난 이 선수와 Facetime으로 두세 번 정도 만났고 선수도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데려오지 못했다. 지금 나폴리에서 뛰는 "수준 낮은"[48] 김민재 이야기다.[49]
(경기 후) 디발라가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폴리에는 정말 강하고 빠른 두 명의 중앙 수비수가 있다. 특히 김민재는 환상적인 선수다. 이런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해서 생각해야 한다.[50]
내가 지휘했던 팀에 대해서는 어느 곳이나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 내가 애착이 없는 팀이라고 한다면 토트넘 하나뿐.
토트넘에서 최악의 형태로 경질된 것에 대한 비아냥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후 멘트를 보면 재임기간이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있어 무<tablealign=center><tablewidth=70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ffffff,#191919> {{{#!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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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 시간 미래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나는 내가 세계 제일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능가하는 감독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첼시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오만으로 듣지 않아 줬으면 하지만 최고의 감독을 손에 넣었다.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Special One)다.
(UEFA컵과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고 첼시로 이적한 직후 기자 회견에서)(참고)
유럽 3대 리그 모두에서 우승을 거머쥔 건 나 하나뿐이다. 앞으로는 '특별한 존재(Special One)'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Only One)'라고 불러주길 바란다.[51]
내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취임 기자 회견)
중압감은 1등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2등이나 3등에게 오는 말이다.
축구에 관한 내 철학은 축구에는 오직 단 하나의 승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2등은 꼴찌 중에 1등일 뿐이다.[52]
맨유에서 차지한 리그 2위는 나의 경력에서 가장 큰 업적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보다는 솔직한게 낫다. 나는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바르사 기자: 당신은 바르사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바르사에 무례하느냐?
무리뉴: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 구단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 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꿈이다. 꿈. 우리에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순수한 꿈이다. 그들에게 있어 챔피언스 리그는 집착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영광을 따라잡기 위한 집착. 열등감에서 비롯된 집착이다. 우리는 다르다. 순수한 꿈을 위해 싸운다.
(2009-10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꺾은 후의 기자 회견)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 듯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승리를 보장받을 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53]
리버풀 팬들은 늘 첼시를 보고 역사가 없다며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로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리버풀의 역사는 위대하고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존중한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17년간 리그 우승을 못했고, 반면 첼시는 지난 3년간 두 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역사는 박물관에,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한다.
말대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선수들 앞에서 나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주장의 임무다.
(첼시 부임 이후 존 테리를 주장에 임명하면서)
고개를 들어라. 저 턱 밑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준 선수들에게 환호하라. 그들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인테르가 이겼으니까. 한편으로 나는 불행하다. 왜냐하면 첼시가 져버렸으니까. 또한 나는 행복하다. 인테르 팬들이 기뻐하고 있으니까. 나는 불행하다. 첼시 팬들은 슬퍼하고 있으니까. 불행으로 행복을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인생이다.[54]
오늘 시합을 가지고 선수들을 비난하고 싶거든 우선 나를 죽이고 나서 해라.
나는 경기력이 나쁜 선수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외부에서의 공격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지킨다. 하지만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팀워크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선수를 지켜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55]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은 시합이 끝난 후 매스컴 앞에서 선수를 비판하는 것이다. 패배나 무승부 후에 도망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이 보호받고 안정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매스컴을 기쁘게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러뜨려야할 적은 나이며, 기분 나쁜 녀석은 나이며, 건방진 녀석은 나이며, 무능한 감독은 바로 나다. 내가 그러한 대상이 되는 것은 팀에 있어서 긍정적인 것이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라. 그리고 기 죽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무리뉴: 압박감? 무슨 압박감?
기자: 두 경기 연속으로 진 것에 대해서.
무리뉴: 자녀에게 먹을 걸 사다 줘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는, 전 세계 수백만의 부모가 느끼는 것. 그런 걸 압박감이라고 한다. 축구에선 없다.
두려운 것은 신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걱정이다.
팀이 이긴다면 그것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팀이 진다면 그것은 내 전술이 잘못된 것이다.
축구에는 시인이 많지만 시인은 많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56]
경기 전후로 인터뷰에 응할 때는 언제나 그것도 시합의 일부로서 대처하고 있다. 경기 전의 기자 회견에 나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경기는 시작되고 있다. 경기 후의 기자 회견까지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를 네 번 우승시키는 감독이 나올 때까지는 내가 No.1이다. 그때가 오면 내가 No.2를 해주겠다. 현재로선 유다가 No.1이란 뜻이다.
(2017년 FA컵 준결승에서 첼시에게 0-1로 패배한 직후의 인터뷰. 경기중 자신을 배신자라 야유했던 첼시 서포터들에게)
Q. 첼시 감독 시절이던 2015년, 절대 토트넘 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지 않았느냐?
A. 그땐 내가 짤리기 전이었다.
나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자는 기회를 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는 자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 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동일한 원칙을 가진 선수들은 나와 문제가 전혀 없었고 또 없을 거다. '난 오늘은 75%만 뛰어야지. 난 오늘은 한 95%만 해야지.'라는 태도를 가진 선수들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선수들에게 100%을 요구할 것이고 나 또한 100%로 임하기 때문이다.[57]
I have nussing to say. (할 말이 없다)[58]
중국 요리를 평가할 의향은 있지만 중국 선수는 모른다.[59]
첫 두 질문을 받아보니, 중국 축구가 왜 그렇게 쓰레기인지, 그리고 중국이 수많은 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뭣 때문에 축구만은 예외인지 난 알겠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영 프로답지 않거든.[60]
의 언행엔 성숙한 면이나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다. 아마도 어려웠던 유년기 때문이거나 가정 교육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퍼거슨 경은 자기 애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61]
손흥민은 공격적인 선수다. 빠르고 전환도 좋다. 특히 자유로운 공간을 허용할 경우 손흥민은 매우 위협적이다.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팀을 상대로 볼을 빼앗아 빠른 공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내 생각에 손흥민보다 나은 선수는 없다.[62]
나는 선수 간 비교를 하지 않는다. 손흥민과 케인은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다. 그것이 전부다.[63]
그건 당신들(기자, 미디어)에 달린 문제다. 소니는 스스로 증명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냈다. 매 시즌마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물론 팀이 더 좋아지면 기량을 끌어올리기 더 쉽겠지만 소니가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없다.[64]
오, 대한민국의 왕. 무슨 일이시오. 질문이 있으시다고? 그럼 대답해 드려야지.[65]
기자: 과르디올라챔스 우승보다 EPL 우승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둘 다 우승해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리뉴: 우리는 언제나 따낸 트로피가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챔스를 우승했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챔스 우승이다. 그리고 리그에서 우승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리그 우승이다. 그리고 둘 다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는 '우승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웃음)
해당 시즌 맨시티는 챔스에서 탈락했지만 리그에서 우승을 이뤘고 무리뉴의 맨유는 어떠한 대회에서도 우승하지 못했다. 본인의 상황을 은근슬쩍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고 있는 상황.
(경기 전) 한 (나폴리)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토트넘 시절 그를 데려오기 위해 Facetime으로 만났다. 하지만 당시 토트넘은 날 도와주지 않았다. 이 선수의 가격은 10m 유로였지만 토트넘은 5m을 오퍼했다. 7~8m 유로 정도면 됐을 텐데 토트넘은 돈을 쓰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아마 쓸 수 있을 것이다. 난 이 선수와 Facetime으로 두세 번 정도 만났고 선수도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데려오지 못했다. 지금 나폴리에서 뛰는 "수준 낮은"[66] 김민재 이야기다.[67]
(경기 후) 디발라가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폴리에는 정말 강하고 빠른 두 명의 중앙 수비수가 있다. 특히 김민재는 환상적인 선수다. 이런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해서 생각해야 한다.[68]
내가 지휘했던 팀에 대해서는 어느 곳이나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토트넘 하나뿐.
토트넘에서 최악의 형태로 경질된 것에 대한 비아냥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후 멘트를 보면 재임기간이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있어 오랬동안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른 탓에 팬이나 서포터즈들과의 유대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7. 주제 무리뉴에 대한 언사

나는 주제를 좋아한다. 그에게는 악마와도 같은 두뇌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유머 감각이 있다. 그가 보기에는 프리미어 리그란 건 노련한 보안관이 오랜 세월 주저앉아있는 마을과 같겠지. 그리고 자기는 그 마을에 홀몸으로 굴러들어온 건맨이라는 기분으로 있는 게 아닐까.
유명 선수 출신이 아닌데도 빅클럽에서 감독으로서 성공했다. 포르투갈의 작은 팀에서 시작했지만 FC 포르투에서 리그 우승, UEFA컵,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해냈다. 첼시와 인터 밀란에서의 활약은 잘 알려져 있다. 무리뉴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알렉스 퍼거슨
그가 훌륭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두 안다. 그는 여러 구단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그래서 우리 회장이 데려온 것#
무사 시소코
무리뉴 감독은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우리 선수단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집중을 유지하고 하나된 상태를 유지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의 중요성을 심어줬다. 이제 AS 로마 선수단은 그와 함께 (컨퍼런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니콜로 차니올로
무리뉴 감독은 사람으로서 정말 좋은 분이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곧바로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내가 봤던 사람 중에 가장 특별한 사람이다. 무리뉴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마다 엇갈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타고난 리더이며, 이기기 위한 축구를 한다.
사무엘 에투

8. 라이벌

8.1. 펩 과르디올라

바르샤 수석 코치 시절부터 안면이 있었으며, 첼시와 계약을 해지한 후 2008년 바르샤 감독에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때 당시 바르샤 B군 감독이었던 펩을 자신의 수석 코치로 임명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물론 바르샤 보드진들은 무리뉴 선임을 거부하고 펩을 감독으로 내세웠다. 무리뉴는 자신을 거절한 바르샤에 증오심을 느껴 훗날 라이벌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10-11 시즌부터 라리가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에서 감독으로서 붙었으며 무대를 옮겨 PL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이 되어 경쟁을 이어갔다.[69] 라 리가 시절에는 굉장히 사이가 나빴으나 요즘은 큰 충돌은 없이 서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상태다. 다만 서로를 존중해서라기보단 더러워서 피한다는 느낌이 짙다.

서로 치열하게 입씨름한 것 때문인지 상대 전적을 박빙으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상대 전적은 펩 과르디올라가 우세하다. 사실 무리뉴가 이 정도로 전적이 확 밀리는 경우는 잘 없는데 대부분 인테르(1승 1무 2패)와 레알 마드리드(2승 4무 5패) 감독 시절에 하필 전성기 바르셀로나를 만나 털린 것들이다.

세르히오 라모스가 스페인 국대 선배인 카를레스 푸욜의 싸대기를 때려 공개사과까지 해야 했던 엘클 5-0이 바로 이 분이 레알 감독일 때 쌓은 업적이다. 물론 그땐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 기량 차이가 너무 심해서 갓 부임한 무리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70]

(한국 기준) 2018년 11월 12일 맨체스터 더비(PL)는 '무리뉴 vs 과르디올라'의 위치를 여지없이 보여 줬다. 이 경기에서 무리뉴의 맨유는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를 상대로 아무것도 못한 채 지고 말았다.[71] 물론 맨시티가 객관적인 전력에서 살짝 우세했으나 마샬의 PK를 제외하고는 '강등권 구단'도 맨시티 상대로 충분히 기록할 수 있는 유효 슈팅(필드)을 무리뉴의 맨유는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일방적으로 수비만 하다가 결국 맨시티에게 추가 골을 헌납했다. 즉, 무리뉴는 과르디올라에게 전술적으로 완패를 당했다. 막판 '스털링-사네-필 포덴'에게 농락 당한 것은 덤이다.

해당 경기는 펩 과르디올라와 무리뉴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잘 보여준 경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무리뉴의 후임인 솔샤르가 2020년 3월 10일자에 비슷한 스쿼드로 치른 맨체스터 더비에서는 솔샤르의 맨유가 펩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를 3백 카운터 전술을 활용해 2:0 완승을 거뒀고 졸지에 무리뉴는 경력이 한참 차이 나는 솔샤르만도 못하다는 평을 들어야 했다.

2020년까지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7승 6무 11패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앞서고 있다.무리뉴의 상대 전적

2019년에 무리뉴가 토트넘 홋스퍼 FC에 부임함에 따라 맨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맞대결 구도가 다시금 가능해졌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펩과의 맞대결에서 2-0 완승을 거두며[72] 펩과 맨시티의 우승 추격 의지를 꺾어버렸다.

최근에도 계속 펩을 의식하는 듯한 인터뷰를 하지만 정작 펩은 지금 위르겐 클롭리버풀을 의식하고 있으며 그런 펩을 자극하기라도 하듯, 삭발(!!)을 했고[73] "누구랑은 달리 밀어도 자란다"는 말까지 했다. 참고로 이전에도 무리뉴는, "펩은 축구를 즐기지 못해 대머리가 됐다." 는 말을 했다.

그러던 중에 펩이 감독 중인 맨시티가 FFP 위반으로 징계를 먹자, 과거 펩의 맨시티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 온 무리뉴의 인터뷰가 재평가 받았다. 다만 맨시티는 이후 CAS 항소 끝에 무죄를 선고받아 징계가 기각됐다.

2020-21 시즌 극초반에는 두 감독의 행보가 반대로 흘렀다. 무리뉴가 부임한 토트넘은 2년 차 징크스가 다시 발동됐는지 뛰어난 조직력과 좋은 전술, 알짜배기 이적 시장 등으로 재미와 실리를 챙겨가는 반면, 펩이 감독 중인 맨시티는 유럽 대항전의 연이은 실패에 더불어 천문학적으로 투자된 금액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언론과 팬들의 우려[74]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어 2020-21 시즌 처음 맞대결에서 저번 시즌과 똑같은 스코어로 펩의 맨시티를 11위로 떨어뜨리고 무리뉴는 1위로 올라섰다. 손흥민과 베르흐바인의 위치를 스위칭한 전술을 활용해 펩의 맨시티를 잡았고 전술적으로 완승을 거뒀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설레발이 무색하게도 이후 무리뉴의 토트넘은 급격한 한계를 드러내며 아스날전 이후로 5연속 무승을 거두면서 유로파권으로 추락하게 되었고 반면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는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15경기 무패행진를 찍으며 리그 1위로 치고 나갔다. 결국 토트넘은 추락을 거듭하며 무리뉴가 시즌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경질된 반면, 맨시티는 리그+리그컵 우승에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내면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 결국 원래대로 돌아갔다. 특히나 리그컵 결승이 토트넘과 맨시티의 매치업으로 이뤄지며 맞대결이 성사됐으나 결승 6일 전에 무리뉴가 경질당한 것은 보드진이 무리뉴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러한 승부와는 별개로 서로에게 감정 상한 건 많이 누그러진 듯하다. 눈도 안 마주치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경기 전에 악수하면서 대화는 하는 정도로 사이가 조금 나아졌다. 무리뉴는 언론이 다루는 자신과 과르디올라와의 관계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며 자신은 과르디올라에게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언급했다. 특히 2017년 무리뉴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과르디올라에게서 온 위로 전화를 받았으며 본인도 2020 과르디올라의 모친 부고에 연락을 보냈다고 한다.

8.2. 알렉스 퍼거슨

퍼거슨의 26년 장기 집권 경력에서 무리뉴의 첼시 1기 부임은 관록의 베테랑 명장 대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젊은 피의 신흥 외국인 명장 구도를 이루었으며, 벵거 vs 퍼거슨으로 대표되던 옛 프리미어 리그 라이벌 관계의 종언과 동시에 자본을 위시한 신흥 강호들이 합류한 본격적인 새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무리뉴는 퍼거슨을 존경해 왔는데 과거 포르투 시절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유를 꺾은 직후 퍼거슨이 무리뉴에게 와인을 권했을 때 자신을 존중해 준 것에 대해 감동받았다고 한다. 무리뉴가 처음으로 PL에 진출해 갑부 구단주의 지원 아래 첼시를 강팀으로 만들어 갈 때 퍼거슨의 디스에 주눅들지 않고 맞디스를 해주고 경기 후에는 함께 와인을 마실 만큼 서로 존중하는 관계.

포르투 시절부터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가며 퍼거슨의 맨유와 경쟁을 이어갔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퍼거슨의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유를 꺾기도 했다. 한때는 무리뉴가 맨유 감독이 되어 퍼거슨 시절의 영광을 계승해나가려고 했으나 리그 무관과 좋지 못한 경기력, 선수단과의 불화로 인해 2018년 12월 전격 경질됐다.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7승 7무 2패로 퍼거슨을 크게 압도하는 성적이다.

8.3. 아르센 벵거

첼시에서 오일머니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는 비난을 벵거와 아스날 팬들에게 종종 들었던 무리뉴는 성적과는 별개로 흥행도면에서는 최상위권의 라이벌 관계로 그 유명한 관음증 환자라는 발언부터 시작해 실패셜리스트, '나라면 십 년 동안 트로피 없으면 런던에 다시는 안 온다'라는 주옥같은 멘트로 벵거를 털었다. 어찌나 털고 관심을 가졌는지 무리뉴가 첼시로 복귀했을 때, '우승을 못한 감독' 얘기를 했을 때 팬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그 감독을 벵거라고 예측하면서 '무리뉴는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벵거를 저격했다'고 일갈하며 '그래도 벵거 챙겨주는 건 무리뉴다.'란 반응을 했을 정도. 전설적인 벵거의 천 번째 경기에서 6:0으로 대파하기도 했지만 벵거는 말년에 무리뉴를 꺾고 설욕을 해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싸우다가 정이 든 건지, 이어지는 싸움에 본인들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는 인터뷰도 했다.[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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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가 2017-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아스날 감독직을 그만두기로 하면서 당분간 또는 평생 둘 사이의 경기는 볼 수 없게 됐고 시즌 막판 아스날이 맨유 원정을 위해 올드 트래포드를 찾아오자 퍼거슨과 무리뉴는 벵거를 위해 그동안의 아스날 감독으로 일한 헌신에 존중을 표하는 트로피를 맨유 구단을 대표하여 직접 선물했다.[76]

파일:mou_weng.png
비인스포츠의 방송 패널로 둘이 나란히 출연해서 케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10승 7무 2패로 아르센 벵거를 크게 압도한다. 승리 아니면 무승부였지만 끝물에는 벵거도 무리뉴를 꺾기도 했고 둘 다 PL과는 멀어졌으나 만약에 재성사돼도 여러모로 흥미거리가 넘치는 라이벌이다.

8.4. 위르겐 클롭

클롭이 리버풀 취임 기자 회견에서 스스로를 소개해 달란 기자의 질문에 과거 무리뉴가 첼시 감독으로 부임할 때 스스로를 스페셜 원이라 소개한 것을 빌려 위트 있는 대답으로 자신은 노멀 원이라 소개했다. 그리하여 스페셜 원과 노멀 원 간의 라이벌리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두 감독 사이에서 정말 특이한 점은 맞대결 패배 후 무리뉴가 해임당한 적이 많았다는 점이다.

먼저 무리뉴의 마지막 레알 마드리드 시즌이었던 2012-13 시즌에 당시 클롭의 도르트문트를 챔스 4강에서 만나 1차전에서 1:4로 충격적인 완패를 하며 결국 탈락했고, 약 한 달 뒤, 시즌이 끝나자마자 무리뉴는 해임당했다.

2015년 10월 무리뉴의 첼시 2기 감독 시절,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서 1대3으로 패한 후 무리뉴에 대한 경질론이 제대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나마 실제 경질은 12월에 이루어졌으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무리뉴는 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무리뉴의 맨유 감독 시절,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서 1대3으로 패하고 이틀 후 훈련장에서 해임 통보를 받았다.

이렇듯 무리뉴 입장에서 봤을 땐 악연일 수밖에 없다. 물론 딱 그 경기들 때문에 해임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가 쌓이다 맞대결 후 터진 거지만 이 정도면 클롭과는 뭐가 있는 듯하다.

2020년 12월 잘 나가던 무리뉴의 2년 차 토트넘과 리버풀이 선두 경쟁을 하면서 맞대결을 펼쳤고 클롭이 2-1로 승리했다. 아이러니하게 이후로 무리뉴호 토트넘은 무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유로파권으로 추락했다. 이후 2021년 1월, 리버풀이 리그 5연속 무승을 거두고 홈 무패가 깨진 힘든 상황에서 다시 토트넘 홈에서 맞대결을 펼쳤는데 이 역시 클롭이 3-1로 승리했다. 이쯤 되면 현 무리뉴의 최대 천적이다.

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두 감독 사이가 딱히 나쁘거나 그렇진 않다. 리버풀의 인사이드 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로 만나면 포옹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사이.[77] 아무래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적보다 친구를 많이 만드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스타일이 한몫한 듯. 독설가 이미지인 무리뉴가 비판보다 칭찬을 많이 한 몇 안 되는 라이벌 감독 중 하나다.[78]

2021년까지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2승 4무 7패로 위르겐 클롭에게 열세다. 참고로 1승은 레알 마드리드 감독 시절이던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에서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거둔 2-0 승리고 다른 1승은 2017-18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리버풀을 상대로 올드 트래포드에서 기록한 2-1 승리다.

8.5. 안토니오 콘테

위 사진의 당시 상황은 이렇다. 첼시가 4:0으로 앞서자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무리뉴 감독이 경기가 끝난 후 1:0의 스코어에서 그러는 건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4:0이다. 이건 모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기자 회견에선 콘테가 무리뉴 감독과의 사이에 문제가 없다고 말해 그냥 전임 첼시 감독 간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만남에선 그렇게 곱게 끝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심판의 판정에 불만이 있어 항의하러 나오다가 하프라인 근처에서 마주쳤는데 무리뉴가 라인 밖으로 빠져나온 공을 콘테 쪽으로 차서 보낸 것. 그러나 성격이 불같고 지난 번 일로 무리뉴를 벼르고 있던 콘테는 건수를 잡자마자 엄청난 사자후를 뿜으며 무리뉴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당연히 깜짝 놀란 무리뉴는 황급히 맨유 쪽 벤치로 돌아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딱 잡혀 버렸다. 자신의 핀잔을 꾹 참고 넘어간 콘테를 만만히 보고 도발했다가 굴욕적인 장면만 찍혀버린 것. 이후 콘테는 기자 회견에서 “무리뉴는 원래부터 소인배였다.”라고 주장하며 맹비난을 늘어놨다.

이전에는 서로 관심도 없던 사이지만 무리뉴가 맨유로 가고 떠난 자리를 콘테가 받으면서 라이벌리가 생겼다. 본래도 얌전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두 감독이지만 귓속말 사건을 시작으로 제대로 불이 붙었고 이후에도 무리뉴 시즌 발언,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견제로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서로 우승 트로피가 절실한 가운데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인 2017-18 잉글랜드 FA컵 결승에서 만났고 콘테의 첼시가 1:0으로 승리했다.

2019년까지 통산 상대 전적은 무리뉴 기준 2승 1무 4패로 안토니오 콘테에게 열세다. 이후 무리뉴가 토트넘으로, 콘테가 인테르로 부임함에 따라 유럽 대항전이 아닌 이상 맞대결이 힘들어졌다.

그런데 크리스티안 에릭센인테르 이적 사가로 인해 두 감독이 이젠 인터뷰로 싸움이 났다. 사실 기자들의 농간도 있지만...감독들의 키배

무리뉴가 2021-22 시즌부터 AS 로마로 부임함에 따라 둘의 맞대결이 다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콘테의 사임 소식이 뜬금포로 터지면서 둘의 맞대결은 무산되고 말았다.(...)

콘테가 인테르를 떠나기 전, 한 인터뷰에서 콘테가 기자로 부터 무리뉴의 로마행을 듣자 "오 진짜?"라고 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후 "우리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며 그의 이탈리아행을 환영한다."는 식으로 훈훈한 멘트를 남기긴 했다.기사

그런데 2021년 11월 안토니오 콘테가 토트넘 홋스퍼 FC에 부임하면서 두 감독이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생길 줄 알았으나 토트넘이 기권을 선언해 몰수패했고 조별 리그 3위로 탈락하면서 맞대결은 또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8.6. 호르헤 발다노

호르헤 발다노와 무리뉴와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인 갈등을 넘어 많은 것을 의미했다. 둘의 갈등의 가장 핵심 원인 중 하나는 축구 철학의 차이였는데 무리뉴는 선수들의 견고한 수비력과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예리하고 재빠른 역습 축구를 구사하며 팀의 조직력을 강조하는 반면, 발다노는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화려한 공격 축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구 철학의 차이 때문에 발다노는 무리뉴의 선수 기용과 전술에 비판을 많이 했다. 결국 여기서 갈등의 골이 깊어져 둘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8.7. 라파엘 베니테스

무리뉴가 첼시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역시나 그들의 최종 목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었다. 그러나 무리뉴의 첼시는 두 번이나 4강에서 베니테즈의 리버풀에게 패했고 리그나 각종 컵 대회에서도 무리뉴는 베니테즈에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첼시 팬들은 베니테즈를 증오하기 시작했고 베니테즈가 로베르토 디 마테오의 경질 후 첼시 감독직에 부임하자 반대하는 여론이 상당했다.

이후 그들의 라이벌 관계는 무리뉴와 베니테즈 둘 다 EPL을 떠나고도 지속되었는데 무리뉴는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에 부임하고도 그를 계속 디스했다. 심지어 2009-10 시즌 무리뉴가 트레블을 이룬 시즌 이후 베니테즈가 다음 시즌에 부임하고 팀을 대차게 말아먹자 또다시 베니테즈를 디스하기도 했다. 그리곤 베니테즈의 부인이 뜬끔없이 레알 마드리드 부임 이후 인테르, 첼시,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을 돌면서 무리뉴가 난장판 쳐놓은 팀을 자신의 남편이 뒷정리를 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인터뷰하면서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79]

이후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며 맨유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다시 만났는데 경기마다 서로 디스는커녕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악연은 끝이 났다.

9. 가족

10. 이름 표기

José Mourinho라는 이름을 유럽 포르투갈어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주제 모리뉴'가 된다. 이름 부분의 경우 Jos'É'로 "제"에 강세가 들어가, 강세가 없는 o는 약모음 u로 소리가 변해 주제가 되고, Mourinho에 있는 ou는 포르투갈어에서 단모음 o로 읽으며, 이를 반영한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ㅗ로 표기하므로 모리뉴라고 해야 맞지만 한국에서는 '무리뉴'가 더 자주 쓰이는 편이다. 이름인 José는 /ʒuˈzɛ/로 발음되며, 포르투갈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ʒoˈzɛ/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지만, 포르투갈 사람은 무조건 /ʒuˈzɛ/로 발음한다.

축구 팬들이 부르는 이름 중에는 모리뇨, 모링요, 모링유, 모링뇨, 모링뉴, 무링뉴, 무링유, 무링요, 무링뇨, 무리뇨, 무리뉴, 모우린호[80]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이는 유럽 포르투갈어에 대한 무지와 축구계에서의 브라질 포르투갈어의 위상 그리고 브라질 지역별 포르투갈어의 다양성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조세 뭐뤼뇨'에 가깝게 불린다. 참고로 그의 고향 세투발에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제 마리우(Ze Mario)'라고 부른다고. 무리뉴는 이 호칭이 자신을 자신답게 느껴지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 축구 뉴비와 고인물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무링요라는 이름에 익숙한지의 여부다. 위에 길게 서술된 '무리뉴 vs 모리뉴'도 고인물에게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무리뉴가 2004년 포르투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첼시를 맡아 세계 축구계의 중심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그의 이름은 언론에 무리뉴와 무링요가 혼재돼 나타났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2004년과 2005년 2년간 검색되는 모든 기사의 59%가 무리뉴, 41%가 무링요로 표기되어 있으며 모리뉴라고 표시된 기사는 단 3건(0.3%)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중계에서 대부분의 해설자나 캐스터가 무링요 감독이라고 불렀고 대부분의 언중도 입에 착 감기는 발음인 무링요라고 불렀다. 무리뉴는 언론에만 등장하는 이름일 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리뉴라고 쓰는 사용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차차 표기의 대세가 무리뉴로 옮겨가면서 무링요라는 언론 표기는 거의 사라져갔고 무링요라 발음하던 중계진도 대부분 무리뉴라고 고쳐서 발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리뉴의 진정한 이름은 무링요라고 생각하며 무링요를 그리워하는 올드비가 많다.

2006 독일 월드컵 이전까지는 외국 축구 선수를 뭐라고 부르든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으나[82] 2006 월드컵을 계기로 외국 축구 선수의 발음을 정확히 하자는 언론사들의 반성을 계기로 무리뉴처럼 -요로 표기하던 nho로 끝나는 브라질, 포르투갈인들의 이름도 -뉴로 표기하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호나우딩요, 무링요, 카르발요, 호빙요.[83]

"예전에도 무링요보다는 무리뉴라고 표기한 기사가 많았네요."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무리뉴라고 표기된 초창기 기사의 상당수는 José를 스페인어식으로 표기한 '호세 무리뉴'로 표기되어 있다. 반면 무링요라고 표기된 기사의 대부분은 '조세 무링요'라고 표기되어 있다.

무링요라고 불렸던 과거 때문에 간혹 콜롬비아인 수비수 제이손 무리요하고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11. 여담

파일:external/www.telegraph.co.uk/JOSE2.jpg
* 첼시 시절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검은 코트가 꼽히는데 경기장에 항상 이 코트만을 입고 나왔던지라 당시 화제였다. 코트가 한 벌밖에 없다느니 승리를 부르는 행운의 코트라느니 등. 이후 이 코트에 대한 질문에 "그냥 이 코트가 마음에 들 뿐이다. 부드럽고 따뜻하니까. 이거 캐시미어다."라고 대답했다.

11.1. 악성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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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도 리스본에서 가까운 항구 도시다.[2] 현재 체중.[3] 상기한 이력 때문에 그를 비선수 출신 감독으로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4] 이 덕에 스포츠 과학, 심리학에 능통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람을 대한다. 통역관 출신인 만큼 외국어에도 장점이 있다.[5] 프리메이라 리가, 프리미어 리그, 세리에 A, 라리가[6] 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7] 리그, FA컵, 리그컵, 슈퍼컵 등 각 리그 내에서 우승 가능한 모든 타이틀을 획득했다.[8] 챔피언스 리그, 유로파 리그,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9] 다만 이 별명에 대해 2021-22 시즌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결승전을 앞둔 인터뷰에서는 '그건 너무 옛날 이야기'라고 말해서 2000년대 전성기에 다소 거만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면을 보였다.[10] 이때 실제로 여학생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다고 한다.[11] 무리뉴 앞에 있는 선수는 바르셀로나 시절의 루이스 피구. 펩 옆에 있는 선수는 전 바르셀로나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12] 공교롭게도 이 세 사람 모두 FIFA 올해의 감독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장이 된다.[13] Baltemar Brito #[14] José Morais #[15] Ricardo Formosinho #[16] João Sacramento #[17] Salvatore Foti #[18] Rui Faria #[19] André Villas-Boas #[20] Silvino Louro #[21] Nuno Santos # 누누 산투 감독이랑 헷갈리지 말자.[22] Giovanni Cerra #[23] Carlos Lalín #[24] Ricardo Formosinho #[25] Giovanni Cerra #[26] André Villas-Boas #[27] Ricardo Formosinho #[28] Ricardo Formosinho #[29] 2015년 포르투갈 축구 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시상식에서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축구 선수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30] 리그감독협회[31] 국제스포츠기자협회[32] Grand Officer of the Order of Prince Henry[33] 이후 펩 과르디올라도 라리가, (무리뉴와는 달리 세리에 A는 아니지만) 분데스리가,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면서 3대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쥔 감독이 됐다. 또한 카를로 안첼로티도 당시에는 세리에 A, 프리미어 리그만 있었지만 이후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면서 3대 리그 우승 감독이 되었고 2021-22 시즌에는 라리가마저 우승하면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4대 리그 우승 감독이 됐다. 심지어 안첼로티는 리그앙도 우승했기 때문에 UEFA 계수 상위 5대 리그를 모두 우승해 본 유일한 감독이다.[34] 그런데 2017-18 시즌 맨유가 2위를 확정한 후 1위를 놓쳤다면 2위가 최고의 결과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내로남불이라며 까이고 있다.[35]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적 시장에 거액을 쏟아붓는 첼시에 돈으론 성공을 살 수 없다고 비판했지만 둘의 사이는 엄청 좋다.[36] UCL에서 인테르의 감독으로서 첼시에게 승리한 후.[37] 실제로 2019-20 시즌 토트넘에서 손흥민탕기 은돔벨레에 대한 무리뉴의 평가는 극과 극인데 평소 팀에 헌신적인 손흥민이 레드카드를 먹고 퇴장 했을 때 무리뉴는 그를 옹호했지만 은돔벨레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팀에 방해가 되자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38] 참고로 이 말은 야약스와의 유로파 리그 결승 후 아약스 감독인 피터 보츠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롱볼 게임 때문에 우리는 오늘 우리의 게임을 하지 못했다. 양측 서로 기회가 별로 없는 지루한 게임이었다"란 말을 반박한 것이다.[39] 출처: 아마존 토트넘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 1화에서.[40] 2015년 첼시 감독이었을 당시 졸전을 거듭하는 와중에 리버풀에게 홈에서 3:1 패배를 당한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 특유의 억양과 맞물려 지금까지도 해외에서 무리뉴를 깔 때 등장하는 어록.[41] 인테르 시절이었던 2009년 8월 중국에서 열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경기 후 (라치오에게 2-1 패배) 인터뷰에서 중국측이 중국 선수에 대한 평을 원했다거나, 무리뉴를 호색한으로 몰고갔다, 중국까지 와서 경기를 하는 걸 보니 세리에A에 돈이 없는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무리뉴를 도발했다는 루머가 한때 나돌았으나 사실과 다르다. 당시 인터뷰를 실은 기사(아카이브로 대체)가 존재하지만 저런 내용은 없다. 다만 중국 축구가 쓰레기라는 말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42] 앞서 취소선 처리된 위 인용문이 나온 것으로 날조되었던 인터뷰에서 실제로 한 말이다. 중국 선수, 중국 여자 이야기는 날조지만 중국 기자들이 개념없는 질문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앞서 질문 두 개가 있었는데, 원문 기사에 의하면 첫 번째 질문은 이제 막 계약한 사무엘 에투의 풀타임 투입은 누가 억지로 시킨거 아니냐, 두 번째 질문은 라치오도 당신이 불평했던 똑같은 폭염이 흐르는 경기장에서 경기했는데 왜 걔들은 (인테르를) 이겼는가 하는 도발성 질문들이었다.[43] 이 말 자체는 전형적인 무리뉴의 독설이고 2006-07 시즌 무리뉴가 호날두에게 사과하면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자 호날두의 문제를 매우 잘 나타냈다며 재평가받고 있다. 반대로 후술할 손흥민에 대해선 월드 클래스급이라며 언사도 해 줬다.[44] 토트넘 감독 부임 전에 남긴 평가다.[45] 호날두, 드록바, 즐라탄 등 이제까지 함께해 온 위대한 스트라이커와 비교해 달라는 기자에 질문에 대한 답변.[46]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에 얼마나 다가섰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풀이하자면 이미 월드 클래스 수준에 도달했지만 언론의 주목도가 낮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도 "세상은 신중하고 조용하고 겸손하면서도 무난한 삶을 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손흥민이 덜 주목받는 것에 아쉬운 마음을 내보였다.[47] 아마존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에서 장난치며 한 말이다.[48] 당시 김민재를 낮게 평가한 토트넘 보드진에 대한 비꼼의 의미가 담겨 있다.[49] 만약에 토트넘 경영진이 무리뉴의 말을 믿고 김민재를 영입했으면 지금 토트넘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50] AS 로마 감독으로서 각각 나폴리와의 경기를 앞두고 '나폴리에도 디발라와 같은 핵심 선수가 있다면 누구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한 코멘트와 나폴리와의 경기 후 디발라 관련 질문을 받고 한 코멘트다.[51] 이후 펩 과르디올라도 라리가, (무리뉴와는 달리 세리에 A는 아니지만) 분데스리가,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면서 3대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쥔 감독이 됐다. 또한 카를로 안첼로티도 당시에는 세리에 A, 프리미어 리그만 있었지만 이후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면서 3대 리그 우승 감독이 되었고 2021-22 시즌에는 라리가마저 우승하면서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4대 리그 우승 감독이 됐다. 심지어 안첼로티는 리그앙도 우승했기 때문에 UEFA 계수 상위 5대 리그를 모두 우승해 본 유일한 감독이다.[52] 그런데 2017-18 시즌 맨유가 2위를 확정한 후 1위를 놓쳤다면 2위가 최고의 결과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내로남불이라며 까이고 있다.[53]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적 시장에 거액을 쏟아붓는 첼시에 돈으론 성공을 살 수 없다고 비판했지만 둘의 사이는 엄청 좋다.[54] UCL에서 인테르의 감독으로서 첼시에게 승리한 후.[55] 실제로 2019-20 시즌 토트넘에서 손흥민탕기 은돔벨레에 대한 무리뉴의 평가는 극과 극인데 평소 팀에 헌신적인 손흥민이 레드카드를 먹고 퇴장 했을 때 무리뉴는 그를 옹호했지만 은돔벨레가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팀에 방해가 되자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56] 참고로 이 말은 야약스와의 유로파 리그 결승 후 아약스 감독인 피터 보츠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롱볼 게임 때문에 우리는 오늘 우리의 게임을 하지 못했다. 양측 서로 기회가 별로 없는 지루한 게임이었다"란 말을 반박한 것이다.[57] 출처: 아마존 토트넘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 1화에서.[58] 2015년 첼시 감독이었을 당시 졸전을 거듭하는 와중에 리버풀에게 홈에서 3:1 패배를 당한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 특유의 억양과 맞물려 지금까지도 해외에서 무리뉴를 깔 때 등장하는 어록.[59] 인테르 시절이었던 2009년 8월 중국에서 열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경기 후 (라치오에게 2-1 패배) 인터뷰에서 중국측이 중국 선수에 대한 평을 원했다거나, 무리뉴를 호색한으로 몰고갔다, 중국까지 와서 경기를 하는 걸 보니 세리에A에 돈이 없는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무리뉴를 도발했다는 루머가 한때 나돌았으나 사실과 다르다. 당시 인터뷰를 실은 기사(아카이브로 대체)가 존재하지만 저런 내용은 없다. 다만 중국 축구가 쓰레기라는 말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60] 앞서 취소선 처리된 위 인용문이 나온 것으로 날조되었던 인터뷰에서 실제로 한 말이다. 중국 선수, 중국 여자 이야기는 날조지만 중국 기자들이 개념없는 질문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앞서 질문 두 개가 있었는데, 원문 기사에 의하면 첫 번째 질문은 이제 막 계약한 사무엘 에투의 풀타임 투입은 누가 억지로 시킨거 아니냐, 두 번째 질문은 라치오도 당신이 불평했던 똑같은 폭염이 흐르는 경기장에서 경기했는데 왜 걔들은 (인테르를) 이겼는가 하는 도발성 질문들이었다.[61] 이 말 자체는 전형적인 무리뉴의 독설이고 2006-07 시즌 무리뉴가 호날두에게 사과하면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자 호날두의 문제를 매우 잘 나타냈다며 재평가받고 있다. 반대로 후술할 손흥민에 대해선 월드 클래스급이라며 언사도 해 줬다.[62] 토트넘 감독 부임 전에 남긴 평가다.[63] 호날두, 드록바, 즐라탄 등 이제까지 함께해 온 위대한 스트라이커와 비교해 달라는 기자에 질문에 대한 답변.[64]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에 얼마나 다가섰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풀이하자면 이미 월드 클래스 수준에 도달했지만 언론의 주목도가 낮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도 "세상은 신중하고 조용하고 겸손하면서도 무난한 삶을 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손흥민이 덜 주목받는 것에 아쉬운 마음을 내보였다.[65] 아마존 다큐멘터리 'All or Nothing'에서 장난치며 한 말이다.[66] 당시 김민재를 낮게 평가한 토트넘 보드진에 대한 비꼼의 의미가 담겨 있다.[67] 만약에 토트넘 경영진이 무리뉴의 말을 믿고 김민재를 영입했으면 지금 토트넘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68] AS 로마 감독으로서 각각 나폴리와의 경기를 앞두고 '나폴리에도 디발라와 같은 핵심 선수가 있다면 누구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한 코멘트와 나폴리와의 경기 후 디발라 관련 질문을 받고 한 코멘트다.[69] 인테르 시절 챔피언스 리그 4강전이나 첼시로 복귀한 후에 뮌헨과의 슈퍼컵 경기에서 만난 적도 있다.[70] 펩 과르디올라 부임 후 레알은 바르셀로나와 10번 붙어서 1번 이겼다. 당연히 레알 수뇌부의 목표는 전성기에 오른 바르셀로나를 막는 것이었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었는데 단장 겸 디렉터 호르헤 발다노는 공격 축구를, 감독 무리뉴는 수비 축구를 주장했다. 즉, 이 경기는 지금 라인을 끌어올려 바르셀로나와 정면으로 붙으면 이 꼴이 난다를 보드진에게 똑똑히 보여준 시위의 성격이 짙다. 실제로 5-0 패배란 대참사를 똑똑히 본 후 레알 수뇌부는 바로 발다노를 잘라버렸다. 이후엔 '버스를 세우든, 늪축구를 하든 어떻게든 바르셀로나로부터 리그 우승컵을 탈환하라'라며 무리뉴의 손을 들어준다. 무리뉴는 부임 2년 차에 라리가 우승컵을 가져오며 이 요구를 충족해줬다.[71] 정말 아무것도 못 했는데 관련 지표를 보면 얼마나 일방적인 경기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72] 물론 이 경기는 맨시티가 얻은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지도 못하고 자멸한 것에 가깝긴 하나 수비진의 1차 덕목인 '수비'는 잘한 편이다. 양쪽 풀백인 자펫 탕강가세르주 오리에 둘 다 펩의 기본 전술인 측면 공격을 잘 방어해 냈다. 여기에 하프타임 시 무리뉴가 토트넘 선수들에게 "진첸코, 스털링 등 옐로우 카드를 받은 선수들을 노려라"는 지시를 내렸고 역습 상황에서 해리 윙크스를 밀친 진첸코가 그대로 추가 경고를 받아 레드카드로 퇴장 당했다. 이후 연속으로 득점.[73] 다만 삭발은 미용실에서 졸다가 미용사가 한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밀어 버린 거라고 한다.[74] 선수의 개인 기량이 월등히 좋아야 제대로 굴러갈 정도로 전술 수행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75] 실제로는 불화설 해명이다.[76] 위의 짤 뒷부분에는 벵거와 퍼거슨의 사진 촬영을 위해 무리뉴가 자리를 비켜 줬으나 벵거가 같이 찍자며 무리뉴를 다시 불러서 세 명이서 함께 촬영을 하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77] 심지어 경기 중에도 하프라인 근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곤 한다.[78] 안필드 기적에서 리버풀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만들어 내자 '나는 꼭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야겠다. 위르겐 클롭.' 라며 극찬을 하기도 했다.[79]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틀린 말이다. 애초에 베니테즈가 무리뉴 이후 부임한 팀을 살펴 보자면 인테르, 첼시, 레알인데 인테르에서는 대차게 망했고 첼시에서는 베니테즈는 무리뉴가 떠난 지가 5년이 넘게 지난 후에 부임했다. 레알에서도 무리뉴의 냄새는 없어진 지 오래였어서 마찬가지.[80] 로마자 표기를 그대로 읽으면 저 발음이 되는데 주로 한국에서 무리뉴에 대한 멸칭으로 쓰인다. 주로 '무리뉴는 실종됐고 지금 보고있는 인물은 모우린호다'라는 드립으로 활용된다.[81] 이쪽은 언론에서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효도르'라는 표기는 대단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성 부분의 표기가 어렵다.[82] 한국어 해설이 처음 도입된 피파 2001~2002를 해 보면 기그스, 리발도, 로베르또 까를로스, 케안등등 지금 들어 보면 웃음이 나오는 해설로 가득하다.[83] 이외에도 당시에는 셰브첸코가 일반적이었던 표기였으나 솁첸코로, 드로그바 → 드록바, 콜러 → 콜레르, 키웰 → 큐얼 등 많은 선수의 이름에 정정이 있었다.[84] 특이하게도 2019-20 시즌은 코로나19 사태로 리그가 중단됐다가 여름에 재개된 후 쿨링 브레이크와 중간 방역 작업으로 무리뉴가 원하던 작전 타임과 유사한 상황이 만들어졌고 실제로 리그 재개 이후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본래 선수 휴식을 위한 쿨링 브레이크가 대부분의 구단이 작전 시간으로 사용한다고 비판이 나오자 결국 차기 시즌부터는 다시 작용하지 않았다.[85] 실제 등번호는 11번. 발다노와 10번 마라도나, 7번 부루차가는 당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 대표팀의 삼각편대였다.[86] 다만 크레스포와 사이가 나쁘거나 한 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크레스포는 무리뉴에 대해 긍정적인 인터뷰를 많이 했고 무리뉴도 레알 재직 시절 크레스포를 초청하여 경기 전 훈련을 함께 참관할 정도. 기사[87] 다만 벵거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88] EPL 역대 최고 승점 기록(95점), 한 시즌 최소 실점 기록(15실점), 최다 홈 무패 행진(77경기), 최연소 챔스 100경기 달성(49세)[89] 참고로 포르투갈에서 신장 176cm는 평균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평균 신장이 작은 나라에 속한다.[90] 다만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고 크리스마스 때 가족과 함께하는 사진으로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물론 선수들은 자유다.[91] 딱 한 가지 비스무리하게 맞아들어간 것이 한국-독일 경기였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봤을 때는 독일이 이기겠지만 한국이 독일을 이겨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92] 이후에 무리뉴의 수석 코치로 오랫동안 일했던 주제 모라이스 감독 또한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으로 재임했던 시절에 했던 각종 선행과 미담이 밝혀지며 '모버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93] 박지성은 뛰어난 축구지능과 전술 이해도를 가지고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으로 필드를 누비며 팀을 돕는데 이는 무리뉴의 전술에서 핵심이 될 수 있는 유형이다. 실제로 박지성이 맨유 이적을 타진하고 있을 때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잔류를 요청하면서 다음 시즌에 자신과 커넥션이 있는 첼시로 보내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첼시로 갔다면 무리뉴의 밑에서 뛰었을 것이다.[94] 무리뉴 성격상 공손하게 악수할 성격이 아니니 그 짤이 차범근 클라스라는 제목으로 유행을 타기도 했다.[95] 그런데 재밌게도 무리뉴가 챔스 우승으로 이끌고 떠난 FC 포르투인테르 두 구단 모두 슈퍼컵에서 유로파 리그 우승 구단에게 패배했다. 포르투는 2004년 발렌시아에게 1:2로, 인테르는 2010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0:2로 패배했다.[96] 2003년에는 AC 밀란에게 0:1로, 2017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1:2로 패배.[97] 요크셔 테리어 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