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7:57:05

산가요록

파일:산가요록.jpg

파일:산가요록2.png
사진은 닭고기 요리인 포계에 대한 기록이다.

1. 개요2. 농서 내용3. 요리서 내용4. 관련 영상

1. 개요

山家要錄. 조선 초기, 1450년대(세종) 왕실 어의 전순의(全循義)[1]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현존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요리책. 현재 서울의 (사)우리문화가꾸기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대개 가장 오래된 요리책이라 꼽히는 수운잡방보다 50년 ~ 100여년 더 빠른 것으로 추정되지만 하필 앞 부분이 낙장되어 버리는 바람에 저술연대가 100% 명확하지 않아 저술자, 저술연대, 출처가 분명한 수운잡방보다는 대체로 중요도와 관심도가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다만 책 말미에 지은이 전순의와 베낀이 최유준이 기록되어 있고, 책의 내용 분석을 통해서도 적어도 세조 조 1459년에 편찬되었음이 거의 확실시된다. 같은 저자가 세조의 명을 받아 1460년에 저술한 식료찬요와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동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농업 부문은 작물, 원예, 축산, 양잠, 식품 등의 내용을 총망라하였고, 요리 부문은 229가지의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15세기 조선 초의 식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으며, 책에 수록된 온실 설계법은 서양의 온실보다 약 170년 정도 앞서는 것이다.[2]

2. 농서 내용

파일:산가요록3.jpg
파일:산가요록5.jpg
파일:산가요록4.jpg 파일:산가요록6.jpg
산가요록에 기록되어 있는 1450년대 한국의 온실.

한 부분의 낙장도 없이 무사한 조리서 부문과는 달리 농서 부문은 최초 앞부분이 닳아 사라진 상태다.

일단 농상집요를 많이 참고하였지만 다른 부분이 많다. 책 구성이 난잡한 농상집요와는 달리 작물 형식에 따라 타당성있게 분류하였고, 농상집요에는 없는 양잠 등의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또한 농상집요가 중국 농서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은데 이 부분은 제거하거나 한국의 풍토에 맞게 없는 부분을 추가했다. 예컨대 양채(養菜) 부분은 중국의 두시와 맥시 제조법을 지우고 우리 나라 고유 시(豉) 제법인 전시(全豉)를 넣었다. 그리고 농상집요에는 없는 길일(吉日)을 점치는 등의 미신들도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진 고유 민간 신앙들을 모두 넣은 것이다.

3. 요리서 내용

을 만드는 법이 66가지, 장류를 만드는 법은 19가지, 식초는 17가지, 김치는 37가지, 과일 및 채소 요리 17가지, 어육 요리 10가지, 6가지, 10가지, 국수 6가지, 만두 2가지, 수제비 1가지, 과자 10가지, 좌반 4가지, 식해 7가지, 두부 1가지, 탕류 7가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계량이 기록되어 있는데 두 홉(合)이 한 잔(盞)이 되고, 두 잔이 한 작(爵)이 되고, 두 되(升)가 한 대야(鐥)가 되고, 세 대야(鐥)가 한 병(甁)이 되고, 다섯 대야(鐥)가 한 동이(東海)가 된다고 기록했다. 한 동이는 한 말(一斗)과 같은 분량이고, 한 병(甁)은 6되(升) 정도다.

특이한 점은 산가요록보다 후에 기록된 조리서에서는 곡물을 첨가한 김치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파김치 조리법이라도 쌀밥이나 조밥이 들어가는 산가요록과는 달리 수운잡방부터는 소금과 파만 가지고 담는 오늘날의 김치와 비슷하게 변형된다. 먼 과거에는 곡물을 넣었다는 사실과 함께 산가요록이 수운잡방보다 1세기 정도는 이전의 책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근거다.

고기 요리는 아직까지 한국식과 중국식, 몽골식 등이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이전 고려 왕조 500여 년 동안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육식 문화가 많이 쇠퇴되어서 한반도에 있는 고유한 고기 조리법들은 상당수 소실되었기 때문이다.[3] 고려도경 같은 책을 보면 고려 왕실의 높으신 분들도 동물을 몽둥이로 그냥 처잡아서 내장이 터져 똥내가 나고 피도 안 뺀 고기를 그냥 대충 구워서 대접하고 먹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고기를 어느 정도 먹었다는 반론도 있긴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정형화된 조리법 없이 대충 구워먹었던 것일 확률이 있다. 그러다 조선이 들어서고 산가요록이 집필되는 사이에 불교의 영향력이 축소되며 다시금 고기 조리가 활발해지게 되는데, 옛 고기 조리법들이 거진 다 소실된지라 이때까지는 몽골풍의 조리법을 자주 사용했다. 이후 후대의 요리책으로 갈수록 다시 한반도만의 고유한 조리법들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외 기타 등등 많은 음식들의 상세한 조리법들이 기록되어 있다.

4. 관련 영상

술익는집이 산가요록 레시피에 따라 만들어 본 香醪(막걸리)


[1] 의방유취 365권의 편찬에 참여했으며,《침구택일편집》(鍼灸擇日編集) 김의손과 공저, 식료찬요 등을 지었다.[2] 온실이 아니라 온실설계법임을 주의하자. 온실재배 자체는 이미 이천여년전 고대 중국이나 로마에서 행해졌다.[3] 이때 아예 일본처럼 고유의 고기 조리법이 사라졌다는 설이 퍼져있는데, 산가요록 이전의 요리법은 남아있는 기록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추정의 영역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일본과는 다르게 고려는 고기요리 자체를 법적으로 금한 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