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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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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스티브 승준 유
Steve Sueng Jun Yoo[1]
EUNG이 아닌 SUENG으로 표기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다만, 해외 칼럼이나 뉴스와 같은 곳에는 Steve Seung Jun Yoo로 표기하는 곳이 많고, 한국에서 활동했을 당시에도 2집 앨범 커버에 Sueng이라고 표기한 것을 빼면 거의 대부분 Seung이라고 표기를 했다. 현대 로마자 표기법상 Yu Seung-jun이 맞기도 하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서 부호를 생략한 Sung으로 부르는 사람도 일부 존재한다.]
파일:스티브 유 2.jpg
한국명 유승준 (劉承埈)
출생 1976년 12월 15일 ([age(1976-12-15)]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잠실동[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1976~2002)

[[미국|]][[틀:국기|]][[틀:국기|]](2002~)
본관 강릉 유씨 (江陵 劉氏)
신체 176cm, 79kg[3], A형
가족 아버지 유정대(1946년생)[4], 어머니
형 유승환(1975년생)[5]
배우자 Christine Oh(오유선)(1976년생, 2004년 결혼)[6]
아들 Ryley Jihyo Yoo(유지효)(2006년생)[A]
아들 Rowan Yoo(유지안)(2010년생)[A]
딸 Addison Yoo(유주안)(2018년생)[A][B]
딸 Leila Yoo(유이안)(2018년생)[A][B]
학력 서울문정국민학교 (졸업)
오주중학교 (전학)
Tetzlaff Middle School (졸업)
El Camino Real Charter High School (졸업)
Cerritos College (경영학 / 중퇴)
계원조형예술대학 멀티미디어학부 (정보통신과 / 전문학사)
한세대학교 음악학부 (음악학 / 수료)
베데스다 대학교 (신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신사도 운동)[13]
병역 공익근무요원(現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국적포기로 인한 병역의무 상실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포기(추측)
이민 목적의 국적포기(추측)
소속사 한국 활동 시절: 백산미디어
SNJ2 엔터테인먼트
JC그룹 인터내셔널
현재: YSJ미디어
데뷔 1997년 1집 <West Side>
서명 링크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4]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15]

1. 개요2. 활동 내역3. 생애
3.1. 병역기피 이전 위상3.2. 평가
4.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5. 음반 목록6. 인맥7. 여담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한국계 미국인 가수, 배우, 유튜버.

2. 활동 내역

<rowcolor=#000000> 1998년 한국갤럽 '좋아하는 남자 가수'
1위
현철
2위
조용필
3위
유승준
4위
나훈아
5위
신승훈
6위
설운도
7위
H.O.T.
8위
임창정
9위
김민종
10위
김건모
{{{#!folding [ 펼치기ᆞ접기 ]
파일:1998한국갤럽남자가수선호도.png
}}} ||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으로 활동을 했으며, 당시에 가수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잘생긴 외모와 몸짱 유행을 일으켰고, 재미교포 스타일, 화려한 춤실력과 무대 장악력, 뛰어난 가창력[16], 입담과 예능감까지 갖춰[17] 청소년에게는 우상이자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톱스타였다. 한국에서 유승준이 전국민적인 역적이 되어버린 지금조차도 멀티 엔터테이너이자 댄스 가수로서 타고난 재능면에서 대다수의 현역 댄스 가수들이나 K-POP 아이돌들이 유승준에 비하기 어렵다고 말을 할 정도이다.

부산광역시BEXCO에서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 조추첨식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가수 중 한 명이었다.[18] 또한 사춘기 시절 방황하였던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대한민국 공익 캠페인에 등장하여 '아름다운 청년 유승준[19]'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흔한 안티도 거의 없었던, 전국민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엔터테이너였다.

유승준은 2002년, 불현듯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때부터 한국인 유승준이 아닌 미국인 '스티브 유'로 칭하기 시작했으며, 공익요원(현 사회복무요원) 소집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병역기피자라는 인식이 퍼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한국에서 공분을 사게 되고, 후에 대한민국 법무부는 그를 입국금지 조치를 했다. 당시 그의 미국 시민권 취득은 연예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으며, 훗날 대한민국의 병역법 개정에도 영향을 줄 정도였다.[20] 또한 이전까지 남자 연예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면제나 공익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에는 순순히 군 입대를 하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병역기피 사건 이후로는 그가 불렀던 곡들은 물론이고 방송 출연 자료, 심지어 이름 석자 조차도 뉴스, 신문 사회면이 아닌 이상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그의 노래들은 TV, 라디오 등 방송에서 금지곡 수준으로 배척되었으며 현재도 지상파 방송에서 그의 노래나 그의 방송 출연 자료를 담은 자료화면 등은 그에 대한 뉴스 등이 아닌 이상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1990년대 말 연예계를 흔들었던 최정상급 가수였음에도 토토가와 같은 과거를 추억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때문에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은 굳이 검색해보지 않는 이상 그의 존재를 모르거나 학교 혹은 가정에서 군대 안 간 연예인이라고 교사, 부모 세대들에게 가끔씩 언급되기도 한다.

그는 명예 회복을 위해 여론전과 법적 대응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2019년 대법원 최종 승소를 하기도 했으나, 위 판결은 처분‘절차’의 위법을 이유로 한 판결이므로 적법한 절차를 갖춰 다시 사증발급거부처분을 하더라도 위 판결의 기속력에 반하지 않기 때문에 입국이 허용될 가능성은 낮다. 2020년에는 국회 국방위에서 유승준의 입국에 대한 내용이 다시 언급되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으나 여론은 마치 엊그제 일인 양 싸늘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유승준/생애/병역기피 이후에 있다.

3.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승준/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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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병역기피 이전 위상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수로 활동하여 한때는 '댄싱 머신',[21] '아름다운 청년', '스타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남자' 등으로 불리면서 세기말을 풍미했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솔로 아이돌 가수이자 만능 춤꾼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기들로 CF스타로 불리기도 했다.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의 돌풍으로 모두 팀단위 활동을 하는 와중에, 남자 솔로 아이돌 댄스 가수라는 핸디캡을 가졌지만 출중한 댄스와 라이브실력으로 단연 당시 한국 연예계에서 1류 가수를 논하는데 항상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독보적인 입지에 오르게 된다. 지금은 유승준이 병역기피 사건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너무 많은데도 "그래도 그 놈이 재능만큼은 진짜배기였고 춤이랑 노래는 기깔나게 잘하던 놈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 다 한거다.

앨범(음원)곡을 보면 West Side(1집 수록곡)를 제외하면 2옥타브 후반 ~ 3옥타브 초반대#이나 그는 타고난 미성으로 댄스가수라는 게 무색하게 "찾길 바래", "마지막 여행", "가위" 등 고난도 곡들을 많이 불렀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걸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에 2002년 1월, 병역기피 사건이 터지면서 국내에서의 이미지가 돌이킬 수 없이 추락하였으며, 곧이어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스티브 유가 저지른 사건이 출입국 관리법 제11조 1항 3호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염려가 있다는 내용에 근거하여 입국금지 처분을 내렸다.

그 후 2002년 2월 인천국제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간 뒤, 이듬해에 예비 장인의 조문 때문에 사흘 간 일시적으로 입국한 건을 제외하면 고국인 한국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한국에서 쫓겨난 이후 연예계 병역기피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연예계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흑역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3.2. 평가

"10대들에게 유승준은 가공할 폭발력을 가진 '핵폭탄'이다. 10대 여성 팬들이 그에게 보내는 환호는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의 그것과는 다르다. 반듯한 이목구비, 활력이 넘치는 춤, 예의 바른 말솜씨까지 바람직한 신세대 남성상의 이미지를 고추 갖췄다. 그래서인지 20대~3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그는 '연하의 남성상'으로 꼽힌다.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소녀팬들이 구름같이 몰려든다."
1998년 5월, <경향신문> #
파일:rkdnl.png

그의 활동기 5년간 지상파 1위만 45관왕을 달성했으며 케이블의 KMTV 성적까지 합산하면 무려 56개 이상의 트로피를 차지할 정도의 엄청난 화력을 지닌 가수였다. 이 기록은 역대 솔로 댄스 가수 중 최다 1위 기록이며 동시기 전성기를 보낸 걸그룹 및 솔로 가수들을 압도하는 성적이다. 또한 발라드 가수와 다르게 당시 청소년의 유행을 선도하는 유일한 솔로 가수라는 희소성을 인정받으며 누구도 대체 불가능한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실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 그 이상의 평가를 받는 분위기였다.

가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1999년도 음악방송 성적을 살펴보면 3집 타이틀곡 열정14관왕을 달성해 그해 발표된 곡 중 음악방송 최다 1위 기록을 세웠으며 1997~1999년에 활동하던 그룹과 솔로 가수들이 경신해놓은 5주 연속 최강자 타이틀을 깨고 뮤직뱅크 통산 6주 연속 MVP 타이틀을 차지해 단일곡으로는 유일무이한 신기록을 달성했다.

3집 앨범은 조성모, H.O.T.에 이어 그해 음반 83만 장을 판매하여 연간 순위 3위에 랭크될 정도로 높은 기록을 세웠는데 특히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이나 대중적 장르의 발라드 가수에 비해 음반에서 불리한 1인 댄스 가수의 태생적 한계를 생각해 본다면 더욱 높이 평가해야 할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4집 앨범 '비전'을 기점으로 그의 음반 성적이 하락세에 진입하게 되면서 팬덤 이탈 현상이 일어났고 가수로서의 입지도 점진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가 건재하던 시절에도 H.O.T.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최고 전성기를 보내던 시기였다. H.O.T.는 당시에는 영세 기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를 한국 최고의 기획사로 키워낸 그룹으로 넘사벽 규모의 팬덤을 거느리고 있었다.

유승준의 등장 이전부터 이미 대중가요계는 아이돌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었고, 이후 발라드 황태자 조성모가 음반 시장을 휩쓸면서 가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상기한 두 가수 모두 밀리언셀러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달성한 반면 유승준은 1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기록이 없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상당히 명과 암이 갈리는 편으로 사회와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트렌디함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고평가를 받지만 음반과 수상 커리어를 중시하는 이들에겐 저평가를 받는 편이다.

또한 가요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점도 후대에 저평가 요인으로 여겨지며 그의 가수로서의 위상을 놓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승준 본인도 최근 유튜브를 통해 상반기 가수로서 아무리 큰 임팩트를 남겼더라도 결국 하반기 강자들에게 묻힐 수밖에 없는 시기적 불리함이 존재했다고 어필했으며 동시기 활동했던 핑클이 음반과 팬덤 모두 우위였던 본인을 제치고 대상을 차지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며 공정성 시비와 가요 대상자 선정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유승준의 수상 내역이 저조한 또 다른 이유로는 비자 문제가 거론되는데 당시 미국 이민법상 미국에 6개월 이상 거주를 해야 영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로 상반기에는 국내 활동을 하고 하반기에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터라 1997년과 1998년 연말 시상식에는 단 한 번도 참석을 하지 못했다. 특히 1998년에 발매한 2집 타이틀곡 나나나는 그의 최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었고, 그 해 대중 지표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다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던 해였다. 그러나 1998년은 압도적 팬덤을 자랑하던 H.O.T 가 가요 대상의 강력한 후보였기 때문에 유승준이 연말 시상식에 참석했더라도 가요 대상을 차지했을 거라는 의견에는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유승준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점을 강조하지만, 그런 측면에서는 조성모도 비슷하다. 10대 가수 가요제에서의 30대 이상이 뽑은 가수 명단에 들어간 횟수도 조성모가 앞서고, 위의 설문조사도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였다.

하지만 이는 유승준이 고평가 받는 이유를 잘 파악하지 못한 분석이다. 애초부터 유승준이 대외적으로 높게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원탑이었기 때문에 고평가를 받았던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보적으로 원탑을 찍은 분야는 없었더라도, 가요계와 예능계를 넘나들며 연예계 전반에서 두루두루 인정을 받고 전 연령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톱스타의 이미지를 쌓았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를 받는 것이다.

실제로 음반 관련 지표들은 그 당시 대세였던 가수들에게 밀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가수들 뒤에는 항상 2위 포지션으로 자리잡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즉, "독보적인 원탑이었다는 것이 과장되었다는 점도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톱스타 반열의 가수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표현도 잘못되었다."라고 할 수 있다.[22]

파일:hmfgipotrbm.png

음반이 아니라 인기도 측면에서 봐도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김국진의 국민투표」에서 조사한 국민 지지도 가수 1위, <한국대학신문>에서 조사한 1999년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 1998년 한국갤럽 인기도 조사에서도 가수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리스피아르 조사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설문조사 자료의 순위에서도 H.O.T., 조성모, 유승준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유승준은 헬게이트급으로 경쟁이 치열했던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에서도 솔로 댄스 가수라는 약한 입지로 당당하게 혼자 경쟁을 하면서도 엎치락뒤치락하던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 정말 대단했기 때문에 절대로 저평가되어야 할 인물이 아니다. #

특히 1990년대 중후반에 국내 PC 시장이 최정점을 이루던 시기에는 삼성전자가 메이저 PC 제조업체로서 업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당시 최고 스타였던 유승준을 전속모델로 기용하여 3회 연속 출연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시만 해도 고급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해 톱배우들이나 출연해 왔던 삼성전자 CF에 가수가 출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CF 개런티는 톱배우들마저 다 제치고 국내 최고액을 받았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으며,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에서 전국 소비자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예인, 스포츠인, 정치인 통합 광고 모델 선호도 조사에서 6위를 기록했고, 가수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 #

즉, 10대와 20대로 한정된 연령대에 인기가 쏠려 있던 기존 댄스 가수 인식의 틀을 깨고 중장년층과 노년층까지 포섭할 수 있는 대중성과 스타성까지 모두 겸비한 톱 댄스 가수였다는 점이 그의 고평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이라 불렸던 만큼 그를 싫어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그가 매우 유니크한 캐릭터였음을 반증한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당신은 유승준[인용문]을 좋아합니까?"라고 물어보면 "내가 유승준[인용문] 팬은 아니지만 싫어하지는 않는다, 좋다, 잘 생겼다, 멋지다."라면서 긍정적인 답이 오는 분위기였다. 누구나 좋아하지만, 특정 세대에 압도적인 팬덤이나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음악성을 갖춘 건 아니었기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인지도와 인기를 보유한 것처럼 보였지만, 개인의 음반 판매량 화력은 당대 최고 가수들에 비해 다소 약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음악방송에서의 성적은 1990년대 뮤지션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이다. 1집부터 5집까지 활동할 때 1위 후보에 꾸준히 올랐고,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던 1999년 3집 당시에는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쇼! 뮤직탱크 등 당시 순위제를 시행하던 음악방송들에서[25] 전부 최고 타이틀에 해당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흔히 말하는 가요계의 엄친아로 인정받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는 미국시민권 취득을 저지른 탓에 한 때 "전 국민에게 호감을 받고 사랑받던 가수"에서 지금은 "전 국민이 가장 미워하고 증오하는 가수"로 변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한국인 유승준이 남긴 명곡들도 워낙 많았고, 퍼포먼스도 뛰어난 인재가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4급 받았으니 공익으로 병역의무 수행할 것이지, 왜 공익조차도 안 갔느냐?"는 지적도 있다.

지금은 연예인이 공익 간다면 특별한 문제가 아닌 한 무조건 병역비리 아니냔 소리가 대놓고 나올 정도지만, 당시엔 연예인들이 군대를 어떻게든 빼는 일이 워낙 자연스럽게 여겨졌기에 그가 공익을 갔다 해도 "춤을 저리 격하고 많이 추는데 허리 좀 나가서 공익 갈 수도 있지."[26]라고 자연스럽게 대중들이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병역기피 사태 이후 대부분의 남자 연예인들이 공익 판정을 받았거나 외국인 영주권이 있어도 포기하고 자신있게 현역으로 자원 입대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유승준이 지금처럼 병역기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사건은 오히려 다른 이들의 병역기피를 막는 것에 순기능을 제공한 셈이다.

4.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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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한국인 '유승준'이 아닌, 미국인 스티브 유로 불리게 되었으며, 한국에서의 입지가 사실상 소멸했다.

그의 병역기피로 인해 대다수 질병 분야에서 신검 등급이 약 한 등급 가까이 상향조정되어 본래라면 4급 보충역이었어야 했을 사람이 3급 현역병으로 입대한다거나, 5급 이하 면제였을 사람이 4급 보충역으로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으니 사실상 유승준이 잘못된 병영 문화 조성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 국방부에서는 모병제 도입이나 국방세 도입을 논의하고, 시민단체에서도 군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을 시작했으나, 유승준 때문에 없던 일이 되었다. 즉, 유승준 또한 이 군대 인권 개선 정지에 한 몫을 한 셈. 이 때 설립이 논의되던 군인권센터2009년에 한 시민단체에 의해서 생겼다.

4.1. 병역기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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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금지 사건 이후 미국에 거주하며, 미국과 중국에서 가수와 배우로 활동 중이다. 공교롭게도 미국이나 중국이 소란스러울 만하면 입국을 허락해달라고 떠드는지라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선 "유승준이 입국 이야기를 꺼내면, 그건 '대한민국이 안전하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라는 농담성 드립이 쏟아져 나오고 재난경보기라는 멸칭까지 붙을 정도였다.

유승준은 어떻게든 한국으로 복귀하고 싶어서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여전히 복귀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 더욱이 유야무야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때는 이러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던 국내 팬들도 대략 10명 중 1명만 팬을 유지할 정도로 이젠 그 흔적을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사실상 지지자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병역기피 사건 이후로 그의 곡들은 공중파 TV 및 라디오에서 들을 수가 없고, 개인적으로 음원 선정이 자유로운 유튜브 혹은 자영업을 하는 가게에서 정도에서나 들을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3대 음원사이트인 멜론, 벅스, 지니뮤직의 경우, 2022년까지만 하더라도 음원 접근이 막혔다가[27] 2023년 이후로는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음원 유통이 겨우 풀린 지금으로서는 재발매 혹은 후배 가수들의 리메이크조차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태이다. 유승준이 부른 히트곡들 다수가 여전히 현대 K-Pop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고, 일부는 명곡이라고까지 회자되는 것이 사실이나, 저지른 사건이 사건인 관계로 리메이크조차도 많은 구설수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애석해 하는 사람이 많다.

5. 음반 목록

발매일 제목 판매량 활동곡
1997.06.01. 1집 West Side 60만여 장 가위
사랑해 누나
1998.05.01. 2집 For Sale[28] 798,296장 나나나
내가 기다린 사랑
1999.04.16. 3집 Now or Never 825,569장 열정
슬픈 침묵
1999.12.10. 4집 Over and Over[29] 530,674장 비전
연가
2000.11.11. 5집 고지탈환 418,208장 찾길 바래[30][31]
어제 오늘 그리고[32]
2001.09.01. 6집 Infinity 244,684장 Wow
성원 [
2007.09.18. 7집 Rebirth of YSJ 3만여장 My World
발매일 제목 판매량 활동곡
2019.01.18. Another Day - 1. Another Day (타이틀곡)
2. People Don't Know
3.Rat-a-tat-(tat)
4. California
발매일 제목
1998.08.21. 98 Live Album
1999.08.00. New Release + English Version
1999.09.01. All that Yoo Seung Joon
2000.06.00. Gold Techno Remix
2001.01.01. Hidden Story
2001.09.01. Best & J Duet Collection
2002.01.14. 2002 Live[33]
개봉일 제목 배역
2013 맨 오브 타이치 기택

6. 인맥

한국 연예계에서 그와 친분이 있는 연예인은 꽤 많은 편이다. 가장 친한 연예인은 동갑내기인 김종국이고 그 외 용띠 클럽 멤버들인 홍경민, 장혁 등과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며 특히 김종국은 2004년 비난을 감수하고 미국에서 열린 유승준의 결혼식에 친구로서 참석하는 등 의리(?)를 보여주었다. 결혼식 당시 직접 참석한 한국 연예인 하객은 김종국이 전부였지만, 그 외 많은 연예인들이 이미지 하락을 각오하고 그에게 축하 영상이나 축의금을 김종국에게 맡겨 보냈다.[34] 이를 봐서는 대중이 아닌 연예계 주위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는 꽤나 인망이 넓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재석, 김용만동거동락이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함께 활동했던 MC들과도 친분이 있어, 유재석과는 2013년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다.[35] 박명수와도 인연이 있어, 박명수가 2011년 9월 "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라는 질문에 "유승준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가 즉시 정정했는데,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박경림과도 친하다. 동거동락 시절 박경림을 복태라고 불렀는데, 이는 유승준이 퇴출된 뒤에도 박경림의 별명으로 쓰였다.

공교롭게도 비슷하게 병역 비리에 연루된 전력이 있는 이동국과도 친분이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같이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자기보다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뜻으로 “정자왕”이라 직설적으로 표현해 논란이 됐다. # 본인은 칭찬으로 생각했겠지만 미운 털이 박힌지라 누리꾼들한테 욕을 먹었다.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방한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가수로 유승준을 지목했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의 초대로(총 4번 ㅡ 파티에도 초대되어 잠을 자고 오기도 했음) 자택인 네버랜드에서 같이 사진도 찍은 적이 있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H.O.T.가 피날레 무대에 섰다.

중화권 스타로는 성룡과 친분이 깊다. 2007년부터 성룡의 소속사인 JC그룹에 있었다. 2002년 월드컵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무대에 섰던 당시부터 눈여겨봤었다고. 한국에서 입국금지를 당한 유승준의 사연을 듣고 성룡은 그가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한국의 모 기업 이사장의 도움으로 유승준을 소개받았고, 유승준을 만난 후 성룡은 그에게 적극 러브콜을 하면서 유승준과 성룡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08년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부터 중국 진출을 모색했는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하며, 결국 <대병소장(2010)>을 같이 찍었다. 이후 <차이니즈 조디악(2012)>이나 <드래곤 블레이드: 천장웅사(2015)>에도 같이 나왔다. 이 기간 동안 성룡 영화 이외에도 중화권 영화에 꽤 많이 출연했지만 호응도는 좋지 않았다.

7. 여담

8. 관련 문서



[1] 철자의 출처는 스티브 유의 미국 여권. 영상 3~7초 부근에 스티브 유의 여권이 나오는데[2]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1976년 당시 행정으로는 잠실동이 강남구 관할이였으나 1979년에 강동구로 분구되면서 강동구에 편입되었다가 1988년에 송파구로 다시 분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3] 2021년 5월 23일에 밝혀진 수치. 평소에 82~83kg 사이로, 최근에 간헐적 다이어트로 3~4kg 정도 빠졌다고 밝혔다. 사실 과거에는 실제 키가 168cm 정도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에 발끈하여 자신이 176cm임을 인증했다. 이와 별개로 마이클 잭슨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서로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이를 공개함과 동시에 낮게 잡아도 프로필상 키와 동일하게 175cm이고, 키 크면 싱겁기만 하다고 말했다.[4] 2016년에 나온 "유승준 아버지 눈물, 내가 시민권 취득 권유" 기사에 "유승준 아버지 유모씨(70)"라 나왔던 바 있다.[5] 서세원쇼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으며, 이른 나이에 결혼해 딸이 하나 있다.[6] 1990년부터 알고 지내다가 1995년 연인으로 발전, 2002년 약혼, 2004년 결혼. 스티브 유는 데뷔 초부터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1세대 아이돌들의 연애에 민감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할 때 이례적인 일이다.[A] 두 아들은 "지" 돌림인데 반해 두 딸은 "안" 돌림이지만, 둘째 아들은 두 여동생과 돌림자를 공유하게 됨과 동시에 형과 동생들의 돌림자를 전부 다 가지게 된다.[A] [A] [B] 두 딸은 쌍둥이다.[A] [B] [13] 활동 내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쪽으로 매우 독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일본 러브소나타에서 신사도 운동 계열의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가 찾아와 유승준에 대해 말을 하고 끝에 유승준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2020년 12월 19일에 올라온 유튜브 영상에서 서두에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신앙관을 굉장히 많이 피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1998년 <나나나>가 1위를 했을 당시, "우선 저의 힘의 원천 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또한 자신의 앨범에 히든트랙으로 CCM 곡을 넣기도 했다. 앨범의 마지막 곡이 끝나면 한참 동안 무음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찬양노래가 나오는 식. 출신 대학 역시 대부분 개신교계다. 한국에서 흔히 '개독교'라고 호칭될 정도로 신사도 운동은 때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회적 규범이나 관례와 상관없이 본인들의 성경 해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승준이 한국 사회에서 갑작스레 엇나가게 된 것도 내재적으로는 신앙관의 영향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를테면 을 드는 것이 교리에 어긋난다는 추측 같은 것.[14] 2021년 5월 23일에 올린 영상을 끝으로 현재까지 3년 넘게 활동이 없어서 유튜브 채널은 유령 채널이 된 상태다.[15] 웨이보는 비공개로 추측된다.[16] 유승준의 병역기피 이전, 임창정의 초전성기 시절에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날 닮은 너 등의 곡과 1, 2위를 두고 자주 맞붙었다. 방송 녹화본을 보면 당시 이름인 유승준이 나오는 영상이 많다. 그 당시 유승준이 불렀던 노래들 중 3옥타브가 넘나드는 노래도 있었다. 당시 유승준이 활동했던 영상들 중엔 라이브를 했던 적도 꽤 많았는데 춤추면서 고음이 많은 노래를 삑사리 한 번 없이 안정적으로 불렀었다.[17] 당시 그의 예능스타일은 잘생겼지만 의외로 허점이 많은 동네형 같은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이승기의 허당 이미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18] 월드컵 주제가인 <도약>도 불렀다. 이 곡은 이듬 해 월드컵 시즌 때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발매되었다.[19] 90년대 당시 대중들이 유승준을 바라본 시선을 사실상 인용해 왔다.[20] 유승준 한 사람의 잘못이 한 나라의 법 개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회적 파급력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이 발생하고 8년 후에도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되어 신체검사 기준이 대폭 상향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두 사람이 기사에도 한때 언급되면서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싸늘한 상황.[21] 심지어 과거 진짜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그를 자신의 자택 네버랜드에 초대해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 잭슨이 자신의 방한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가수로 그를 택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H.O.T.가 피날레 무대에 섰지만, 그 잭슨도 솔로 댄스가수로서 인정해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재능은 입증이 된 셈.[22] 오늘날 아이돌 용어로 풀자면 대중픽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단순히 젊은 세대에 국한된 게 아니라 범세대적 규모의 대중픽.[인용문] [인용문] [25] 당시 생방송 음악캠프만큼은 유일하게 순위제를 시행하지 않았다.[26] 저 시절은 출산율 100만을 넘기던 시절에 태어난 세대들이 군대에 갔을 90년대 초반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출산율이 (현재에 비하면) 비교적 높았을 때 태어난 세대들이 군대에 갔을 때였기 때문에 공익을 가는 것이 2010년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시절이기도 했었다.[27] 기획사가 망하거나 음원 유통사가 망해서 막힌 게 아니라 음원을 가지고 있는 유통사에서 막았던 것이다.[28] 유승준 2집 테이프가 1차분과 2차분 사진이 공개되었다. 1차분, 2차분[29] 4집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쇼킹하게도 서울시내버스 일부 노선에 외부 광고를 게재했으며, 유승준의 진정한 전성기임을 감안한 소속사의 마케팅이다. 물론 2010년대에는 음반 광고가 꽤 자주 나오지만 90년대 말에는 아주 획기적인 마케팅이었다.[30] 핑클의 Now와 표절시비가 있던 곡. 물론 그런 거 없고 EZ2DJ에 수록된 Combination의 작곡가가 해당 곡의 소스를 활용해 여러 가수에게 제공했을 뿐이다.[31] 여담으로, 우당탕탕 재동이네 23화에서 재동이가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영어 발음 부분은 서투르게 불렀다.[32] 조용필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33] 한국에서 발매한 마지막 음반이자, 군입대를 앞두고 팬들에게 보내는 팬송인 <고마워>가 수록되어 있다. 나중에 중국에서 활동할 때 <고마워>를 중국어 버전으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애초에 고별곡으로 계획했던 곡이었고 또 입국금지를 당하면서 활동도 못했지만 2002년 한 해 동안 차트 상위권에 여러 차례 들었다.[34] 당시 대중은 김종국에게 비난을 퍼부었지만, 이에 김종국은 "오랜 친구의 결혼식에도 못 갑니까?"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일로 김종국에게도 꼴도 보기 싫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개인적 친분과 유승준의 죄는 대부분의 대중들도 별개로 봐서 그냥 묻혔다.[35] 당시 런닝맨 상하이 아시안 드림컵 특집 촬영을 위해 찾아왔었다. 참고로 김종국과도 이 때 재회. 병역 기피 여부와는 별개로 대체로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36] 확실히 자기 관리는 잘하는 편으로 보이는 것이 최근 유튜브에 올라오는 그의 영상들을 보면 이젠 꽤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거의 보디빌더 수준으로 근육을 키웠다.[37] 사실 파고들면 이쪽이 훨씬 심각한 것이 차인표는 이미지와는 별개로 본업인 연기에서의 평가는 영 좋은 편은 아니다. 유승준은 반대로 춤과 노래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한국 아이돌이 세계로 나가는 현재까지도 그를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고의 댄서로 뽑는 사람도 적지 않으며 그 춤을 추면서 라이브를 하는 등 보컬리스트로써도 발군이였다. 그 실력을 가지고도 병역 기피로 인해 커리어를 다 말아먹었으니 더욱 더 조소의 대상이 되는 것.[38] 거기에 자신이 개신교 신자인 것을 이용하여 개신교도들의 움직임을 바란 것인지, 아니면 정당화를 시키고 싶던 것인지 자신은 부모를 잘 섬겨야 한다는 성경 말씀대로 부모님을 위해 미국인이 되어 군대에 가지 않은 것이고, 죄악에 빠진 네티즌들이 회개하길 바라면서 이야기하는 거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39] 사적으로도 평판이 좋은 편이였지만 작곡가 김형석처럼 이 시절에 손절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인물도 있다. 문제는 이 인간은 분명히 본인의 히트곡을 작곡해준 작곡가임에도 김형석을 친하지도 않은 작곡가라고 치부했다는 것.[40] 이외에도 열정연가펌프 잇 업에 수록된 기록이 있다.[41] 찾길 바래는 입국금지 처분 이후인 2002년에 제작된 우당탕탕 재동이네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42] 사실 찾길 바래는 원래 리듬게임 곡 Combination의 메인 멜로디를 작곡가 김진권이 차용해 만든 곡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멜로디를 차용하는 곡이 몇개 더 있고, 핑클의 NOW와 묶음이다 보니 2016년 초반쯤 금영노래방에서 6537번 곡인 NOW가 삭제되자 6602번 곡인 찾길 바래도 덩달아 삭제되는 사태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 10월 18일까지 순차적으로 최종 복각되었다.[43] 사실 이 병역기피자 개그는 유승준이 피자 먹방 영상을 올리기 전에도 꽤나 흥했던 개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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