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3:34:41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6.25 전쟁의 전투 및 작전 목록 파일:북한 국기.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536349> 1
9
5
0
북한군의 남침
<colbgcolor=#777,#222><colcolor=#FFF> 6월 폭풍 작전
· 옹진반도 전투
· 개성-문산 전투
· 고랑포 전투
· 봉일천 전투
· 김포반도 전투
· 옥계 전투
· 강릉 전투
· 춘천-홍천 전투
· 대한해협 해전
· 동두천 전투
· 포천 전투
· 의정부 전투
· 내촌-태릉 전투
· 수원 비행장 전투
· 한강 인도교 폭파 · 한강 방어선 전투
7월 주문진항 해전
· 동락리 전투
· 오산 전투
· 갈곶리 전투
· 평택 전투
· 진천 전투
· 천안 전투
· 전의-조치원 전투
· 청주 전투
· 금강 방어선 전투(공주-대평리 전투)
· 장항-군산-이리 전투
· 대전 전투
· 화령장 전투
8월 청송 전투
· 낙동강 방어선 전투
(안동·의성전투
· 마산 전투
·다부동 전투
· 창녕·영산전투
· 안강·기계 ~ 영천·신녕 전투
· 포항 전투
· 포항 철수작전
· 통영 상륙 작전
)
유엔군의 반격
9월 장사 상륙 작전
· 인천 상륙 작전
· 9.28 서울 수복
10월 평양 탈환작전
· 초산 전투
중공군 개입
10월 중공군 1차 공세(10/25)
11월 개천-비호산 전투
· 중공군 2차 공세(11/25)
· 청천강 전투
· 장진호 전투
12월 평양 철수
· 흥남 철수작전
· 중공군 3차 공세(12/31)
1
9
5
1
1월 1.4 후퇴
· 평양 대공습
· 울프하운드 작전
· 유엔군 1차 반격(1/25)
· 선더볼트 작전
· 원산 포위전
· 금양장리 전투
· 라운드업 작전
2월 중공군 4차 공세(2/11)
· 횡성 전투
· 지평리 전투
· 유엔군 2차 반격(2/20)
· 전략도서 확보 작전
· 원산 포위전
· 킬러 작전
3월 리퍼 작전
· 커리지어스 작전
· 토마호크 작전
4월 러기드 작전
· 중공군 5차 공세(4/22)
· 매봉·한석산 전투
· 사창리 전투
· 설마리 전투
· 파평산 전투
· 가평 전투
5월 설악산 전투
· 중공군 6차 공세(5/16)
· 현리 전투
· 용문산 전투
· 한계 전투
· 유엔군 3차 반격(5/23)
전선 교착
6·7월 도솔산 전투
· 평양 대공습
8월 피의 능선 전투
· 펀치볼 전투
9·10월 가칠봉 전투
· 단장의 능선 전투
· 백석산 전투
· 코만도 작전
11·12월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1
9
5
2
1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3월 장단-사천강 전투
7월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
351고지 전투
9월 백마고지 전투
· 1차 화살머리고지 전투
· 저격능선 전투
1
9
5
3
3월 폭찹힐 전투
5월 M-1고지 전투
6월 351고지 전투
· 2차 화살머리고지 전투
· 949-973-883고지 전투
7월 중공군 7차 공세(7/13)
· 금성 전투
· 백암산 전투
· 425고지-406고지 전투
첨자 : 공산군의 승리 / 첨자 : 한국군•유엔군의 승리
※ 월표기: 전투 개시일 기준, 실제 교전기간은 개별 문서 확인 }}}}}}}}}


대한민국 공군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인포그래픽

1. 개요2. 전개
2.1. 1차 시도2.2. 2차 시도
3. 기타

[clearfix]

1. 개요

승호리 철교 차단작전은 6.25 전쟁 중인 1952년 1월 12일부터 1월 15일까지 4일에 걸쳐 대한민국 공군이 벌인 폭격 작전이다.

2. 전개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의 대동강 지류 중 하나인 남강에 놓인 철교였다. 이는 평양 남쪽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평덕선 철로의 일부로, 강 서안의 청룡역과 동안의 립석리역을 이었다. 평덕선은 원래 평안남도 북부의 탄전지대에서 나오는 석탄을 운송하던 산업철도 역할을 하는 노선이었지만, 원산을 향하며 동-서부전선를 이어주는 핵심 간선인 평원선(현재의 평라선)과 교차하기 때문에 이의 우회 노선으로서도 중요했다.

원래의 승호리 철교는 이미 미군 제5공군이 파괴한 바 있었다. 하지만 북한군은 기존 철교의 북쪽(하류 방향) 약 200m 지점에 목재를 쌓아 임시 교각을 만들어 복구를 해 놓고 열차 운행을 재개했다. 당시 동-서 교통로 파괴를 위해 평원선 전체를 난타하고 있던 미 공군은 이 임시 승호리 철교에도 폭격을 퍼부었다. 북한군 및 중국인민지원군도 철교 방어를 위해 다수의 대공포를 주변에 배치해놓고 집요한 방어를 펼쳐, B-29 500소티 이상을 출격시켰어도 완전 파괴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미군에서는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한국 공군에게 폭격 임무를 맡겨 보기로 한다. 이에 작전을 맡은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장 김신 대령[1]은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한 조종사인 김두만 소령[2]에게 임무를 맡겼다.

2.1. 1차 시도

1952년 1월 12일 아침 7시 40분, F-51 5기로 이루어진 폭격 편대가 강릉기지에서 출격했다. 각 기체는 500파운드(226.8㎏) 짜리 통상폭탄 2발, 5인치 고속항공로켓탄(HVAR) 4발을 장비하였다.

하지만 이 첫 작전은 미군의 폭격작전과 마찬가지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기관총과 로켓으로 대공포대를 제압하고 투하한 폭탄은 모두 빗나가서 모래바닥 위에 떨어졌다.

같은 날 오후, 머스탱 3기로 이루어진 두 번째 편대가 폭격을 시도했으나 다리 위의 철로만 손상됐을 뿐 다리는 부수지 못했다.

2.2. 2차 시도

김신 대령은 참모들과 숙의한 끝에 8,000ft(2438m)에서 강하를 시작하여 3,000ft(914.4m)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미군 전술을 포기하고 위험성이 훨씬 더 크지만 폭격 명중률을 크게 높일 수 있도록 안전 고도보다도 더 낮은 4,000ft(1219m)에서 강하를 개시해서 1,500ft(457.2m) 상공에서 폭격하는 것으로 작전을 전환한다.

1월 15일 오전 8시 25분, F-51 6대가 2개 편대를 이루어 재차 공격에 나섰다. 1편대가 로켓으로 다리를 일차 공격한 뒤 주변의 대공포 진지를 제압하고, 2편대가 로켓탄과 폭탄을 투하하여 마침내 철교를 부수는 데 성공했다.
파일:image__2017_108865_15816556382779504.jpg
폭파 전과 후 비교 사진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은 훨씬 경험 많고 능력있는 미군조차 실패하고 있던 상황을 신출내기 한국 공군이 해내면서 그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고, 작전 성공 이후 2000년대 넘어와서까지도 평양 대폭격 작전, 351고지 전투 항공지원작전과 더불어 대한민국 공군의 쾌거로 늘 거론되고 있다.

3. 기타


[1]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2] 작전 당시의 계급으로, 나중에 공군참모총장(대장)까지 지낸다.[3] 유치곤 장군 동상 옆에는 아들 유용석 소령의 흉상도 세워져 있다. 유용석 대위(사후 소령 추서)또한 아버지의 뒤를이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조종사가 되었지만 제주 C-123 추락사고로 인하여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