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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9:31:46

왕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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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5392C><colcolor=#F9D580> SBS 대하사극
왕의 여자
(2003~2004)
王의女子
파일:mblogthumb4.phinf.naver.net/20130314_175/hiroworld_1363235527811lqybl_JPEG/kings_batang7s.jpg
장르 사극
방송 시간 월 · 화 / 오후 9:55 ~ 오후 10:55
방송 기간 2003년 10월 6일 ~ 2004년 3월 2일
방송 횟수 42부작
제작 파일:SBS 로고.svg
채널 파일:SBS 로고.svg
제작진 <colbgcolor=#95392C><colcolor=#F9D580> 연출 김재형, 정효
극본 윤정건
출연 박선영, 지성, 임동진, 김유석
링크 파일:SBS 로고.svg

1. 개요2. 등장인물3. 캐스팅4. 평가5. 세트장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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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3년 10월 6일 ~ 2004년 3월 2일까지 SBS에서 방영한 월화 대하사극이다. 임진왜란 시기부터 광해군이 몰락할 때까지의 시기를 담았으며, 원작은 박종화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이다.[1] 1년 전까지 여인천하를 맡은 김재형 PD의 연출작인데, 이미 동양방송 재직 시절인 1978년부터 해당 소설을 드라마화하고자 기획했지만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방송사가 폐국되면서 사장됐다가, 기획한 지 어언 25년만에 그 결실을 본 것이다.(중앙일보 기사)

SBS는 여인천하, 야인시대 등이 모두 대박이 나면서 그 계보를 이으려고 했고 또, 용의 눈물과 여인천하로 인기몰이의 큰 공을 세운 김재형 감독의 또 하나의 작품이었는데, 동시간대인 대장금에게 엄청 밀리면서 흥행참패를 거두게 된다.[2] 또, 당시 대장금이 궁녀로서도 의녀로서도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자주적인 여성을 그려낼 때 왕의 여자는 전통적인 궁중 암투극을 보여주며 여성에 대한 구세대적인 생각을 못 버렸다는 비판을 듣는 바람에 더 대비되어버렸다.

게다가 하필 방영기간이 송년 시즌과 목동 사옥 이전 등의 일들까지 겹치는 바람에 세 차례의 특집 편성으로 결방되었으며 원래 여인천하의 집필자 유동윤 작가가 집필자로 낙점되었으나 KBS1 무인시대와의 겹치기 집필 문제 때문에 고사하자 윤정건 작가가 대타로 들어갔고, 심은하, 송윤아 등이 김개시 역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고사했다.

2. 등장인물

3. 캐스팅

광해군을 악의 길(?)로 인도하는 개똥이(개시) 역은 박선영이 맡았다. 충격적이게도 선조의 총애받는 후궁이기도 했다는 설정으로 인목왕후가 오자 밀려난다는 설정. 그래서 제목이 <왕의 여자>다. 선조의 총애를 잃은 이후로 하는 행동이 패드립 그 자체다.

오랜 병마에서 완쾌한 임동진선조 역을 맡아 매우 찌질거렸다. 게다가 고령에 한참 어린 인목왕후를 늘 가까이하다 힘을 너무 쏟은 결과(?) 복상사가 연상되는 연출로 쓰러져 골골대다가 사망한다.

지성이 주인공 광해군을, 사강이 그의 부인 폐비 유씨 역을 맡아 신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지성의 사극 징크스가 시작되기도 했다.[3]

또한 임혁이이첨 역으로 출연한 사극이기도 하다.[4] 유희분이나 약간 악역일까.. 정인홍은 사극 자주 나오는 최동준, 의외로 무인 기질에 간지 넘치는 임해군김유석 분.[5] 광해군의 책사격으로 나오는 중인 맹지천은 김병기가 맡았다.

사사건건 광해군의 앞을 막아서다 유폐당하는 인목왕후 역은 홍수현이 맡았다. 본래 동시간대 경쟁작이인 상두야 학교가자에 출연 중이었는데, 상두야 학교가자가 종영한 이후 중간투입된 것. 홍수현의 첫 사극 연기이기도 하다. 다만 홍수현의 팬들도 이 드라마 속 홍수현의 인목대비 연기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함정.

박선영은 상대 배우 지성과 노희경의 화려한 시절에서도 커플로 나왔다. 드라마 시청률은 좋지 않았지만 박선영의 무서운 카리스마 연기만은 독보적이다. 공교롭게도 박선영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바로 전에 김개시와는 정반대의 이미지였던 인현왕후 민씨를 KBS2 사극 장희빈에서 연기했다.[6]

조연으로 나온 이미경은 도중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하차해 투병생활에 들어갔으나, 6달 만에 만 44세로 사망하면서 그녀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광해군과 폐비 유씨의 아들인 폐세자 이지정태우가 맡았다. 공교롭게도 정태우는 이지의 할아버지인 선조를 연기한 임동진과는 왕과 비에서 조카인 단종과 숙부인 세조를 각각 맡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또한 1년 전 당시 연인이었던 개그맨 홍기훈과의 불화로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이아현의 복귀작이다.

4. 평가

이 드라마는 선조 독살설을 다소 변형하여 반영하였는데, 대놓고 독을 쓰진 않았지만 선조의 건강 상태에서 좋지 않은 약밥을 선조가 먹고 싶어 한다는 핑계로 김개시가 먹임으로써 급체를 유도하여 죽게 한다는 것이었다.

방영 초기부터 연출진의 전횡으로 인해 논란이 많았는데, 여성 출연진으로부터 순결서약서를 받았다고 한다.

내용적으로도 호평을 받지 못하였는데, 개망나니 임해군의 패악질 행각은 없어지고, 야망을 품는 무사기질의 인물로 왜란 때 의병활동까지 하는 식으로 왜곡하는 것도 모잘라 정철, 이이첨 옹호는 대체... 또한 전번의 여인천하 때처럼 개시가 모든 권모술수의 배후인물인 것처럼 표현되었다. 정난정도 아니고... 이런 설정은 MBC 조선왕조 500년에서부터 써먹었던 것이라 식상함을 주었다. 그래서 옛부터 이어진 구태의연한 설정과 연출력이 빚어낸 졸작이라는 평가가 있다. 광해군을 시대가 낳은 비운의 총명한 임금으로 그린 것부터가...[7] 지상파에서 광해군 미화를 시작한 최초의 사극으로 볼 수 있다. 여담으로 미화된 광해군의 이미지가 현대 정치인이자 대통령을 했던 노무현에게 투영되기도 하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왕의 여자가 방영하던 시절에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인조를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묘사하는 정도는 무난하지만, 인조반정 이후로 사실상 한직으로 밀려날 정도로 광해군의 양면외교의 핵심인물이던 정충신이 입신양명을 위해 (북방에 있을 텐데?) 인조반정에 가담했다는 왜곡에다가 정철이이첨, 임해군의 미화 등 역사적 사실과는 백만년 거리가 멀다.

인조반정 이후에나 당상관이 되는 이귀가 선조 때부터 붉은 관복을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애초부터 양반 자제인 이기축이 머슴살이한다는 설정도 문제가 있으나, 원작에도 그렇게 되어 있으니 논외로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당시의 경쟁작이 대장금이라는 것이다.[8] 사실 왕의 여자 VS 대장금은 MBC 이병훈과 SBS 김재형의 리턴매치[9]로, 이병훈은 지난 패배의 앙갚음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상두야 학교가자낭랑 18세에도 밀려 한자릿수 시청률로 고전하다가 당초 80회보다 절반이 줄은 42회로 종영되었다.[10] 훗날 지성이 SBS 예능 강심장에 나와서 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는데, 평소처럼 대본 리딩을 하던 도중에 갑작스럽게 드라마국 국장으로부터 조기종영 통보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훗날 대풍수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었던 지진희가 지성에게 이런 사극 드라마에도 나온 적이 있냐고 의아해하면서 물어보았었다고 하는데, 지진희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시간대 경쟁작이자 이 드라마를 완전히 파멸로 몰다시피 한 대장금의 남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지성의 마음은 더 착잡했었던 듯. 더욱이 김재형이 도중에 퇴진하기까지 했다. 다만 극의 전개 속도는 늘어졌음에도 정작 중요한 명종기의 "여인천하"는 한두 화로 끝나는 드라마 여인천하와 달리 되려 분량이 적절하게 되었다.

결국 남은 것은 "~했으마."라는 궁중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다만 선조의 막장을 달리는 연기(물론 내용이 의도한 것이므로 호연이다.)와 신인치고 잘한 홍수현의 인목왕후 연기 "광해 네 이놈"이 좀 기억에 남는다나. 사실 궁중 암투 만큼은 잘 드러난 편이다. 역사와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종방연은 연기자들 대거 불참에 스태프들끼리 중국 음식점에서 짜장면, 짬뽕 등으로 때웠다고. 카더라조차도 아니라 진짜로 신문에 실린 내용이다.

결국 이 드라마 참패 이후로 김재형도 타격을 입었고 한동안 드라마에서 사라지는 듯 싶더니만 2006년 삼청교육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감독을 맡는다고 화제를 모았으나 결국 제작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리고 2007년 마지막 드라마 왕과 나를 연출했는데 이 드라마도 이병훈이 맡은 이산에 밀렸으며 여기서도 해당 작품에서 중도하차했다. 그리고 2011년 4월 11일 75살로 세상을 떠났다.

5. 세트장

시기적으로 임진왜란 전후를 다룬 극이고, 극이 시작하자마자 임진왜란이 일어나며, 선조는 여기저기 행궁으로 떠돌고, 한양 환도 이후에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이 모두 소실되어 당시로서는 옛 종친의 저택에 지나지 않았던 현재의 덕수궁을 행궁삼아 지내다가 이곳에서 승하하고, 광해군 2년에서야 창덕궁이 복구되어 이어하는데 중후반부 극의 대부분 내용이 이 정동 행궁 시절을 다루고 있고 드라마가 단축되며 광해군의 치세도 뭉텅 잘려져 나갔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상당 부분은 정동 행궁을 가장한 세트장에서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물론 이 시기의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여 궁궐의 외부는 실제 궁궐이나 궁궐세트가 아닌 한국민속촌 중부지방 양반가 22호를 배경으로 촬영되었고[11] 내부 세트장 역시 궁궐 같은 세트가 아니라 양반가다운 세트에서 진행되었다.[12] 그래서 대장금 보다가 가끔씩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왜 저 드라마는 세트장이 저렇게 허접하냐? 시청률 망해간다더니 세트장도 허접하게 짓는 거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사기도 하였다. 그래도 광해군이 즉위한 이후 창덕궁을 재건했을 때부터는 실제 창덕궁에서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6. 기타

2012년 9월 당시 네이버에서 이 드라마의 이름을 검색하여 보면 '조다 악바르'라는 인도 영화가 검색되었다. 이 드라마가 방영 된 후 약 2년 후 비슷한 이름의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하였지만, 이 드라마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성이 전작 올인의 대히트 이후 야심차게 준비했던 작품이자 첫 사극 연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작과는 다르게 쫄딱 망해버려 아예 사극팬들에게조차 언급되지 않는 작품이다.

대장금에 밀린 탓에 애국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별개로 배우들의 연기력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13] 그래서 더 안타깝게 다가와지기도 할 정도. 선조 역의 임동진은 전작 왕과 비에서 세조 역으로 후덜덜한 연기력을 선보인 적 있었고, 김개시 역의 박선영전작에서의 이미지를 완벽히 버리고 악독한 인물로 연기변신하는 데 성공했으며, 심지어 첫 사극연기를 선보였고 당시 신인이었던 홍수현마저도 엄청난 사자후를 내뿜는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여 웬만한 사극 베테랑 연기자들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비록 이 드라마는 주목을 못받았지만 훗날 대조영공주의 남자에서 포텐을 제대로 터뜨리기도 했다.


[1] 하지만 드라마 내용과는 달리, 원작은 이항복으로 대표하는 서인이나 무당파가 옹호되는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이항복이 북청으로 유배되면서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다만 이항복이나 이덕형, 이원익은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은 아니지만 광해군과 뜻은 달라도 긍정적으로 묘사되었다. 원작은 건저문제로 인한 정철의 유배로부터 시작하며 정철을 극도로 옹호하기에 반대로 이산해는 같은 작가의 작품인 세종대왕에 나오는 정도전 급으로 간신으로 비하되었다.[2] 예전에는 김재형 감독의 작품인 여인천하가 이병훈 pd의 상도를 이긴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3] 실제로 지성은 이 드라마 말고도 그 이후에 출연했던 김수로, 대풍수와 영화 명당까지 출연한 사극은 죄다 쫄딱 망해버렸다.[4]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중립외교의 중심인물이 되는 등 극미화되었다. 실제 이이첨이 자신의 명분을 위해서라도 친을 결사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5] 특히 임해군이 광해군이 선조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품고 광해군 즉위 후 명과 손을 잡으려다가 광해군이 자신을 지켜주었음을 알고 미친 이로 돌변하는 연기가 (역사적 사실을 떠나) 일품. 하지만 광해군이 모르는 사이에 임해군은 결국 교살 크리..[6] 훗날 11년 뒤 극 중 박선영의 라이벌이었던 홍수현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똑같이 인현왕후를 연기하게 된다.[7] 이 때 이후 광해군은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전의 이미지를 벗고 종종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백성을 생각하는 어진 마음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데, 문제는 이게 역사왜곡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세자 시절 및 즉위 초반의 광해군만 그렇게 묘사하고 그 이후로는 실제 역사에 맞게 광해군이 점차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광해군 긍정론에 빠진 시청자들의 부당한 혹평과 별개로 광해군 미화에 따른 역사왜곡 문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8] 그것도 하필 대장금의 주연이 1995년에 서궁에서 김개시 역을 맡은 이영애다.[9] 두 사람은 2001년에 여인천하 VS 상도로 만났는데, 이때는 이병훈이 패했다. 그래도 드라마 자체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되려 무려 100화 이상을 억지 연장방영으로 이끌면서 나중에는 귀신까지 등장시키고 역사왜곡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으며 여인천하는 서서히 사라졌다.[10] 전작 여인천하가 3배로 길어진 것과 대조를 보인다.[11]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의 사저, 왕과 비에서 수양대군의 사저 등으로 쓰였던 그 곳이다.[12] 물론 경복궁의 강녕전이나 교태전 내부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실제 왕의 방 내부와 비교하여 보자면 크고 아름다운 데다가 단청까지 발라진 다른 사극들의 세트장이 잘못된 것이다.[13] 사실 후속작 왕과 나를 제외하고 대체로 김재형 PD의 사극들에서는 그야말로 연기의 신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는 베테랑 연기자들이 많이 캐스팅되었던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