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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3:45

유아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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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도별 연기 활동
2.1. 데뷔 계기2.2. 2003년~2005년2.3. 2006년~2009년2.4. 2010년~2013년2.5. 2014년~2016년2.6. 2017년~현재

1. 개요

유아인의 활동을 정리한 문서이다.

2. 연도별 연기 활동

유아인은 배역을 감당하는 배우가 아니라 배역으로 자신을 창조해가는 배우다. 자기로서 배역을 소화한다기보다 배역으로써 자기를 살찌워간다. 본래 배우는 해석자다. 배우는 자신의 지성과 감성, 경험과 신체로서 영화의 인물을, 장면을, 스토리를 해석하여 체화하는 ‘해석 창작자’다.(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일종의 ’비평 주체’다.) 그런데 배우 유아인은 자기의 감각과 경험을 가지고 대상을 해석, 창작하는 사이에,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다시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듯하다. 자기를 인물로 만드는 동시에 인물을 자기로 흡수해버리는 것 같다. 그의 연기가 궁극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한 것은 배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는 연기보다, 삶에 더 뛰어나다.

삶에 뛰어나다니, 이게 가능한 말인가. 무엇이 뛰어난 삶인가. 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사실 난 다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노출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답도 결론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건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 “끊임없이 찾고, 구하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삶의 능력은 결론을 내리고 혼란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을 지속하려는 용기로써 그는 결론 없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이것이 그가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본연의 자기를 유지하면서 다른 삶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자기 본연의 것으로 살려내는 일, (‘본연’이란 원래의 모양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움직임일 것이다), 이것이 배우 유아인의 연기이자 삶이다. 그는 자기 본연을 잘 드러내는 편인데, 그의 말에선 연기 뒤의 삶이 읽히고, 그의 연기에선 배역 너머 배우가 보이는 까닭이겠다. 그는 간혹, 연기와 삶 모두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진지하단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다, 진부해지지 않으려면 진지해져야 한다. 고색창연하게도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릴 때도 많다. 괜찮다, 그는 여전히 자기 창조 중에 있고, ‘대변하는’ 배우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인시대’라니 좀 호들갑스럽게도 들리지만, 좋다, 유아인이 대세라면 청년이 대세인 것이다. 반갑다, 이런 대세, 어쩌면 세대. 오랜만에 청춘이 대세다. 아님 대세니까 청춘인가.
백지은 문학평론가, 〈사람과 글〉 통권 54호 「이런 대세 혹은 세대 ― ‘아인시대’」

2.1. 데뷔 계기

경북예술고등학교 서양화과 1학년 재학 시절 교문 앞 캐스팅을 당했다. 당시 매니지먼트 관계자가 대구에 들른 김에 예고에 찾아왔고 유아인에게 일해 보지 않겠냐며 제안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지만 무작정 홀로 서울에 가게 되는데 이처럼 꽤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유아인은 “뭔가 끌어당기는 게 있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후 서울미술고등학교로 전학했으나 곧이어 자퇴했고, 후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런 이력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지 신인 시절 인터뷰를 보면 기자가 자퇴 이유에 대해 항상 물어본다. 유아인은 자퇴 이유에 대해 “학교는 내 인생에 별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완득이》 개봉 당시에는 사제 관계라는 영화 소재로 인해 학창 시절과 자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유아인은 제작 보고회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인 학생이었다”며 “고등학생들이 스트레스 풀 데가 없다. 억눌린 스트레스가 자퇴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 유아인은 고시원이나 기획사 숙소에서 지냈다. 학교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친구가 많지 않아서 한동안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서울 생활 초반에는 자금 관리에 서툴러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집을 나왔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러한 독립적인 태도가 “좋은 자산이 됐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배우나 연기에 대한 거창한 꿈이 있던 것은 아니었고,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데뷔를 준비했다. 2013년에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때는 연예인이 되어야겠다는 꼬맹이의 마음이었다”며 “적당히 생긴 얼굴 믿고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데뷔 전에는 솔로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가수 준비를 그만뒀다.

2.2. 2003년~2005년

‘유아인’이라는 예명을 짓고 2003쫄쫄면 광고로 데뷔했다. 같은 해 10월 《반올림》 오디션을 봤으나 낙방했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을 받았고, 좋은 반응을 얻자 고정 캐릭터로 출연하게 됐다. 당시 오디션은 토너먼트 형식으로 매우 치열했다고 한다. 《반올림》 종영기념 스페셜 방송에서 당시 오디션을 보는 유아인의 모습을 짤막하게 볼 수 있다. 그리하여 2004년 1월부터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에 주인공 이옥림과 사귀는 미술 전공 고등학생 유아인 역할로 출연하기 시작하여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다. 본인의 예명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극중 캐릭터는 미술을 전공하고 나이에 비해 진지한 얘기를 하는 등 유아인의 실제 모습이 상당 부분 투영돼 있다.

2004년 4월에는 KBS 수목드라마 《4월의 키스》에 조한선의 아역인 강재섭 역으로 출연했다. 단 1회만 나오는 분량이지만, 카프카의 시를 읽는 문학 소년의 모습을 보이거나 좋아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고백하지 못하는 등 이후 유아인이 맡은 여러 캐릭터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4월의 키스》에서는 순박한 시골 소년으로 나오는지라 머리를 짧게 잘라서 당시 출연하고 있던 《반올림》에는 베레모를 쓰고 등장한다.

드라마 《반올림》은 2005년 2월까지 방영됐다. 유아인이 연기한 ‘아인 오빠’ 캐릭터는 그림, 피아노, 공부 등에 능통한 엄친아이자 여자친구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매너 있는 미소년이었다. 여기에 다소 어른스러운 성격으로 든든한 매력을 보여줘 청소년들 사이에서 아인 오빠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종영 직후에는 팬카페 회원 수만 15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유아인은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04년 8월 15일 생애 첫 미팅을 치렀다. 다수의 지면 광고와 CF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스쿨룩스, 블루테일 등 교복 및 청소년 의류 모델로서 전국 팬사인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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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에 웬일인지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연기 활동을 잠시 접는다. 전술했듯 데뷔 전 유아인은 연기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 없이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반올림》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나서는 ‘어떤 배우가 될래?’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기에 “내가 원했던 것인지 고민되고 혼란스러웠다”며 일부러 작정하고 공백기를 가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많은 기회와 유혹이 있었다. 제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옳다는 걸 거스르고 옳지 않은 걸 해야 한다는 게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백기 동안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가 아닌 진정 나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배우 유아인의 길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그림을 차근차근 그리며 ‘사람’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할 수 있었다. 당시 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할지도 몰랐으나, 공백기를 통해 “내게 밀려드는 어떤 현상에 몸둘 바 몰라 하고 휘청거리다 무너지면 안 된다, 내가 앞서 나가 단단히 발을 딛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나중에 유아인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잠적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과연 배우로 살 수 있을까? 《반올림》 오디션을 보면서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예계나 연기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덜컥 오디션에 합격해서 배우로 살게 된 것이다. 일이나 사회생활에 대해 무지한 채, 인간으로의 정체성 또한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1년간 《반올림》에 출연했다. 그 후 나는 쉬기로 했다. 스스로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생각 속에서 연기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연기에 열정을 갖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잡지 《인스타일》 2011년 7월호 「유아인의 배우 1막 1장」

2.3. 2006년~2009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2006년 노동석 감독의 독립영화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출연한다. 같은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2007년 5월 개봉 당시에는 전국 3개 관에서 상영된 작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이 맡은 종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진짜 총을 찾아 헤매는 소년이다. 노동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유아인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배우들에게 종대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 ‘어떤 옷을 입을 것 같고 무슨 머리 스타일에 이런 성격일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인이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더니 살짝 울컥하면서 ‘슬프죠’ 한마디를 하는 거다. 그 순간 ‘종대는 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유아인은 이 영화에 대해 데뷔작으로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데, 2007년 기자 간담회에서 “배우라는 앞날에 대한 꿈을 꾸고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 속에 꼭 있어야 할 영화”라고 표현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제 첫 영화이기도 했지만 정말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고,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깊이까지 저 자신을 끌어준 영화였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속 대사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는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소년성’을 설명할 때 기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사는 유아인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본인도 꾸준히 자신의 데뷔작을 언급하면서, 배우로서 고유한 소년성을 갖게 해 준 ‘첫 활시위’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받았고, 유아인은 이 영화로 부산영평상과 평택피어선영화제에서 남우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정윤철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한다. 정윤철 감독은 개봉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작 《말아톤》의 오디션에서 유아인을 눈여겨 봤었고, 《좋지 아니한가》 제작 초기부터 유아인의 캐스팅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정윤철 감독은 유아인에 대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바로 유아인을 떠올렸다.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보다 무언가 결핍이 있는 얼굴을 좋아하는데 유아인이 그랬다”라고 표현했다. 유쾌한 가족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아들 심용태 역을 맡았다. 전생에 왕이라고 믿으며 짝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캐릭터다. 유아인은 이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엉뚱함이 억지로 꾸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배어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우울한 청춘 역할과 《좋지 아니한가》의 4차원 소년 역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이며 기존의 아이돌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신인 배우로서 호평을 얻었다.

2008년 드라마 《최강칠우》에서 흑산 역을 맡아 양반집 자제와 냉혹한 자객을 오가는 연기를 펼쳤다. 유아인에게는 첫 사극 도전이기 때문에 많은 부담이 있었지만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촬영에 임하고 있다”며 제작발표회에서 소감을 밝혔다. 촬영 현장에서 진행된 ‘아리랑TV’와의 인터뷰에서는 오랜만의 드라마 촬영으로 힘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로서의 직업의식과 함께 프로 연기자로서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유아인은 고독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통해 유망주로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고,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연기를 선보여 ‘완소 자객’이라는 호응을 얻었다.[1] 종방 기념 드라마 팬미팅에서는 극 초중반까지 등장인물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소화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모든 분들이 잘 이끌어 주셨기에 잘 해낼 수 있었다”면서 “혼자 촬영하는 신이 많아서 선배분들과 가까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 개봉한 민규동 감독의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는 전직 복서[2]인 파티시에 견습생 양기범 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요시나가 후미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것으로, 유아인이 맡은 역할은 미소년이자 건강한 청년이지만 성격은 다소 다혈질인 캐릭터다.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영화 속에서 유아인의 케이크 먹방을 끊임없이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역할을 위해 복싱과 파티시에 수업을 들었는데, 공개된 메이킹 영상들을 통해 그 노력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남자배우 네 명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는 영화다. 그럼에도 본인의 분량에 대해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맛있는 영화에 적당량의 재료로 쓰였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이 영화로 유아인은 충무로의 차세대 기대주로 손꼽혔고 제11회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 올해의 남자신인연기자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는 입사 1년차 박현규 역을 맡았다. 지속되는 야근으로 힘들어하지만 일적으로 한 단계씩 성장하려 하고, 여자친구와 소소하게 떡볶이 데이트를 하는 등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흔치 않은 밝고 평범한 캐릭터다. 같은 해 장나라가 출연하여 화제가 된 영화 《하늘과 바다》에서는 피자 배달부 진구 역을 맡았다.

2.4. 2010년~2013년

2010년에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걸오 문재신 역으로 캐스팅됐다. 제작 초기에는 다른 역할로 제안이 왔지만 대본을 받고 걸오 역에 매력을 느껴 해당 역할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사 래몽래인의 김동래 대표는 “처음에는 유아인에게 다른 역할을 맡기려고 했지만 서너 번이나 걸오 역할을 맡겨 달라며 오디션을 보기 위해 찾아왔었다”라고 회고한다. 머리를 풀어헤친 콘셉트나 의상, 메이크업도 배우 본인이 설정한 것이라 한다.

성균관 스캔들》은 정은궐 작가의 인기 로맨스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사실 유아인이 걸오 역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원작의 ‘걸오’가 지닌 거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원작 팬들의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다. 당시 그의 이미지는 일명 두부상으로 여리여리한 미소년이자 꽃미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아인은 제작발표회에서 “미소년 느낌의 이미지가 강해 연기를 하면서 그로 인한 아쉬움과 갈증이 있었다”며 드라마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하고 뚜껑이 열리면서 초반의 우려를 씻어냈고 이처럼 방영 전과 후의 온도가 달라졌다. 그가 연기한 걸오는 세상을 바꾸려는 청춘이면서 좋아하는 여성을 묵묵히 지켜주는 캐릭터다. 결국 이 캐릭터의 이름을 딴 신조어 걸오앓이를 만들어 내며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고, 방영 기간과 종영 후에도 걸오와 관련한 각종 2차 창작물이 양산됐다.

유아인은 걸오 캐릭터에 대한 생각과 자신과의 공통점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특히 걸오가 홍벽서[3]로서 사회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해줘서 좋았으며,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걸오의 마음이 궁금했고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걸오에 대해 “올라가도 산속의 나무가 아니라 명륜당 앞 나무에 올라가고 누워도 들판이 아니라 중이방 툇마루에 누워 있잖아요? 내부에 온전히 발을 못 담가서 어떻게든 멀어져 있으려고 높이 있으려고 하지만, 그 경계를 벗어나면 동떨어져 있으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리는 아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러한 모습이 “배우로서 제 모습이기도 하거든요”라고 설명했다. 또한 걸오의 인물소개에 ‘조선판 짐승남’이라 써진 것에 대해 “날이 설 때는 확 서지만 평소에는 힘이 없는 짐승”으로 평소에는 “몸에 힘을 풀고 있는 아이”로 해석해 연기했다고 말했다.

성균관 스캔들》은 유아인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20대 대표 배우로서 주목받았고 배우로서 지닌 고유한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팬덤의 크기 역시 확장됐다. 유아인 역시도 《성균관 스캔들》 이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배우로서 살아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한 인터뷰에서는 다소 늦게 대표작을 만난 아쉬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8년 됐다는 얘기할 때마다 창피하고 끔찍해요.(웃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고요. 하지만 뭐 그래도 전 굉장히 만족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건방져 보이겠지만 24살, 이제 뭔가 펼치기 위해 그간 남부러울 것 없는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생각해요. 매니저 말을 들었으면 더 돈도 많이 벌고 더 빨리 인기를 얻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런 부분은 포기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걸오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2010년 10월 13일 ‘연합뉴스’ 인터뷰

2011년에는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완득이》의 주인공 얌마 도완득 역을 연기했다. 작중 도완득은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원작: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기 때문에 유아인은 매일 얼굴에 검은 분장을 하고 촬영을 했다. 그리고 운동을 매우 싫어하지만 도완득이 킥복싱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 킥복싱 훈련을 받았다. 또한 영화에서는 편집됐으나 시나리오에는 야구를 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타격 연습까지 했다고 한다. 훗날 이한 감독이 GV에서 말했는데 캐스팅 당시, 유아인은 야구와 축구 등을 한 경험이 없었고 발차기를 시켰더니 발이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하지만 유아인이 아침 8시부터 해질때까지 킥복싱 훈련을 받아서 머리 위까지 발차기하는 등 실력을 발전시켜 감독의 걱정을 타파했다고 한다.

완득이》는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미리 공개됐고, 같은 해 10월 개봉했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부문에 초청되어 수정곰상 후보에도 올랐다. 유아인은 소설 속 도완득과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이며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고, 선배 배우 김윤석과의 앙상블 역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당해 슬리퍼 히트작으로서 전국 관객 531만 명을 동원하고 제3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또한, 부일영화상을 통해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대표작을 만든 셈인데, 이후 함께 연기한 배우들이나 그를 캐스팅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완득이》를 통해 유아인을 주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아인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너무 착해서 불쌍했어요. 기껏 엄마를 만나서도 애인처럼 구두 사주고, 마침내 버스정류장에서 포옹할 때에도 제 안의 응어리를 먼저 풀지는 못하고 우는 엄마한테 (두팔을 벌리며) ‘제 품에 안기세요’ 하는 모양이 너무 조숙해서 불쌍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완득이를 아이다운 아이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성인처럼 살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이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영화가 완득이의 깊숙한 내면까지 비추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완득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굳이 거기까지 들쑤실 필요가 없는 리듬으로 흘러가는 영화예요. 우리 영화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인물을 그리면서 왜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냐고 투정부리지 않고 미끈하게 다뤘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라고 말했다.

사실 《완득이》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의외의 선택이었다. 대부분 그가 《성균관 스캔들》 이후 트렌디한 로맨스물의 첫번째 남주인공을 연기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유아인은 다시 고등학생을 연기한다는 점에 대해 “요즘 학생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앞섰다”고 털어 놓으면서도 “부담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의 진로를 깨고 싶기에 도전했다”면서 “《성균관 스캔들》 이후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깨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연기 변신’ 그런 거창한 말보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연한 순서를 따르지 않고 싶었어요”라고 덧붙였다. 한편 개봉 즈음에는 영화 잡지에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걸오앓이로 유명세를 탄 소회와 《완득이》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는데, 특기할 만한 문단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정확히 내가 겪은 시간과 경험만큼만, 생경하게 찾아온 인기를 이해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만큼 닳은 채로 ‘완득이’를 만났다. 영화다. 그것도 열일곱 살 소년이란다. 기껏 성인 연기자의 타이틀을 달았는데, 이 아이는 처음 연기를 시작하며 맡았던 드라마 《반올림》의 ‘아인 오빠’보다 더 어린 친구다. 배우의 운명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의되고 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나는 아역 이미지를 벗지 못한 풋내기 배우였고, 미디어는 ‘걸오’ 캐릭터야 말로 성인 연기자로의 진정한 발돋움이니 뭐니 하는 식상한 말들로 내 운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완득이》는 당시 나를 향한 눈들의 기대와 예상을 배신하면서, 동시에 내가 그것들을 떨쳐내고 초연해지도록 돕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런 상태가 절실했다.
잡지 <무비위크> 496호 「유아인 완득이를 만나다 1」

2012년 드라마 《패션왕》에서 주인공 강영걸 역으로 출연했다. 성공에 집착하여 비겁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불운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패션을 모티브로 젊은이들의 성공과 사랑을 그리는 줄거리와 주목받는 캐스팅[4]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초반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가 이어지다 비극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유아인은 이미 엔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러티브와 캐릭터가 잘 섞이지 못해서 아쉬웠고, 시청자 반응을 흡수하는 것과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것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시청률 반등의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한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찌질하고 허세적인 모습을 보여줘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유아인은 본인의 캐릭터가 멋있는 척을 하지 않아 좋았고, 판타지에서 벗어난 인물이라 신선했다고 밝혔다.[5] 허세적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힘이 잔뜩 들어간 연기를 의도했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매력 있게 연기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패션왕》은 마지막 회 촬영 후에도 수정 대본이 나오는 등 힘든 여건 속에서 진행됐는데, 대본상 이야기의 흐름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 유아인은 신세경에게 “이게 우리의, 배우의 운명이야. 우리는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내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영 후 인터뷰에서는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작가와 감독은 내 세계의 신, 내 주인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해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동의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쓴 곳에 내가 가 있어야 하고, 그가 쓴 말을 내가 내뱉어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또한 “현실적으로 나의 신이 불완전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신들이 불완전조차도 완전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걸 의심하면서 일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 그게 배우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번에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숙종으로 출연했다. 새로운 장옥정을 보여주려고 야심차게 기획되었지만 착한 장옥정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 않았고 역사 고증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인 동시에 왕권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카리스마를 내뿜는 정치 10단의 절대 군주를 표현하는 유아인의 연기는 호평 받았다.왕이 섹시한데 비주얼도 폭발한다 특히 드라마에서 김태희와 함께 일명 ‘순정커플’의 달달한 애정씬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극이 아닌 로맨스 사극의 관점으로 본다면 드라마팬들에게 상당히 만족스러운 드라마였기 때문에 종영 이후 커플팬들을 위한 DVD가 발매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화 《깡철이》가 개봉했다. 부산 출신인 안권태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부산 올로케이션 영화이며 유아인을 비롯 대부분의 배우가 부산 사투리를 사용한다. 유아인이 연기한 강철은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며 치매에 걸린 엄마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다. 유아인은 영화의 제목이 《완득이》와 비슷해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읽어 보지도 않았지만, 《완득이》보다 훨씬 더 인물의 내밀한 세계로 들어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본인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선배 김해숙과 엄마와 아들로 만나 훌륭한 앙상블을 이뤘고 강도 높은 액션과 감성 연기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다. 만족스러운 흥행 성적을 얻지 못했지만, 첫 원톱 주연을 맡아 영화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담으로 김해숙은 촬영 이후에도 유아인에 대해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냈는데, 유아인이 김해숙의 생일에 자필 카드와 함께 선물을 사줬고 사석에서도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2.5. 2014년~2016년

유아인은 동년배 배우 중에서도 손꼽히는 연기를 선보이면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20대 대표 배우로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흥행 면에서는 다소 주춤한 것이 사실이었다. 2013년 10월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생각해보면 내 흥행력에 비해 나는 너무 큰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잡지 <Geek>과의 인터뷰에서는 20대가 끝으로 가고 있는데(당시 한국 나이로 28세), 자신의 20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아 갈증이 난다고 밝혔다. 유아인은 이 시기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내가 나한테 질렸다. 관객들도 나한테 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다른 작품을 하려고 해도 자꾸 내가 좋아하는 걸 하게 됐고, 그런 내 자신에 질렸다. 단순히 캐릭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연기 스타일이 일관성이 생긴 것 같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2015년 8월 3일 ‘일간스포츠’ 인터뷰
내 스스로 관객 입장에서 유아인을 바라봤을 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예전에는 ‘당신들이 좋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거 할 거야’라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그게 좋다면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웃음) 나 혼자만의 예술이나 놀이가 아니니까.
잡지 <맥스무비> 2015년 9월호

2014년 2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 더빙을 맡았다. 장형윤 감독이 말한 바로는, 먼저 정유미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놀랍게도[6] 수락을 했고, 정유미가 다시 유아인을 추천했다. 연예인이 더빙했다는 사실에 성우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장형윤 감독은 본래 비전문 성우를 자주 기용했으며 배우들이 거의 노개런티 다양성 영화에 참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유아인 본인도 언론 시사회에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과 우리나라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감독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면서 참여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우아한 거짓말》에 특별 출연했다. 이한 감독과 전작 《완득이》를 함께한 인연이다. 유아인은 이 영화에서 추상박 역할로 출연하여 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을 보자. 대충 아래의 모습으로 영화 내내 등장한다. 특별출연임에도 분량이 적지는 않으며, 영화의 소재처럼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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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드라마 《밀회》에 남자주인공 이선재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상대 여배우 김희애와는 무려 19살 차이가 나 화제를 모았다. 캐스팅 당시 유아인은 영화 《베테랑》에 이미 캐스팅된 상태였고,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유아인이 해외에 있었고 마침 소속사를 옮기는 시점이라 제작사 측에서는 유아인을 캐스팅하기 위해 아는 인맥을 총동원했고, 김희애가 직접 유아인에게 연락을 하기도 했다.[7] 유아인은 천재 피아니스트 캐릭터를 위해 피아니스트의 영상들을 참고하며 실제로 타건했다.[8] 함께 출연했던 배우 윤복인이 말한 바로는, 실제로 타건하되 피아노 울림판을 수건으로 막아 놓아 연주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 후 촬영했다고 한다.인터뷰 기사. 드라마의 클래식 슈퍼바이저가 곡을 선정해 참고할 동영상과 함께 과제를 주면, 유아인은 동영상을 보며 타건 위치와 모션 등을 숙지하고 이처럼 곡에 맞춰 연습을 한다. 그 후 촬영에 들어가면, 건반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연기는 유아인이 직접 하고, 그 위에 대역인 전문 피아니스트의 연주 소리를 입히는 방식이다.기사.

밀회》는 종편에서 상당히 높은 5%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방영 내내 VOD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또한 일본과 중국 등에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다.이거 특급칭찬이야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극중 순수하면서도 돌직구 발언을 하는 이선재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연기력을 또 한 번 인정받아 대표작을 추가했다. 배선영 칼럼니스트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 탓에 그간 유아인에 대한 평가가 호불호로 나뉘었었으나, 《밀회》를 통해 그가 아주 귀중한 배우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유아인 본인도 《밀회》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드라마 종영 이후 이례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긴 소감문을 남기기도 했다.(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방영 전 인터뷰에서는 순수하고도 평범하지 않은 스무 살[9]인 데다, 예술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인터뷰 기사. 제작발표회에서 한 발언을 덧붙인다면, 그간 반항기 어린 인물들을 연기하느라 각목을 들거나 복싱을 했는데, 섬세하게 음악을 표현하는 연기를 해서 예술적으로 큰 쾌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방영 후 잡지 <더블유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는 “《완득이》 이후로 한동안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맴도는 느낌이었는데 《밀회》를 통해 한 발짝을 떼게 된 것 같다”고 표현했다.

2014년 3월에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크랭크인했고,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맡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다. 유아인은 《밀회》 촬영 전 이미 《베테랑》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하지만 제작사에 《밀회》에 반드시 출연하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고, 《밀회》 후반부와 《베테랑》 초반의 촬영을 동시에 소화했다. 제작사 측은 유아인을 위해 스케줄 상 액션이나 어려운 장면의 촬영은 뒤로 미루는 등 배려를 해줬다.인터뷰 기사. 후에 홍보 인터뷰에서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처음엔 덜컹덜컹했다. 숨기려고 많이 애썼다. 집중 못 해서 어설프게 연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됐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선재를 연기할 때는 굉장히 편했다. 늘 해오던,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이었다. 반면 조태오는 너무 어려웠다. 첫 악역 도전이지 않았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이 2013년 《깡철이》 홍보 차 부산국제영화제에 찾았을 때 《베테랑》의 시나리오를 건넸다. 당시 조태오의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류승완 감독은 “배우들이 광고에도 나와야 하고 이미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니깐 섭외가 쉽지 않더라”며 “실제 몇몇 배우에게 보내고 바로 거절당했다”고 회상했다. 와중에 부산국제영화제 사석에서 유아인을 만났던 것. 유아인은 영화에 관심을 보였고, 류승완 감독에게 소속사가 아닌 자신의 개인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조태오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적혀있었고, 유아인은 설명을 다 빼고 더 시원하게 나쁜 놈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류승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화 얘기를 했는데 관심 있어 했죠. 시나리오를 보냈고, 바로 연락을 받았어요. 아인이가 ‘감독님, 이 인물 설명이 너무 많아요. 그냥 나쁜 놈 아니에요?’라고 했죠. ‘그거야, 네가 거절할까봐 설명을 완전 많이 붙여넣은 거지!’라며 쾌재를 불렀어요.” 그렇기 때문에 류승완 감독은 <영화는 수다다>에서 유아인에 대해 “복덩어리가 굴러들어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한 보통 배우들은 악역을 연기할 경우 해당 캐릭터가 악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유아인은 오히려 “그냥 나쁜 놈이면 안 돼요?”라고 말해 고마웠다고 전했다.

사실 유아인은 평소만큼 자신있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스타일로 악역을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본인 내면에 있는 천진함과 소년스러움을 활용하여 나쁜 짓을 해도 흡사 아이가 벌레 괴롭히듯이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캐릭터를 “진짜 철이 없고 생각이 없는, 그래서 더 무섭고 더 악독”하며 “돈과 권력이라는 온실 속에서 잘못 길러진 화초같은 존재”로 해석하며 연기했다. 조태오의 의상과 관련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으며, 날선 느낌을 원한 감독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접한 재벌 2·3세는 다들 살이 도톰하고, 뺀질뺀질한 느낌”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5kg을 찌우기도 했다. 영화 후반 명동 싸움씬을 촬영할 때는 어깨근육이 파열되는 부상도 당했다. 어쨌든 이렇게 고생한 덕인지, 2015년 8월 5일 개봉[10]한 《베테랑》은 8월 29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최종적으로 1,3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면서 2015년 개봉한 영화 중 흥행 순위 1위에 랭크됐다.

2014년 7월 《베테랑》의 촬영이 끝난 후에는 영화 《사도》가 크랭크인했다. 2014년 5월, 영화 《사도》의 출연확정 기사가 떴을 때는 화려한 라인업[11]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유아인은 사도세자 역으로 10대 중반부터 뒤주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기했다. 촬영 중 머리를 박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돌에 박았고 그때 머리가 깨지고 진짜 피를 흘리면서 부상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 시사회에서 “육체적 고통보다는 감정적인 연기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인물이 느끼는 외로움과 운명을 거역하고 광인으로 변하는 모습을 적절하게 연기하는 데 많이 애를 썼다고 털어놨다. 《사도》는 2014년 10월 크랭크업했다.

영화 《베테랑》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조태오 캐릭터로 연기력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던 2015년 9월 16일 《사도》가 개봉했다. 영화 공개 후 평단과 기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고, 전국 관객 620만을 넘기며 2015년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4위에 올랐다. 사실 작품이 연달아 공개되었고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의 임팩트가 커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오히려 두 영화에서 모두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연기 잘 하는 젊은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유아인은 《사도》에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스럽다고 표현한 바 있다. 젊은 배우가 좋은 배역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깊은 감정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2015년 홍보인터뷰에서는 《사도》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려왔으며 ‘12년간 준비했다’고 말할 정도로 조금씩 추구해왔고 걸어왔던 길의 정점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연기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이 큰 데다, 불안하고 어두운 청춘 캐릭터를 표현하기 좋아했던 유아인으로서 20대 마지막(촬영 당시 한국 나이로 29세)에 만날 수 있었던 정점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사도는 제가 해왔던 그리고 그리고자 했던 인물의 끝판왕이에요. 정점에 있는 작품이죠. 톤도, 사도라는 인물에 대한 성질도 그래요. 불안한 청춘, 반항아 그런 모든 것들의 집약체 같은 인물이에요.
2015년 9월 10일 ‘마이데일리’ 인터뷰

2015년은 유아인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해였다. 동년배 연기자 중에선 연기력으로 상위권을 인정받으며 드라마와 영화에서 상당히 괜찮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던 중 《베테랑》에서 훌륭한 악역 연기를 선보여 대중들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인식을 줬다. 연이어 개봉한 정통사극 《사도》에서도 비극적 인물의 어둡고 깊은 감정을 잘 보여줘 믿음직한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최고의 대세 배우로 떠오르며 전성기를 맞았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아인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사도》를 통해 제3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12]을 거머쥐고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2015년을 빛낸 영화배우’ 1위[13]에 오르는 등 커리어적으로 큰 성과를 이뤄냈다. 2015년 12월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밀회》를 지나 《베테랑》과 《사도》에 도달한 지점이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의미심장한 방점이다”면서 유아인은 “필모그래피 내내 이젠 말라붙어버린 ‘청춘’이란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고 단어의 평면에 깊이를 더해 ‘지금 여기’의 청춘의 얼굴을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기사. 같은 해 10월 정시우 기자는 “겸손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그의 행보는 위험한 구석이 있었고, 실제로 그가 내뱉은 말들은 누군가에게 ‘허세’로 평가받기도 했다”면서 《밀회》부터 시작돼 2015년을 거친 유아인의 행보는 “그가 단순히 슈퍼스타에 등극했다는 면보다, 그의 재능과 취향이 보다 넓게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기사.
그 유아인의 소년성에 대해 얘기할 때 모두가 기억하는 장면,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그가 마지막에 꼬마로부터 받아든 질문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로부터 10년을 충실히 채워왔다. 진정 그의 다음이 기다려진다.
주성철 편집장, <씨네21> 1022호 에디토리얼 「유아인 다시 보기」
선명하게 나라는 사람과 나라는 배우를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이 작용했다.《밀회》가 아주 컸다. 《밀회》가 없었다면 《베테랑》도 《사도》도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밀회》는 장르로, 선 굵은 캐릭터로 넘어가는데 거부감이 덜했던 작품이다. 《밀회》로 시작해 《베테랑》과 《사도》로 이어졌던 것 같다.
2015년 10월 8일 ‘노컷뉴스’ 인터뷰

사실 유아인은 위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그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에 《밀회》를 시작으로 《베테랑》과 《사도》를 선택했다. 주간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는 20대의 마지막 한 해에 찍은 세 작품에 대해서 “이십 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안에서 얻은 최대치의 행운이 이번 작품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밀회》의 이선재가 유아인이 가진 소년성의 엑기스였고 《사도》의 사도세자가 유아인이 추구했던 연기 선상의 끝이라면, 《베테랑》의 조태오는 유아인에게 있어 “번외편 같은 인물”이다. 특히 많은 관객들이 《베테랑》을 사랑한 덕분에 본인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을 “다리를 조금 옆으로 찢을 수 있는 배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2015년 7월에 영화 《좋아해줘》가 크랭크인했고 8월부터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촬영에 돌입했다. 영화 《좋아해줘》는 같은 해 10월에 크랭크업했고, 2016년 2월 17일에 개봉했다.[14] 유아인은 연예인병에 걸린 우주대스타 노진우를 연기했으며 까칠한 드라마 작가로 분한 이미연과 커플을 이룬다. 주변을 의식하는 연예인 캐릭터를 위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직접 의상을 골랐는데, 영화 속의 의상이 100% 본인 옷이라고 한다. 영화는 옴니버스식 로맨틱 코미디물로, 유아인에게는 데뷔 이후 첫 로맨스물이다. 본인도 이런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하지만 옴니버스 형식인지라 등장하는 씬이 많지 않다.[15] 그럼에도 배우로서 배우를 연기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으며, GV에서 작품 선택 계기를 묻는 팬의 질문에 답변으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풀어 냈다.
촌스러워요. 촌스러운 일이지만 또 현실적인 일이기도 해요. 그게 뭐냐면 여자 감독님과 함께 해보고 싶다,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 사실 감독님한테 남자 감독님이면 남자 감독님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근데 여자 감독님한텐 여자 감독님이라고 잘 부르거든요, 사람들이. 배우한테도 그래요. 그냥 배우라고 하지 남배우라고 안 하잖아요. 근데 여자 배우들한텐 여배우라고 해요. 그게 여자들이 특별한 존재여서일 수도 있지만 손해 보는 일들이 많아서이기도 해요. 실질적으로 사회 생활 하면서 여성분들이 이 사회 생활에서 아직도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 있지 않다라는 의미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여자 감독님과 같이 작업하면서 같이 힘도 실어 드리고 싶고, 또 여자 감독님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항상 남자 감독님들과만 해왔는데, 조금 섬세하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아무튼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흡족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2016년 2월 26일 압구정 CGV에서 열린 《좋아해줘》 GV

2015년 10월부터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2011년에 방영됐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로 유아인은 여기서 이방원 역을 맡았다. 드라마 《패션왕》에서 호흡을 맞췄던 신세경과 재회했고 김명민, 천호진을 비롯해 변요한, 윤균상 등과 함께 열연했다.[16] 본편 전에 방영된 스페셜 방송에서 유아인은 차기작으로 50부작을 선택했다고 하면 선배들과 스태프들이 “왜?”라고 물었는데, “이방원 역이에요”라고 하면 “네가 할 만한 이유가 있구나”라고 반응했다고 전했다. 《육룡이 나르샤》는 6개월간 50부 연속 1위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2016년 3월 22일 대장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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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은 순수하면서도 혈기 넘치는 소년 이방원의 모습부터 욕망과 광기를 폭발시키며 왕위에 오르지만 권력 투쟁 속에서 혼란과 좌절을 겪으며 고뇌하는 이방원의 모습까지 선과 악으로 단정할 수 없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하며 유아인만의 새로운 이방원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아인은 종영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방원은 이미 많은 선배들이 연기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어떻게 변주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달의 이면이 있듯” 강인하고 냉혈한 모습과 더불어 인간적인 고뇌와 연약함을 함께 포착하려는 등 캐릭터를 “다른 면에서 바라보려고 했어요”라고 밝혔다. 또한, 이방원을 연기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였고 연기적으로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찍으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낀 신선한 경험이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종영 후에는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2.6. 2017년~현재

2017년에는 1933년과 2017년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판타지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 1인 2역을 맡았다. 2017년의 한세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지만 아픈 과거와 작가생활의 여러가지 고충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슬럼프를 겪는 반면, 1933년의 서휘영은 경성에서 활동하는 천재 작가이자 의사[17]이자 정체를 숨기고 비밀리에 활동하는 독립운동가이다.

유아인이 맡은 두 캐릭터의 공통분모는 글을 쓴다는 점으로, 제작발표회에서 작가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특이한 캐릭터 설정이 있어서” 끌렸다고 말했다. 특히 이야기의 큰 축 중 하나는 현재의 청춘들이 과거 독립을 위해 희생했던 청춘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종영 후 2019년 유아인은 이러한 독립운동가를 연기한 것에 대해, 그들의 고충이 “우리가 감히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우리가 영웅으로 칭송하고 애국지사로 명명하는 사람들도 한 인간으로서는 외롭고, 절망스러웠을 것이라 봤기에 그들의 이면에 담겨진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소회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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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2회

같은 해 9월,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에서 유통 회사 알바생이자 작가 지망생이며 섬세하고 예민한 청년 이종수 역을 맡았다. 약 5개월 간 촬영이 진행됐고, 2018년 5월 17일에 개봉됐다. 이에 앞서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5월 16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치렀다. 《버닝》은 미스터리를 영화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시키는 작품으로, 러시아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안톤 돌린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안다는 불가능성에 관한 심도 깊은 심리 스릴러”이자 “우주의 큰 수수께끼인 인간에 대한 그림”이라고 평했다. 유아인은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말을 거는 영화”라고 표현한 바 있고, 2018년 7월 ‘하퍼스바자’ 인터뷰에서는 “우린 모든 걸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 상태를 해체하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객에 따라 결이 달라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개봉 당시에는 작품 설명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버닝》이라는 영화를 소개함에 있어서 최대의 위험성은 길잡이를 제시하는 거에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유아인에게 《버닝》은 생애 처음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고 다양한 해외 관객들과 만난 작품일뿐만 아니라, 2018년 5월 무비토크에서 “성장이 아니라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만큼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의 말처럼 “영화의 공기 같은 붙박이 캐릭터”인 종수를 연기하기 위해 “주어진 상황과 어우러지는 방식들이 무엇인지만 생각”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버닝》에서의 연기는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베테랑》 조태오의 연기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고, 무언가 강렬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어떤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창동으로부터 “그냥 있으면 돼, 그냥 존재해”라는 디렉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물이 어떨 것이다는 정답을 놓고 시작하기보다 그때그때의 느낌을 중요시하면서 촬영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창동 특유의 디렉팅인 수많은 테이크와 같은 씬의 반복을 거치며 “이질감이 없는 느낌”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 모더레이터인 박혜은 편집장은 촬영이 힘들지 않았냐고 질문했다. 이에 유아인은, 연기할 때 시간이 부족해서 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창동의 현장은 그런 면에서 달랐기 때문에 배우로서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말했다.[18] 다른 인터뷰에서는 세상에 모호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고 생각하고 영화 또한 같은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의도나 계산 없이 그저 느끼며 진행되는” 촬영 현장이 편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의 시나리오와 트리트먼트가 나오기 전 이창동으로부터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만 전달받았을 때 출연을 결정했다. 유아인이 맡은 종수는 감정을 숨기는데 있어서 극단적인 인물로 대사도 거의 없다. 이창동은 관객들에게 유아인이 분노를 폭발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기에 오히려 종수 역할을 맡으면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해 캐스팅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아인이 맡은 역할에 대해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다 보니 배우로서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유아인도 칸 현지 라운드 인터뷰에서 “관객이 종수의 세상에 들어가 그 공기를 느끼게 하는게 내 역할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표현으로 전달하기보단 존재하는 행위 자체를 연기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씨네21> 인터뷰에서는 평범한 종수를 연기하는 데 “평범함을 정의하고 그것을 표현한 게 아니라 평범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속에서 50kg대까지 살이 빠졌고 전체적인 모션은 그의 표현 그대로 “시각적으로 멈춰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나뭇가지처럼, 갈대처럼 움직이는 모습”으로 보여진다.[19]

이런 이유로 “연기하지 않는 것 같은 연기로 불안과 허무가 가득한 청춘을 완벽하게 그려 낸 유아인에겐 어떤 식으로든 이 영화가 인생의 이정표로 남을 게 분명하다”(심규한), “최소한의 연기로 최대한의 표현력을 보여줬다”(이승미), “《버닝》에서 유아인은 절제해서 오히려 타오른다”(정시우)라는 평가를 들었다. ‘더 가디언’의 저명한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유아인은 종수로서 굉장한 연기를 선보인다”라고 했으며, ‘사이트 앤 사운드’의 제시카 키앙은 “영화 전체의 무게를 종수의 굽은 어깨 위에 지고 가야 하는 이는 유아인이다. 그는 (감정을) 놀랄만큼 완벽하게 절제하여 대부분을 수면 아래 놓았다. 그럼에도 (감정의) 덩어리는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지고, 유아인은 결국 관객의 마음을 무너뜨린다”라고 말했다. ‘버라이어티’의 가이 로지는 “조용하게 웅장한(quietly magnificent)”, ‘스크린데일리’의 팀 그리어슨은 “놀랍도록 절제하는(spectacularly stoic)”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자비에 르헤페르는 프랑스 앵테르에서 유아인을 “천재적인 배우”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알게 되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에서는 그의 연기를 2010년대 섬세한(subtle)[20] 영화 연기 중 하나로 꼽으면서 유아인의 ‘less is more’ 식의 접근법이 영화에 잘 맞아떨어졌다고 보았다. 이밖에도 유아인은 뉴욕 타임스’에서 올해의 배우 12인 중 한 명으로 뽑히는 등 여러 매체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유아인은 가장 일상적인 일을 인상 깊게 표현했다. 물감이 마르고 페인트가 굳는 평범한 현상을 매혹적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 그는 작가가 꿈인 대학 졸업생이 복수심에 불타는 스토커가 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점점 고조되는 스릴러인 이 영화에서 그는 말하기보다 주로 듣거나 본다. (중략) 유아인은 카리스마 넘치는 한국의 톱스타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카리스마 없이 멍한 모습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그가 잘생긴 외모로 관객을 사로잡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해다. 작품이 끝나고 남는 것은 암울하고 충격적인 인물이다. 말라가는 물감은 마지막에 근사한 추상화가 됐다.
2018년 12월 5일 ‘뉴욕 타임스’ The Best Actors of 2018
영화에서 불타오르고 산화한 영혼이자 길을 잃고 억압받는 종수를 연기한 유아인은 화려한 연기를 가장 최소한으로 선보인다. 유아인의 종수는 깊고 어두운 곳을 흐르는 잔잔한 물과 같으며, 흐릿한 안개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하는 이의 표상이다. 흠잡을 데 없이 보장된 그의 연기는 파괴적이면서도 양면적이고 수수께끼같은 영화의 피날레를 효과적으로 만든다.
2018년 12월 20일 ‘더 플레이스트’ The Best Performances of 2018

유아인은 《버닝》 이후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긍정적인 고민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은선 기자가 모더레이터로 나온 5월 29일 GV에서의 말을 빌리면, 이 영화에서처럼 표현의 의지를 버리는 연기도 “카메라를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것 또한 표현이 아닌가”라는 딜레마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랑받을 만하고 시선을 더 끌만한 연기를 위해 자신을 끌고 온 건 아닌지 고민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배우의 일이 “누군가에게 어떤 빛을 보여주는 일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빛에 다가가기가 힘든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큰 결핍과 불행을 가져다주는 일일 수도 있잖아요?”라고 반문하면서 본인도 극중 벤은 아니었는지 돌이켜보게 됐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자 맡은 인물을 통해 이 세계를 드러내는 데 일조하는 사람으로서”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고 한다.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는 그간 “‘유아인은 남들보다 더 뜨거워’라는 상태를 내가 너무 철저하게 수행했던 것 같아” 혼란스러운 시기에 《버닝》을 만나 이완될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상영 이후 이뤄진 팬들과의 만남에서는 이 작품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떻게 세상에 존재할 것인가, 배우로서 직업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등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큰 변화를 겪으면 사람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거쳐야되고 다음을 제시할 수 한다는 점에서 이정표가 되어준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다라는 건 배우로서 큰 영광이고 기쁨이었어요. (중략)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정적인 의미의 터널이 아니고,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고 어떤 순간에 놓여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요. (중략) 한발짝한발짝 정성스럽게 내딛으면서 여러분들에게 공허하지 않고 의미있는 시간들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2019년 6월 1일 영등포CGV에서 열린 《버닝》 단관

또한 1997년 외환위기 당시를 그리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캐스팅 돼 국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베팅하는 금융맨 윤정학을 연기했다. 유아인은 본인 캐릭터의 기능에 대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바람잡이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기회주의자이고 정의롭지 않지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자책도 하고 회한도 있는 인물”이라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접근했다. 연기를 할 때는 캐릭터의 전사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아 각 씬에서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희열, 자책, 허망함의 순간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프리젠테이션 씬의 경우 사이비 지도자가 믿음을 설파하는 느낌으로 촬영했고, 주변의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연기를 연습했다. 기사 때문에 유아인은 전작 《버닝》이 갑옷들을 다 벗은 느낌이었다면 《국가부도의 날》은 그 갑옷을 다시 챙겨입어야 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국희 감독은 유아인의 인물 탐구에 대해 얘기하며, “정학이라는 캐릭터가 어렵고 쉽지 않은 인물인데 소통을 열심히 하는 배우였어요. 굉장히 질문을 많이 했어요”라고 말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2018년 3월에 크랭크업하고 11월 28일에 개봉했다. 유아인은 2월 말 촬영에 합류했다. 《버닝》을 촬영하고 있을 때 제안받아 거절하려 했지만, 최국희 감독과 미팅을 한 후 아픈 역사를 다루는 것과 관련해 감독을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전작이 끝나자마자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든든한 선배들이 함께 하고 “IMF 구제금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리는 이야기의 일원으로 참여할 기회”라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또한, 극중 윤정학은 그 시절에 있었을 법한 청춘임과 동시에 오늘날 기성세대의 한 유형이다. 따라서 유아인은 캐릭터에 투영된 욕망을 보여줌으로써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기성의 질서가 후세대에 어떻게 전이됐을 것인지 생각하게 됐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어떻게 나를 결정하고 살아갈 것인지, 돈에 대해선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배우 김혜수는 유아인이 남자배우 중심의 작품이 많음에도 이 영화를 택해 고맙다고 전했고, “아인이가 맡은 윤정학 역은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작품의 메시지에 동의하고 출연한 행보도 유아인이니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2019년에는 단편영화 《Better Than Tomorrow》, 《서식지》 등을 연출한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소리도 없이》에 캐스팅됐으며 7월부터 9월까지 약 두 달여 간의 촬영에 임했다. 범죄조직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태인 역할에 맞게 삭발을 하고 15kg 이상을 찌웠다(영화 크랭크업후 2020년에는 다시 20kg 정도를 감량한 상태). ‘뉴스에이드’에 의하면 저예산 영화임에도 유아인이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영화 관계자들은 관객 동원력이 큰 배우가 엄청 적은 금액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저예산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드문 일로, 기특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유아인이 《소리도 없이》 출연을 결정을 한 데에는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겠지만, 《소리도 없이》의 작품성을 높게 평가한 이유가 크다. 이전부터 유아인은 작은 규모, 신인 감독의 영화 등 주류와 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주관에 의해 작품을 선택하는 독자적인 필모그래피를 그려왔고 이를 통해 인기만 쫒는 배우가 아니라는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 《소리도 없이》 출연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하는 행보이다.

같은 해 10월부터 12월까지는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며 단편 영화 《Jin》을 연출한 조일형 감독의 데뷔작 《#살아있다[21]을 촬영했다. 통제 불능이 된 도시에서 고립된 채 생존한 게이머 준우를 연기했다. 영화는 2020년 6월 24일 개봉했다. 《#살아있다》는 작품의 평가완 별개로 흥행에 성공했다. 2020년 코로나19 심각 단계 격상 이후 첫 100만 돌파 영화로 COVID-19로 얼어붙었던 영화계에 활력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국내에서 최종적으로 190만을 동원하였다. 2020년 9월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는데, 공개되자마자, 한국 영화 최초로 넷플릭스 글로벌 무비 차트 1위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로써 《#살아있다》는 한국에서 제작되는 드라마 및 영화 콘텐츠를 통틀어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 넷플릭스 1위로 등극된 첫 사례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는 새진리회의 교주 정진수를 맡아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헤어스타일과 분위기, 말투와 행동까지 전작의 인물이 전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잘 연기했다는 평이 많다. 유아인 또한 "몇 가지 키워드, 몇 줄의 설명만으로 이미 끌림이 생겼다. 책(대본)을 보기도 전에 마음이 갔고, 보고 나서는 미쳐버렸다."라고 밝혔다. #


[1] 이때의 인기에 힘입어 디시인사이드 유아인 갤러리가 개설됐다.[2] 최연소 웰터급 동양챔피언이다. 별명이 무려 링의 아이돌이자, 냉혈 꽃사슴이었다.[3] 홍벽서는 문제만 제기할 뿐 대응책은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그게 청춘이잖아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다 보면 해답에 접근하겠죠”라는 대답을 했다.[4] 20대 대표 배우로 떠오른 유아인을 비롯하여 당시 충무로 괴물 신인 이제훈, 《지붕 뚫고 하이킥》과 《뿌리깊은 나무》의 신세경, 첫 정극에 도전한 소녀시대 권유리.[5]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본인도 소위 ‘백마 탄 왕자’ 역을 해낼 수 있다는 호기로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6] 장형윤 감독은 《케세라세라》를 보고 팬으로서 정유미에게 시나리오를 건넸지만, 유명한 배우이기 때문에 답변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7] 제작사 드라마하우스 대표에 따르면, 유아인을 캐스팅하려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동원했다고. 그 과정에서 김희애도 해외에 있는 유아인에게 캐스팅 전화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가 유아인이 ‘JTBC 진짜 독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밀회》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할 정도였다고. 제작사 대표는 그렇게 노력하면 캐스팅도 할 수 있고, 좋아지는구나 여러 측면에서 경험하게 됐다고 한다.[8] 피아노를 연주할 때의 표정은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동영상을 참고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9] 극중 이선재는 94년생이다.[10] 2014년 하반기 개봉을 준비했으나 영화의 높은 완성도로 인해 CJ E&M이 2015년 텐트폴(흥행을 기대하는 영화)로 미뤘다. 2015년 4월 23일에 개봉한 《어벤져스》의 상영기간과 겹치는 5월 14일 개봉을 발표했었던 바 있지만 《미션 임파서블》의 개봉일이 확정되면서 《베테랑》의 개봉일도 그와 비슷한 시기인 8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어쨌거나 블록버스터 외화들이 개봉하는 시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기를 노린다는 부분에서 영화의 완성도에 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11] 이준익 감독, 국민배우 송강호, 유아인, 국민 여동생 문근영, 김해숙 등.[12] 유아인은 20대 나이에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세 번째 배우이며,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남배우들 중 첫 번째 수상자다. 그만큼 젊은 배우가 송강호, 황정민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겨뤄 수상했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은 점이다.[13] 같은 기간 동일한 기관에서 조사한 ‘2015년을 빛낸 탤런트’에는 4위에 올랐다.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배우로도 선정됐으며, 이듬해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파워 셀러브리티에 전체 2위, 배우 중에서는 1위에 랭크됐다. 여담으로 경제주간지 <매경이코노미>에서는 유아인을 2015년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14] 제목을 정하는 데 우여곡절이 있었다. 본래 ‘해피 페이스북’이었으나 실제 회사명과 같기 때문에 법적 소송의 위험이 있어서 ‘해피 로그인’으로 바꿨다가 최종적으로 ‘좋아해줘’로 확정했다.[15] 이러한 이유로 유아인의 로코에 대한 팬들의 갈증을 더욱 키웠다는 말도 있었다. 분량을 비롯 여러 아쉬움이 있으나, 팬덤 내에서는 팬들에게 주는 깜짝 선물로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16] 50부작 사극인지라 이 밖에도 많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특히 조연과 특별 출연에도 인지도 있는 연극 및 뮤지컬 배우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17]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이긴 하지만 문학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자퇴를 하였기 때문에 정식 면허는 없다.[18] 이 말 뒤에 그는 “이렇게 말해야 다른 배우 분들도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시려고 하시겠죠” 라고 농담을 붙이긴 했다.[19] 5월 24일에 열린 GV에서는 이지혜 기자가 극중 종수의 걸음걸이 등 모션에 대한 질문을 하자 “중력을 온몸에 받는 듯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20] 감정을 외부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묘한 심리를 은근하게 드러내는 연기를 뜻한다.[21] 개봉 전 제목은 《얼론(#ALONE)》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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