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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colbgcolor=#fff,#1f2023>인형의 집 | ||
A Doll's House | |||
국가·소장 | 국가: 노르웨이 | ||
등재유형 | 기록유산 | ||
등재연도 | 2001년 | ||
제작시기 | 1879년 | }}}}}}}}} |
Et Dukkehjem / A Doll's House
1. 개요
헨리크 입센의 1879년 작 희곡.사실주의 연극의 초기 대표작으로 불리는 작품. 현모양처 프레임 속에서 '인형'에 지나지 않았던 여성 노라의 성장과 해방을 그린다.
2. 줄거리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노라는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남편인 토르발 헬메르(헬머)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1] 그녀는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귀여운 딸로, 결혼 후에는 남편의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세 아이들 이바르, 보비, 에미의 어머니로 사는 것만을 생각하며 그것이 여자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부하직원 닐스 크로그시타가 찾아온다. 사실 노라는 신혼 시절 남편 헬메르가 중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가 없자 아버지의 사인을 날조해 차용증을 써서 치료비를 구한 적이 있었다. 크로그시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헬메르에 의해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해고되면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소문내러 온 것.
크로그시타는 과거 금융인으로써 저질러서는 안 될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고(크로그시타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노라가 한 행동 -서명위조-보다는 조금 덜한 잘못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평판을 상실하여 사채업과 같은 음성적인 일에 종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노라와의 과거 금전거래가 근거)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 자라나자 아버지의 나쁜 평판이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 두려워 다시 건전한 삶을 살기 위해 헬메르가 일하는 은행에 들어가 수년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헬메르가 은행장으로 승진한 뒤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인간은 신뢰할 수 없다'고 해고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헬머가 크로그시타를 해고하려던 또 다른 이유가 가관인데, 두 사람이 지금은 공적으론 상사와 부하 관계지만 원래는 친구였던 것 때문에 자꾸 크로그시타가 헬머에게 격의없이 '이보게 헬머~' 하고 말을 걸자 그게 자존심이 상해서... 남편에게 순종적이던 노라 역시 이 이유에 대해서는 '그건 너무 쪼잔하다'고 놀랐을 정도. 노라는 결국 크로그시타의 해고를 취소해달라고 헬메르에게 요구하나, 사정을 모르는 헬메르는 무시했고 결국 크로그시타는 해고된다.
해고된 크로그시타는 자신이 선언한 대로 노라의 비밀을 헬메르에게 폭로하는 편지를 보낸다. 분노한 헬메르는 당신이 나를 파멸시킬 뻔했다고 소리지르고, 노라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며 노라의 양육권을 뺏으려 든다.[2][3]
그러나 크로그시타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어찌된 일이냐 하면 크로그시타는 젊은 시절 노라의 친구 크리스티네 린데와 연인관계였으나,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크리스티네는 장래가 불투명한 크로그시타 대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크로그시타도 이후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나 여전히 그 사실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크리스티네는 크로그시타에게 노라를 괴롭히지 말고 마음을 고쳐먹으라 충고하며 재결합을 제의하고(작중 시점에서는 둘다 배우자가 죽고 없었다) 해묵은 앙심이 풀린 크로그시타는 노라를 협박할 생각을 버리게 된다.
여기서 크로그시타와 크리스티네 사이의 관계와 감정 변화 역시 (조역간의 관계이긴 하지만) 작품 내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부분 중 하나이다. 처음에 크로그시타는 다시 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보려던 수년간의 노력이 헬메르에 의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자 '이렇게 된 이상 철저히 협잡꾼으로 살아가주지' 하는 심산인지 헬메르에게 (노라의 행적을 폭로하는) 협박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헬메르를 마저 협박하여 굴복시키기 위해 헬메르의 집을 방문했다가 크리스티네를 만난 것.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난 크리스티네가 약간 반갑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과거에 차인 앙심 + 헬메르가 크리스티네에게 주겠다고 했던 일자리가 원래 크로그시타가 일하던 자리(즉, 크로그시타의 자리를 뺏어서 크리스티네에게 준 격)인데 대한 불쾌감으로 퉁명스럽게 대한다. 하지만 크리스티네가 차분하게 자신의 입장과 진심을 설명하고 결국 재결합을 제안하자 크로그시타 역시 해묵은 앙심을 품고 감격한다.
하지만 그 감격도 잠시이고, 크리스티네의 청혼에 기뻐하던 크로그시타는 곧 절망에 빠진다. 왜냐하면 이미 헬메르에게 협박 편지를 보냈기 때문. 크리스티네와 재결합하여 아이들에게도 어머니를 만들어주고 자신도 크리스티네와 함께 다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직전에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협잡꾼의 길에 들어서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신은 내가 당신 친구인 노라에게 방금 전 무슨 짓을 했는지 상상도 못할거야"(=내가 저지른 비열한 짓을 알게 되면 당신은 나와 결혼해주지 않을거야)라고 절규하는 크로그시타에게 크리스티네는 "(노라에게 들어서) 알고 있으며, 사람은 종종 절망에 몰리게 되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다"고 이해의 뜻을 전한다. 크로그시타는 이 때문에 잠시 "혹시 당신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되지만 "한번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 본 사람은 다시 남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값싸게 팔아버리지 않는다"는 크리스티네의 설명에 완전히 납득하게 된다. 그리고 크로그시타 자신이 '헬메르에게 내 편지는 단지 해고에 대해 항의하는 편지일 뿐이니 보지 말고 돌려달라고 하겠다'면서 자신으로 인해 노라와 헬머 부부가 파국으로 몰리는 상황을 막으려고 하지만, 크리스티네는 오히려 노라와 헬메르가 계속 거짓 위에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 부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두 사람 역시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크로그시타는 이 설득에 응해 편지를 돌려받는 대신 증거를 동봉하여 '앞으로는 협박하지 않을테니 안심하라'는 새 편지를 보낸다.
이리하여 크로그시타가 이 사실을 다른 데 폭로하지 않겠다면서 증거인 차용증을 도로 보내주자 헬메르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 노라에게 다시 애정을 보낸다.
2.1. 결말
이런 해프닝을 겪으며, 노라는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지만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한낱 인형이나 애완동물을 대하듯 사랑했으며, 자신이 '인형의 집'에 살고 있었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노라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한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기 위해, 헬메르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떠난다.3. 분석
이 연극은 오랫동안 사실주의 연극으로 해석되었고 가정 내 불화를 원인으로 보았다. 당시에는 영웅과 가문의 위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희곡이 많았다. 그러나 중산층 가정에서의 작은 해프닝과 그로 인한 인간관계의 변화, 애 딸린 엄마가 정해진 직업도 없는데 집을 나간다는 당시로서는 암울하고 파격적인 결말까지 어우러진 사실주의 희극의 시초격으로 평가받다.또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도 가장 유명한 희곡 중 하나이다. 이전까지 페미니즘 문학이나 희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작품은 암시적, 은유적 측면에서 돌려서 표현하거나 반대로 페미니즘적 메시지에 치중한 나머지 기본적인 문학성이 떨어져 영향력을 크게 끼친 작품은 없었다. 반면 인형의 집은 사회적 분위기[4]도 준비가 되어있었으며 문학성도 담보하고 있어 페미니즘 문학의 본격적인 시발점으로 꼽힌다. 작가 자신도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온갖 희생을 견뎌낸 어머니에게 깊이 공감하고 있었으며, 아내와 장모, 여사친 모두 페미니스트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인형의 집'은 그런 관점에서 쓰인 소설이며 여성해방운동에도 영향을 준 작품으로서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실제로 이 작품 이후 입센은 당대로서는 극히 파격적인 유령을 저술한다. 노라가 집을 나와 주체적인 삶을 살려 한 것과 반대로 유령에서의 여인과 아들은 전통적, 기독교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파멸을 맞는다.
마오쩌둥의 아내인 장칭과 상당히 깊은 연관이 있다. 장칭은 이 연극의 노라 역을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고, 노라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다. 당연히 이 연극 자체도 매우 선호했다.
'인형의 집'은 굉장히 많은 파장을 일으켰으며 수많은 2차 창작이 이루어졌다. 집 나간 노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다루는 내용들인데, 속편의 속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 다만 헬메르가 노라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기보다 은연중에 자기보다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며 애완동물을 귀여워하듯 노라를 귀여워하고 있다는 것이 암시된다.[2] 단순히 심한 말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미 노라가 해고를 취소하라고 경고했을 때도, 노라가 범법을 저지른 것을 알았을 때도 왜 그랬는지 사정을 들어볼 생각도 않고 무시한 것은 헬메르의 선택이다. 노라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사유 자체가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질 것만 생각하여 노라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은 대등한 인간이 아니라 애완동물이나 도구처럼 그녀를 대했다는 증거이다.[3] 물론 사정이 어찌됐든 범법을 저질렀으므로 용서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 윤리적 이유에서만 화낸 것이라면 차용증을 손에 넣어 안전해지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자기만 안전해진다면 노라의 입장이나 심정이 어찌되든 알 바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헬메르는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인간은 지금 개심한 듯 보이더라도 신뢰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극히 강경한 도덕주의자인데, 정작 자기 자신의 문제에서는 크로그시타에게 협박당하는 상황이 되자 은행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크로그시타에게 굴복하고, 노라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겠다면서도 세간의 시선 때문에 공식적인 이혼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즉 타인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보신을 위해 부도덕한 타협과 굴복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쉽게 말해 내로남불을 일삼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4] 인형의 집을 쓸 당시는 여성해방운동이 한창 대두되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