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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

영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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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파일:Walt_Whitman,_steel_engraving,_July_1854.jpg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월터 휘트먼
Walter Whitman
출생 1819년 5월 31일
뉴욕 주 롱아일랜드 헌팅턴 시 웨스트 힐스
사망 1892년 3월 26일 (향년 72세)
뉴저지 주 캠든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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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시인, 언론인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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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학력 브루클린 공립 학교[1] (졸업)
활동 기간 1836년 – 1892년
묘소 뉴저지 캠든 할레이 묘지
장례일 1892년 3월 30일
사조 리얼리즘
신체 182cm
종교 무종교[2]
부모 아버지 월터 휘트먼 시니어
어머니 루이사 반 벨소르 휘트먼
배우자 없음[3] }}}}}}}}}

1. 개요2. 생애3. 주요 작품4. 평가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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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 자유시의 아버지라 불리며, 미국의 국민 시인이자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1819년 5월 31일 미국 롱아일랜드 헌팅턴타운 근교의 웨스트힐즈에서 퀘이커교 부부의 9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가정이 가난하여 월트 휘트먼의 가족은 그가 4살일 때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사했고 월트 휘트먼은 11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잡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호사, 인쇄공, 신문사 밑에서 일하면서 인쇄술, 조판 등을 배웠다. 그의 가족이 웨스트힐즈에 다시 돌아갈 무렵, 그는 부르클린에 남아 롱아일랜드 스타에서 일했다. 지역 사회의 토론에 참여하거나 뉴욕 신문에 자신의 시를 등단하기도 했다. 1835년 브루클린을 떠나 뉴욕 시에 이주하여 어린 시절에 조판을 배운 경험을 살려 조판공으로 일하다가 1836년에는 가족이 있는 롱아일랜드로 돌아가서 16세의 어린 나이에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교사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그는 1838년 뉴욕 헌팅턴에 가서 주간지인 '롱아일랜더'를 창간했고 1842년에는 '뉴욕 오로라', 1846년에는 '브루클린 이글'의 편집인이 되었다. 1848년에는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에서 일하면서 미시시피 강과 오대호를 여행했다. 휘트먼은 여러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을 썼지만 그에게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휘트먼은 언론인을 그만두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처음에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다가 서사적인 자유시를 쓰기로 하였다. 그리고 1855년 데뷔작을 완성하여 형제들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은 "읽을 가치가 없다."였다. 하지만 휘트먼은 이 시집을 '풀잎 (Leaves of Grass)'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시는 후대에 불후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작품이 공개될 당시에는 성적인 표현과 하류층의 언어 습관/생활상이 생생히 살아있던 내용 때문에 외설적이라는 말이 많았고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두번째 판본이 만들어졌을 때에도 출판업자가 출간하려 하지 않았다.[4][5]

휘트먼은 시가 팔리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언론인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1857년부터 1859년까지 브루클린 데일리 타임즈에서 일하다가 남북 전쟁이 터지자 그는 '두드려라! 두드려라! 북을 (Beat! Beat! Drums)'을 발표했다. 그리고 1862년 북부군에 참전하여 워싱턴에서 지원 간호사로 일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휘트먼은 친구의 도움으로 내무국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상원의원인 제임스 하런에게 업무 태만을 명분으로 해고 통보를 받고[6] 1865년 법무장관 사무국으로 이전했다. 이 즈음에 남북전쟁에 관한 시인 '북소리 (Drum Taps)'를 지었으며, 1866년 '오 캡틴, 마이 캡틴 (O Captain! My Captain!)'을 지어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바쳤다.

1873년 휘트먼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같은 해 어머니가 사망하여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는 말년애 뉴저지캠든으로 이사하여 동생인 조지와 같이 살았다. 그곳에서 남북전쟁 당시의 경험을 담은 '전쟁회고록'을 지었고 62편의 시를 지어 '11월의 나뭇가지'라는 시집에 실었다.

1891년 풀잎의 최종판을 출판한 후 1892년 3월 26일 뉴저지주 캠든에서 사망했다. 사후 그의 시신은 할레 묘지에 매장되었다.

3. 주요 작품

4. 평가

단연 북아메리카가 배출한 최고의 시인[7]
해럴드 블룸
그는 아메리카의 시인이며, 그가 곧 아메리카다.[8]
에즈라 파운드

5. 기타



[1] 인쇄업을 배웠다.[2] 종교회의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3]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휘트먼의 성적 지향이 동성애자였거나 양성애자였음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피터 도일(Peter Doyle)이나 빌 더킷(Bill Duckett) 등 휘트먼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남성들의 기록과, 휘트먼이 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증거로 남아있다. 한편으로 휘트먼에게는 (생전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혼외정사로 낳은 자녀 6명이 있었다고 하며, 그중 2명은 휘트먼보다 일찍 죽었다고 한다.[4] 두번째 판본은 결국 1856년 8월 1일에 공개되었고 풀잎은 휘트먼의 평생을 거쳐 개정되었다.[5]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당대의 유명한 작가인 랠프 왈도 에머슨, 브론슨 앨콧, 데이비드 소로는 이 작품을 극찬했다.[6] 제임스 하런이 그가 개정한 풀잎의 내용이 점잖지 못해서 휘트먼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추측도 있다.[7] Harold Bloom. "Genius", Bloom, Warner Books, Inc., 2002, p.586[8] Ezra Pound. "Walt Whitman", Whitman, Roy Harvey Pearce, ed.,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Inc., 1962: 8.[9] 독일어권("Adieu so lange")과 스칸디나비아권에서 쓰이던 인사말로부터 유래한 표현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을 동안) 잘 지내시게' 정도의 의미였다고 한다.[10] 물론 해당 혼외자식들의 존재 여부는 증명되지 않았으며, 휘트먼 사후에도 휘트먼의 자식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자가 없었다.[11] 피터 도일의 경우엔 가족들도 그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었다. 휘트먼은 피터 도일과 동거를 원했으나, 그는 어머니 간병을 이유로 미루었으나 휘트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론 그를 간호했으나 곧 직장 문제로 필라델피아로 이사하면서 서로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그는 휘트먼 사후 그의 시계를 유품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