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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08:52:14

시현류

지겐류에서 넘어옴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일본 고류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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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오노파, 미조구치파, 나카니시파 등의 분파를 포함하며 후에 북진일도류, 일도정전무도류 등의 계파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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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류 무술과 현대 무도를 나누는 기준점은 메이지 유신(1868)으로 여겨지나, 창시가 그 기간에 걸쳐있거나 그 이후지만 고류의 형식으로 수련되고 있는 경우 여기에 넣었다.
일본 고류 무술의 유파들의 경우 창시 세기별로 분류해 외래어 표기법/일본어 기준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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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약환자현류3. 창시자의 일화4. 상세5. 수련
5.1. 목봉과 말뚝5.2. 철저하게 실전 위주5.3. 미쳐버린 원숭이처럼
6. 현재의 모습7. 시현류는 최강이다?8. 대중문화 속의 시현류

1. 개요

시현류(示現流)일본 고류 검술 유파 중 하나이다. 일본말로는 지겐류라고 발음한다.

시마즈가의 가신이었던 토고 시게카타(東郷重位,1561~1643)[1][2]가 창시하였다. 때문에 사쓰마번 무사들의 검술로 유명했다.

첫 일격에 상대를 죽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검술이다. 극한으로 단련된 시현류의 첫 내려찍기 하나를, 검술의 웬만한 숙련자가 아닌 이상은 감당하지 못했었다. 에도막부 말기 근대화를 둘러싼 내전이 일어났을 때 가장 뛰어난 전공을 세웠던 유파이기도 하다.

시현류는 달인들끼리의 일대일 결투보다는, 불특정 다수가 얽혀서 맞붙는 전장 쪽에 특화되어 있는 유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에도시대 당시 일대일 시합 쪽은 현대 검도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북진일도류신도무념류가 가장 강세였었다.
첫 공격을 의심하지 말고 삼천지옥까지 베어버려라.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쳐 죽여라.
첫 공격에 상대를 베지 못하면 온몸을 바쳐 죽인다.
이것이 시현류의 주된 가르침.

명성과 실적에 안 어울리게 기술의 만듦새가 상당히 투박한 편이다. 이론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검을 휘두름에 있어 결코 이롭다 할 수 없는 팔 쓰는 법을 토가 나오는 수준의 수련량으로 때우는 태도 등이 그렇다.

수련 영상을 보면 말뚝을 박아 놓은 뒤 무거운 목봉을 쉬지 않고 휘두르는, 동서고금 어느 검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이질적이고 무식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실전에서 그렇게 연타를 친다는 게 아니라 내려 베기를 극한까지 단련하기 위한 과정이다. 여러 수련법들 중 유파 측에서 유일하게 외부에 공개한 초기 단계의 커리큘럼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실제 검을 운용하는 디테일 적인 부분들은 해당 유파에 직접 입문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검도를 배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무거운 목봉을 들고 빠른 속도로 쉬지 않은 채 수십 번 휘두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일반인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휘두르는 것은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 무턱대고 휘두르기만 하면 인대와 뼈가 망가지고 강해지기도 전에 골병들기 십상이다. 제대로 된 수련을 통해 단순히 팔의 힘으로만 내려치는 것이 아닌, 하체의 힘을 검에 전달하는 방법과 등근육 및 복근, 즉 코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체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내려찍기 일격에 힘을 실어주는 수련이지만, 만약 일격이 실패했을 때 빠르게 중심을 잡고 다시 내려치기 위한 것도 동시에 연습이 된다고 한다. 즉, 시현류의 목봉 연타 수련은 몸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무술이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무술은 판단하는 것은 금기이다.

시현류 무사들의 내려 베기가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는 에도막부 말기 기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예로 1868년 도바(鳥羽) 후시미(伏見) 전투에서 막부군 2만 명이 사쓰마의 시현류 무사 4천 명에게 대패했고, 우에노(上野) 관영사(寛永寺) 전투에서는, 시현류 무사들에게 베였는지 아닌지를 시체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첫째, 어깨부터 배꼽아래까지 두 동강이 났을 경우. 둘째, 머리에 검의 쇠테가 박혔을 경우[3].

보신전쟁 이전 교토에서는 개혁파vs보수파 간의 칼부림이 숱하게 발생했었는데, 당시 신선조의 조장 곤도 이사미"사쓰마 번 무사의 첫 칼질은 피하고 봐야 한다."라며 그 위력을 인정했었다. 이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첫 칼만 베고 끝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첫 공격이 실패했을 때의 대처법이라던지 연속 공격 등도 카타에 있다.

서남전쟁 초기에도 사쓰마번 무사들의 발도 돌격에, 메이지 신정부군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무너졌었다. 폐도령까지 내렸던 신정부였지만 뒤늦게 검술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경시청 발도대를 창설해 투입하기 전까지, 신정부군은 백병전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였다.

시현류는 그냥 내려찍는 무식한 인상이 있지만[4] 둔기술이 아닌 엄연한 검술이다. 시현류가 진짜 위력적인 점은 같은 어깨칼이라도 칼 끝의 위치를 다르게 해서, 타이밍이 묘하게 달라지는 검술의 디테일 적인 부분에 있다.[5] 당연히 이러한 부분은 절대 혼자서 터득할 수 없으며 해당 유파의 입문하여 반드시 스승과 칼을 맞대보며 직접 배워야 한다.

대표적인 카타인 이치니노타치(一二の太刀)에서 볼 수 있듯 유명한 첫 내려 베기 자세를 통해 상대가 먼저 내밀게끔 유도한 뒤, 상대의 손목을 노리는 기술이 있는 등 검술로써의 기술들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여러 대중문화 매체에서 시현류가 소재로 등장하면 톤보 자세와[6] 함께 독특한 기합 '체스토!'를 특징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다른 검술 유파와 달리 왼발이 앞으로 나온 자세가 기본이라는 것이다.[7] 다만 약환자현류의 경우는 오른발이 앞으로 나오는 우톤보 자세가 기본자세다.

야쿠마루 지겐류(약환자현류)는 아래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기합이 '체스토'는 아니다. 대신 "키에에에" 원숭이 울음 같은 독특한 발성 때문에 엔쿄(猿叫)라 부른다.

시현류는 일본에서도 대중들이 생각하는 일본 검술의 이미지와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이질적인 수준으로 독특하기 때문에 인지도 역시 독보적이다. 참고로 일본 사람들도 시현류의 단련 영상을 보면 웃는다고 한다(...)

2. 약환자현류


시현류를 설명하려면 그 분파인 자현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시현류의 무용담은 대부분 시현류의 분파인 야쿠마루 지겐류(薬丸自顕流, 약환자현류)의 것이 시현류로 알려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로 유명 시대극 작가 시바 료타로가 시현류와 자현류를 구분하지 않고 시현류로 소설상에 등장시켰던 것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시현류가 역사의 표면에 떠오른 막부 말까지는 시현류가 사쓰마번 문외 불출의 비검, 즉 군사기밀이었기 때문에 사쓰마의 검을 처음 접한 다른 번의 지사들이 시현류와 자현류를 구분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도 둘 다 지겐류로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사상과 검리(劍理) 등도 거의 같으나 전체적인 차이점이라 한다면 자현류쪽이 자세가 더 낮고 양발의 스탠스가 넓다. 또한 더욱 철저하게 야성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수련하는 모습만 봐도 그나마 그럴듯한 형식을 갖추고 연습하는 시현류와 달리, 자현류는 보는 사람이 측은하다 느낄 정도로 헝그리 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고, 후술 했듯이 하급무사들의 전유물이라 그렇다고 한다.

사쓰마 번은 오직 시현류와 자현류만을 번의 공인 검술로 가르쳤는데, 시현류는 의 고급 무사들의 전유물이었고,[8] 자현류는 그 외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급 무사들이 주로 익혔다. 실제로 피 흘리며 싸운 건 자현류를 익힌 하급무사들이었기 때문에, 후세에 시현류의 무용담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사실은 자현류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렇다 해도 둘이 사실상 동일한 유파라 봐도 될 정도로 흡사해서 자현류가 주로 활약한 것이라 해도 시현류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3. 창시자의 일화

다음은 창시자인 토고 시게카타에 대한 일화다.

문 밖에서 가 짖자 제자들에게 개를 베어 버리라고 했는데, 잠시 후 돌아온 제자들이 "온 힘을 다해 개를 두 동강 내고도 땅바닥에는 칼이 닿지 않았다"라며 스승에게 자랑했다. 제자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시게카타는 제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칼을 빼들어 앞에 있던 바둑판을 베었는데 칼은 두께가 여덟 치가 되는 바둑판을 두 동강 내고도 그대로 다다미를 자르고, 마루 밑 가로 받침대까지 두 동강 내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시게카타가 말하길, "이것이 우리 유파의 의지다!"

이상의 훈계를 해석하자면 '너희는 장차 검으로 적의 갑주와 골육을 통째로 갈라야 하거늘, 고작 개 따위를 동강내고 검을 멈춘 것을 자랑스러워하느냐!'라는 것이다. 즉 시현류란 동물적 본능을 중시하고 다른 검파와 다르게 왼손에 힘을 빼고 검을 휘두르며 검에 실린 힘이 장난이 아니다.[9]

상술된 내용에서 개가 짖는다고 베어버리는 건 지금 시점으로 보면 미개해보이지만, 무사가 개나 고양이를 베는 건 에도 막부 성립 이후부터 폐도령 이전까지 심심하면 하던 짓이라 저 당시 관점에서는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동물학대의 목적으로 베는 게 아니라 일본도로 살아있는 생물을 베는 감각을 느끼려고 베는 건데 도공에게 주기적으로 검의 손질을 맡길 때 검날에 어느 정도 지방질이 배어 있지 않으면 체면이 안 선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개나 고양이를 베는 무사도 적지 않았다. 특히 개는 주인이 있는 개라도 짖어서 베었다거나, 달려들어서 베었다고 핑계를 대기 좋아서 많이 죽였다.[10]

4. 상세

일본의 실전 검술은 갑주의 발달과 굉장히 큰 관련이 있다. 궁시를 방어하는데 중점을 두어 수많은 철편을 비단끈으로 몇 번이고 매어 만든 찰갑이 보편화되면서 치거나 찌르는 공격은 쉽게 무력화되었으므로, 일반적인 날이 곧은 창검은 도태되었고 틈을 베어내거나 쑤시는데 적합한 외날이 굽은 형태의 타치와 나기나타가 등장했다. 이를 이용하여 검격을 가함에 있어 힘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도 속도와 정밀성을 추구하여 갑옷의 틈새를 정확히 노리는 것이 거의 천년동안 이어져온 일본의 전통 실전 검술의 요체였다. 잦은 출병과 습한 기후 때문에 유지비용이 지나치게 비싼 사슬을 잘 쓰지 않았던 중근세 일본 갑옷의 특성상 후방에 가만히 앉아서 지휘만 하는 다이묘 급 무사의 갑옷이 아니라면 목, 겨드랑이와 오금은 대개 방호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현류는 이와는 달리 강력한 검격을 추구하며, 몸과 정신의 모든 기세를 실어 갑주를 입은 상대라 해도 최초 일격으로 압살하거나 또는 공황상태로 몰아넣어 무력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게다가 타 유파의 검에 비해서 검이 훨씬 더 곧고 두꺼웠기에 결과적으로, 시현류 무사의 일격은 둔기로 온 힘을 다해 내려찍는 것에 가까운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전장의 충격보병을 위한 대인/대갑주검술인 것.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바로 투구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부분인데, 그럼 시현류는 투구에 대한 대처법을 따로 고려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시현류에서 내놓은 해법은 바로 뚝배기 투구 째로 머리를 깨버린다. 시현류는 갑주의 틈새를 공략하는 방법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는데(다른 유파들은 전서 하나가 따로 나올 정도로 중요시한다. 평복검술과 갑주검술을 어느 정도 구분 하는 것) 왜냐하면, 갑옷 때문에 베이지 않더라도 힘으로 관절이 이탈하고 뼈와 살이 상할 정도로 내리쳐버리면 되기 때문. 이쯤 되면 그냥 철편 같은 둔기를 쓰지 왜 날붙이를 쓰는 걸까 싶을 정도

다만 시현류/자현류도 '갑옷의 틈새를 노린다'는 기존의 실전 검술의 틀에서 아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갑옷 양식인 오오요로이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의 갑옷들은 최하층 무사들의 갑옷인 하라아테 같은 저급 갑옷이 아닌 이상 어깨 부분의 견갑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어 웬만한 횡으로 들어오는 공격은 견갑으로 받아내거나 흘릴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런데 상단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시현류 특유의 찍어 누르는 내려 베기는 견갑으로 흘릴 수 없는 사각으로 들어오는 데다(견갑과 견갑, 견갑과 투구 사이) 막는 것이 무리일 정도로 빠르게, 강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투구를 썼다 한들 충격에 약한 뇌는 버티지 못한다. 권투선수의 펀치가 두꺼운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통해서도 상대를 KO 시키는 것처럼. 시현류/자현류가 이상하리만치 상단 내려 베기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컨대, 시현류도 무식하게 강함만을 추구한 검술이 아니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갑옷의 약점을 공략하고자 한, 나름대로의 합리성에 기반한 검술 유파인 것이다.

공격 기술, 특히 일격만을 반복 숙달하기 때문에 병사들을 단기 육성시키는데 아주 용이했다. 특히나 이러한 장점은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칼싸움이 벌어진 막부 말기 워낙 압도적인 전적을 쌓은데에서 그 위력과 효율성을 증명했다.[11] 물론 그 이후에 제대로 된 발도대가 난입해 혼전을 벌이자 맥없이 썰리긴 했지만, 오로지 단기육성한 병사들만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보였다는 건 전쟁에서는 쓸만한 아주 훌륭한 검술이라는 충분한 증명이다. 이후 현대 검도의 기초가 되는 경시청류에도 북진일도류 대다수와 함께 시현류의 형도 일부지만 포함이 되게 되었다.

그러나, 내려 베기만 하는 검술은 절대 아니다. 시현류의 연무를 보면,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고 손목이나 팔뚝을 노리는 공격이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이는 일본 갑옷이 하박부의 방어가 비교적 부실하다는 점과,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손목에 대한 방어가 미비하다는 점을 노린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현류 측의 기록에 따르면, 창시자 토고 시게카타는 타이샤류를 수련하다가 젠키츠라는 승려를 만나 손목을 공격하는 비전을 전수받고 타이샤류와 비전을 합해 시현류를 창시했다고 한다.

5. 수련


시현류 동향(東鄕)재단에서 제작한 시현류 소개 영상. 날것 그대로의 괴성이 우스꽝스럽지만, 이 정도 득음(得音)은 해야 시현류 특유의 워 크라이가 완성된다.

5.1. 목봉과 말뚝

파일:external/blog-imgs-27.fc2.com/jigenryu-kamae1.jpg
말뚝으로 수련하는 모습. 말뚝으로는 주로 사선베기와 옆베기를 수련한다.

파일:external/art21.photozou.jp/30179175.jpg
말뚝뿐만 아니라 나무막대 여러 개를 겹친 것을 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내려 베기 수련용이다. 괴성을 지르면서 수없이 이것을 내려치는 모습이 퍽 우습기도 하지만 이렇게 수도 없이 내려치는 피나는 수련 끝에야 비로소 시현류의 상징인 내려 베기가 완성된다.

파일:external/washimo-web.jp/ji105.jpg
시현류의 기본자세. 그야말로 내려 베기에 특화한 자세다. 이 자세는 오른손이 귀 옆에 오거나 그보다 낮은 일반적인 팔상(八相)세와 달리 팔을 더 높이 들어올려서 왼손이 귀 옆으로 오도록 하는 자세로, 잠자리의 자세(蜻蛉の構え, 톤보노 카마에)라고 한다. 단순히 위협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자세가 아니라 실제로 '내려 찍기'에 한해서 보면 매우 효율적인 자세인데, 군대에서 견인포병 병과 등으로 근무해 본 전역자들은 알겠지만, 곡괭이로 땅을 깔 때는 곡괭이를 '젖혀 드는' 게 아니라 사진처럼 '치켜 드는' 자세를 취해야 더 빠르고 강하게 내리칠 수 있다. 이 때, 왼손으로는 곡괭이를 받치는 역할을 하고 오른손의 힘으로 힘껏 내리치게 되는데, 이것은 전술한 시현류에서 검을 다룰 때의 힘의 작용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쉽게 말해 시현류는 일반적인 검술과 달리 망치나 곡괭이를 내리치는 방식으로 베기를 수행한다는 것이다.[12] 그렇다보니 왼손으로 검에 힘을 싣고 오른손으로 검의 궤도를 조절하는 것이 기본인 일반적인 검도 수련자의 입장에서는,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이 시현류와는 완전히 정반대이기 때문에 검의 운용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라 이런 자세로 내려베기를 한다는 게 매우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수련할 때는 일반적인 목검대신, 유자나무를 잘라서 말린 목봉이나 다름없는 투박한 목검을 사용한다. 세운 나무 치기(立木打ち)라는 수련방법이 특징으로 사람 키만 한 말뚝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매일같이 수백 수천번씩 유자나무 목검으로 내리친다. 유자나무 목검 자체도 소모품인지라 목검 몇 개 망가뜨리는 걸로는 부족하고 말뚝 두 개쯤은 '깎아'내야 시현류를 좀 익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죽하면 시현류 검사는 말뚝이 키운다는 이야기가 나돌아다닐 정도.

유자나무를 대강 잘라 만든 것이니만큼 목검의 길이는 물론 생김새도 제각각인데, 길이가 길면 길수록 들고 휘두르기가 어렵기에 고수용으로 취급받는다. (당연하지만 어느 정도 굵기는 되어야 효율적인 훈련이 가능하다.) 심지어는 2미터도 넘는 목검도 있는데, 이걸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건 웬만한 고수들에게도 버거운 일. 하지만 대강 잘라 만드는 것이기에 훈련 비용이 다른 검술에 비해 압도적으로 싸고, 그렇기에 병사 단기육성에는 시현류만한 것이 없었다.

5.2. 철저하게 실전 위주

실전을 중시해서 수련 중에는 도복 대신 일상복을 입는데[13],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수련을 해도 결례가 아니다. 도장 바닥도 다다미나 마룻바닥 대신 흙바닥 그대로다. 심지어 검을 쥐고 있을 때는 예를 나누지도 않는다.

또한 일반적인 일본 검술 유파와는 다르게 자유대련이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적인 검술 유파는 절삭력에 의존하므로 칼날이 닿았는지의 여부만으로도 대련의 승패를 가를 수 있지만, 시현류는 가속도와 중량 즉 검의 운동에너지로 상대방을 갈라죽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전처럼 대련하다간 둘 중 하나는 목검만으로도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실전을 대비한 시현류의 수련과정은 그야말로 무대포로밖에 보이지 않는 말뚝깎기와 나무패기 그리고 자세숙달을 위한 약속대련이 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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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마에 전해져 오는 시현류에서 다루는 칼 역시 일반적인 일본도와는 다른데, 길이가 좀 더 길고[14] 날의 휨이 적은데다가[15] 날 또한 훨씬 더 두껍고 손잡이가 곧은 형태를 띤다. 검 놀림의 편의성보다 첫 일격에 집중하는 시현류의 뜻에 맞추어 힘을 실어주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도 항목을 가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카타나의 날길이가 2척 3촌(69cm)을 넘지 않게 된 것은 그 길이가 정부 표준 규격이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대놓고 \'중앙정부 조까\'를 시전한 것. 번의 공식 지정 검술에 이런 짓을 해놓은 것을 보면 시현류의 문외불출은 아마 폐번 당하기 싫어서 일부러 숨긴 것일지도 모른다.

5.3. 미쳐버린 원숭이처럼



동영상을 보면 꽤액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수련방식이 굉장히 우스워 보인다. 복식호흡을 통해 우렁찬 기합을 넣는 것을 중요시하는 검도나 다른 유파들에 비해, 시현류의 기합은 날것 그대로의 괴성 그 자체인지라 더 튀어보이고, 이 때문에 검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본인들도 시현류 동영상을 보고 웃기도 한다. 심지어는 11대 사쓰마 번주[16] 시마즈 나리아키라마저 '미친놈들이 하는 검술이 아닌가.' 하고 깠다.[17]

하지만 상술했듯 시현류는 철저하게 실전 지향적인 검술이라, 티끌만큼의 두려움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을 그만둬야 하는 훈련법이 나온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우선 원숭이 울음소리 같은 괴성은 배틀 크라이 구사를 위해 하는 훈련으로, 그런 괴성을 장시간 유지해야만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다. 내려 치기를 구사할 때 온몸이 들썩거리는 등, 얼핏 보면 슬랩스틱으로 보이는 훈련 역시 따지고 보면 가한 검격이 빗나갔을 때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기 위한 순발력 훈련으로, 상대방이 반격할 여지를 없애기 위한 훈련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훈련된 시현류 무사는 물불 안 가리고 괴성을 질러대며 진검으로 돌격하고, 맞든 막든 무차별로 베어내어 상대를 골로 보내버리는 공포의 존재가 된다.

현대와 같은 체계적인 체력 단련술이 없었던 고류 무술의 수련과정은 현대인이 보기에 우스운 점이 있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그 예로, 중국 홍가철선권의 투로만 해도 일반인이 보면 그저 괴상한 몸비틀기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시현류의 기합은 성능 자체는 확실했던지라 경시청류를 거쳐 일본에 대중화되었고, 대한민국에 들어온 검도 역시 시현류 못지않게 큰 기합을 지르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시현류만 저렇게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것도 아니다.[18]

6. 현재의 모습


2019년 제42회 일본고무도 대회 중
꿀렁거리는 외국인 수련자를 보고 있자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19] 대단한 검술인건 알겠는데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 쫓아오는 모양새라는 댓글이 인상적이다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의 번화가, 덴몬칸 부근에 시현류 도장 겸 역사관이 있다. 홈페이지 자료관 및 소규모 박물관이 있으며 관람료는 500엔.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며 관람료에 들어가는 것은 박물관 관람 및 연습 장면(소개) VTR 시청, 그리고 연습장 견학. 희망하는 자는 문하로 들어갈 수도 있으며 연습 시간에 맞추어 가면 견학도 가능하다.

참고로, 자현류의 경우 역시 현재도 수련을 하고는 있으나 자동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덴몬칸 기준으로 자전거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 곳에서 수련을 하는지라, 접근성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단, 자현류는 도쿄 등 타 지역에도 도장이 있다는 듯. 홈페이지

2013년 이후로는 가고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센간엔[20]에 시현류 홍보관이 생겨, 홍보 VTR을 상시 상영 중이다. 홍보관 앞에는 훈련용 말뚝 및 훈련용 목검도 놓여 있어서 체험도 할 수 있다.

7. 시현류는 최강이다?

대표적인 오해로, 위의 상세 문단에도 나와있는 사례를 토대로 일본의 시현류가 최강검술이라느니 하는 발언이 종종 인터넷상에 보인다. 하지만 시현류는 어디까지나 가성비가 확실한 검술이지, 최강의 검술은 아니다. 일반적인 햇병아리 병사들을 정예충격보병으로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육성시키기에는 아주 좋았을 뿐, 전투가 장기화될 경우 그대로 체력고갈과 기교 부족으로 무너지는 것이 시현류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당장 위의 사례로 나온 전투에서도 시현류 무사들은 공세한계점에서 맞닥뜨린 신정부 측 경시청 발도대에게 무력하게 썰려나갔다.[21]

당시 주로 평민의 자제들을 징집해 구성된 일본 육군과는 다르게, 경시청 발도대는 몰락한 사무라이들로 구성 되었다.[22] 즉, 원래부터가 검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세이난 전쟁에서 압도적인 전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과거 무진전쟁에서 막부 측에 섰던 동북 지방 무사들 또한 세이난 전쟁에서는 메이지 유신 정부가 경찰로서 고용/징집하는 형태로 참전하게 되었다. 이들을 굳이 경찰로 편성한 이유는 근대 일본에서 사무라이의 군사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막부의 구시대적 잔제를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가했던 메이지 유신 초기~중기의 일본이 굳이 이들을 군으로 편입할 경우 천황과 유신 정권의 통치 명분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전쟁과 세이난 전쟁에서 무사들이 보였던 인상적인 활약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던 무사계층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일본군 내에서도 그들의 무사정신을 존중하고 본받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귀축영미와 같은 반서구적 정서, 일본 고유의 것을 강조하는 극우 사상과 맞물려 과거 탄압받던 무사 정신을 숭배하는 수준으로 이어지기 까지 한다.[23]

일본 검술의 전성기 당시 완성형 검술로 치부 받는 건 "북진일도류"였다. 괜히 북진일도류가 현대 검도의 베이스가 된 것이 아니다. 강한 일격을 중시한다는 점은 시현류의 주된 특성이긴 하지만, 경시청류의 주요 토대가 된 신도무념류 역시 강한 일격을 중시하고 있기에 시현류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전술한 북진일도류 역시 검을 오로지 살상 용도로만 바라본 대단히 합리적이고 실전적인 유파로, 실전 위주라는 점 역시 시현류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다만 애당초 검술 같은 무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이였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가장 실전성 있는 유파는 군사 훈련에 적합한 시현류라고 봐도 무방하다. 병사들은 익힐 것도 많은데 검술만 깊게 훈련할 수 없다. 시현류식으로 크게 휘두르는 게 병사들의 보급용으론 더 위력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실전에서 많이 활약한 것이다.[24] 결국 시현류는 검술에 있어서 최고의 유파라고 할수는 없지만 가장 실전성 있는 유파라고 해도 딱히 문제가 없다.[25]

8. 대중문화 속의 시현류

영화드라마의 시대극 속에서 등장인물이 사쓰마 출신이면 고증에 충실하기 위해 가끔 톤보 자세를 취하고, 엔쿄를 내지른다.

8.1. 슈퍼로봇대전

한 마디로 서브컬처계에 시현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뿌리깊게 박아넣은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이하의 설명은 그러한 잘못된 인식들을 정리한 것. 그런데 사실 이하의 설명들을 비롯해 슈퍼로봇대전에서 생겨난 시현류에 대한 오해 등은 전부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서 아예 시현류를 마음대로 바꾼 게 아니라, 시리즈 최초로 시현류를 표방했던 젠가 존볼트라는 개인의 습관 등의 개성, 캐릭터 자체의 임팩트가 지나치게 강력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더 정확한 이유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인식과는 별개로, 의외로 젠가의 필살기들은 시현류의 기술을 꽤 정석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 사츠마 무사들의 강력한 내려베기를 그대로 재현한 기술들이라든가, 다이젠가의 가디언 소드를 쓸 때 시현류식 연속베기를 쓰는 모습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이젠가 외에는 그룬거스트 삼식의 삼식 사자왕도 역시 시현류식 연속베기의 모션이 들어가 있다.

[1] 일본어 위키[2] 'とうごう しげかた'다. 넷상에서 흔히 보는 시케타다 또는 시게타가 등의 표기는 오류다. 단 태합입지전 5에서는 토고 시게타다로 나온다.[3] 검이 두 동강 나면 쇠테가 튕겨나가며 머리에 박히는 경우가 많았다[4] 첫 공격을 강하게 세게 내려치거나 후려 까는 건 가시마신토류 같은 원시 유파들에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5] 시현류의 창시자인 토고 시게타가 젠키치 스님에게 패배한 뒤 무릎 꿇고 배운 12가지 기술의 핵심이 이것이다.[6] 톤보(蜻蛉, 잠자리) 자세는 일반적인 팔상 자세 보다 검을 더 높이 드는 자세이다.[7] 일본 검술은 보통 주로 쓰는 손 쪽 발을 앞으로 낸다. 주로 쓰는 손이 검자루를 잡을 때 앞을 차지하기 때문에 베는 자세에서 그 방향성에 따라 몸이 치우치게 되는데 이때 주로 쓰는 손의 반대발을 내놓으면 중심을 잡기 어려워진다.[8] 하급무사들이 시현류를 안 배운건 아니고, 대체로 상급 무사들이 배우는 경향이 강했다.[9] 보통 일본 검도는 왼손을 뒤, 오른손을 앞으로 가게 잡은 뒤에 왼손에 힘을 주고 오른손에 힘을 뺀다. 이는 무게중심이 칼끝방향으로 실려있는 일본도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서 왼손은 파워, 오른손은 컨트롤을 맡는 것인데, 만일 시현류의 방법대로 오른손에 힘을 주고 왼손에 힘을 빼서 친다면 파워는 강해지지만 정확히 치기가 빡세져서 칼로 베는 것이 아니라 찍는 동작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류 동영상을 보면 매우 정확하게 치는데, 힘으로 찍더라도 원하는 지점에 검을 넣는 훈련을 수년동안 미친듯이 반복훈련한 덕분이다.[10] 개 쇼군이라 불리던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무리한 동물보호 정책 때문에 개에 대한 국민감정이 많이 안 좋아진 것도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반려동물로 개보다 고양이를 더 많이 키운다.[11] 칼을 들어 막은 상대의 칼등이 상대 마빡에 박혀버렸다던지 등.[12] 물론 이는 원리가 그러하다는 것이고, 머리 쪽에 무게가 극단적으로 쏠려 있어서 자체 중량을 이용해 내려치는 요령만 익혀도 충분히 강력한 위력을 내는 망치나 곡괭이와 달리, 무게중심이 거의 정중앙에 있는 도검을 이용해서 마치 곡괭이와 같이 강하게 내려찍기 위해선 적지 않은 수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13] 도복을 입더라도 대충 도복 느낌이 나게 입지, 도복의 형태를 일정하게 정해두는 건 아니다.[14] 날 길이 85~90cm가량으로 거의 노다치로 분류할 수 있는 수준.[15] 이는 오른팔에 힘을 실어 내리치는 시현류의 특징과 연관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현류같이 오른팔의 힘으로 내리베는 검술은 곡도와 궁합이 썩 좋지않다. 곡도 특유의 미끄러지듯 절삭하는 방식은 왼손의 당기는 힘이 중요하기 때문. 하지만 직도의 경우 찍어서 동강내는 방식에 가깝고 이는 지렛대 원리상 타점과 가까운 손인 오른손에 힘이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는 역시 시현류가 갑주를 힘으로 뚫어내기위한 검술이다보니 나타나는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16] 상술했다시피 시현류는 사쓰마 번에서 만들어진 검술이다.[17] 하지만 나리아키라의 일화는 시현류와 같이 엔쿄를 기합으로 하는 자현류를 보고 깐 것이란 말도 있다.[18] 무기술과 체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무술은 공격할 때 호흡을 고정하기 위해 기합을 넣는다. 하다못해 권투에서 쉐도우복싱을 할 때도 최소한 "쉭쉭"하며 숨이라도 뱉는 게 정상이며, 대부분의 격투기 선수들은 시합 때 쉭쉭을 넘어선 "악!", "슉!", "흡!", "툭!", "오웨이!"와 같은 기합을 넣는다. 다만 일본 고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보통은 배에서 울리는 듯한 기합을 내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보통의 형은 공격이 단발성이기 때문 공격 한 번에 기합 한 번이 보통이다. 그런데 시현류는 생목에 가까운 고음을 내는 데다 형 자체에 연타가 들어가 있어서 연속된 괴성이 나오는데 이게 타 유파와 달라 보이는 이유다.[19] 다만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 저 외국인 수련자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시현류의 주요 시연들에 참가할 만큼 뛰어난 실력자이며 매우 귀중한 인재다. 외국인 실력자라는 점도 의의가 크지만, 시현류 뿐만 아니라 일본 고류검술계 전체가 청년 수련생이 부족한 상황이다. 청년 수련생이 있어봤자 취미로 배우다가 관두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후대 양성에 있어서도 상당히 골머리를 썩고 있는 와중에 저런 젊은 피의 실력자가 시현류에 정착한 것은 매우 다행인 점이라고 볼 수 있다.[20] 사쓰마번의 영주였던 시마즈 가문의 별장.[21] 이미 신정부군이 무기를 빼돌렸기 때문에 원거리 화력에서 밀리기도 했다.[22] 이들은 평생 동안 검술과 무기술을 연마했지만 무진전쟁의 패전 이후 메이지 유신이 들어섰고, 유신 정권은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막부의 잔제인 사무라이 계층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이것의 결과로 실업자 신세가 되어버린 무사(낭인)들이다.[23] 문제는 이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물려받게 되었는데, 카미카제반자이 돌격을 통해 알 수 있는 극단적(+비효율적) 옥쇄 정신, 관동군의 하극상과 폭주로 인한 중앙권력의 약화, 이로인한 해군과 육군, 그 외 파벌들간의 갈등 중재 실패, 막부를 연상케하는 군부의 영향력 강화, 이에 반발하는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 등 많은 근대 일본군의 문제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24] 정제된 일대일 시합에서는 검도식으로 단시간내 최단 경로로 뻗어치는게 좋지만(상대의 반응 보다 빠르게), 정신없는 대규모 전쟁터에서는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검을 높이 들고 강하게 내리치는 게 더 살상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검도식으로 뻗어치는 방식은 큰 위력을 내는데 오랜 숙련 기간이 필요한 편이다. 고 서정학 범사는 검도의 작은 머리치기에 제대로된 위력을 싣기 위해서는 6단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6단이라 하면 최소 20년은 수련해야 한다.[25] 에도 시대 당시에도 전장에서 쓰이는 검술과 일대일용 검술은 좀 다르게 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전장에서의 실전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복잡한 기술싸움보다는 단조로운 힘싸움에 가깝다. 전장에서의 병사들은 한번 마주친 상대와 또 만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상대 기술을 '모르면 죽어야지' 라고 할 수 있다. 죽으면 패배 원인을 분석할 수도 없고 리벤지 같은 것도 할수 없다.[26] 작중에선 그나마 실제 용법에 가깝게 쓰는 다른 유파에 비해 주인공들이 쓰는 것이라 그런지 더 과장되어 있고 변화를 많이 줘서 그렇지, 운요 자체는 실제 시현류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엄청 빠르게 치고 들어가서 힘세고 강하게 내려 베는 것. 보면 알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냥 보통 검도장에서 다들 하는 것과 별 다를 것도 없다.[27] 톤보세의 내려 베기[28] 보법 오의[29] 거합 베기[30] 스기모토는 들고 있던 30년식 소총을 들어 첫 검격을 막았는데도 소총이 머리에 부딫혀 상처를 입었다.[31] 시마즈 가문의 분가인 카바야마 가문의 소유였음[32] 심지어 코믹스 RoA에서 젠가는 목검으로 밧줄을 감아놓은 말뚝을 일검에 갈라버렸다. 참고로 실제로는 아무리 시현류라도 목검으로 말뚝을 써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걸 수도 없이 두들겨서 깎아낸다. 그걸 한 방에 썰어버리는 건 이 인간이 굇수라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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