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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4 23:20:37

칼부림(웹툰)/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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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인공3. 이괄군4. 항왜촌5. 관군6. 조정7. 후금8. 9. 북원10. 정씨 상단11. 우록동12. 광해군 정권13. 기타 인물

1. 개요

웹툰 칼부림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주인공



3. 이괄군



5부에서는 이 이수백을 죽이기 위해 이중로의 세 아들들인 이문성, 이문수, 이문호가 집의 가산을 모두 팔고서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문성의 말에 의하면 이수백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4. 항왜촌




5. 관군

















이 싸움의 승패를 떠나 후세에 내 이름은 남겠지. 하지만.. 하지만 말일세. 후세에는 모를지라도 나는 알고 있네. 내 이름 석자 뒤에 수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바로 그것이 역사 아니겠는가?
이후 후금군이 철수하긴 했으나 재침공시 도저히 막을 역량이 남아있지않아 백성과 관군을 데리고 동강진에 의탁한다.

6. 조정














7. 후금

정묘호란으로 조선을 굴복시킨 이후에는, 명나라와의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르곤의 진언대로 몽골을 통해 만리장성을 우회하여 하북 지역을 겁략하였고, 비록 원숭환의 분전으로 북경성 공격은 좌절되었지만 반간계를 써 끝내 원숭환을 죽게 만들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평소에 고분고분하지 않던 아민에게 무단후퇴의 죄를 물어 숙청하는 등 한으로서의 권력을 공고화해나가고 있다.
원숭환의 뒤를 이은 조대수가 대릉하에 축성을 시작하자 선제적으로 이를 포위공격하여 대릉하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5부에서는 후금의 공세가 원숭환의 방어선에 의해 단단히 저지되자 우회공격을 진언한다. 아민의 비아냥거림에도 홍타이지는 도르곤을 칭찬하지만, 홍타이지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이기에 도르곤은 끝내 표정을 풀지 못하다가 양구리에게 처신에 관한 조언을 듣는다. 또한 여전히 자신에게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청 태종 본인에게도 꾸중을 듣는다. 또한 이런 점 때문에 덕만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함이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우회공격으로 관내로 진입한 후금군이 화북지역을 초토화시키며 전과를 올리자 거듭 홍타이지나 양구리 등으로부터 고평가를 받지만 정작 도르곤 본인은 떨떠름해한다. 특히 북경공략전에서 원숭환의 기병대에 패배하며 풀이 죽어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나간 뇨허(함이)를 언급한다. 자신의 간언에 따라 후금군이 장성을 우회하기 위한 출정을 시작할 때, 청 태종이 자신을 배웅하는 효장문황후에게 무뚝뚝하게 대하자 시무룩해진 그녀를 의식한다. 도르곤이 효장문황후와 연인 관계였다는 썰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5부에서는 후금의 공세가 원숭환의 방어선에 가로막히자 조선을 한 번 더 손봐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명에 대한 우회공격을 주장하는 도르곤을 비꼬다 다이샨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장성을 우회하여 관내로 진입한 뒤로는 무자비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타이지는 그런 그를 나무라지 않으나 내심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듯. 그러다 5부 중반에 영평성을 비롯, 그간 점령한 성들에서 무단으로 철수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전격적으로 체포,[80] 그간의 월권행위를 한꺼번에 몰아서 추궁받은 후 모든 지위와 재산을 박탈당하고 유배형에 처해진다.

8.


파일:칼부림_숭정제.jpg




파일:칼부림_조대수.jpg






9. 북원


10. 정씨 상단




11. 우록동

나는 이 자의 양부를 베었다. 직접 보는 앞에서...
그대들이 이 자를 원망하는 만큼 이 자도 나를 원망하고 있으니 나 또한 무엇이 다른가?
이 자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면 나 또한 다를바 없지 않은가?
생사를 함께한 동료를 죽이는데 앞장섰네. 나 또한 조국을 배반한 역적임에도 말일세.
원수를 없애 잠깐의 통쾌함을 얻고자 한다면 그리들 하시게
허나 원한의 물레에 들어가면 멈출 수 없음이라. 피아가 원수 되어 서로를 찌르니 그 때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
실존 인물. 2부 마지막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포를 입은 뒷모습이 등장한다. 얼굴은 등장하지 않았으나 바로 앞에 일본식 갑주가 걸려있기에 추측 가능하다. 3부 1화에서 갑옷을 갖추고 경상 감영을 찾으며 본격적으로 등장. 경상도에 정착한 항왜 무리의 수장 격이다.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원한이 있어 투항했다고 한다. 묘사되기로는 작중 무력 최강. 서아지[117]와 고효내 모두 김충선은 이기지 못했으며 함이 또한 가뿐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금의 침략을 예견하고 있는지 그쪽 방면으로 정탐망을 구성중인 것으로 보이며 서아지의 부탁으로 함이를 거두고 인격적으로 성숙시켰다. 그간 원한에 사무쳤던 함이도 김충선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많이 평정심을 찾았으며 복수심도 많이 희석시켰다. 정도방을 소개시켜주고 김서방을 붙여주는 등 편의를 봐주었으나, 정도방이 뒤통수를 치고 임경업을 비롯한 관아에 찍혀 곤란한 처지.
현재는 지방에 머물면서도 상단 등을 통해 북방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아예 후금의 누르하치를 제거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그 이유가 결국 밝혀지는데 임진왜란 당시 전국시대의 끝없는 전란에 지쳐있던 그에게 평화롭던 조선은 낙원이나 다름 없던 곳이었고 그에 따라 귀순을 한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누르하치는 그 낙원을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이 망가뜨리려는 존재로 보였고 이 낙원을 지키고자 그랬던 것이다.
5부에서는 한때 작중 최강의 무사였던 묘사가 무색하게 매우 노쇠한 노인의 모습으로 나온다.

잃을 수 없는 것만 마음에 담아두시게.
실눈과 콧수염이 인상적인 김충선의 집사. 투항한 왜인 출신으로 보이며[118], 김충선의 심복답게 준수한 실력자로 묘사된다. 처음에는 김서방으로 호칭되고 함이와 서아지를 쫒으면서 주의하라는 주인의 명을 무시하고 쪽수를 믿고 밀여붙였다. 그와중에 덕만을 인질로 삼다가 큰 부상을 입혀 함이가 분노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다. 모든 일이 다 끝난 후 당연히 함이와 서먹서먹해졌으나 덕만이 구사회생하고 함이가 성장하면서 유야무야된다. 김충선의 명으로 임경업을 피해 함이를 데리고 도주한다. 도중에 임경업과 만나 함이, 진평과 함께 칼부림을 했다. 의탁한 도방이 함이가 역적의 일당임을 눈치채고 면신례를 핑계로 살수를 꾸미자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달려간다. 마츠다 유사쿠 똑띠닮은 주막여인 미향과는 그렇고 그런 관계. 본명이 검선(劍仙) 김체건임이 3부 36화에서 드러났다.[119] 3부 66화에서 난전 중에 고서행의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고 사망하는데, 어쩌면 이 김체건은 이대로 죽고, 어떤 연유로든 그 이름을 이어받은 다른 김체건이 바로 검선 김체건이 될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12. 광해군 정권







13. 기타 인물








파일:칼부림_천하인.jpg
오다... 도요토미...
그들은 모두 천하인을 꿈꾸었다.
그들이 가지고 싶은 천하는 욕망의 덩어리였으며
그 욕망 아래에서 나의 일족은 신음하고 있었다.
김충선
4부 29화에서 김충선의 회상으로 등장. 인조와 같이 음영처리로 얼굴이 완전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극중 김충선은 오다와 도요토미에 대한 원한이 깊어 조선에 귀순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작중에서 한번 충돌이 있었지만 그 후 함이 부부와 친해지고 일을 돕기도 하고 지내던중 함이를 노린 각설이패의 습격을 받았는데 큰형 이문성이 각설이패 한 명을 죽이고는 벌벌 떠는걸 보면 세 형제 모두 이수백을 죽이려고 인생을 걸었는데 정작 본인들은 백면서생에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다는 게 드러난다. 즉 각설이패 한 명을 죽인 게 이 형제의 첫 살인인 셈.


[1] 날아다니는 왜인이라는 뜻[2] 단 일부 장면에서 설정오류가 있는데, 전국시대에서 활동하던 젊은 시절이 나오는 1부 51화의 회상에서는 독단으로 조선군과 교전중 붙잡혀 포박당한 장면이 나오다가, 2부 28화의 회상에서는 지휘관 신분으로 조선군과 대치하다 김충선의 권유를 받아들여 투항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느 장면이 진실일지는....[3] 당시 서아지가 정명수를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함이는 서아지의 양자가 되었으면서도 이를 원망하게 된다.[4] 정묘호란 당시 의주성 전투에서 함이와 조우한 초희는 왜놈 아비의 칼을 찾고 싶다면 동강진으로 찾아오라며 이를 갈기도 했다.[5] 일본의 사무라이에서 조선의 무장으로 살다간 그로서는 조선인으로서 후금군의 병사가 된 함이에게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이다.[6] 3부 57화에서 풀네임이 밝혀진다.[7] 이때 전통 풍습에 따라 죄인이나 살인한 사람은 모두 나가 있고... 하지만 주위엔 전부 그런 사람인게 개그.[8] 사실 덕만도 함이가 이 사건 때문에 더는 후금에 있을수가 없어 떠나야함을 알고 있었다.[9] 1부 55화에서. 시국을 불평하는 이괄에게 정충신이 '통제공 이순신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수군을 건설하여 왜적을 물리쳤습니다.'라고 반박하자, 자신은 이순신만한 능력이 없다는 말일수도 있지만, 자신은 이순신처럼 에게 충성만 하다 비참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로도 해석 가능하다. 문제는 저 말을 한 정충신은 이괄의 난이 벌어지자 반란군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최악의 상황에서 패잔병을 긁어모아 이괄을 물리치고 반란을 제압했다. 그리고 이순신과 같은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았다.[10] 나름 인간성도 있어서, 고향으로 달아나려던 탈영병을 군법에 따라 처형하고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음을 알게되자 자신의 봉급을 털어 탈영병의 집에 곡식을 전해주기도 한다.[11] 이러한 부정적인 면모에 대한 묘사 역시 작가가 연재하면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전개였다. 이미 1부 마치고 작가의 말에서 "이제 이괄의 부정적인 면모도 그리려 한다. 그는 어쨌든 역사에 반역자로 남았으니"라고 했다.[12] 함이나 서아지 등을 제외한 이괄군의 항왜들은 조선의 정치 체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괄이 어째서 스스로 왕이 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13]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과 함께 싸운 적이 있어서 난중일기에도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별장을 지냈기 때문에 난중일기에는 '한 별장'이라고 쓰여 있다. 명나라에도 한명련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칭찬했다.[14] 가장 알려진 설은 한명련도 금부도사에게 압송되던 중 이괄이 구했으나, 다른 설로는 한명련이 주도적으로 금부도사를 죽이고 이괄에 합류했다는 기록도 있다. 칼부림에서는 두 기사를 인용하면서 후자를 택했다고 밝혔다.[15] 애초에 이괄이나 한명련이나 서로 상호존대를 하며 뜻을 함께 했으며 시간이 지나 이괄이 불리해지자 아들인 한윤이 이괄과 떨어질 것을 권고하자 반대했을 정도다.[16] 다만 작중에서의 이수백은 이괄군에서 비중이 크다 보니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다.[17] 당연한 얘기지만 이괄에게도 아비로써 부정은 있었다.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아들의 얘기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가 아들이 자리를 비우자 체통도 잊고 나도 할애비가 된다며 파안대소하거나, 아들을 잡으러 온 금부도사를 직접 쳐죽여 아들을 구하는 등 애정이 없다 보긴 힘들다. 그러나 이괄 본인이 전형적인 가부장적이고 엄한 가장이어서 아들에게 대놓고 정을 주지 못했다. 또한 성정이 독하지 못한 아들을 못마땅히 여겨 늘 꾸짖음과 질책으로 일관했고 반대급부로 함이를 대놓고 총애해 부자 사이는 더 어색해지고 만다.[18] 인성군도 난이 끝나고 줄기차게 모함을 받다가 역모에 연루당해 끝내 사사된다.[19] 심기원은 흥안군이 아무리 역적이라도 왕족인데 절차없이 독단으로 가혹하게 처벌한 탓에 인조의 신임을 잃었고, 훗날 김자점과 대립하다가 인조를 몰아낼 역모를 꾸몄다는 고변을 받고 주살된다. 야담에는 이때 흥안군이 너도 편케 죽지 못할 것이다라는 저주를 걸었고 실제로 그리 되었다.[20] 일종의 의형제같은 관계이다. 회상 씬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에 항왜가 되어 조선을 위해 싸울 때부터 같은 "주군"을 모셔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21] 이괄군을 따르는 문제를 놓고 사쇄문과 싸울때 사쇄문이 그 힘도 야소가 준거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였다.[22] 가톨릭은 음주가 허용된다.[23] 실제로 일본 전국시대에는 유럽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그 영향으로 기독교를 믿는 일본인들도 많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들을 "키리시탄" 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대표적이다. 에도 막부가 들어선 이후로 막부 보다도 교리에 더욱 복종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불순분자로 취급되어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카쿠레키리시탄 참조.[24] 작중에서 보여지는 외모는 오똑한 코에 눈이 움푹 패여들어간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아이누족하곤 거리가 멀다. 그러나 옛 도호쿠 지역엔 지금은 사라진 아이누계 민족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누 혈통을 지닐 가능성이 있지만은 작가가 밝히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25] 사실 이들이 밀항에 성공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은 낮다. 이들이 조선에 있던 사이 일본에서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져 고니시 유키나가의 서군은 궤멸당하고 에도 막부가 세워졌으며, 새로 세워진 에도막부는 1614년 가톨릭 전도와 신앙생활을 금지하는 금교령과 해외에 나가있던 일본인의 귀환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려 신도들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일본에 돌아가봤자 너무 세상이 바뀌는 바람에 주군도 없고, 신앙도 믿지 못하는 로닌 신세가 되었을 것. 막부 역시 과거 자신들에게 저항했던 서군출신의 불순분자 일행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고 어쨌거나 역적이 된 이들이 밀항하면서 빚어지게 될 조선과의 외교적 문제와 일본 내 동요(일본에서도 역적은 천황에 반대하는 조적朝敵이라 부르며 강력하게 처벌했다.)도 막을겸 이들을 처형해 입을 막거나 조선으로 다시 보냈을 것이다.[26] 2부와는 다른 함이의 정신적 성장이 보이는 부분이다.[27] 하필이면 부인인 길순이 막 해산한 직후였다.[28] 길순 왈, 지나가던 스님들 아니었음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사실 이때 서행을 도운 것은 독보와 사쇄문이었다.[29] 수많은 자들을 베었지만 유독 김서방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조한다.[30] 투항한 항왜들은 정예병으로 취급을 받아 이후 왜군과에 전투에서 가장 먼저 투입되어 싸웠는데, 어떻게보면 고기방패이고 동족상잔이다. 전란이 끝난 후에도 조선인들에게 전공을 인정받기는 커녕 조선 사회에서 백안시되어 자기들끼리 마을을 일구거나 비참하게 살았다. 전공을 인정받아 조선의 무관이 되었더라도 변방에 배치되어 후금군을 막는데 동원되었으니, 이러니 자신들을 조선 사회에 던져놓은 서아지를 증오하는 것. 서아지도 이점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31] 자신들 영역에 침입했으니 자신들이 먼저 조사하고 돌려보내주겠다 하는데.. 당연히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 앞에서 한낱 마을경비대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32] 이때, 독보에게 성주를 너무 믿지 말라며, 자신은 옛날 고향에서 급박한 상황까지 몰린 가신이 충의를 지키는 꼴을 못봤다고 한다.[33]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이 거대한 감옥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34] 정황상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령이었던 대만으로 향하거나 마카오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려고 하는 것 같다.(당시 마카오는 나가사키행 배가 있고 거리도 대만보단 가깝기에 굳이 대만까지 갈 필요가 없어보여 후자로 보인다.) 다만 이들이 조선에 있던 사이 집권한 에도 막부가 해외에 나간 일본인들의 귀국을 금지하고 기리시탄을 탄압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도 앞날이 험난할 듯 하다.[35] 반대로 함이의 요도(腰刀)를 집어든 사쇄문은 길이가 짧은 요도의 특성 탓에 칼날의 끝이 함이의 뺨을 스치는 것으로 그쳤다.[36] 함이나 고효내 등 작중 인물들 모두 다 외모에 대해서 한마디씩은 이야기한다. 사쇄문은 아예 대놓고 못생겼다고 깐다.[37] 이때 여진어 단어를 말한 것으로 출신에 대한 떡밥을 던졌다.[38] 실제로 실록에 따르면 이괄의 난이 처음 발발했을 당시에 정충신이 이괄과 평소에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39] 자신과 함께할 수령들을 모으기 위해 별다른 이유조차 없이 영변으로 모이란 급보를 날렸지만 한밤중에 급하게 수령들을 소집하는 건 오랑캐의 침변이나 도성에 문제가 생긴 긴급상황 정도지만 봉수의 불도 오르지 않았고 도원수가 상주한 평양에서 따로 전언이 없었는데도 별다른 이유없이 부르는건 어불성설이었고 결정적으로 이괄의 아들인 이전을 압송할 금부도사가 영변으로 들어간 직후에 보냈단 게 수상했다.[40] 도원수 암살에 실패한 함이는 차선책인 거짓항복을 선택했지만 이를 간파하고는 주먹질과 발차기로 기절시켰다.[41] 이괄의 난 이후 평안 병영을 안주로 이설하고 안주 목사가 평안 병사를 겸했다. 이를 반영한 듯.[42] 함이가 원거리 사격과 함정들만으로 포위군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궁지에 몰려 단병접전으로 기어코 몇명 더 죽이자 부하들을 물리고 잠깐의 대화를 나눈 다음 다친 허리를 주먹으로 쳐서 함이를 기절시켰다.[43] 오늘날 남아 있는 장만의 공신상에서도 안대를 차고 있다. 실제로도 장만은 눈병을 심하게 않다가 나중에는 눈병이 심한 왼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다.[44] 오히려 임진년의 은혜를 잊었냐며 요동수복 전에 조선을 치겠다며 적반하장격인 으름장을 피우고 역시 근본은 동이라는 모욕까지하자 홧김에 머릴 날려버리는 상상까지 했다. 결론은 그가 모문룡을 치켜세워주며 뻘쭘한 모문룡이 수락하긴하지만.[45] 그 이전에 본인 스스로가 함이의 칼에 목이 베일 찰나 군사들이 들이치는 소리에 한눈을 판 함이의 무릎에 벼루를 던져 틈을 만들고 가까스로 빠져나왔다.[46] 몇몇은 군을 죽음으로 몰아버린다고 신립에 비유하는데 이중로는 신립 장군처럼 쓸데없이 배수의 진을 친게 아니다. 애초 작전은 정충신의 군이 후미에서, 이중로의 군은 정면에서 이괄의 군을 마탄강으로 밀어넣어버리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충신의 군대가 시간안에 도착 못하고 오히려 이괄의 정예군에게 관군이 당해버리자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자는 지시였다. 어차피 이 상태에서 강을 등지고 후퇴하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물귀신이 될것이 뻔하다.[47] 검술뿐만 아니라 월도 역시 능숙하게 다루는 무인이다.[48] 갓난 아기때 왜란이 일어나 부친은 일본군과 싸우다 죽고, 장성해서는 폐모론에 반대해 이이첨의 미움을 받고 죽을 뻔했다. 반정 당일에는 반정군 편은 아니었으나 돈화문을 지키고 있다가 문을 열어 합류 의사를 밝혔으나 이를 수상히 여긴 반정 세력의 조사를 받았다. 이괄의 난과 호란을 거쳐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됐는데 심양에서는 국호를 청(淸)이라 고치고 왕을 황제로, 연호를 숭덕(崇德)이라 하여 교외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려고 할 때 그의 일행을 조선 사신으로 참여시키려고 하였으나, 결사적으로 항거하여 그 의식에 불참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뭐가 꼬였는지 이확이 청나라에 찬동했다고 바뀌어 파직되고 귀양까지 간다. 나중에 무고함이 밝혀져 풀려났고 병자호란때는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를 호위했다.[49] 이완의 예를 들어, 항장 출신인 이영방과 억류자 신세의 강홍립을 돌려 깐 것으로도 읽힌다. 아민은 또한 이완 개인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결국 그의 조국이 조선이기에 이완의 죽음은 의미가 없다며 평가절하했다.[50] 손톱을 물며 초조해하기까지 했다.[51] 심지어 모문룡이 당시 기준으로 매우 음란한 물건인 비천의 누드상을 선물로 보냈음에도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 없을 정도다. 참고로 모문룡이 나체의 여인상을 조선 조정에 보낸 일화는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는 실화다. 인조실록 1624년 3월 15일자 기사[52] 물론 작중에서 완전히 악역으로 나오진 않는다. 김류 입장에서 함이는 역적의 잔당일 뿐이며 오히려 작중에서 강홍립을 맞으면서 고생 많았다고 위로하거나 자기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장만에 지원을 반대하는 이귀를 꾸짖는 상식적인 장면도 나온다[53] 오죽하면 말단 신료들마저 반정 때 아비가 탄 말의 고삐를 잡아준 게 공이다 비아냥거릴 정도.[54] 사실 작중의 등장시점에서는 누르하치가 역사상으로 이미 60대인 고령이다.[55] 이 와중에 김경서는 인사를 올리면서 개돼지같은 오랑캐 새끼라고 조선말로 나지막하게 떠들었다. 당연히 누르하치는 뜻을 모르며 정명수는 통역을 안 하고 식은 땀만 줄줄 흘렸다.[56] 인사가 상당히 거칠었는데 근거리에서 함이한테 활을 쏘아 빰에 상처를 입혔고 주먹으로 가슴팍을 세게 쳤다. 그런데도 함이가 겁을 먹지 않고 당당히 서 있자 마음에 들어한 것이다.[57] 대신 함이가 직접 아비인(당연히 아니지만 대외적으론 그리 알려졌으니) 김경서를 처형하는 걸로 마무리지었다.[58] 누르하치 말년에 젊은 시절의 모습이 나오는데 체격이 건장하다는걸 알수 있다.[59] 가령, 항왜의 검법 시연을 관전하며 '명군도 백병전에서는 왜군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홍타이지의 말에 '명군이 이길 수 있는 군대가 어디에 있겠느냐'며 박장대소한다. 김경서 암살음모 적발시에도 자신은 '조선을 비루하게 여겼으나 강역을 침범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고 밝히며 조선을 하찮게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가 세운 후금(청)도 결국은 늘 나약하다 비웃는 명, 조선과 마찬가지로 비참하게 쇠락하여 몰락했음을 생각하면 사실상 자만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60] 홍이포로 인한 부상 및 영원성 공략 실패로 말미암은 심리적인 타격으로 보인다.[61] 당시의 포탄은 전부 그냥 쇠공이었다.[62] 특히 등창 때문에 갑주를 입을수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63] 식은땀을 흘리고 기침을 하며 등의 종기는 낮지 않아 등 전체로 번져 있으며 몸도 마르고 초췌해져 동정심이 나올 정도다.[64] 항상 사패륵을 고압적으로 대했던 태도와는 달리, 마지막에는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며 조금만 더 고생하라고 다독인다. 이때문에 아버지를 무서워하던 다이샨과 홍타이지도 슬픈 표정을 짓게 된다.[65] 누르하치에게 조선말로 오랑캐새끼라 조선말로 떠들고 그의 말에 조목조목 대드는 태도를 따졌다.[66] 함이의 진짜 속내는 당연히 죽이고 싶지만 공적으로서 굴마훈은 한의 노비이기에 함부로 죽일 수 없다 간언했다.[67] 잉굴다이가 굴마훈을 패는 동안 홍타이지는 가만히 앉아 장전(긴 화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이는 홍타이지가 칸이 됨으로써 화살이라는 뜻의 니루(여진족 팔기 300명의 단위부대)를 모두 손에 쥔 칸이 되었음을 작가가 은유한 것이라 볼 수 있다.[68] 만약 정말로 한 앞에서 토를 했다면 목숨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69] 가령, 다이샨의 통치기간에 한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사상자가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자 아버지에게 꾸짖음을 받는다.[70] 둘의 갈등은 영원성 전투 이후 본격화된다.[71] 물론 김경서의 음모에 가담만 하지 않았지 알리진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서 그 죄를 함이 스스로가 김경서를 죽이는 것으로 끝냈다.[72] 누르하치의 판단은 훌륭하지만 현장지휘관인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한다 선을 긋는다.[73] 다이샨의 심리묘사가 매우 생생하다. 평소의 신사적이고 유한 그의 성격이 내면의 활활 타오르는 야망을 누르고 있었던 것. 그래서 양구리에게 홍타이지가 더 야망이 크고, (사실상) 장남인 다이샨만이 종친을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꼭지가 돌아서 당장 홍타이지를 데려와 자신을 옹립하라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하지만 결국 눈물을 흘리며 대권을 포기하게 된다.[74] 점령한 성들을 멋대로 포기하고 철수한 것, 점령지의 포로와 백성들을 학살하고 약탈한 것 때문.[75] 속으론 외국인에다 암살음모자와 관련되어 신뢰할수 없는 사람을 아버지가 노골적으로 아끼는 것을 못마땅해왔다. 개인적인 원한이 없지만 그냥 마음에 들지않아서 죽여버리고 싶지만, 누르하치의 유훈은 물론 함이가 암바 버일러 다이샨의 소속이고 착실히 전공까지 세우고 있고 죽일 만한 죄가 없기에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76] 과격한 아민과는 반대로 다이샨은 위로의 뜻을 잘 받았다고 전해달라든가, 승려를 조문단에 딸려보낸 원숭환을 높이 사는 등 의젓하게 반응한다.[77] 이때 한윤도 나서서 조선정벌을 주장한다.[78] 아민의 동생. 훗날 아민이 명나라에 패배하자 그의 뒤를 이어 양람기의 주인이 된다.[79] 반면 이완이나 남이흥 같이 항복하지 않고 전사한 장수들에게는 후한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오죽하면 지나는 곳마다 조선군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서 "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다."고 불평할 정도.[80] 철수해 오던 부대에 홍타이지가 전령을 보내 심양 밖 15리에서 대기하라고 명한 후, 직접 행차해 체포한다.[81] 홍타이지는 날이 추워서 그랬다하지만 누르하치와 마주하는 오오바를 '건방진 몽고놈들' 하는 걸 보면 순전히 적대감 때문에 갑주를 걸친 걸로 보인다.[82] 하지만 멀리서나마 들려오는 함이의 승승장구 소식이나 자신이 데려온 덕만의 자리매김 등에 단검술 연습으로 초조함을 달래는 정명수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이신 구룬의 굴마훈이지 솔호의 정명수가 아니라며 질책 아닌 격려를 하는 면모도 있다.[83] 함이의 존재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정명수를 질책하며 예전의 영민함은 어디 갔냐고 일갈하기도 한다. 마냥 잡아먹을 듯 구는 것처럼 보여도 잉굴다이 입장에서 정명수는 못 미더운 구석이 있긴 해도 일은 잘하는 에이스급 부하인 것.[84] 포섭 대상이었던 가도의 총사령관 유흥치가 결국 후금에 귀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가도에 무혈입성한다는 계획은 어그러졌고 토사구팽 당한 여진 병사들이 유흥치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유흥치의 부하 심세괴의 병사들에게 패배해 몰살당했다.[85] 누르하치와 독대 중일 때의 평범한 표정과 대조적으로 조선인인 김경서가 누르하치를 접견할 때는 매우 경계하는 표정을 지을 정도다.[86] 이 사람은 훗날 병자호란광교산 전투에서 혼전 중 조선군 저격수에게 전사하는 인물인데, 누르하치의 최측근으로 비중있게 등장하는 것은 이후 광교산 전투를 그리기 위한 작가의 사전포석일 수 있다.[87] 사실 부어오른 정도를 따지자면 안와골절이 의심되는 수준이다. 거기에 평범한 여성이 요즘으로 치면 프로 격투기 선수한테 바로 죽방을 맞은거나 다름없다.[88] 이에 홍타이지는 "매부, 개의 충성심을 확인할 방법이 뭔지 아시오? 목줄을 풀어 놓는 거요. 어디까지 가나 두고 봅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답한다.[89] 다이샨은 아바하이 순장에 찬성하지 않은 듯 하나, 식은 땀을 흘리며 아바하이의 눈을 피할 뿐 그녀의 구명에 나서지도 않았다.[90] 가짜 오랑캐. 가왜랑 비슷한 멸칭이라고 보면 된다.[91] 아무래도 자신과 함께 이괄의 난에 참가했던 동지이기도 했으며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함이를 도구로만 여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금군으로서 자신의 첫 전투에서 함이가 나타나자 기뻐했으며 전투 이후에도 속마음을 유일하게 털어 놓기도 한다. 이후에도 함이가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상관인 자신에게 버릇없이 굴어도 크게 책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투 종료 후 포로를 분배할 때 따로 함이에게 즐기라며 여성 포로를 따로 준다던가, 또다른 부하인 타스하와의 앙금을 풀도록 씨름대회를 주선한다.[92] 옆에 있던 다이샨이 미소를 짓는 모습과 대조된다.[93] 경박하게 자신의 고모가 인삿말을 하자마자 나서서 인삿말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94] 실제로 도르곤이 효장문황후와 연인 사이였다는 설이 존재한다.[95] 만주어호랑이를 의미한다. 조선명은 김장호(金壯虎)로 밝혀진다.[96] 하지만 전투 중 동생이 함이에게 덤비다 죽은 탓에 기쁘기보단 동생의 죽음으로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97] 다만 함이가 세운 공이 크고 동생이 질투심에 함이를 죽이려다가 죽은 것이라서 동생 잘못이 크기에 그가 뭐라고 할 입장이 못 된다. 더군다나 누르하치가 눈여겨 보고 있는 대상에다가 함이도 하나의 니루를 이끄는 지휘관이기에 사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98] 정확히는 사적으로 동생을 죽인것 때문에 함이를 온전히 미워하긴 하나 함이의 상황과 능력을 알기에 복수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앞서 애기한 것처럼 질투심에 함을 죽이고자 했던 타스하동생이 죽음을 자초 한도가.[99] 한윤이 문답무용으로 초희에게 쏜 화살을 대신 왼팔로 가로막은 탓이다.[100] 하필이면 함이의 바야라 시절 그의 동료였던 자들이다(...).[101] 만주어까치.[102] 육진 지역에 살던 여진족.[103] 물론 창수 입장에서는 상관을 보호하려 한 것이다.[104] 정확히는 와르카부(瓦爾喀部), 오늘날의 나나이족이다.[105] 물론 함이 본인이 조선에선 역적, 후금에선 탈영, 상해,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으로 쫓기는 몸인데다 하일란까지 지켜야하니 매우 민감하게 굴 수 밖에 없다.[106] 함이와 엮이고 그 아이를 가진 것 때문에 이후 운명이 염려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함이가 다름아닌 광해군의 사생아로 드러나면서 인조측에서 어떻게 함이를 찾아 죽이고, 그 혈통을 끝내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해군 복고 세력 측도 위험한 것이 자신들이 왕으로 옹립하려는 자의 아내가 여진족 출신인 것을 사대부로서 용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107] 이괄의 난이 1624년임을 감안하면 천계제일 가능성이 높다.[108] 해당 대사를 할 때 원숭환은 절박한 표정으로 말을 달려 북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상당한 병사들이 지쳐 낙오되었다는 제장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09] 이에 대해 한 댓글은 "어떤 충신이 천자를 외롭게 하냐면서, 정작 천자인 자신은 충신을 외롭게 두냐."며 숭정제의 행동을 비판했다.[110] 이때 숭정제에게 손을 뻗던 원숭환을 매정하게 뿌리치는 숭정제의 모습이 한 화면을 할애하며 그려졌다.[111] 이 부분에서 작가가 어느정도 원숭환을 이순신과 유사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보인다. 위 영원성 전투 당시에도 병사들 앞에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는 연설을 하여 독보가 이순신을 연상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112] 그리고 바로 아래 컷에 자신의 간계가 성공했다고 확신한 청 태종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넣어 큰 대조를 이루게 연출했다.[113] 이 사실도 초희 본인이 기억하는 아버지를 임경업에게 설파하다 듣다못한 임경업이 진상을 밝혀서 알게됐다.[114] 연인인 체건의 목숨이 위험하자 쇠뇌로 하나하나 정도방의 사람들을 사살하고 체건의 칼로 정도방의 목을 베어 죽인다.[115] 이때 변발로 머리를 밀리고 만다.[116] 이들은 도중에 마주친 조선인들을 살해하고 그 목을 베어 후금군의 수급으로 위장하거나, 붙잡은 부녀자를 겁탈할 생각을 하는 등 강도로 타락해 있었다.[117] 물론 병중이기는 했으나 한 번도 김충선을 이기지 못했다는 언급이 있다.[118] 작중 김체건을 향해 왜인 운운하는 표현이 나온다. 허나 그가 항왜인 김충선의 수하여서 왜인이라 불린 것일 수도 있다. 4부 127화에서도 함이에 의해 '항왜'라고 언급된다.[119] 그런데 실존인물 김체건이면 나이가 좀 오류가 생긴다. 기록에 등장하는 김체건은 적어도 숙종때 활동한 인물이며 왜국에 가서 검을 배웠다고 추정되는 시기가 일본의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 즉위 무렵이다.(1680년). 이괄의 난이 1624년에 벌어졌고, 극중 그려진 외모로 보아 못해도 30이라 추정하면 칠순,팔순 고령에 왜국으로 건너가 왜검을 익혔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고증을 적용하면 50년이나 차이가 난다. 물론 김체건이 왜관의 왜인에게 검술을 배웠다는 기록도 있고, 실록을 보면 노인도 과거를 보거나 음직, 천거로 관직을 얻는 사례도 있어 야인으로 지내다가 어찌저찌 무관직에 올랐다면 고증오류까진 아니라 본다. 단지 나이가 너무 많을 뿐.[120] 사후 어느 소속인지는 밝혀지지않아 이때까진 김경서 일당의 거사가 드러나진 않았다. 대신 함이는 한이 내려준 칼로 사사로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양구리에게 얻어맞는다.[121] 후에 김경서 역시 함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함이가 광해군을 꼭 닮았다고 독백한다.[122] 그와 우연히 길을 걷다가 함이와 부딪혔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함이조차 놀라워할 만큼 몸이 단단하다.[123] 독보 대사는 왜란 때 참전한 수많은 승병들 중 하나이며, 후에 임경업의 휘하로 들어갔으며 호란 때 큰 도움을 준다.[124] 작중 김경서의 이 말이 섬뜩한 것이, 실제로 만주족은 중원을 정복하면서 양주십일, 가정삼도 등의 대학살을 벌이며 패악질을 부렸고, 그 원한을 잊지 않은 한족들에 의해 신해혁명 때 각지에서 학살과 린치를 당했으며, 핍궁사건 때 아예 저 사건들을 언급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은 만주족들도 정체성을 숨기고 숨어살 수밖에 없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청말 러시아 제국과의 갈등으로 인해서 기존에는 한족의 거주를 금지하던 만주에 한족이 이주할 수 있게 해서 동북지역에서 수적으로 한족에게 역전이 되는 등 여러 복합적인 악재가 겹쳐서 현재 만주어를 쓰는 순수 만주족은 거의 없고 대부분 민족 정체성을 잃고 한족에 동화되거나, 이후 중화민족이라는 개념 아래에 녹아 사라져버렸다. 문화대혁명 이후로는 중국 공산당이 소수민족 보호라는 명목으로 일부 만주족 자치현을 만들어주긴 했으나 사실상 만주족이 거의 다 소멸한 후인지라 별 의미는 없었다. 비슷하게 한때 중국 대륙을 정복했던 몽골족이 패악이 심하지 않았고 본류는 어디까지나 몽골이라는 태도를 고수함으로서 살아남은 것과 대비된다.[125] 가짜 오랑캐[126] 사실 함이의 친아버지는...[127] "주군"이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많은 추측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르후 전투에 파병된 원정군의 고위 지휘관이었으며 작중 서아지의 대사 등에서 확실한 생존이 확인되는 인물인 강홍립 이었다. 그런데 강홍립은 임진왜란 중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므로 작중 묘사(임진왜란 당시 항왜를 거느리는 모습)가 다르다. 따라서 다른 조선군 지휘관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르후 전투 때 조선의 고위 지휘관으로는 강홍립, 김경서, 김응하가 있었으며, 김응하는 사르후 전투 때 전사하였으니 배제하고 항왜를 거느린 모습과 임진왜란 때도 지휘관이였다는 모습은 김경서로 추정된다. 참고로 김경서는 임진왜란 때 계월향 전설에 나오는 그 김응서이며 임진왜란 후에 김경서로 개명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항왜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후원자 역할을 했으나, 그러다보니 본의아니게 이중간첩 요시라에게 속아넘어가 이순신 장군을 백의종군하게 만든 탑 원인 중 하나이다. 2부 13화에서 김경서로 확인됐다.[128] 그 와중에 김경서가 누르하치의 치부인 추옝(누르하치의 장남) 숙청 사건을 언급하면서 아픈 곳을 찌르자 누르하치에게 오른손 훅으로 관자놀이에 맞고 뻗어버린다.[129] 명나라의 수도에 입성한 뒤에는 김경서가 자신을 진정한 황제로 인정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130] 의도적인 기만이냐 고니시 유키나가가 진짜로 가토를 담가버리려고 조선에 정보를 줬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두 인물이 실제 서로 죽이려 들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131] 김경서를 배신했다기보다는, 조선과 후금의 관계가 험악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국적 처신으로 그려진다. 김경서 역시 강홍립의 밀고를 이해하는 묘사가 있다.[132] 영창대군은 1606년생이다. 정묘호란시기까지 살아 있었다면 21세의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133] "우와, 참 신기하다. 그치? 아직도 형을 왕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있다니."[134] 사쇄문도 함이와 검을 맞대고 싸우던 도중 못생긴 것들끼리 붙어먹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귀여운 것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135] 다만, 얄궃게도 이들과의 조우 덕에 초희와 진평이 다시 만날 수 있었다.[136] 정확하게는 관군과 싸우다가 자신이 준 도토리를 함이가 흘리자 그걸 주우러 업동이가 달려나갔다가 한창 싸움으로 살기가 가득했던 함이가 무의식적으로 뒤 인기척에 칼을 휘둘렀는데, 그런 업동이를 구하고자 달려나온 업동의 어머니가 대신 칼에 맞아 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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