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츠크 전투 폴란드어: bitwa pod Kockiem | ||
제2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 침공의 마지막 전투. | ||
날짜 | ||
1939년 10월 2일~10월 6일 | ||
<colbgcolor=#030><colcolor=#FFF> 교전국 |
| |
지휘관 |
프란치셰크 클레베르크 |
구스타프 안톤 폰 비터스하임 |
전력 | 폴란드군 약 1.8만 명 | 독일군 3만 명 이상 |
피해 규모 | 사상자 250-300명 포로 약 1.7만 명 | 사상자 300-500명 포로 185명 |
결과 | 폴란드군의 항복, 독일 국방군의 승리, 폴란드 침공 종료 |
1. 개요
2019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Ostatni Bój[1]> [2] |
코츠크 전투의 폴란드군 지휘관 프란치셰크 클레베르크 준장 |
코츠크 전투는 1939년 10월 2일부터 6일까지 프란치세크 클레베르크 장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독립 작전 단체 '폴레시에'(SGO Polesie)와 폰 비테르샤임 장군이 지휘하는 독일 제14기계화 군단 사이에서 벌어진 폴란드 침공의 전투이다. 이 전투는 폴란드 제2공화국의 정규군이 벌인 마지막 전투였다.
2. 편제
2.1. 폴란드군
SGO Polesie(폴레시에)[3]- 제 60 보병사단
- 제 50 보병사단
- 임시 기병사단 "Zaza"
2.2. 독일군
XIV 군단 (기계화)제13보병사단 (기계화)
제29보병사단 (기계화)
3. 전개
3.1. 배경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 제2공화국을 침공했다. 9월 11일, 폴란드에서 클레베르크 장군의 지휘 아래 SGO Polesie가 창설되었다. Polesie 주와 Brześć (브제시치) 및 Pińsk(핀스크) (SGO 본부가 위치한 곳)를 방어하여 폴란드 중부의 폴란드군이 동쪽에서 포위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SGO Polesie의 목적이었다.9월 14일, SGO Polesie는 하인츠 구데리안이 지휘하는 독일 제19 기갑군단을 마주하게 된다. SGO Polesie는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브제시치를,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코브린을 방어한다.
9월 17일,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클레베르크 준장은 폴란드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루마니아 교두보로의 후퇴를 결정한다. 하지만 9월 22일 사령부와의 통신이 두절되고 클레베르크 준장은 포위된 바르샤바를 지원하기로 한다.
9월 28일, 바르샤바가 항복한다. 하지만 클레베르크 장군은 마지막까지 항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부크(Bug) 강을 건넌 상태였던 SGO Polesie는 시비엥토크지스키에(Świętokrzyskie) 산 주변 숲에서 대규모 파르티잔 작전을 계획한다. 9월 29일 소련군과의 교전이 벌어지지만 9월 30일 승리한다.
3.2. 진행
코츠크 전투의 폴란드군 |
10월 3일, 폴란드군은 포즈난을 공격하여 탈환을 시도한다. 제 1 크레호비에츠 울란 연대, 제 3 마조프 경기병 연대는 습지 계곡에서, 제3 기마소총연대는 Czarna 방면에서 독일군을 공격한다. 포즈난에 주둔하던 독일군 포병대가 전멸했으나, 폴란드군의 무기 부족 문제로 공격은 중단되고 탈환에 실패한다.
10월 4일, 독일군이 부크 강을 향해 진군한다. 독일군 제 13, 제 29 보병사단이 볼라 구워프스카-아다무프-크지프다(Wola Gułowska-Adamów-Krzywda) 지역의 폴란드군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한다. 독일군 제 13 보병사단의 좌익은 폴란드군 Plis 기병대를, 우익은 Adamów를 공격한다. 독일군 제 29보병사단은 젤레후프(Żelechów) 지역을 공격한다. Żelechów의 폴란드군은 독일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한다. 클레베르크 장군과 SGO Polesie 수뇌부는 앞으로 며칠동안 독일군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10월 5일, 바르샤바에서 나치 독일군의 퍼레이드가 열릴 동안 독일군이 아다무프-코노르자트카(Adamów-Konorzatka) 지역의 폴란드군을 공격한다. 폴란드군은 헬레누프(Helenów)와 볼라 구워프스카(Wola Gułowska)에서 독일군을 공격하지만 Wola Gułowska에서의 공격만이 성공을 거두었으며 장교 4명과 다수의 병사들이 사망하는 큰 손실을 입었다. 한편 폴란드군의 일부는 포즈난을 공격하여 성공적으로 탈환한다. Wola Gułowska에서 폴란드군을 공격하던 독일군은 결국 폴란드군의 총검 돌격에 당해 후퇴했으며, 독일군 제 13보병사단은 사실상 궤멸된다.
그러나 폴란드군에게는 이제 남은 무기가 거의 없었다. 호루지에즈카(Hordzieżka)에 모인 클레베르크 장군을 포함한 3명의 폴란드군 지휘관들은 항복을 결정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할 것이 없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군인의 명예를 지켰다. 훗날 조국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그 어떠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Nic sobie nie mamy do zarzucenia. Zachowaliśmy honor żołnierski do końca. Kiedyś, gdy Ojczyzna zażąda od nas rachunku, będziemy mogli odpowiedzieć na każde pytanie.
프란치셰크 클레베르크 준장, Epler 대령에게 작별을 고하며
(원문) Nic sobie nie mamy do zarzucenia. Zachowaliśmy honor żołnierski do końca. Kiedyś, gdy Ojczyzna zażąda od nas rachunku, będziemy mogli odpowiedzieć na każde pytanie.
프란치셰크 클레베르크 준장, Epler 대령에게 작별을 고하며
전투는 10월 6일 오전 1시까지 이어졌다.
멀리 떨어진 폴레시에에서 온 군인들, 나레브 강에서 온 군인들, 코벨에서 사기를 저하시키지 않고 저항한 부대에서 온 군인들 - 나는 당신들을 내 지휘 아래 모아 끝까지 싸우게 했다.
나는 원래 남쪽으로 가서 바르샤바를 지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졌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바르샤바가 함락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싸웠다. 우리는 먼저 볼셰비키에 맞서 싸웠고, 그다음에는 독일군과 세로코믈라에서 5일간 전투를 벌였다.
여러분은 이러한 힘든 시기에도 강인함과 용기를 보여주었고, 끝까지 조국에 충성을 다하였다.
지금 우리는 포위당했고 탄약과 식량이 없다. 더 이상 싸워도 아무런 희망이 없으며 군인들의 피만 흘릴 뿐이다.
책임을 지는 것은 지휘관의 특권이다. 오늘 나는 가장 어려운 이 순간에 더 이상 무의미한 싸움을 중단하고 군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한다. 나는 당신들의 용기와 규율에 감사한다. 당신들은 필요할 때 굳건히 맞서 싸울 것이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원문) Żołnierze z dalekiego Polesia, znad Narwi, z jednostek, które się oparły w Kowlu demoralizacji – zebrałem Was pod swoją komendę, by walczyć do końca.
Chciałem iść najpierw na południe – gdy to się stało niemożliwe – nieść pomoc Warszawie. Warszawa padła, nim doszliśmy. Mimo to nie straciliśmy nadziei i walczyliśmy dalej, najpierw z bolszewikami, a następnie w 5-dniowej bitwie pod Serokomlą z Niemcami.
Wykazaliście hart i odwagę w czasie zwątpień i dochowaliście wierności Ojczyźnie do końca.
Dziś jesteśmy otoczeni, a amunicja i żywność na wyczerpaniu. Dalsza walka nie rokuje nadziei, a tylko rozleje krew żołnierską, która jeszcze przydać się może.
Przywilejem dowódcy jest brać odpowiedzialność na siebie. Dziś biorę ją w tej najcięższej chwili – każąc zaprzestać dalszej bezcelowej walki, by nie przelewać krwi żołnierskiej nadaremnie. Dziękuję Wam za Wasze męstwo i Waszą karność, wiem, że staniecie, gdy będziecie potrzebni.
Jeszcze Polska nie zginęła.
클레베르크 준장의 마지막 명령
나는 원래 남쪽으로 가서 바르샤바를 지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졌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바르샤바가 함락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싸웠다. 우리는 먼저 볼셰비키에 맞서 싸웠고, 그다음에는 독일군과 세로코믈라에서 5일간 전투를 벌였다.
여러분은 이러한 힘든 시기에도 강인함과 용기를 보여주었고, 끝까지 조국에 충성을 다하였다.
지금 우리는 포위당했고 탄약과 식량이 없다. 더 이상 싸워도 아무런 희망이 없으며 군인들의 피만 흘릴 뿐이다.
책임을 지는 것은 지휘관의 특권이다. 오늘 나는 가장 어려운 이 순간에 더 이상 무의미한 싸움을 중단하고 군인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한다. 나는 당신들의 용기와 규율에 감사한다. 당신들은 필요할 때 굳건히 맞서 싸울 것이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원문) Żołnierze z dalekiego Polesia, znad Narwi, z jednostek, które się oparły w Kowlu demoralizacji – zebrałem Was pod swoją komendę, by walczyć do końca.
Chciałem iść najpierw na południe – gdy to się stało niemożliwe – nieść pomoc Warszawie. Warszawa padła, nim doszliśmy. Mimo to nie straciliśmy nadziei i walczyliśmy dalej, najpierw z bolszewikami, a następnie w 5-dniowej bitwie pod Serokomlą z Niemcami.
Wykazaliście hart i odwagę w czasie zwątpień i dochowaliście wierności Ojczyźnie do końca.
Dziś jesteśmy otoczeni, a amunicja i żywność na wyczerpaniu. Dalsza walka nie rokuje nadziei, a tylko rozleje krew żołnierską, która jeszcze przydać się może.
Przywilejem dowódcy jest brać odpowiedzialność na siebie. Dziś biorę ją w tej najcięższej chwili – każąc zaprzestać dalszej bezcelowej walki, by nie przelewać krwi żołnierskiej nadaremnie. Dziękuję Wam za Wasze męstwo i Waszą karność, wiem, że staniecie, gdy będziecie potrzebni.
Jeszcze Polska nie zginęła.
클레베르크 준장의 마지막 명령
장교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클레베르크 준장 |
클레베르크 장군은 오전 2시에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폴란드 제2공화국 정규군의 1개월 그리고 6일에 걸친 항전이 막을 내렸다.
3.3. 전투 이후
폴란드군의 대부분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일부는 항전을 계속했다. 항전을 계속한 폴란드군으로는 헨리크 도브잔스키(Henryk Dobrzański) 소령의 폴란드군 육군 분리부대(Oddział Wydzielony Wojska Polskiego) 등이 있다. 폴란드군 육군 분리부대는 최초의 폴란드 파르티잔 지하조직이며 1940년 봄까지 활동했다.이 전투에서 폴란드군을 지휘한 클레베르크 준장은 포로가 되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1941년 드레스덴의 포로수용소 병원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