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01:00:11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나치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에 대한 내용은 프랑스 침공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유럽/아프리카
{{{#!wiki style="color: #FFF;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1D1D1D; margin: -6px -1px -11px; font-size: 0.92em; letter-spacing: -0.8px; word-break: keep-all"
※문서가 생성된 전투만 기재
둘러보기 : 아시아 및 태평양 전선 전투목록
전투 이름 교전 국가 및 세력
<rowcolor=#FFF> 공격 측 방어 측
<nopad> 1939년
<colbgcolor=#b31c31> 폴란드 침공
베스테르플라테 전투
단치히 우체국 방어전
바르샤바 전투
비츠나 전투
브주라 전투
겨울전쟁
수오무살미 전투
콜라 전투
<nopad> 1940년
가짜 전쟁
노르웨이 침공
프랑스 침공
아라스 전차전
됭케르크 철수작전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
북아프리카 전역
몰타 항공전
칼라브리아 해전
영국 본토 항공전
독수리의 날
유고슬라비아 침공
그리스 침공
타란토 공습
<nopad> 1941년
마타판곶 해전
라인 연습 작전
크레타 섬 전투 파일:그리스 국기(1822-1978).svg 그리스 왕국
바르바로사 작전(독소전쟁)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
발트해 전역
브로디 전투
비아위스토크-민스크 전투
계속전쟁
은색 여우 작전
뮌헨 작전
제1차 스몰렌스크 전투
우만 전투
모스크바 폭격
제1차 키예프 전투
페르시아 침공
레닌그라드 공방전
뱌지마-브랸스크 포위전
모스크바 공방전
툴라 전투
세바스토폴 공방전
로스토프 전투
알렉산드리아 습격
<nopad> 1942년
류반 공세
르제프 전투
데미얀스크 전투
영불 해협 돌파작전
마다가스카르 전투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남아프리카 연방
제2차 하리코프 공방전
류반 구원 작전
빌헬름 작전
프리데리쿠스 작전
청색 작전
보로네시 전투
엘 알라메인 전투
PQ-17 호송선단 전투
자이들리츠 작전
칼라치 전투
제1차 르제프-시쵸브카 공세
비르벨빈트 작전
디에프 상륙 작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횃불 작전
튀니지 전투
천왕성 작전
벨리키예루키 전투
화성 작전
겨울폭풍 작전
바렌츠 해 해전
<nopad> 1943년
북캅카스 공세
콜초 작전
이스크라 작전
보로네시-하리코프 공세
스카쵸크 작전
제3차 하리코프 공방전
쿠르스크 전투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
쿠투조프 작전
제1차 돈바스 공세
므가 공세
플로이에슈티 공습
제4차 하리코프 공방전
제2차 스몰렌스크 전투
브랸스크 공세
드네프르 강 전투
도데카니사 전투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무솔리니 구출 작전
슈바인푸르트 공습
제2차 키예프 전투
드네프르-카르파티아 공세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슬로바키아
노스케이프 해전
<nopad> 1944년
칼린코비치-모지리 공세
몬테카시노 전투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안치오 상륙 작전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나르바 전투
비텝스크 공세
논쟁 작전
로가체프-즐로빈 공세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빌레르보카쥬 전투
바그라티온 작전
레지차-드빈스크 공세
프스코프-오스트로프 공세
리보프-산도미에시 작전
루블린-브레스트 작전
타넨베르크 선 전투
바르샤바 봉기
타르투 공세
팔레즈 포위전
용기병 작전
도펠코프 작전
제2차 야시-키시네프 공세
슬로바키아 민족봉기
파일:체코 국기.svg 슬로바키아 봉기군
동부 카르파티아 공세
발트해 공세
라플란드 전쟁
베오그라드 공세
휘르트겐 숲 전투
마켓 가든 작전
아헨 전투
판처파우스트 작전
굼비넨 작전
벌지 전투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임시정부
부다페스트 공방전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국민단결정부
<nopad> 1945년
보덴플라테 작전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동프로이센 공세
한니발 작전
하부 슐레지엔 공세
드레스덴 공습
남풍 작전
봄의 새싹 작전
모라바-오스트라바 공세
상부 슐레지엔 공세
연합군의 독일 본토 침공
텍셀 봉기
파일:Georgische_Legion.png 조지아 군단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저항군
삼란드 공세
베를린 공방전
오드자크 전투 파일: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깃발.svg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공화국
이터 성 전투 파일:슈츠슈타펠 깃발.svg 항전파 무장친위대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저항군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VIP
프라하 봉기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저항군
※시기 구분은 전투 및 교전 발생 일자 기준, 전투 기간은 개별 문서 확인
}}}}}}}}} ||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
시기
1940년 6월 10일 ~ 6월 25일
장소
남프랑스 알프스 산맥
교전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나치 독일
지휘관 르네 앙리 올리 움베르토 디 사보이아
결과
프랑스 제3공화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강화 협상
기타
프랑스 항복 후 알프스 지역 일부분 영토 획득

1. 개요2. 원인3. 전개4. 결과5. 기타

[clearfix]

1. 개요

1940년 6월 10일부터 25일까지 벌어진 이탈리아 왕국의 프랑스 침공.

2. 원인

1940년, 이탈리아제1차 세계 대전처럼 폴란드 침공때까지 중립을 유지하면서 연합국-추축국 간에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군의 전력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일단 이탈리아 경제는 형편없어 보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원자재가 부족하여 대부분 영국, 미국에 의존해야 했다. 대부분의 장군들은 1942년 후까지 전쟁을 벌이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당시 연합국의 눈치로 인해 독일을 도울 수 없었고, 알프스 지역에도 별 조치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독일의 성공적인 아르덴 돌파로 연합군이 고립되어 35만명이 철수하고 연합군이 사실상 붕괴되자 무솔리니는 프랑스가 항복하면 그 땅은 나치 독일 것이 되거나 괴뢰정부 것이 될 것이고 지금이 호기라 생각하며 준비도 안 된채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알프스 지역을 침공하려 했다. 이를 들은 수많은 참모들은 경악하여 절대로 전쟁을 벌여서는 안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자만심에 빠져 6월 10일 정식으로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전쟁에 참여하였고 이탈리아군 졸전기록을 작성하게 되는 참사를 낸다.

3. 전개

이탈리아군은 갑작스런 선전포고로 인해 급하게 알프스로 보내져서 혼란 그 자체였다. 또한 6월이지만 당시 알프스 지역은 만년설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은 허둥지둥 움직이느라 방한용 장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첫날부터 동상자가 발생하였다.

4~5일간 이탈리아군이 알프스 지역을 행진하는 동안 프랑스군은 공격에 대비해 전선에 총 85,000명의 병력(산악 사단 1사단, 보병사단(예비군으로 편성) 3개, 세네갈 사단과 국경요새 주둔병까지 포함)이 알프스 지역의 방어에 나섰다. 이들은 '알프스 선'이라는 방어선을 구축하여 미리 이탈리아군의 공격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1]
한편 이탈리아의 장군 피에트로 바돌리오는 급하게 이루어지는 대규모 병력 이동, 장비, 보급 문제로 대대적인 공격은 25일에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욕심은 끝도 없었고 무조건 23일에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23일까지 준비하고 있었는데... 18일에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협상을 하면서 이탈리아가 공격하기 전까지는 프랑스와 강화 협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지만 히틀러는 당연히 거절했다. 그리고 로마로 돌아오면서 프랑스 정부와 독일간에 항복 협상이 시작했다는 뉴스를 듣자 무솔리니는 또다시 23일에서 21일 새벽으로 날짜를 바꿔 공격하라 명령했고 결국 21일 새벽으로 앞당겨졌다.

파일: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png
21일 새벽, 이탈리아군은 세갈래로 나뉘어 북쪽을 제4군이, 중부와 남부를 제1군이 맡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철저히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결국 전투 첫날부터 이탈리아군은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장비들은 추운 날씨로 인해 대부분 버려지면서 순수 보병이 진격해야 했고, 무엇보다 이탈리아군 측은 해군과 공군이 육군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진격 상황은 더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알프스 선 요새들의 맹공격과 곳곳에 숨어있던 저격수들 때문에 전진이 더 이상 불가능했다. 결국 북부와 중부에서는 프랑스군의 저항에 공세가 돈좌되어 8km만 진격하고 그쳤다. 남부 지역만이 해안가에 따라 침투하여 방어선을 돌파하고 멘톤 지역을 점령한 게 끝이다.

4. 결과

결국 무솔리니의 똥고집+욕심과 자만심으로 이탈리아군은 별 이득도 못보고 피해는 고스란히 다 입게 되었으며 24일, 프랑스의 항복으로 이탈리아는 소수 알프스 지역 영토만을 획득했다. 이탈리아군이 전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탈리아군의 승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고 빠르게 항복시켜서 망정이지 프랑스 정부의 항복이 며칠만 늦었더라도 이탈리아 본토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던 프랑스군에게 본진을 털리고 멸망 직전의 나라에게 덤볐다가 역으로 본토가 공격당한 졸전의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달 뻔했다.

'인물로 읽는 세계사' 무솔리니 편에 따르면, 이탈리아군은 600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고작 13개 마을만 함락했다. 반면 프랑스군의 인명 손실은 37명이었다고 한다.

5. 기타



[1] 사실 이것도 감축된거였다고 한다. 원래 1939년 9월 개전당시에는 프랑스쪽은 11개 사단이 알프스 선에 배치되었는데 그중에서 기동성 있는부대들은 39년 12월까지 독일과의 북부 전선으로 재배치 되었다가 독일군의 공격에 소멸되고 프랑스 남부로 밀려오던 독일군을 막아 보려고 또 상당수의 병력과 후퇴해온 인원까지 합해서 3만명을 또 편성해서 디종~리옹 방면으로 파견보내서 이탈리아군이 프랑스군과 싸우기 시작할 당시에 프랑스 알프스 군의 전선배치병력이 위의 85000명 이었던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