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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1:26:39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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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Petits Chanteurs à la Croix de Bois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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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프랑스어 Les Petits Chanteurs à la Croix de Bois[1]
Manécanterie des Petits Chanteurs à la croix de bois[2][3]
한국어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영어 The Little Singers of Paris
The Little Choirs of The Wooden Cross[4]
중국어(간체자) 巴黎木十字男童合唱团[5][6]
별칭 프랑스어 PCCB[7]
한국어 파나십[8]
설립일 1907년 1월 ([age(1907-01-01)]주년)
국가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9],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0]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특징
3.1. 공연3.2. 학교 생활3.3. 단복
3.3.1. 이전의 단복3.3.2. 현 단복
3.3.2.1. 공연 단복
3.3.2.1.1. 주 단복3.3.2.1.2. 봄 & 여름 전용 유니폼
3.3.2.2. 평상복3.3.2.3. 교복3.3.2.4. 비공식 유니폼
3.4. 개인 가방 및 캐리어3.5. 전용 셔틀버스
4. 대표 곡5. 대한민국과의 관계6. 단원
6.1. 역대 솔로이스트
6.1.1. 1960년대6.1.2. 2020년대
7. 미디어 출연
7.1. 방송 출연 목록7.2. 영화 출연 목록
8. 굿즈9. 평가 및 찬사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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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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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013년
1907년에 창단된 프랑스아카펠라 소년 합창단. 총 80명[11]의 8~18세 사이[12]의 소년들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이들이 오스트리아빈 소년 합창단, 독일퇼처 소년 합창단(Tölzer Knabenchor)과 더불어 세계 3대 소년 합창단 중 하나로 꼽는다. 어린 아이들이라고 믿기지 않는 깔끔하고 아름다운 선율, 활발한 정기 해외 공연, 평소 순수하고 장난끼 넘치면서도 공연 때는 진지하고 예의 바른 단원들의 모습 등, 다양한 매력들 덕분에 창립 이래 현재까지도 전세계 팬들에게 사랑받는 소년 합창단 중 하나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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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906년 여름, 알프스산맥의 타미의 수도원(The Abbey of Tamie)를 방문했던 두 신학생 피에르 마르탱(Pierre Martin)과 폴 베르테르(Paul Bertheir)[13]가 종교음악의 진수를 보여주고자 합창단을 설립할 것을 꿈꾸게 되었고, 마침내 1년 뒤인 1907년, 파리에서 가톨릭 종교학자들을 위주로 창단되며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처음 창립됐을 당시부터 1960-70년대까지 Manécanterie des Petits Chanteurs à la croix de bois라는 이름을 썼다.

1907년 1월 10일 첫 리허설을 했고, 동년 10월 프랑스 국왕 전용 성당인 "셍제르맹 로제루아(St. Germain l'Auxerrios)"에서 가진 첫 공연이 큰 성과를 이루며 프랑스 내에서 이름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본래 피에르 마르탱과 폴 베르테르의 목적대로 종교음악에만 중심을 두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아베 페르낭 마이예(Abbé Fernand Maillet) 신부(1896년 8월 20일 ~ 1963년 2월 20일)[14]가 선조들의 뜻을 이어 1924년부터 1959년 '블루 발레단(ballets bleus)'이라 불리는 마이예 신부가 일으킨 소아성애 사건의 여파로 은퇴할 때까지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은 이래 시대와 대중들의 관심사를 반영해 기존의 종교음악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 민요, 팝 뮤직, 동요, 크리스마스 캐럴 등 여러 종류의 음악을 부르기 시작하며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수 있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나 유명 드라마, 영화 OST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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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별장이 있던 장소를 다시 찾은 단원들
별장을 설명하는 단원 루이마리 군(당시 소프라노)의 영상
1906년 마이예 신부가 동료 신부들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위치한 뵐레트쉬르메르(Veulette-sur-mer)의 해안가에서 며칠동안 휴가를 보냈는데, 그 기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후에 이 곳을 합창단의 별장 부지로 선정했으며 그의 소원대로 1923년 해당 마을의 해안가에 Maison des petits chanteurs à la croix de bois(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집)이라는 이름의 전용 여름 별장이 완공되었다. 매년 여름 휴가 시기 중 특히 성모승천일인 8월 15일 즈음마다 단원들이 이 곳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발길이 뜸해졌고 이 별장은 1940년 독일군의 폭격으로 사라지고 만다. 다행히 사상자는 아무도 없었다. 별장은 사라졌지만 대신 단원들의 모습이 그려진 비석[15]이 남아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도 단원들이 종종 해당 장소에 방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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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갓 도착한 단원들
1931년, 첫 해외 공연미국 뉴욕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16][17] 소년들의 맑고 순수하고 맑은 목소리를 통해 사랑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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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나치 포로 수용소에서의 공연[18]
1940년, 나치의 침공 이후로 리옹으로 학교를 옮겼으나, 이후 3년 뒤인 1943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 파리 17구의 14 rue Éugene Flachat에 위치한 건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기숙학교제가 시행되었다. 이 곳에서 1962년까지 머무르고, 그 후에 Meudon-Bellevue로 옮겼다. 1940년부터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지배 하에 있었던 중 마이예 신부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나치에게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포로 수용소에서의 공연을 2년간 끈질기게 건의했고, 나치들은 계속 거부했지만 결국 1942년에 허가를 함으로써, 1년 뒤부터 포로 수용소와 노동 수용소에서 각각 11번, 14번 공연하며 수용자들을 프랑스 민요와 성가로 위로했다. 당시 모두에게 큰 희망이 되었고, 특히 수용자들은 어떻게든 단원들에게 간식과 선물을 주려 안달이었다고.

1951년 마이예 신부와 파나십의 지도 하에 푸에리 칸토레스(Pueri Cantores) 카톨릭 교회 국제 연맹 합창단을 창설했다. 푸에리 칸토레스 역시 매년 전 세계에서 공연을 하고 각종 후원과 자선 활동을 활발히 한다.

1953년 클로뉴 국제 평화 회의와 1956년 파리 평화 회의에서 특별 공연을 마쳐 제260대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평화의 사도'라는 명의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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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조르주 퐁피두 前 프랑스 대통령과 영부인 클로드 퐁피두과 만났고, 퐁피두 대통령으로부터 파리 2000년 기념 국가훈장을 수여 받았다.

1986년, 유럽의 소년 합창단들 중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이후 중국에서도 꾸준히 공연을 한 덕에 중국내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는 편.[19]

2006년 9월, 학교가 40년간 머물렀던 사또성을 떠나 파리로 다시 이사했다.
2007년, 설립 100주년을 맞아 방영된 기념 방송[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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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4일(현지시간), 프랑스 정부의 공식 초청으로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및 유럽연합 26개국의 군대와 수많은 프랑스 시민들 앞에서 혁명 기념일 공연을 마쳤다. 당시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 저항군의 노래(Le Chant des Partisans),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등을 불렀다. 공연 당시 영상공연 뿐만 아니라, 당시 소프라노 단원이었던 브누아 C(Benoît C)가 합창단 대표로 슈만플렌 선언문을 낭독했다.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고, 사실상 이때부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년 합창단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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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16년 4월 3일부터 4월 4일까지 이틀동안 독일에서 열린 합창단 축제(Knabenchor Festival)에 참가해 위에 서술한 독일의 퇼처 소년 합창단, 영국의 런던 오러토리 학교 성가대 소년 합창단(Schola Cantorum of the London Oratory School) 단원들과 같이 만나 놀고 공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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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5일,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학교 축제(La fête de la manécanterie)가 열렸다. 오툉에 위치한 St Lazare st sacrement 학교에서 열렸으며 파나십의 졸업생 단원들과 前 교사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일종의 동창회같은 자리였다. 이들을 위한 새로운 협회가 발족되었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시간[22] 일정
10시-12시 학교 예배당에서의 미사
12시-14시 점심식사, 게임, 와인 마시기, 기념품 판매
14시-16시 예배당에서의 콘서트 관람

3. 특징

3.1. 공연

아이들의 목소리를 중요시 해 일부 노래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노래를 아카펠라로만 부른다. 허나 최근에는 피아노 반주를 추가하는 곡이 많아지며 기존의 아카펠라 형식을 좋아했던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다른 합창단과 달리 해외 공연 팀 멤버를 전체 80명 중 24명[23]만 뽑는데 이는 학업 성적과 노래 실력이 모두 우수한 학생들을 엄격한 개인 오디션으로 뽑은 것이다. 이후 해당 팀 1개로만 공연을 한다. 학년이 높을 수록 뽑힐 확률이 높아지는데, 졸업 전에 마지막으로라도 해외 공연을 하게 해주려는 목적인듯. 여담으로 해외 공연 멤버 발표를 단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하는데, 이 때 안 뽑힌 아이들 중 일부는 속상해서 우는 모습이 2007년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보통 뽑히는 단원들의 나이는 10-18세[24] 인데 이는 아직 막내 라인에 속하는 8-9세의 아이들은 실력과 경험 부족으로 최소 1-2년간 음악중심의 수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공연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프랑스 내에서의 공연 때는 가끔식 합창단 단원들이 모두 모이기도 한다. 예외로 2014년 중국 상하이 공연 때는 모든 단원들이 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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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25] 유니폼
공연 할 때 손 감춤을 중요시 해 로브를 입을 때는 손을 소매 안에 집어넣고[26], 유니폼을 입어도 손을 뒤로 감춘다. 당연히 마이크를 잡거나 율동을 할때는 제외다.
로브 손감춤 풀었을 때 모습, 유니폼 손 감춤 풀었을 때 모습

지휘자의 경우, 총 지휘자가 개인 혹은 합창단 관련 사정 등으로 지휘를 못 맡으면 부 지휘자가 대신 맡기도 한다.

공연 몇 시간 전부터 단원들과 지휘자, 스태프들은 모두 대기실에 모여 있는데 이 때는 친구들끼리 놀거나[27], 지휘자, 친구들과 공연 연습, 학교 공부, 독서, 미리 단복으로 갈아 입거나 충분한 물 섭취,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목 관리를 하는 등 공연 준비를 벌써부터 하기도 한다.[28]

해외 공연이나 가끔가다 현지 공연에서도[29], 단원들이 한 집에 1-3명 정도로 흩어져 그 나라 사람들의 집에서 짧게 홈스테이[30]를 하기도 한다. 당연히 서로 소통에 어려움도 있고 중간에 힘든 일도 많지만 그래도 홈스테이 가족들이 공연 관람 뒤 사인회에 참석하면 기뻐하는 단원들의 모습들이 압권. 마지막 날에는 단원들이 무조건 홈스테이 가정에 감사 인사를 꼭 한다.

3.2. 학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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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교실에서 공부하는 단원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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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경[32] 운동장[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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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내부[35][36] 기숙실[A][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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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과목 수업 중의 모습[A] 음악 수업 중의 모습[A]

1963년 단원들의 학교 생활을 담은 영상
2006년 단원들의 학교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2011년 단원들의 학교 생활을 담은 영상
2024년 <안녕! 4남매>에 나온 마님파이브의 장남 이안의 파나십 입학 과정과 방문기

10월 학기제인 보통 프랑스 학교들과 달리 다른 대부분의 영미 & 유럽권 학교들처럼 9월 학기제며, 방학은 7월 초-중순~8월 말까지다. 그러나 방학 때도 계속 공연을 해서 방학이 방학이 아니다.

학년은 CM1~3ème(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까지 있고 나이가 아닌 입단 시기와 변성기가 오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뉘기 때문에 같은 학년이여도 최소 1~3살 차이가 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8-9세 사이[41]에 일 년에 2번 개최되는 공개 오디션을 합격하면 오툉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하며, 이때 월요일-금요일 아침까지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엄격한 학교 규칙에 따라 매일 오전 6시에 기상해 빵, 따뜻한 초코 음료, 시리얼 등으로 아침을 때운 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 프랑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전혀 다른 총 6교시의 일반 과목들과 5명의 교수진의 지도하에 음악, 성악 수업[42]을 병행한다. 유명 합창단이라 그런지 공연 일정이 빡빡하다보니 매일 3시간 씩 공연 연습을 하기도 한다.[43] 금요일 점심마다 학부모가 직접 단원들을 픽업하러 오며, 이 때부터 주말까지는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매일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성격, 인성, 타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매우 중요시되며, 때문에 존경심, 대화, 적응력, 결속력, 사랑이 주 된 사회적응학습 등을 통해 단원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적응하고, 각자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서로 돕는 것을 배우게 된다. [44]이러한 교육 방침덕에 공연 도중 만난 이들에게도 예의바르고 지식 많은 모습을 보이고, 이게 또 파나십이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기숙사의 경우, 보통 한 방마다 비슷한 학년대의 단원들 2-3명이 같이 쓴다. 매일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적인 문제나 학교 내에서 혹은 공연 연습 도중 집중을 안 하거나 말썽을 피우는 단원으로 인해 종종 단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는 한데, 이때 무조건 삐지고 화내기 보다는 '대화'로 서로의 오해와 마음을 푼다고 한다. 2017년 내한 단원들 중 4명이 한 인터뷰에서 다툼이 생겼을 때 서로 대화를 하면 오해도 쉽게 풀리고 진심으로 사과하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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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2015년 경
대부 바티스 소바(Baptiste Sauvat)[45]
바티스에게 안겨있는 대자 켄지 토마(Kenjy Thomas)[46]
2016-2017년 경
대부 세하펑 L(Séraphin L, 왼쪽)
대자 필힉스 헝송(Félix Renson, 오른쪽)[47]
대부제라는 제도가 있는데[48], 이는 선배들이 앞으로 몇 년간 부모와 따로 살아야 할[49][50] 합창단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보살펴 주는 제도다. 이 대부는 신입생이 나이나 학년에 상관없이 정할 수 있고 이들은 오브 수여식 때부터 둘 중 한명이 먼저 합창단을 떠날 때까지 꽤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특히 둘이 같은 학년이거나 나이차가 별로 안나면 더더욱 그렇다. 나이 차가 어느 정도 나면 친형처럼 잘 돌봐주고 귀여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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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입학식, 졸업식 혹은 종교적 기념일마다 장엄미사를 꾸준히 한다. 위에 사진은 2022년 졸업미사 도중의 모습이다.
2008년 오브 수여식 공연 영상
매년 9월[51]마다 오브 수여식(Prise d'aube)이 열린다. 대부인 단원이 대자인 단원에게 파란색 포장지로 싼 새 로브를 직접 나눠주고[52] 직접 로브를 입혀주거나 도와주기도 하는 날이다.[53]기념 공연도 짧게 한다.

10대 초중후반의 한참 활기왕성한 청소년들이라 다큐멘터리를 보면 공연 밖에서는 천진난만하고 장난끼 많은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베게싸움, 술래잡기, 샤워 도중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등[54]. 평범하게 친구들끼리 셀카나 브이로그를 개인 SNS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 장난을 치다 다쳐 아이들이 우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2013년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기숙학교 졸업식 영상
대부분 8-9세 사이에 입학을 하면 도중에 전학을 가지 않는 한 9-10년간 학교 생활을 하게 되며 고등학교 3학년(terminale)[55]이 되는 해 6월[56]에 졸업을 한다. 졸업생들은 교사들로부터 수료증과 작은 기념 뱃지[57]를 받으며 합창단 단원들 모두가 모여 졸업생들을 위한 졸업 공연을 한다.[58] 졸업 뒤에는 반드시 음악 관련 학교로 진학하는게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따라 일반 프랑스 학교, 혹은 다른 전문 학교로 진학 할 수 있다.

3.3. 단복

구매 웹사이트[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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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단복들을 그린 팬아트[60]

3.3.1. 이전의 단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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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대부분 비슷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왼쪽의 유니폼의 경우, 빈 소년 합창단처럼 전용 모자가 있고 양말 디자인도 지금과는 달리 줄무늬다. 로브의 후드 모양도 다르며, 로고와 십자가 모양도 다르다.[61]

3.3.2. 현 단복

3.3.2.1. 공연 단복
3.3.2.1.1. 주 단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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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겨울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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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 후드를 썼을 때의 모습. 후드의 크기는 의외로 꽤 크다.[62]
보통 공연 할때는 두 가지의 옷을 입는데, 주머니에 프랑스 명칭의 약칭인 P.C.C.B가 세겨진 연한 하늘색 오픈칼라 셔츠[63]합창단 로고가 세겨진 곤색 브이넥 니트[64], 짙은 남색에 가까운 검은 반바지[65], 하얀 목양말과 검은 구두[66][67]영국리베라처럼 긴 흰 로브(aube)[68]이다. 다만 리베라것과 달리 옆구리에 끈을 묶고 가슴에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69] 목걸이를 착용한다. [70] 때문에 십자가은 탈부착이 가능하다.
3.3.2.1.2. 봄 & 여름 전용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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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에 열리는 공연 때 입는 유니폼.[71] 그냥 가을-겨울 유니폼에서 니트만 벗은 모습이다.[72]
3.3.2.2. 평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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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 평상복
봄-여름 투어 때는 합창단 로고가 새겨진 하얀 폴로 셔츠[73]에 반바지[74]를 입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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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코트 목티
겨울에는 단복위에 트렌치 코트에 가까운 코트나 목도리를 하기도 하고, 종종 목티를 입을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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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 유니폼 위에 코트를 입은 모습
봄-여름이지만 날씨가 쌀쌀한 경우에도 가을-겨울 유니폼에 코트를 입기도 한다.
3.3.2.3.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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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이런 식의 교복을 입는다.[75] 봄-여름 투어 때 평상복으로 입는 흰 폴로 셔츠 위에 정기 공연 때 입는 곤색 맨투맨을 겹쳐 입은 것이다. 바지는 계절에 따라 비공식 긴바지 혹은 공연 반바지로 나뉜다. 위에 사진은 가을에 찍혔다. 신발의 경우, 위에 사진에서는 단화를 신고 있지만 실제로는 편의 상 개인 운동화를 신는 경우가 더 많다.
3.3.2.4. 비공식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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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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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 셔츠[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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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멜빵바지 차림[b]
정장 차림[b]
로브위에 한복을 걸쳐 입은 모습
공식 단복 외에도 가끔가다 프랑스 내 공연에서 비공식적으로 2010년 프랑스 내 공연에서 단색 셔츠, 티셔츠, 정장, 청바지를 입은 적도 있다. 2006년 내한 2부때는 로브위에 한복을 걸쳐입기도 했다.

3.4. 개인 가방 및 캐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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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가방[80] 개인 캐리어[81]
단원들에게 왼쪽 사진의 개인 가방을 나눠준다.[82] 이 가방은 해외 여행 시 각종 개인 소지품을 가지고 다닐 수 있게하는 용도다. 다만 해외 투어 때 쓰는 캐리어들은 별도 구매다. 단원들의 캐리어 디자인이 모두 다른 이유는 이 때문. 캐리어에 관련된 제약은 없어서 단원들이 마음대로 스티커를 붙여 꾸밀 수 있다.

3.5. 전용 셔틀버스

주로 프랑스 내 투어 도중 이동할 때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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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버스 현재 버스 [83]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단원들의 모습이 세겨진 버스를 이용했으며, 2016년부터 버스 디자인이 바꼈다. 단원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로고가 세겨졌다.

4. 대표 곡

1996년 내한 버전[84]
2010년 내한 버전[85]
2019년 내한 버전
2011년 버전
2023년 버전
2019년 공식 뮤직비디오
2013년 버전[87]
2018년 내한 버전[88]
2022년 내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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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버전 로브 버전[90]
사실 이 노래의 키 포인트는 마지막에 취하는 자세다. 관객 입장에서 왼쪽에 있는 단원들은 오른쪽 다리를 굽히고 오른팔을 뻗고, 윗 줄 맨 가운데 단원이 서 있는 상태에서 양팔을 뻗고, 오른쪽에 있는 단원들이 왼쪽 다리를 굽히고 왼팔을 뻗는 식.
2020년 온라인 버전[91]
2013년 내한 버전

등. 이 외의 리스트

5.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에는 1971년에 처음 방문했고[92], 이후 매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마다 약 2주간 꾸준히 내한 공연을 하고있다.[93][94] 한국 공연 중에는 단원들이 중간중간에 한국어로 짧은 발표를 하고[95][96] 앙코르 곡으로 고향의 봄, 아리랑, 아름다운 세상 같은 우리나라 유명 가요를 불러주기도 한다. 2019년 내한 때는 오나라를, 2023년 내한 때는 응답하라 1988의 OST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10년, 2011년에는 한국 공연전문가 82인이 뽑은 연말 추천 공연과 매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합창단 1위에 연속으로 오른 이력이 있으며, 특히 팬 사인회 때는 분위기가 거의 유명 아이돌 콘서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매년마다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매년마다 한국을 방문하는 덕에 단원들의 한국어 실력도 날이 갈수록 유창해진다.(...) 또한 여담 문단에도 나오겠지만 유튜버 마님파이브의 장남 이안 드 사모어[97]가 2024년 9월부터 합창단에 활동 할 예정으로써 이안이 매년 내한 때마다 통역 등의 주 역할을 담당하고 이로 인해 앞으로 한국과의 관계가 더 끈끈해질걸로 보인다.

6.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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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023 학기 단원들[98]

6.1. 역대 솔로이스트

공연 때 솔로이스트를 많이 맡은 기준.
활동한 시기를 기준으로 서술.[99][100]

====# 1930년대 #====1936년~?까지 활동한 멤버.
합창단을 떠난뒤, 이후 작곡가 및 지휘자로 활동했다.

====# 1940년대 #====합창단을 떠난뒤 사망 전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 1950년대 #====현재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
합창단을 떠난뒤 자신의 71세 생일을 단 하루 앞두고 사망하기 전까지 가수로 활동했다.

6.1.1. 1960년대

====# 197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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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세) 2010년대 중후반 경
1976년부터 1979년까지 활동한 멤버. 유독 1977년에 솔로이스트를 많이 맡았다. 대표 곡은 모차르트의 아베 마리아, Sur les routes de France et du monde 등. 현재는 그레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현재 뮤지컬 아티스트이며, 포지션은 바리톤이다.
====# 1980년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활동한 멤버.
1980년부터 1981년까지 활동한 멤버. 이후 뮤지컬 아티스트가 되었다.
1988년~?까지 활동한 멤버. 현재 뮤지컬 아티스트다.
현재 오페라 가수로 활동중.
현재 테너로 활동중.
현재 로잉머신 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적도 있다!

====# 1990년대 #====합창단 최초의 가나 출신 단원. 9세 때 고향 가나를 떠나 바로 합창단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테너로 활동 중.
현재 뮤지컬 아티스트다.
현재 가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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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4-15세) 2016-2017년 경
1991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한 멤버. 대표 곡은 밑의 이아생트 드 물랭과 같이한 고양이 이중창이며[101] [102]이 외에도 솔베이지의 노래, 모자르트의 자장가, 어느 날 어느 아이 등의 곡들의 솔로이스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프랑스의 유명 오페라 가수로 활동 중이다. 포지션은 바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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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내한 당시 2020년 경
1990년대 초중후반에 활동한 멤버. 위의 레지와 1990년대 중후반 고양이 이중창을 부른 소년이다. 다른 버전들에 비해 고양이 울음소리를 유독 잘 내서 팬들이 고양이 이중창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버전이다. 이 외에도 주를 찬양하라 같은 곡의 솔로이스트를 맡았다. 이후 2011년에 결혼 해 슬하 3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2019년부터 가족과 기니에 거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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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990년부터 1993년까지 활동한 멤버. 위에 레지와 같이 솔로이시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 곡은 칼린카, 어느 날 어느 아이 등.

====#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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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012년
2000년대 초중반에 활동한 멤버.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최고의 보이 소프라노 중 한 명이라고 평가 받았다. 대표작은 모차르트의 자장가, 푸에리 콘치니떼 등. 탈퇴한지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도 은근히 인지도가 높다. 튜바 연주자로 활동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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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000년대 중후반에 활동한 멤버. 대표곡은 세계의 음악, 어느 날 어느 아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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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000년대 중후반에 활동한 멤버. 대표곡은 세계의 음악, We Are The World 등.

====# 201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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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세) 2019년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활동한 멤버. 나이에 비해 앳되고 귀여운 모습특히 빵빵한 볼, 순수하고 착한 성격과 목소리 때문에 2010년대 초반 한국에서 보두앵과 더불어 가장 인기가 많던 소년이었다. [103]이런 귀여운 면들 때문에 한국에서 소니엔젤이란 별명도 붙여졌다. 대표 곡은 라모의 밤, 솔베이지의 노래 등. 현재는 평범하게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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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3세) 2022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활동한 멤버.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역사상 최고의 보이 소프라노 중 한 명라고 평가 받았으며, 그에 맞게 많은 노래[105]의 솔로이스트를 맡으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를 인식했는지 파라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측에서도 그를 적극 밀어줬다.(...) [106]특히 한국에 유독 그의 팬이 많았다. 이후 2012년 내한 뒤 전학을 갔고[107], 처음에는 법대에 진학했다가 이후 2018년부터 현재까지 파리의 음대인 Département Supérieur pour Jeunes Chanteurs(JCP)에 테너로 재학 중이다. 여담으로 그의 누나 마리엘 오베(Marielle Aubé)도 합창단 Dei amoris cantores[108]의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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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5세) 2019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활동한 멤버. 2011년 내한 때 저음 솔로이스트를 많이 맡았다. 대표곡은 You Raise Me Up, 아이들의 합창 등. 현재도 가수 및 음악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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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세) 2021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활동한 멤버. 2012-2014년 내한 때 고음 솔로이스트를 많이 맡았다. 대표 곡은 칼린카, 모차르트의 자장가 등. 졸업 뒤 파나십의 전 지휘자 베로니크 토마쌩(Véronique Thomassin)(2001-2011)[109]이 이끄는 합창단 Les petits chanteurs de france[110]에 2019-2020년 경까지 재학했다. 여담으로 그의 남동생 에므리크 르 쿠튀메르(Aymerique le Coustumer)[111]도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형처럼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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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세) 최근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활동한 멤버. 2013, 2014년 내한 때 고음 솔로이스트를 많이 맡았다. 대표 곡은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 넬라 판타지아 등. 역시 졸업 뒤 프랑스 소년 합창단(Les petits chanteurs de france)에 2019-2020년 경까지 재학했다. 프랑스 소년 합창단으로 전학 간 뒤 해당 합창단에 그의 남동생도 들어왔다. 다른 남동생인 그레구아르 로예네(Grégoire Loyenet)는 2023년 기준으로 형처럼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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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3세) 최근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활동한 멤버. 2014년 내한 때 많은 곡의 솔로이스트를 맡았다. 대표 곡은 노래가 들리네, 대서양 제도의 자장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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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3세) 2020년 (가운데 금발)[112]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활동한 멤버. 2014년 내한 때 앳된 외모[113]와 고음으로 팬들에게 사랑 받았다. 대표 곡은 맑은 샘물에서, 모차르트의 자장가 등. 졸업 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합창단 Académie Musicale de Liesse에 같이 합창단 활동을 한 폴 쿠튀리에(Paul Couturier)[114]와 다시 같이 활동했다. 현재는 그랑제콜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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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3세) 최근
2014년부터 2019-2020년 경까지 활동한 멤버. 2016년, 2017년 정기 공연 때 많은 노래의 솔리스트를 맡았다. 대표 곡은 희망, 그린슬리브즈 등. 2021년부터 파리의 군사 전문 고등학교인 Lycée Militaire d'Autun에 다니고 있다.

6.1.2. 2020년대

7. 미디어 출연

7.1. 방송 출연 목록

<colbgcolor=#fff> 연도 비고
1943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텔레비전 아카이브
1948 크리스마스 미사[115]
1989 티에리 본테(Thierry Bonté)의 다큐 콘서트[116]
1998 파리의 Palais des Congrès에서 콘서트 촬영한 라이브 공연[117]
2004
2006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콘서트 및 TV 100주년 기념 공연
에마뉘엘 데콩브(Emmanuel Descombes)의 다큐 콘서트
2007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설립 100주년 기념 공연
혁명 기념일 공연
2008 연말 및 크리스마스 기념 특별 공연
2009
2010
2011
2012 300 Chœurs pour les Fêtes
2013
2014 오툉 Edven 전시 센터에서 진행한 콘서트
미셸 드뤼케르(Michel Drucker)의 공연 세트장
2016 Chœurs22 300회 기념 공연
Des voix pour la paix
2018 L'émission 300 Choeurs
2019

7.2. 영화 출연 목록

<colbgcolor=#fff> 연도 제목
1933 The Virgin of the Rock[118]
1936 라디오 모리스 클로슈
1937 댄스 카드[119]
1940 장 부아예(Jean Boyer)의 세레나데
1941 라이무와 피에르 프레네의 결투
1945 La Cage aux rossignols[120]
1946 The Visitor[121]
1949 Valse Brillante[122]
1952 파리의 참새[123]
그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1979 순진한 범죄[124]
1998 L'or des anges[125]
2004 Le Monde des Choristes ou L'Or des anges, DVD 포함: 창작 다큐멘터리 L'Or des anges, 다큐멘터리 Rejoice 및 단편 영화 A little fever; Philippe Reypens(DVD 컬렉터)의 세 편의 영화
2006 TV 영화(참여)[126]
2007 베니스 왕자 안토니오 비발디[127]

8. 굿즈

아직까지는 2016년에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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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3일, 기념 달력이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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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12월 9일, 단원들의 모습이 박스에 세겨진 초콜릿이 출시되었다. 가격은 12유로.

9. 평가 및 찬사

어느 누구라도 부러워할 경이적이고 완벽한 재능의 소유자들.
Der Tages Spiegel
평화의 목소리.
Le Figaro Magazine
그렇게 완벽한 화음에 어떻게 매혹 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Le Dauphine Libere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우리가 아는 한 감미롭고 뛰어난 합창단, 파리에서 온 천사들!
마이니치 신문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24명의 소년들은 합창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으며, 뛰어난 앙상블로 완벽한 화음을 창조해냈다.
워싱턴 포스트
나의 작은 평화의 선교사들
제261대 교황 요한 23세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학교는 어린 소년들의 기적과 같은 신앙과 강인함, 결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 다리우스 밀로(Darius Milhaud)

10. 여담


[1] 직역하면 나무 십자가의 소년 가수들.[2] 직역하면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어린 가수들.[3] 예전의 이름.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다.[4]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다.[5] 파리 목십자가 남아 합창단[6] 우리나라와 이름 배치 방식이 같다.[7] 공식 별칭이다. 아예 단복 셔츠에도 PCCB가 세겨져있다. 풀네임이 긴편이라 저렇게 줄여부른다.[8] 일부 한국 팬들 사이에서 불리는 비공식 별칭. 한국 이름 역시 프랑스 현지 이름처럼 풀네임이 긴 편이라 이렇게 줄여서 부르는 한국 팬들이 종종 있다.[9] 합창단 웹사이트[10] 학교 웹사이트[11] 2024년 기준으로는 72명[12] 2018년까지는 15세까지 였지만, 2019년 고등학교가 설립되고 2021년 학기 제가 바뀌었다.[13] 1884년-1953년 (향년 68-69세)[14] 본명은 "페르낭 마이예"로 아베는 가톨릭 사제 또는 성직자의 일원임을 나타내는 단어다. 1946년 출판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파나십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 "Les Petits Chanteurs à la Croix de Bois"와 1948년 출판된 파나십의 전반적인 역사를 담은 책 "Les Petits Chanteurs d'Hier et d'Aujourd'hui,"의 저자이기도 하다.[15] 해당 비석에는 합창단의 여름 별장이 세워진 1923년, 독일군의 폭격을 맞아 사라진 1940년의 두 가지 연도가 새겨져 있다.[16] 특히 아시아나 유럽 쪽.[17]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해외 정기 공연 역사 모음[18] 파나십 단원들은 입구 쪽에 모여있다.[19] 중국 공연 때 주로 불러주는 중국 노래로는 동요 딜리딜리(嘀哩嘀哩)가 있다.[20] 여기서 기념 공연 뿐만 아니라, 인터뷰 및 아이들의 학교 생활도 짧게나마 볼 수 있다.[21] 왼쪽이 퇼처 소년 합창단, 가운데가 런던 오러토리 학교 성가대 소년 합창단, 오른쪽이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이다.[22] 프랑스 현지 시간 기준[23] 해외 공연 기준 소프라노 9명, 알토 7명, 테너 4명, 베이스 4명.[24] 그 중에서도 12-13세 사이의 소년들이 가장 많다. 이 때가 소프라노와 알토를 이루는 주 나이대이기 때문. 물론 개인 차이는 있으며 예외로 2012년 내한 때 당시 12세였던 바티스트 소바(Baptiste Sauvat)는 변성기가 빨리 온 편이라 14-15세 형들과 테너를 맡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14세의 소년들은 대부분 테너 아니면 베이스지만 2010년 내한 멤버인 에두아르 마외(Edouard Maheux)는 당시 14세였지만 소프라노를, 마티외 뒤마 드라타이예(Mathieu Dumas de la Taille)와 테오 루카세크(Theo Lukasek)역시 둘 다 14세 였지만 알토였다.[25] 해당 소년은 빅토르 모랑(Victor Morand)으로 2000년생이다.[26] 겉으로는 쉬워보이지만 의외로 이 손을 넣는 방법이 은근 어렵다. 단원들이 처음에는 넣으려해도 계속 손이 빠질 정도라 교사나 선배 단원이 교육을 시키고 도와준다.[27] 물론 대기 시간동안 진행중인 기타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게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장난도 어느 정도 적당히 쳐야 한다. 하지만 10대 남아들인지라 종종 장난이 격해져서 다치고 우는 경우도 있다.[28] 여담으로 2017년 한 인터뷰에서 막상스 루(Maxence Roux)는 공연 도중 트림이 나올까봐 콜라는 절대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29] 주로 먼 지역으로 이동할 때[30] 이 홈스테이 가족에게는 몇 가지 엄격한 규정이 있는데, 일단 성인 남성 혼자 사는 집은 홈스테이 가정이 될 수 없으며 맡는 아이들 수 만큼 공연 티켓을 지불해야하고 한 단원당 한 구의 침대가 반드시 요구 된다. 일단 오후 끝무렵에 아이들을 데리러 공연장으로 온 다음 데리고 집에 가서 같이 저녁을 먹고(이 저녁도 아이들의 알레르기 여부에 따라 음식들이 제한되며 특히 공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방이 함유된 음식이나 탄산음료는 더더욱 먹이지 못하게 한다.), 일상 대화도 나누다가 콘서트가 시작하기 30분 전까지 아이들을 다시 공연 장소로 데려와야 하고 콘서트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을 또 픽업하러 와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혼자 집에 놔두게 해서는 절대 안 되며, 아이들의 공연 연습이나 학교 숙제 등을 지도, 단복들을 빨래할 것을 요구한다.(...)홈스테이 가족도 쉬운게 아니다.[31] 대략 1960-70년대 경으로 추정된다.[32] 2000년대 중후반 경 촬영[33] 2022년 촬영[34] 축구장농구장이 합쳐진 형식이며 학교 안에는 접이식 탁구대와 미식축구대도 있다.[35] 2022년 촬영[36] 이전의 모습[A] 2023년 촬영[38] 이전의 모습[A] 2023년 촬영[A] 2023년 촬영[41] 그렇다고 오디션에 나이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며, 음악과 여행을 사랑하는 소년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다. 또한 여느 소년 합창단이 그렇듯이 보이 소프라노, 보이 알토 솔로이시트로 유명하지만 변성기를 이미 겪은 소년도 오디션에 참가 할 수 있다.[42] 이때 다성악수업(아카펠라), 개인 수업, 단체 수업을 모두 한다.[43] 보통은 학교에서 하지만 성당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44] 마님파이브의 장남 이안이도 오디션을 보러갔을 당시 형들(즉, 선배 단원들)이 착하고 자신을 잘 챙겨주었다고 언급했다.[45] 2000년생. ([age(2000-01-01)]세)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는 애칭은 바트(Bapt).[46] 2004년생. ([age(2004-01-01)]세) 또한 켄지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총 9년간 활동했고, 2019년 고등학교가 만들어진 뒤 최초로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에 가장 오래 활동한 단원이 되었다.[47] 2003년생.([age(2003-01-01)]세) 2022년 Le desordre du ciel로 소설 작가로 데뷔했다.유튜브 채널[48] 리베라의 미니 보이(Mini Boy) 제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49] 다만 매주 금요일 점심 ~ 일요일까지는 단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낼수 있게 한다.[50] 실제로 다큐멘터리를 보면 단원들이 쉬는 시간이나 취침 전(특히 해외 공연 도중에) 부모와의 전화 도중 울먹이는 모습도 볼 수있다.[51] 10월에 한 경우도 가끔가다 있었다.[52] 유니폼은 입단 초기에 교사가 따로 나눠주는 걸로 보인다.[53] 때문에 이 시기부터 대부와 대자 사이가 더 끈끈해진다.[54] 위의 2006년 다큐멘터리 참고. 참고로 이때 고학년들이 부른 노래는 Dio vi salvi regina다.[55] 이때 단원들의 나이는 주로 15~18세이다.[56] 예외로 5월에 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57] 해당 사진에서 로고 옆에 조그만 동그라미가 뱃지다.[58] 이 때 졸업생들이 돌아가며 곡마다 지휘자 역할을 맡기도 한다.[59] 해당 업체가 합창단 단복을 만드는 걸로 보인다.[60] 왼쪽부터 겨울 코트, 봄-여름 코트, 가을-겨울 유니폼, 학교에서 가끔 입는 평상복, 로브다.[61] 로고와 십자가는 시대가 지나면서 모양도 계속 바뀌였으며, 이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62] 다만 공연 중에 후드를 쓰는 경우는 없다.[63] 2016년부터 2017년까지 1년간 이 셔츠 디자인이 바뀐 적이 있었다. 기존 것과 달리 색이 소라색에 가까워졌고 칼라가 상당히 꾸깃하며 칼라 안 쪽에 프랑스 국기의 색인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흰색의 줄들이 있다. 주머니가 없고, 로고가 붙어있으며 플라켓은 단추가 다 드러나있던 이전과 다르게 히든버튼 형식이다.해당 셔츠 사진다만 기존의 오픈칼라식 푸른 셔츠에 익숙했던 팬들, 졸업생 단원들과 교사들의 반발이 워낙 심해 2018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현재 해당 셔츠는 쓰이지 않고 있다.[64] 2016년, 셔츠와 마찬가지로 로고가 기존의 배지 형식이 아닌 아예 옷에 붙어있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크기도 작고 테두리가 금색이였지만 2018년 금색 테두리가 사라지고 사이즈도 더 커졌다. 셔츠와 달리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65] 예전 반바지는 밑단이 접히지 않았고, 지금 반바지와는 다르게 바지에 각이 잡혀있다.[66] 우리나라 공연 기준 대부분 1부 때 입는 옷이다.[67] 현지에서는 uniforme bleu(파란 교복)으로 불린다.[68] 우리나라 공연 기준 대부분 2부 때 입는 옷이다.[69] 이 합창단의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70] 다만 예외적으로 십자가를 떼고 공연을 한 적도 있는데 바로 2016년 중국 공연때다. 당시 중국 측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십자가 목걸이 착용을 허용하지 않아서 결국 단원들은 로브만 입은 채 공연 할 수 밖에 없었다.[71] 다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 (ex. 인터뷰 등)에서는 아무리 더운 한여름이라도 니트를 위에 입는다.[72] 2010년대 초중반까지는 셔츠 주머니에 로고 벳지를 달기도 했다. #[73] 반팔, 긴팔 둘 다 상관없다.[74]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청바지를 입을 때도 있다. #[75] 2010년대 초중반까지는 사복을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들어서는 저 옷이 거의 공식적으로 단원들의 학교 교복이 되었다.[a] 2010년 공연[a] [b] 2006년 공연[b] [80] 2017년에 디자인이 개정된 모습[81] 2012년 경 학교 앞에서 촬영[82] 이전에는 옆으로 매는 식의 가방을 썼다.[83] 벤츠 투리스모 차량이다.[84] 일반적으로 팬들이 고양이 이중창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버전[85] 후술하겠지만 보두앵 오베(솔로이스트)의 대표 곡. 사실상 이 노래 덕에 보두앵이 한국에서 인지도를 쌓았다.[86]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단원 출신의 지휘자였던 로돌프 피에르퐁(Rodolphe Pierrepont)이 설립 100주년을 맞아 직접 작곡했다. 피에르퐁은 이 곡 외에도 맹세(Le serment), 우정의 길(Avenue de l'amitié) 등의 곡들을 작곡 및 편곡했다. 현재는 마네 합창단의 지휘자로 활동중이다. 오른쪽에서 3번째, 1974년 합창단 단원 시절의 피에르퐁[87] 2절 가사 바뀌기 전[88] 2절 가사 바뀐 후[89] 1972년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을 위해 장 롤랜드가 직접 작곡하고 생 프뤼가 작사했다.[90] 2013년 중국 공연 때의 모습으로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로브를 입고 저 노래를 불렀을 때였다. 저 자세가 로브를 입고 하기에는 다소 불편해서 그런걸로 보인다.[91] 당시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학교에 전면등교하지 못해서 단원들이 온라인으로 만든 것이다. 여담으로 이 곡의 제목도 그렇고 이 노래의 주제가 '희망은 보물이기에 희망을 가져야 하고 암흑 속에서도 밝은 희망이 있다'라는 것인데,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딱 맞는 곡이다.[92] 유럽의 소년 합창단들 중 두 번째로 첫 내한을 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온 합창단은 1969년 첫 내한을 가진 빈 소년 합창단.[93] 2009년에는 신종플루 유행으로 인해, 2020년-2021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무산되었다.[94] 또한 한국에서만 꾸준히 규칙적으로 공연을 하는 걸보면 파나십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개인차가 물론 있긴 하지만 단원들과 교사들 모두 대한민국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95] 1990년대까지는 단원들이 대본을 보면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2010년대 부터는 아예 외워서 한다.[96] 이 때 종종 개그성 발언도 해준다. 예시로 2012년 니콜라 드 코리올리스(Nicolas de Coriolis, 1997년 생)는 진짜 지휘자가 궁금하면 500원을 달라고 하거나(당시 본인이 첫 곡인 기쁨의 찬가(Canticorum Jubilo)의 지휘자를 맡았다.), 피에르 샬리네(Pierre Chaligne)는 1부가 끝나기 전 관객들에게 화장실 잘 다녀오라고 하거나.. 여담이지만 이 피에르 샬리네는 합창단 졸업 후 2020년 초 고려대학교에 짧게 어학연수를 하러 한국을 다시 찾았다.[97] 마님파이브 문서에도 나오지만 프랑스-한국 혼혈이며 한국어, 불어의 2개국어가 가능하다.[98] 해당 사진은 2023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공개되었다.[99] 활동 시기가 불확실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경우 원문 이름 표기 순으로 작성.[100] 1900년대부터 1920년대 까지는 남아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101] 이 때 노래를 부를 때도 비교적 진지했던 친구 이아생트와 달리 본인도 웃긴지 능청스럽게 웃는 귀여운 모습덕에 더욱 팬들이 열광했다. 2016년 둘의 근황[102] 인스타그램 소개란에서도 아예 대놓고 "Meow Boy"라 적혀있다.(..)[103] 전학 뒤에도 매년마다 내한 포스터에 올라옴으로써 사실 상 이쪽도 합창단 마스코트 단원으로 찍혔다.[104] 비공개 계정[105] 2010년 내한 당시 총 24곡 중 무려 16곡의 솔로이스트를 맡았다. 한마디로 공연 때 절반 이상의 곡들을 모두 본인이 도맡아 한 셈. 이쯤 되면 당시 지휘자인 베로니크 토마생이 보두앵에게 엄청난 애정과 믿음이 있었던 듯대표 곡은 넬라 판타지아[145], 그린슬리브즈 등.[106]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홍보 영상이나 포스터에도 꼭 보두앵의 사진이나 언급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107] 탈퇴 전 2012년 마지막으로 출연한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따르면, 본래 꿈은 엔지니어였다고 한다.[108] 창립자가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전 지휘자 탕기 디오니스(Tanguy Dionis)다.[109] 대부분의 팬들은 이 지휘자를 로돌프 피에르퐁과 더불어 가장 최고의 지휘자라고 평한다. 위의 마르끄 드 노앙빌, 보두앵 오베같은 역사적인 솔로이스트를 모두 담당한 지휘자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110] 특이하게도 해당 합창단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단체로 짠 것인지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출신 단원들이 많았다.[111] 2006년생 ([age(2006-01-01)]세)[112] Académie Musicale de Liesse 졸업 사진[113] 그만큼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오죽하면 1살 형인 로맹 뒤숑(Romain Duchon)에게 목마를 해도 괜찮았을 정도(...)[114] 2004년생. ([age(2004-01-01)]세)[115] Radiodiffusion Française21에서 제작한 Notre Dame de Paris의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미사로 텔레비전에서 촬영된 최초의 미사다.[116] 당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라모의 밤, 모차르트의 알파벳(Alphabet de Mozart), 베를리오즈의 Tantum Ergo, 시간은 올거야(Les Temps Viendront) 등을 불렀다.[117] 당시 아이들(Les enfants) 및 아베 마리아 등을 불렀다.[118] 조르주 팔뤼(Georges Pallu) 감독[119] 쥘리앳 뒤비비에(Julien Duvivier)와 해리 바우르(Harry Baur)가 함께했다. 2011년 DVD로도 출시되었다.[120] 장 드레빌(Jean Dréville)이 로제 크레브스와 함께했다. 2004년과 2005년 DVD로 출시되었으며 2004년 개봉한 크리스토프 바라티에의 영화 Les Choristes에 영감을 주었다.[121] 장 드레빌이 주 감독으로 활약했으며 La Cage aux rossignols 때처럼 Ed René Chateau VHS의 역을 담당한 로제 크레브스와 함께했다.[122] 렌 샤토(Rene Chateau)의 비디오 에디션[123] 모리스 클로슈(Maurice Cloche) 감독[124] 로제 달리에(Roger Dallier) 감독[125] 빈 소년 합창단,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폴란드의 폴스키 슬로비키, 독일의 하노버 소년합창단, 영국의 우스터 대성당 합창단 등 유럽의 소년 합창단들의 생활을 담은 옴니버스식 다큐멘터리 영화[126] 르 그랑 샤를(Les Grang Charles), 베르나르 스토라(Bernard Stora) 합동 감독[127] 장루이 기예르무(Jean-Louis Guillermou) 감독[128] 친척 관계인 단원들은 2024년 기준 아직까지는 불확실하다.[129] 1996년 6월 11일생.([age(1996-06-11)]세) 여담으로 2011년 자기 15번째 생일 날 합창단을 졸업했다. 때문에 졸업식 날 단원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가톨릭 공동체인 La communaté Saint martin에 같이 합창단 활동을 했던 귀슬랭 메으루(Ghislain Merle, 2000년생)와 신부가 되기 위해 재학 중이다. # 그리고 귀슬랭 메으루는 2024년에 드디어 신부가 되었다.[130] 1998년생. ([age(1998-01-01)]세)[131] 때문에 시리아크와 에티엔은 2010년 같이 내한을 하기도 했다.[132] 2001년 6월 3일생. ([age(2001-06-03)]세)[133] 룩셈부르크인이다. 시리아크와 에티엔은 합창단을 졸업했지만 제롬은 2013년 합창단을 그만 두고 도중 전학가 룩셈부르크내에 있는 중,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134] 2004년생. ([age(2004-01-01)]세)[135] 2005년생.([age(2005-01-01)]세) 다만 형 보두앙과 같은 학년이었다.[136] 위의 세 형들과는 나이 차가 많이 난다.[137] 위에 에티엔도 2012년 내한 당시 한 인터뷰에서 합창단에 오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형 시리아크가 해외 공연을 마친 뒤 프랑스로 막 귀국했을 때 가족들이 공항에 데리러 갔는데, 이때 형이 멋져보여서 어머니에게 본인도 합창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졸랐는데, 어머니는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 합창단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며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다만 제롬의 경우 정확한 합창단 입단 계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형의 합창단 생활을 보고 흥미를 느껴 따라 입단했을걸로 추정된다. 에티엔과는 2010년대 초반 ~ 2013년까지 같이 합창단 생활을 보냈지만 시리아크와는 나이 차가 꽤 나서 같이 활동한적은 없다.[138] 1991년 3월 4일생. ([age(1991-03-04)]세)[139] 파일:vincent bruggeman.jpg
왼쪽은 2000년대 초반의 모습이며, 오른쪽은 2017년 경 촬영 된 사진이다.
[140] 사실 이런 오해는 다른 소년 합창단도 종종 받는 오해 중 하나다.[141] 1970년대까지는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들만 활동하고, 낮은 음은 성악가가 맡기는 했다. 이 패턴을 워낙 오랫동안 유지해서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걸지도.[142] 2005년생. ([age(2005-01-01)]세)[143] 2019년 내한 때 몇몇 곡의 솔로이시트를 둘이 같이 맡았다.[144] 외모가 동양계 쪽 느낌인 단원은 가끔가다 있긴했지만, 이들의 국적도 프랑스고, 모국어도 불어다.


[145] 위의 2010년 내한버전이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변성기 초반 + 감기가 겹쳤던 2011년 버전은 대중성이 좀 떨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