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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15:54:53

미카엘 하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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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하네케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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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투리아스 공상 예술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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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지휘자)
파블로 세라노
(조각가)
에우제비오 샘페레
(조각가)
오르페온 도노스티아라
(합창단)
안토니오 로페즈 가르시아
(화가)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루이스 가르시아 베를랑가
(영화 감독)
에두아르도 칠리다
(조각가)
호르헤 오테이사
(조각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
(건축가)
안토니 타피에스
(화가)
1991년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자
(소프라노)
몽셰라 카바예
(소프라노)
호세 카레라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테너)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알프레도 크라우스
(테너)
필라르 로렌가르
(소프라노)
로베르토 마타
(화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사엔스 데 오이사
(건축가)
알리시아 데 라로차
(피아니스트)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스
(배우)
호아킨 로드리고
(작곡가)
비토리오 가스만
(배우)
세바스티오 살가도
(사진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건축가)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바바라 헨드릭스
(소프라노)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작곡가)
우디 앨런
(영화 감독)
미쿠엘 바르셀로
(화가)
파코 데 루시아
(기타리스트)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마이야 플리세츠카야, 타마라 로조
(발레리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감독)
밥 딜런
(싱어송라이터)
엘 시스테마
(육성재단)
노먼 포스터
(건축가)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리처드 세라
(건축가)
리카르도 무티
(지휘자)
라파엘 모네오
(건축가)
미카엘 하네케
(영화 감독)
프랭크 게리
(건축가)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영화 감독)
누리아 에스페르트
(배우)
윌리엄 켄트리지
(화가)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 감독)
피터 브룩
(연극 연출가)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엔니오 모리코네, 존 윌리엄스
(영화 음악가, 공동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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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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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제61회
(2008년)
제62회
(2009년)
제63회
(2010년)
로랑 캉테
(클래스)
미카엘 하네케
(하얀 리본)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엉클 분미)
제64회
(2011년)
제65회
(2012년)
제66회
(2013년)
테렌스 맬릭
(트리 오브 라이프)
미카엘 하네케
(아무르)
압델라티프 케시시
레아 세두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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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파일:michaelhaneke.jpg
본명 Michael Haneke
미하엘[1] 하네케
국적
[[오스트리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출생 1942년 3월 23일 ([age(1942-03-23)]세)
나치 독일 뮌헨
신체 191cm
학력 빈 대학교
직업 영화감독
활동 기간 1974년 – 현재
1. 개요2. 생애3.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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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화란, 진리를 위한, 혹은 진리를 찾기 위한 초당 24개의 거짓들이다."[2]
― 미카엘 하네케#

독일 태생 오스트리아 국적의 거장 영화감독.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수상자이며 각본가. TV영화, 연극 등의 연출도 했으나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영화감독으로서이다. 현재 필름 아카데미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2. 생애

어렸을 때에는 문학과 음악에 강한 관심을 보였지만 청소년 때는 모든 형태의 학교에 대해 경멸이 생겼다고 한다. 한 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독일 연기 학교 막스 라인하르트 세미나 입학 시험에서 떨어져 연기자의 길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 이후 빈 대학교에서 철학, 심리학, 연극을 공부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영화관에서 보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잡역부를 하고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독일 남서 라디오에서 편집자와 극작가, 그리고 평론가로 일을 했다. 1974년에 텔레비전 감독으로 데뷔했다.

주요 활동 지역은 프랑스와 독일(및 오스트리아)이며, 미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상당히 늦깎이로 데뷔한 감독으로 평론가 생활을 거쳐 연극 무대와 텔레비전을 전전하다가 48살이 되던 1989년 7번째 대륙을 통해 충격적인 데뷔를 한다. 이후 퍼니 게임으로 칸 영화제 첫 경쟁부문에 진출해 스캔들을 일으킨 뒤, 프랑스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아 프랑스로 활동영역을 옮긴다. 간만에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하얀 리본 정도 제외하면 사실상 프랑스 감독화.[3]

일상 속 폭력 및 권력에 대한 치밀하고 집요한 묘사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엔 미디어 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뒤로 갈수록 인간 관계에 대한 질문이 많아진다. 특히, 현대인의 통념을 뒤집는 데 능하며,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그의 영화와 표현 방식을 연구한 국내 논문도 많이 나와 있다.

여느 작가주의 감독과 마찬가지로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활용하는데, 한 컷 안에서 여러 상황 연출과 적절한 대화로 긴장을 생성했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한다. 더불어 카메라 워크를 발화자에만 초점 맞추지 않고, 작가(3자)의 의도에 따라 강조하고 싶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아무르에서 남편과 아내의 아침 식사 및 마지막 대화[4] 장면과, 피아니스트에서 공중 화장실 장면이 유명하다.[5]

3대 영화제 중 칸 영화제가 특히 사랑하는 작가이다. 피아니스트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 히든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 하얀 리본과 아무르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 다수의 영화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 신작인 해피 엔드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장률처럼 작품 내 주인공의 이름을 돌려쓰는 경향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은 안나/안느, 남성은 게오르그/조르주로, 이 둘 이외의 제 3의 여성 캐릭터(주로 딸)는 에바/에브로 고정된다. 덤으로 주인공의 성씨는 거의 독일어권이면 쇼버, 프랑스어권이면 로랑.[6] 7번째 대륙부터 이어져 온 감독만의 트레이드 마크다.

배우도 하네케 사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주 기용되는 배우들이 많다. 오스트리아 시절엔 주자네 로타어와 울리히 뮈에 부부를 자주 캐스팅했으며[7], 프랑스에서 찍을 땐 이자벨 위페르, 쥘리에트 비노슈, 장루이 트랭티냥, 모리스 베니슈 등을 자주 기용하고 있다.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우려 섞인 의견을 표했다.

인터뷰 영상#

해피 엔드 이후로 6년 동안 신작을 안내고 있는데, 2023년 11월 24일 인디와이어의 인터뷰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그는 잘 지내고 있다. 우리는 연락하고 있다. 연락을 취하고 있고, 하지만 미카엘 하네케가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할 수는 없다. 분명히 6년 동안 바쁘지 않았고, 당신 말대로 나도 모른다. 그가 다시 작업을 할 것인지, 우리가 다시 함께 일할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기에 힘든 시간을 겪었다. 나는 별로 모른다. 그는 건강하다. 그가 다시 작업하기를 소망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 2018년 칼뱅의 책이라는 TV 시리즈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엎어진 것으로 보인다.

3. 필모그래피

미카엘 하네케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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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width=200> 파일:The Seventh Continent Logo.png ||<width=200> 파일:Benny's Video Logo.png ||<width=200> 파일:71 Fragmente Einer Chronologie Des Zufalls.p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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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링크 열기

‘장편영화’의 ‘감독’을 맡은 작품에 한해, 한국 개봉(혹은 발매) 제목으로 서술하였다. 기타 연극 연출, TV드라마, 시나리오 작업 등은 영어 위키백과의 “Michael Haneke” 문서를 참조하기 바람


[1] Michael의 독일어 표준발음은 mɪ́çael로, 실제 발음은 미샤엘에 가깝지만 국립국어원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미하엘이 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프랑스식 발음인 미카엘로 정착했다.[2] 장 뤽 고다르의 "사진은 진실이며, 영화는 초당 24개의 진실이다"라는 말을 비튼 것으로 보인다.[3] 극단적인 예로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오스트리아 배경의 원작 소설을 프랑스 영화화했고, 그 결과 더빙을 해야 했다.[4] 실은 독백에 가깝다.[5] 하네케의 연출 철학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미카엘 하네케 (2013) 에서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볼 수 있다.[6] 피아니스트는 원작이 있는 영화라서 이 규칙을 지키진 못했는데, 대신 작 중 남주인공의 여자친구 이름을 '안나 쇼버'라고 붙여서 어떻게 넣긴 했다.[7] 안타깝게도 2012년 이후 주자네와 울리히 모두 고인이다.[8] 1997년의 동명 작품을 스스로 리메이크.[9] <늑대의 시간> 이후 이자벨 위페르와 오랜만에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