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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3년 연재된 환생 대체역사소설.원제는 조선왕조실록-선조(朝鮮王朝實錄- 宣祖)였으나, 조아라에 연재되다 환생군주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작가는 곽정민(아이페르)
2. 연재 현황
조아라에서 2003년 10월 20일부터 2004년 11월 16일까지 1부를 연재하였으며, 2부는 2005년 3월 26일부터 4월 25일까지 연재되었으나 서두 부분에서 작가의 사정으로 인해 갑작스레 종료되었다. 1부는 출판사 청아람에서 단행본으로 총 6권(2004년 8월 6일- 12월 28일)으로 나왔으나 2009년 현재 구할 가능성이 희박함.1부 완결하고 작가 사정에 의해 연재중단[1].
3. 줄거리
내용은 예비역 대학생 백수로 추정되는 (소설상에서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주인공이 이균(선조)의 몸으로 환생해 저승사자 최영의 도움과 예언자가 필사한 백과사전의 도움으로 오리지널 선조와 다른 엄청나게 훌륭한 군주가 된다는 내용.4. 평가
한제국건국사가 타임슬립 대체역사물의 효시라면, 환생군주는 2010년 이후 활성화된 빙의형 대체역사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당대에는 타임슬립이 우세를 점했으나 환생군주는 뛰어난 필력으로 대체역사물 독자들에게 당시 고전 명작의 반열에 위치해있었다.5. 캐릭터
5.1. 주인공
- 이균(1552년생) : 이 글의 주인공으로 1부 환생군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재 제 14대 조선국왕으로 재위중이며 공식명칭은 상, 주상, 금상, 왕, 국왕, 임금, 전하, 군부, 군사, 대성인, 제왕, 군왕 등등 자기도 다 모를 정도로 많다.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이름을 ‘연’으로 개명했으나 이는 외교문서상에서나 사용하고 실제로는 이전의 이름인 ‘균’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21세기를 살아가던 이른바 현대인(조선시대 관점이면 미래인) 이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조선시대로 환생했다. 전생의 자세한 인적사항, 심지어는 사망원인까지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알고 보면 곳곳에서 전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가끔은 16세기 조선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해서 주변사람들을 놀라게도 한다.
어렸을 때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무척 게으르고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으나 자신이 나중에는 조선의 왕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또한 자신의 아버지 덕흥군 이초의 투병생활과 요절로 인해 그 성향과 성격이 180도로 돌변하여 적극적으로 역사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외숙부 정인기를 속여 비금도 상단이라는 비밀사조직을 만들었으며 천일염을 생산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또한 임꺽정 같은 외부세력을 영입하고 일본 시마즈 가문과 밀무역을 하여 비금도 일대에 강력한 불법무장독립세력을 구축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외숙부 정인기를 속여 비금도 상단이라는 비밀사조직을 만들었으며 천일염을 생산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또한 임꺽정 같은 외부세력을 영입하고 일본 시마즈 가문과 밀무역을 하여 비금도 일대에 강력한 불법무장독립세력을 구축하기도 했다.
본시 별 볼일 없는 종친의 신분이었으나 명종의 외동아들인 순회세자가 급사하는 바람에 손쉽게 조선의 왕위를 차지했다. 즉위 후에 기득권층의 도전을 받지만 치밀한 준비로 인해 이를 쉽게 물리치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강력한 왕권을 손에 넣는데 성공하였다.
환생을 한 인물답게 선견지명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실현시킬 강한 권력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팔불출 끼가 심하고 술만 마시면 바로 주정을 부리며 이성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2] 거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것이 특기인지라 매번 주변 사람들의 골치를 아프게 하고 있다.
5.2. 균의 주요 심복
- 정인기(1536년생) : 현재 정 3품 승정원 도승지의 관직에 있으며 균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다. 균의 작은 외숙부이며 덕흥군 이초가 죽은 후 균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 덕분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균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많은 돈을 들여야 했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예상치도 않게 균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젊은 나이에 일약 당상관의 반열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부인 김씨와의 사이에 네 명의 딸을 두고 있으며 집 안에서는 어린 딸들의 재롱을 보느라 바쁘고 집 밖에서는 균이 벌이는 사고들을 수습하고 다니느라 바쁜 인물이다.
- 황재훈(1528년생) : 현재 종 3품 비금병마첨절제사와 정 5품 내수사 전수를 겸하여 균의 최초 거점인 비금도와 염전시절을 관리 감독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균의 가신이다.
원래 비금도 출신의 소금상인이었으나 균에게 협조하여 비금도 상단의 창단에 관여했다. 그 후 비금도 상단의 염전부장으로 일하면서 천일염의 생산과 기술개발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균의 부재시 수석부장으로써 상단을 이끌기도 했다.
- 나원호(1527년생): 현재 종 3품 군기시 부정으로 재직하면서 조선의 신무기 개발과 무기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균의 가신이다. 황재훈과 비슷한 내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가 활약한 분야는 군수분야이며 비금도 소총과 북한산(北韓山) 소총의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 김호진(1529년생) : 현재 종 3품 군자감 부정으로 재직하면서 보급물자와 군량미, 관리들의 녹봉 등을 관리하고 있는 균의 가신이다. 황재훈, 나원호와 같은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비금도 상단의 재정부장으로써 균의 낭비벽을 막고 상단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 박규남(1537년생) : 현재 종 3품 의금부 부정(신설이다.)의 관직에 있으나 그것은 위장일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국왕직속 비밀정보기관의 수장이다. 원래는 평산전투에 토벌군 군관으로 참전하였다가 임꺽정에게 패한 후 균의 부하가 된 인물로 그때부터 균의 눈과 같은 역할을 온 최측근 심복중 하나이다.
- 김형중(1538년생) : 원래는 비금도 상단 나주지부장이었으나 비금도 상단이 외수사로 개칭되면서 독립 현재는 나주상계를 통합한 나상의 대방이 되었다. 정식관직은 받지 않았지만 조선상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이며 균을 대신해서 조선상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임꺽정(생년미상) : 홍명희 선생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바로 그 구월산의 임꺽정이다. 현재 북한산성의 수비대장이다. 원래는 남치곤에게 패해서 죽는 운명의 의적이지만 균에게 회유되어 비금도로 왔으며 균의 주요 거점중 하나인 북한산성을 지키는 심복이 되었다. 충성심과 용력은 뛰어나지만 지력이 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어 참모인 서유생을 언제나 대동한다.
- 나중현(1530년생) : 현재 종 4품 선공감 첨정으로 조선의 토목분야를 담당하는 균의 가신이다. 나원호의 친동생으로 만취상태에서 복합도르래의 개념을 파악하는 신기(?)를 보였으며 덕분에 균의 눈에 들어 비금도와 북한산성의 방어시설 공사를 전담했다.
- 이영식(1532년생) : 현재 종 4품 봉상시 첨정으로 조선의 농업분야를 담당하는 균의 가신이다. 원래는 그냥 유민출신이지만 견종법의 개념을 알고 있어 등용되었다. 왜국에서 도입한 신작물의 시험재배와 기존종자의 개량, 신농법의 개발 같은 임무를 맡고 있다.
- 김석현(1533년생) : 왜국 가고시마성에 주재하는 비공식적인 조선의 외교관이다. 겉으로는 조선과 시마즈 가문간의 외교, 교역을 조율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나 실제로는 왜국과 이웃나라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가고시마 근처의 작은 섬에서 양식진주 사업을 벌이는 등 하는 일이 무척 많은 인물이다.
- 정성우(1511년생) : 대전내관이며 내시들 중에서 최고관직인 상선(종 2품)의 자리에 있다. 동궁전시절부터 균의 호종을 맡았으며 균의 신임을 받아 수백 명이나 되는 내시들의 수장이 되었다. 내시들만 아니라 대궐의 전반적인 관리감독을 맡고 있다.
- 양상궁(1517년생) : 제조상궁으로 정성우와 함께 대궐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으며 몇 백이나 되는 궁녀들의 수장이다. 원래는 동궁전 소속의 상궁이었으나 균이 즉위한 후 제조상궁의 자리를 차지했다. 균을 깨우는 데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 게으른 늦잠꾸러기 균을 좀 부지런하게 만든 공이 있다.
5.3. 조정 주요 대신
- 동고 이준경(1499년생) : 현재 정 1품 영의정의 관직에 있으며 조선의 내정을 총괄하는 재상이다. 1531년에 출사하여 김안로, 윤원형 등에 의해 관직에서 쫓겨나기도 했으나 1555년 을묘왜변때 전라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였고 그 공을 인정받아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명종 말기에 영의정이 되어 균이 왕위에 오르는데 힘을 썼으며 이후 균의 신임을 받아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균과 궁합이 잘 맞는 신료이지만 나이가 많아 곧 은퇴할 예정에 있다. 나중에는 충정공의 시호을 받았고 종묘배향공신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 퇴계 이황(1501년생) : 현재 정 2품 예조판서의 관직에 있으며 조선의 외교, 학문분야를 담당하는 재상이다. 1534년에 출사하였으나 사임과 재출사를 반복하여 상당한 시간을 고향에서 보냈다. 덕분에 그는 이언적의 주리론을 이어받아 이를 집대성하여 후일 남인으로 발전하는 영남학파를 만들 수 있었다.
잠시 관직에 머물렀던 사이 명종이 급사하고 균이 즉위하자 제자인 기대승과 함께 균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그러한 인연과 학문적인 성향으로 인해 개혁파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이준경과 함께 종묘배향공신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 남명 조식(1501년생) : 현재 정 2품 호조판서의 관직에 있으며 조선의 재정분야를 담당하는 재상이다. 학문과 명성이 높아서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거의 거절하고 학문을 닦는데 주력하여 후일 북인이 되는 남명학파를 창시했다.
그의 학문은 실천과 실용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지극히 실용적인 성격을 지닌 균과는 즉위 이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이황과는 일종의 라이벌 관계이면서도 서로 친분이 두터웠다고 하며 이지함과도 친분관계가 있었던 개혁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 인재 홍섬(1504년생) : 현재 정 1품 의정부 좌의정의 관직에 있는 삼정승중 한 사람이다. 조광조의 문인으로 김안로를 탄핵하다가 유배당했으나 3년만에 석방되었고 그 뒤에도 이량과 남곤을 탄핵하다가 연이어 파면되었으나 곧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세 번이나 연임하였다.
조광조의 문인으로 대표적인 사림파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하원군 이정의 장인으로 균의 친인척에 해당한다. 덕택에 다른 관료들과 갈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정승의 자리를 꾸준히 지킬 수 있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중도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 쌍취헌 권철(1503년생) : 현재 정 1품 우의정의 관직에 있는 인물로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의 부친이다. 낮은 관직에 있을 때부터 몸가짐이 신중하여 일찍부터 재상의 중망이 있었다고 하며, 비록 출중한 재기는 없었으나 청신하게 법을 지켜 감히 허물하지 못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복상이라고 칭송하였다.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더욱이 아들인 권율을 보았을 때는 대기만성형이 아닐까 예상되는 인물로 알게모르게 많은 일을 한다. 정치적인 성향은 중도파에 속한다.
- 태허 홍담(1509년생) : 현재 정 2품 이조판서의 관직에 있으며 조선의 행정을 책임지는 재상이다. 사촌형인 홍섬과는 달리 귀양을 가지 않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훈구파에 해당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결코 윤원형에게 협조한 인물은 아니다.
윤원형의 실각이후 훈구파의 수장이 되어 김개 등과 함께 무너져가는 훈구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보수파에 속하지만 은근히 훈구파를 후원해주는 균의 뜻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 임헌 정세필(생년미상) : 현재 정 2품 병조판서의 관직에 있으며 조선의 국방을 책임지는 재상이다. 고려의 유신 정몽주의 5대손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인물이며 이황, 오건등과 교유하여 도의에 밝은 인물이다. 무관이라서 뚜렷한 정치적인 성향은 보이지 않지만 군비를 강화하는 균의 정책에는 크게 공감하고 있다.
- 소재 노수신(1515년생) : 현재 정 2품 공조판서의 관직에 있으며 경호대로 건설공사준비로 바쁜 재상이다. 을사사화 때 화를 입어 진도에 귀양을 갔다가 그곳의 풍습을 고친 일로 유명한 인물로 선조가 즉위한 후 복직되어 1585년 영의정이 되었으나 기축옥사때 정여립을 천거한 죄로 파면 당했다.
이언적, 이황, 기대승 등과 친분이 있었고 기축옥사때 화를 입은 것으로 보면 동인에 해당하는 인물이지만 사림파 전체에서 상당히 명망이 높은 인물로 훈구파를 싫어한다. 점차 친국왕파와 반국왕파로 양분되는 조정에서 중도를 지키고 있다.
- 사암 박순(1523년생) : 현재 정 2품 형조판서의 관직에 있으며 조선의 재상이다. 원래는 서경덕에게 학문을 익혔으나 중년에는 이황을 사사했으며 무려 15년간 재상으로 있었다. 하지만 동서분당때 이이를 지지하여 서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 학통으로 보아서는 동인과도 관련이 깊은 인물이지만 김진기의 난 이후 급격히 몰락한 서인세력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보수파에 해당하지만 기호사림이 꼭 보수적인 것은 아니므로 중도보수파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 율곡 이이(1536년생) : 5000원 지폐의 그분이다. 현재 종 3품 홍문관 전한으로 조정의 주요문서를 정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조선 후기 집권세력인 서인들의 학문적 원류로 평가받는 뛰어난 성리학자이다. 이황의 주리론과 반대되는 주기론을 집대성한 대학자이면서도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겼다.
원래는 기호 사림(후일 서인)을 대표하여 균의 정책에 저항한 적도 있으나 젊은 나이에 너무 뛰어난 능력을 지닌 탓에 시기를 받아 기호 사림에서 밀려났다. 그래서 지금은 중도파에 해당하지만 아직도 신권주의와 사대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 여해 이순신(1545년생) : 말이 필요 없는 군신. 현재 정 8품의 선전관이며 각급부대에 왕명을 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장이지만 원래 문관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서당 훈장인 아버지 밑에서 대과를 준비하고 있었다가 가족의 생계를 잇기 위해 무과로 전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이 22세 때 무과시험에 응시할 것을 결심하였기 때문에 현재 그의 무예나 지략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아직 요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균이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고 있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나중에는 군부의 요직에 포진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 망우당 곽재우(1552년생) : 현재 종 9품의 선전관이며 균을 근처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원래는 남명 조식의 제자이자 외손녀 사위이며 임진왜란 때의 홍의장군이라 불린 유명한 의병장으로 휘하에 수천의 의병을 거느리고 왜군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한 뛰어난 장수이다.
어렸을 때 균과 만나 비금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덕분에 균의 영향을 맡이 받았다. 그래서 균의 최측근 심복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문무를 겸비한 인재라서 이순신과 함께 균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덕분에 균이 매제로 삼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불운한(?) 인물이다.
- 서애 유성룡(1542년생) : 현재 정 8품의 예문관 대교이며 사관의 신분이지만 사실상 승지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이황의 제자로 후일 남인의 영수가 되는 인물이며 임진왜란 당시 정치력을 발휘해 어지러운 조정의 질서를 바로잡았으며 이순신과 권율을 등용하는 등 전란을 수습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이순신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암행을 나온 균과 패싸움(!!!)을 벌이다 등용되었으며 그 후 사관이 되어 균의 잡무를 모두 떠맡고 있는 불우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균의 괴롭힘(?)을 가장한 정치력 수련이며 나중에는 정부의 요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후손 중 하나가 바로 류시원.
- 토정 이지함(1517년생) : 토정비결의 '토정'이 바로 이 이지함의 호. 현재 종 3품 사헌부 집의이며 관리들의 규율을 감찰하는 사헌부의 실세이다. 원래는 가난한 선비이며 토정비결의 저자로만 유명하지만 당대에는 화담 서경덕의 제자로 그의 사후 화담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더 유명했다. 더욱이 그의 조카 이산해가 나중에 북인의 영수가 될 정도로 이름 있는 명문가 출신이기에 그 비중이 큰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균이 아직 꼬마일 때 나중에 왕위를 계승할 것을 예언했으며 남사고, 조식등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균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왕위에 오른 균이 출사를 강요하여 높은 벼슬을 내렸으나 관직에 관심이 없는 성품 탓인지 별다른 활약은 없다.
5.4. 정적
- 윤원형(생년미상) : 명종 재위기간 동안 조선의 정권을 잡고 폭정을 일삼던 척신이며 부패한 훈구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이미 귀양지에서 화병으로 생을 마감했어야 하는 운명이었지만 명종과 균에 의해 가택에 연금된 상태로 생존하고 있다가 정세가 어수선해지자 김진기를 후원했다.
하지만 김진기가 실패하자 정난정의 의견에 따라 명나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여 야반도주한 상태이다. 조선과 명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조선의 고관이던 그의 망명이 가지는 의미가 컸기에 다시 한 번 역사를 움직이는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 정난정(생년미상) : 윤원형의 처. 천한 출신이었지만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정치력을 바탕으로 윤원형의 마음에 들어 일약 정경부인으로 출세했다. 윤원형의 실각 후 권좌에 복귀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며 명나라 칙사와 연계하여 내전에도 큰 변수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김진기가 실패하자 윤원형을 움직여 명나라로 망명을 강행한다.
- 김진기(1535년생) : 잠시 사림으로 전향했다가 다시 윤원형에게 붙은 훈구파의 인물. 훈구파 계열의 부패한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인물로써 균의 개혁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다. 정세가 혼란해지자 윤원형과 손을 잡고 그의 수족이 되어 불만세력을 규합하였으며 조회에서 균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하였다.
무진삼란의 첫 번째 난인 김진기의 난을 주도하여 1만의 반란군을 규합, 별시가 열리는 온양행궁을 급습하나 무려 7천에 달하는 중앙군에게 걸려 괴멸당하고 이동영에게 의탁했다. 잠시 화령군의 군사로 활동하나 함흥전투에서 여진족지원군이 전멸 당하자 다시 만주로 달아난 상황이다.
- 이동영(1533년생) :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형인 이원계의 자손이다. 원래는 왕족의 반열에 들어가야 하는 존재임에도 변방의 토호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여 여진족의 침입을 온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힘든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중앙정부로 천대받던 북방민의 민심을 이용 무진삼란의 두 번째 난인 화령의 난(또는 이동영의 난)을 일으켰다. 참고로 이것은 뻘짓이었는데, 애당초 주인공인 균은 이원계의 자손들을 왕족으로 임명해줄 생각이었던 것. 그러나 이동영의 통제에서 벗어난 여진족으로 인해 애꿏은 백성들이 학살당하자 분노한 균은 이원계의 자손들을 왕족으로 인정하지만 이동영만큼은 반역자로서 죽이겠다고 선포한다.
초기에는 여진족의 지원을 받아 4만에 가까운 대군을 만들어내어 반란이 성공을 거둘 듯 하였다. 하지만 함흥전투에서 내분에 휩싸인 여진족이 자멸하고 이어서 북청, 길주전투에서도 패배하여 화령군은 소멸했고 이동영 자신은 만주로 달아는 신세가 되고 만다.
5.5. 상인
- 최하동(1500년생) : 원래 나주의 중소상단을 운영하던 상인으로 비금도 상단이 생산한 천일염을 유통시키는 일을 했다. 이후 나상이 창립될 때 이에 적극협력하여 조선 최대상단인 나상의 이인자가 되었다. 또다른 대방 조정우와는 대를 이은 경쟁자 관계에 있다.
- 최미연(1546년생) : 최하동의 손녀이며 나상 본단의 도행수로 나상의 최고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여인이다. 상재가 뛰어난 인물이며 조부인 최하동이 균과의 정략결혼을 추진하는 바람에 혼기를 놓쳤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지만 균을 무척 싫어한다.
- 송민진(1531년생) : 송상의 수좌이며 고려 왕씨의 후예이기도 한 뛰어난 상인이다. 무진삼난 당시 송상내 일부 세력의 움직임에 반발하여 개인적으로 반란군을 지원했으나 상재가 무척 뛰어난데다가 그를 추종하는 보부상들의 유격전을 우려한 균이 회유했다.
- 안지연(1549년생) : 송민진의 조카딸로써 여자의 몸으로 송상본전 행수가 되었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다. 다분히 감상적인 성격이 강한 송민진보다 현실적인 감각이 강한 인물로 송민진의 반란군 지원을 반대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나상의 최미연과 비교되는 여인이다.
5.6. 명나라의 주요 인물
- 융경제(1538년생) : 명나라 제 13대 황제로 본명은 주재후이다. 가정제의 둘째 아들로 원래는 유왕의 자리에 있었으나 황태자 주재학이 요절한 후에는 황제의 병수발을 드는 등 사실상 후계자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가정제가 모든 정사를 포기하는 바람에 황태자가 아닌 황자의 신분으로 제위를 계승해야 했다.
융경제 자신은 정사에 직접적인 관심은 없었으나 그의 휘하에는 서계, 고공, 장거정 같은 뛰어난 인재들이 많아서 가정제 이후 몰락하던 명나라의 국세가 점차 회복되었다. 그러나 제위에 오른지 불과 6년 만에 사망하여 뚜렷한 치적을 남기지 못했으며 셋째 아들 주익균을 황태자로 삼아 명왕조를 붕괴시키는데 일조하였다.
- 주익균(1563년생) : 융경제의 세 번째 아들로 현재 황태자이다. 제법 총명한 인물로 어렸을 때에는 장거정을 중용하여 흔들리던 나라를 안정시켰으나 장거정이 사망한 후에 돌변했다. 조부인 가정제가 도교에 심취한 반면 그는 재물에 심취하여 재정불안을 초래하였고 이 문제가 점차 켜져 결국 명나라가 자멸하게 된다.
- 장거정(1525년생) : 명나라 예부상서. 집권 5년 만에 무너져가던 명나라를 부흥시킨 명재상이다. 하지만 권력욕이 많아 부친상을 당했음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태감인 풍보와 손을 잡고 고공을 실각시켰다.
- 고공(1512년생) : 명나라 이부상서. 원래는 장거정과 사이가 좋았으나 장거정의 스승인 서계를 공격한 일로 인해 사이가 벌어졌다. 황제인 목종의 신임을 얻어 현재는 장거정보다 더한 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서계를 추종하는 장거정을 몰아내려 한다.
- 척계광(1528년생) : 명나라 장군. 척가군을 이끌고 남부 해안의 왜구를 소탕한 명장이다. 기효신서를 저술하고 명나라 남병을 조직한 인물로 현재는 만리장성일대에 주둔하면서 알탄 칸의 몽골군을 막고 있다.
5.7. 왜국의 주요 인물
- 시마즈 요시히사(1533년생) : 일본 시마즈가의 16대 당주. 딸인 시마즈 유메를 조선에 시집보내 조선과 동맹을 맺고 강력한 군사력을 양성하고 있다. 휘하에 뛰어난 장수들과 용맹한 병사들이 많아 규수를 통일할 야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 대신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주는 조선의 영향력 하에 놓인 상황이다.
- 시마즈 요시히로(1535년생) : 요시히사의 동생으로 시마즈 최강의 무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제 4군 사령관으로 활약했으며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 가 사쓰마 도자기를 만들어내게 한 인물이다. 동생인 도키히사, 이에히사와 함께 시마즈 군을 이끌고 있다.
- 오다 노부나가(1534년생) : 원래는 오와리 지방의 영주였으나 오케하지마 전투에서 승리하고 미노를 공략하여 세력을 길렀다. 1568년 정이대장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을 받들어 교토에 진군하지만 곧 그와 사이가 틀어지고 매제인 아사이 나가사마가 배신하여 퇴각했다. 현재는 반 노부나가 연합의 견제를 받고 있다. 별명인 '6천마왕'으로 유명하신 분.
5.8. 조선의 왕족
- 덕양군 이기(1524년생) : 중종의 서자로, 균의 친숙부가 되는 인물이다. 원래부터 종친들 사이에서 덕망이 높았으며 역대 임금들과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냈으며 종친부와 종부시 같은 관청들을 모두 맡기도 했을 정도로 높은 대우를 받았다.
이는 균도 다를 바가 없어서 현재 오위도총부 도총관과 종친부 유사당상을 겸하고 있어 웬만한 재상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권세를 누리고 있다. 현재 조선의 종친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왕위계승서열도 높은 인물이지만 감히 균에게 대항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 하원군 이정(1545년생) : 덕흥대원군 이초의 장남으로 균의 큰형이다. 부인을 다섯 명이나 둘 정도로 약간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하렘이냐) 재능이 없는 편은 아닌 인물로 임진왜란때 공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는 오위도총부 부총관과 종부시의 책임자를 겸하고 있다.
- 하릉군 이린(1546년생) : 덕흥대원군 이초의 차남으로 균의 작은 형이다. 한 때 윤원형에 의해서 균이 금원군의 양자가 될 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균을 대신해 금원군의 양자로 입적했다. 역시 균의 배려 덕분에 현재 오위도총부 부총관과 의빈부의 책임자를 겸하고 있다.
- 하동부대부인 정씨(1522년생) : 덕흥대원군 이초의 정실부인이고 도승지 정인기의 누님이며 현 국왕 균의 친모이다. 8살이나 어린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도 아들 삼형제를 잘 길러냈다. 자식교육에 있어서 회초리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균이 가장 두려워하던 상대였다.
- 대비 심씨(1532년생) : 명종의 왕비이며 균의 양모가 되는 인물로 하성군 이균이 왕위에 오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명종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나 아들인 순회세자가 사망하여 현재는 유복녀인 정아공주 하나만 슬하에 두고 있다.
친정인 청송 심씨가문의 힘이 강해 정치적인 발언력도 상당한 편이지만 현 국왕인 균의 능력이 상상 이상인데다가 어린 딸의 장래가 걱정이 되어 정치에 간섭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후에는 인순왕후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균에게 의성이라는 존호를 받기도 했다.
- 왕대비 박씨(1514년생) : 인종의 왕비였으며 균의 할머니(사실은 큰어머니)에 해당하는 왕실의 최고 어른이다. 하지만 친정의 힘이 약해 정치에 간섭할 엄두도 내지 않고 있으며 조용히 남은 여생을 보내는 인물이다. 사후에는 인성왕후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생전에는 공의, 효순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 정아공주(1566년생) : 명종과 인순왕후의 딸로 유복녀이다. 실제로는 균의 사촌동생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친동생이 되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균이 무척이나 총애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여러 공주들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소녀이다.
- 이진(1554년생) : 덕흥대원군 이초의 막내딸이며 균의 여동생이다. 환생한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균과 비슷하여 어린 시절 균을 무지하게도 괴롭혔다. 다행히도 균이 왕궁으로 도망(!)을 쳤기에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으나 아직도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다.
6. 여담
- 자잘한 오류가 제법 많은데 조총에 강선을 판다던지(미니에탄은?) 당파를 쓴다던지 조선을 조금 심하게 과대평가했다던지 등등.
- 대동법 관련 파트는 억지에 가까운 수준. 문제는 실제로 저렇게 했다간 나라 망한다.
7. 팬픽 관련정보
환생군주(幻生君主)- 2nd Story조아라에서 현재 외전 포함 총 6부로 완결되었다.
원래 서두 부분에서 종결된 2부 부분을 잇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어느새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게 된 작품. 조아라와 문피아, 다음 환생군주 팬 카페에 연재.
우선 파일럿 판을 통해 독자들의 반응을 알아본 후 본격적으로 연재되었으나, 원작과 착각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진짜로 이 팬픽의 팬픽을 쓰는 사람까지 있었다 (.....)
아래는 본 위키에 환생군주 항목이 처음 올라왔을 때 적힌 2부 관련비판 내용이다.
7.1. 팬픽 관련 비판
어느 서브컬처 계열 사람이 쓴 걸로 추정되는 이 팬픽은, 좀 잘 쓴 대체역사소설인 1부에 비해 심각할 정도의 퀄리티 추락을 보여준다.1부에도 묘사는 빈약하긴 했지만 여기선 정말 묘사력이 떨어지며 사건 전개도 미래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며 일관성도 없는데다 너무도 빠르고 급히 진행되는 탓에 정신 안차리면 무슨 전개인지 알수도 없다. 그나마도 사전설명이 너무 부족해서 정신 차려도 무슨 전개가 되는지 놓치기 십상.
어쩐지 서양쪽 인물로 히로인이 한명 나오고 선조는 인도인 왕족 여성과 혼인한다. 그런데 이것도 병신인게 분명 앞부분에선 일녀 히로인과 결혼한다고 나와놓고도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도녀 히로인과 결혼하는 전개가 되었다. 물론 전후사정은 전혀 나와있지 않다.
또 갑자기 엘리자베스시대의 영국으로 시점을 이동해서, 별 상관도 없는 영국 이야기를 가끔 해대서 글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메리 스튜어트 언제 잡나 이 소리나 계속 해대고 앉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자료를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신공으로 때웠다는 단점도 있다. 그것도 별 안 중요한 자료들로 전개에 필요하다거나 필수 지식이 아닌, 역사학도나 밀리터리 오타쿠나 외울만한 엄청나게 마이너 자료들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환빠적인 내용. 게다가 더 황당한 건 그 환빠적인 내용을 일빠가 썼다는 점이다.
환빠이면서도 일빠로 추정되는 이 작가는 인물들의 말투 사고방식 행동 등등이 전부 "일본 서브컬처 계열"에서 등장한 클리셰에 가깝게 써 놓았다.
선조가 중앙집권을 이루고 상공업을 진흥시켜 신흥강국 조선을 창출한 뒤 만주를 침공하고 북경까지 진출할 뻔하고 명나라를 처바를 뻔했다는 환빠적 내용이 가미되어 있는데, 글을 쓰는 인간이 일본문화에 찌들어 있으니......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옛날 선조가 이뤄놓은 업적이 나온 박물관을 소풍나온 선생과 학생들이 구경하는 장면인데 놀랍게도 이 여선생(으로 추정되는)은 일본 여교사의 말투를 구사하고 있으며 듣는 학생들도 일본식의 말투를 쓴다.
일본 서브컬처적 성향은 1부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2부만큼은 아니며, 더욱이 글의 질 자체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일본문화에 빠진 환빠가 괜찮은 소설 하나 가지고 팬픽을 쓰면 어떻게까지 병신이 되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