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훈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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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류3. 포장4. 종군기장기념장
4.1. 메이지 7년 종군기장4.2. 메이지 28년 종군기장4.3. 메이지 33년 종군기장4.4. 메이지 38년 종군기장4.5. 다이쇼 3년 종군기장4.6. 쇼와 6년 종군기장4.7. 지나사변 종군기장4.8. 대동아전쟁 종군기장(미수여)
5. 5.1. 대일본제국 헌법 발표 기념장5.2. 대혼 25주년 축전 기념장5.3. 황태자 도한 기념장5.4. 한국 병합 기념장5.5. 다이쇼 대례(즉위) 기념장5.6. 전장 휘장5.7. 제1차 국세조사 기념장5.8. 쇼와 대례(즉위) 기념장5.9. 제도 부흥 기념장5.10. 조선 쇼와 5년 국세조사기념장5.11. 황기 2600년 기념장5.12. 지나 사변 기념장5.13. 일본국 헌법 공포 기념장(미제정)
6. 과거7. 관련 문서1. 개요
일본의 훈장은 메이지 유신 시기인 1871년, 1867년 파리 엑스포에서 일본인 사절단이 받은 프랑스 훈장을 본받아 상훈제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1875년 본격적인 수여가 시작되었다.이후 1937년 문화훈장이 추가되었고, 일본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져 일본군의 해산을 이유로 군인과 군무원에게 주어지던 무공훈장인 금치훈장은 폐지되고, 황족과 외국인에 대한 서훈 및 문화 훈장을 제외하고는 생존자 서훈을 중지하였으며, 과거 "은사금"이라는 이름으로 연금 또는 일시불 형식으로 포상금이 지급되었던 것과 달리 새롭게 제정된 일본국 헌법 제14조 '영예, 훈장, 기타 영전의 수여는 어떠한 특권도 따르지 아니한다.'라는 조항에 따라 어떠한 특혜도 주어지지 않게 되었다.
제도를 정비하던 중 1953년(쇼와 28년) 9월 18일 각의 결정에 의해 "생존자로서 긴요한 경우"에 한하여 근거 규정이 만들어졌고, 패전 후 몇번 상훈과 관련된 안건이 국회에 제출되어 논의되었으나 입법까지는 성사되지 못하다가 1963년(쇼와 38년) 이케다 하야토 내각의 각의에 의해 본격적으로 상훈이 재개되었다.
근래에는 2003년(헤이세이 15년) 각의 결정으로 '새로운 훈장의 수여 기준'이 결정되어 남자만 수여되던 욱일장이 남녀 불문하고 수여하게 되어 여성에게도 욱일장을 수여했다. 이로써 여성 전용 훈장이었던 보관장은 황족 여성 또는 외국인 여성(왕족 또는 고위직)에 대한 의례적인 경우만 수여되는 특별한 경우로 남게 되었다.
현재에도 일본은 서훈 제도를 포함한 영전 제도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다. 즉 헌법에 천황의 국사행위(제7조)로서 헌법적 근거는 존재하나 그에 수반하는 법률 없이 정령 또는 내각부령, 고시로써 상훈이 이루어진다. 즉 명목상으로는 천황의 권한을 인정하나 실질적으로는 내각의 소관이며, 주무부처는 내각부에 속한 상훈국이다.
모든 일본의 훈장은 일본 정부 산하 독립기관인 일본 조폐국에서 제작한다.
그리고 만찬복을 입는 행사에 필요한 축소훈장은 훈장 수여증을 제시하고 일본 조폐국에 사비로 제작비를 내야한다. 훈장을 분실할 때도 마찬가지다.
축소훈장 사진
2. 종류
도고 헤이하치로 패용 훈장으로 보는 대일본제국 훈장총 35개 종류로 패전이후 금치훈장을 제외한 28개 종류 2003년(헤이세이 15년)이후 22개 종류로 상위 종목을 따져 크게 분류하면 국화장, 동화장, 욱일장, 서보장, 문화훈장, 보관장, 지금은 폐지된 무공훈장인 금치훈장으로 구별된다.
서열이 존재하는데 최상위 훈장인 대훈위국화장경식이 있고 그 다음에 대훈위국화대수장, 훈일등욱일동화대수장이 있고 그 다음인 욱일장, 서보장, 보관장은 각 8등급으로 나뉜다. 단 금치훈장은 7등급까지만 있었고 2003년(헤이세이 15년)이후 모든 7,8등급은 폐지되었고 그리고 문화훈장은 별도의 등급으로 나뉘지 않고 단일 등급만 존재한다.
즉 국화장의 경식과 대수장이 각각 서열 1, 2위이고 훈일등욱일동화대수장(동화장)이 3위, 욱일장, 서보장, 보관장,~
2.1. 국화장
菊花章(きっかしょう Supreme Orders of the Chrysanthemum)이 훈장을 수여받은 인물은 공식적으로는 의전서열이 무려 일본 총리보다 위이며, 황족 바로 아래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실권은 없다.
정장 | |
약장 |
-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勲位菊花章頸飾) : 최상위 훈장이며 역대 천황(또는 황족)과 뛰어난 업적이 있는 총리(또는 그에 준하는 직위), 외국의 국가원수에게 수여된다. 한때는 황실 인사에게도 수여했으나 2차 대전 이후론 천황을 제외한 황족 중에선 수여받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내각총리대신의 경우엔 1975년 사토 에이사쿠를 마지막으로 수상자가 없다가, 2019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에게 사망과 동시에 추서되었다. 또 2022년 7월 11일에는 아베 신조에게 추서됐다. 내각총리대신 출신자가 아닌 인물이 받은 경우는 러일전쟁에서 큰공을 세운 오야마 이와오, 도고 헤이하치로뿐이다. 근래에는 국빈방문하는 외국의 군주들에게만 수여하고 있다.[1]
한국인으로는 1907년 10월 17일 순종황제가 대한제국 황제 자격으로 수여받기도 했다. 물론 훈장을 수여받기 3달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면... 또한 1919년 1월 21일 당시 시대상에서는 이례적으로 고종황제가 사후 무려 대한제국 황제 자격으로 수여받기도 했다.[2]
여담으로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걸로 무궁화대훈장이 있다. 또한 대훈위국화장경식를 패용할 때, 대부분의 경우는 관례로서 대훈위국화대수장의 정장(대수장)을 병용하지 않는다. 이는 동일한 훈장에서 상위에 있는 것을 패용하는 경우 그 하위 훈장을 동시 패용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훈위국화대수장은 같은 국화장인 대훈위국화장경식의 하위 훈장이므로 천황이 패용할 때는 대훈위국화장경식을 목에 건 뒤, 동화대수장의 대수를 어깨에 메고, 가슴에는 대훈위국화대수장과 동화대수장 등의 부장을 착용하는 것이 정식이다. 다만 외국 원수 등이 대훈위국화장경식과 대훈위국화대수장 밖에 갖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대훈위국화장경식에 대훈위국화대수장의 정장(대수장)을 이용하여도 역시 지장이 없다고 여겨진다.
정장 | |
약장 |
- 대훈위국화대수장(大勲位菊花大綬章) : 최고위인 대훈위국화장경식에 다음가는 훈장이다. 황실 수상자는 성년인 천황의 아들인 경우가 다수이며 여기엔 황태자도 포함된다.[3][4] 일반 수상자는 총리와 같은 고위직들뿐이고 일반적으로 사후서훈(추서)된다. 전후에 총리가 아닌 자가 수여받은 경우는 1974년 사망한 다나카 고타로 최고재판소장관이 유일하다. 또한 전후 총리 중 살아생전 수여받은 사람은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유일하다. 2022년 7월 11일에는 아베 신조가 사망한 후 대훈위국화장경식과 함께 동시에 추서됐다. 이로써 국화장경식과 국화대수장을 동시에 수훈한 인물은 전후 3명[5] 밖에 없다가 아베 신조까지 포함해서 4명째가 됐다.
여담으로 이 훈장을 수여받은 한국인으로는 각각 1920년, 1924년, 1926년, 1940년, 1943년의 영친왕, 의친왕, 이완용, 이건, 이우가 있다.
2.2. 동화장
桐花章(とうかしょう Order of the Paulownia Flowers)일본의 고위 훈장의 하나로 단일 등급이다. 2003년(헤이세이 15년)까지 훈일등욱일동화대수장(勲一等旭日桐花大綬章)이란 이름으로 욱일장 가운데 최상등급 훈장이었으나 별도의 훈장으로 격상돼 국화장 다음 가는 훈장이 되었다.
정장 | |
약장 |
- 동화대수장(桐花大綬章) : 대체로 수상자는 총리 · 중의원 의장 · 참의원 의장 · 최고재판소장관 등 삼부요인들이다. 주일미국대사 또는 외국의 총리에게도 수여된 경우가 있다. 민간인도 수여된 적이 있는데 전부 일본경제단체연합회장 출신이다.
2.3. 욱일장
旭日章(きょくじつしょう Orders of the Rising Sun)국가 혹은 공공에 대한 공로가 있는 자 중에 공적 내용에 주목하여 현저한 공적을 올린 자에게 수여한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스포츠,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수여가 이루어진다. 일본 주재 각국 대사나 일본과 관계가 깊은 해외 고위급 정치인, 일본 내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한 해외 기업가들과 문화예술인, 주일미군 사령관, 미국 인도 태평양 통합 사령부 사령관 등 일본의 안보와 관련된 미군 고위급 장성들도 수여받는다. 참고로 1875년(메이지 8년)에 제정된 일본 최초의 훈장이다. 또 그동안 남성만 수여가 가능하던 것이 2003년(헤이세이 15년)에 제도가 개정되어 남녀 모두 수여할 수 있게 됐다.
2003년(헤이세이 15년)까지는 욱일장, 서보장, 보관장은 8등급까지 나뉘어져 있었고 일본제국에서는 군인과 군무원, 조선인에게도 수여가 되었으나, 현재는 6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등급은 폐지되었다.
YTN이 2018년에 한국인중 욱일장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며 비판한 바 있으나#, YTN이 주장하는 것처럼 받은 사람이 친일파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으며[6] 여러 군데 팩트가 틀렸다.뉴스톱 팩트체크기사 심지어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로 숨진 아들의 뒤를 이어 한일 우호관계에 힘썼던 이수현의 아버지 이성대 씨, 구한말의 충신으로 유명한 민영환도 해당 훈장을 받았다.
정장 | ||||||||
약장 |
-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7][8]
- 욱일중광장(旭日重光章)[9]
-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10]
- 욱일소수장(旭日小綬章)[11][12]
- 욱일쌍광장(旭日双光章)[13]
- 욱일단광장(旭日単光章)[14]
훈칠등청색동엽장(勲七等青色桐葉章)[폐지]훈팔등백색동엽장(勲八等白色桐葉章)[폐지]
2.4. 서보장
瑞宝章(ずいほうしょう Orders of the Sacred Treasure)훈장의 유래는 삼종신기인 이세 신궁의 야타노카가미이다. 국가 또는 공공에 대해 공로가 있고 공무 등에 장기간 재직하여 성적을 올렸던 자를 수여 대상으로 한다. 특히 '위험업무 종사자 서훈'이란 제도가 있어 경찰관, 자위관, 소방관, 교도관, 해상보안관과 같은 위험도 높은 공무원의 직군 중 55세가 넘는 자에게 수여한다. 수여 시기는 매년 4월과 11월 두 차례로 대다수가 서보쌍광장 또는 서보단광장을 받고 인원이 3600명 정도 수준으로 전체 훈장 수상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17]
2003년(헤이세이 15년)까지는 욱일장, 보관장과 마찬가지로 8등급까지 나뉘었다. 일본제국에서는 군인과 군무원, 조선인에게도 수여가 되었으나, 현재는 6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등급은 폐지한 뒤, 하얀색 오동나무 장식을 더하고 하얀 천에 노란 외곽선에서 파란 천에 노란 외곽선으로 리본 디자인을 바꾸었다.
정장 | ||||||||
약장 |
- 서보대수장(瑞宝大綬章)[18]
- 서보중광장(瑞宝重光章)[19]
- 서보중수장(瑞宝中綬章)[20]
- 서보소수장(瑞宝小綬章)[21]
- 서보쌍광장(瑞宝双光章)[22]
- 서보단광장(瑞宝単光章)[23]
훈칠등 서보장(勲七等瑞宝章)[폐지]훈팔등 서보장(勲八等瑞宝章)[폐지]
2.5. 보관장
宝冠章(ほうかんしょう Orders of the Precious Crown)훈장의 유래는 고대 여제의 보관이다.
원래는 여성전용 훈장이지만 현재 규정이 고쳐져서 욱일장과 서보장도 여성에게 수여가 가능한 지금은 황실 여성에게 수여하는 특수한 훈장이다. 또 외국 국가원수의 부인이나 외국 왕실의 여성에게 수여하기도 한다.[26]
그리고 보관대수장을 제외하고는 메달 리본이 다른 훈장과 달리 다 똑같은데 이 훈장은 여성용이기 때문이며 2003년 이전 서보장도 여성이 수여 받으면 리본 모양이 보관장과 동일했었다.
정장 | ||||||||
약장 |
- 보관대수장(宝冠大綬章)[27]
- 보관모란장(宝冠牡丹章)[28]
- 보관백접장(宝冠白蝶章)[29]
- 보관등화장(宝冠藤花章)[30]
- 보관행엽장(宝冠杏葉章)[31]
- 보관파광장(宝冠波光章)[32]
훈칠등 보관장 (勲七等宝冠章)[폐지]훈팔등 보관장 (勲八等宝冠章)[폐지]
2.6. 문화훈장
文化勲章(Order of Culture)일본 문화계의 영예 | ||
문화훈장 | 문화공로자 | 자수포장 |
정장 | |
약장 |
노벨상을 받은 수상자에게는 관례적으로 문화훈장이 수여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오에 겐자부로처럼 본인이 직접 수여를 거부한 케이스도 존재하며, 가즈오 이시구로처럼 노벨상을 수상했음에도 문화훈장을 수여받지 못 한 케이스도 존재한다.[36]#
자세한 내용은 분류:일본 문화훈장 문서 참고하십시오.
2.7. 금치훈장(1947년 폐지)
1890년 제정되어 1947년까지 수여되던 무공훈장으로 일본군 장병과 군무원이 대상이었다. 일본서기에는 진무 덴노가 숙적 나가스네히코와 결전을 앞두었을 때 느닷없이 하늘에서 금빛 솔개(金鵄/きんし)[37]가 날아들어 진무 덴노의 활 위에 앉았다가, 나가스네히코 측 병력의 앞을 안 보이게 만들어 전의를 잃고 패주하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금치훈장은 이 전설을 모티브로 제작되었기에 황금빛 솔개 장식이 있다.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4년부터는 급수에 따른 종신연금 규정을 제정하고 모든 훈장 중 상위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대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훈장이었기 때문에 수여기준 역시 엄격해서 언론이나 홍보로 대서특필할 사안이 아니면 서보장이나 욱일장 수여 기준 중 '국가 또는 공공에 대해 공로가 있다.'는 규정을 확대 해석해 서보장이나 욱일장으로 대신하여 서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38]
일제가 전쟁에 뛰어들며 공훈자가 넘쳐나게 된 1940년대 이후부터는 규정대로 마구잡이로 퍼줬다가는 국고가 남아나질 않으니, 일시불 형식으로 변경하고 연금도 채권의 이자로 줬다.
일본 제국이 패망한 1945년 이후 몰락의 길을 걸어 1946년에는 전사자에 대한 추서 외에는 서훈이 중지되었다. 이후 약 1년간 전사자 추서용 행정상으로만 남아있다가 1947년 GHQ의 지시를 받고 일본 정부가 관련규정을 폐지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39]
오늘날에는 일본군이 해산되었고 금치훈장 역시 훈장으로서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패용할 수 없다. 현대의 일본 자위대에서는 공로자에게 방위기념장으로 치하하고, 전역이나 명예퇴임시에는 다른 직렬의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서보장을 받는다.
정장 | |||||||
약장 |
공일급금치훈장(功一級金鵄勲章)- 천황의 추천을 받은 장성/사령관 급에 한해 수여. 연금 월 900엔.공이급금치훈장(功二級金鵄勲章)- 대좌이상 장성급에 한해 수여. 연금 월 650엔.공삼급금치훈장(功三級金鵄勲章)- 대위이상 좌관급에 한해 수여. 연금 월 400엔.공사급금치훈장(功四級金鵄勲章)- 좌관급에 한해 수여. 준사관, 부사관 계급이 받을수 있는 최고 등급으로 부사관 계급은 공로가 현저하더라도 이정도 등급을 넘을수 없었다. 연금 월 210엔.공오급금치훈장(功五級金鵄勲章)- 위관급 장교및 공로가 현저한 준사관, 부사관 계급에 한해 수여. 일본군 병 계급이 받을수 있는 최고 등급이었다. 연금 월 140엔.공육급금치훈장(功六級金鵄勲章)- 준사관, 부사관 계급과 공로가 현저한 병 계급에 한해 수여. 연금 월 90엔.공칠급금치훈장(功七級金鵄勲章)- 병 계급에 한해 수여. 연금 월 65엔.
3. 포장
- 홍수포장: 자기의 위난을 고민하지 않고 인명의 구조에 노력한 이에게 수여되는 포장
- 녹수포장: 수년간 사회에 봉사하는 활동 (자원 활동)에 종사하고 현저한 실적을 올린 이에게 수여되는 포장
- 황수포장: 농업, 상업, 공업 등의 업무에 정려하고 다른 모범이 되는 기술이나 사적을 가진 이에게 수여되는 포장
- 자수포장:과학기술분야에서의 발명·발견이나, 학술 및 스포츠·예술문화분야에서의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에게 수여되는 포장
- 감수포장:회사 경영, 각종 단체에서의 활동 등을 통해, 산업의 진흥, 사회 복지의 증진 등이 뛰어난 업적을 든 이 또는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로부터 의뢰되어 행해지는 공공의 사무(보호사, 민생·아동 위원, 조정 위원 등의 사무)에 노력한 이에게 수여되는 포장
- 곤수포장: 공익을 위해 사재를 기부한 이에게 수여되는 포장
4. 종군기장
일본제국시절 존재한 일본군의 기념장들이다.4.1. 메이지 7년 종군기장
4.2. 메이지 28년 종군기장
4.3. 메이지 33년 종군기장
4.4. 메이지 38년 종군기장
4.5. 다이쇼 3년 종군기장
메달 | 리본 | |
4.6. 쇼와 6년 종군기장
4.7. 지나사변 종군기장
제일 많이 수여된 기장이기도 하다.
4.8. 대동아전쟁 종군기장(미수여)
메달 | 리본 | |
5. 기념장
일본제국시절 존재한 각종 기념장들이다.5.1. 대일본제국 헌법 발표 기념장
5.2. 대혼 25주년 축전 기념장
분류 | 남성용 | 여성용 |
금장 | ||
은장 |
5.3. 황태자 도한 기념장
메달 | 리본 | |
5.4. 한국 병합 기념장
메달 | 리본 | |
5.5. 다이쇼 대례(즉위) 기념장
5.6. 전장 휘장
5.7. 제1차 국세조사 기념장
5.8. 쇼와 대례(즉위) 기념장
남성용 | 여성용 |
5.9. 제도 부흥 기념장
5.10. 조선 쇼와 5년 국세조사기념장
5.11. 황기 2600년 기념장
사실상 마지막으로 수여한 기념장이다.
5.12. 지나 사변 기념장
메달 | 리본 | |
5.13. 일본국 헌법 공포 기념장(미제정)
6. 과거
양로령(養老令)을 제정해 아래와 같이 서훈했다.정3위 | 훈일등(勳一等) |
종3위 | 훈이등(勳二等) |
정4위 | 훈삼등(勳三等) |
종4위 | 훈사등(勳四等) |
정5위 | 훈오등(勳五等) |
종5위 | 훈육등(勳六等) |
정6위 | 훈칠등(勳七等) |
종6위 | 훈팔등(勳八等) |
정7위 | 훈구등(勳九等) |
종7위 | 훈십등(勳十等) |
정8위 | 훈십일등(勳十一等) |
종8위 | 훈십이등(勳十二等) |
7. 관련 문서
[1] 공화국 국가원수들에겐 대훈위국화대수장을 수여하지만 간혹 대훈위국화장경식을 수여하기도 한다.[2] 당시 대한제국 황실은 모두 왕공족으로 격하되어 이왕가로 불린 것을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다. 일본 조선총독부 이왕직에서는 의외로 고종과 순종 승하후 그들이 대한제국 황제위에 있었음을 인정하고 황제로서의 묘호와 시호를 올렸다.[3] 단 황태자는 만 18세 기타 친왕,왕등은 만 20세를 기준으로 한다.[4] 과거에는 이 훈장을 수여받을시 훈일등 욱일동화대수장,훈일등 서보장도 같이 주었으나 1959년(쇼와 34년)아키히토 황태자의 결혼 이후로 폐지되었다.[5] 요시다 시게루, 사토 에이사쿠, 나카소네 야스히로[6] 물론 받은 사람중 친일파도 존재하지만 일본제국이 없어진 현재 관련성이 없다. 또, 기사에서 이토 히로부미도 달았다며 훈장을 보여주는데 이는 대한제국의 최고 훈장이지 일본의 훈장이 아니다.[7]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일등욱일대수장(勲一等旭日大綬章)[8] 명단[9]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이등욱일중광장(勲二等旭日重光章)[10]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삼등욱일중수장(勲三等旭日中綬章)[11]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사등욱일소수장(勲四等旭日小綬章)[12] 명단[13]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오등욱일쌍광장(勲五等旭日双光章)[14]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육등욱일단광장(勲六等旭日単光章)[폐지] 2003년 11월 3일 영전 제도의 개정으로 폐지됨[폐지] [17] 물론 순직한 사람에겐 즉시 추서된다.[18]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일등서보장(勲一等瑞宝章)[19]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이등서보장(勲二等瑞宝章)[20]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삼등서보장(勲三等瑞宝章)[21]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사등서보장(勲四等瑞宝章)[22]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오등서보장(勲五等瑞宝章)[23]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육등서보장(勲六等瑞宝章)[폐지] [폐지] [26] 여성 국가원수에게는 대훈위국화장경식,대수장을 수여하고 남성 배우자도 대훈위국화대수장을 수여한다.[27]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일등보관장(勲一等宝冠章)[28]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이등보관장(勲二等宝冠章)[29]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삼등보관장(勲三等宝冠章)[30]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사등보관장(勲四等宝冠章)[31]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오등보관장(勲五等宝冠章)[32] 2003년 이전 명칭은 훈육등보관장(勲六等宝冠章)[폐지] [폐지] [35] 인류 최초의 달 탐사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은 일본과의 관련성이 전혀 없음에도 이례적으로 수상했는데, 최초의 달 탐사라는 업적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36] 사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노벨상이 순수하게 출생지를 기준으로 국적을 분류해서 일본인 판정이지[41] 영국 국적에 소설도 영어로 쓰는 사람이라 일본에서 훈장을 주기에는 영 애매하긴 하다.[37] 올빼미 치(鵄) 자를 일본에서는 솔개란 뜻으로 사용한다.[38] 예로부터 무(武)를 중요시하던 잔재가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남아있어서 같은 훈등일 경우 민간인이 받는 욱일장, 서보장, 보관장보다 금치훈장의 서열이 높았다. 이 때문에 문관인 이토 히로부미는 무관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영전에서 차이가 난다는 게 괘씸해서 욱일장의 일등급을 둘로 나누어 공일급금치훈장보다 상위훈장인 훈일등욱일동화대수장을 제정했다는 일화가 있다.[39] 공로자게 주는 은사금은 1967년에 일시불 형식으로 정산되었다. #[40] 1938년 지원병 제도가 생긴 후 입대한 조선인 지원병으로, 이후 중국 전선으로 자대배치를 받아 중국에서 근무하다가 1939년 산시 성에서 국민혁명군과 교전중 전사했다. 이은석의 입대와 전사는 조선인들의 일본군 입대를 홍보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는데, 당시 일본군 병 계급 중에서는 고참인 상등병까지 추서하며 대대적으로 칭송되었기에 충북 옥천군의 유족들이 일제강점기 동안 전국에서 온 부의금 등으로 생활할 정도였다. 이후 가족은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는데, 본인이나 유족이나 등재 기준에 미달되었기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