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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6:33:03

고려 공비(公妃), 군비(君妃)


황실 및 왕실의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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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는 동아시아 황실/왕실 체제에서 해당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없거나 관련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 경우를 나타낸다. 당시에는 이러한 경우 특별한 호칭 없이 이름이나 관직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본 틀에서는 문헌 기록이 없더라도, '왕세녀', '국서'처럼 근현대에 새롭게 등장해 주된 용어로 자리잡은 번역어는 포함해 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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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시대 공비(公妃)와 군비(君妃)는 왕자의 배우자들을 구분하는 칭호로, 각각 왕자의 작위와 지위에 따라 나뉜다. 고려의 작위 체계와 사회적 계층 구조에 의해 왕자의 배우자를 통칭하지 않고 세분화하여 부른 것이다. 이는 고려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2. 공비(公妃)

공비는 공작(公爵) 작위를 가진 왕자의 배우자이다. 공작은 왕자의 작위 중 가장 높은 지위에 해당하며, 왕위 계승 가능성이 높은 직위였다. 공작의 배우자는 공비(公妃)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왕실 내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공비는 국왕의 정비와 협력하여 의례와 제사를 주관하거나 왕실의 후계 문제에서 중요한 발언권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3. 군비(君妃)

군비는 군(君) 작위를 가진 왕자의 배우자이다. 군은 공작보다 낮은 작위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를 가진 왕자들에게 부여되었다. 군비는 군의 배우자로, 공비에 비해 낮은 위상을 가졌다. 왕실 의례나 정치적 활동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역할을 했다.

4. 왜 '왕자비'로 부르지 않았는가?

고려시대에는 왕자의 배우자를 단순히 '왕자비'라는 칭호로 통칭하지 않았다. 왕자의 지위가 작위에 따라 공작, 군작 등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배우자의 칭호도 자연스럽게 공비와 군비로 구분되었다. 고려는 왕실 구성원을 작위 체계에 따라 서열화하고, 이에 맞춰 배우자의 칭호를 차별화하는 전통을 가졌다.

또한 "공비"와 "군비"라는 칭호는 배우자의 지위와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며, 왕실 내 위계질서를 강조했다. '왕자비'라는 통칭은 작위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고려의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고려는 혼인을 통해 귀족과 왕실의 결속을 강화했으며, 작위에 따른 배우자 칭호가 이러한 관계를 명확히 했다. 공비는 주로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었고, 군비는 상대적으로 낮은 계급 출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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