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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8:15:30

공고급 순양전함

콩고급 순양전함에서 넘어옴
제1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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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급 순양전함
공고 히에이 하루나 기리시마

파일:external/mir-s3-cdn-cf.behance.net/08849821964349.5630a5dcd2f27.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ngo1944.png
金剛型戦艦(콩고형전함)
Kongo-Class BattleCruiser

1. 개요2. 제원3. 개발4. 마개조5. 한계점
5.1. 화력5.2. 방어력5.3. 속력
6. 실전7. 평가8. 대체함 건조계획9. 동형함10. 기타11. 창작물에서12.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ngo_after_reconstruction.jpg 파일:1920px-Hiei_Tsukugewan.jpg
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 공고급 순양전함 2번함 히에이
파일:0000.jc6.jpg 파일:external/www.maritimequest.com/01_kirishima.jpg
공고급 순양전함 3번함 하루나 공고급 순양전함 4번함 기리시마

공고급 순양전함은 일본 제국 해군이 운용했던 순양전함이다.

2. 제원

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
[ruby(金剛型巡洋戰艦, ruby=こんごうがたじゅんようせんかん)]の[ruby(一番艦, ruby=いちばんかん)] 「[ruby(金剛, ruby=こんごう)]」
구분건조(1913년)1차개장(1930년)2차개장(1938년)최종사양(1944년)
배수량 27,500t(상비) 29,330t(기준) 32,200t(기준) 36,314t(만재)
전장 214.6m 222m
전폭 28.04m 31.02m
흘수선 8.38m 8.65m 9.6m
보일러 Yarrow식 혼소 36기 로호함본식혼소대형 4기
로호함본식혼소 6기
로호함본식 8기
터빈 Parsons식 직결 증기터빈 2기 4축 함본식증기터빈 4기 4축
출력 64,000 마력 136,000 마력
속도 27.5Knot 26Knot 30.3Knot
항속거리 14Knot로 8,000해리 14knot로 9,500해리 18Knot로 10,000해리
연료 석탄 4,000t, 중유 1,000t 석탄 2,661t, 중유 3,292t 중유 6,000t
승무원 1,201명
주포 Vickers식 14인치 45구경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41식 36cm 45구경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부포 Vickers식 6인치 50구경
단장 부포곽 16기 (총 16문)
단포신 80mm 단장포좌 12기
(총 12문)
41식 15cm 50구경
단장 부포곽 16기 (총 16문)
41식 15cm 50구경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41식 15cm 50구경
단장 부포곽 8기 (총 8문)
대공포 없음 단포신 80mm 단장포좌 7기
(총 7문)
127mm 2연장 대공포탑 4기
(총 8문)
127mm 2연장 대공포탑 6기
(총 12문)
대공기관포 없음 25mm 2연장포좌 10기
(총 20문)
25mm 3연장포좌 18기 (총 54문)
25mm 2연장포좌 8기 (총 16문)
25mm 단장포좌 30기 (총 30문)
어뢰 533mm 수중발사관 8기 (총 8문) 533mm 수중발사관 4기 (총 4문) 제거
레이더 없음 21호 대공레이더 1기
22호 수상레이더 2기
13호 레이더 경보기 2기
장갑 측면장갑 203mm
갑판장갑 19mm
주포탑천정 75mm
주포탑전면 254mm
부포곽 150mm
측면장갑 203mm
갑판장갑 19 + XXmm[1]
주포탑천정 152mm
주포탑전면 254mm
부포곽 152mm
함재기 없음 수상기 3기 수상기 3기, 캐터펄트 1기

3. 개발

러일전쟁 후 일본 제국은 상당히 자금이 부족한 상태였으며, 대세로 떠오르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건조는 커녕 남은 전함들 수리하기도 바빴다. 드레드노트급으로 건조되기로 한 사쓰마급 전함은 기술부족으로 前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되어버렸으며[2], 그나마도 시대에 밀려 빠르게 구식화 되는 실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12인치 포를 12문 탑재한 카와치급 전함을 건조하게 되었으나 이것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 도고 헤이하치로등의 영향으로 인해 12인치 주포 자체가 45구경과 50구경을 혼용하는 식의 불완전한 물건이었다. 당연히 이런 물건으로는 일제사격이나 협차기술을 사용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지금이야 사격통제컴퓨터가 알아서 다 하니 다양한 구경장 다양한 구경이 섞여 있어도 사격통제 자체는 문제없지만, 당시는 계산자와 주판, 계산표와 연필을 쓰던 시절이다.[3]

그러자 이대로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장갑순양함 4척의 건조 계획을 순양전함으로 확대시키고 영국빅커스 사에 설계를 요청한다.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인하여 파산상태였기 때문에 건조할 돈이 없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MS_Lion_%28Lion-class_battlecruiser%29.jpg
영국 순양전함 라이온

기본적으로 영국 해군라이온급 순양전함을 바탕으로 주포를 13.5인치에서 14인치로 강화한 형태이며, 포탑 배치와 함수의 형상등에서도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전함들에는 들이받아 공격하기 위한 충각형 함수가 아직 시대의 유물처럼 남아있지만 공고급의 함수는 속도를 위해 이중만곡형으로 되어있었다. 이외에 레샤디에급 전함[4]의 순양전함 버전이라는 설도 있다. 이는 공고를 설계한 영국 빅커스 사의 설계주임 서스턴 경의 일기를 근거로 한다.

덕분에 세계 최초의 14인치 주포 탑재함이 되었다. 원래 공고는 50구경장 12인치 포 연장포탑을 5기 탑재할 예정이었는데[5], 영국 주재 무관이던 가토 히로하루가 이 포의 성능이 예상보다 나쁘다는 영국측 보고서를 획득하여 해군성을 설득, 14인치로 변경하였다. 공고가 레샤디에의 순양전함판이라는 근거도 서스턴 일기에서 레샤디에의 선체를 늘려서 기관부를 증설하는 방식으로 출력 증강을 하고, 레샤디에의 13.5인치 포탑을 50구경장 12인치 포탑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최초 설계를 했다고 쓰여져 있는 데서 나왔다. 그리고 일본은 레샤디에의 다포탑도 마음에 들었는지, 후소급과 이세급까지 14인치 6포탑을 달아버린다.

당시는 영일동맹의 전성기라서 영국이 편의를 최대한 봐주었다. 설계안과 함께 1번함 공고는 영국에서 건조되고, 나머지 자매함들은 설계도와 기술을 일본에 몽땅 넘기면서 일본 내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그리고 기술이전을 위해 많은 수의 일본 기술자들이 영국에 찾아와서 1번함 공고의 공사를 보고 참여하면서 경험을 축적하도록 조치했다.[6]

이리하여 공고급 순양전함은 해외에서 도입한 최후의 주력함이 되었고, 그 뒤의 전함들은 모두 일본 내에서 설계 건조되었다. 그리고 후소급 전함 등 일본의 후속 전함의 기초설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건조된 히에이 다음으로 하루나와 키리시마는 일본에서 설계해서 민간 조선소에서 건조됐는데, 이때 두 조선소간의 경쟁이 정말 치열했다고. 그런데 여러가지 사고가 겹쳐서 하루나의 건조가 늦어지는 바람에 키리시마가 먼저 진수되자, 하루나를 맡은 가와사키 중공업 산하 조선소의 주임은 자책감을 못이기고 할복 자살해버렸다. 그래서 일본 해군은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자 하루나를 3번함으로 지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취역일이 같은것도 이것이 이유인데 자살보고를 들은 군이 너무 경쟁하지말라고 해서 취역일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당시 일본해군은 건조예산 승인일을 기준으로 함번을 정하고 있어서 하루나는 이미 3번함이었다.

한편 영국 해군은 공고급 순양전함에 비해 라이온급 순양전함의 주포배치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알게되어 라이언급 4번함인 타이거의 주포배치를 다시 설계하여 타이거급 순양전함으로 재탄생시켰다.

4. 마개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panese_battleship_Kongo.jpg
막 건조되었을 당시의 1번함 공고

이후 유틀란트 해전이 벌어지면서 순양전함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데다, 더구나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신규 전함의 건조가 제한되면서 있는 전력을 유효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애초에 공고급이 조상인 라이온급보다는 장갑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이 적 전함을 상대할 수준이 아니므로 이건 당연한 조치였다.

그래서 전간기 기간 동안 대대적인 개장을 받았다. 굵직한 것만 따져도 2차례며, 그 이외의 기간도 소규모의 개장이 지속되었다. 중요한 것만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장갑을 어느 정도 강화하고 동력기관을 교체하여 속력을 증가시키면서 고속전함으로 재분류되었다.

5. 한계점

하지만 태생 자체가 순양전함이라 그 한계가 존재했다.

5.1. 화력

14인치 45구경장 주포는 건조 당시에는 최상급이었으나, 2차대전 개전 직전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그 때까지 남아 있었던 진짜 구식전함을 제외한 당대 전함 중 화력이 최하위였다. 나가토급 전함의 41cm 주포를 받을 수 있었다면 화력이 급상승했겠지만, 불행히도 바벳 크기나 배수량 문제로 탑재할 수가 없어 이미 화력은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7] 이런 이유로 인해 함대결전부대에서 제외된 것이다.

부포도 구식 포곽식 부포를 최종 개장형까지 그대로 유지했다. 포곽식 부포가 설치된 부위는 장갑이 152mm 수준으로 얇고 포곽의 구멍을 덮는 포방패는 평균 장갑이 51mm로 방어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런 빈약한 방어력으로는 경순양함의 포탄마저 방어하기 어려웠다. 특히 포방패는 장갑이 너무 얇아 구축함의 주포나 그와 동급인 전함이나 순양함의 부포를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포곽형 부포는 부포의 사격각에 제약이 심하고, 한 측면의 부포곽이 전부 하나의 후방 공간을 공유한다는 특성상 유폭에 취약해 집중방어구조를 채택하여 함선의 방어력을 더 높이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한 까닭에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개장을 하면서 포곽식 부포를 전부 없앴고, 미국 전함들도 마찬가지로 포곽을 없애고 5인치 2연장 포탑으로 교체하였다.[8]. 심지어 자국의 전함인 이세마저도 항공전함 개장 때 포곽식 부포를 철거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화력 약화를 감내하지 못하고 끝내 약점을 유지하였다. 일본은 자국의 경순양함 전력이 빈약했던 탓에 소형함을 상대하기 적합한 전함의 부포를 포기하지 못했다. 보일러까지 교체하는 수준의 대개장을 하면서 포곽을 제거하고 89식 대공포를 탑재했다면 대수상 화력을 거의 유지하면서 대공화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을 테지만 구식 전함이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다.

부포곽은 나아가 상갑판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함선이 고속으로 항해하거나, 풍랑이 거칠어지면 침수될 위험이 있다. 이러면 해당 부위의 부포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결국은 공고급 순양전함도 함수의 2문을 제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부포곽을 줄이고 대신 대공포와 대공기관포를 놓기 시작했다.

물론 공고급이 설계 건조된 시기를 고려하면 포곽식 부포를 채택한 것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부포탑이 도입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대개장을 거치면서도 야마토급을 제외한 모든 전함에서 굳이 포곽을 유지한 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상대였던 미국은 반대로 네바다급 전함이나 펜실베이니아급 전함을 개장하면서 포곽을 전부 없애고 5인치 38구경 양용포 8기를 설치했다.

대공화력은 개장 과정에 그럭저럭 100문 이상을 확보했지만 일본군의 대공 능력 자체가 전반적으로 빈약했기에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후소급 전함처럼 주포탑이 전함 전체에 널려 있어서 대공화기를 설치하기 어렵다는 약점은 없었으니 일본군 전함 중에서는 대공 능력이 중간 정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5.2. 방어력

순양전함이라는 특성상 건조당시부터 전함의 화력을 감당해낼 수 없는 장갑을 가진데다가, 강화를 했지만 대응방어가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라서 후술하겠지만 중순양함의 근접사격에 타기실 장갑이 관통되는 일이 일어났다.

일단 원거리 포격전이 대세가 되면서 갑판장갑은 크게 강화했지만 현측장갑이나 포탑장갑 등 수직장갑은 사실상 강화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순양전함시절 그대로였다. 덕분에 기리시마는 약 9km라는 가까운 거리에서 워싱턴의 16인치 주포 일제사격에 대파되며 강화한 갑판장갑 덕을 못봤다. 다만 한국에서는 기리시마와 교전했던, 세대부터가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다가 처음부터 전함으로 만들어진 사우스다코타가 키리시마의 14인치 주포와 일본 중순양함의 8인치 주포에 역시 초근접거리에서 집중사격을 받고도 중요부위는 피해를 입지 않고 자력으로 귀환해 수리를 받은 것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1910년대에 건조된 순양전함과 1930년대 건조된 전함의 차이는 엄청나고, 미국은 네바다급 전함부터 집중방어 개념을 도입해서 집중방어 설계의 완성도는 타국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히에이는 미국 순양함의 8인치 주포에 타기실이 관통되어 침수가 진행되었기에 제대로 기동하지 못해 교전해역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침몰의 원인이었다. 개장을 통해 장갑을 보강했지만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포탑의 배치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함 전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전방의 1, 2번 주포탑은 인접한 반면, 후방의 3번 주포탑과 4번 주포탑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원본 설계의 한계점이다. 공고급 순양전함이 개발될 당시의 영국은 순양전함을 설계할 때 배수량 확보를 위해 전함에서 장갑을 줄이고 주포탑 1-2기를 제거한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9] 그리고 당시의 영국 전함은 중앙부 주포탑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공고급 순양전함을 설계할 때에는 서서히 중앙부 주포탑의 문제점이 알려지던 시기라 중앙부 주포탑을 약간 후방으로 물러나게 해서 후방 사계를 확보하는, 그나마 과도기적이긴 하나 나름대로 선진적이던 설계가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공고급 순양전함의 3번 주포탑은 중앙부 주포탑의 후신이므로 다른 포탑과는 달리 혼자서 뚝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일단, 3번 주포탑의 사용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주포탑이 서로 떨어지게 된 결과, 집중방어가 힘들어지고 포탑과 그 주변을 방어할 장갑을 더 많이 할애해야 한다.

이 어정쩡한 3번 주포탑 위치의 흔적은 페이퍼플랜으로 남은 아마기급 순양전함, 카가급 전함, 키이급 전함의 설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운데가 비어 보이거나 있을 만 한 자리에 주포탑이 들어가 있는 모습은 나가토급 전함까지 이어진다. 나가토급 1번함이 유틀란트 해전 1년 뒤인 1917년에 기공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설계는 그 이전이므로, 집중방어 개념이 발명되기 한참 전에, 중앙부 포탑의 위험이 증명되지 않았던 시절에 설계됐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단, 그래도 나가토급은 집중방어와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이외에도 구일본해군의 전함 외관이 공고급부터 나가토급까지는 스팀펑크 분위기다가 야마토급에 와서 일신하는데 이것은 야마토급이 나가토급의 20년 뒤인 1937년에 기공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쉽게 납득할 수 있다.

5.3. 속력

2차 개장 이후로 30노트의 속도를 가지게 됨으로서 겉으로는 매우 우월해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비화가 있었다.

위 제원의 1차 개장을 보면 갑자기 속도가 원래보다 1.5노트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나가토급 전함처럼 보일러만 교체하고 터빈 및 주기관을 교체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이런 구식 군함의 대개장시에는 평소에는 두꺼운 장갑 내부에 있어서 교체가 어려운 동력기관을 좀 더 발전된 물건으로 완전히 교체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안 가는 행위다. 당연하게도 장갑을 강화하고 배수량이 늘었는데, 출력은 그대로니 속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순양전함의 속도를 가지지 못한 점이 전함으로 함종변경이 이루어진 것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문제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순양전함이 아닌 전함으로써는 방어력이 정말 만족스럽지 못한 군함이 속도까지 느려지니 엄청난 비판이 쏟아지게 되었고, 결국 8년만에 다시 배를 대대적으로 뜯어낸 후 보일러와 기관을 다시 교체하고 동력기관의 배치를 변경하는 대작업을 한 끝에 속도를 크게 늘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자금과 시간이 2배로 들어가고, 멀쩡한 배가 전쟁 직전에 다시 도크에 들어가는 등의 불필요한 과정이 추가되고 만다.

사실 이런 실수(?)는 의외로 영국 해군에서도 있었는데 건조시 32.5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던 리나운급 순양전함이 1차로 개장을 받은 이후 30노트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으로 속력이 감소하는 바람에 2차 개장에서 기관과 추진계통을 교체해서 31.5노트 수준으로 속력을 끌어올린 사례가 있다. 물론 이쪽은 그래도 30노트는 넘겨서 아쉬운대로 순양전함으로 쓸 수 있는 수준이기는 했다.

6. 실전

태평양 전쟁의 주역은 더 이상 전함이 아닌 항공모함이므로 모든 함종을 통틀어서 일본군 최고의 수훈함 자리는 쇼카쿠급 항공모함들에게 돌아가야 하겠지만, 전함 중에서는 그나마 태평양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싸워온 공고급이 최고의 수훈함으로 인정받는다. 태생이 순양전함인 탓에 제대로 된 전함과 맞짱을 뜨기엔 부족한 스펙을 가져서 일본해군의 함대결전 플랜에서는 제외되었지만, 그 덕에 다른 전함들처럼 후방에서 호텔 노릇이나 하지 않고 전장에 적극적으로 투입될 수 있었다.

6.1. 개전 초기

공고급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뛰기 시작했으며, 태평양 전쟁 초기 일본군의 진격을 뒷받침했다.

1942년 3월, 공고와 하루나는 크리스마스 섬의 연합군을 포격했다. 전함의 포격이 이어지자 섬의 인도인들은 재빨리 백기를 들었지만 공고와 하루나는 그냥 집에 갔다. 이 인도인들은 이후에 일본군이 크리스마스 섬을 점령할 때 영국군 장교들을 제압한 후 또 한 번 백기를 올리고 투항했다. 당연히 이런 짓을 한 죄로 전후에는 사형판결을 받지만, 인도가 독립한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6.2. 미드웨이 해전

나구모 주이치의 제 1항공함대의 일원으로 기리시마와 하루나, 콘도 노부다케의 제 2함대에 공고와 히에이가 배속되어 출전했다. 30노트에 이르는 속도를 살려 항공모함의 호위임무를 맡았지만, 공고급 순양전함만으로는 미군의 연이은 공습을 막아낼 수 없었고 임무는 대실패. 패배의 원인은 공고급 탓이 아니라는 것이 위안.

6.3. 과달카날 전역

1942년 10월 11일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미 해군의 기습으로 제 6전대의 중순양함 후루타카가 침몰하고 제 6전대 기함 아오바가 대파된 후, 일본군은 전함을 핸더슨 비행장 야간포격에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동원된 것이 공고급 순양전함들이었다. 다른 일본군의 전함들이 너무 느려터져서 과달카날에서 행동하기가 곤란했던 것과 달리, 공고급 순양전함들은 30노트라는 빠른 속도, 그리고 순양함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화력과 방어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이런 임무에 투입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제공권이 연합군측에 있는 탓에 주요시설을 항모로 공격할 수 없으므로 최대한 다가가 전함의 포격으로 직접 공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적의 항공기가 뜨지 못하는 야간에 쳐들어가 한바탕 쏟아부은 뒤 해가 뜨기 전에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라는 이유였다. 이 '빨라야 한다'라는 조건 탓에 결국 30노트대의 속력을 내는 공고급 밖에는 딱히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공고급은 구축함 위주로 편성된 수뢰전대를 동반해서 야간전에 투입되었다. 중순양함의 8인치 포보다 강력한 14인치 주포라면 핸더슨 비행장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고, 이 임무를 위해 3식 통상탄까지 잔뜩 적재하고 출동했다.

참고로 당시 일본의 야간전 플랜은 함대에서 제일 크고 튼튼한 군함이 기함으로서 탐조등을 켜고 적들의 온갖 공격을 받아내는 사이 수반함들이 탐조등에 비춰진 적을 쓸어담는 단순무식한 것. 마침 공고급에 배속된 함장들도 죄다 전함의 포격전과는 거리가 먼 수뢰전 전공자들이었다.

공고와 하루나는 1942년 10월 14일 야간에 핸더슨 비행장에 포격을 가해 비행장을 거의 완전히 마비시켰고 이를 지키던 미 해병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14인치가 비록 동시대 전함들에 비해서는 가장 낮은 구경에 속했지만 지상에서 보이는 화력은 5인치나 8인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이었으며, 이후 미 해병대는 전함의 화력지원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일본군은 10월 15일 새벽에 제 8함대 소속 중순양함 초카이와 키누가사를 동원해서 핸더슨 비행장을 재차 포격했고, 공고와 하루나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미군은 또 포격이 날아오자 비행기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미군은 죽어라 노력해서 비행장과 항공전력을 재건했고, 일본군은 히에이와 기리시마를 동원해서 핸더슨 비행장을 재차 포격하기로 한다. 그러나 미군도 물러서지 않고, 신형 전함들까지 끌어내서 전장으로 돌격시켰다.

결국 과달카날 해전에서 파국이 덮쳤다. 제 1차 야간전에서 일본 함대의 기함을 맡았던 공고급 2번함 히에이는 미군과 일본군의 난전에 휘말렸다. 미군 기함인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를 포격해서 함대 사령관 캘러헌 제독을 전사시켰지만, 캘러헌은 죽기 직전에 "큰 놈을 잡아라"라는 명령을 남겼다. 미군은 가장 큰 놈인 히에이를 집중공격했고, 히에이는 중순양함의 포격으로 타기실이 뚫리고 미군 구축함 래피의 기관포 사격으로 함교가 박살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 역시 히에이를 공격한 배를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한 끝에 미군을 격퇴하기는 했으나, 히에이 함교에 있던 함대 사령관 아베 제독이 부상당하고 참모진 일부는 전사하는 등 난장판이 되었다. 결국 아베 제독은 후퇴 명령을 내렸지만, 벌집이 된 히에이는 돌아가지 못하고 침몰했다. 전간기에 일본 천황이 타는 어소함(御召艦, 오메시)의 영예를 누린 배가, 일본 해군 전함 중 첫 번째로 격침된 것이다.

자매함인 공고급 4번함 기리시마도 무사하지 못했다. 제 2차 야간전에서 키리시마는 정전사고를 일으켜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미군 전함 사우스다코다를 상대로 집중포화를 퍼부어서 함상구조물을 손상시켰지만 핵심구역의 장갑을 관통하지 못했다. 사우스다코다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걸 보고 중순양함이라고 착각한 기리시마가 서치라이트를 켰는데, 이걸 본 미군의 신예 16인치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번함 워싱턴이 사우스다코다의 위치를 확인하고 만다. 아군과 적이 섞여 있었기에 제대로 포격을 못하고 있었던 워싱턴은 안심하고 포격을 개시했고, 워싱턴이 쏜 75발 중 9발이 기리시마를 명중했다. 다만 자료에 따라 20발 가량이 명중했다는 증언도 있다. 일본군은 기리시마가 박살나는 걸 보고 순양함과 구축함 전부가 벌떼처럼 워싱턴에게 덤벼들었으나, 전함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함 뿐이다는 현실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기리시마는 피해를 복구하지 못하고 침몰함으로서, 태평양 전쟁에서 흔치 않은 '전함 대 전함의 포격전으로 가라앉은 전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일본의 주력 전함들은[10] 공고급 두 척이 가라앉는 등 격렬했던 전장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최고속력이 느려서 함대와 발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6.4. 과달카날 이후

과달카날 해전에서 패배한 후, 공고와 하루나는 과달카날 철수작전을 지원하는 등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격침전과는 별로 없지만, 공고급이 없으면 중순양함들만 뛰어다닐 판이니 매우 소중한 전력일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도 항공모함 호위역으로 참전했으나 위대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 벌어지면서 하루나는 큰 피해를 입었다.

6.5. 레이테 만 해전

일본군의 주력함대인 구리다 함대에 편성되어 출전했으나, 그동안 놀고 있던 주력 전함 야마토, 무사시, 나가토도 동행했으므로 부담이 좀 줄었다. 그러나 구리다 함대에는 항공모함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오자와 함대가 홀시의 제 3함대를 끌어낼 미끼가 되었다. 홀시가 미끼를 물면 레이테 만으로 돌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오자와 함대가 어디 있는지는 전혀 몰랐고, 구리다 함대를 대대적으로 공습했다. 무사시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공습으로 다수의 폭탄과 어뢰에 피격되며 결국 침몰했고, 구리다는 함대를 반전시켜 후퇴했다. 그러나 미군 정찰기가 일본군의 도주를 확인하고 떠나가자, 재빨리 U턴을 해서 다시금 레이테 만으로 진격했다. 그들은 몰랐지만, 오자와 함대의 미끼작전이 성공하면서 홀시의 제 3함대는 북쪽으로 떠나갔다. 즈이카쿠의 목을 베어서 미국 국민들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다.

위험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대잠진형에서 대공진형으로 바꾸려던 구리다 함대였는데, 눈앞에 미군 항공모함 6척이 나타난다. 눈앞의 적이 홀시의 제 3함대라고 판단한 일본군은 눈앞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돌격해 들어갔다. 눈앞의 미군은 사실 호위항공모함과 구축함, 호위구축함으로 구성된 2선급 함대 태피 3이었지만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크게 놀란 미군도 급히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호위항공모함이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 구축함 4척이 일본군 쪽으로 돌진했다. 선두는 어네스트 에반스 함장이 이끄는 플레처급 구축함 존스턴이었고 일본측 선두는 모가미급 중순양함 스즈야와 쿠마노였는데, 쿠마노가 존스턴에게 대파당하고 스즈야도 미군의 공습으로 박살났다.

이때 공고는 주포를 발사해서 14인치 주포 3발로 존스턴을 대파했다.[11] 미군 구축함 히어만이 돌격해와서 공고에게 어뢰를 쐈지만 빗나갔다. 그러나 히어만은 굴하지 않고 하루나에게 어뢰를 쐈지만 이번에도 빗나간다. 문제는 그 어뢰가 하루나의 뒤에 있던 야마토에게 돌진한 것. 야마토는 회피기동 중 두 어뢰 사이에 끼이면서 전속력으로 도망갔고, 나가토도 같이 도망갔다. 덤으로 하루나는 히어만의 어뢰를 피한 후 전과를 전혀 올리지 못했다.

이후 공고는 미군의 호위구축함 사무엘 B.로버츠에게 고전하던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를 구하기 위해 14인치 포를 발사, 사무엘 B.로버츠를 격침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군 중순양함 초카이에 오인사격을 가하는 바람에 초카이에 큰 손상을 입혔다는 의혹이 있다.[12] 초카이는 이후 미군의 공습으로 침몰했고, 생존자들을 수습한 구축함마저 격침되며 모든 승조원이 전사하고 말았다. 아무튼 공고는 전속력으로 레이테 만으로 진격했고 하루나가 뒤를 따랐다.

그러나 레이테 만에 들어가기 전, 함대가 완전히 흩어져버린 것을 본 구리다가 집합명령을 내렸고 공고와 하루나는 함대로 복귀했다. 구리다는 함대를 점검해본 후 하구로와 토네를 제외한 모든 중순양함을 잃은 데다, 미군이 뒤에 나타났다는 긴급무전까지 받았다. 오자와 함대가 성공했다는 무전도 날아오지 않았고, 2시간이나 싸웠는데도 태피 3과 구축함 히어만은 아직 건재했다. 결국 구리다는 레이테 만으로 진격해서 미군 상륙부대를 날려버리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하고 구리다 턴을 결행한다.

이 해전에서 공고의 전과가 얼마나 되느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USS 갬비어 베이(CVE-73)의 격침에 대해 미군은 토네급 중순양함 2번함 치쿠마에 의해 격침되었다 주장하고, 일본은 야마토급 전함의 전과라는 주장과 공고의 전과라는 주장이 갈린다. 다만 야마토급 전함은 지근탄이라고 주장되고 공고는 직격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공고와 야마토 중 누가 침몰시켰냐에 대해서는 야마토가 더 가까이 있었고 포각이 낮아 명중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점에서 야마토를 지지하는 쪽과 직격탄을 낸 공고를 지지하는 쪽의 주장이 갈린다.

어쨌든 구리다 함대의 레이테 만 진입은 실패했고, 해전 종료 이후 얼마 뒤 일본군 함대는 일본 본토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퇴 중에 공고는 대만 지룽 반도 인근에서 잠수함 씨 라이온이 발사한 어뢰를 맞았다. 피격 당시에는 침수가 심하지 않았고 어디에서 미군 잠수함이 또 나타날지 몰랐기에 현장을 최대한 빨리 벗어났지만, 너무 낡은 군함이라 장갑판을 접합한 리벳이 어뢰를 맞은 충격 탓에 느슨해졌고, 여기로 바닷물이 새어들어오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상황이 심각함을 깨달은 일본군은 결사적으로 배를 살리려 노력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결국 배가 기울면서 탄약고 내의 주포 포탄들이 쓰러지면서 발화, 폭침하고 말았다. 일본 전함 중 최고의 수훈함은 이렇게 사라졌다.

6.6. 구레 군항 공습

공고급 순양전함 중 유일한 생존함이 된 하루나였지만 일본은 이미 기름도 없었기에 출격은 불가능해졌다. 결국 하루나는 부포와 대공포를 대부분 떼어낸 후 해안포대가 되었지만, 미군은 구레 군항으로 곧바로 쳐들어왔다. 1945년 7월 24일, 구레 군항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나 역시 3식탄을 쏘며 저항해봤지만 3식탄의 대공성능이 거지같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결국 1945년 7월 28일, 하루나는 항공전함 이세, 중순양함 아오바와 함께 중요목표물로 선정되어 집중공격을 받았고, 폭탄 8발을 맞고 침몰하고 만다. 그래도 구레 군항의 수심이 얕았기에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는데, 하루나의 승조원은 "착저했으니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아"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안 좋았다. 미 육군 항공대의 B-24 79대가 대파착저한 데다 불타는 아오바를 잡으려고 몰려갔는데, 나중에 일본은 하루나가 미 육군항공대의 B-24를 격추시켰다고 우겼다. 대공포도 없고 B-24와 싸우지도 않은 하루나가 어떻게 B-24를 격추시켰는지 알 수가 없다. 수훈함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는 짓이 아닐 수 없다.

7. 평가

호텔 노릇이나 하던 일본군의 다른 전함들과 달리, 공고급 순양전함들은 1~4번함 모두 태평양을 내달리며 마지막까지 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가라앉은, 일본 해군이 그렇게나 좋아 죽던 '야마토 정신' 그 자체의 함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순양전함이라는 태생과, 태평양 전쟁 개전 시점에서 30년이 넘은 노령함이라 함대 결전에서는 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전함이 필요한 호위 임무등에 우선적으로 배치받아 연합군과 싸워왔지만 그 대가로 일본 해군 전함 중에서 가장 빛나는 전공을 세웠으며, 일본 전함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격침전과는 많지 않지만 매일매일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서 일본군의 전쟁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의 주력 전함들은 너무 느린 데다 구식이라서 훈련함으로 살다가 니시무라 함대에 배속되어 절망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싸우다가 전멸한 후소와 야마시로, 항공전함으로 개수되었지만 함재기 출격은 단 한 번도 못하고 미끼작전이나 자원 수송 등에나 투입된 이세와 휴가, 미군 구축함 히어만에게 쫓겨서 도망간 나가토와 야마토, 주포 방위판을 자기 주포로 날려버린[13] 무사시,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가 완성되기도 전에 격침된 시나노를 보면 뭐라 할 말이 없다.

당대 일본 전함들이 하나같이 극심한 가혹행위로 악명을 떨쳤듯이 공고급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병들이 전함들의 가혹행위를 까는 노래가 유행했을 때 공고급도 모두 싸잡아서 욕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로 보면 공고급의 흑역사도 심각하지만, 수병들이 구레 군항 공습에서 하루나가 침몰한 걸 보고 아쉬워한 걸 보면 애착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모양. 다른 전함들이 놀고먹은 것과 달리 공고급은 심각하게 혹사당한 걸 고려하면, 어떻게 봐도 똥군기 그 자체인 악폐습과 부조리밖에 없는 다른 전함과는 다르게 이쪽은 극심한 실전 스트레스로 인해 벌어진 필요악에 가까운 가혹행위였을 가능성이 높다.

8. 대체함 건조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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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代艦型戦艦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함들은 조약에서 제한한 범위 내에서 새로운 전함을 건조해서 대체해도 된다는 조건에 따라서 공고급을 대체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후지모토 키쿠오가 공식적으로 설계안을 만들고 히라가 유즈루가 별도로 설계안을 제출했다. 특이한 점으로는 후지모토 계획안에선 아예 조약을 파기하고 개장할 계획까지 세워놨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 위키피디아 항목 참조. 결국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전함 추가 건조 금지 조치가 연장되면서 건조는 모두 취소되었지만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을 극화한 애니메이션 <일곱 도시 이야기> 에 등장하는 전함의 모델이 저 그림들이다. 다만 운용 국가는 일본이 아니다.

9. 동형함

함명의 유래는 모두 일본의 산 이름에서 따왔다. 원래 일본의 전함 이름은 옛 지방 명칭에서 따오는게 관례이지만, 본급이 산 이름을 따 명명된 것은 본래 순양전함으로 건조되었기에 순양함의 명명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순양함으로 예산이 배정되었던 것이, 그 이후 아예 순양전함의 함명도 산 이름으로 따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일본 해군은 그 이후 단 한 척의 순양전함도 취역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공고급만 산 이름을 딴 순양전함으로서 남았다. 대신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아카기 및 그 자매함으로서 원래 항공모함이 될 예정이었던 아마기급 순양전함에 그 흔적이 남았다. 5번함 히라누마도 있다는 카더라가 있으나 이는 미국의 오보다.

이 중 네임쉽인 공고의 경우 곤고산(金剛山)이라는 산이 나라와 오사카 인근에 있어서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재밌는 것은 이 산의 이름의 유래 중 한국의 금강산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원래는 '금강(金剛)'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매우 단단하여 결코 파괴되지 않거나, 그런 물건을 뜻한다. 불교 용어에도 존재한다. 한국의 금강산은 불교 용어 쪽에서 유래한 것이다. 외래어표기법에 의하면 '곤고'이며 '콘고', '콘고우'라고도 쓸 수 있다. 로마자로 쓰면 KONGO, KONGOH, KONGOU 등으로 표기 가능하다. '콩고'나 '공고'는 일본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단어라고 생각하고 한글로 옮긴 것 같다.
공고 (金剛/금강) 1944.11.21 침몰
히에이 (比叡/비예) 1942.11.13 침몰
하루나 (榛名/진명) 1945.7.24 침몰
기리시마 (霧島/무도) 1942.11.14 침몰

그리고 과달카날과 정말 좋은 의미로든 안좋은 의미로든 악연이 깊은 함급이다. 공고, 히에이, 하루나, 키리시마 4척이 모두 다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했으며 히에이와 키리시마는 과달카날에서 함생을 끝냈다.

하루나는 격침 오인보고를 일본 해군 내에서 가장 많이 들은 함선이고 태평양 전쟁 전체에서는 두번째로 많이 들은 함선이다. 1위는 미국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10. 기타

영국에서 건조된 1번함 공고와 일본에서 건조된 자매함들 간에 품질 차이가 있어서, 일본에서 건조한 공고급을 개장하는데 쓴 드릴을 1번함 공고에 사용했더니 드릴이 장갑판을 못 뚫고 구부러지는 바람에 영국에서 신형 드릴을 수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루머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히에이도 마찬가지로 영국제 VC강판을 사용했으나 히에이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적힌 곳마다 드릴이 굽었느니 부서졌느니, 아니면 단순히 구멍이 뚫리지 않았을 뿐이니 등 제각각 다르게 전해지는 점, 건조 당시면 모를까 공고급의 1차 개장 시점인 1930년에 VC강은 이미 구식 기술이었다는 점[14]을 고려하면 신빙성은 많이 낮은 편이다. 1차 개장 이전의 일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게, 공고급은 1차 개장 이전까지는 장갑에 드릴을 사용할 만한 개장을 받은 적이 없다.

다만 당시 일본의 공구 제작 기술이 영국이나 독일에 비해 많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2차대전 때 일본이 전문 공작함[15]아카시 단 한 척밖에 가지지 못한 이유가, 아카시에 탑재한 독일산 기계를 복제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이 악착같이 찾아내 아카시를 부순 뒤에 동남아의 일본 군함들은 전투 후 신속한 수리를 받지 못해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전장에 복귀하기 힘들어졌다.

1차 대전이 발발할 즈음에 영국이 일본에게 공고와 동형함의 대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공고급도 충분히 1선급 순양전함이었고 독일 해군을 견제해야 하는 영국 입장에서는 군함 한척 한척이 아쉬운 상황이라 외국에서 주문해서 건조하던 군함도 구입해서 썼고 당시 해군장관인 처칠은 다른 나라가 주문해서 건조하던 배도 강탈해서 사용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라쇼몽의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해군기관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1번함 공고에서 4년간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군함 공고 체험기'라는 제목의 체험기를 썼다.

11. 창작물에서

* 더 퍼시픽에서는 함선 자체가 직접적으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위에 나온 헨더슨 비행장 포격 장면이 등장한다.* 해전 게임 네이비필드에서 일본 트리의 1차 전함으로 등장한다.*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의 일본 기본 전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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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와 콜라보하여 안개의 전함버전으로도 나왔다. 자색이 공고, 분홍이 히에이, 황색이 하루나, 녹색이 키리시마. 원작처럼 합체하거나 초중력포는 못쓴다. 함장은 원작의 멘탈모델로 설정되어 있다.

* 만화 반딧불이의 묘에서 관함식 장면에서 제일 먼저 지나가는 전함이 바로 이 공고급 순양전함이다. 참고로 여기 나온 모든 전함들과 B-29등의 병기를 그린 사람은 안노 히데아키.
* Naval Creed:Warships에서 일본 전함 트리 2티어로 나온다, 30노트로 티어 대비 고속에다 포도 상당히 좋은 명품전함, 다만 옆구리 장갑이 많이 아쉬운 편, 또한 히라가 유즈루가 설계했던 대체계획안이 이즈미란 이름으로 일본 순양전함 트리 5티어 1차로 등장한다, 410mm 10문으로 장거리 포격에 특화된 함선이다
파일:Naval Creed 콩고.png 파일:Naval Creed 이즈미.jpg
공고 이즈미(공고급 대체안)

12. 관련 문서


[1] 부위에 따라 다름[2] 드레드노트처럼 All big gun을 지향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전 드레드노트급이 되었다.[3] 체험해보고 싶다면 네이비필드에서 마운트마다 구경장이 다른 함포를 달아놓고 수동조준해 사격해보자.[4] 오스만 제국이 영국에 주문건조한 전함. 단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영국이 자국 해군의 전력증강을 위해 술탄 오스만 1세와 함께 무단으로 압류했고, 레샤디에는 에린으로, 술탄 오스만 1세는 애진코트로 개명해버린다. 이는 당연히 오스만 제국의 분노를 불렀고, 거기에 마침 독일 제국이 이를 이용해 어차피 본국으로의 귀환이 불가능해진 지중해 해역의 순양전함을 오스만 제국에 넘겨주는 척 하면서 오스만 국적으로 러시아를 공격해버리면서, 오스만 제국도 독일을 편들어 1차대전에 강제로 참전하게 된다. 이를 두고 "독일은 전함 한 척으로 동맹국을 얻었다"는 말도 나돌았다나... 이 사건이 처칠에게 끼친 결과는 갈리폴리, 영국과 세계에 장기적인 결말은, 오스만 제국 해체, 터키 공화국 성립, 중동 제국(諸國)과 이스라엘 독립의 단초 등이다.[5] 이 전함이 빅커스 설계 472형 순양전함이다.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일본 4티어 프리미엄 전함 이시즈치로 구현되어있다.[6] 사실상 엄청난 특혜를 베푼 셈이다. 2017년의 시점으로 적절한 예시를 들자면 미국이 한국에게 F-35의 자체생산, 미국 현지공장에 공식적으로 한국 기술자 파견, 설계도와 관련기술 제공까지 죄다 허가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당시에는 다른 국가가 돈 주고 주문한 무기가 자국군의 무기보다 좋으면 선금을 줘도 시비를 걸던 일이 빈번했으며 군함은 오늘날의 핵무기와 비슷한 수준의 전략무기였다. 영국은 앞의 주석에서 보듯이 남이 주문한 도 멋대로 강탈하는 국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특혜다. 다만 배 강탈은 처칠이 좀 또라이 기질을 보인거고 영국 내부에서도 이건 좀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처칠의 똥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7] 육상포대에서 공고급 순양전함의 바벳과 같은 크기의 41cm 단장포탑을 운용한 적이 있지만, 단장포는 함선이 제대로 된 화력을 투사하기 위해 필요한 협차나 일제사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치명적 결점이 있다. 명중률과 별개로 한 번에 투사할 수 있는 화력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문제까지 있어 이런 방향의 개장은 불가능했다.[8] 미국의 구식 전함들은 2차대전 시기 개장공사를 하면서 대공무장을 증설하고 5인치 양용포를 달았다.[9] 이는 리벤지급 전함리나운급 순양전함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리벤지급 전함에서 장갑을 줄이고 포탑 1기를 제거한 것이 리나운급 순양전함이다[10] 예를 들자면 이 녀석이 대표적.[11] 다만 이 포탄이 공고의 포탄이 아닌 야마토의 주포탄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12] 승조원이 모두 전사한 탓에 침몰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사무엘 B. 로버츠가 근거리에서 발사한 어뢰에 피격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나머지 하나의 설이 당시 사선에 있던 공고의 오인사격이 원인이었다는 것이다.[13] 고장난건 대공포가 아니라 방위판이었다고 하며, 이것 역시 다수의 어뢰피격으로 인한 충격 등 여러 증언이 있어 확실치는 않다.[14] 당장 공고의 1차개장에 더 이후 기술인 VH강에 기반을 둔 NVNC강이 사용되고 있다.[15] 조선소가 아닌 일선에서 손상된 함선을 수리할 수 있는 배. 1/3토막이 없어진 배를 대양항해가 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주포탑이 파괴됐으면 없는대로 작전투입할 수 있게 재생하기도 한다. 아카시와 대응해 유명한 미국 선박은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를 살려내 전황을 뒤엎는 데 큰 공헌을 한 베스탈.[16] 단,여기선 공고가 아닌 "콩고"라고 발음한다. Kongo를 그대로 발음했기 때문이다.덤으로 본작에 순양전함 분류가 없어서 전함으로 나온다.[17] 2199로 리메이크되면서 지구측 우주함대의 함선에 구 일본 해군 함선의 이름을 붙였다.[18]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바벳 크기 등의 문제들로 인하여 공고급은 절대 나가토급의 주포를 설치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