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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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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라푸아 운동.png

라푸아 운동의 로고, 이름처럼 라푸아시(市)의 문장을 변형한 것이다.

1. 개요2. 창설3. 위기4. 잠깐의 부활5. 몰락6. 주요 관련자

1. 개요

Lapuan liike

전간기 핀란드의 자생적 파시즘 운동 및 정당.[1] 성향은 루터교 교권 파시즘에 대핀란드주의가 결합된 것이다. 상징색은 흑, 백, 청 3색.

소련이 두고두고 핀란드에게 꼬장을 부리게 되는 구실이 되었다.

2. 창설

파일:Talonpoikaismarssi.jpg
헬싱키 중앙광장에 운집한 라푸아 운동
파일:K._J._Ståhlberg_and_Ester_Ståhlberg_in_Joensuu_after_kidnapping.jpg
죽다 살아난 스톨베리 부부
1929년 핀란드 중부 포흐얀마(Pohjanmaa)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포흐얀마는 핀란드 내전 당시 백군을 가장 강력히 지지한 곳이었고, 내전이 끝난 지 10년이 넘도록 반공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2] 그러던 중 1929년 11월 남포흐얀마의 도시 라푸아에서 사회주의 청년단체가 집회를 열면서 교회, 애국주의, 핀란드군, 그리고 만네르헤임 남작을 조롱하는 선동구를 외쳤다. 이것에 자극된 지역 주민들이 맞시위를 일으켜 1천 명 이상이 모였고, 사회주의자들은 두들겨 맞아 쫓겨났다.

라푸아에서 시작된 이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고, 1930년 6월 이 "라푸아 운동가" 3천 명이 오울루[3]바사의 공산주의 신문사에 들이닥쳐 윤전기를 때려부쉈다. 그리고 각지의 운동가들이 수도 헬싱키를 향해 상경하기 시작했다. 하경이라고 해야 하나 7월 7일 1만 2천 명 이상의 우익 시위대가 헬싱키에서 가두시위를 벌였고, 렐란데르 대통령은 이들의 요구에 따라 스빈후부드를 총리로 임명하고, 공산주의 성향의 집회결사 및 언론을 금지하는 "공화국 수호법"을 제정했다. 정당한 법적 근거를 얻은 라푸아 운동가들은 각지로 흩어져 400건 이상의 노조 집회를 폭력적으로 방해했다.

이들이 애용한 폭력수단은 무일루투스(muilutus)라는 것이었는데, 사람을 납치해서 두들겨팬 뒤 차에 실어 소련 국경에 갖다버리는 것이었다. 1930년 10월 4일에는 심지어 전 대통령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 부부를 납치해서 이 짓을 하려고 했다. 스톨베리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전직 대통령 같은 국가 요인이 이렇게 피습을 당할 정도로 나라가 개판이었다. 1931년, 라푸아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는 권위주의자 스빈후부드가 대통령이 되었고, 라푸아 운동의 기세도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전 육군참모장 쿠르트 발레니우스 등 라푸아 운동에 동조하는 군부 인사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라푸아 운동은 이탈리아나 독일의 파시스트들처럼 국정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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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기

파일:Kosola_ja_Wallenius.jpg
맨챌래 반란 당시 코솔라(왼쪽), 발레니우스(오른쪽)
1932년 2월, 헬싱키 바로 북쪽의 맨챌래라는 동네에서 사회민주당원들이 모임을 열었다. 라푸아 운동가들은 여기에 난입해 모임을 강제로 해산시켰는데, 아드레날린이 돌았는지 점점 사태가 커져가더니, 마침내 쿠데타를 선언하게 되었다. 반란 지도자로 추대된 발레니우스는 자신들에게 가담할 것을 호소했다. 백위대 일부가 가담했지만 대부분의 백위대와 정규군은 가담하지 않고 정부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총리 유호 수닐라[4]는 내각을 총사퇴하라는 반란군의 통첩을 씹고 진압을 명령했다. 라푸아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던 스빈후부드도 이것을 방해하지 못하고[5]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을 종용했고, 이 방송을 들은 반란군은 허무하게 와해되었다. 발레니우스와 비흐토리 코솔라 등 라푸아 운동 간부 50여명은 감옥에 갔다.

재판을 거쳐 라푸아 운동은 1932년 11월 21일 활동이 금지되었다. 그 판결의 근거조항은 우습게도 그들이 정부에 강요해서 입법했던 공화국 수호법이었다.

한편 라푸아 운동이 활동하던 4년간의 소식은 바로 옆의 소련에도 들려오고 있었다. 소련은 핀란드가 동카리알라와 잉그리아를 비롯한 소련 영토를 자신들의 고토라고 여기고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려 했던 것을 고깝게 여기고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제국 시절부터 고분고분하지 않은 속국 폴란드와 핀란드에 대한 경계와 위협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선전이 더해지자 핀란드를 러시아 제국의 잔존국,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볼셰비키들은 라푸아 운동과 관련된 소식들을 흔들며 선전활동을 벌여 국민들의 이런 생각을 부채질했다. 이것은 겨울전쟁 개전 명분 중 하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 내전 때 소련으로 망명했던 핀란드 사회주의자들[6]대숙청당할 때 가장 흔한 이유가 핀란드 파시스트들과의 결탁이었다.

4. 잠깐의 부활

라푸아 운동 간부들이 감옥에 갇혀 있던 1932년 6월 5일, 그 후신으로서 "애국인민운동(IKL)[7]"이 출범했다. 내세우는 이념은 대핀란드주의, 교권파시즘, 반소주의로 라푸아 운동 시절과 대동소이했다. 정식 정당이 된 이들은 '의회의 기독교 도덕화'를 주장했으며, 당간부 다수가 루터교 성직자들이었다. 제복은 검은 옷에 파란 넥타이였고, 당원들끼리는 로마식 경례를 했다. 산하에 청흑단(Sinimustat)이라는 청년단체를 두고 교련을 했다.

주된 지지자들은 부농들, 중산층, 공무원, 루터교 목사, 대학생들이었다. 즉 가난하고 못 배운 노동계급이 아니라, 배울 대로 배운 중산층들 사이에서 지지세가 가장 강했다. 이때 노동자들은 사민당과 공산당으로 갈려서 경쟁하고 있을지언정 일단 좌익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확고했다. 이건 사실 전 유럽에서 똑같았고.
파일:IKL_parliamentary_group.jpg
1938년 의사당 계단 앞의 IKL 의원들.
창당 이후 꾸준히 총선에 참여했는데, 1933년 선거 때는 스빈후부드의 국민연합당(KOK)과 단일화를 했다. KOK-IKL 선거연합은 이 때 32석을 얻었는데, 그 중 14석이 IKL이고 KOK는 18석이었다. KOK는 1930년 선거에서 42석을 얻었는데, IKL과 연합하면서 무려 24석을 잃은 것이다. 선거 참패의 결과 당권이 스빈후부드에게서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로 넘어갔다. 파시즘을 극혐하던 파시키비는 사회보수주의 정당이었던 KOK를 친대기업 시장자유주의 정당으로 체질개선을 하고, IKL과 손잡자고 했던 자들을 당무에서 모조리 내쫓았다.[8] 1936년 총선에서 이 때 진보당-농민당이 내전기의 오랜 앙금을 씻고 대승적으로 사민당과 연정하면서 이듬해의 대통령 선거에서 스빈후부드가 연임에 실패하고 퀴외스티 칼리오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써 IKL은 완전히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1938년 말부터 법무장관 우르호 케코넨이 IKL을 제재하기 위한 법적 절차 검토를 시작했다.

5. 몰락

이들의 수명을 잠시나마 연장시켜 준 것은 소련이었고, 결국 그들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도 소련이었다. 겨울전쟁이 일어나 그 결과로 핀란드의 영토와 인구 10%가 소련에 할양당하자 IKL과 동조자들은 이것이 민주주의의 무능과 실패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계속전쟁을 대비하여 핀란드는 나치 독일과 급격히 유착했고, 1941년 1월 IKL 총재 빌호 아날라[9] 운수공공장관으로 입각했다. 하지만 아날라가 입각한 유카 랑겔 내각은 전쟁 대비를 위한 국민대통합을 목표로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입각한 거국내각이었기 때문에 IKL의 주장이 내각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IKL이 민주주의가 무용하다는 둥 떠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총재를 장관으로 묶어놓은 것에 가까웠다. 과연 IKL은 그 다음 내각인 에드빈 링코미에스 내각에는 입각하지 못한다.

1944년 9월 19일 핀란드와 소련이 휴전했다. 소련은 가장 먼저 IKL을 해산시킬 것부터 요구했고 핀란드 정부는 그에 따랐다. 휴전하고 불과 4일 뒤의 일이었다. 한때 IKL의 지역적 기반이던 포흐얀마 지방의 주민들도 모조리 국민연합당이나 농업동맹(現 중앙당) 지지로 선회했다.

1958년, 핀란드 사회민주당의 제3차 파게르홀름 내각이 출범했을 때 라푸아 운동 초대 총재 비흐토리 코솔라의 장남 닐로 코솔라가 농무장관으로 입각하자[10] 소련이 이것을 문제삼으며 단교 직전까지 가는 꼬장을 부렸다. 이 때 핀란드 농업동맹(현 핀란드 중앙당) 소속 대통령 우르호 케코넨이 파게르홀름 총리를 실각시키고 레닌그라드에서 "우연히" 만난 니키타 흐루쇼프와 독대하여 "오해"를 풀면서 사태를 해결했다. 이후 사회민주당은 한동안 입각을 못하다가 1966년쯤 가서야 다시 총리를 배출할 수 있었다.[11]

냉전이 끝난 1993년에 IKL 이름을 내건 정당이 부활했지만, 원외 군소 정당일 뿐이다.

6. 주요 관련자


[1] 루터교 교권 파시즘 성향이었다. 당연히 친나치였지만, 찐 나치 집단은 SKT라고 또 따로 있었다.[2]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매우 보수적인 편이라 중앙당과 국민연합당, 핀란드 기민당 지지율이 높고 사민당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3] 북서해안의 도시로, 공업이 발달해서 내전 때도 포흐얀마에서 유일하게 적군 편을 들었다. 오늘날에는 북포흐얀마주에 속한다.[4] 농민당 소속이었다.[5] 스빈후부드는 율사 출신으로 "법을 준수하는 것"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내전을 거치며 급속히 보수화한 것도 좌파의 "불법"에 분노해서라고 하니... 내전 전후의 불법은 우파가 먼저 저질렀다는 건 잊은 모양[6] 1922년에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 대통령이 내전기 좌익사범 대사면령을 내리자 일부는 핀란드로 귀국했지만 일부는 귀국을 거부하고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7] "이코앨"이라고 읽는다.[8] 파시키비는 핀란드 대공국 시절에는 총독부에 협조하자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때는 스빈후부드가 헌법수호를 외치는 호헌파로서 파시키비보다 진보적이었다.[9] 코솔라는 1936년 주벽 때문에 쫓겨났고 술병으로 죽었다.[10] 국민연합당 소속으로 연정에 참여했다.[11] 파게르홀름 실각 이후 공백을 깨고 다시 총리 자리에 올랐던 사민당원은 다름아닌 마우노 코이비스토(Mauno Koivisto, 1923~2017)인데, 그는 훗날 케코넨이 죽고 나서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았고, 당시까지 대통령제에 가까웠던 핀란드의 이원집정부제를 내각책임제에 가까운 형태로 개혁했다.[12] 마르틴 루터카를 마르크스의 모교[13] 파시즘은 반공이면서 동시에 반자본이기에 당연한 것이다.[14] 야구와 비슷한데 루가 세 개라서 삼각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