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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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
{{{#!folding [ 열전(列傳) ]
}}} || 고구려의 장수 밀우 | 密友 | |
<colbgcolor=#191970> 주군 | 동천왕 |
관등 | 구사자(九使者) |
부족 | 동부(東部) |
봉토 | 거곡(巨谷), 청목곡(靑木谷) |
이름 | 밀우(密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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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금 추격하는 병사가 긴박하고 도망치기 불가합니다. 신이 죽음을 결의하고 막을테니 임금께선 피하십시오."
"今追兵甚迫 勢不可脫. 臣請決死而禦之 王可遁矣."
추격병을 결사대와 막으며 한 말.
"今追兵甚迫 勢不可脫. 臣請決死而禦之 王可遁矣."
추격병을 결사대와 막으며 한 말.
고구려의 장수. 동부(東部) 사람이며 동천왕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로, 위의 장수였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해 왔을 때 용감히 싸워 위기에 처한 동천왕을 구했다.
2. 생애
246년, 고구려를 침략해온 관구검의 군대에 의해 수도 환도성이 함락당하자 동천왕을 호위하며 남옥저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위나라의 장수 왕기가 추격해오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추격군을 막아 동천왕을 무사히 피신시켰다.결국 밀우는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적들에게 포위당하여 부상을 입었지만, 밀우가 적을 막는 사이에 동천왕은 산과 계곡으로 숨어들어가 그 곳에서 다시 군사를 조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였다. 동천왕은 어느 정도 힘을 되찾자 유옥구(劉屋句)를 보내서 밀우를 구출하도록 하였다.
동천왕은 부상을 입은 밀우를 직접 자신의 다리에 눕혀 보살폈는데, 밀우는 이런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덕분인지 의식을 차리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밀우는 자신이 왕의 다리에 뉘었다는 사실에 놀라 동천왕에게 사죄했으나 동천왕은 오히려 밀우를 칭찬했다. 전쟁이 끝난 후 거곡(巨谷)과 청목곡(靑木谷)을 하사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활약한 유유와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인 충신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삼국사기 열전에도 유유와 함께 열전이 실려있다.
3. 대중매체에서
삼국전투기에는 태왕북벌기의 인물로 등장한다. 처음 등장한 비류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비류 전투에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반영되었기에 동천왕이 "밀우... 자네의 희생, 내 절대 잊지 않겠네.."라 할 때 나와서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만?"이라며 쩔쩔매는 게 개그.비류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동천왕이 요동 공략을 결심하고 서안평을 공격하라고 명하자 고구려의 선봉으로 출격해 간단히 서안평을 점령했다. 이후 관구검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는 왕기의 추격대를 결사대를 이끌고 막아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