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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북한 코로나 대유행에서 넘어옴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국가별 대응/아시아/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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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과 · 반응 · 향후 전망
국가비상방역사령부
보건성 (국가위생검열국 / 중앙위생방역소)
2022년 북한 코로나 19 대유행
파일:북한 코로나 대유행 이미지.jpg
<colbgcolor=#ED1C27,#333333><colcolor=white> 발생기간 2022년 4월[1] ~ 8월 10일[2][2차?]
발생장소 북한 전 지역
유형 전염병
(SARS-CoV-2의 변이 'BA.2')[4]

<colbgcolor=#ED1C27,#333333><colcolor=white> 공식 대한민국의 대북 전단에 묻은 바이러스[5]
추정 ✔ 국경 개방 이후 중국과의 교류 회복
대규모 열병식 및 전국단위 인원 대이동
✔ 느슨해진 방역 조치
백신 등의 대북 지원 거부



사망 74명[공식] (확진자 대비 치명률[7]: 44.0%)[8][9]
(2022년 8월 4일[10] 06시 기준)
확진 168명[공식]
(2022년 5월 16일 기준)[12]
발열 4,772,813명[공식][14]
(2022년 8월 4일 06시 기준)
방역기관 국가비상방역사령부
방역체계 긴장강화된 정상방역체계[15] → 방역 완화[16]
1. 개요2. 원인
2.1. 북한측의 주장2.2. 추정되는 유행 원인
2.2.1. 인도주의적 백신 지원 거부2.2.2. 일시적인 봉쇄 조치 해제2.2.3. 2022년 4월 열병식
3. 경과4. 반응5. 향후 전망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2022년 5월에 시작된 북한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에 대하여 다루는 문서.

대유행 초기부터 2022년 4월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성공적인 방역정책과 김씨 일가의 영도 덕에 단 한 명의 비루스(바이러스) 환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자화자찬을 하며 외부와의 교류를 완전히 단절해왔다. 그 사이 북한이 어떤 대처를 해왔는지와 북한 외부 정치권의 반응 및 그에 대한 동기 등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국가별 대응/아시아/북한 문서를 참조할 것.

북한이 발표한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르면, 확진자에게서 오미크론 변이의 일종인 BA.2 변이[17]가 검출되었다고 한다. 기사(뉴스1)

이에 따라 북한의 조선로동당 총비서김정은은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는 표현을 쓰며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기사(문화일보)

2. 원인

2.1. 북한측의 주장

북한측 주장으로는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18]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2022년 4월 초 18세 군인과 5세 어린이가 '색다른 물체'와 접촉하며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 돌려 말한것이지 사실상 대북전단이 최초 발원지라고 지목한 것으로 해석된다. #

대한민국 통일부는 즉각 반박했다. # "우리 측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북측이 최초 접촉 시기로 언급한 4월 초보다 늦은 4월 25일과 4월 26일"이며, "물체의 표면에 잔존한 바이러스를 통한 코로나 감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질병관리청 등 관계기관 및 전문가 그리고 WHO 등 국제기구들의 공통된 견해"라면서 "물자나 우편물 등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증된 사례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2. 추정되는 유행 원인

북한은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부터 국경을 틀어막아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의심 환자 발생시 중국과 유사한 양상의 봉쇄를 함으로써 확진자 제로를 달성했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해외와의 교류 없이는 자국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으며 전세계적인 대북제재로 돈줄이 끊긴 북한은 특히나 외화벌이에 절박한 만큼 언젠가는 국경을 다시 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국면별 방역 전략을 짜지 않고 시종일관 제로 코로나에만 집착하다가 출구전략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 우한 야생종부터 오미크론 변이까지 코로나-19는 병원성이 약해지고 있지만 그에 반비례해서 전파력은 홍역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다른 나라들은 백신이 나올 때까지 초과 사망자수를 최대한 줄이는 수준에서 방역을 강화했고 백신뿐만 아니라 치료제가 등장한 현 시점에서는 방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가며 일상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19]

반면에 외부의 위협을 과장하는 동시에[20] 코로나-19를 박멸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무시무시하다는 위협에 '대응'할 자력갱생을 달성할 수령의 지도력을 선전하는 명분으로[21][22] 콜드체인 관련 설비를 포함하여[23] 외국에서 생산되는 백신을 거부했던 북한은 국경 봉쇄에만 의존하다가 끝내 사회공학적인 이유로 봉쇄를 풀어야만 했다. 결국 자신들의 땅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정도로 치부되던 코로나 대유행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북한은 중국과의 국경을 개방하고 나서 4월 열병식을 기점으로 다른 나라가 팬데믹 기간 동안에 걸쳐 나왔던 수준보다 훨씬 더 많은 환자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수는 북한 당국이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으나 해외의 사례를 대입하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뒤늦게 개인 방역까지 강화했으나 코로나-19가 더 이상 물리적 거리두기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정도로 진화한 상황이라 그러한 조치들이 무의미했다.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영양 상태가 부실하고 면역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인데 열악한 의료체계와 맞물려서 북한 당국은 코로나-19를 거리두기만으로 막아낼 수 있는 존재로 오판하다가 대재앙을 자초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방역의 역설이라고 한다.

전염병의 완벽한 퇴치만이 방역의 목적이 아니다.[24]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확진자 수 증가를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면역을 통한 출구 전략이 가능한 시기까지 의료체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방역만으로는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코로나 대유행도 그렇고 상하이 봉쇄 사례와 더불어 면역 전략을 떼어놓고 방역만으로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백신의 도움 없이는 감염을 통한 주기적인 집단면역은 불가능하고 출구 전략을 시도할 수도 없다. 북한은 대증요법에는 의존하면서 백신 접종을 끝까지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위중증률이 낮은 돌파감염을 통한 혼합 면역을 달성하지 못했다. 다만 보건의 측면이 아닌 정치 측면에서 고려하면, 많은 사람들이 숨져도 이미 다른 질병으로도 사람이 많이 숨지는 열악한 조건에 질병으로 앓는 것을 신경쓰지 않은 사람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굳이 외부 백신을 들여와 외국, 남한의 보건이 뛰어나다는 것을 각인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는 있다. 외부처럼 백신을 맞추지 않아도 나라가 돌아가게 보이는 것이 수뇌부 압장에서 이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오미크론 변이는 백신 접종에 의해 치명률이 낮아졌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만큼[25] 북한이 미접종 감염을 돌파감염으로 치환하지 못한다면 온실 면역 현상이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며 북한에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출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나마 단순 오미크론 변이의 하위 변이라면 치명률이 어지간해서는 낮게 유지될 것이니 문제될 것이 없으나 유전자 변이가 많이 일어나 기존 오미크론 변이와 아예 결이 다른 변이가 등장할 경우 제로 코로나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는 북한과 중국에서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26] 오미크론 다음의 문자를 쓰는 파이 변이가 북한에서 새로 발생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27][28]

2.2.1. 인도주의적 백신 지원 거부

문재인 정부가 6천만 도즈의 미국제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해도 답을 안 하거나, 일단 미국 백신을 받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설비 개선 지원은 '방역에 방해가 된다'고 무시하는 식으로 백신을 받지 않았다. 설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국정원 산하 연구원이 북한이 설비 개선 지원은 방역에 방해가 된다고 북한이 밝혔다는 것이다. A 때문에 백신 안 받겠다고 하기에 A를 들어주면 사실 B 때문에 안 받는다고 하는 식이다. 게다가 북한은 백신 보관 설비가 없어서 백신을 안 받았던 것도 아니고 그 설비를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고의로 거절하는 행태를 보였다.

결국 2021년 유엔총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북한 측에 "코로나19 백신을 적시에 공급·배포할 수 있도록 협력하라"고 요구했다. # 조선신보는 이런 탄압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왁찐[29]은 별 효과가 없다며 '이자들의 더러운 머리를 소독액에 처박아야 한다'는 상당히 과격한 표현을 쓸 정도로 외국의 지원을 극도로 적대시했다. #

2.2.2. 일시적인 봉쇄 조치 해제

북한은 약 2년간 강력한 국경 폐쇄와 락다운 조치를 하며 코로나 청정국의 지위를 오랫동안 주장했지만,[30] 경제난과 주민들의 불만에 직면하자 결국 중국과의 무역을 재개하고 봉쇄 조치를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봉쇄는 필연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원천인 장마당을 규제할 수밖에 없고, 일각에서는 코로나를 빌미로 정권에 탐탁지 않은 장마당[31]을 '방역'의 구실로 더 강하게 규제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북한의 배급제 시스템은 90년대 이후로 붕괴된 이상 봉쇄에 직면한 주민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생활하게 된다. 봉쇄 기간 동안 아사자가 속출했다는 내부 소식통의 증언도 있었으니 체제동요와 불만은 당연히 야기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초부터 중국 내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북한 내에서는 중국 상인과 거래하던 북한 무역간부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고 그가 자신의 친척과 밀접접촉하다가 옮겼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32] 해당 간부의 조카가 열병식에 참여했고 이것이 북한 오미크론 대유행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 #

2.2.3. 2022년 4월 열병식

2022년 4월 25일에 수만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과 그에 이은 전국 단위의 인원 대이동이 유행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는 견해이다.

특히 열병식 이후 지휘관들과 연회를 열고, 김정은이 수만 명에 달하는 참가자 전원과 다닥다닥 붙어서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김정은이 참가자들과 찍은 1호 사진만 57장에 달할 정도이다.

북한, 그것도 평양에서 이런 규모로 사람이 모인 경우는 4월 말부터 이어진 정치적 행사 뿐이어서, 성향에 무관하게 동아일보한겨레 등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이런 행사가 발병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국가정보원도 이 열병식을 계기로 북한 전역에 코로나 대유행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조선중앙텔레비죤에 출연한 류영철 국가비상방역사령부 대변인이 '4월부터 유열자가 급증하고 있었다.'고 언급하면서 열병식이 불난데 기름부은 꼴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3.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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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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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향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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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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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 북한 공표 기준. 북한 정권2022년 5월 12일에 대량 감염 사태를 공표하였는데, 동시에 4월 말부터 '원인 모를 열병'이 발생했었다고 언급하였다. 데일리NK, 아시아프레스처럼 공표 이전에도 몇 번 '비교적 약하게' 유행한 적이 있어도 나름의 통제를 해왔지만 5월이 되자 통제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는 견해, 북한 의사 출신 최정훈 연구원처럼 오히려 통제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발병이 공표되었다는 견해, 탈북민 출신 주성하 기자처럼 제로 코로나 자체만 놓고 보면 사실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 대남발원설을 주장할 때는 4월 초부터라고 주장하였다.[2] 김정은은 악성전염병(코로나19) 위기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주장했다고 한다.[2차?] 2022년 8월 23일량강도에서 발열자 4명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지만, 곧 독감이었다는 추가 발표 후 상황 종료했다. 북한 소식통과 연락하고자 하는 데일리nk, 자유아시아방송, 아시아프레스 등은 8월 말 기준 5월보다 병의 기세가 잦아들긴 했지만 실제 코로나 의심환자는 더이상 북한 당국이 코로나 환자로 공표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추정을 하였다.[4] 유일하게 언급된 변이의 이름일 따름이지 이 변이가 확산된다는 북한 당국의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전파력이 강한 특성,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됨을 언급하는 북한 언론의 설명 등의 이유로 이 변이가 북한에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의견이 있었다.[5] 북한은 "4월 초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 주민의 '색다른 물체'와의 접촉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살펴봤을 때, '무생물인 바이러스가 오랜 시간 잔존해있다는 건 비상식적인 주장이라는 것'이 중론이다.[공식] 북한의 공식 집계 기록.[7] 사망자 ÷ 확진자 × 100(%)[8] 북한은 PCR 검사 능력이 남한의 1%가 채 안 될 수준으로 열악한 만큼 애초에 일일 검사의 횟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유열자와 확진자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여 비정상적으로 높은 치명률이 집계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착시 효과를 반영해도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감안하면 실제 치명률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세계 평균치보다 더 높게 나올 것이다.[9] 만일 저 치명률이 실제 그대로라면 전염성이 기존과 그대로일 경우 흑사병 수준의 대재앙이다.[10] 이 이후 한 명의 사망자와 '유열자'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공표되었다.[공식] [12] 16일 오전에 14일 오후 6시까지의 확진자 수를 언급했다.[공식] [14] '유열자'의 수. 실제 단어 뜻도 한자를 보면 열이 있는 사람만을 지칭한다. 오미크론 변이는 발열 이외의 증상이 있을 수 있고, 확진자와도 유열자를 북한이 구별 중이므로 유증상자, 확진자와 별개의 표현이다.[15] 2022년 8월 10일부터 적용. 5월 12일 '최대비상방역체계'보다 낮은 단계로 보인다.[16]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2023년 8월 27일부터 '세계적인 악성 전염병 전파 상황이 완화되는 것과 관련하여 방역 등급을 조정하기로 한 국가비상방역사령부의 결정'으로 해외 북한 국적자의 귀국이 승인되었다고 한다. #[17] 일명 스텔스 오미크론.[18] 대한민국 헌법 상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이포리.[19] 심지어 공공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대한민국도 2022년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공식 해제했고 동년 5월 2일에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풀었다.[20] 조선중앙TV는 진지하게 철새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코로나를 전염시킨다며 주민들에게 겁을 주었다. # 이런 병을 막기 위해서는 당국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국가정보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허가받지 않은 무역이 적발되면 교역된 물품이 코로나를 옮긴다며 강하게 처벌했다고 한다. # 그동안 북한 당국은 이러한 한국산 물품 등이 거래되는 밀무역을 대단히 싫어했다.[21] 가령 2019년에는 "(외세) 의존은 쉽고 일시적인 향락도 누릴 수 있지만 인민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국력을 쇠퇴몰락시키는 사약과 같다."는 식의 주장으로 외세가 지원을 빙자한 위협을 주고 있으니 지원을 바라지 말라는 글이 노동신문에 실리곤 했다. # 일각에서는 외부 지원 자체가 '자본주의'의 열등함을 주장하는 선전의 허구성과 북한 정권의 무기력함을 나타내어 '정신무장'을 약화시키는 증거가 되므로 지원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22] 사실 북한 전문가도 북한은 방역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보건 지식이나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동기를 정치학이나 권력에 대한 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이하는 선택지가 남게 된 것이다.[23] 문재인 정부가 이것도 지원할 의향이 있었으나 '방역'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밝혔다.[24] 천연두 퇴치와 사스의 사례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는 부분이다. 천연두 퇴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며 사스는 말 그대로 그냥 혼자 사라진 거지, 방역으로 퇴치된 게 아니다. 2009년 전세계를 뒤덮었던 신종플루도 완전히 퇴치된 것은 아니고 평범한 감기 수준으로 약화된 것이다. 코로나19도 신종플루처럼 완전히 박멸되지 않고 엔데믹화될 것이다. 다만 천연두나 에볼라의 사례처럼, 치명률이 극단적으로 높고 감염성이 낮거나 효과적인 백신이 존재하는 질병들은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 떨어지면 완전 퇴치가 가능할 수도 있다.[25] 다만 무조건 백신 접종으로만 낮아졌다고 보긴 어려운 게, 치명적이었던 델타 변이가 유행하던 시절까지 사망자가 많이 나왔던 남아공에서도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면서 치명률이 낮아졌는데 정작 남아공은 백신 접종률이 매우 낮은 지역이기 때문이다.[26] 그래서 전세계가 북한을 싫어해도 백신만큼은 어떻게든 그들에게 지원하려고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정치적 동기로 반대 여론이 좀 있는데, 오히려 실제 정계에서는 북한 당국이 백신 미접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행태 등을 이유로 대북 강경파도 백신 지원을 하려고 하기에 보수층보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백신 공여 반대가 더 심하다.[27] 일각에서는 북한은 전염병이 대규모로 유행하지 않는 평소에도 전세계에서 주민들의 자유로운 국내외 여행이 가장 억압 및 통제받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파이 변이의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이미 최근에도 북한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준 바 있고, 말라리아도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 때문에 제대로 된 방역을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사람을 통해 전염된다지만 북한도 아예 무역을 중단하면 국가가 멸망하기에 중국과 교역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 오미크론 변이가 고기잡이까지 제대로 못하게 할 정도의 봉쇄를 자랑하던 북한에서 유행하게 된 것이다. 최악의 상황으로는 종간 전파가 일어나는 변이까지 고려가 가능하다. # 적반하장으로 중국 단둥시가 북한발 코로나를 의심하여 봉쇄를 강화하여 중국 경제,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28] 문재인 정부가 백신을 지원하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안보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탈북자, 외국인 행세를 하며 간첩을 내려보내는 추세인데, 정상적인 입국을 하는 방식으로 침투하므로 조기에 방어하기 매우 어렵고 (차라리 잠수함 등을 통해 침투하게 되면 군사작전을 통해 적을 사살하면 되기 때문에 매우 쉽다), 남파 간첩에 의해 파이 변이가 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29] 북한에선 백신을 독일어 표기인 '왁찐'으로 표기한다. 조선말대사전은 어원을 'Vakzine'이라고 명시하였다.[30] 문재인 정부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장관 재직 시절 이를 믿기 어렵다고 하자 '주제넘는 평'이라는 등 김여정의 막말이 있기도 하였다. #[31] 북한에서는 '시장'의 운영을 잘 선전하지 않는다. 조선신보는 이러한 통제에서 벗어나는 경제활동을 "임시적이며 과도적인 체계와 질서"로 칭하기도 하였다. #[32] 단순 밀무역상은 아주 민감하게 여기며 근절에 나선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