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광
안동시 홍보영상 |
매년 9월 하순부터 열흘 가량 개최하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유명하다. 다만, 경주시와 같은 유명 관광도시에 비해서는 아직 인지도가 부족하다. 그리고 관광수요에 비해 숙박시설이나 레저시설 같은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어서 성곡동에 안동문화관광단지를 조성 중이다. 비즈니스 호텔, 골프장, 식물원 등이 건설되었다.
그 외 유명한 관광명소로 안동구시장에 있는 찜닭골목, 갈비골목(음식의 거리), 안동댐, 학가산(+온천), 청원루 등이 있다.
1.1. 하회마을
하회마을 |
하회마을에는 풍산류씨인 서애 류성룡과 그 형 겸암 류운룡[1]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 주변, 즉 마을 또한 조선후기 이후로 개축하지 않아 겉모습은 조선시대와 같다. 즉 주민이 사는 민속촌으로 주변에 다른 집들에서 민박도 가능하지만 민박집 주인들이 괴로워 하기도 한다.[2] 특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이 다가오면 그 기간 동안은 아주 난리난다.
또 하회탈로 유명하기 때문에 탈 관련 콘텐츠도 다양하다. 각종 하회탈 및 기타 민속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1.2. 도산서원
도산서원 |
안동시내에서 들어갈때는 567번 버스를 탈 수 있는데, 567번 중 도산서원을 경유하는 버스는 약 1시간 ~ 1시간 30분 간격의 배차간격을 갖기 때문에 타기 전에 기사에게 물어보거나 사전에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출발 시간은 안동역을 기준으로 한다.
경치와 내부 구조가 아름다우면서도 소박한 곳이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서원으로 현판은 한석봉이 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과거 있던 진품들 대부분이 한국국학진흥원에 보존되어 있고, 현재 도산서원의 구조물 외에는 대부분 재현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1.3. 병산서원
병산서원 |
1.4. 봉정사
봉정사 |
1.5. 월영교
월영교 |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를 복원한 것이다. ‘월곡면’과 ‘음달골’이라는 옛 지명을 고려하여 월영대라고 하였다.
월영교는 연인들 사이에서 제법 이름난 명소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면 영원히 사랑이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1998년 고성 이씨 문중 이응태(1556∼1586)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원이 엄마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때 관에는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한 켤레와 복중 아기의 배냇저고리도 함께 있었고 당시 편지와 유품들이 발견되었다. 이응태의 부인 원이 엄마는 병든 남편의 쾌유를 기원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한 켤레 만들었다. 그러나 아내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서른 한 살의 이른 나이에 작고했다. 이에 슬퍼하며 원이 엄마가 쓴 편지이다.
1.6. 만휴정
만휴정 |
1.7. 고산정
고산정 |
정자 안에는 이황, 금난수, 이휘응 등의 시판이 걸려있다.
만휴정과 더불어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정자이다.
1.8. 낙강물길공원
낙강물길공원 |
숲속 곳곳에는 벤치가 있으며 잔디광장도 있다. 그리고 숲속 쉼터에서 조금 더 언덕 쪽으로 올라가면 낙동강과 월영교, 안동시가지까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인 ‘안동루’도 있다.
1.9. 부용대
부용대[4] |
1.10. 전탑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쌓아올린 형태의 탑. 국내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는 종류의 탑이며, 대다수가 안동에 있다. 안동에 이렇게 전탑이 밀집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으며 그 중 최근에는 안동 주변의 토질이 전탑의 재료인 벽돌을 만들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다른 가설은 바로 풍수지리. 낙동강을 타고 빠져나가는 안동의 기운을 모으기 위해 이곳저곳 세워두었던 것을 마을에서 보수해가며 보존하여 쭉 이어져온 것이다. 이 설에 의하면 전탑은 자연환경과 사회의 결속력이 한데 어우러져 내려온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전탑은 다음과 같다.-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 옆
- 보물 제56호 안동 운흥동 5층 전탑 : 안동시 운흥동 舊 안동역 앞
- 보물 제57호 안동 조탑리 5층 전탑 :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안동시내에서 의성 방면으로 가다 남안동IC 방향.
1.11. 낙동강변
낙동가람 경관초화단지 |
1.12. 안동구시장
안동구시장은 조선 후기에 형성된 안동장의 명맥을 잇고 있으며, 해방 이후 증가하는 인구와 활발한 교역으로 지금에 이르렀다.안동구시장의 대표 먹거리는 ‘안동찜닭’이다. 찜닭골목이 있으며 많은 찜닭집들이 운영하고 있다. 물론 안동구시장 외에도 안동시 군데군데 맛있는 찜닭집이 많이 있다.
그 외에도 안동의 특산품 간고등어, 떡볶이, 튀김, 순대, 어묵, 도너츠, 꽈배기, 강정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다.
또한 안동구시장 부근 문화의 거리에는 찜닭만큼 유명한 ‘맘모스제과’라는 빵집이 있다.
1.1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공식홈페이지안동에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축제로 매년 국·내외 탈춤 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1997년 10월 처음 열렸으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대한민국 '명예' 대표 축제로 지정되어 있다.
주로 9월 마지막주 금요일부터 10월 첫째주 일요일[5]까지 10일간 개최되며[6][7] 개최 장소는 안동 운흥동 낙동강변과 하회마을이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를 비롯하여 한국에 전승되는 전통탈춤 공연들, 세계 각지의 탈춤과 민속공연,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 등이 주요 행사 내용이다. 축제 기간 동안 행사장 주변에는 약 50개의 행사부스가 설치되며,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행사가 많은 편이기에 자녀 동반 관광객들이 찾기 좋다.
탈춤 공연장에서는 시간별로 다양한 국가의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데 그 중 동남아와 러시아 팀의 공연이 백미다.[8]또 차전놀이[9]도 하는데 관광객들은 저게 뭐지? 하고 촬영하기 바쁘지만 지역 주민들은 미취학아동이면 모를까 큰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10]
1.14. 안동국제컨벤션센터
2022년 8월 31일 개장한 안동시의 종합 전시장(컨벤션센터)이다.1.15. 기타
- 임청각: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고택이며, 중앙선 철로로 훼손된 이후 복원에 들어가서 잘 알려졌다.
- 이육사문학관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 한국국학진흥원: 한국학 3대 연구소답게 전시장이 크며 유교문화 관련 문화재가 대부분.
2. 음식
2.1. 전국구급 명물
- 간고등어 : 다른 지역에서도 간고등어 하면 안동부터 떠올릴 정도로 유명하다. 다만, 안동은 내륙인지라 고등어 산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가공 방법 덕에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된 특이한 경우에 해당된다.
- 안동찜닭 : 안동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20개 가량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여기서 먹는 찜닭 맛은 별미. 1박 2일에서 다녀간 후 찜닭 가격이 많이 올라 안동 시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 가운데 학생을 비롯한 방문객들이 선호하는 가게는 따로 있다고 한다.
- 안동소주
- 헛제삿밥
- 건진국수(안동국시)
- 안동식혜 : 우리가 흔히 아는 희고 단맛이 나는 식혜가 아니다. 생강, 무, 고춧가루 때문에 뻑뻑하고 매운맛이 나서 타지인과 젊은 지역민들에게는 시각과 미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덕분에 지역민 중에서도 싫어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싫어하지만 '맛없는데 은근히 끌린다'라는 특이한 경우도 있는 듯. 만드는 게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서, 안동 사람들도 원래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11]
- 안동문어 : 안동 중앙신시장에 안동문어를 판매한다. 전국 문어 소비량의 40% 이상으로 문어의 최대소비처가 안동이라고 한다. 문어는 한자로 문어(文魚)인데 ‘선비가 먹는 물고기’라고 한다. 선비문화가 깃든 음식문화로 정착했다.
- 빵
- 맘모스베이커리 : 2010년 미슐렝 가이드가 선정한 한국의 맛있는 빵집 3곳 중 하나이다.[12] 여기가 얼마나 유명하냐면 안동에 던킨도너츠가 들어왔다가 폐점할 정도였다.[13] 분점도 있으며 송현동 송현오거리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분점은 리모델링 이후 빵의 종류가 많이 줄어들었다. 빨리 매진되므로 6시 이전에 방문을 추천.[14] 송현동에 있는 빵집은 본점의 빵과는 다르게 호밀빵류의 건강빵을 주로 취급하는데 보통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간식으로서의 ‘맛있는’ 빵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15] 물론 이전에 팔던 빵도 취급하지만, 보편적인 의미로 맛있는 빵을 찾는다면 본점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다. 추천 메뉴는 시그니쳐인 크림치즈빵[16], 단팥빵, 블루베리빵, 유자파운드. 다만 안동시민들은 맘모스제과를 동네빵집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으며 안동 살면서 그렇게 유명한 곳 인줄 몰랐다는 반응도 있다. 실제 안동에서 주말시즌 길목에 손님이 줄을 서는 거의 몇 안되는 집이다.
- 그 밖에는 하회탈빵과 참마빵, 참마를 넣은 카베츠 크레이프도 있다.
- 초콜릿
2.2. 기타
시내에 있는 갈비골목과 풍산읍 한우불고기, 안동댐 뒷편 동악골의 매운탕이 유명하다. 동악골에는 매운탕집이 밀집해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매운탕이 상당히 맛있다. 일부 식당은 매운탕 외에 닭도리탕을 하기도 하는데, 닭도리탕 역시 수준급의 맛을 자랑한다. 풍산읍에서는 저렴하게 한우를 맛볼 수 있다.시청 앞의 물고기식당에서는 독특한 은어 조림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주인 할머니가 욕쟁이로 유명하시니 독촉 등의 행동은 삼가자. 신시장 골목 내의 옥야식당은 소고기(+선지) 국밥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도 칼국수, 메밀묵밥, 냉우동(냉국수)도 별미.
찜닭 골목을 끼고 안동초등학교 방면 금방거리 면으로 접어들면 막창골목이 들어서있다.
포항ㆍ영덕ㆍ울산 등 경상도 해안 지역처럼 간고등어와 방어, 돔배기(상어고기)를 꼬치에 끼워서 팔기도 하며, 문어도 많이 소비된다.
3. 유교적 전통의 문중
안동은 역사가 장구한 고장인만큼 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중요도도 높았지만 가장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유교의 고장이 된 조선 시대 때부터일 것이다. 종가, 가문, 족보, 색목(色目)[18] 같은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불과 1960~1970년대만 해도 머슴 살던 집 자식, 반가 자손, 마름집 등등 대놓고 전근대적인 구습이 가시지 않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시내는 좀 덜하지만 도산면이나 풍천면 같은 곳으로 나가면 아직도 종갓집, XX김씨 XX세손, 족보 같은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있다.[19] 집성촌 또한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편이며, 심지어는 집성촌이 아니더라도 시내에서라면 어느 동 무슨 씨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라고 하면 누군지 금방 알 정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런 유색(儒色)이 강한 것은 영남이 남인 색목이었고, 이들이 갑술환국 이후 몇몇 가문을 제외하면 중앙정계에서 사실상 밀려났기에 향전(鄕戰)에 힘쓰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극도로 보존해왔기 때문인 것으로도 생각된다. 이 때문인지 안동은 전국 반촌 중 종가 고택이 가장 많아 남아 있는 지역으로도 거론된다. 양반 가문이라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기라성 같은 인물이 배출된 기호 지방이나 호남 어딜 가도 이만큼 종가와 종택이 이어지고 고택이 많이 남은 곳이 없다. 심지어 퇴계 이황 고택은 있지만 율곡 이이 고택은 북한 해주에 있다. 종부도 계시지만 종택은 2009년 기준 일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였다. 남명 조식도 남명학파라는 하나의 학통을 만들 정도였지만 남명 종택도 종부도 실전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독특하면서 대단한 지점.안동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은 진성 이씨고, 다음이 풍산 류씨, 의성 김씨 등으로 여겨진다.[20] 이하 순위부터는 타 문중에서 논란이 많거나, 혹은 큰 관심이 없다. 사실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면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안동 권씨나 안동 김씨가 전국적으로도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양반사회의 등급[21]을 기준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지며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 조선 최고 양반가문의 기준을 생각할 때 민가(民家)에서는 으레 세도정치를 해야 하느니 문과 합격자 수가 많느니 정승 판서나 당상관 내지 대제학, 왕비를 많이 배출하느니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지만, 원래 나라를 대표하는 국반(國班)의 기준이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도통(道通)을 잇는 대유(大儒)로서 성균관 문묘에 그 신주가 모셔진 국불천위(國不遷位)를 배출했는지가 으뜸이며, 다음이 조선의 왕통(王統)을 상징하는 종묘에 각 왕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정치가(내지 권세가)인 배향공신을 배출했는지 여부이다. 아무리 문형(文衡)이니 대제학을 많이 배출한다한들 문묘 종사 대현(大賢) 배출 가문에 비할 바 아니었으며, 보국숭록대부 이상의 정승들이 많이 난다한들 종묘 배향공신이 되는 것만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묘 종사에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이는 조선 최고 영예를 안은 사람으로서, 학문적으로 성리학의 대가이자 정치적으로는 과거에 급제해 고관대작을 지내면서 훈구파나 사림 내지는 각 붕당이나 세도가문을 영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수라고 할 수 있다.[22] 조선시대 이 최고 영예를 안은 사람은 단 6명 뿐이며,[23] 영남 지방에서 이 6대 국반에 드는 가문은 회재 이언적의 가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경주시의 여강 이씨, 그리고 안동시의 진성 이씨인 것이다.
두 번째, 어차피 안동에서 유명한 집안은 대부분 남인 색목이자 이언적의 학설을 지지하고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가문들인데, 앞서 언급한 진성 이씨 외의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는 퇴계의 3대 고제(高弟)들이면서 선조 대의 명신들인 류성룡과 김성일의 가문이며,[24] 갑술환국 이후에도 영남 남인에서 두드러지는 과거 합격자(문과나 사마시 포함) 수는 물론 상당수 당상관을 배출한, 당대 영남을 대표하는 격조 높은 도반(道班)인지라, 혼인을 많이 맺어 건너 건너다 보면 이들과 사돈지간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풍산 류씨의 집성촌인 하회마을은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서애 류성룡이 조선 5대 재상의 한 명이었으며, 정경세 등 그의 제자들이 영남학파의 한 맥을 이었음은 물론, 그의 사후 영남에서 재상이 배출된 것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밀어준 서애 후손 좌의정 류후조가 유일하다.(단, 류후조는 상주시의 우천파) 의성 김씨는 학봉 김성일이 퇴계 이황의 적통으로 인정받아 그의 제자들이 사실상 영남사림을 주도하였고, 이 가문에서 상당히 많은 당상관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의성 김씨는 안동 천전파(김성일 등 청계 김진의 다섯 아들 계열) 외에 상주시의 김우굉 계열, 인종 배향공신인 김안국 등으로도 원래 유명했다. 명문 가문들은 끼리끼리 혼인해서 사실상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를 혼반(婚班)이라 하는데, 이들 세 가문이 안동이나 영남 지방에서 혼반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고 표현되며, 이들 가문 중에서도 (파)종가이거나, 천석지기거나, 사마시 이상에 합격해 관직을 지내거나, 학덕이 높으면 영남에서 역시 '가장 높은 편'인 다른 가문의 그러한 가정과 혼인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안동시에는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가문이 제일 많다. 현재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25]가 국회의원 및 지방 선거제도 인하여 이들 3성이 득세한다. [26] 안동 김, 권 보다 인구는 작지만 이들 세 가문의 선거 외 영향력은 그에 동등 하거나 오히려 더 세다.[27] 다만 이들 이, 류, 김 문중은 일제강점기 유독 독립운동을 많이 해서 멸절하거나 가문 전체가 와해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 정치 세가 약해진 게 사실이다.[28]
추가로 전주 류씨[29], 재령 이씨[30], 봉화 금씨, 영천 이씨, 광산 김씨[31], 풍산 김씨 등은 인구수와 문중세는 작지만 안동 지방의 전통의 명문가인 향반(鄕班)으로 통한다. 광산 김씨는 유일재 김언기가 학문을 펼치며 당대 퇴계 선생 못지않은 제자군을 거느리고 당대 유향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았다. 유일재 고택 또한 남아 있다. 다만 전란 등으로 유일재의 저작 등이 죄다 소실됐고, 유일재 또한 방계로 퇴계의 제자라고 주장[32] 퇴계 후손이나 그 학맥에서 견제를 많이 했기에 훌륭한 업적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3.1 운동을 주도한 가문이라 존경 받는 문중이지만 댐 건설 등으로 집성촌이 사라져 세가 많이 약해졌다. 특히 전주 류씨[33], 광산 김씨 집성촌은 하회마을만큼 규모가 컸는데, 광산 김씨 집성촌은 기와집이 200여 채나 있을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지만 지금은 안동댐 때문에 수몰되고 말았다.[34] 전주 류씨 집성촌도 임하댐 때문에 수몰되어 선산군(현재 구미시로 통합) 해평면으로 옮겨졌다. 예안 이씨도 있다.그 외 향불천위[35]를 지내는 명문 향반 종가로 한산 이씨, 흥해 배씨, 원주 변씨, 광산 김씨, 풍산 김씨, 능성 구씨, 고성 이씨, 청주 정씨, 횡성 조씨, 진주 하씨 등이 있고, 불천위를 지내지 않는 명문 향반 종가로 순천 김씨, 예안 이씨, 연안 이씨, 청송 심씨, 순흥 안씨, 진주 강씨, 영양 남씨, 단양 우씨, 반남 박씨, 동래 정씨, 예천 임씨, 예천 권씨[36][37] 등등이 있는 것에서 보듯 매우 많은 종가가 존재하거나 했다. 조선시대 경상좌/우도로 나누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안동이라는 지명은 지금의 안동시만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영주시, 예천군, 봉화군, 영양군, 청송군, 의성군, 영덕군 일대를 관할하던 안동대도호부를 말한다.[38] 안동시에도 수십개의 종가가 있는데, 안동 인근의 다른 행정구역까지 포함하면 대략 백 개는 넘는다.
안동 토박이들의 말에 의하면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안동 장씨, 진성 이씨, 풍산 류씨가 아니면 은근히 안동 안에서는 관청이든 사기업이든 인사고과에서 마이너스가 된다는 소리도 있다. 그만큼 문중에 큰 힘이 있는 도시라는 이야기다.[39][40] 그렇다고 무조건 성씨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41] 한때 특정 고교 출신을 더 우대했다.[42]
안동에 있는 대형병원이나 시장, 미장원, 미용실 같은 곳에서 가만히 있어보면 어느 병원에 어느 의사가 우리 종씨고 종파고 하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의사와 같은 종씨종파라고 하는 노인분들은 의사들한테는 가장 피곤한 환자다. 가끔 병원에서 노인분들이 드나드실 때 열리고 닫히는 진료실 문 너머로 보이는 의사의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일 때가 있는데 이 때가 그 때일 확률이 높고 심지어는 학원 원장과 원생이 종씨관계일 경우 대놓고 강사들에게 종씨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더 심한 건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의사와 종씨관계의 경우 의사에게 필요 이상으로 매달려서 병원비 깎아달라거나 더 좋은 약 달라고 소란 피우는 노인분들이 많이 계신다. 2022년 대선 투표 시점으로도 이러한 문중, 가문 운운이 유효한지 "나랑 같은 경주 이씨라서 이재명에게 표를 줬다."라고 인터뷰에서 당당히 고백한 어르신도 계신다. #[43]
지역사회 분위기가 이렇다보니깐 여전히 유교적 정서나 전통 수호 의식이 강하거나, 한국 전통이나 문중 문화에 관심 많은 사람들한테는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천국이지만 반대로 안동 특유의 이런 분위기가 싫은 사람은 치를 떨며 성인이 되자마자 튀어나와 안동쪽으론 얼굴도 안돌리게 된다. 위에도 나온 사실이지만 안동에는 으리으리한 양반 명문가 후손만 사는게 아니라 향리 후손은 물론 종들이나 노비 후손들 까지도 살고 있고, 전국 팔도에서 아직도 이런거 가지고 살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생기는 동네는 안동 말곤 잘 없다. 본인은 으리으리한 양반가 출신이라도 막상 호적이나 가계 찾아 올라가보면 서얼 출신이니, 첩 출신이니 이래서 같은 풍산 류씨, 의성 김씨라도 안에서 차별하고, 급 나누고, 명절 자리에서 불편한 일 생기는건 예삿일도 아니다. 대신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안동 가문들은 진짜 쌓아있는게 많은 집안들이라고 명문가 특유의 넉넉함이나 기풍도 남아 있어 대구, 경산, 구미 같이 경북의 산업 도시들에 비하면 사람들 표정에 여유도 있고 일상 분위기도 덜 전투적인 편이다. 혹시나 저리 여전히 유교적인 분위기의 메이저 지역 문중 출신 안동 출신 친구를 사귀어 그 집에 가게 되면 대접도 전라도 남도 밥상 못지 않게 뻐적지근하고 호사스러운 대접도 기대할수 있다. 관광지화된 지금은 상상도 못할 관경이지만 한 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시대 손닙 접대처럼 사실 안동 인근의 유명 고택이나 종갓집 집주인들은 식견이 있는 외지인[44]들이 자기 집을 흥미롭게 두리번거리고 살펴보면 안으로 들이며 식사도 접대하고 숙박하실곳은 있냐 묻고 재워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안동에 있는 대부분의 문중이 의병,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 관련해서 밝혀진 포상자만 1,000명을 넘는다. 그야 말로 독립운동의 성지.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 하는 타이틀이 절대 무색하지 않다. 또한 언론에 조명이 안되어서 그렇지 경주 이씨인 우당 이회영 집안 만큼 형제, 자손들까지 독립 운동을 한 가문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진성 이씨, 고성 이씨[45], 의성 김씨 문중은 몇 개의 문중 세파가 아예 사라질 정도였다.
2006년, 공자의 직계후손이자 마지막 연성공을 지낸 전 중화민국 고시원장 쿵더청이 타계하였을 때 안동시장 김휘동이 유교 예복을 입고 직접 조문하는 등 안동의 유교문화는 정치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부에서는 체감도, 알 일도 없지만 이런 안동 특유의 지역문화와 극보수성은 의외로 정치적 갈등 봉합에도 도움이 되는게 2016년 촛불 시위와 박근혜 탄핵때 사태의 심각함과 고장의 전통적인 정치적 성향을 생각하면 경북은 뒤집어졌어야 정상이나 안동과 영주, 경북 양대 문화적 중심지의 유림이 먼저 나서서 시국정상화, 대통령 하야 등 일관적인 메세지를 내세우면서 지역민들이 큰 갈등 없이 탄핵과 정권 교체를 받아 들일수 있었다.
4. 의료기관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은 없지만 큰 종합병원들이 있어 도시 규모에 비해 의료서비스가 괜찮은 편이다. 가장 큰 병원은 1052병상의 안동병원으로 병상수만 놓고 보면 대학병원급이다. 안동성소병원도 676병상으로 규모가 상당하며, 그 외 경상북도에서 운영하는 안동의료원(246병상)이 안동시청 맞은편에 있다.5. 방언
안동 권역의 현지인은 사투리를 꽤 사용하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동남 방언(경상도 사투리)에 속하지만 안동권[46]의 언어는 부산 사투리 심지어 대구와는 많이 달라서 가끔 안동에 온 안동권 외의 경북 사람이 외계인 취급받는 경우도 자주 있다.대구나 부산 같은 경상도 남쪽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안동으로 올라오면, 안동 방언이 꼭 강원도 영동지방 방언 같이 들릴 정도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앞에 있는 성조와 억양 탓이다. 의문형의 경우 대구 사투리가 /~능교/(-ㅂ니까)인것에 비해 안동은 /~니껴/(-나이까)[47], 평서형은 /~니더/(-ㅂ니다)[48]라고 한다.[49] 어미도 다른 경상도 사투리와는 차이가 있다. ~고? ~가? 형태의 여타 경상도 사투리와는 달리 안동은 ~로? ~라? 형태를 사용한다.[50] 비슷하게 경상도 사투리의 부정 표현인 아이다~(아니다~)는 안동에서는 아이래~라고 표현된다.
6. 종교
유교의 본향 중 한 곳. 유교, 불교, 민속문화가 어우러진 고장 답게 개신교가 여타 지역에 비해 세를 떨치지 못하는 지역이다. 물론 나름대로 규모 있는 교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안동의 개신교 역사도 꽤 오래 되었고 경북 북부에서는 그래도 개신교인이 많은 편이다. 개신교가 약해서 그렇지 가톨릭까지 합치면 유교나 불교보다 신도가 더 많다.안동에 온 개신교인이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교회 주변에 무당집이 많다는 점이라고.[51] 한때는 분쟁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 또한 대도시 지역처럼 무개념한 전도나 사찰 테러, 땅밟기 같은 무개념한 행위는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땅밟기를 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예 국민일보에 한 목사가 무당집 주변을 땅밟기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힌 바 있다.
안동에서 개신교가 나름 자리를 잡은 것은 개신교 인사들의 신식교육기관 설립도 있었으나 가장 큰 것은 항일독립운동의 노선이 같아서 지역 사회에서 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런 좋은 이야기 같은 거 없다.
경상도인 특징상 불교세가 상당히 강하며, 서울의 조계사, 대구의 동화사, 부산의 범어사 같은 신도가 많으면서 유명한 대형 사찰은 없지만 봉정사처럼 작지만 이름난 절들이 있다. 유달리 잘 무너져서 꾸준한 보수공사 없이는 존재하기 힘든 전탑이 안동에 많이 남아있는 이유도 이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천주교 교세도 나름대로 있는 편이며 천주교 안동교구라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독립된 교구도 존재한다.[52] 1970년대 말 한때 정치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프랑스인 두봉 주교가 초대 교구장을 맡았다. 당시 유교문화와 융화문제로 꽤나 진땀 흘리셨다는 후문이.
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동교회, 천주교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 대한불교 조계종 대원사, 경상북도 유교문화회관, 성덕도 안동교화원이 한곳에 붙어있다. 이에 대한 기념으로 각 종교의 상징의 새겨진 5개의 돌기둥과 상징물을 세운 종교타운 이라는 장소가 만들어져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천태종 해동사도 있고, 원불교도 볼 수 있다.
7. 대중문화
7.1. 영화관
- CGV: CGV 안동 - 안동시 경동로 841(용상동) 6관 674석.
- 롯데시네마: 롯데시네마 프리미엄안동 - 안동시 경북대로 418, A동 (옥동) 5관 343석.
- 안동 중앙시네마: 안동시 문화광장길 45 (삼산동). 독립영화관으로, 1관 144석.
과거에는 구시장에 안동극장, 진성극장이 있었으며, 중앙신시장에 가고파극장, 대안극장, 아카데미극장이 있었다.
7.2. 방송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중심도시답게 KBS안동방송국, 안동문화방송 같은 지역 방송사의 소재지이며, TBC 등 대구경북 전역을 관할하는 방송사의 중계소도 설치되어 있다. 다만 대구지역 방송을 송출하는 팔공산 송신소의 높이가 워낙 높아 시내 대부분 지역에서 해당 송신소를 통해 송출되는 대구지역 전파를 잡을 수 있고, 이 때문인지 KBS 2라디오나 TBN 대구교통방송 등 안동에 중계소를 설치하지 않은 방송국도 꽤 있다. 광주지역 전파가 잘 넘어오는 목포시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수신 감도는 목포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KBS 1라디오(90.5)와 EBS FM(107.7)은 대부분의 방송사가 송출되는 안동 학가산이 아닌 영양군 일월산에 송신소를 두고 있어 가장 잘 들려야 할 안동 시내가 난청지역에 해당된다. 그래서 KBS 1라디오는 안동 남선면에 출력 100W 규모의 중계소(104.5)를 설치했다.8. 스포츠
대한민국 5부 축구리그인 K5리그 대구/경북리그에 참가하는 안동 가람 FC가 안동시에 소재해있다.일직중학교가 2019년 3월 4일에 야구부를 창단했고, 2021년 6월 1일에 배구부를 창단했다(서종칠 감독). 이어 배구 잡지 더 스파이크 7월호 102~105쪽에 일직중의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예일메디텍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이라서, 고등학교의 선수 수급이 꽤 편해질 전망이다.
[1] 류시원이 류운룡의 후손이다.[2] 집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전기선 하나만 수리하려고 해도 시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덕분에 여기 사는 주민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불편하게 생활한다.[3] 안동에서는 하회마을 근처의 병산서원도 살아남았다.[4] 사진 출처[5] 다만 10월달에 일요일이 5일 있는 년도의 경우 해당년도 한정으로 둘째주 일요일까지 열기도 한다.[6]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과 2021년에는 개최되지 못했다.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됨에 따라 2022년부터는 다시 열린다.[7] 그러나 2022년에는 코로나19 이전과는 달리 10일간 안열리고 5일 동안만 개최되니 이 축제에 방문한다면 이 점을 유념하고 방문하도록 하자.(5일간만 개최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영항이 크다.)[8] 동남아 팀은 의상과 가끔 보여는 가벼운 칼춤이 인기를 끈다. 러시아 팀은 미모의 여성 무용수들 덕분에 남성 관객의 인기를 얻는 모양.[9] 안동시 고유의 민속놀이로 매년 10월 3일에 한다.[10] 학부모들이 애들한테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보여주기도 하지만 운동회 때 질리도록 하기 때문에 반응은 별로다.[11] 참고로 보통 우리가 아는 그 식혜는 안동에서 '감주'라고 부른다.[12] 전국 3대 빵집으로 불리며 다른 하나는 대전에 성심당이 있고, 또다른 하나는 전라북도 군산시에 이성당이 있다.[13] 2014년에 재개점했다가 화재로 인해 다시 폐업하고 리모델링중.[14] 맘모스베이커리 사장님 말에 따르면 시내에 있는 본점에서 빵을 가져다 놓는 방식이라고 한다.[15] 이십여 년 전과는 달리 빵을 식사용으로 삼는 한국인들도 늘어났고, 식사용 빵으로서 염도, 식감 등 개인별 선호 기준을 따지는 사람들도 확실히 많아졌다.[16] 이 빵은 맘모스베이커리에서 제일 인기있는 빵으로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 중 안사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17] 매점 안쪽으로 들어간 후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다 보면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그쪽으로 들어가면 초콜릿 집이 있다.[18] 조선 시대 사색당파의 파별(派別). 붕당이라고 보면 된다.[19] 원래 양반은 시내에 살지 않고 변두리 집성촌에 살았다. 물론 지금은 시내에도 많이 살고 있다.[20] 각각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의 집안이다.[21] class. 위계, 계층의 의미로 볼 수 있다.[22] 박병호: 韓國傳統社會에 있어서의 同族結合의 類型, 법사학연구 6, 1981, 72쪽; 이순형: 한국의 명문 종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등 다수 논저 참조.[23] 우리나라 성리학 중 가장 먼저 본격적인 저술을 남기면서 주리론 및 영남학파의 선구자로 추앙된 회재 이언적(여강 이씨), 주기론 및 기호학파의 태두이자 서인의 영수였던 율곡 이이(덕수 이씨), 노론의 영수로서 '송자'로 칭송되는 우암 송시열(은진 송씨), 기호학파의 종장이었던 김장생의 아들 신독재 김집(광산 김씨), 소론의 당수 격이었던 현석 박세채(반남 박씨), 그리고 영남학파의 종장이자 남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퇴계 이황(진성 이씨).[24] 나머지 한 명은 월천 조목(趙穆)으로 횡성 조씨지만 가세가 이들만큼은 번성하지 못했다. 다만 역시 안동에서 명망 높은 향반으로 통한다.[25] 인동 장씨가 아니다[26] 전국적으로도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안동 권씨, 안동 김씨와는 다르게 안동 장씨는 이 지역에서 그나마 많이 볼 수 있다. 전국 장씨들 중에서 대부분은 인동 장씨이다.[27] 몇 해 전 퇴계 종손께서 돌아가셨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 및 재벌 총수들이 조화를 보냈다. 이는 타 문중과는 비교 불허 수준. 그리고 진성 이씨 여자들은 시집 잘 가기로 소문나 있다.[28] 대표적인 예로 퇴계 이황 종가가 일제에 의해 불타버린 사건이 있는데, 독립운동을 해서 일제 헌병이 불을 냈다고 한다. 이후 1929년에 전국 유림의 도움을 받아 새로 지었다. 퇴계 종가도 이정도 대접인데 다른 문중은. 의성 김씨 문중은 집이 헐리고, 학봉 김성일 묘소도 파헤쳐질 뻔했다. 고성 이씨 또한 종가 절반이 헐리고 철도가 놓여졌다. 안동 권씨 문중도 마찬가지. 이런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동네는 일제에 의해 허물리거나 허물린 다음 그 자리에 신식 건물이 세워졌다.[29] 의성 김씨의 가장 큰 사위집안.[30] 숙종시대 남인의 거두이자 장계향의 아들인 갈암 이현일의 가문. 소설가 이문열과 정치인 이재오가 후손이다.[31] 지금의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다. 인구 기준 전국 8위에 들 정도로 김해 김씨, 경주 김씨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김씨지만 본관인 광주/전남을 비롯한 호남 지방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경상도에서는 의외로 보기 드문 성씨인데, 그 경상도에서 광산 김씨를 그나마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북 안동이다. 안동의 광산 김씨는 광산 김씨 예안파가 대부분이다. 노론 색목의 광산 김씨는 국반이다.[32] 실제로는 퇴계 문하에서 수학한 적이 없다고 하나 명확하진 않다.[33] 류안진 서울대 교수, 이인화(본명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가 유명인물. 이인화 교수는 정유라 입학비리로 구속되어 그 명성이 추락되었다.[34] 종가나 사당이 있는 기와집들은 안동시 도산면에 옮겨왔다. 군자리 또는 군자마을이라고 한다.[35] 본래 사대부는 4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는데, 예외적으로 대대로 제사를 지내는 경우 불천위라 한다. 예를 들어 진성 이씨의 경우 퇴계 이황같이 대단한 위인을 배출한 집안은 4대 제사 외 퇴계 이황의 제사를 지낸다. 이황같은 인물은 나라에서 직접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를 국불천위라고도 한다. 이는 나라에서 직접 인정한 가문이란 이야기다. 그 외 유림불천위(향불천위)라고 지역 유림들이 모여 지내기로 한 불천위가 있다. 이 역시 당대 그 지역에서 유림들끼리 최고라고 인정했다는 뜻이다.[36] 흔히 맛질 권씨라고도 한다.[37] 예천군 지보면에 있는 동래 정씨, 예천 임씨, 예천 권씨, 안동 장씨 집성촌은 일제강점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동군의 행정구역이였다.[38] 봉화 정씨인 정도전은 역사서에서 안동부 봉화현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39] 참고로 안동의 5대 성씨가 아닌 가문에서 국회의원이 나온 예는 제헌국회의 정현모·임영신 의원과 안동(을) 5선의 박해충 의원의 3명 밖에 없다. 시장의 경우도 관선 시절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배정되었었지만, 민선에 와서는 안동 성씨들이 강세. 정현모, 박해충, 임영신은 안동 5성은 아니나 동래 정씨, 예천 임씨 등 명문가 출신이다.[40] 최근의 예만 들어도, 18대 총선에서 안동 문중이 아닌 김해 허씨 출신 허용범 후보가 한나라당을 달고 나왔는데, 이에 안동 문중들은 안동 김씨의 김광림 의원을 문중공천했고, 결국 한나라당 후보는 문중표에 밀려 떨어졌다. 그 뒤로는 얌전하게 새누리당도 19대 총선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얌전히 안동 성씨를 공천했다.[41] 어르신들 말씀을 빌려 당사자가 소위 잡씨(성씨들에 포함되지 않은 성씨)일지라도, 외가가 그중 한 곳이라면 사회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다.[42] 안동은 아직도 비평준화다.[43] 알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안동을 포함한 일명 TK 지역은 이재명이 소속된 정당의 무덤과도 같은 곳이다. 만약 이재명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했다면 군위군을 뛰어넘는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명박이 2007년 대선에서 포항 84%를 받았다.[44] 주로 근처 대구의 경북대나 다른 학술적인 방문객들[45] 안동 임청각[46]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안동시, 영주시, 문경시, 의성군, 영양군, 청송군, 봉화군, 예천군[47] 예시) '안녕하시니껴 (안녕하시나이까)', '진지 자셨니껴 (진지 자셨나이까)'[48] 예로, 경남의 '~입니더(임니더, 임더), ~합니더(함니더), ~했십니더(했심더), ~갑니더(감니더)' 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혼동하면 안 된다. '~이니더, ~하니더, ~했니더, ~가니더' 라고 써야 한다.[49] 물론 노년층 위주이다. 청년 세대에서는 거의 사라진 방언이지만 안동 사람들은 동향사람끼리 있으면 방언으로 이야기한다.[50] 예시 /이 뭐꼬?/(이거 뭐냐?) 는 이 뭐로?, /가가 가가?/ 는 가가 가라? 가 된다 또 /~라?/를 많이 쓰기 때문에 예로 이 니해라?(이거 네 것이야?) 등이 흔하다.[51] 그나마 안동에서 가장 개신교인의 수가 많은 동네가 안동대학교 주변 대학가인데 이 곳 또한 예외는 아니여서,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당집이 있다.[52] 단위 교구의 신자 수는 한국 천주교에서 제주교구를 제외하고 가장 적다.[53] 경북도청이전신도시에 메가박스가 들어서기 전엔 현재의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안동 자리가 메가박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