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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의 설립자
<colbgcolor=#000><colcolor=#fff> KG ONZ KBE 에드먼드 힐러리 경 Sir Edmund Hillary | |
본명 | 에드먼드 퍼시벌 힐러리 Edmund Percival Hillary |
국적 | [[뉴질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19년 7월 20일 |
뉴질랜드 자치령 오클랜드 | |
사망 | 2008년 1월 11일 (향년 88세) |
뉴질랜드 오클랜드 | |
직업 | 산악인, 탐험가 |
배우자 | 루이즈 메리 로즈 (1953년 ~ 1975년, 사별) 준 멀그루 (1989년 결혼)[1] |
자녀 | 1남 2녀 피터, 세라, 벌린더 |
서명 |
[clearfix]
1. 개요
말년의 모습 |
뉴질랜드 출신 산악인으로, 1953년 네팔의 산악인인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정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2. 생애
1919년 7월 20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친구들보다 몸이 왜소했기 때문에[2] 매우 소심했고, 책 속에서 위안을 찾았으며, 모험에 대한 공상을 즐겼다고 한다. 고등학교까지 등하교에 각각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렸고, 그 시간을 독서를 하는데 보냈다. 그는 왜소한 몸을 극복하기 위해서 복싱을 배운 후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16세 때, 수학여행을 통해 루아페후 산(최고 2,797m)을 등반함으로써 등반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자극하게 된다. 그는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공부했고, 1939년에는 남 알프스 산맥의 쿡 산 근처에 있는 1,933m의 올리비어 산을 등정하게 된다. 산에 관심이 많았지만 원래 양봉업자로 이름을 떨쳤고, 양봉업은 여름의 한시적 직업으로 겨울에는 등반을 하면서 뉴질랜드의 스키와 등산의 지도자가 되었다.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공군에 자원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로 이를 철회했다. 하지만 1943년 징병으로 인해 그는 조종사로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정을 조종하는 업무에 종사했다. 1945년에 피지와 솔로몬 제도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보트 사고로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 그 이후 다시 뉴질랜드로 송환되었다.
2.1. 지구의 가장 높은 곳에 처음으로 다다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촬영된 사진 (1953.5.29) |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산을 세계 최초로 정복한 역사적인 산악가로 유명하다. 힐러리의 정복 전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당시 에베레스트로 가는 루트는 중국의 티베트 통제로 폐쇄되었고, 네팔은 1년에 한 번에 한 해 허용을 했다. 1952년에 같이 참가했던 스위스 원정대와 정상에서 240m 지점에 남기고 악천후로 의해 하산했다. 1952년 힐러리가 알프스산맥를 등반하는 동안, 조지 로우(George Lowe)가 1953년 등반에 승인된 영국팀으로 연합 히말라야 위원회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을 알게되었고, 초청이 됨으로서 힐러리도 같이 갈 수 있었다.
여기서 그의 인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셰르파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텐징 노르가이이다. 노르가이는 1953년 영국원정대 내에서 세르파 포터들의 리더이자 원정대의 정식등반대원 자격으로 원정에 참여했다. 그는 정상 바로 앞에 먼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힐러리를 기다렸다가 힐러리가 최초로 정상에 설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최초 등정자에는 두 명의 이름이 같이 적혀있다.
정상에 선 힐러리는 텐징 노르가이를 다시 정상에 세우고서 정상에 올라 선 텐징의 모습을 카메라(Kodak Retina 118)로 찍었다. 위에 있는 사진이 바로 그 유명한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사진으로, 이 사진을 통해 텐징 노르가이는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모습이 사진으로 찍힌 인물이 되었다. 힐러리는 위처럼 텐징의 사진은 찍어주었으나, 자신의 사진은 남기지 못했는데, 이는 텐징이 사진기를 쓰는 법을 몰라 힐러리의 사진을 찍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3] 훗날 힐러리 경은 "거기서 텐징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었어."라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여하튼 힐러리의 사진은 남겨지지 못했지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진 등을 몇 장이나 찍었고, 정상에 남겨놓고 온 소지품을 나중에 등정한 산악인들이 발견함으로써 초등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확실하게 인정되었기 때문에 힐러리의 정복을 둘러싼 진위여부 논란은 전무하다.
2.2. 에베레스트 이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그는 뉴질랜드에서 국민적인 환영, 찬사를 받았다. 당시 뉴질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인물이 많이 없었는데[4],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처음 정복한 주인공의 모국으로서 뉴질랜드가 널리 알려지는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다. 힐러리가 당시 뉴질랜드인들에게 얼마나 큰 존경을 받았냐면, 후술하듯이 생전에 민주주의 국가인 고국의 화폐 모델이 될 정도였다.1958년 설상차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이는 탐험가로서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그의 대표적인 성과다.
1960년대부터는 자신이 설립한 Himalayan Trust를 통해 네팔의 셰르파들을 돕는 데 전념했으며, 1985년부터 1988년까지는 뉴질랜드 정부의 주인도 대사로 부임하여 외교관 생활을 하기도 했다.
2.3. 사망
2007년 4월 22일 힐러리는 카트만두로 여행을 가던 중 넘어져 뉴질랜드의 병원에 입원했으며, 2008년 1월 11일 향년 88세로 오클랜드 시립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힐러리의 사망 소식은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가 직접 발표했으며, 장례식은 2008년 1월 22일에 국장으로 치러졌다. 시신은 화장된 후 동년 2월 29일에 오클랜드의 하우라키만에 산골되었으며, 남은 잿가루들은 에베레스트 근처의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2010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이 재들을 흩뿌리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취소되었다고 한다.
힐러리가 사망한 직후, 힐러리를 추모하기 위해 네팔의 루클라 공항은 텐징-힐러리 공항으로 개칭되었으며, 뉴질랜드 녹색당에서는 힐러리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제안까지도 했다.
3. 서훈
4. 이야깃거리
- 뉴질랜드 5달러 앞면의 도안이다.[5] 그것도 살아 생전이었던 1992년부터.[6] 지폐에는 거의 대부분 사망한 위인을 넣는데, 이 관례를 깬 것이다.[7] 실제로, 그의 초상을 지폐에 넣을 때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힐러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힐러리 생전에 발행된 5달러 지폐의 일부는 힐러리 본인이 직접 사인해 주었다.
(지폐에 사인해주고 있는 힐러리의 모습)
- 하마터면 여객기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원래 1979년 11월 28일에 에어 뉴질랜드 소속 DC-10의 남극 관광 비행에서 가이드로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다른 일정 때문에 동료 산악인이던 피터 멀그루가 대타로 탑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비행기는 화이트아웃 현상 때문에 에레부스 화산에 충돌하였고, 다른 탑승객 256명과 함께 멀그루 본인도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의 여파로 남극의 합법적 관광은 사실상 금지되었다.
그리고 후에 멀그루의 미망인과 재혼했다.
- 명왕성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을 힐러리 산이라고 명명했다.
[1] 남편인 피터 멀그루(Peter Mulgrew, 1927~1979)가 후술할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아픔을 겪었다.[2]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된 뒤의 키는 198cm의 장신이었다.[3] 손짓발짓으로라도 가르쳐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해발 8,000미터가 넘는 고산은 극한의 환경이라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 조차 상당한 고역이고 거의 눈빛으로 소통하는 게 일반적이라 이런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평지 대비 산소량이 1/3에 불과해 산소포화도가 60%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호흡할 산소도 부족하기 때문에 말로 소통하는 건 더더욱 어려워 고산적응이 안된 일반인이라면 고산병으로 인해 죽거나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병원에 누워 산소마스크 달고 있어야 할 수준, 이조차도 평생 누워있는 장애인이 될 가능성도 높다.[4] 굳이 따지자면 어니스트 러더퍼드 정도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러더퍼드의 생전에는 뉴질랜드가 온전한 독립 국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러더퍼드는 통상적으로 영국인으로 간주되었다. 손기정의 이름이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의 수상자 명패에 일본식으로 '손 기테이'라고 적힌 것과 오늘날의 체코 지역 출신인 유대인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대외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라고 알려진것과 비슷하다. 물론 차이점도 있는데, 뉴질랜드의 경우엔 위의 경우와 달리 영국 이민자들이 바탕이 된 식민지라 혈통적으로도 영국인과 차이가 없다. 러더퍼드 본인도 생애 대부분을 영국으로 이주해 활동하기도 했다.[5] 뒷면은 노란눈펭귄.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희귀종이다.[6] 당시 힐러리의 나이는 73세.[7] 물론 독재국가들에서는 현역 독재자의 얼굴을 화폐에 넣는 일이 흔하며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역시 현역 때 오랫동안 지폐의 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