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작위 요구자
1. 등재 기준2.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2.1. 네팔2.2. 대한제국 황제2.3. 라오스2.4. 레바논 아미르2.5. 말레이시아2.6. 몰디브 술탄2.7. 몽골2.8. 무스카트-오만 술탄2.9. 미얀마2.10. 베트남2.11. 사우디아라비아2.12. 스리랑카2.13. 시리아 국왕2.14. 아미르 알 무미닌2.15. 아프가니스탄2.16. 예멘2.17. 우즈베키스탄2.18. 이라크 국왕2.19. 이란2.20. 이스라엘2.21. 인도2.22. 인도네시아2.23. 일본2.24. 중국2.25. 카자흐 칸2.26. 칼리프2.27. 키프로스 국왕2.28. 태국2.29. 튀르키예2.30. 티베트2.31. 파키스탄2.32. 필리핀
1. 등재 기준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작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현재 아시아의 작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2.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2.1. 네팔
네팔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1.1. 국가
2.1.1.1. 네팔 국왕
관련 칭호 | 네팔 국왕 |
작위 요구자 | 갸넨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 |
전임자 | 디펜드라[1] |
후임자 | 파라스 샤 |
계승 실패 원인 | 2008년 왕정 폐지 |
여담으로 네팔 내 일각에서는 갸넨드라 전 왕과 파라스 전 왕세자가 네팔 정치와 사회에서 저지른 만행과 논란들을 문제 삼아 갸넨드라 전 왕의 일족들을 모두 배제하고, 남자 직계만이 승계받을 수 있는 샤 가문의 계승법을 수정하여 현재 생존 중인 직계의 여자 구 왕족들이나 방계 일족들을 왕위 계승자로 삼아 여왕이나 방계 출신의 왕족을 국왕으로 즉위시켜서라도 네팔의 왕정을 복원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마저도 실현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2.1.2. 지방
2.1.2.1. 로 라자
관련 칭호 | 로 라자 |
작위 요구자 | 지그메 싱헤 팔바르 |
계승 실패 원인 | 2008년 네팔 공화정에 의해 왕실 폐지 |
2.1.2.2. 바장 라자
관련 칭호 | 바장 라자 |
작위 요구자 | 비노드 바하두르 |
계승 실패 원인 | 2008년 네팔 공화정에 의해 왕실 폐지 |
2.1.2.3. 비르코트 라자
관련 칭호 | 비르코트 라자 |
작위 요구자 | 프라카쉬 |
계승 실패 원인 | 2008년 네팔 공화정에 의해 왕실 폐지 |
2.2. 대한제국 황제
관련 칭호 | 대한제국 황제 | |
작위 요구자 | 이원[2][3] | |
전임자 | 이구 | 이해원[4] |
후임자 | 이권[5][6] | |
계승 실패 원인 | 1910년 제국 멸망 |
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 제국에 병합되어 멸망하고, 황족은 일본 황실의 일원으로 격하되었다. 고종 이희는 덕수궁 이태왕, 그 아들들인 순종 이척과 황태자 이은은 창덕궁 이왕으로 차례대로 대한제국의 왕위 요구자가 되었다. 일본 제국 패망 후 신헌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왕은 폐지되었고, 이은은 무국적 상태로 일본에 체류한다. 1948년 수립된 공화국 정부는 대한제국 황제위 요구자 이은의 입국을 거부했다.[7] 1963년에 박정희가 이은 일가의 귀국을 허가했고, 1970년 이은 사후 그의 장남인 이구가 다음 대한제국 황제위 요구자가 되었다.
이구는 일본 황족 마사코 여왕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2005년에 죽기 전까지 나시모토노미야 가문의 후손인 나시모토 다카오 당주[8]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시모토는 나시모토노미야 기념재단의 총재인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9] 1990년대부터 종묘제례에도 일본을 대표해[10] 매번 참석했다. 그런데 2006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한일관계에 금이 간 직후에, 나시모토가 황사손 이원에게 "나시모토 가의 후손 이구의 묘가 일본에 있으니 양자인 기일을 맞아 참배해달라"는 공문식 팩스를 보내며 양 집안의 관계가 냉랭해졌다. 2005년, 이구는 후사가 없이 죽었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2005년 7월 16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의친왕의 서손 황사손 이원(고종의 증손자)을 이구의 양자로 들여 계승하게 했다.[11] 나시모토는 "대한황실문화원"의 후임 총재인 이구와 좋은 관계를 지속해나가기 위해 참배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구의 묘가 일본에도 있다는 나시모토의 발언에 대동종약원과 이원은 처음에는 의아해했다. 그리고 2008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죽은 이구의 시신 일부를 채취해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은 예전 같았으면 능지처사를 당했을 것"이라며 강경하게 반응했다. 이를 그대로 나시모토에게 회답했으며, 두 집안은 연락을 끊어버렸다. 나시모토는 이게 아니다 싶어서 "이구가 아닌 이진(영친왕의 장남)씨의 묘를 조성했다, 한국 측이 잘못 들은 것이다"라고 했으나, 대동종약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며 확인사살을 했다.[12][13]
한편 몇몇 황족들은 "대한제국 황족회"라는 이름으로 2006년 9월 29일, 이해원(고종의 손녀)을 대한제국 여황제로 선포했다. 황족회 측에서는 대동종약원은 제사를 지낼 목적으로 장자를 승계했을 뿐, 황제위 요구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때문에 황족으로 인정받은 의친왕계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이진을 여황제로 추대한 것이다.[14]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을 분리하려는 것으로도 보이는 대목이다. 이에 대동종약원에서는 2006년 10월 2일에 "조선 왕조의 적통은 고종 황제 - 순종 황제 - 황태자 영친왕 - 이구 황태손 - 이원 황사손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해원이 황녀로 추대된 것은 억지 장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15]
이원은 황실 행사에서 군주 역할로 참여하며 조선 및 대한제국의 각종 의례와 제사를 주관한다.[16][17] 제주관광공사의 명예 홍보대사가 되는 등 공화국 정부에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18] 각종 인터뷰에서 이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황사손의 책무를 다할뿐이며, 이원은 공식적으로 대한 황실 복원을 주장한 바 일절 없다. 한편 이해원은 국가를 상대로 양부 이기용의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거는 등 대한민국 정부에 반감을 드러냈다.[19] 현재는 이해원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원이 유일한 작위 요구자가 되었다.
다수의 마지막 왕조가 그렇듯 무능한 군주가 들어서며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했고 마지막에는 나라를 뺏기기까지 하였다. 이후 의친왕은 상하이로 망명 시도를 하다가 붙잡히며 독립 운동을 위한 그의 모든 노력은 빛을 보지 못했고 이후 해방을 맞았기 때문에 사실상 황제위 계승에 합당한 인물이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의친왕과 함께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 의친왕의 아들인 흥영군 이우인데, 이 사람은 하필 1945년 8월 6일에 업무상의 이유로 히로시마에 갔다가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에 맞아 사망한 바람에 그나마 황실 부활 여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졌다. 황족들 중에선 가장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죽자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구 황실 인사가 전멸해버리고 말았다.
2.3. 라오스
라오스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3.1. 참파삭 국왕
관련 칭호 | 참파삭 국왕 |
작위 요구자 | 참포네삭 |
전임자 | 보운 오움 |
계승 실패 원인 | 1946년 라오스에 합병 |
2.3.2. 라오스 국왕
관련 칭호 | 라오스 국왕 루앙프라방 국왕 |
작위 요구자 | 술리봉 사방 |
전임자 | 봉 사방 |
계승 실패 원인 | 1975년 왕국 멸망 |
2.4. 레바논 아미르
관련 칭호 | 레바논 아미르 |
작위 요구자 | 오스만 1세 |
계승 실패 원인 | 1840년 아미르국 멸망 |
2.5.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5.1. 조호르 술탄
관련 칭호 | 조호르 술탄 |
작위 요구자 | 텡쿠 샤왈 |
계승 실패 원인 | 1855년 술탄국 해체 |
2.5.2. 사바 통치자
관련 칭호 | 술루 술탄 사바 통치자 | ||
작위 요구자 | 무에드줄 라일 탄 키람 | 술탄 알리우딘 하디스 파블라 | 술탄 자말릴 아비린 |
계승 실패 원인 | 브루나이의 사바 강탈 |
2.5.3. 사라왁 라자
관련 칭호 | 사라왁 라자 |
작위 요구자 | 제이슨 데즈먼드 앤서니 브룩 |
전임자 | 제임스 버트램 라이오넬 브룩 |
계승 실패 원인 | 1946년 왕국 멸망 |
2.6. 몰디브 술탄
관련 칭호 | 몰디브 술탄 |
작위 요구자 | 이브라힘 파리드 디디 |
전임자 | 무함마드 파리드 디디 |
계승 실패 원인 | 1968년 술탄제 폐지 |
2.7. 몽골
몽골[26]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7.1. 몽골 대칸
관련 칭호 | 대칸 천자 원나라 황제 |
작위 요구자 | 스티브 조르첸 해럴드 보르지긴 |
후임자 | 단젠 보르지긴 |
계승 실패 원인 | 1368년 원나라 멸망 1388년 북원 멸망 1635년 대칸국 멸망 |
2.7.2. 몽골 쿠르겐(페르시아어: 귀르겐)
관련 칭호 | 티무르 제국 아미르 몽골 쿠르겐(귀르겐) 페르가나의 지배자 무굴 제국 황제(파디샤) |
작위 요구자 | 미르자 굴람 마이누딘 무함마드 자바이드 자 바하두르 |
전임자 | 무함마드 카이르 웃 딘 미르자 쿠르시드 자 바하두르 |
후임자 | 미르자 샤루크 자바이드 자 바하두르 |
계승 실패 원인 | 1507년 티무르 제국 멸망 |
2.7.3. 러시아 대칸
관련 칭호 | 전(全)러시아의 황제 러시아 대공[마리아] 러시아 공작[앤드류] 대칸 | ||
작위 요구자 |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 | 앤드류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 | 카를 에미히 추 라이닝겐 |
전임자 |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30] | 드미트리 로마노비치 로마노프 | 에미히 키릴 추 라이닝겐[31] |
후임자 |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 | 알렉세이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 | 안드레아스 추 라이닝겐[32] |
계승 실패 원인 | 1917년 대칸국 멸망 |
2.7.4. 복드 칸국 칸
관련 칭호 | 대칸 복드 칸국 칸 젭춘담바 후툭투 |
작위 요구자 | 불명(10대)[34] |
전임자 | 잠팔 남돌 초키 걀첸(9대) |
계승 실패 원인 | 1924년 군주제 폐지 |
2.7.5. 젭춘담바 후툭투
관련 칭호 | 대칸 복드 칸국 칸 젭춘담바 후툭투 |
작위 요구자 | 불명(10대)[35] |
전임자 | 잠팔 남돌 초키 걀첸(9대) |
계승 실패 원인 | 1924년 군주제 폐지 |
참고로 젭춘담바 후툭투위 요구자는 몽골이 진작에 민주화되고 종교의 자유가 공인된 관계로, 그 정체가 공개되어 정식으로 즉위하는 즉시 요구자 신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경우, 제10대 젭춘담바 후툭투부터는 즉위 과정에서 결격 사유만 없다면, 오직 복드 칸국의 칸위 요구자로만 남게 된다.
2.8. 무스카트-오만 술탄
관련 칭호 | 무스카트-오만 술탄 잔지바르 술탄 |
작위 요구자 | 잠시드 빈 압둘라[38] |
전임자 | 압둘라 빈 할리파[39] |
후임자 | 사이드 알리 빈 잠시드[40] |
계승 실패 원인 | 1856년 술탄국 분열 1964년 잔지바르 술탄국 멸망, 잔지바르와 탕가니카의 통합 1970년 오만 술탄국으로 개편 |
2.9. 미얀마
미얀마의 여러 왕위 요구자들.2.9.1. 국가
2.9.1.1. 버마 국왕
관련 칭호 | 버마 국왕 |
작위 요구자 | 에드워드 타우 파야[41][42] |
전임자 | 먯 파야 갤래이 |
후임자 | 리처드 |
계승 실패 원인 | 1885년 왕국 멸망 |
2.9.2. 지방
2.9.2.1. 몽폰 사오파
관련 칭호 | 몽폰 사오파[45] |
작위 요구자 | 사오소홈 |
전임자 | 사오삼툰 |
계승 실패 원인 | 1962년 번왕국 멸망 |
2.9.2.2. 시포 사오파
관련 칭호 | 시포 사오파 |
작위 요구자 | 사오우짜 |
전임자 | 사오꼰짜르 |
계승 실패 원인 | 1962년 번왕국 멸망 |
2.9.2.3. 용훼 사오파
관련 칭호 | 용훼 사오파 |
작위 요구자 | 소칸파 |
전임자 | 하오쉐타이케 |
계승 실패 원인 | 1962년 번왕국 멸망 |
2.9.2.4. 켕퉁 사오파
관련 칭호 | 켕퉁 사오파 |
작위 요구자 | 사오렝 |
계승 실패 원인 | 1962년 번왕국 멸망 |
2.10. 베트남
베트남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10.1. 리 왕조 황제
관련 칭호 | 대월 황제 |
작위 요구자 | 이창근 |
계승 실패 원인 | 1225년 왕조 교체 |
2.10.2. 응우옌 왕조 황제
관련 칭호 | 대남국 황제 베트남 황제 베트남 국장 |
작위 요구자 | 응우옌 푹 바오 안 |
전임자 | 응우옌 푹 바오 통 |
계승 실패 원인 | 1945년 베트남 제국 멸망 1955년 베트남국 멸망 |
2.11.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11.1. 메디나의 수호자
관련 칭호 | 이슬람교 수니파 칼리프 메디나의 수호자 |
작위 요구자 | 하룬 오스만오을루[A][B] |
전임자 | 뒨다르 알리 오스만오을루 |
계승 실패 원인 | 1916년 메디나 상실 |
2.11.2. 메카의 수호자
관련 칭호 | 이슬람교 수니파 칼리프 메카의 수호자 |
작위 요구자 | 하룬 오스만오을루[A][B] |
전임자 | 뒨다르 알리 오스만오을루 |
계승 실패 원인 | 1916년 메카 상실 |
2.11.3. 헤자즈 국왕
관련 칭호 | 칼리프 헤자즈 국왕 | |
작위 요구자 | 압둘라 2세[50] | 라아드 빈 자이드 |
전임자 | 후세인 1세 | 자이드 빈 후세인 |
후임자 | 알-후세인 | 자이드 빈 라아드 자이드 알-후세인 |
계승 실패 원인 | 1925년 왕국 멸망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에 합병 |
2.12. 스리랑카
스리랑카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12.1. 자프나 국왕
관련 칭호 | 자프나 국왕 |
작위 요구자 | 레미기우스 카나가라자 |
계승 실패 원인 | 1624년 왕국 멸망 |
스리랑카 독립 이후 싱할라 민족주의가 강해지면서 스리랑카의 타밀족이 탄압을 받다가 끝내 스리랑카 내전으로 이어진 이후 오늘날의 타밀계 스리랑카인들은 타밀족이 자신들의 뜻대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었던 자프나 왕국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2.12.2. 캔디 국왕
캔디 왕국 국기 | |
관련 칭호 | 캔디 국왕 |
작위 요구자 | 모칸바부 라자 |
계승 실패 원인 | 1815년 왕국 멸망 |
2.13. 시리아 국왕
관련 칭호 | 시리아 국왕 이라크 국왕 |
작위 요구자 | 라아드 빈 자이드 |
전임자 | 자이드 빈 후세인 |
후임자 | 자이드 빈 라아드 자이드 알-후세인 |
계승 실패 원인 | 1920년 시리아 아랍 왕국 멸망 1958년 이라크 왕국 멸망 |
2.14. 아미르 알 무미닌
관련 칭호 | 이슬람교 수니파 칼리프 아미르 알 무미닌 |
작위 요구자 | 하룬 오스만오을루[A][B] |
전임자 | 뒨다르 알리 오스만오을루 |
계승 실패 원인 | 1924년 튀르키예 정부에 의해 아미르 알 무미닌 칭호 폐지 |
2.15.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15.1. 아프가니스탄 국왕
관련 칭호 | 아프가니스탄 국왕 |
작위 요구자 | 아흐메드 샤 칸 |
전임자 | 무함마드 자히르 샤 |
후임자 | 무함마드 자히르 칸 |
계승 실패 원인 | 1973년 왕국 멸망 |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이후 서방 세계로부터 다시 입헌군주제 회귀 방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군주제 폐지 이후 들어선 대통령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반감이 심하니 그 대안으로 떠오르긴 하다만 여전히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56] 그렇지만 옆나라 이란의 팔라비 왕조보다는 평이 좋은 편이다.
물론 현재 아프간 주민들과 아프간 정치인들 그리고 서방권과 타 이슬람권 국가들의 외교계에서는 이미 왕정 폐지 후 정치적인 영향력을 상실한 지 50년이 되어가는 바라크자이 구 왕가가 재집권하여 왕정으로 복고되어도 종파/민족별로 분열된 아프가니스탄에 평화와 통합을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며 왕정복고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현재의 탈레반 정권도 왕정복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부정적인 입장이다. 애초에 탈레반의 전신과 사상이 아마눌라 칸 때 부터 존재한 보수파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군주제가 폐지되고 현재의 이슬람 신정 체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미국 등 서방권으로 망명한 구 팔라비 왕가들에게 이란 혁명 직후에 도주한 팔라비 왕족들에게 궐석재판에서 선고한 사형 판결을 유지하며 해외에 망명 중인 구 팔라비 왕가 인사들이 이란으로 귀국하면 즉시 검거해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이웃나라 이란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현 탈레반 정권이 2001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탈레반이 잠시 정권을 잃은 이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귀국한 바라크자이 구 왕가들을 사형시키자는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2.15.2. 아프가니스탄 아미르
관련 칭호 | 아프가니스탄 아미르 탈레반 수장 |
작위 요구자 | 모하마드 야쿠브 |
전임자 | 모하마드 오마르 |
계승 실패 원인 | 2001년 아미르국 멸망 |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무너진 후에도 모하마드 야쿠브는 아프가니스탄의 아미르위를 정식으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탈레반의 재집권을 주도한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가 모하마드 야쿠브를 아미르로 옹립하는 것 없이 그냥 자신이 새로운 탈레반 정권의 최고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하마드 오마르가 세운 기존의 탈레반 정권과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가 세운 현재의 탈레반 정권은 말이 같은 탈레반 정권이지 사실상 별개의 세력에 가깝다.
2.16. 예멘
자세한 내용은 작위 요구자/아시아/예멘 문서 참고하십시오.2.17.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17.1. 티무르 제국 아미르
관련 칭호 | 티무르 제국 아미르 몽골 쿠르겐(귀르겐) 페르가나의 지배자 무굴 제국 황제(파디샤) |
작위 요구자 | 미르자 굴람 마이누딘 무함마드 자바이드 자 바하두르 |
전임자 | 무함마드 카이르 웃 딘 미르자 쿠르시드 자 바하두르 |
후임자 | 미르자 샤루크 자바이드 자 바하두르 |
계승 실패 원인 | 1507년 티무르 제국 멸망 |
2.17.2. 부하라 아미르
관련 칭호 | 부하라 아미르 |
작위 요구자 | 샤 무라드 |
전임자 | 모하메드 알림 칸 |
계승 실패 원인 | 1920년 아미르국 멸망 |
2.18. 이라크 국왕
관련 칭호 | 이라크 국왕 시리아 국왕 |
작위 요구자 | 라아드 빈 자이드 |
전임자 | 자이드 빈 후세인 |
후임자 | 자이드 빈 라아드 자이드 알-후세인 |
계승 실패 원인 | 1958년 왕국 멸망 |
라아드 빈 자이드의 장남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은 2014~18년 UN 인권 고등판무관이었다.
파이살 1세는 잠깐 동안 시리아 국왕이기도 했는데, 따라서 이라크 왕위 요구자는 시리아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2.19. 이란
이란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19.1. 국가
2.19.1.1. 일 칸국 칸
관련 칭호 | 일 칸국 칸 |
작위 요구자 | 스티브 조르첸 해럴드 보르지긴 |
후임자 | 단젠 보르지긴 |
계승 실패 원인 | 1336년 칸국 멸망 |
2.19.1.2. 페르시아 아미르
관련 칭호 | 티무르 제국 아미르 몽골 쿠르겐(귀르겐) 페르가나의 지배자 무굴 제국 황제(파디샤) 페르시아 아미르 |
작위 요구자 | 미르자 굴람 마이누딘 무함마드 자바이드 자 바하두르 |
전임자 | 무함마드 카이르 웃 딘 미르자 쿠르시드 자 바하두르 |
후임자 | 미르자 샤루크 자바이드 자 바하두르 |
계승 실패 원인 | 1507년 티무르 제국 멸망 1857년 무굴 제국 멸망 |
2.19.1.3. 이란 샤한샤
관련 칭호 | 샤한샤 | |
작위 요구자 | (팔라비 왕조) 레자 팔라비 | (카자르 왕조) 모함마드 하산 미르자 카자르 2세 |
전임자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 솔탄 하미드 미르자 카자르 |
후임자 | 패트릭 알리 팔라비 | 아르살란 미르자 카자르 |
계승 실패 원인 | 1925년 왕조 교체(카자르 왕조) 1979년 군주제 폐지 |
팔라비 왕조 이전의 카자르 왕조에서도 여전히 샤한샤위 요구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몰락시킨 팔라비 가문을 반역자 가문이라고 하며 극도로 증오하여 팔라비 왕조의 복위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 혁명으로 공화정이 들어섬으로써 카자르 왕조의 부활 가능성까지 차단된 현재의 암울한 상황 때문에, 자신들의 원수였던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현 이란 신정체제에도 반대한다. 그러나 근대화라는 업적이라도 있는 팔라비 왕조와 달리 카자르 왕조는 농민들을 엄청나게 굶기고 억압하던 막장 왕조였기 때문에, 대다수의 이란인들은 팔라비 왕조 지지자와 시아파 신정체제 지지자 그리고 그 두 체제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고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이들을 막론하고 모두 카자르 왕조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2.19.2. 지방
2.19.2.1. 니자리 이맘국 군주
니자리 이맘국 국장 | |
관련 칭호 | 니자리파 이맘 니자리 이맘국 군주 |
작위 요구자 | 아가 칸 4세 |
전임자 | 아가 칸 3세 |
후임자 | 자흐라 아가 칸 |
계승 실패 원인 | 1257년 이맘국 멸망 |
니자리파 이맘 계보는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이란 북부에 있었던 니자리 이맘국은 상술한 것처럼 1257년에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기 때문에 여기에 등재한다.
2.19.2.2. 모하마라 셰이크
관련 칭호 | 모하마라 셰이크 |
작위 요구자 | 알리 빈 나데르 |
계승 실패 원인 | 1936년 이란에 합병 |
2.20.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20.1. 이스라엘 국왕
관련 칭호 | 이스라엘 국왕 유다 국왕 |
작위 요구자 | 요세프 다얀 |
계승 실패 원인 | 기원전 931년 왕국 분열 기원전 586년 유다 왕국 멸망 |
2.20.2. 유다 국왕
유다 왕국 국장 | |
관련 칭호 | 이스라엘 국왕 유다 국왕 |
작위 요구자 | 요세프 다얀 |
계승 실패 원인 | 기원전 586년 왕국 멸망 |
2.20.3. 예루살렘 국왕
관련 칭호 | 예루살렘 국왕 | ||||
작위 요구자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59] | 아마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60] | 샤를-앙투안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61] | 펠리페 6세[62] | 카를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63] |
전임자 | 움베르토 2세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 장 샤를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 | 후안 카를로스 1세 | 오토 폰 합스부르크 |
후임자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디 사보이아 | 아이모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 에두아르 라모랄 로돌프 드 리뉴 | 레오노르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 | 페르디난트 즈보니미르 합스부르크-로트링겐[64] |
계승 실패 원인 | 1291년 왕국 멸망 |
2.20.4. 예루살렘의 수호자
관련 칭호 | 이슬람교 수니파 칼리프 예루살렘의 수호자 |
작위 요구자 | 하룬 오스만오을루[A][B] |
전임자 | 뒨다르 알리 오스만오을루 |
계승 실패 원인 | 1920년 예루살렘 상실 |
2.21. 인도
자세한 내용은 작위 요구자/아시아/인도 문서 참고하십시오.2.22. 인도네시아
자세한 내용은 작위 요구자/아시아/인도네시아 문서 참고하십시오.2.23. 일본
자세한 내용은 작위 요구자/아시아/일본 문서 참고하십시오.2.24. 중국
자세한 내용은 작위 요구자/아시아/중국 문서 참고하십시오.2.25. 카자흐 칸
카자흐 칸국 국기 | |
관련 칭호 | 카자흐 칸 |
작위 요구자 | 탈갓 아이도로프 |
계승 실패 원인 | 1847년 칸국 멸망 |
2.26. 칼리프
흔히 수니파에만 칼리프가 있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아흐마디야파에도 칼리프위가 엄연히 존재하며, 시아파도 정통 칼리프의 계보가 끊어졌다고 볼 뿐, 칼리프의 개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니파 칼리프 말고도 칼리프직을 정당하게 행사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다.[69] 참고로 자기가 칼리프위 요구자라고 주장하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있었는데[70], 이 인간이 세운 ISIL은 나라가 아닌 테러단체에 불과하고 알 바그다디가 칼리프위를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었으므로, 그의 자녀들은 작위 요구자로 간주되지 않는다.2.26.1. 수니파 칼리프
관련 칭호 | 이슬람교 수니파 칼리프 아미르 알 무미닌 |
작위 요구자 | 하룬 오스만오을루[A][B] |
전임자 | 뒨다르 알리 오스만오을루 |
계승 실패 원인 | 1924년 튀르키예 정부에 의해 칼리프직 폐지 |
2.26.2. 아흐마디야 칼리프
관련 칭호 | 이슬람교 아흐마디야 칼리프 |
작위 요구자 | 미르자 마스루르 아흐마드 |
전임자 | 미르자 타히르 아흐마드 |
계승 실패 원인 | 1984년 파키스탄 정부의 탄압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망명 |
하지만 망명 신세지만 아흐마디야 칼리프는 작위 요구자가 아니라 엄연히 현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교황이 로마를 벗어나 아비뇽으로 옮겨갔다고 교황위 요구자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아비뇽 유수 당시 아비뇽이 가톨릭 국가인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였고 현재 아비뇽이 속한 프랑스 또한 가톨릭이 주류 종교인 반면, 미르자 타히르 아흐마드가 영국으로 망명할 당시 파키스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였고 영국은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과 달리 기독교 국가라서 단순한 비교는 어렵기도 하다. 일단 티베트의 종교지도자들이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뒤로 자기들 직위의 요구자로 여겨지는 걸 보면 아흐마디야 칼리프 역시 작위 요구자로 봐도 무방하다.[76]
2.27. 키프로스 국왕
관련 칭호 | 키프로스 국왕 예루살렘 국왕 | ||
작위 요구자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77] | 아마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78] | 샤를-앙투안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79] |
전임자 | 움베르토 2세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 장 샤를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 |
후임자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디 사보이아 | 아이모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 에두아르 라모랄 로돌프 드 리뉴 |
계승 실패 원인 | 1464년 샤를로트 폐위(샤를로트의 후손) 1489년 왕국 멸망 |
한편 리뉴 가문의 샤를-앙투안 라모랄 또한 예루살렘 왕국과 키프로스 왕국의 왕위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키프로스 야뉘 왕의 후손이다.
2.28. 태국
태국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 정확히는 란나 왕국이 시암에게 분할되면서 생겨난 5개의 소국들의 요구자들이다2.28.1. 치앙마이 국왕
관련 칭호 | 치앙마이 국왕 |
작위 요구자 | 웡삭 나 치앙마이 |
계승 실패 원인 | 1899년 왕국 멸망 1932년 왕실 완전 폐지 |
2.28.2. 람팡 국왕
관련 칭호 | 람팡 국왕 |
작위 요구자 | 스리랏 나 람팡 |
계승 실패 원인 | 1922년 왕국 멸망 |
2.28.3. 난 국왕
관련 칭호 | 난 국왕 |
작위 요구자 | 프라타나 나 난 |
계승 실패 원인 | 1931년 왕국 멸망 |
2.28.4. 람푼 국왕
관련 칭호 | 람푼 국왕 |
작위 요구자 | 와타난 나 람푼 |
계승 실패 원인 | 1943년 왕국 멸망 |
2.29. 튀르키예
튀르키예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29.1. 국가
2.29.1.1. 오구즈 한
관련 칭호 | 오스만 황제(파디샤) 술탄 칼리프 오구즈 한 |
작위 요구자 | 하룬 오스만오을루[A] |
전임자 | 뒨다르 알리 오스만오을루 |
계승 실패 원인 | 1922년 오스만 제국 멸망 |
2.29.1.2. 오스만 황제
관련 칭호 | 오스만 황제(파디샤) 술탄 칼리프 |
작위 요구자 | 하룬 오스만오을루[A] |
전임자 | 뒨다르 알리 오스만오을루 |
계승 실패 원인 | 1922년 제국 멸망 |
2.29.2. 지방
2.29.2.1.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국왕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국장 | ||||
관련 칭호 |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국왕 | |||
작위 요구자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82] | 아마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83] | 샤를-앙투안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84] | 필리프-모리스 빅토르 아메데 세자르 |
전임자 | 움베르토 2세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 장 샤를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 | 빅토르-프랑수아 마리 레옹 |
후임자 |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디 사보이아 | 아이모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 에두아르 라모랄 로돌프 드 리뉴 | |
계승 실패 원인 | 1375년 왕국 멸망 |
2.30. 티베트
티베트의 군주위 요구자들은 중국이 1950년에 티베트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계승에 실패하였고, 중국공산당 측에서 멋대로 해당 작위의 후계자를 옹립하는 통에 대부분 계승을 포기한 상태이며, 이에 따라 여기에 등재된 작위의 후계자들 중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경우는 영영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티베트인뿐만 아니라 몽골족, 만주족 외 북방민족들도 티베트 불교를 열렬히 신봉하는 현 상황에서 만약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독립한다면 달라이 라마가 수장인 티베트 불교 겔룩빠는 독립국가 티베트 국민들이 신봉하는 반중성향 종파와 중국에 잔류한 친중 티베트인 및 중국 북부 지역 주민들이 신봉하는 친중성향 종파로 분열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전자는 달라이 라마 제도가 폐지되어 선출직 지도자가 이끌게 되고 후자는 중국에 잔류한 일부 친중 티베트인이나 화북 지역 중국인 중에서 전임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여겨지는 인물이 나타나 그가 달라이 라마가 되어 이끌게 될 듯싶다.
2.30.1. 티베트 전륜성왕
관련 칭호 | 대칸 천자 원나라 황제 전륜성왕 |
작위 요구자 | 스티브 조르첸 해럴드 보르지긴 |
후임자 | 단젠 보르지긴 |
계승 실패 원인 | 1368년 티베트 상실 |
한편 청나라 황제가 티베트 측으로부터 전륜성왕으로 추대된 훗날의 역사를 감안하면 과거에 등재되었던 청나라 황제위 요구자도 티베트 전륜성왕 칭호의 요구자로 분류할 수 있었겠지만, 합의에 따라 선통제가 공식적으로 군주 칭호를 폐지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청나라 황제위 요구자가 삭제되었기 때문에 청나라 황제위 요구자가 티베트 전륜성왕 칭호의 요구자로 등재될 일은 없어졌다.
2.30.2. 달라이 라마
관련 칭호 | 달라이 라마 |
작위 요구자 | 제춘 잠펠 아왕 롭상 예셰 뗀진 갸초(14대) |
전임자 | 툽텐 갸초(13대) |
후임자 | 인도인으로 추정되나 달라이 라마직 폐지 예정[86] |
계승 실패 원인 | 1959년 자치권 상실, 인도로 망명 |
2.30.3. 카르마파 라마
관련 칭호 | 카르마파 라마 |
작위 요구자 | 우기엔 트린리 도르제(17대) |
전임자 | 랑중 리그페 도르제(16대) |
후임자 | 미정[88] |
계승 실패 원인 | 2000년 중국 정부의 압박을 피해 인도로 망명 |
2.30.4. 판첸 라마
관련 칭호 | 판첸 라마 타쉬룬포 사원[89]의 수장 | |
작위 요구자 | 게둔 최키 니마(정통)[90] | 기알첸 노르부(비정통)[91] |
전임자 | 최키 걀첸(10대) | |
후임자 | 없음(티베트 망명 정부에 의해 법통 단절이 선언됨.)[92] | 미정(기알첸 노르부의 환생으로 추정)[93] |
계승 실패 원인 | 중국공산당에 의해 정통 후계자가 납치된 후에 행방불명됨. 공산당이 불법으로 옹립한 비정통 후계자의 계승이 거부됨. |
만약 티베트가 독립한다면 기알첸 노르부는 독립한 티베트의 티베트 불교 겔룩빠에 의해 공식적으로 파문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중국의 티베트 불교 겔룩빠 신자들 중 걀첸 노르부를 판첸 라마로 인정하는 친중 성향 신자들 또한 함께 파문당할 듯싶다. 그리고 기알첸 노르부가 사실상 중국 공산당에 의해 임명된 만큼, 만약 티베트의 독립이 중화인민공화국의 멸망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기알첸 노르부는 티베트 판첸 라마위의 비정통 요구자이면서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의 판첸 라마위 요구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티베트의 군주로서의 지위를 요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민족을 막론하고 중국 공산당의 통치 하에 있었던 티베트 불교 신자들 모두(한족, 몽골족, 만주족 등 비티베트계 티베트 불교 신자 포함)의 지도자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공산당이 임명한 괴뢰 판첸 라마인 만큼,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붕괴되면 구(舊) 중공 체제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인사들을 제외한 전세계의 비(非) 티베트인 티베트 불교 신자들에게 가짜로 몰려서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2.31. 파키스탄
자세한 내용은 작위 요구자/아시아/파키스탄 문서 참고하십시오.2.32. 필리핀
필리핀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2.32.1. 동인도 국왕
관련 칭호 | 스페인 국왕 동인도 국왕 |
작위 요구자 | 펠리페 6세 |
전임자 | 후안 카를로스 1세 |
후임자 | 레오노르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 |
계승 실패 원인 | 스페인의 동인도 상실 |
스페인령 동인도에는 지금의 미크로네시아 지역도 포함되었지만 스페인령 동인도의 중심지는 지금의 필리핀 지역이었기 때문에 작위 요구자/오세아니아 문서가 아닌 본 문서에서 필리핀의 작위 요구자로 분류한다.
2.32.2. 술루 술탄
관련 칭호 | 술루 술탄 | ||
작위 요구자 | 무에드줄 라일 탄 키람 | 술탄 알리우딘 하디스 파블라 | 술탄 자말릴 아비린 |
계승 실패 원인 | 1898년 미국-필리핀 전쟁 당시에 미군에게 점령당함 1915년 미국령 필리핀에 합병됨 1936년 왕가의 직계 혈통 단절 후 왕가 내부에서 왕위 계승 분쟁 발생 |
[1] 네팔 왕실 참극의 주범이다.[2]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인정한 황제위 요구자.[3] 다만 이원은 공식적으로 황제위를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4] 대한제국 황족회가 인정한 황제위 요구자.[5] 이원의 큰아들.[6] 이해원의 큰아들인 이진휴는 대한제국이 준 살리카 방식으로 왕위를 계승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후임자가 된다. 하지만 한국 황실에서는 종법제를 따랐기 때문에 이해원 후손이 아닌 이원 후손에 계승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며, 이해원 사후에는 그렇게 되었다.[7] 타국에 망명한 일부 유럽 작위 요구자의 사례처럼, 공화국 정부에서 전 왕가를 껄끄럽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8] 나시모토 노리히코의 양자. 이구와는 사촌지간이다.[9] http://www.segye.com/newsView/20131201002503[10] 한국 황실의 외척 자격으로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11] https://archive.ph/vJwZ[12]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276007[13]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70825707&nidx=25708[1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61175.html[15] https://archive.ph/vJwZ[16] http://news.joins.com/article/22011935[17] http://news.joins.com/article/21598737[18]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26560[19] http://news.donga.com/3/all/20120922/49591674/1?[20]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라오스 왕국을 무너뜨리고 라오스의 공산화를 주도하고 초대 주석으로 취임한 쑤파누웡은 시사방 바타나의 친척, 즉, 라오스의 왕자였다. 그리고 라오스 내의 반공 민족주의 세력을 이끌던 수완나 푸마도 이 사람의 이복 형이자 역시 라오스 왕자였던 사람이다. 둘 다 왕족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왕실에 반대하고 공화주의를 주장한 점이 재밌는데, 만일 라오스의 마지막 왕세자 봉 사방의 직계혈통이 끊어지거나 직계후손들이 왕위 요구자 자리를 포기하는 등의 이유로 왕가의 계승권이 꼬이면 왕국을 무너뜨린 장본인인 두 형제들의 후손이 왕위 요구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도 생길 수 있다.[21] 그래서 이 나라의 실질적인 후신인 현대 레바논 공화국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마론파 기독교 신자다. 아랍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슬람이 주가 되지 못한 나라다.[22] 아랍 지역의 군주의 명칭들 중 하나다.[23] 다만, 메흐메드 알리가 레바논을 포함한 레반트 지역의 점령지들을 오스만 제국에 반환하면서, 이 지역에 다시금 행정관이 파견되었다. 당시 알리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공하고, 오스만 황제로부터 수니파의 칼리프위를 찬탈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너무 막나간다고 생각한 프랑스가 지원을 끊겠다며 협박해서 진정시킨 결과였다. 이 대신으로 알리가 통치하는 이집트 왕국이 오스만 제국의 정식 자치령으로 인정받았으므로, 알리 입장에선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24] 때문에 튀르키예에서 모든 것의 원흉격인 이집트 메흐메드 알리 왕조에 대한 이미지는 최악이다.[25] 참고로 브룩 가문은 동남아시아 역사상 유일한 유럽계 왕조이다. 그리고 브룩 왕가의 시조인 제임스 브룩은 양성애자이기도 하여, 현재까지 동남아시아 역사상 유일한 성소수자 군주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26] 독립국가인 외몽골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몽골 문화권 모두 해당된다. 다만 지금의 칼미키야 공화국 지역은 유럽에 있으므로 제외한다. 만약 칼미크 칸국의 작위 요구자를 추가한다면 작위 요구자/유럽 문서에서 러시아의 여러 작위 요구자들 중 하나로 분류하길 바란다.[마리아] 러시아 여대공[앤드류] 황태자 전하, (러시아) 공작[카를] 귀천상혼으로 라이닝겐 후작위 요구 포기[30] 키릴 블라디미로비치의 아들, 마리아 여대공의 아버지.[31] 카를 에미히의 아버지. 어머니가 알렉산드르 2세의 증손녀이다.[32] 제8대 라이닝겐 후작, 카를 에미히의 동생.[33] 일명 하얀 대칸(белый хан).[34] 몽골에서 칸위 요구자를 찾아냈으나, 그 특유의 계승 방식때문에 그 정체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35] 후술할 내용대로 몽골에서 젭춘담바 후툭투위 요구자를 찾아냈으나, 미성년자인 관계로 신원이 공개되지 않았다. 일단 10대로 지목된 쌍둥이 형제의 이름은 각각 알탄나링 아귀다이와 알탄나링 아칠타이이나, 둘 중 누가 진짜 10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36] 영어 위키백과의 10대 젭춘담바 후툭투 문서에 의하면, 미국 시민권을 보유한 몽골계 미국인이며 2015년생이라고 한다. 젭춘담바 후툭투의 아버지는 수학자이고 어머니는 몽골 정치인의 딸이며 본인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둘 중 누가 젭춘담바 후툭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37] 자세한 건, 티베트 불교/환생자 제도 문서 내지는 아래의 판첸 라마 부분의 각주들을 참조하길 바란다.[38] 잔지바르 최후의 술탄이다.[39] 잠시드 빈 압둘라의 아버지다.[40] 잠시드 빈 압둘라의 장남이다.[41] '툰 아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42] https://www.pinterest.co.kr/pin/463378249132941643/[43] 특이하게도 먼저 침략한 건 버마다. 정확히는 버마 내의 반란 세력들이 패망하고 영국령 인도 지역으로 망명했는데 버마 측이 이들을 도로 끌고가겠다고 국경을 넘어버리자, 이에 영국이 대노하여 선전포고를 하고 버마군에 반격을 가한 것이다.[44]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미얀마와 같은 상좌부 불교가 대세인 나라에서는 대처승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승 불교가 대세인 나라 중에서도 일본은 대처승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45] 사오파는 샨어로 군주를 가리키는 단어다.[A]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성이 없었으나 1932년 튀르키예의 성씨법 제정 이후로 편의상 오스만 1세의(Osman) 자손(Oğul의 3인칭 한정형인 oğlu)'이라는 의미로 오스만오을루(Osmanoğlu)라는 성을 쓰고 있다.[B] 이 사람은 오스만 제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A] [B] [50] 현 요르단의 국왕이다.[51] 정확히는 인도 오디샤 출신 정복자의 왕조였지만 타밀족이 다수민족이었기 때문에 왕족들이 타밀족에 동화되었다.[52] 잔인한 성격의 알부케르케는 불교 신자들의 신앙을 깨뜨려 버리겠다며 석가모니의 이빨 사리를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부숴버렸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크게 분노하여 그가 이끌던 포르투갈 군대를 순식간에 개발살내버리고 스리랑카 땅에서 이들을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알부케르케 본인도 이 때문에 포르투갈 왕실의 눈 밖에 나서 포르투갈령 인도 총독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고아로 가다가 배 안에서 객사했다. 정작 문제의 석가모니의 이빨은 진작에 캔디 왕실이 빼돌려서 무사했고, 화강암으로 가짜를 만들어서 포르투갈 군이 훔쳐갈만한 곳에다 놔둔 것이었다(...). 군중들은 포르투갈 군을 몰아낼 때는 이걸 모르고 있었다가 나중에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계획대로[53] 이 사람이 캔디 왕국 최후의 왕은 아니다. 진짜 마지막 왕은 스리 비크라마 라자신하였다.[A] [B] [56] 일례로 반 탈레반 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암룰라 살레 전 부통령과 아흐마드 마수드 국가해방전선 사령관 같은 반 탈레반 정치 인사들 역시 군주제의 복고보다 연방제에 근거한 공화제를 주장하고 있다.[57] 하지만 현실적으로 왕정 복위의 가망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지 최근에는 아예 왕정 복위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이란 정부에게 이란 귀국이나 방문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란 정부 측에서는 이들이 국외 망명 생활을 접고 이란으로 귀국할 경우 즉각 검거해 처벌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세한 건 왕정복고, 팔라비 왕조 문서 참조.[58] 물론 에티오피아인 앞에서 대놓고 이런 말을 한다면 그 에티오피아인은 엄청나게 화를 낼 것이다.[59] 움베르토 2세의 후손이다. 이탈리아 왕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60]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후손이다. 이탈리아 왕국과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61] 샤를-앙투안 마리 루이 외젠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62] 현 스페인의 국왕이다.[63] 카를 1세의 후손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64] 이 사람은 현재 카레이서로 활동하고 있다.[65]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루살렘 왕국 왕위는 중동권 기독교인들의 수호자 직위를 의미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왕국의 부활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여전히 많은 군주들이 명목상으로나마 이 작위를 자칭하고 있다.[66] 예루살렘 왕국 국왕으로서는 아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영국과 프랑스가 이 명분으로 레반트 지역을 점령하고, 수많은 친영, 친불 국가를 수립해서 현지의 정계에 간섭을 했다.[A] [B] [69] 이는 개신교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종파에 교황의 개념이 있는 것과 같다. 가령, 가톨릭은 로마 주교가, 콥트 정교회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가 교황직을 맡으며, 나머지 개신교가 아닌 모든 종파도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부인할 뿐, 교황이라는 직책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70] 2019년에 자살.[A] [B] [73] 칼리프를 자칭하는 명분으로 자신이 무함마드의 후손임을 들었으나, 무함마드의 후손은 아라비아 반도 전체에 널리고 널렸다.[74] 그리스인, 알바니아인, 남슬라브족 등 발칸반도 선주민들은 비록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탄압받을지언정 아랍인들처럼 아예 무시당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고위직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았다.[75] 수니파의 칼리프직이 튀르키예 공화국의 세속주의 정부에 의해 폐지된 것과는 대조적이다.[76] 종교 지도자의 경우, 관할해야 할 지역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가톨릭의 교황은 바티칸이, 정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는 이스탄불이, 콥트 정교회의 교황은 알렉산드리아가, 이슬람교 시아파의 라흐바르는 테헤란이 그 관할구역인 식이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이 관할구역에서 신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작위 요구자로 간주되는 식이다. 가령 역사상의 대립교황이나 현대의 달라이 라마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77] 움베르토 2세의 후손이다.[78]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후손이다.[79] 샤를-앙투안 마리 루이 외젠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A] [A] [82] 움베르토 2세의 후손이다.[83]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후손이다.[84] 샤를-앙투안 마리 루이 외젠 라모랄 드 리뉴 라 트레무아유[85] 여담으로, 이 가문이 바로 물질파를 처음으로 예견한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루이 드 브로이가 속한 가문이다. 루이 드 브로이는 7대 수장이었다.[86] 달라이 라마 14세 본인의 뜻에 따라 그의 사후에는 티베트에 공화정을 도입할 계획이다.[87] 애초에 중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티베트를 한족에 동화시키려고 시도한데다 자치권도 거의 무시하고 있어서 반중감정이 생긴 거다. 이 점에서는 2019년에 있었던 홍콩 민주화 운동과도 같으며, 그래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88] 후임자가 없는 까닭은 아직 우기엔 트린리 도르제의 나이가 30대로 젊기 때문이지만 최악의 경우 언젠가 이쪽 또한 달라이 라마처럼 군주로서의 지위를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89] 티베트 제2의 대도시인 시가체에 위치해있다.[90] 제10대 판첸 라마가 공인한 후계자다.[91] 중국공산당이 불법으로 옹립한 사람이다.[92] 게둔 최키 니마 본인의 생사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 영원히 후계자가 나오지 않을 예정이다.[93] 만약 티베트가 독립한 후 티베트 불교가 친중파와 반중파로 갈라진다면, 걀첸 노르부 및 그의 환생으로 간주되는 후임 판첸 라마가 대대로 티베트 불교 친중파의 구심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94] 과거 9대 판첸 라마 시절에 13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 판첸 라마의 독자적인 자치권역을 빼앗기고 종교 지도자의 역할만 맡도록 강요된 역사가 있어서 달라이 라마 측과 판첸 라마 측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가 자주독립파의 구심점이 되자, 자연스레 판첸 라마는 친중 성향을 띄게 되었다. 문제는 9대 판첸 라마는 자신의 자치권을 회복하겠다고 중화민국을 끌어들였다는 것으로, 이후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때의 일을 계기로 티베트 문제에 개입할 명분이 생겨서 티베트인들 사이에서 9대 판첸 라마에 대한 평가가 매우 안 좋다. 대만의 티베트 불교 신자들은 국민당을 지지하는 친중화민국파와 민진당을 지지하는 티베트 독립파로 나누어지는데, 전자가 9대 판첸 라마에 대해 긍정적 재평가를 시도하는 것과 달리 후자는 티베트 본토인들처럼 9대 판첸 라마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95] 티베트 불교는 명망있는 고승들은 죽을 때 누군가로 환생한다고 믿어서 그의 환생자로 여겨지는 아이가 그 고승의 후계자가 된다. 가령, 독실한 티베트 불교 신자였던 스티븐 시걸은 충닥 도르제라는 고승의 후계자로 공인받은 바 있었고, 티베트 불교가 국교인 부탄에서는 국사(國師)의 환생자로 추정되는 아이가 셋이나 나오는 아스트랄한 일이 벌어지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96] 이미 왕실에 등을 돌린 보수파 주민들이 대다수 라고 한다.[97] 사바 주를 두고 '이곳은 술루 술탄국의 고토'드립을 치는 게 어불성설인 것이, 이곳은 술루 술탄국이 망하기 한참 전에 당시 보르네오 섬 북부를 전부 통치하던 브루나이에 의해 합병된 상태였고, 이 상태로 영토 회복을 하지도 못한 채로 브루나이에서 영국령 말라야 연방을 거쳐서 말레이시아령으로 편입된 것이라서 이제와서 술루 술탄국 관계자들이 영유권을 주장할 건덕지는 없다. 이런 고토 회복 드립을 이용해서 필리핀 정부도 '술루 술탄국의 영토가 전부 필리핀령이 됐으니 이 나라의 옛 땅들은 다 내 거임!'하며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땅따먹기를 시도했다가 동남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비난만 받고는 영유권 주장을 보류했다. 하지만 아직도 떡밥은 유효해서 필리핀 정계에서 사바 북부 지역에 대해 영유권 드립을 치는 인간이 종종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