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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서오릉 高陽 西五陵 West Five Royal Tombs, Goyang | |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용두동)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
면적 | 1,870,267㎡ |
지정연도 | 1970년 5월 26일 |
건축시기 | 조선 시대 |
소유단체 | 국가유산청 |
관리단체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 |
서오릉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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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西五陵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조선 왕실의 왕릉. 이름의 뜻은 서쪽에 있는 5개의 능(陵)이라는 뜻이다. 사적 제198호 고양 서오릉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른 조선왕릉들과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왕실의 족분(族墳)을 이룬 곳으로 5릉은 경릉(敬陵), 창릉(昌陵), 익릉(翼陵), 홍릉(弘陵), 명릉(明陵) 등을 말하며, 그 외에 숙종의 후궁인 희빈 장씨의 묘소(위 지도에서 6번)도 이곳에 있다.
꽤나 유명한 인물들의 능묘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순창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능묘의 주인공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조연급으로 나왔던 인물들이다. 경릉은 세조의 장남은 의경세자와 그의 부인인 인수대비의 능이고, 창릉은 세조의 차남이자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정과 그의 부인인 안순왕후의 능이다. 그리고 숙종과 관련한 인물들도 있는데 당장 본인 숙종과 그의 세 왕후가 모두 이곳에 능이 있으며 역시 왕후에까지 올랐던 장희빈도 이쪽으로 묘가 옮겨 왔다. 또한 사도세자와 관련한 인물들의 능묘도 있는데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묘와 사도세자를 보호해주던 정성왕후의 능이 있다. 그야말로 조선 왕조의 드라마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묻혀 있기에 다른 왕릉들에 비해 인기가 꽤 있는 편에 속한다.
참고로 정문에서 가장 먼 창릉까지 그냥 걸어만 가도 30분 정도가 족히 걸릴 정도로 꽤나 길고 고차도 상당한 편이다. 전부 다 돌아본다면 1시간 정도는 족히 잡고 와야 한다. 지리적으로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 및 구산동과 근접해 있다. 그 덕에 은평구 소재 학교들은 꼭 한 번은 이 곳으로 소풍을 올 정도로 자주 오는 곳.
현재 국가유산청이 관리감독하고 있다. 입장료는 성인이 1,000원이지만, 단체(10인 이상)은 800원으로 할인되며, 만 65세 이상은 무료, 만 24세 이하도 무료다.
2. 왕릉
2.1. 경릉(敬陵)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덕종과 소혜왕후의 왕릉 | 서오릉 내 1기 경릉 敬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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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매장자 | 언덕 좌: 소혜왕후 (1504년 5월 21일 사망) 언덕 우: 덕종 (1457년 9월 29일 사망) |
조성시기 | 1470년 2월 22일 |
홈페이지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경릉(敬陵) 전경 |
1457년(세조 3년) 의경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고양현 치소 동쪽(현재의 자리)에 의묘(懿墓)를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장인 정역(鄭易)의 묘가 있던 자리였으나, 의묘가 조성되면서 정역의 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경릉(敬陵)으로 높여졌다. 이후 1504년(연산군 10년) 소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생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경릉 근처에 그녀의 능을 조성하였다.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소혜왕후의 능침(左)과 덕종의 능침(右)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경릉(敬陵)의 표석 |
2.2. 창릉(昌陵)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예종과 안순왕후의 왕릉 | 서오릉 내 2기 창릉 昌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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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매장자 | 언덕 좌: 예종 (1470년 1월 9일 사망) 언덕 우: 안순왕후 (1499년 2월 12일 사망) |
조성시기 | 1470년 1월 19일 |
홈페이지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창릉(昌陵) 전경 |
2.3. 명릉(明陵)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왕릉 | 서오릉 내 3기 명릉 明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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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
매장자 | *언덕 좌 인원왕후 (1757년 5월 13일 사망) *언덕 우 |
조성시기 | 1701년 9월 22일 |
홈페이지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명릉(明陵) 전경 |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으로, 인원왕후는 그 옆에 단릉으로 묻혀있다. 인현왕후는 숙종보다 한참 먼저 세상을 떠났고, 후에 숙종도 60세를 일기로 승하하면서 그녀 옆에 묻히길 원했다고 전해진다. 숙종이 죽기 전까지 현재 왕비였고 가장 오랜 기간 숙종의 정비였던 인원왕후는[3] 끝내 죽어서도 홀로 남편을 바라보는 형태로 묻히고 말았다.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숙종·인현왕후의 능침(左)과 인원왕후의 능침(右)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명릉(明陵)의 표석[4] |
여담으로 숙종의 능침에는 그가 평소 아꼈다고 전해지던 고양이 금손도 함께 묻혀있다. 또한 서오릉 구역 내에 숙종의 다른 왕후와 후궁들의 묘역도 있는데, 하나는 첫 번째 정비 인경왕후의 단릉인 익릉, 다른 하나는 희대의 여인 희빈 장씨의 무덤인 대빈묘이다.
2.4. 익릉(翼陵)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인경왕후의 왕릉 | 서오릉 내 4기 익릉 翼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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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단릉(單陵) |
매장자 | 인경왕후 (1680년 12월 16일 사망) |
조성시기 | 1681년 12월 22일 |
홈페이지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익릉(翼陵) 전경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익릉(翼陵)의 석물 |
2.5. 홍릉(弘陵)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정성왕후의 왕릉 | 서오릉 내 5기 홍릉 弘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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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단릉(單陵) |
매장자 | 정성왕후 (1757년 4월 3일 사망) |
조성시기 | 1757년 4월 9일 |
홈페이지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홍릉(弘陵) 전경 |
1757년(영조 33년)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자신이 묻힐 자리를 미리 만들어 둔 허우제(虛右制)를 조성하였다.[6] 석물의 배치 역시 쌍릉의 형식으로 조성하였고 빈 자리의 정혈(正穴)에 십자(十字) 모형을 새겨 묻는 등 영조는 생전에 정성왕후 곁에 묻히길 희망했다. 그러나 영조 사후 즉위한 정조가 당시 살아있던 정순왕후의 눈치도 같이 살펴야 하는 상황에 신하들의 의견 불일치까지 겹치는 바람에 영조를 현재 동구릉 권역에 장사지냈고, 결국 홍릉은 정성왕후 혼자 쓸쓸히 묻힌 채 남아있게 된다.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홍릉의 난간석과 문·무인석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 |
홍릉(弘陵)의 표석 |
3. 원(園)과 묘(墓)
3.1. 순창원(順昌園)
<colbgcolor=#1b0e64><colcolor=#ffd400> 조선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園) | 서오릉 내 원(園) 1기 순창원 順昌園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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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합장분(合葬墳) |
매장자 | 순회세자 (1563년 10월 16일 사망) 공회빈 윤씨 (1592년 4월 4일 사망) |
조성시기 | 1871년 1월 30일 |
홈페이지 |
<colbgcolor=#1b0e64><colcolor=#ffd400> |
순창원(順昌園) 전경 |
조선 제13대 국왕 명종의 장남인 순회세자와 그의 부인 공회빈 윤씨가 안장된 원(園). 서오릉 내에 있는 능묘들 중 수경원과 함께 둘 뿐인 '원(園)'이다. 조성 당시에는 순회묘(順懷墓)라 불리었으나 1870년(고종 7년)에 순창원으로 승격되며 격에 맞는 석물들이 조성되었다.
3.2. 수경원(綏慶園)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영빈 이씨의 원(園) | 서오릉 내 원(園) 2기 수경원 綏慶園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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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단분(單墳) |
매장자 | 영빈 이씨 (1764년 8월 12일 사망) |
조성시기 | 1871년 1월 30일 |
홈페이지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
수경원(綏慶園) 전경 |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소유 영빈 이씨가 안장된 원(園)이다. 원래는 연세대학교 교정에 있었으나 1969년 서오릉으로 천장했고, 봉분이 있던 자리에는 루스채플이 세워졌다.
3.3. 대빈묘(大嬪墓)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옥산부대빈 장씨의 묘 대빈묘 大嬪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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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
조성형태 | 단분(單墳) |
매장자 | 옥산부대빈 장씨 (1701년 11월 9일 사망) |
조성시기 | 1970년 이후 |
홈페이지 |
<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
대빈묘(大嬪墓) 전경 |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의 후궁이자 제20대 국왕 경종의 생모인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로, 원래는 경기도 광주군[7]에 있었던 묘소였으나 19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장되었다. 정비가 아니지만 국왕이 되는 원자를 생산한 후궁은 통상적으로 묘소의 칭호가 '원(園)'이 되어야 하나, 죄를 지어 사약을 마시고 죽은 죄인인 희빈 장씨는 본래의 대우를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묘로 남게 되었다.사실 희빈 장씨 사후 1753년(영조 29년)에 왕의 생모인 후궁의 무덤을 원으로 삼는 제도가 정해졌으나 장씨는 죄인인 데다 해당 제도를 만든 영조부터가 희빈 장씨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희빈 장씨의 무덤은 “원(園)”으로 승격되지 못했다.
위치는 경릉 옆쪽 언덕길 올라가는 곳이다.
희빈 장씨의 생애가 워낙 파란만장했던 탓인지 온갖 귀신 괴담이 돌아다녔던 장소이기도 하다.
4. 관련 문서
[1] 동구릉의 추존 왕 문조익황제와 비 신정익황후 조씨의 수릉도 동일한 이유로 신정왕후가 왼쪽에 묻혔으나, 수릉은 합장릉이기 때문에 신도비를 봐야 알 수 있다.[2]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의 글씨이다.[3] 인원왕후가 왕비에 있던 기간은 전임자 인경왕후나 인현왕후보다 훨씬 긴 18년이다.[4] 왼쪽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표석, 오른쪽이 인원왕후의 표석이다.[5] 1680년 인경왕후가 사망하고 그로부터 40년이 지나서야 숙종이 사망했다.[6] 숙종의 명릉과 조성 과정이 똑같은데, 영조가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할 당시 명릉의 예를 참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7] 現 광주시 오포1동(법정동 문형동 452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