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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1-03 14:41:59

일본 패망 하루전

블루리본상 작품상
제57회
(2015년)
제58회
(2016년)
제59회
(2017년)
초고속! 참근교대 일본 패망 하루전 신 고질라
1. 개요2. 시놉시스3. 등장인물4. 내용 및 평가

1. 개요

메인 예고편
Naver 영화 소개 페이지
일본의 가장 긴 하루(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는 2016년 8월 11일, 즉 광복절 4일 전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 일본 영화이다.

1965년에 발간된 한도 카즈토시[1]논픽션 '일본의 가장 긴 하루 운명의 8월 15일' 이 원작이다. 이후 일부 개정되어 '일본의 가장 긴 하루 결정판'으로 재발간되었고 이 버전은 국내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현재는 절판.

1967년에도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다. 이번이 2번째 영화화.

원래 영화의 일본어 제목 그대로 해석하면 '일본의 가장 긴 하루'지만 국내개봉을 위해 '일본 패망 하루전'이라고 바꿔 개봉했다.

옥음방송궁성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 자체는 스즈키 간타로일본 내각총리대신이 되는 1945년 4월부터 시작되나 항복 하루전인 8월 14일에 있었던 일이 영화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 시놉시스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연합군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요구 받는다. 하지만 항복반대를 주장하는 군부의 압력에 일본 내각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다. 8월 14일 정오, 일왕의 항복선언이 받아들여지는 한편, 일본군 내부에서는 종전을 서두르는 무리와 항복 선언 발표를 막으려는 무리 간에 충돌이 발생한다. 전쟁의 끝을 선언하는 천황의 라디오 발표까지 남은 시간은 단 24시간. 목숨을 건 마지막 결전이 벌어지는데…

마침내 찾아온 심판의 날!
모두가 숨죽였던 24시간의 기록이 드디어 공개된다!

3. 등장인물

일본 정군부의 주요인물이나 관계자임에도 별다른 대사가 거의 없이 모습만 비추는 인물들이 많으며 적잖은 등장인물들이 작중에서 직함과 이름을 불려지지 않은 탓에 대략적인 등장인물만 소개하며 비중이 높은 인물들은 볼드체로 표시한다. (실존인물들의 경우 겸직하고 있는 여러 직책들 중 대표적인 것들만 표기한다.)

4. 내용 및 평가

쇼와 천황을 미화하는 영화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4]. 큰 전개로는 일본의 항복선언까지의 과정과 궁성사건의 전개를 축으로 삼는데, 한 쪽은 '천황은 자신에게 전쟁 책임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구국의 결단을 내려 항복을 결정했다'는 연출로 볼 수 있고, 다른 한 축인 궁성사건도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국가를 생각하는 진심이었다'는 연출로 볼 수도 있다. 애시당초 모토키 마사히로가 천황을 연기했다는 자체가 엄청난 미화

전반적으로 영상의 연출이 담담해보여서 오히려 폭주하는 군부 인사들의 광기를 보여주는 부분으로도 볼 수 있지만, 아나미가 자결하는 씬이나 비장한 배경음악 등, 나라를 걱정하는 입장인것 처럼 묘사되는 부분 때문에 설명이 궁색해진다.

항복 찬성파의 대표격 인물인 스즈키 간타로 총리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바보스럽게 연출된다는 비판이 있다. 스즈키 총리는 당시 77세의 고령인데다 2.26 사건 당시 죽다 살아난 후로 건강이 무척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는 노회한 정치인의 위장전술로 보이며, 결과적으로는 비이성적인 항복 반대파에 비해 훨씬 이성적이고 유능한 인물로 묘사되는 편이다.

내각에서 항복을 결정하고 결과를 어전회의로 넘기려는 총리에게, 아나미 육군대신이 소장파 장교들의 쿠데타를 막기 위해 하루만 늦춰달라고 요구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내각 서기관에게 '하루면 소련만주, 조선, 사할린을 거쳐서 홋카이도까지 온다. 그러면 독일처럼 분단돼. 상대가 미국뿐일때 마무리 지어야 해'라고 이야기한다. 정세를 꿰뚫어보는 노회한 정치인 그 자체이다. 거기다 제국 헌법의 맹점을 파고들어 최고전쟁지도회의를 개최한 뒤 직접 천황의 결단을 받아내서 이것을 무기로 육군의 반발을 제압하는 등 정치력도 상당하다.

반대로 본토결전을 이어가자고 주장하는 쿠데타 세력의 대표인 하타나카 겐지는 초반까지는 비교적 평범한 인물로 묘사되었으나, 항복 결정이 난 이후로는 내내 광기에 사로잡혀 비이성적이고 극단적인 행적을 보여준다.

쇼와 덴노에 대한 묘사는 양가적인 면이 있는데, 국민의 희생을 걱정해서 결단하는 모습이나, 손수 풀을 뽑고 신하들을 걱정하는 연출은 확실히 미화하는 부분이나, 쇼와 덴노의 전쟁 책임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은 없고, 모호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는 쇼와 덴노가 생전에 명백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역사상으로 쇼와 덴노의 전쟁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쇼와 덴노가 전쟁 말엽에 소련의 중재를 통해 이미 정상궤도를 한참 벗어난 일본 제국의 체제와 지위가 상당부분 보존되길 바랐던 인물이긴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까지는 아직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회의 등에서 덴노는 양측의 입장을 모두 경청하고, 개인적인 의견은 내지 않으며 다수의 의견 쪽으로 최종 승인을 해주는 중간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한국 관객들이 원하는대로 쇼와 덴노를 그냥 도조 히데키급 악역으로 묘사하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정확한 묘사는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쇼와 덴노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쇼와 덴노가 당대의 일본과 전쟁 자체 대해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는 따로 묘사되지 않으며, 그가 전쟁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는 사실, 상황이 갈수록 암울해지자 관례를 깨고 항복에 찬성 의견을 냈다는 사실[5], 군부 내 강경파와 관계가 영 좋지 않았다는 사실[6] 등 명확한 역사적 사실만을 묘사하고, 논란이 있는 부분들은 아예 언급을 피한 편이다.

쇼와 덴노가 마치 인자한 성군처럼 묘사된 연출이나 기타 한국 관객이 공감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어찌됐든 쇼와 덴노를 등장시킨 작품이면서 역사고증은 비교적 충실한 편인 이 영화로서는 그럭저럭 현명한 판단을 한 셈. 그래도 해당 영화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고 싶다면 옥음방송 관련 다큐도 같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이러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 전체적으로 당시의 일본 상황과 일본 수뇌부가 저지른 실책들을 굉장히 중립적으로 잘 다루었다.

본토결전을 고집하며 충신 코스프레를 하는 중진들의 본모습이 잘 묘사되었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계속 전선을 확대하면서 막나가던 군부인사들은 전범재판에 회부되거나 패전책임의 책임을 지고 매장당하거나 자신이 쥐고 있는 권력을 상실할 것이 두려워 본토결전에서 얼마의 피해가 발생하던 최대한 처절하게 싸워 연합국을 기진맥진하게 만든 뒤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선에서 강화조약을 맺길 원했다.

또 황국판타지를 신봉하며 국민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군인들의 광기를 조명했다. 그리고 청일전쟁/러일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승전신화와 근대 제국주의에 심취한 나머지 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 구미열강의 제국주의를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일본 특색 파시즘에 빠져버린 일본제국의 최후가 잘 묘사되었다.

이러한 당시 사상적 정서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각색된 승전신화를 발판삼아 자신의 권력입지를 다져온 도조 등 대본영과 이에 열광하던 신세대 소장파 장교집단, 그리고 비교적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가진 내각과 비주류 온건파 장교, 중간자적 입장인 쇼와 덴노 간의 이야기를 짜임세 좋게 풀어냈다.

토미 리 존스가 주연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엠퍼러' 영화에서의 쇼와 덴노, 그리고 일본 내각관료및 고위 무장들의 모습보다 복합적인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육군 대본영의 막장성과 비현실적 이상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내각 관료들은 도조를 비롯한 소장파 장교들의 위세를 누르기 위해 쇼와 덴노의 형식적 지위인 '군 대원수' 직책을 이용해 육군 대본영의 위세를 억누르려 하였으며 도조 히데키와 쇼와 덴노의 독대에서 도조 히데키의 궤변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사례를 들어 아닥하게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일본 국민 2,000만명을 카미카제로 내보내면 승리의 바람이 분다며 본토 결전 시 자국 국민을 카미카제로 동원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며, 무엇보다 본토 결전하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허황된 환상을 갖고 있다.

물론 당시는 1억(일본인 7천만+조선인과 대만인 3천만명) 총옥쇄와 같은 선전구호가 한참 남발되던 시기였고 미국은 본토 결전시 수십발의 원자폭탄까지 동원해 일본을 아예 초토화지대로 만드는 몰락 작전을 계획중이었다.

특히 연합군 측이 보내온 답변 중 덴노의 지위를 보장하는 부분에서 'Subject to'라는 문구의 해석문제로 소장파 장교들의 분노하여 쿠데타를 계획하게 된 발단이 된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각에서는 'Subject to'를 덴노의 권위를 연합군의 '관리 또는 제한 하에 둔다'라는 의미로 번역하였지만, 소장파 장교들은 웹스터 사전을 검색해서 연합군에 '종속시킨다'라고 번역하였다. 그냥 맘에 안 드는 뜻을 찾아서 명분을 만들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어전 회의에서 쇼와 덴노는 연합군(정확히는 미국)에 대한 항복을 승인한다. 이 시점 전에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대본영은 본토 결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아나미 육군 대신은 본토 결전을 주장하는 육군 소속이었지만, 덴노를 우선하는 근황파였기 때문에 덴노의 뜻을 무시하는 대본영을 그리 달갑게 보지 않았다. 때문에 아나미 육군 대신은 항복 반대를 기대했던 소장파 장교들에게 덴노의 항복 및 종전의 뜻을 전해줬다. 소장파 장교들은 쿠데타를 위해 동부군 사령부 및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며 뜻을 같이하는 다른 장교 및 상급 장군을 포섭하려 하지만 덴노의 뜻이 정해져 발표된 후라 아무도 동참하려 하지 않는다.

내각에서 덴노의 조서를 작성하는 회의에서 아나미 육군 대신은 '패배했기 때문에 종전하는 것이 아닌 전쟁 국면이 호전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종전한다'라고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지만 해군 대신의 반대로 뜻을 굽히게 된다. 그러나 요나이 해군 대신은 회의 도중 해군성에 가서 육군 일부 장교들이 자신과 스즈키 총리대신을 암살하려한다는 정보를 듣고는 회의를 빨리 끝내 종전을 앞당기고자 육군 대신의 의견에 찬성한다.

그리고 이후 계속된 회의에서 내각 서기관은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옳지 않으며 종료하는것이 옳은 길이라는 의미로 '의명(依命)'으로 적시하자는 전문가의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야쓰이 토지 국무대신이 "국민이 '의명'이란 단어를 알기나 하겠냐?"라는 막장 논리를 대며 '시운'으로 쓸 것을 종용한다.

이에 서기관은 '시운'은 시간이 그냥 흐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로 맞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역시 간단히 묵살되고 만다. 의명을 반대한 야쓰이 토지는 극중에서 아나미와 함께 종전을 추진하고 대본영에 반대하던 그나마 개념 있는 인물이었다.

소장파 장교들의 쿠데타는 차츰 현실화되고 아나미 육군대신은 사직서를 준비한다. 집에서 나올 때 참전했다가 먼저 죽은 장남의 영정사진을 가방에 넣어 갔으며, 사세구를 아내에게 맡겼다. 이때 앞으로의 일을 묻는 부관에게 '군대를 버리고 나라를 남긴다. 우리 군인들은 모두 죄인이야' 라는 말로 대신하며 '육군성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신속한 종전처리'라고 답한다.

덴노는 방공호에서 옥음방송을 위한 사전 녹음을 준비하고 소장파 장교들은 궁성을 장악해 덴노를 인질로 삼아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킨다는 작전을 계획하고, 근위병들을 포섭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어찌됐든 새벽 2시에 쿠데타를 감행한다'는 지극히 대본영스러운 막장 행동을 굽히지 않는다.

더욱이 근위 사단장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1941년 나치 독일의 기습공격을 거론하며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소련이 2천만명을 희생해 나치를 몰아냈다"고 언급하는데, 다시말해 자국민 2천만명, 아니 그 이상을 죽여가면서 본토 결전을 하겠다는 소리다. 그러면서 "독일아돌프 히틀러가 죽을 때까지 끝까지 싸워 민족적 자존심을 지켰다"라며 끝까지 싸울 것을 역설한다.[7]

다행히 상식적인 사단장이 "머리 좀 식힐겸 메이지 신궁 참배나 가자"며 시간을 벌려 하자, 뒤따라온 하타나카가 상황을 파악하곤 차고 있던 권총으로 사단장을 쏴 죽이고 부관도 일본군도로 베어 죽인다. 그 뒤 죽은 사단장의 인장을 탈취해 멋대로 명령장을 작성한다. 일본 육군의 광기가 끝을 알수 없는 지경으로 변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본 이다 중좌와 사단장의 다른 부관은 동부군 사령부로 그대로 달려가 쿠데타가 일어났음을 신고한다. 이다 중좌는 위의 장광설을 늘어 놓던 장교였는데 하타나카가 아무렇지 않게 사단장을 쏴 죽이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바로 동부군 사령부로 달려간 것이다.

이후 덴노의 옥음방송이 담긴 테이프를 탈취하기 위해 방송회관을 점거하고, 궁내성황거를 포위하고 황거의 시종들과 정보국 총재를 구금하고 테이프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그들이 테이프의 위치를 발설할 리 없었고, 쿠데타 측의 계획은 급격하게 꼬여가기 시작한다.

한편, 아나미 육군대신은 모든 일이 끝나자 자신을 찾아온 처남에게 할복할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한다. 처남 역시 쿠데타 측에서 회유를 위해 보냈지만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매형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 그와 마지막 술자리를 가진다. 그 후 아나미는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와중에 동부군과 헌병대의 진압이 시작되고 쿠데타에 동원된 대부분의 군대와 장교들이 근위사단장의 위조된 명령서에 의해 움직였기에 명령이 위조된 걸 안 장교들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기 시작한다. 하타나카 일행은 방송국을 점거하여 자신들의 궐기의 당위성을 알리는 방송을 송출하고자 하나 방송국 직원이 기계의 작동을 중지시키면서 실패하게 된다. 결국 하타나카 일행은 황거 뜰 안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마지막으로 덴노의 옥음방송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일제가 수립한 결호작전의 허황된 현실과 막장성도 여과없이 묘사된다. 내각 요인들이 병기고를 시찰하니 본토결전 대비 병기랍시고 보여주는 것들이 화승총이나 냉병기, 농기구에 불과한 한심한 수준이어서 총리조차 혀를 내두른다. 총리 등 내각 인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게 이 정도면, 평균적인 수준은 당연히 그 이하였기 때문이며, 이걸 둘러본 스즈키 총리와 내각관방이 혀를 내두르며 "이런 걸로 대체 뭘 할 수나 있겠냐?"며 한탄할 정도다. 이 정도면 항복해야 정상인데 이걸 자랑이랍시고 보여주며 본토결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대본영의 상황판단이 비정상이라는 이야기다.참고 링크

그리고 죽창을 들고 훈련을 받는 어린 여학생들을 육군대신 아나미가 착잡하게 바라본다. 자신의 장남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아버지보다 먼저 간 아들, 그리고 남아있는 자신의 딸의 모습과 훈련받는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기도. 더욱이 이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았으나, 실제로 어떤 지방은 죽창 들고 훈련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무기나 땔감으로 다 써 버려서 죽창 훈련을 시키고 싶어도 대나무가 다 베이고 없어서. 왜 대나무가 없었냐면 사단을 파견할 때 구명구를 만들 고무가 없어 대나무로 구명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구명구를 만들 고무가 없어서 대나무를 베어간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남방에는 쓸 만한 목재가 없어 본토의 대나무를 보낸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일본의 경제 상황을 식사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다. 쇼와 덴노ㆍ고준 황후 부부가 궁성에서 식사를 하는데, 단출한 바지락죽 한 그릇이 전부이며 반응을 볼 때 이런 상차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님을 추측이 가능하다. 게다가 '민간에선 아직 식량 유통이 가능해서 앞으로 폐하와 함께 식사를 할 때는 자택에서 각자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건의가 나오고 이를 히로히토가 허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앞의 바지락죽 장면과 연계해보면, 덴노와 고위 관료들의 식사 모임에 올려야 할 음식들도 제대로 구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육/해군은 자신들의 주도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며 의미없는 논쟁이나 벌이고 있고, 도조 히데키의 어그로도 계속된다. 영화 내에서 도조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애초 영화 자체가 당시 상황에 대해 묘사하는데 집중되어 작중인물 개개에 대한 묘사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다.

물론 간간히 도조 및 본토 결전파 대본영 쪽 사람들의 막장스런 멘트는 계속 나오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영화의 장면 중 히로히토가 항복을 선언하려고 하자 도조가 항복은 반대한다며 그가 좋아하는 생물학을 내세워 천황은 소라게이고 소라 껍질은 군대로 빗대어 표현해 "소라껍질 없는 소라게는 죽습니다."라고 항복은 결사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히로히토가 소라게의 정식 학명을 말하며 "너[8]영국미국, 소련 지도자들이 소라게를 먹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소라게를 먹지 않고, 껍질 채 버리겠지."라고 윽박지른다. 이 뜻은 "네가 나의 신변의 안전이라는 구실로 전쟁을 계속하려는 모양인데,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면 연합국들의 지도자들이 군대는 물론이고 나까지 죽여서 일본을 아예 지워버린다. 네가 빗대어 표현한 말은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도조가 그 말을 듣고 깨갱하는 모습이 백미. 참고로 히로히토는 해양 생물학에 대해서는 전문가급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히로히토 본인부터가 어류학을 전공한 학자였고 이에 관련한 논문까지 낸 바 있다.[9]

이영화에서 가장 미화된건 아나미 육군대신. 처음부터 육군에서 명망높은 자신의 입장을 이용해 강경한 발언과 거짓말로 육군이 폭주하지 않도록 김빼기로 해주면서 항복 결정후 쿠데타도 자기가 할복하면 구심점이 없어 대충 끝날 짓이라는 걸 알고 할복하는 식으로 나온다. 할복도 목배기 안받고 그냥 과다출혈로 천천히 죽는 식으로 묘사해서 끝까지 미화 받은 사람[10]

더불어 도조 히데키 같은 주요 인물의 실제 인물의 재현도가 높다.

과장된 연기와 CG 삽입으로 상징되는 일본 영화의 인식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 덕에 연기력이 매우 훌륭하다. 또한 제국주의 후반 시기와 덴노, 대본영 등 한국, 중국 등 주변국 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민감한 소재를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중립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몰입하여 볼 수 있다. 오히려 일제와 맞서 싸운 미국에서 제작한 '엠퍼러'가 일본에 대한 우호적 시각이 짙게 배어있는 것과 대조되는 희한한 경우인 셈.


[1] 半藤一利, 1930-2021. 나츠메 소세키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며 일본에선 논픽션작가로 유명했다.[2] NHK 대하드라마 도쿠가와 요시노부,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 영화 굿 바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키키 키린의 사위다.[3] 자신도 무리한 요구인 것을 알았는지 조건을 제시한 후 의자에 앉은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고, 스즈키 총리와 동석한 비서 겸 장남은 조건문을 보며 한숨을 쉰다.[4] 물론 쇼와 천황은 전쟁을 끝내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화주의적인 면모를 부각시켜야 했을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천황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일본 주류 영화계에서 터부시된다.[5] 물론 멋대로 한 것은 아니고, 반대파와 찬성파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결론이 안 나오자 스즈키 총리가 특별히 요청한 것이다.[6] 아버지인 다이쇼 덴노 때부터 쭉 이어져 온 갈등이다. 이때부터 명목상으로나마 드높았던 덴노의 권위가 많이 실추된 것은 사실.[7] 물론 정작 독일은 하나도 남아나는것 없이 초토화 당했고 물론 뒤의 일이지만 다수의 전범들이 처형되다 못해 나라가 4조각 되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통제를 받다가 최정적으로 2개로 쪼개져버렸다. 도대체 어느 점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지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졌다는 것을 고려했을때 그저 궤변이라는것을 알 수 있다.[8] 영화에서 대사는 '너(お前)'이지만 번역이 자네라고 되어서 유통되고 있다. 디테일을 살리지 못한 번역이 매우 아쉬운 부분, 천황은 극중 사적인 대화에서 시종일관 자신을 와따쿠시(私)라며 최고의 겸양어를 사용하고 부하들에게도 최대한 예우하는 말을 해준다. 그에 반해 도조 히데키는 자신을 나(予)라고 지칭하며 매우 강하고 오만한 말투를 사용한다. 도조가 사실상 천황을 겁박하는 소라게 발언을 했을 때 비로소 천황이 최초로 나이많은 도조에게 '너'라고 지칭하며 '감히 너 따위가 짐을 능멸하느냐'는 격의 차이를 보여주고 도조는 얼어붙는다. 이런 부분을 무난한 번역을 위해 '자네는'이라고 번역한 부분은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9] 그 영향으로 아들 아키히토도 해양 생물학을 깊이 전공해,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망둑어의 분류법을 제시해 망둑어의 일부 종의 학명에는 아키히토라는 본인 이름까지 붙었으며, 백과사전을 직접 집필하기도 했다. 아키히토 외에도 히로히토의 둘째 손자인 후미히토나 첫째 딸인 히가시쿠니 시게코 등도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했을 정도.[10] 다만 묘사를 우호적으로 한 거지, 한 일은 실제와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