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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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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상
최선희
崔善姫 | Choe Son Hui
파일:최선희 외무상.bmp
<colbgcolor=#d6b534><colcolor=#FFF> 출생 1964년 8월 10일 ([age(1964-08-10)]세)
평양시
소속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선거구 강원도 고성군 온정선거구(제484호)
학력 평양외국어대학 (영어영문학 / 학사)

1. 개요2. 생애
2.1. 초기 이력2.2. 외무성 제1부상 시절2.3. 외무상 시절
3. 경력4. 여담5. 참고문헌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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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정치인이자 외교관.

김정일 시대부터 활동해온 북한의 대표적인 대미(對美)외교 전문가이다. 외무성 연구원, 미국국 국장, 제1부상 등을 거쳐 현재 외무성 외무상으로 재직 중이다.

2. 생애

2.1. 초기 이력

1964년 8월 10일에 평양에서 태어났다. 고아 출신으로 북한내각총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등을 역임한 최영림의 양녀로 입양되었다.

북한에서 공부하다가 영어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1976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베이징 55중학교에 편입했으나, 그곳에서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그러다 1978년, 전명수 당시 주중북한대사가 황화 당시 중국 외교부장에게 유학생 중 한명인 허담의 딸 허영희까지 내세워서 부탁한 덕분에 베이징외국어대학 부속 중학교로 전학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하지만 1978년 12월, 중국에서조차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은 과오라고 비판이 나오자 놀란 김일성은 1980년 2월에 중국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을 다 철수시키면서 돌아왔다. 이후 오스트리아, 몰타 등으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한다. 몰타에 갈때 남녀 2명씩 총 4명이 파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었다고 한다. 전 배우자는 정찰총국 산하 무역회사 소속 간부 한용권이라고 하며, 결혼은 90년대에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이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8년 정무원 외교부에 입부, 1995년 경수로 협상에서 통역사로 등장했다. # 1998년 외교부가 외무성으로 개편된 이후 외무성에서 통역 담당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1999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남북미중 4자회담에서 외무성 연구원 직함으로 참석했다. #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당시에 통역을 맡았다. 이후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자 6자회담 당시 북한 대표단의 영어통역사로 참석했으며 이후 김정은의 영어통역사로도 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며 수준급이라고 한다. 6자회담에서 통역으로 출석하였을 당시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우선 입고 나온 옷이나 액세서리 등이 모든 서양 명품이었고, 2004년, 3차 6자회담 때 한국 측 수석대표가 김계관에게 인상이 참 좋으시다고 덕담하자 갑자기 인상을 쓰면서 인상만 좋으면 뭐하냐고 항의해 한국 측 대표들을 당황시켰다. 또 미국 측 통역사인 한국계 이민자 통 김의 통역을 듣더니 엉터리 통역이라며 "나는 이 자리에 필요없겠군!"이라고 성을 내고 김계관도 무시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다른 통역들과는 급이 맞지 않아 얘기를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어울리지 않는 등 매우 무례하고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여서 고위관료의 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많았는데 나중에 사실로 드러났다. 다만 김계관이 미국을 보고 "쫓겨나는 며느리의 심정"이라고 조롱하는 등 지나치게 한국적 표현을 쓴 탓에 이 내용을 통역하는데는 가끔 실수했다고 한다. #

이후 외무성 미국국에서 성과를 보이며 승승장구하였고, 2009년, 빌 클린턴미국 대통령의 방북 당시에도 영어통역사로 일했다. 2010년 10월, 김계관의 방중에 즈음하여 미국국 부국장 승진이 확인되었으며, 2016년에 미국국 국장 겸 미국연구소 소장으로 승진, 12월 13일부터 15일, 캐나다 외교부 대표단이 북한에서 국가전복음모죄로 투옥된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를 면회하기 위해 찾아왔을때 외무성 부상 한성렬과 함께 면담하였다.

2.2. 외무성 제1부상 시절

2017년 9월 25일, 러시아 외무부 순회대사 올레그 부르미스토프의 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2018년 2월,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하였으며 3월 8일, 안톤 흘로프코프 러시아 에너지 및 안전센터대표단장과 회담하였다. 2018년 5월 7일, 북중정상회담에 리수용, 리용호, 김여정과 함께 배석했다. 5월 24일, 김계관의 볼튼에 대한 비난 담화에 이어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을 겨냥한 담화를 발표하여 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할 것이라고 미국 측을 위협했다.
21일 미국부대통령 펜스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수 있다느니,북조선에 대한 군사적선택안은 배제된적이 없다느니,미국이 요구하는것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

대미사업을 보는 나로서는 미국부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무지몽매한 소리가 나온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

명색이 《유일초대국》의 부대통령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도 좀 알고 대화흐름과 정세완화기류라도 어느 정도 느껴야 정상일것이다.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를 고작해서 얼마 되지 않는 설비들이나 차려놓고 만지작거리던 리비아와 비교하는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에 이어 이번에 또 부대통령 펜스가 우리가 리비아의 전철을 밟게 될것이라고 력설하였는데 바로 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할수 있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힘을 키웠다.

그런데 이 엄연한 현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우리를 비극적인 말로를 걸은 리비아와 비교하는것을 보면 미국의 고위정객들이 우리를 몰라도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되받아 넘긴다면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수 있다.

펜스는 자기의 상대가 누구인가를 똑바로 알지 못하고 무분별한 협박성발언을 하기에 앞서 그 말이 불러올 무서운 후과에 대해 숙고했어야 하였다.

저들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 마치 우리가 마주앉자고 청한듯이 여론을 오도하고있는 저의가 무엇인지,과연 미국이 여기서 얻을수 있다고 타산한것이 무엇인지 궁금할뿐이다.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것이다.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여하에 달려있다.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할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것이다.

주체107(2018)년 5월 24일

평 양(끝)

이를 두고 남북미 데탕트 분위기의 판을 깼니 하는 북한 사정을 전혀 모르는 분석도 나왔지만 당연히 최선희가 독단적으로 이런 담화를 발표할리는 없고 상부의 지시에 따른 발표이다. 어쨌거나 최선희의 이 같은 발언이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이 있다고 문제삼아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6월 12일에 싱가포르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북한에게 통지하여 판 자체가 엎어지고 말았다. 이에 5월 25일, 김계관이 허겁지겁 후속 담화를 발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는 력사적뿌리가 깊은 조미적대관계의 현 실태가 얼마나 엄중하며 관계개선을 위한 수뇌상봉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주고있다."라고 정상회담을 다시 읍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유화 제스처를 조건부적으로 받아들이며 6월 12일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정상적으로 개최되었다. 일각에서 엉뚱한 최선희 책임론을 거론하며 최선희가 이 때문에 문책을 받을 것이라고 섣불리 넘겨짚었지만 북한에서 최선희를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 자체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최선희가 혼자서 미쳐서 이런 성명을 발표했을리도 없고, 이러한 성명 발표에 있어 최선희가 어떤 입장이었는지는 전혀 알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1차 북미정상회담 때도 수행원으로 당당히 포함되었으며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에도 북측 대표로 참석하였다.

7월 20일, 이고르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성 부상의 방북 때 회담을 진행했으며, 7월 26일, 중국 외교부 대표단과도 면담하는 등 대중, 대러 외교에도 계속 활동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도 수행원으로 동석하였으며,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4월 1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 및 외교위원회 위원에 선출, 김계관의 후임으로 외무성 제1부상에 임명되었으며 6월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3주년 중앙보고대회에도 중앙위원회 위원인데도 주석단 1열에 정치국 위원인 리수용, 리용호와 참가하면서 그야말로 북한 정권 내의 대미 외교라인의 실세로 자리를 굳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4월 20일, 조선중앙통신사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볼튼에 대한 비난 발언을 내놓았다.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 블룸버그통신과의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3차 수뇌회담에 앞서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결정을 하였다는 진정한 표시가 있어야 한다느니,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큰 거래》에 대해 론의할 준비가 되여있어야 한다느니따위의 희떠운 발언을 하였다.

원래 우리는 볼턴 보좌관이 언제 한번 리성적인 발언을 하리라고 기대한바는 없지만 그래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라면 두 수뇌분들사이에 제3차 수뇌회담과 관련하여 어떤 취지의 대화가 오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말을 해도 해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지금 볼턴의 이 발언은 제3차 수뇌회담과 관련한 조미수뇌분들의 의사에 대한 몰리해로부터 나온것인지, 아니면 제딴에 유모아적인 감각을 살려서 말을 하느라 하다가 빗나갔는지 어쨌든 나에게는 매력이 없이 들리고 멍청해보인다.

볼턴의 이 답변에서는 미국사람들의 발언에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미국식재치성도 론리성도 찾아보기 힘들다.

경고하는데 앞으로 계속 그런 식으로 사리분별없이 말하면 당신네한테 좋은 일이 없을것이다.(끝)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동행했으며, 4월 30일, 조선중앙통신사와의 인터뷰 형식을 빌려 이번에는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지난 24일 미국무장관 폼페오가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경로변경》을 운운하였다.

이것은 최대의 압박과 경제봉쇄로도 우리를 어쩔수 없게 되자 군사적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어이 우리 제도를 무너뜨려보려는 어리석고 위험한 발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께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것이 필요하며 올해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다시말하여 미국이 올해말까지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면 핵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시한부를 정해주시였다.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께서는 지난 4월 25일 진행된 조로수뇌회담에서 미국의 일방적이며 비선의적인 태도에 대하여 강하게 질타하시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태도에 따라 좌우될것이며 우리는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우리의 비핵화의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때가 되면 비핵화를 할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현재의 셈법을 바꾸고 립장을 재정립해가지고 나오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미국이 운운하는 이른바 《경로변경》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미국만의 특권이 아니며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선택이 될수도 있다.

미국이 지금처럼 문제를 헤집고 딴길에서 헤매이면서 우리가 제시한 시한부내에 자기 립장을 재정립해가지고 나오지 않는 경우 미국은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보게 될수 있을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갈길을 알고있지만 미국에 시한부를 정해준만큼 선택을 망설이고있을뿐이다.

미국은 우리가 올해말까지 시한부를 준 의미를 깊이 새기고 향후 경로를 정하는것이 좋을것이다. (끝)

2019년 6월, 2019년 남북미정상회동에 동석했다. 2019년 7월 27일, 김정은의 국립교향악단 공연관람을 수행하였으며, 8월 31일, 담화를 발표하여 또 폼페이오를 비난했다.
최근 미국상층부에서 우리를 걸고드는 심상치 않은 발언들이 련이어 튀여나오고있다.

27일 미국무장관 폼페오는 《북조선의 불량행동이 간과할수 없다는것을 인식하였다.》는 비리성적인 발언을 하여 우리를 또다시 자극하였다.

폼페오가 《불량행동》이라는 딱지까지 붙여가며 우리를 심히 모독한것은 그들 스스로가 반드시 후회하게 될 실언이다.

폼페오의 이번 발언은 도를 넘었으며 예정되여있는 조미실무협상개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을뿐아니라 미국인들에 대한 우리 사람들의 나쁜 감정을 더더욱 증폭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로 떠밀고있다.

미국의 외교수장이 이런 무모한 발언을 한 배경이 매우 궁금하며 무슨 계산을 가지고있는가에 대해서는 지켜볼것이다.

끔찍한 후회를 하지 않으려거든 미국은 우리를 걸고드는 발언들로 우리의 인내심을 더이상 시험하려들지 않는것이 좋을것이다.

주체108(2019)년 8월 31일

평 양(끝)

그리고 근성있게도 9월 9일에도 담화를 발표했다.
나는 미국에서 대조선협상을 주도하는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조미실무협상개최에 준비되여있다고 거듭 공언한데 대하여 류의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께서는 지난 4월 력사적인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것이 필요하며 올해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것이라는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나는 그사이 미국이 우리와 공유할수 있는 계산법을 찾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측과 마주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론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

나는 미국측이 조미쌍방의 리해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것이라고 믿고싶다.

만일 미국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수도 있다.

주체108(2019)년 9월 9일

평양(끝)

하지만 10월 1일에는 훨씬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조미쌍방은 오는 10월 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 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우리측 대표들은 조미실무협상에 림할 준비가 되여있다.

나는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조미관계의 긍정적발전이 가속되기를 기대한다.

주체108(2019)년 10월 1일

평양 (끝)

하지만 이내 수틀려서 12월 5일에 다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며칠전 나토수뇌자회의기간에 다시 등장한 대조선무력사용이라는 표현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우려를 키우고있다.

우리가 더욱더 기분나쁜것은 공화국의 최고존엄에 대해 정중성을 잃고 감히 비유법을 망탕 쓴것이다.

이로하여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증오는 격파를 일으키며 더한층 달아오르고있다.

보도된바와 같이 조선인민군은 이에 대하여 즉시 자기의 격한 립장을 밝혔다.

우리 외무성 역시 최대로 예민한 시기 부적절하게 내뱉은 트럼프대통령의 발언에 불쾌감을 자제할수 없다.

트럼프대통령의 무력사용발언과 비유호칭이 즉흥적으로 불쑥 튀여나온 실언이였다면 다행이겠지만 의도적으로 우리를 겨냥한 계획된 도발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바로 2년전 대양건너 설전이 오가던 때를 련상시키는 표현들을 의도적으로 다시 등장시키는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도전으로 될것이다.

우리는 무력사용과 비유호칭이 다시 등장하는가를 지켜볼것이다.

만약,만약 그러한 표현들이 다시 등장하여 우리에 대한 미국의 계산된 도발이였다는것이 재확인될 경우 우리 역시 미국에 대한 맞대응폭언을 시작할것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일발의 시기에 의도적으로 또다시 대결분위기를 증폭시키는 발언과 표현을 쓴다면 정말로 늙다리의 망녕이 다시 시작된것으로 진단해야 할것이다.

우리 국무위원장은 트럼프대통령을 향하여 아직 그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주체108(2019)년 12월 5일

평 양(끝)

2019년 1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 참석했으며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2020년에 들어서는 두문불출하다가 2020년 7월 4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에 즈음하여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우리의 기억에서마저도 삭막하게 잊혀져가던 《조미수뇌회담》이라는 말이 며칠전부터 화제에 오르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

당사자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서뿌르게 중재의사를 표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국대통령선거전에 조미수뇌회담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미국집권층이 공감하고있다는 소리도 들려오고있다.

지어는 그 무슨 《10월의 뜻밖의 선물》을 받을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명하면서 우리의 비핵화조치를 조건부적인 제재완화와 바꾸어먹을수 있다고 보는 공상가들까지 나타나고있다.

나는 사소한 오판이나 헛디딤도 치명적이고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게 될 지금과 같은 예민한 때에 조미관계의 현 실태를 무시한 수뇌회담설이 여론화되고있는데 대하여 아연함을 금할수 없다.

이미 이룩된 수뇌회담합의도 안중에 없이 대조선적대시정책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는 미국과 과연 대화나 거래가 성립될수 있겠는가.

우리와 판을 새롭게 짤 용단을 내릴 의지도 없는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겠는가 하는것은 구태여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

미국이 아직도 협상같은것을 가지고 우리를 흔들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계산표를 짜놓고있다.

그 누구의 국내정치일정과 같은 외부적변수에 따라 우리 국가의 정책이 조절변경되는 일은 없을것이다.

더 긴말할것도 없다.

조미대화를 저들의 정치적위기를 다루어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

주체109(2020)년 7월 4일

평 양 (끝)

결국 김정은의 대미 외교는 실패로 끝났고, 2019년 12월, 리선권이 새로 외무상에 임명된 후 그와 갈등을 빚다가 3개월간 혁명화를 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 그리고 2021년 1월,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외교관들의 전반적 지위가 대폭 낮아졌는데, 이 영향을 받은건지 최선희 역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조용하다가 3월 17일에 오랜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성명을 발표하여 미국에 대한 강경정책을 천명했다.
미국은 2월 중순부터 뉴욕을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와의 접촉을 시도해왔다.
미국은 최근에 여러 경로를 통해 전자우편과 전화통보문을 보내오면서 우리와의 접촉을 요청하였으며 합동군사연습을 벌려놓기 전날 밤에도 제3국을 통해 우리가 접촉에 응해줄것을 다시금 간청하는 메쎄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미국의 시간벌이놀음에 응부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조미접촉이나 대화도 이루어질수 없다는 립장을 밝혔으며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의 접촉시도를 무시할것이다.
대화 그 자체가 이루어지자면 서로 동등하게 마주앉아 말을 주고받을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여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정권이 바뀐 이후 울려나온 소리는 광기어린 《북조선위협》설과 무턱대고 줴치는 《완전한 비핵화》타령뿐이였다.
백악관,국무성,재무성,사법성 등이 줄줄이 나서서 미국은 여전히 북조선억제에 중요한 관심을 두고있다느니,추가제재와 외교적자극을 포함하여 어떤 수단을 사용할것인가를 검토하고있다느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는가 하면 우리를 반대하는 국제회의를 소집한다,《합동주의보》를 발표한다,그 누구에 대한 기소놀음을 벌린다는 등의 강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있다.
미군부는 은근히 군사적위협을 계속 가하고 숱한 정찰자산들을 동원하여 우리에 대한 정탐행위를 감행하고있으며 내외의 한결같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겨냥한 침략적인 합동군사연습을 뻐젓이 벌려놓았다.
한사코 우리를 헐뜯고 걸고드는 버릇 또한 고치지 못한것 같다.
미국은 우리 국가의 방역조치를 놓고도 그 무슨 《인도주의지원》을 저해한다는 매우 몰상식한 궤변을 뱉아놓았다.
일본을 행각한 미국무장관이 여러 압박수단 혹은 완고한 수단 등이 모두 재검토중이라고 떠들며 우리를 심히 자극하였는데 이제 남조선에 와서는 또 무슨 세상이 놀랄만한 몰상식한 궤변을 늘어놓겠는지 궁금해진다.
우리와 한번이라도 마주앉을것을 고대한다면 몹쓸 버릇부터 고치고 시작부터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새 정권이 시작부터 재미없는짓들만 골라하는것을 꼼꼼히 기록해두며 지켜볼것이다.
조미접촉을 시간벌이용,여론몰이용으로 써먹는 얄팍한 눅거리수는 스스로 접는것이 좋을것이다.
새로운 변화,새로운 시기를 감수하고 받아들일 준비도 안되여있는 미국과 마주앉아야 아까운 시간만 랑비하게 된다.
싱가포르나 하노이에서와 같은 기회를 다시는 주지 않을것임을 명백히 한다.
미국이 즐겨 써먹는 제재장난질도 우리는 기꺼이 받아줄것이다.
미국은 자기들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계속 추구하는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것인지를 잘 생각해보는것이 좋을것이다.
우리는 이미 강대강,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것이라는것을 명백히 밝혔다.

주체110(2021)년 3월 17일
평 양(끝)

2021년 7월, 아버지 최영림과 7차 로병대회에 참석하였다.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 14기 5차 회의에서 국무위원인 관계로 회의 주석단에는 형식상 포함되었으나 회의에서 있던 국무위원회 인선에 따라 국무위원회에서 쫓겨났다. 외교위원 보선이 있던 것을 보아서 외교위원에서도 쫓겨났을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를 대신해서 국제전문가로 국무위원회에 중국통인 국제부장 김성남과 김정은의 입으로 대남 막말과 조련질을 담당한 김여정이 들어왔다. 이로서 국무위원회에 내부에서 서방통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이런 영 좋지 않은 모습 때문에 김정은의 총애를 잃고 끈떨어진 신세로 보였지만, 2021년 12월, 조선로동당 8기 4중전회에 참석하는 등 꾸준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여전히 현직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2.3. 외무상 시절

그러다가 2022년 6월 8기 5중전회에서 외무상으로 승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다시 북한의 외교정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외무성 입성 34년만에 장관인 상이 된 것이다. 또 북한 최초의 여성 외무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2년 7월 1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홍콩반환 축전을 보냄으로서 첫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외무상 자격으로 북한의 친선국들에게 축전을 보내는 활동을 주로 하다가 7월 28일, 전승절 행사에서도 최영림을 수행하며 나타났다. 9월에 개최될 최고인민회의 14기 7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정작 14기 7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인선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국무위원회 재입성은 미뤄졌다. 9월 7일, 최고인민회의 14기 7차 회의 주석단에 포함되었다. 10월 10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11월 17일, 조선중앙통신사를 통해 담화를 발표, 한미일의 북한 도발에 대한 공동대응에 대해서 격렬히 반발, "미국이 동맹국들에 대한 《확장억제력제공강화》에 집념하면 할수록,조선반도와 지역에서 도발적이며 허세적인 군사적활동들을 강화하면 할수록 그에 정비례하여 우리의 군사적대응은 더욱 맹렬해질것이며 그것은 미국과 추종세력들에게 보다 엄중하고 현실적이며 불가피한 위협으로 다가설것이다. 미국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도박을 하고있다는것을 깨닫게 될것이다."라고 위협했다. 12월 17일, 내각 각료들과 함께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 12월 26일, 사회주의헌법 제정 50주년 기념보고대회에 김덕훈, 조용원, 최룡해, 박정천, 리병철, 리일환, 김재룡, 전현철, 박태성, 박정근, 김영철, 오일정, 박태덕, 김형식, 조춘룡, 한광상, 리철만, 김성남, 김여정, 리선권, 양승호, 주철규, 리창대, 박수일, 우상철, 김영환, 리영길, 정경택, 리태섭과 함께 참석하였다. 정치국 후보위원 중 서열 1위로 부상하는 등 서열이 급상승하였다. 이후 8기 6중전회에 참석, 28일부터 리선권, 김성남과 함께 외교분과 협의회에 참석했다. 12월 31일, 방사포 증정식에 참석했다. 2023년 2월 8일 열병식에 다른 정치국 위원들과 함께 참석했다. 2월 17일, 내각-국방성 체육경기에 내각 대표로 참석했다. 2월 2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했다.

5월 8일, 의례방문해 온 왕야쥔 당시 중국대사와 회담을 가지고 연회를 베풀었다. 5월 16일, 러시아 전승절을 기념하여 러시아 대사관 성원들을 상대로 친선모임을 조직하였다. 5월 19일, 현철해 서거 1돐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정치국 후보위원 신분임에도 국방상 강순남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들 좌우에 착석하는 등 상당히 높은 의전서열을 보여주었다. 2023년 6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및, 6월 1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5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같이 높은 의전을 받던 강순남이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한 것과 달리 외교적으로 할일이 없어서인지 여전히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남았다. 7월 25일, 김정은을 수행하여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을 참배했다. 7월 27일, 김정은과 쇼이구의 무장장비전람회 참관에 동행했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경축 대공연에 참석했다. 8월 27일, 해군절 기념연회에 참석했다. 9월 6일 김군옥영웅함 진수식에 김정은을 수행하고 참석하였으며, 샴페인병을 깨는 여성 주빈 역할을 불참한 리설주 대신 맡았다. 이후 9.9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9월 10일, 김정은과 함께 러시아로 출발했다. 9월 19일 귀국했다. 9월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6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했다. 9월 27일, 최고인민회의 14기 9차 회의에 참석했다. 10월 10일,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화환을 진정했다. 10월 18일,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영접, 그를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11월 23일, 만리경 1호 발사 기념 축하연회에 참석했다. 11월 26일, 선거에 참여했다. 12월 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7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했다. 12월 16일, 김정일 사망 12주기를 맞이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12월 2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 이후 대남, 외교분과 협의회를 지도했다. 12월 3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8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했으며 12월 31일, 신년경축공연을 관람했다.

2024년 1월 1일, 대남부서 정리를 위한 협의회를 지도하였다. 1월 5일, 중앙연구토론회에 참석했다. 이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상의 초청에 따라 러시아를 방문하기로 했으며 1월 15일에 도착한 것이 14시에 속보로 방영되었다. 1월 26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회담하였다. 2월 16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3월 8일, 3.8국제부녀절 114돐기념 중앙보고회에 참석했다. 3월 26일, 모스크바 테러를 추모하여 조용원, 박정천, 리일환, 강순남과 함께 러시아 대사관을 조의방문하였다. 4월 13일, 김정은-자오러지 회담을 수행했으며 이후 중국 중앙민족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4월 14일, 태양절을 기념하여 만수대언덕의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참배했다. 4월 16일, 김정은을 수행하여 화성지구 2단계 1만세대 살림집 준공식에 참석했다.

3.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내각 외무성 제1부상
2019년 4월 11일 2022년 6월 8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임명
외무상으로 영전
14기 국무위원회 위원
2019년 4월 11일 2021년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선출
최고인민회의 14기 5차 회의에서 소환
조선로동당 8기 정치국 후보위원
2022년 6월 8일 재임 중 8기 5중전회에서 임명
내각 외무상
2022년 6월 8일 재임 중 8기 5중전회에서 임명

4. 여담

5. 참고문헌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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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222>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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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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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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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주필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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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경우 여성 영웅이나 당원은 꽤 되지만 간부는 적은 편이다. 이 영웅의 비중도 농업이나 상업에 몰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