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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2:21:10

컨템퍼러리 R&B

컨템퍼러리 R&B
Contemporary R&B
<colbgcolor=#4B5957><colcolor=#fff> 기원 장르 리듬 앤 블루스, , 소울
펑크(Funk), 힙합, 일렉트로닉
지역
[[미국|]][[틀:국기|]][[틀:국기|]]
등장 시기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
1. 개요2. 역사
2.1. 1990년대 이전2.2. 1990년대
2.2.1. 1990년2.2.2. 1991년2.2.3. 1992년2.2.4. 1993년2.2.5. 1994년2.2.6. 1995년2.2.7. 1996년2.2.8. 1997년2.2.9. 1998년2.2.10. 1999년
2.3. 2000년대
2.3.1. 2000년2.3.2. 2001년2.3.3. 2002년2.3.4. 2003년2.3.5. 2004년2.3.6. 2005년2.3.7. 2006년2.3.8. 2007년2.3.9. 2008년2.3.10. 2009년
2.4. 2010년대2.5. 2020년대
3. 주요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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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컨템퍼러리 R&B[1](Contemporary R&B)는 미국흑인 음악 장르로, 1980년대 이전에 존재하던 기존의 리듬 앤 블루스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명칭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대중화되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에 최전성기를 누린 장르로, 사실상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린 장르이기도 하다. 특히 힙합록 음악 쪽이 서양국가들에서만 인기 있는 경우가 많았다면, 컨템퍼러리 R&B 곡들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전성기가 지나서도 아티스트시대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이 시도되며 계속 영향력을 행사한다.[2]

2. 역사

2.1. 1990년대 이전

1979년 디스코 폭파의 밤을 계기로 미국에서 디스코 음악의 인기가 낮아져, 70년대 중후반 동안 미국 음악계를 지배하던 디스코의 시대가 끝나버렸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최전성기를 누렸던 장르라, 동시대의 음악에 사운드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는 포스트 디스코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 장르는 마이클 잭슨의 히트를 필두로 미국의 주류 장르가 되었다. 1979년에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앨범 Off the Wall은 새로운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를 대표하는 앨범이자 컨템퍼러리 R&B의 시조로 평가된다.[3]

1980년대 초중반에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스티비 원더, 프린스, 재닛 잭슨, 휘트니 휴스턴, 쿨 & 더 갱, 루서 밴드로스, 티나 터너, 포인터 시스터즈, 스모키 로빈슨, 프레디 잭슨 등의 미국 흑인 아티스트들은 컨템퍼러리 R&B를 새로운 장르로 확립하고 대중화시켰다. 1980년대의 컨템퍼러리 R&B는 R&B, 소울, 펑크(Funk), 디스코와 같은 기존의 흑인 음악 장르와 90년대식 컨템퍼러리 R&B를 연결해 주는 가교의 역할을 했다.

이 시절의 컨템퍼러리 R&B는 디스코 폭파의 밤 이후 흑인 음악씬의 판도가 빠르게 변하면서 생긴 장르였고 70년대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포스트 디스코와 같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사운드를 가진 장르로 발전했다.

전통적인 R&B는 혼 섹션, 스트링 섹션을 포함한 어쿠스틱 악기가 주로 사용되었고, 전자 악기는 해먼드 오르간을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았다. 컨템퍼러리 R&B는 전통적인 R&B에 비해 팝적인 성향이 강해졌고 어쿠스틱 악기의 사용이 크게 줄었다. 태동기인 80년대부터 드럼 머신신디사이저가 주요 악기로 쓰였다.

1980년대 초반 ~ 중반에 발매된 초기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4]

이 중에서도 재닛 잭슨휘트니 휴스턴은 동시대의 컨템퍼러리 R&B 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재닛 잭슨의 Control뉴 잭 스윙의 시초 격으로 기존의 흑인 음악을 모두 바꾸어 버리며 새로운 시대를 알렸다.[5] 휘트니 휴스턴은 기존의 흑인 음악에 백인 팝 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새로운 R&B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1980년대 후반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 1990년대

컨템퍼러리 R&B의 최전성기 시절

그야말로 컨템퍼러리 R&B 가수와 곡들이 빌보드 차트 1위를 독식하였으며, 타 장르의 가수들조차 한번씩은 시도 했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6]

그리고 1990년도부터 셀린 디옹[7]과 머라이어 캐리가 데뷔하며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일명 세계 3대 디바체제가 구축되었고, 후에 보이즈 투멘도 등장하며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된다.[8]

물론 얼터너티브 락과[9] 브릿팝과 일렉트로니카[10]같은 장르들을 시도하는 아티스트들도 있었고, 매우 큰 성과를 거두긴 했다. 거기다 세기말엔 틴팝이 유행하며 댄스곡들도 명맥을 유지하긴 했다.[11] 뿐만 아니라 라틴음악과[12] 힙합 등도 미국음악 시장에 본격적으로 메인 스트림에 진출하며, 점점 존재감을 드러냈기에 장르의 다양성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13]

하지만 1990년대의 팝 장르를 이끌었던건, 컨템퍼러리 R&B였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보여지던 현상이었다.[14][15]

팝 장르에서 R&B가 아닌 다른 포맷을 메인으로 삼았던 가수들 조차, 컨템퍼러리 R&B곡들을 앨범에 무조건 수록시키거나 아니면 싱글컷으로 활동은 했었다.[16]

특히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가창력이 대단히 중요해진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80년대에도 휘트니 휴스턴같은 가수들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1990년 셀린 디옹과 머라이어 캐리가 데뷔한 뒤, 가수들의 가창력(정확히는 음역대와 성구전환 능력)에 따라 컨템퍼러리 R&B 곡의 퀄리티가 차이가 심했다.

그러다보니 이 시기 인기가수들(특히 R&B장르)의 평균 가창력이 대단할 수 밖에 없었고, 가수들의 고음전쟁도 엄청나게 유발되던 시기였다.[17]

2.2.1. 1990년

토미 모톨라가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휘트니 휴스턴에 대항하기 위해 내세운 머라이어 캐리가 싱글 Vision of Love와 앨범 Mariah Carey로 1990년 데뷔와 동시에 말 그대로 초대형 성공을 거두었다. 머라이어 캐리는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의 컨템퍼러리 R&B를 시도해 성공을 거두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도 많이 나타났다.

또한 현대적인 R&B 걸그룹의 효시라 할 수 있는 En Vogue 역시 이때부터 성공을 거뒀다.

1990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18]

2.2.2. 1991년

이듬해인 1991년에는 미국에서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 90년대식 알앤비 그룹의 효시라 할 수 있는 Color Me Badd가 "I Wanna Sex You Up" 이란 곡으로 1991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위, "I Adore Mi Amor"가 빌보드 연말 차트 17위를 기록하는 초대형 히트를 거뒀다. 이 두 곡 모두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했으며, 보이즈 투 멘 역시 이 해에 "Motownphilly"라는 뉴 잭 스윙에 아카펠라를 첨가한 독특한 형식의 R&B로 큰 인기를 얻게 된다.[19]

이들 외에도 알앤비 그룹 Hi-Five, 알앤비 그룹 Surface, Ralph Tresvant[20] 등 수많은 미국 흑인 아티스트들이 이 해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곡들로 큰 히트를 거뒀다.

1991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3. 1992년

1992년에는 여러 아티스트들의 활약으로 컨템퍼러리 R&B 장르가 대중음악씬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보이즈 투 멘End of the Road이다.[21]

이 곡은 당시 최고 영화 배우 에디 머피와 신인 영화배우 할리 베리의 주연의 영화인 "부메랑"의 주제가였는데 영화의 대성공으로[22]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13주 연속 1위 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기존의 Physical이 가지고 있었던 10주 연속 1위 기록을 3주 차이로 깨는 대성공을 한다. 이후 이들은 머라이어 캐리와의 듀엣 곡으로 16주 연속 1위를 하며 23년 동안 빌보드 핫 100 최장기 1위 기록을 유지한다.

머라이어 캐리Color Me Badd도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내놓으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베이비페이스에 의해 만들어진 R&B 걸그룹 TLC가 인기를 끌며 En Vogue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게 된다. 또한 바비 브라운 역시 2집 "Bobby"의 히트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알앤비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는 메리 제이 블라이즈도 이때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데 데뷔 앨범 "What's the 411?"가 대히트를 치며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

1992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4. 1993년

1993년에는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전성 시대가 시작되는데, 뉴 잭 스윙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있었지만[23] 그에 따라 컨템퍼러리 R&B가 완벽하게 미국 음악 시장을 점령하게 되었다.

이 1993년의 컨템퍼러리 R&B 중에서도 제일 유명하고 중요한 것은 휘트니 휴스턴I Will Always Love You인데 휘트니 주연의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로 영화의 인기와 함께 빌보드 핫 100 14주 연속 1위라는 성적을 거두어 불과 1년 전 보이즈 투 멘의 최장기 1위 기록을 깨버리며[24] 빌보드 핫 100 최장기 1위 기록을 갱신한다.

1993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한 "I Will Always Love You" 외에도 1993년 빌보드 연말 차트 4위를 기록한 재닛 잭슨의 "That's the Way Love Goes", 연말차트 5위를 기록한 R&B 그룹 Silk의 "Freak Me", 연말차트 6위를 기록한 R&B 걸그룹 SWV의 "Weak", 연말차트 7위를 기록한 R&B 그룹 Shai의 "If I Ever Fall in Love", 연말차트 8위를 기록한 머라이어 캐리의 "Dreamlover" 등으로 1993년 미국 연말 차트 Top 10 중에 6곡의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곡이 차지하였다.

이 외에도 빌보드 연말 차트 Top 100 안에 수많은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곡이 차트인에 성공하며 미국 내 최고 인기 장르로서의 위력을 선보였다.

1993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5. 1994년

1994년은 탑 아티스트들이 서로 경쟁하는 시기였는데 보이즈 투 멘이 "I'll Make Love to You"로 빌보드 핫 100 14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1년 전 휘트니 휴스턴이 기록한 최장기 1위 기록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1994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위를 차지한 "I Swear"은 All-4-One[25]의 곡으로 빌보드에서 11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외에도 연말차트 5위를 기록한 머라이어 캐리의 메가 히트곡 Hero, 연말차트 7위를 기록한 토니 브랙스턴의 "Breathe Again" 등이 연말 차트 Top 10 안에 들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 해 역시 많은 R&B 신인 아티스트들이 등장하였는데 그 중 제일 대표적인 케이스가 위에 서술한 All-4-OneR. Kelly이다. 알 켈리는 "Bump n' Grind" '라는 곡으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으며 알켈리의 유일한 핫 100 1위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연말 차트 11위까지 오르는 등 히트에 성공하였다. [26] 이 곡의 대히트로 인해 알 켈리는 대스타가 될 수 있었다.

1994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6. 1995년

1995년은 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와 TLC의 대성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연말에 발매된 머라이어 캐리의 5집 Daydream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2,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리드 싱글인 "Fantasy"는 여가수 최초 빌보드 핫샷 1위[27]에 성공하고 8주 연속 1위 및 연말 차트 7위[28]를 차지하는 등 메가 히트하였다

TLC는 2집 "CrazySexyCool"이 1,6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거두고 발매한 싱글 중 "Waterfalls"와 "Creep"가 각각 1995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위, 3위에 오르며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이 곡들의 프로듀서인 베이비페이스LA 리드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연말차트 4위를 차지한 영국 흑인 아티스트 Seal[29]의 "Kiss from a Rose"는 영화 배트맨 포에버의 주제가로 영화의 대히트와 함께 이 노래도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보이즈 투 멘 역시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는데 "On Bended Knee"가 연말 차트 5위,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했다.

또한 댄스, 팝, 백인 음악의 아이콘이던 마돈나가 컨템퍼러리 알앤비를 대표하는 프로듀서 베이비페이스와 손을 잡고 R&B 곡인 "Take a Bow"을 발매했다. 이 곡은 연말 차트 8위를 기록하며 당시 하락세를 겪고 있던 마돈나의 커리어를 조금이나마 지탱해준 곡이다. 댄스 음악의 아이콘 격인 마돈나가 댄스 음악을 버리고 알앤비를 시도했다는 거 자체만으로 알앤비 전성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점이다.

이 외에도 Monica가 "Don't Take It Personal (Just One of Dem Days)"로 연말 차트 9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끌며 탑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몬텔 조던 역시 큰 히트를 거두었는데 "This Is How We Do It"이 빌보드 핫 100 7주 연속 1위를 기록했으며 연말 차트 10위를 차지하였다.

이 외에도 연말 차트 11위를 기록한 Dionne Farris의 "I Know", 연말 차트 12위를 기록한 보이즈 투 멘의 "Water Runs Dry", 연말 차트 13위를 기록한 Anita Howard의 "Freak Like Me", All-4-One의 "I Can Love You Like That"이 연말 차트 15위를 기록했고 연말 차트 20위를 기록한 영국 흑인 여가수 Des'ree의 "You Gotta Be"와 연말 차트 21위를 기록한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 등 수많은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곡들이 히트를 쳤다.

1995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7. 1996년

1996년은 컨템퍼러리 R&B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 해의 최고 히트곡인 머라이어 캐리의 5집 싱글이자 보이즈 투 멘과의 듀엣곡 One Sweet Day는 발매와 동시에 1위로 핫샷 데뷔를 하고 빌보드 핫 100 1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역대 빌보드 최장 1위 기록을 세웠다. 이 곡은 무려 23년 동안 빌보드 최장기 1위 곡 타이틀을 지켰으며 2019년이 돼서야 19주 1위 기록을 세운 Lil Nas XOld Town Road에 의해서 기록이 깨지게 되었다.

이 곡은 1996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아쉽게도 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메가 히트곡인 Macarena의 인기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최전성기 답게 연말 차트 Top 10 안에 정말 많은 R&B 곡들이 랭크 되었는데 연말 차트 4위를 The Tony Rich Project의 "Nobody Knows", 연말 차트 5위를 기록한 머라이어 캐리의 "Always Be My Baby", 연말 차트 7위를 기록한 Bone-Thugs-n-HarmonyEazy-E 추모곡 "Tha Crossroads", 연말 차트 9위를 기록한 토니 브랙스턴의 "You're Makin' Me High/Let It Flow", 연말 차트 10위를 기록한 Keith Sweat의 "Twisted"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연말 차트 14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의 "Exhale (Shoop Shoop), 연말 차트 16위를 기록한 브랜디의 "Sittin' Up in My Room", 연말 차트 17위를 기록한 투팍의 "How Do U Want It"[30], 연말 차트 20위를 기록한 LL Cool J의 "Hey Lover"[31], 연말 차트 21위를 기록한 LL Cool J의 "Loungin"[32], 연말 차트 27위를 기록한 알 켈리의 "I Can't Sleep Baby (If I)", 연말 차트 32위를 기록한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Not Gon' Cry", 연말 차트 34위를 기록한 112의 "Only You",[33] 연말 차트 35위를 기록한 알 켈리의 "Down Low (Nobody Has to Know)", 연말 차트 36위를 기록한 SWV의 "You're the One", 연말 차트 38위를 기록한 모니카의 "Before You Walk Out of My Life", 연말 차트 42위를 기록한 Blackstreet의 "No Diggity",[34] 연말 차트 43위를 기록한 3T의 "Anything, 연말 차트 45위를 기록한 TLC의 "Diggin' on You", 연말 차트 46위를 기록한 모니카의 "Why I Love You So Much", 연말 차트 47위를 기록한 Total의 "Kissin' You", 연말 차트 48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과 시시 와이넌스의 "Count on Me", 연말 차트 49위를 기록한 Fantasy" 등이 연말 차트 50위 안에 랭크되며 크게 히트했다.

1996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8. 1997년

1997년에도 컨템퍼러리 R&B는 큰 인기를 끄는 장르였다.

대표적으로 토니 브랙스턴의 "Un-Break My Heart"가 96년 말부터 97년 초까지 빌보드 핫 100 11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1997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4위를 차지했으며 펍 대디비기 추모곡 "I'll Be Missing You"가 빌보드 핫 100 11주 연속 1위[35][36]를 했고 연말 차트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연말 차트 6위는 알 켈리의 "I Believe I Can Fly", 연말 차트 7위는 En Vogue의 "Don't Let Go (Love)", 연말 차트 8위는 Mark Morrison의 "Return of the Mack" 등 모두 컨템퍼러리 R&B 곡이다.

또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어셔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는데,[37] "You Make Me Wanna..."가 빌보드 핫 100 2위, 연말 차트 14위라는 대히트를 거두었다.

이 외에도 연말 차트 13위를 기록한 모니카의 "For You I Will", 연말 차트 16위를 기록한 Keith Sweat의 "Nobody", 연말 차트 19위를 기록한 Az Yet의 "Hard to Say I'm Sorry", 연말 차트 23위를 기록한 Blackstreet닥터 드레, 퀸 펜의 "No Diggity", 연말 차트 24위를 기록한 Rome의 "I Belong to You (Every Time I See Your Face)", 연말 차트 26위를 기록한 베이비페이스의 "Every Time I Close My Eyes", 연말 차트 27위를 기록한 Dru Hill의 "In My Bed", 연말 차트 28위를 기록한 스파이스 걸스의 "Say You'll Be There", 연말 차트 30위를 기록한 보이즈 투 멘의 "4 Seasons of Loneliness", 연말 차트 31위를 기록한 알 켈리가 작곡한 Changing Faces의 "G.H.E.T.T.O.U.T.", 연말 차트 32위를 기록한 머라이어 캐리펍 대디의 "Honey"[38], 연말 차트 33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의 "I Believe in You and Me", 연말 차트 37위를 기록한 112의 "Cupid", 연말 차트 43위를 기록한 Allure의 "All Cried Out"[39], 연말 차트 44위를 기록한 뉴 에디션의 "I'm Still in Love with You", 연말 차트 48위를 기록한 702의 "Get It Together" 등이 연말 차트 50위 권 안에 든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이다.

1997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9. 1998년

1998년은 연말 차트 1, 2위 모두를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곡이 차지하며 미국 내 최고 인기 장르임을 인지하게 해주었다.

Next의‌ "Too Close"는 빌보드 핫 100에선 4주 연속 1위를 하고 1998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또한 브랜디모니카의 듀엣곡 "The Boy Is Mine"이 빌보드 핫 100에서 13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연말 차트 2위에 올랐다.

재닛 잭슨의 "Together Again"은 연말 차트 6위를 차지했고, K-Ci & Jojo의 "All My Life"가 연말차트 7위, 어셔의 "Nice & Slow"가 어셔의 첫 번째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 됨과 동시에 연말 차트 9위까지 오르며 슈퍼스타 어셔의 시작을 알렸다. 이 외에도 "You Make Me Wanna..."가 연말 차트 15위, "My Way"가 연말 차트 16위를 차지했다. 각각 피크 성적은 빌보드 핫 100 2위로 같다.[40]

머라이어 캐리 역시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소속사의 방해로 여러모로 손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My All"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고 연말 차트에서도 17위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41]

모니카는 "The Boy Is Mine" 말고도 "The First Night"이란 곡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5주 비연속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고 연말 차트에선 18위에 올랐다.

이 외에도 연말 차트 12위에 오른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No, No, No", 연말 차트 24위에 오른 Public Announcement의 "Body Bumpin' (Yippie-Yi-Yo)", 연말 차트 26위에 오른 Uncle Sam의 "I Don't Ever Want to See You Again", 연말 차트 27위에 오른 Montell Jordan의 "Let's Ride",[42] 연말 차트 30위에 오른 보이즈 투 멘의 "A Song for Mama", 연말 차트 34위에 오른 LSG의 "My Body", 연말 차트 39위에 오른 Jon B.의 "They Don't Know", 연말 차트 41위에 오른 Nicole의 "Make It Hot",[43] 연말 차트 42위에 오른 올 세인츠의 "Never Ever", 연말 차트 43위에 오른 자넷 잭슨의 "I Get Lonely"[44] 연말 차트 45위에 오른 Voices of Theory의 "Say It", 연말 차트 49위에 오른 MýaSisqó의 "It's All About Me" 등이 연말 차트 50위 권 안에 든 컨템퍼러리 R&B 곡이다.

1998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2.10. 1999년

1999년에는 컨템퍼러리 R&B의 세대 교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보이즈 투 멘의 전성기가 끝났으며, 90년대 최고의 스타이자 데뷔 이후 쭉 전성기를 이어오던 머라이어 캐리도 하락세를 겪기 시작했다.[45]

브리트니 스피어스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의 틴 팝 여가수가 등장해서 미국 음악 시장을 점령했으며 리키 마틴의 "Livin' la Vida Loca"로 인해 발생한 라틴 팝 열풍이 미국을 휩쓸었다. 이 당시 배우였던 제니퍼 로페즈 역시 1999년에 가수로 데뷔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46]

1990년대의 대표적인 R&B 걸그룹 TLC가 긴 공백기를 깨고 돌아와 "No Scrubs"라는 곡으로 빌보드 핫 100 4주 연속 1위와 1999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2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 곡은 기존의 컨템퍼러리 R&B 스타일에서 벗어난 노래였다. 이들의 다음 싱글이었던 Unpretty는 핫 100에서 3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연말 차트에서는 20위를 기록했다.

1998년부터 본격적인 인기를 끌던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이 해부터 본격적인 탑스타가 되는데 "Bills, Bills, Bills"가 이들의 첫 번째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 되고 연말 차트에서도 21위까지 오르는 등 선방했다.

이 외에도 1998년 듀엣곡인 "The Boy Is Mine"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모니카브랜디가 각각 "Angel of Mine"과 "Have You Ever?"로 연말 차트 3위와 14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휘트니 휴스턴이 보디가드 이후로 6년간 휴식기를 가진 뒤[47][48] 오랜만에 정규 앨범인 My Love Is Your Love을 발매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이 앨범에서 발매된 5개의 싱글 중 3개의 싱글이 빌보드 핫 100 Top5 히트에 성공하고, 그 중 "Heartbreak Hotel"은 연말 차트 4위라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시절이 휘트니가 마지막으로 인기를 끈 해이기도 하다.[49]

이 외에는 연말 차트 9위를 기록한 데보라 콕스의 "Nobody's Supposed to Be Here", 연말 차트 11위를 기록한 702의 "Where My Girls At?", 연말 차트 12위를 기록한 제니퍼 로페즈의 "If You Had My Love"[50], 연말 차트 16위를 기록한 알 켈리셀린 디온의 "I'm Your Angel", 연말 차트 24위를 기록한 맥스웰의 "Fortunate", 연말 차트 27위를 기록한, 자넷 잭슨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버스타 라임즈의 "What's It Gonna Be?!", Divine의 "Lately"가 연말 차트 31위, 당대 최고 인기 R&B 그룹 중 하나였던 Dru HillKool Moe Dee가 피쳐링한 윌 스미스의 "Wild Wild West"가 연말 차트 33위,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래퍼 JAY-Z가 피쳐링한 머라이어 캐리의 "Heartbreaker"가 연말 차트 35위, 이 외에도 머라이어의 곡인 "I Still Believe"가 연말 차트 36위를 기록했다. 힙합에 R&B를 적절히 섞은 로린 힐의 유일한 빌보드 1위 곡 "Doo Wop (That Thing)"이 연말 차트에서 4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연말 차트 43위를 기록한 타이리스의 "Sweet Lady", 연말 차트 44위를 기록한 휘트니 휴스턴의 "It's Not Right but It's Okay", 연말 차트 47위를 기록한 112의 "Anywhere",[51] 연말 차트 48위를 기록한 K-Ci & JoJo의 "Tell Me It's Real", 연말 차트 50위를 기록한 Blaque의 "808" 등이 연말 차트 50위 권 안에 든 컨템퍼러리 R&B 곡이다.

1999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 2000년대

그 엄청난 위세를 뿜어내던 컨템퍼러리 R&B도 21세기를 들어서 점점 하락세를 겪기 시작한다.[52]

물론 그 위용은 엄청났기에, 디스코처럼 하루아침에 박살나는 수준까진 아니었다. 오히려 힙합을 비롯한 다른 장르들과 결합되기 시작하며 계속해서 명맥을 유지했으며, 머라이어 캐리는 2005년에 힙합과 R&B(+팝)을 결합한 The emancipation of mimi를 발매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일렉트로니카(전자음)가 점점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하더니, 일명일렉트로팝이라 불리는 댄스팝음악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며 팝장르의 대세를 완전히 넘겨주게 된다.[53]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가창력의 난이도가 낮아지기 시작한것. 1990년대 컨템퍼러리 R&B 가수들이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면,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화려함 보다는 좀더 타 장르와의 결합을 중시하기 시작하며, 가수들의 고음 사용량이 대체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했다.[54]

2.3.1. 2000년

2000년은 1999년에 이어 미국 음악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던 때이다. 1990년대부터 락 씬을 풍미했던 얼터너티브 락씬 내에서 그런지의 뒤를 잇는 많은 장르들과 포스트 그런지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55] 1999년 말 시작된 산타나 열풍이 계속되었고[56] 틴 팝NSYNC, 백스트리트 보이즈,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의 가수들의 전성기와 겹쳐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1999년에 시작된 라틴 팝 열풍이 제일 뜨거웠던 때이다. 힙합 음악도 슬슬 변화가 일어나며 넬리, 50 센트, 자 룰, 미시 엘리엇, 에미넴 등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도 바로 2000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컨템퍼러리 R&B는 전성기를 누렸는데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2000년 한 해 동안 가장 큰 인기를 끈 컨템퍼러리 R&B 가수였으며 2000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기록을 보면 이들의 두 번째 빌보드 핫 100 1위 곡인 "Say My Name"이 연말 차트 6위, "Jumpin', Jumpin'"이 연말 차트 13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Joe 역시 "I Wanna Know"라는 곡이 인기를 끌며 빌보드 핫 100 4위를 기록했으며 엄청난 롱런으로 연말 차트에서 4위를 차지했다. Joe가 피처링한 머라이어 캐리의 7집 싱글 "Thank God I Found You"가 핫 100 1위에 오르며 머라이어 캐리는 11년 연속 Hot 100 1위 곡을 배출한 최초의 가수라는 기록을 세웠고 총 15개의 핫 100 1위 곡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 곡은 침체기를 겪었다가 2000년대 중반 재기에 성공하기 전까지 머라이어 캐리의 마지막 히트곡이였다.

토니 브랙스턴의 곡인 "He Wasn't Man Enough"가 핫 100 2위를 기록하고 연말 차트에서 10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 곡은 토니 브랙스턴의 마지막 히트곡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90년대 중반부터 인기 있던 알리야팀발랜드와 손잡고 일렉트로-R&B 곡인 "Try Again"을 내놓았다. 이 곡은 퓨처리스틱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특징이었는데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기록했고 연말 차트에서 12위에 올랐다.

90년대 말 인기를 끌었던 알앤비 그룹 드루 힐의 수장인 시스코는 솔로로 데뷔하여 "Thong Song"[57], "Incomplete" 등으로 Joe와 함께 성공적인 솔로 남가수로 자리잡았다. 핫 100 피크 포지션은 각각 3위, 1위. 연말 차트 성적은 각각 14위, 25위를 기록하였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브라이언 맥나잇의 자신의 가장 큰 히트곡이자 유일한 탑 10 진입곡인 "Back at One"이 빌보드 핫 100 2위, 연말 차트 20위에 올랐다.

팝락 여가수로 알려져있는 P!nk가 알앤비 음악을 하던 시절이기도 한데 "There You Go"라는 곡이 빌보드 핫 100에서 7위까지 오르고 연말 차트에서 16위를 차지하였다. "Most Girls"도 크게 히트했는데, 빌보드 핫 100에서 4위를 기록했고 2000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52위, 2001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97위에 올랐다.

1995년도 "This Is How We Do It", 1998년 "Let's Ride"등의 곡으로 유명한 몬텔 조던(Montell Jordan)은 2000년 "Get It on Tonite"라는 곡으로 다시 큰 인기를 끌며 빌보드 핫 100 4위를 기록했고 연말 차트에서 24위에 올랐다.

이 외에도 메이시 그레이(Macy Gray)의 "I Try", 걸그룹 Blaque의 "Bring It All to Me", Ruff Endz의 "No More", R&B 그룹 Jagged Edge의 "Let's Get Married", "He Can't Love U", 98년도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했던 알앤비 그룹 넥스트의 "Wifey" 등이 이 해의 연말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컨템퍼러리 R&B 곡들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컨템퍼러리 R&B 히트곡이 있었다.

2000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2. 2001년

2001년이 되면 90년대의 컨템퍼러리 알앤비의 영향력은 거의 없어지게 되고, 2000년대 컨템퍼러리 알앤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90년대의 최고 스타였던 머라이어 캐리는 2001년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침체기를 겪게 된다. 휘트니 휴스턴도 2000년 9월 경에 내놓은 싱글[58]을 끝으로 더는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다. 사실상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알앤비 가수의 세대 교체가 끝난 셈이다.

하지만 자넷 잭슨이 발매한 곡인 "All for You"는 무려 7주 연속 1위를 하며 2001년 최장기 1위곡이 되었다. 연말 차트에서도 3위를 기록하며 2001년 미국을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

2001년의 알앤비 계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바로 앨리샤 키스의 등장이다. 앨리샤 키스는 소울 음악을 결합한 알앤비 음악을 들고와 알앤비 계의 판도를 바꿔 버렸다. 존 레전드 등의 21세기 소울 음악 가수들은 다 앨리샤 키스의 영향력 안에 있다.

앨리샤 키스는 Fallin'으로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등 초대형 히트를 거둔다. 연말 차트에서도 2위를 기록하며 2001년 미국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어셔는 본격적으로 탑 스타가 되는데, 2001년 발매한 앨범 8701은 전작 My Way의 성공을 뛰어넘으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고 공식적인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 앨범의 싱글 "U Remind Me"는 빌보드 핫 100 4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고 "U Got It Bad"는 2001년 연말에 빌보드 핫 100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한다.

비욘세가 이끄는 데스티니스 차일드는 미국 최고의 걸그룹 자리에 올랐다. 2000년 연말부터 빌보드 핫 100에서 11주 연속 1위라는 장기집권을 한 "Independent Women Part I"이 2001년 연말 차트에서 10위에 올랐다.

2001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3. 2002년

2002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4. 2003년

2003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5. 2004년

2004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6. 2005년

2005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7. 2006년

2006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8. 2007년

2007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9. 2008년

2008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3.10. 2009년

2009년에 발매된 컨템퍼러리 R&B 히트곡들은 아래 정도가 있다.

2.4. 2010년대

2013년도부터 일렉트로팝의 인기도 식어갔지만, 그렇다고 컨템퍼러리 R&B의 인기가 다시 돌아온것도 아니었다. [59]

다만 락이 그랬던 것처럼, 일명 얼터너티브 R&B란 새로운 장르가 창조되며 계속 수명을 유지하고 있긴 하다. 특히 힙합과의 결합이 점점 심화되며, 오히려 기존의 컨템퍼러리 R&B 장르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기존 컨템퍼러리 R&B 가수들은, 오히려 힙합과 팝을 융화시킬려고 노력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가는데 앞장섰다.[60]덕분에 과거의 색채는 많이 잃어버렸어도, 특유의 창법과 느낌은 계속해서 유지해나가고 있는 상태다.

2.5. 2020년대

3. 주요 아티스트



[1] 'Contemporary'의 표준 미국식 영어 발음이 /컨템퍼러리/에 가깝다.[2] 특히 같은 블랙 뮤직에 속하는 힙합과의 융화가 심화된다.[3] 컨템퍼러리 R&B의 시조로 평가받으면서도 디스코 시대의 마지막, 동시에 80년대 흑인 음악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앨범이다.[4] 소울, 펑크, 포스트 디스코, 댄스 팝 등의 타 장르와 결합된 컨템퍼러리 R&B 곡들도 포함되었다.[5] 테디 라일리가 뉴 잭 스윙을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뉴 잭 스윙 사운드는 이 앨범에서 시작된 게 맞다.[6] 마돈나는 One sweet day 같이 시시한 노래를 부를 바에 죽는게 낫다며, 디스를 날렸지만, 본인도 Take a Bow라는 컨템퍼러리 R&B곡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갔을 정도였으니...그 엄청난 위세를 짐작할만 하다.[7] 데뷔는 휘트니 휴스턴보다 3년 전 1980년에 데뷔했다. 그 때는 프랑스어 앨범이였고 캐나다, 유럽에서만 활동했다. 그 이후 마이클 잭슨을 보면서 미국(세계) 진출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1990년에 영어 앨범을 발매했다.[8] 다만 이 가수들이 1990년대에도 R&B 장르만 시도한건 아니고, 힙합,락,라틴음악 같은 다양한 장르들도 많이 시도하긴 했다. 하지만 대표곡들은 결국 다 컨템퍼러리 R&B 장르곡들이기도 하다.[9] 너바나와 엘라니스 모리셋 등[10] 원래도 다른 가수들도 시도하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건 마돈나가 1998년에 발표했던 Ray Of light이 최초였다.[11]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 등이 대표적이다.[12] 리키 마틴[13] 오히려 이러한 점 때문에, 미국내에서나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를 대중음악의 전성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시장자체도 엄청 컸지만, 그덕에 다양한 장르의 명곡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14] 그나마 유럽은 일명 유로팝이라고 불리었던 일렉트로니카 장르가 인기를 끌며, 약간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약간 달랐던 거지, 결국 이쪽도 컨템퍼러리 R&B곡들이 큰인기를 끌었던 건 마찬가지였다.[15] 오히려 아시아쪽이 미국보다 쏠림현상이 심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머라이어 캐리를 중심으로, 3대 디바들의 인기가 엄청났다.[16] 틴팝의 대표적인 가수였던 백스트리트 보이즈조차, 최대 히트곡이 컨템퍼러리 R&B 곡이었던 I Want It That Way다.[17] 한국도 이에 대해 영향을 크게 받아서 인지,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데뷔하던 가수들은 타 시기에 등장하던 가수들보다 평균적으로 대단한 보컬리스트들이 많이 나왔다. 일명 김나박이와 박정현,박화요비,빅마마 같은 가수들이 이 시기에 전부 등장한것도 우연은 아닌 셈.[18] 컨템퍼러리 R&B의 하위 장르인 뉴 잭 스윙 히트곡들도 포함되었다.[19] 이 곡으로 뜨고, 다음 해 영화 부메랑의 주제가로 인해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20] "뉴 에디션" 출신. 바비 브라운과 쟈니 길도 이 그룹 출신.[21] 1992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 1위를 기록하며 1992년 미국에서 제일 히트한 노래가 되었다.[22] 할리 베리 역시 이 영화의 대성공으로 인해 영화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23] 1988년~1993년이 전성기.[24] 1992년 11월부터 1위에 올라서 사실상 보이즈 투 멘의 기록을 4개월 안에 깬 것이다.[25] 두 명의 흑인과 두 명의 백인으로 구성된 그룹.[26] 이 곡은 차트 성적만 보고 넘어갈 곡이 아닌데, 제목부터 섹스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가사 혁명을 일으키며 미국 음악계에 큰 충격을 불러온 곡이다. 91년도 컬러 미 배드의 "I Wanna Sex You Up"이라는 선례가 있었으나, 이 곡과 달리 Bump n' Grind는 제목부터 "박고 갈자"로 지으며, 노골적인 섹스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었다.[27] 발매 첫 주에 1위로 진입. 참고로 최초의 핫샷 1위 곡은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이다.[28] 연초에 발매된 곡에 유리한 연말 차트에서 하반기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7위에 올랐을 만큼 큰 인기를 끈 곡이다.[29] 하이디 클룸과 결혼하여 잉꼬부부의 모습을 보였으나 하이디 클룸의 외도로 이혼하였다.[30] K-Ci & Jojo가 피쳐링[31] 보이즈 투 멘이 피쳐링[32] Total이 피쳐링[33] The Notorious B.I.G.Mase가 피처링[34] Dr. Dre와 Queen Pen이 피처링[35] 퍼프 대디는 대중 지향적인 래퍼라 정통 힙합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힙합을 만들었는데 그러기 위해서 컨템퍼러리 R&B를 적용했다. 이 곡은 퍼프 대디의 Bad Boy Records 소속 R&B 그룹인 112와 R&B 가수였던 비기의 아내 Faith Evans가 피쳐링했다. 이 노래가 빌보드 11주 연속 1위를 한 원인으로는 당시 충격적이었던 비기의 죽음이 큰 작용을 했다.[36] 연말 차트 5위 역시 퍼프 대디의 노래로 노래 제목은 "Can't Nobody Hold Me Down"이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6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37] 1994년도의 1집 앨범은, 목소리가 너무 앳되다는 이유로 망했다. 1994년 당시 어셔는 15~16살이었다.[38] 이 곡은 컨템퍼러리 R&B와 힙합 음악의 초창기 결합 사례로 꼽히며 빌보드 핫 100에서 3주간 1위를 했다.[39] 112가 피처링[40] "You Make Me Wanna..."는 1997년과 1998년, 2년에 걸쳐 연말 차트 20위 안에 들며 어셔의 저력을 보여주었다.[41] 이 곡은 아시아 권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Honey"와 함께 6집 Butterfly의 대표 히트곡이 되었다.[42] 마스터 P와 실크 더 샤커가 피처링[43] Missy Elliott과 Mocha가 피처링[44] Blackstreet이 피처링[45] 물론 그동안의 압도적인 판매량과 차트 성적에 비해서 하락세라는 것이다. 객관적인 세일즈나 인기는 여전히 건재했는데 베스트 앨범인 "#1's"는 1,600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후 발매된 7집 Rainbow 역시 800만 장 이상의 판매고와 2곡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배출하는 등 히트에 성공한다.[46] 제니퍼 로페즈는 2000년대 초반 알앤비 가수로서 최전성기를 누리게 된다.[47] 1996년에 Exhale (Shoop Shoop)이 빌보드 핫 100에서 1위했지만, 기존의 휘트니의 명성에는 맞지 않는 성적이었다.[48] 물론 어디까지나 기존의 휘트니 휴스턴의 명성에 비해 저조한 성적이었다는 얘기다. Exhale (Shoop Shoop)1996년 연말 차트 14위를 기록했으며, 앨범도 전세계적으로 1,200만장이 팔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쪽에 가깝다. 또한 이때는 정식 컴백이 아니었는데다가, The Bodyguard OST와는 다르게 OST에 참여만 했을 뿐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49] 정확하게는 이 앨범으로 활동한 1999~2000년.[50] 제니퍼 로페즈는 히스패닉계 미국인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컨템퍼러리 R&B 음악을 했다. 이 곡 역시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곡이다.[51] Lil' Zane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52] 공교롭게도 세계 3대 디바들이 하락세를 겪기 시작하자, 컨템퍼러리 R&B 또한 하락세를 겪기 시작한다.[53] 근데 막상 이 시기 노래들을 들어보면 사운드만 오토튠과 전자음 투성이지, 노래부르는 스타일들이 거진 R&B에 가깝게 부르긴 한다. 아예 영향력이 없어진 것은 아닌 셈[54] 물론 R&B 장르 특성상 가창력이 부족하면 손도 못대기 때문에 가수들의 실력이 하향평준화 되었다는건 아니다.물론 노래 못하던 애들은 일렉트로팝 열풍 때, 오토튠 범벅으로 넘어가곤 했다.[55] Creed, Nickelback, 3 Doors Down 등.[56] Smooth, Maria Maria.[57] Thong은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여자 속옷. 여자의 엉덩이를 예찬하는 곡.[58] "Could I Have This Kiss Forever". 물론 이 싱글은 컨템퍼러리 R&B가 아니라 라틴 팝 장르였다.[59] 오히려 지겹다고 사장되다 시피했던 디스코,펑크 음악이 갑자기 재유행하기도 했다.[60] 앨리샤 키스,어셔,비욘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는 1995년 daydream 앨범때부터 이미 융화를 시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