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1월 11일, 영국군은 북아프리카 전역을 주도하며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이탈리아 타란토를 공습한다. 영국군은 앤드루 커닝엄 제독의 지휘 하에 타란토의 이탈리아 해군 기지를 기습 공격했는데, 항공 모함 일러스트리어스에서 이륙한 페어리 소드피시 복엽기 21대가 어뢰를 이용해 해군 전함 3척 (카이오 두일리오, 리토리오, 콘테 디 카보우르) 및 순양함 2척을 공격했다. 공격 제1파는 타란토 시가지와 디가 디 타란툴라 방향으로 진격했고, 2파는 타란토 시가지의 해안선을 따라 공격했는데 영국군은 여기서 복엽기 2대를 잃었다.
그리고 영국군은 타란토 공습 외에도 알제와 튀니스에 정박하고 있던 비시 프랑스 해군을 공습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동아프리카 전역에서도 수단을 침공한 이탈리아 왕국군을 격퇴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반면 추축군도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는건 아니라서, 2차 몰타 항공전에서 분위기를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탈리아 해군은 독일군의 첩보를 통해서 영국 해군에 전함이 1척만 남았으며 항공모함이 없다는 정보를 입수한다.[1] 이탈리아 해군은 크레타 섬 전투에 앞서 영국 해군에게 타격을 주면서 지중해에서의 주도권을 돌려받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함대를 크레타 섬 서쪽으로 출항시켜서 주력함이 1척만 남은 것처럼 보였던 영국 해군의 알렉산드리아 주둔 함대를 공격하려 했다.
에니그마 해독을 통해서 이탈리아 함대의 출항 사실을 알게 된 영국 앤드루 커닝엄 제독은 이탈리아 해군의 시도를 저지하는 동시에 추가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영국 함대를 출항시킨다.
에니그마를 통해서 이탈리아 해군의 출항 사실을 알게 된 영국 해군은, 에니그마의 해독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이탈리아 해군의 위치에 정찰기 쇼트 선덜랜드를 날려서 노출시킨다. 이탈리아 해군에 대한 노출은 27일 정오에 이루어졌다. 앤드루 커닝엄 제독은 출항 전날인 27일 밤에 영국 해군 지중해함대의 본거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골프 클럽에 투숙 예약을 하고는, 일부러 일본 영사가 보는 앞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더불어서, 27일 밤에는 전함 워스파이트에서 파티가 있을 것이라고 거짓말로 소문을 낸다. 그렇게 위장을 한 다음, 제독은 골프 클럽을 몰래 빠져나가서 기함 워스파이트에 승함하고 비밀리에 출항한다.
1941년 3월 28일 새벽 6시 영국 해군의 전함 전대와 경순양함 전대는 안젤로 아치노 제독이 이끄는 이탈리아 함대를 공격하게 된다. 경순양함 전대는 경순양함 4척과 구축함 4척, 전함 전대는 막강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3척과 구축함 9척 및 항공모함 포미더블을 이끌고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 함대는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와 순양함 8척, 구축함 9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영국군은 크레타 섬에 있는 말레메 비행장에서 브리스톨 블렌헤임 폭격기를 출격시킬 수 있었다. 처음 오전 6시부터 오전 8시 12분까지 양측 사이엔 교전이 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브도 섬에서 오전 8시 영국군의 경순양함 전대와 이탈리아 순양함 전대가 부딪혔고, 12분 후 순양함 트리에스테, 볼차노, 트렌토가 후미의 HMS 글로스터를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해군은 큰 소득은 못 거두며 사격을 8시 55분에 종료했다. 한편 영국군은 말레베 비행장과 항공 모함 포미더블에서 각각 블렌헤임 폭격기와 소드피시 뇌격기를 출격시킴으로써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와 이탈리아 함대를 공격하게 했다.
10시 58분부터 11시 27분까지 영국 항공기들은 비토리오 베네토와 교전했고, 이 과정에서 폭격기와 뇌격기가 비토리오 베네토에 첫 공격을 가했다. 때문에 비토리오 베네토는 일시적으로 전투 불능에 빠졌다. 정오부터 전투는 치열해지기 시작했는데 12시 5분 항공대가 트렌토, 트리에스테, 볼차노를 공격했다. 이후 영국군 항공기들은 총 6차례에 걸쳐 이 세 함선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한편 차라, 폴라, 피우메, 가리발디, 아브루치에 대한 공습도 이어졌는데, 17시 30분 항공모함 포미더블에서 출격한 뇌격기가 순양함 폴라에 타격을 입혔다. 이에 차라, 피우메와 구축함 4척이 순양함 폴라를 지원하기 위해 21시에 돌아갔지만, 영국 해군의 주력 전함 전대에 발각되었다.
이때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HMS 워스파이트, HMS 버럼, HMS 밸리언트 3척의 전함들이 드디어 등장했는데, 먼저 구축함 HMS 그레이하운드가 중순양함 피우메에 서치라이트를 비추자 15인치 포탄들이 피우메를 결단냈고, 뒤이어 들킨 차라 역시 구축함 HMS 저비스의 어뢰 공격에 치명상을 입고 만다. 그리고 뒤이어 2척의 이탈리아 구축함 비토리오 알피에리와 지오슈 카르두치도 격침되고 만다. 폴라는 항공모함의 어뢰공격으로 치명상을 입고 떠있었는데,[2] 영국 해군이 생존자 구출 후 구축함의 어뢰로 가라앉혔다.[3] 더 이상의 전투가 어렵다고 판단한 잔존 이탈리아 해군은 23시에 교전을 중지하고 이탈리아 타란토 항과 브린디시 항으로 퇴각했고, 영국 해군은 23시 59분까지 전장에 있다가 후퇴했다.
결론적으로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를 대파시키고, 순양함 차라, 피우메, 폴라, 구축함 알피에리와 카르두치를 격침시킨 영국군은 이탈리아 해군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리함으로써 지중해에서의 제해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곧 독일군이 2차 몰타 항공전 초기의 애매한 태도를 버리고 크레타 섬 전투 및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지중해에서의 전투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우세도 곧 끝나게 된다. 이탈리아 해군도 독일군과 함께 그리스의 크레타 섬을 침공하면서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고, 그해 6월의 영국군의 지중해 호송 작전인 Operation Vigorous에서 다시금 격렬하게 맞붙게 된다.
[1] 실제로는 퀸 엘리자베스 전함 버럼, 밸리언트, 워스파이트의 3척이 있었고, 2차 몰타 항공전에서 흠씬 얻어맞은 일러스트리어스는 자매함인 포미더블이 대신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2] 이때 동력을 잃고 표류한 이탈리아 해군 수병들은 추위를 잊기 위해 술을 진탕 마셨다고 한다...[3] 가라앉히기 전 영국 수병들이 올라가 오토브레다제 대공포 등을 전리품으로 노획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