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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6:49:59

타자기

1. 개요2. 종류
2.1. 수동식 타자기2.2. 기계식 (전기식) 타자기2.3. 전자식 타자기 (전동 타자기)2.4. 전신타자기/텔렉스
3. 쇠퇴4. 타자기의 유산5. 비(非) 라틴 문자 타자기
5.1. 한자 타자기5.2. 한글 타자기
5.2.1. 공병우 세벌식5.2.2. 김동훈 다섯벌식5.2.3. 장봉선 다섯벌식5.2.4. 네벌식5.2.5. 두벌식
6. 유명 타자기 메이커 목록7. 타자 학원8. 타자수(타이피스트)9. 대중매체에서10. 기타
10.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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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opad>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livetti_Valentine.jpg 파일:YP5spXk.jpg
올리베티에서 만든 발렌타인 타자기.
좋은 디자인으로 포춘 선정 가장 위대한 현대 디자인 100선에 등재되었고, MoMA에 영구 소장되었다.
동아정공의 마라톤 1000DLX 한글 두벌식 타자기.
파일:external/blogimg.hani.co.kr/46d51c2eb4ab0.jpg
공병우 타자기 광고. 1965년 신문광고인데, 당시 29,800원은 번듯한 직장인 몇달치 급여에 해당되는 금액으로 현재 물가 가치로는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1]
타자기 소리 1980년대 당시 타자기를 배우는 사람들
타자기( , typewriter)는 데스크탑과 랩탑을 쓰기 전에 쓰이던 입출력기의 일종이다. 한마디로 키보드의 조상. 글자판의 키를 눌러 종이에 글자를 찍는 기계로 컴퓨터 시대 이전에 자필로 힘들게 문서를 작성하거나 일일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대신 해 주는 도구였다.[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krivekugle_1870.jpg
한센의 쓰기공 1870년 모델의 설계도
타자기가 발명되기 전에도 '글자 쓰는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당연히 있었다. 1801년 이탈리아의 발명가인 펠레그리노 투리(Pellegrino Turri)의 “글자 쓰는 기계”(Macchina per Scrivere)는 타자기와 유사한 자판이 달려있었으며 타자기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1829년 윌리엄 오스틴 버트가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타이포 그래퍼'라는 입력도구를 발명하여 특허권을 받아 서류상 세계 최초의 입력도구를 발명하였지만, 현재와 같은 키보드 입력이 아니라 다이얼로 입력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손으로 쓰는 것보다 느렸다. 상품으로 제품화된 입력도구는 1865년 덴마크의 발명가 라스무스 몰링 한센(Rasmus Malling-Hansen)이 청각 장애인을 위한 도구로 쓰기공(Skrivekugle, Writing Ball)이라는 도구를 개발하였다.

현재와 같이 키보드로 입력하는 타자기를 발명한 사람은 미국의 크리스토퍼 L. 숄즈(Christopher L. Sholes, 1819~1890)이다. 1868년 6월 23일에[3] 미국 특허권을 인정받는 숄즈는 당대 최고의 실업가인 딘스모어와 요스트에게 1만 2000달러를 받고 타자기의 특허를 팔았다.

숄즈의 타자기는 레밍턴 사(社)에 의해 1874년에 세계 최초로 상업적인 목적의 타자기로 생산, 판매되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사무 목적으로 필경사를 고용하곤 했는데, 이들을 싸게 고용할 수 있는데다 손글씨도 깨끗해서 굳이 대체할 필요성이 없어서 보급은 생각보다 느렸다. 하지만 결국 필경사를 완전히 대신하여 이후 20세기 말까지 널리 쓰이던 인쇄 도구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21세기 들어서는 컴퓨터에 밀려서 사실상 사라졌고 신설동 및 황학동에서 골동품으로 만날 수 있지만 대개 어느 한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모든 기능이 다 작동되는 것들은 드문 편이다. 타자기를 수리하는 곳은 아직 몇군데 남아있지만 수리비용이 중고가와 거의 비슷할 정도다. 해외에서는 수동식 타자기와 전동식 타자기를 계속 생산 중이기 때문에 해외 직구로 신제품 영문 타자기를 구매할 수 있다. 중고제품도 해외 직구가 국내보다 오히려 저렴하다. 물론 한글 타자기를 구하려면 국내밖에 없다. 잉크리본은 전동식이든 수동식이든 아직은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구매할수 있다.

2. 종류

종류는 수동식, 기계식, 그리고 전자식 3개로 나뉘어 있다.

2.1. 수동식 타자기

우리가 주로 '타자기'라고 했을 때 상상하는, "탁탁 톡톡 띵~ 드르륵" 소릴 내는 '앤틱' 타자기가 바로 수동식 타자기이다. 타자기로 글을 쓰기 위해선 '타다타닥' 소리를 내며 자판을 치고, 줄의 맨 끝까지 타자를 했을 경우에는 오븐의 타이머가 끝나는 소리를 내는데, 그걸 들으면 왼손으로 '리턴 레버'를 오른쪽으로 밀어야 한다. 한 줄을 다 치면 글씨가 나오게 할 위치를 다시 맨 왼쪽으로 되돌려야 하기 때문인데, 이걸 해주는 게 이 리턴 레버. 리턴 레버를 누르면(?) 줄바꿈이 되고 글자쇠가 캐리지를 때리는 위치가 다시 맨 왼쪽으로 돌아간다.[4]

타닥타닥 소리는 현재 보급되는 키보드 소리보다 훨씬 묵직하고도 쇳소리가 나며 꽤 듣기가 좋다. '칭' 하는 종소리 또한 맑고 청아하고 회사, 모델마다 타종 소리가 각양각색이다. 쓰는 사람은 쓰다보면 꽤 좋게 들린다.

수동식 타자기는 크게 스탠더드(Standard) 모델과 포터블(Portable) 모델로 나눌 수 있다. 스탠더드 모델은 탁상용, 즉 육중하고 기능이 많은 타자기들로 사무실이나 관공서에서 흔들림 없이 글을 깔끔하고 무게 있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작가나 기자들도 많이 사용했다. 최소한 15kg 이상은 나가는 무시무시한 놈들이니[5] 직거래가 아닐 시 배송비 폭탄에 유의할 것. 포터블 모델은 말 그대로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타자기들이다. 옛날에 회사나 사무실 하시던 분이 주변에 있지 않는 한 우리가 주로 보는 타자기는 포터블 모델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 포터블 모델들도 스탠더드만큼 기능이 많아져서 굳이 공간 차지하고 무거운 스탠더드를 살 일이 별로 없어졌다. 날씨 좋을 때 들고 나가서 공원이나 집 베란다, 테라스 등에서 햇빛을 받으며 여유롭게 글을 쓰면 무척 낭만적이고 기분도 좋다. 또한 상업고등학교 재학생들도 타자를 배우려면 타자기가 필요했는데, 이때에도 싸고 휴대가 가능한 포터블 모델을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유의해야 할 점은, 포터블이라곤 해도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라는 것. 글쇠 수 만큼의 활자막대 + 글쇠뭉치 + 그 외 각종 쇠뭉치들이 가득 들어찬 기계인 만큼 3~6kg 정도의 무게를 자랑하며, 이 정도면 현재의 게이밍 노트북과 비슷하거나 더 무거운 수준이다. 혹시나 들고 다니다가 발 위에 떨어트리면 발등도 작살나고 아까운 타자기도 작살나니 아주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풍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일은 자제하자.

수동타자기의 경우에는 볼드(글씨 굵게 하기)를 하기 위하여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같은 글자를 반복 입력했어야 했다. 지금 와서는 힘들다 못해 누가 이런 걸로 하고 있어? 라는 말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게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글씨가 흐려지면 즉 잉크가 다 되면 잉크리본(일명 먹줄)을 매번 갈아야 하는데, 그 먹줄 갈 때 손에 온통 잉크가 묻는 게 고역이다. 다행히 일반적인 나일론 리본 하나 사면 1년 이상 안 치지 않는 이상 잘 쓸 수 있다. 심지어 기자처럼 매일매일 글을 치는 사람도 서너 달은 썼다고 한다.#

오타가 하나라도 나면 종이를 갈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거나 수정액, 수정 테이프로 고친 후 그 글자가 있던 정확한 위치로 돌아가 다시 글자를 쳐야 하는 등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글을 다 쓰고 타자기에서 종이를 뺐는데 오타가 발견되면 빡침이 밀려 온다. 종이를 다시 끼우면 전에 썼던 위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 수정하기 굉장히 까다로워진다. 이 때문에 타자기로 작성된 장문의 책이나 보고서에는 오타가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70년대 이후에 나온 타자기에는 수정 테이프 리본을 탑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타자기는 공간 절약을 위해 숫자 '0', '1' 키나 느낌표 등이 없었다. 0은 O(오), 1은 소문자 l(엘)로 대체하고 !는 ' + 백스페이스 + . 으로 입력했다.


대학교 강의실에 노트북 대신 타자기를 가져와서 타이핑을 하는 영상. 타자기의 소음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무렵의 정보 시스템을 다룬 영화(작전명 발키리 같은 것)을 보면 엄청난 수의 타자수들이 각지에서 오는 전문을 다닥다닥 두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면서도 시끄러움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당시 전문을 다루는 곳이나 문서 타이핑이 많이 필요한 사무실 등의 타이피스트들은 난청기본으로 달고 다녔다. 기계식 리니어축 정도의 소리만 가지고도 눈총을 받을 만큼 굉장히 조용한 현대의 사무실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던 것.

컴퓨터와 키보드의 시대인 현대에도 이런 수동식 타자기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을 위해 이런 수동식 타자기의 형태를 한 키보드가 팔리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2.2. 기계식 (전기식)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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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술할 셀렉트릭 모델의 모습과 소리.

1960년대 부터는 IBM 셀렉트릭(Selectric) 전기 타자기가 크게 성공했다. 이쪽은 특이한 원리를 사용하는데, 해머 대신 골프공 같은 조그마한 공에 활자를 새겨 사용한다. 여기에 'Whiffletree'라는 정교하게 설계된 지렛대가 연결되어 있고, 이 지렛대는 여러 개의 걸쇠, 쇠막대로 구성된 그물 모양의 글쇠 부분에 연결된다. 사용자가 글쇠를 누르면 현대의 키보드가 각 글쇠별로 고유 값을 컴퓨터에 전송하는 것 처럼 각 글쇠가 Whiffletree에 그 활자에 해당하는 양의 정확한 압력[6]을 가하며, Whiffletree는 이에 맞춰 공 모양의 활자 뭉치를 정확히 돌리고 기울여서 치는 방식.

정교한 원리 덕분에 재밍(jamming)이 없다는 가장 큰 장점 외에도 수정 기능, 낮은 키압, 빠른 속도, 볼만 바꾸면 글꼴이나 글자 크기를 바꿀 수 있는 것 등 많은 혁신이 있어서 사무실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또한 특수 리본을 사용해 잉크를 다시 종이에서 벗겨내 글씨를 지우는 기능 역시 추가되었다. 이 특수 리본은 일반 타자기 리본과 달리 한번 글자를 박으면 글자가 새겨져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Erase' 키를 누르고 글자를 일일히 다시 눌러서 지우는, 현대의 컴퓨터와 약간 다른 방식을 사용했다.

셀렉트릭은 베스트셀러였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위의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필연적이었던, 수백개가 넘는 부품이 정교하게 맞춰져서 돌아가는 충격과 공포의 내부 구조였다. 가뜩이나 민감하고 복잡한 셀렉트릭의 특성상 한번 고장나면 일반 사용자가 고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숙련된 수리공들마저도 IBM에서 직접 교육시켜야 했을 정도. 유지관리 매뉴얼에도 "모든 부품은 힘을 주지 않아도 맞습니다. 만약 부품이 맞지 않는다면 잘못 조립한 곳이 있을 것입니다. 망치는 쓰지 마세요."라고 당부했을 정도. 교육까지 받아도 수리는 쉽지 않았는데, 이 영상의 최상단 댓글을 보면 실수로 여직원의 셀렉트릭이 책상에서 굴러떨어져서 고장나자 밤새 작동부를 고쳤는데, 모종의 이유로 그 이후에도 계속 오작동해서 매일 그 여직원의 사무실에 가서 지속적으로 조정해줘야 했다는 전직 수리공의 증언이 있다.

특히 이 때부턴 굳이 왼손으로 리턴 레버를 밀어 캐리지를 번거롭게 움직일 필요 없이 캐리지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대신 '리턴 키'라는 게 생겼는데, 한 줄을 다 쓰지 않고 다음 줄로 넘어갈 때는 자판에 그 키를 누르면 캐리지가 다음 줄로 돌아가는 원리였다. 이 때문에 타자기-워드 프로세서-컴퓨터로의 전환기인 1980~90년대에 몇몇 워드 프로세서와 컴퓨터 키보드에는 '리턴 키'란 명칭이 남아있었고, 옛날 프로그램 중에도 간혹 줄바꿈을 할 때 '리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보인다. 예를 들어서 아스키 코드의 제어문자 중 하나인 CR이 바로 '캐리지 리턴'의 의미이다. 위에서 설명한 '캐리지'를 원위치시키는 동작을 하는 키가 바로 CR인 것이다. [7]

컴퓨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엔터 키' 라는 이름으로 대체가 되는데, 이는 한 줄을 다 작성한 다음에 하는 행위가 타자기에서 다음 줄의 같은 위치로 돌아가기(return) 에서 입력한 명령들을 컴퓨터에게 입력(enter) 하는 행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애플매킨토시에는 리턴 키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데, 이는 매킨토시의 큰 마케팅 포인트가 실제 책상을 컴퓨터로 옮겨놓은 소위 데스크톱 경험이었고, "입력"과 "줄 바꿈"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선 대부분의 경우 구분에 큰 의미가 없기에 맥북이나 무선 키보드 같은 텐키리스 키보드의 경우에는 PC의 엔터 키 위치에 리턴과 엔터라는 각인이 둘 다 있는데, 유선 키보드에서는 "엔터"는 숫자패드에 별도의 키로 나뉘어 있고, 입력값도 다르게 처리된다.

2.3. 전자식 타자기 (전동 타자기)


IBM의 휠라이터(Wheelwriter) 타자기. 이 방식의 대표격인 타자기로, 하술하겠지만 후기에는 영상처럼 프린터 역할도 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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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각각 삼성전자, 금성사(현 LG)의 전자식 타자기.

전동 타자기라고도 부르며, 케드콤이나 경방크로바, 삼성전자, 금성사 등 국내 업체들은 이 명칭으로 출시했다. 전기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의 과도기에 있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 타자기가 활자나 볼을 썼다면 전동 타자기는 휠을 사용했다. 이 휠을 갈아 끼우면 다양한 서체로 인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한/영 겸용으로 출시되었는데, 삼성전자/KED[9]에서 출시된 제품들은 한글과 영문 대문자만 한 휠에 있다. 반면 금성사에서 출시된 제품들은 한 휠에 한글과 영문 대/소문자가 모두 있어 휠 교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수정 테이프도 사용하여 수동 타자기와는 달리 오타 발생 시 수정을 할 수 있다.

이 방식의 대표격인 IBM 휠라이터(Wheelwriter)는 무려 2002년까지 생산된 장수만세 모델이며, 이 모델은 생산 후기에는 문서를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해 놨다가 다시 출력하거나, 컴퓨터에 연결해서 프린터로 쓸 수도 있는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키보드 부분은 IBM답게 버클링 스프링 방식 키보드를 사용한다.

삼성 TQ-12A나 금성 파트너 GTS-8800 같은 경우에는 스크린이 없지만 삼성 TQ-24L 같은 경우 스크린이 있다. 또한 자동 줄바꾸기, 자동 오타 수정, 글자 간격 조정, 자동 밑줄 긋기 등의 편의 기능도 사용할 수 있다.

이 스크린에 글을 어디까지 썼는지 표시하는 '포인터'가 생겼는데, 이게 바로 컴퓨터 키보드의 엔터 키에 인쇄된 역(逆)니은자 화살표 (↵)의 의미이다. 바로 줄을 바꾸고 전기식 타자기의 '포인터'를 왼쪽으로 되돌린 뜻.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서 문단 끝에 표시되는 화살표도 유래가 이와 동일하다.

2.4. 전신타자기/텔렉스


타자기에 통신망(전신)을 결합해 만든 것으로, 타자를 치면 모스 부호 등으로 변환해 통신망으로 쏘고, 상대편 기계에서 이를 받아 타자로 변환해 출력하는 것이다. 이후 각 타자기에 전화번호를 할당해 가입자끼리 주고받는 텔렉스로 발전했다. 말그대로 활자식 팩스. 물론 완벽한 상위호환인 팩스의 대중화로 자취를 감췄다.

또다른 이용 방식으로는 컴퓨터 입출력장치. CLI를 사용할때도 사용되었다. 명령어를 입력하면 결과값을 타자를 쳐 출력하는 방식.

3. 쇠퇴

19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활자가 부러질 일도 없으며 치는데 힘도 덜 들고 튼튼하기도 한 데다가 값도 싸고 편집 기능도 강력한 PC노트북, MS Office가 보급되면서 타자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입력 속도는 물론 수정도 훨씬 간편하며, 표나 이미지까지 문서에 넣을 수 있고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컴퓨터는 동시에 인터넷이메일을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개인 취미용으로 일부 사용될 뿐 실용적인 용도의 타자기는 거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10]

심지어 전력 사정이 안 좋은 곳에서도 쓸 수 있는 노트북 등이 등장하며 후진국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비용상 타자기보다 노트북, 데스크탑 PC 등을 쓰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특별한 보안이 필요한 경우나 전통적 관습이 남은 곳에서 그나마 타자기를 쓰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조차 줄고 있다. 2017년 마하라슈트라 주에는 타자기 교육기관이 3,500개나 있고 한 해 70만 명이 자격증을 땄다고 하나 스펙 쌓기용 자격증이지 이미 그런 자격증이 폐지 수순에 접어들고 있었다. # 마하라슈트라의 아무 사무실에도 타자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2017년에 이미 있었다. # 인도 정부는 경제의 디지털화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험을 폐지하고 교육기관을 축소하고 있다. 향수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다. 2011년에 이미 인도에서 타자기 공장이 사라졌다. # 가내 수공업 정도의 수준으로 타자기가 수리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인도는 국민들이 IT 관련 일자리를 위해 기를 쓰고 공부하는 나라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2020년대 초반 이제 50% 가량[11]은 되고 T-Series 같은 인도 유튜브 채널은 전세계 1위의 구독자를 자랑한다. 심지어 북한조차 2021년 기준 아예 기밀 유출을 우려, 종이 부족 우려로 인해 당 간부에게 태블릿 PC 등을 다루도록 공부시키고 나이 많은 간부에게도 키보드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 이미 북한 방송에서는 노트북을 사용하는 모습이나 '건반'으로 불리는 키보드를 다루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군용으로도 일부 수요가 있는데, PC프린터에 비해 적은 전기를 소모하면서 둘의 역할을 일부 소화할 수 있어 사용한다. 평시에는 거의 쓰임새가 없고 대부분 전시에 야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비하는 것.

최근에는 러시아 정보기관이자 그 KGB의 후신인 FSBSVR, 그리고 군 직속 정보기관인 GRU에서 타자기를 신규 도입했다고 한다. 이유는 해킹 위협 때문, 미국의 CIANSA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타자기나 종이 자체를 해킹할 순 없으니.......

독일 베를린 법원은 Windows 95와 그 프로그램을 버리지 않고 계속 쓰다가 2019년에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 당하는 바람에 타자기와 팩스를 창고에서 꺼내야 했다.(#, #)

타자기가 여전히 생산 중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 때문인지 타자기 공장이 문을 닫을 때마다 지구상의 마지막 타자기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21세기가 되어서 거의 로스트 테크놀로지화된 기술인 만큼 타자기의 보급대수나 생산 시설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조사하려고 하지 않으며 컴퓨터와 같이 생산품으로서 중요 경제활동 물품에 더 이상 낄 수 없기 때문에 조사를 반드시 해야 할 실질적인 이유 또한 없다. 타자기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전자도구에 밀려버린 20세기의 기계적 도구들의 공통된 특징.

현재 선진국에서는 주로 유아용 완구나 팬시용품으로 신제품 타자기를 판매 중이지만 폴 오스터처럼 아직까지 타자 집필을 고집하는 작가들도 더러 있다. 배우 톰 행크스도 타자기 덕후로 유명한데, 타자기를 열정적으로 수집할 뿐만 아니라 <California Typewriter>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 이름으로 'Hanx Writer'라는 아이폰용 타자기 앱까지 출시하고, 타자기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한글 타자기 제조업체인 동아정공(마라톤)과 경방기계(크로바)가 1996년에 타자기 생산을 중단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신제품 타자기의 신규 수요는 거의 없고, 과거의 추억이나 로망을 찾는 사람들과 빈티지한 인테리어 소품을 찾는 이들, 일부 희귀한 골동품을 수집하는 수집가들과 박물관 학자들, 기계 그 자체의 메카니즘을 좋아하는 기계 덕후들, 단순 수집벽이나 저장 강박으로 중고품을 찾는 이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 쓸 소품을 구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는 정도이다. 실사용 목적으로는 법무사 사무실에서 서류에 내용을 기재할 때나 물류업체에서 운송장 전표 등을 찍을 때 전자식 타자기를 이용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 신제품 전자식 타자기의 구매와 수리는 거의 법무사 쪽에서 찾는 모양. 현 시점에서 타자기로 글자를 인쇄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는 뒤에 먹지를 대고 물리적 타격력을 이용해서 앞장과 뒷장에 동시에 같은 문자, 같은 글씨를 쓰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도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로 작업하는 게 더 현대적이지만, 도트 프린터로 양식 인쇄를 할 것 까지도 없는 (관련 프로그램도 없는) 1장씩만 찍으면 그만인 사소한 작업들에 대해서는 타자기로 찍는 방식이 유효할 수 있다.

4. 타자기의 유산

타자기는 오늘날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지만, 원래 타자기를 위해 발명된 물건인 먹지수정액은 오늘날에도 종종 쓰인다.

먹지는 원래 이탈리아의 발명가인 펠레그리노 투리가 1801년에 자신이 발명한 타자기의 부품으로 발명한 물건으로, 종이 뒷면에 끈끈한 먹이 도포되어 있어, 그 뒷면에 빈 종이를 깔고 활자로 먹지를 때리면 먹이 종이에 인쇄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즉 타자기의 잉크 리본과 같은 용도였던 것이다. 실용화된 타자기는 투리의 타자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먹지는 타자기에서 문서 복사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제록스같은 복사기가 없던 시절, 타이피스트가 한 번에 똑같은 문서를 두 장 타이프하려면 종이, 먹지, 종이를 함께 타자기에 넣고 타이프를 쳤다. 그러면 똑같은 내용이 타이프된 종이가 두 장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먹지가 영어로 ‘카본 페이퍼’인데, 이렇게 문서를 복사하는 것을 ‘카본 카피(carbon copy)’라 불렀으며 약어로 'cc'라고 썼다. 당시엔 사무실에서 문서를 이렇게 복사해 여러 사람에게 배포하는 경우가 매우 흔했으며 아예 이를 ‘cc한다’ 는 동사로 표현했을 정도다. 오늘날엔 이런 식으로 먹지 복사를 하는 경우는 없지만, 그 동사인 ‘cc'는 오늘날 이메일 기능으로 남았다. 이메일에서 ’받는 사람‘ 아래에 있는 ’cc'(복사본을 제삼자에게 전송), ‘bcc'(수신인 모르게 복사본을 제삼자에게 전송)가 여기서 유래했다.

수정액은 미국의 타자수였던 베티 네스미스 그레이엄(Bette Nesmith Graham) [12]이 1956년에 발명했다. 타자기는 오타를 지워주는 기능이 없으므로, 오타를 내면 스트라이크스루(strikethrough, 글자에 가로줄을 쳐서 오타임을 알리는 표기법) 처리를 하거나 아예 종이를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레이엄이 수정액을 만들어낸 덕에 틀린 글자에 흰칠을 하고 그 위에 다시 타자를 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수정액이 다 말라야만 재타자가 가능하므로),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덜 걸리는 경우가 많아 타자수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레이엄은 자기 발명품을 만드는 기업을 차렸으며 그녀의 ‘리퀴드 페이퍼’사는 오늘날에도 건재한 문구 기업으로 수정액 외에 다양한 문구용품을 만든다. 먹지는 오늘날 사무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대개 공작활동에 쓰인다), 수정액은 학생들이 여전히 많이 쓴다.

전자식 워드프로세서는 우선 화면에 글자를 타자한 후, 오탈자 수정 및 첨삭 작업을 완료한 뒤에 종이로 몇 장이든 인쇄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수정액도 먹지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키보드만은 타자기의 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나중에 컴퓨터가 이것을 물려받았다. 때문에 오늘날 컴퓨터의 키보드는 옛날 타자기의 키보드와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다(자판 배열 등). 백스페이스, 캐리지 리턴 등 타자기의 고유 기능 키들도 컴퓨터 키보드에 달려 있지만 기능은 다르다. 타자기의 캐리지를 원위치로 돌리고 줄을 바꾸는 가능인 캐리지 리턴은, 컴퓨터는 기계식 캐리지가 없으니 그냥 줄바꿈 키가 되었으며 오늘날엔 엔터 키로 대체되었다. 백스페이스는 타자기의 경우 캐리지를 한 칸씩 후퇴하게 하는 기능인데, 컴퓨터에서는 그 기능은 좌측 커서 키가 하며 컴퓨터의 백스페이스키는 딜리트 키의 좌우 반전 버전이다(커서의 좌측에 입력된 문자를 삭제).

그 외에도 쿼티두벌식 같은 키 배치부터 비롯하여, 시프트 키와 캡스락, 키를 비롯한 각종 컴퓨터 특수 키는 타자기에서 넘어온 것이 많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타자기는 오늘날 키보드의 자판 배열에도 많은 영향을 남겼다. 예를 들면,
아스키 코드의 특수 문자 중에서 줄바꿈과 관련한 기능을 하는 문자로 라인 피드(Line Feed / LF, 아스키 코드로 10진수 10 또는 16진수 0A), 캐리지 리턴(Carriage Return / CR, 아스키 코드로 10진수 13 또는 16진수 0D)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용어 역시 타자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전신기를 거치기는 하는데 어차피 전신기도 타자기의 진화형이라 거기서 거기다. 타자기의 새 줄에서 입력하도록 종이를 한 줄 올리는 기능(라인 피드)과 종이 왼쪽부터 글자를 치도록 종이를 끼워 넣는 '캐리지'를 처음 위치로 돌리는 기능(캐리지 리턴)이 컴퓨터로 오면서 종이를 움직이는 대신 입력 위치(커서[13])를 옮기는 것으로 변하기는 했지만(라인 피드: 커서를 한 줄 아래로 옮긴다, 캐리지 리턴: 커서를 제일 왼쪽(줄 처음)으로 옮긴다) 근본적인 의미는 동일하다. 다만 운영체제에 따라서 이용하는 방식은 좀 다르다. 텍스트 문자의 줄바꿈 시 Windows에서는 CR+LF를 이용하는 반면, 유닉스macOS에서는 LF로, OS X 이전의 맥에서는 CR을 이용한다. 때문에 다른 운영체제에서 편집하던 파일을 열면 줄바꿈이 엉망진창으로 나올 수 있는데, 요즘 나오는 편집기에서는 줄바꿈을 잘 인식해서 보여주므로 별 문제는 없다.

5. 비(非) 라틴 문자 타자기

"세상에 자기 나라 글자로 만든 타자기가 있는 나라가 몇 나라나 되지?"
-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대한민국 편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말하는 장면에서.[14]

타자기는 본래 로마자 같은 서양식 알파벳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비(非) 알파벳 문자권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해당 나라들은 매우 곤란을 겪었다. 특히 중국일본 등의 한자 문화권은 한자 자체가 다른 여러 문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은 탓에 처음에는 로마자화 주장이 일기도 했다.[15] 이 중에 베트남은 진짜로 로마자 기반 표기법으로 넘어가버렸다.

이후 한자 타자기가 개발되었지만 문자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수천자가 넘는 활자를 지니게 되어 마치 '소형 인쇄기'와도 같은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타자기로 고속인쇄는 힘들었고, 이후로 로마자와 가나로도 한자를 입력할수 있는 형태의 타자기도 개발되었기는 했지만 당연히 한참 후에나 나왔고, 관리비가 많이 드는것은 여전했다. 관련 포스팅 한국도 한자를 더 주로 쓰던 시절엔 비슷한 곤란을 겪었고, 현재와 같은 타자기가 발명되기까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시행착오와 수고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한자권 문자에서는 워드프로세서 보급이 상당히 빨랐다. 전자적인 한자 변환 기능이 기존 타자기의 애로사항을 완벽하게 해결해줬기 때문.

5.1. 한자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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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대륙의 타자기. 정확히는 청타기(淸打機)이다. 활자 수가 무려 2,450개나 된다! 사용도 어렵겠지만 가격대와 유지관리가....


중간에 종이에 무엇을 쓰는데 간체자가 아닌 정체자인 것을 보아 대만 쪽인듯.[16]

일본어 청타기도 있다. 여기도 중국과 비슷하게 사용했다. 잘 보면 손잡이를 움직이면 한자에 잉크를 뭍힌 활자로 이동하는 것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사용하는 동영상이다.


이렇게 생긴 일본어 타자기도 있었다.


한국에도 한자 타자기와 같은 형태의 타자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자 대신 한글이 찍히는 것을 제외하면 중국과 일본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되며, 한글의 네모꼴 모아쓰기를 타자기보다 완벽히 구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은근 사용층이 있었다.


일본에도 로마자 타자기와 같은 형태의 타자기가 있긴 하다. 가나 문자만을 입력해주는 타자기인데, 전신 등의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파일:external/hasts.mit.edu/MingKwai-1A.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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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도 이런 로마자 타자기 형태의 전기 타자기가 개발되어서 특허등록까지 됐다. 이름하야 '밍콰이(명쾌) 타자기'인데, 이것은 한국에선 '생활의 발견'으로 유명해진 중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임어당(林語堂, 린위탕)이 개발한 것이다. 3~4개 부수를 입력해서 8,000여 개 활자를 검색해 입력하는 방식. 하지만 프로토타입 1개만 만들어지고 나서 국공내전 등의 악재가 겹쳐, 안타깝게도 결국은 폐기되고 말았다. 몇 장의 사진만 남았을 뿐, 설계도와 실물이 모두 폐기되어서 복원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다만 비슷한 형태의 타자기는 후에 나오기는 했다.

위의 밍콰이 타자기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토머스 멀레이니가 쓴 '漢字無罪, 한자 타자기의 발달사'라는 책(2021)의 6장에서 볼 수 있다. 린위탕의 발명이 획기적인 것은 타자기 사용자가 누르는 문자와 문서에 출력되는 한자를 분리한다는 아이디어로,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이전에는 이걸 못 해서 수천 자의 자판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는 그 이후 컴퓨터가 등장하고 오늘날 중국어권이나 일본에서 한자를 입력하는 수입(輸入) 방식의 현대화에 이르는 초기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5.2. 한글 타자기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
770호 771호 772호
서울 연세대학교 핀슨관 송기주 네벌식 한글 타자기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인

파일:external/image.newsis.com/NISI20141008_0010220061_web.jpg
송기주 네벌식 한글타자기 자판. 현재 실물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글 타자기이다. 등록문화유산 제771호로 등록되었으며, 한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동아정공[17]의 마라톤 1000DLX 두벌식 타자기 사용 영상한국은 공문서 작성을 수기에서 타자기로 바꿀 때 한자를 빈번히 쓰던 시절에도 한자 타자기의 사용을 포기했다. 고속인쇄가 불가능했던데다가 무엇보다 한자 타자기를 관리하는데 예산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20] 그래서 1970년대부터는 활자인쇄를 하는 관보 같은 것을 뺀 바로바로 만들고 내보내야 할 공문서만큼은 순 한글을 썼다. 그리고 한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가 들어갈 부분을 일단 비워두고 한글로 타자를 한 후 나중에 한자를 손글씨로 적었다.

한자 문제 말고도 한글모아쓰기 역시 타자기 도입의 장애 요소였다. 죽 늘여 쓰는 로마자에 최적화된 타자기로는 한글의 모아쓰기를 구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어쓰기를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고, 여러 학자들이 한글의 모아쓰기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네모꼴 모아쓰기로 완벽히 구현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럭저럭 모아쓰기라 할 만한 필체들이 여럿 등장했다.

워드로는 100% 재현하기 어렵고, 자필과도 다른 맛이 있다. 이 글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타자기 구조 때문에 일반 워드 글꼴처럼 상하좌우 대칭이 아니라 약간 비뚜름하며, 잉크 리본 상태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글씨체가 타자기의 매력. 이러므로 같은 모델의 타자기라도 기기별로 미묘하게 글씨체가 달라진다.[21] 흔히 '빨랫줄 글꼴'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 글씨체 때문에 타자기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네모꼴이 아니고 투박하다는 이유에서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의 '단점'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글씨가 네모꼴로 나오는(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글꼴이 예쁜) 다섯벌식 타자기 등이 틈새시장을 공략했지만 이건 애당초 예쁜 글꼴을 위해 속도를 포기한 물건이라…. 오늘날에는 타자기 글꼴과 비슷한 느낌을 찾아보려거든 옛날 출판된 서책 중 하나하나 활자로 인쇄된 책을 찾으면 된다.

과학동아의 로고 글씨가 이 빨랫줄 글꼴과 같은 원리로 디자인된 것인데, 창간되던 1986년은 마침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시류가 이동하던 시기였다. 과학동아 측에서는 "가장 컴퓨터 시대에 알맞고 '경제적인' 글꼴"을 기반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면, 일반적인 신문 활자로 한글을 완벽하게 표기하려면 약 1만~1만 2천 개의 활자가 필요한데 비해 빨랫줄 글꼴처럼 생긴 모양은 약 2,400여자 정도면 차고 넘친다는 것. 현재는 동아사이언스로 떨어져 나왔지만 당시만 해도 동아일보사라는 '신문사'에서 발행하던 잡지였던 흔적을 로고에서도 읽을 수 있다.

글꼴도 글꼴이지만 글자 하나하나가 눌려서 인쇄되어 있어, 손으로 만져보면 마치 점자처럼 신기한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본래 로마자를 타이핑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를 바탕으로 한글의 모아쓰기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시도가 이루어졌다.

5.2.1. 공병우 세벌식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
551호 552-1호·552-2호 553호
압사기 공병우 세벌식 한글 타자기 현대자동차 포니1
파일:공병우 세벌식 타자기.jpg 파일:공병우 세벌식 타자기(2013-2).jpg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2013-1)(구 등록문화재 552-1호)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2013-2)(구 등록문화재 552-2호)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두 점.
세벌식 타자기 타이핑 영상[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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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의 한글 글꼴. 글쇠는 옳은 자리에서 눌렀지만 힘이 어설프게 들어가서, 활자만 찍히고 둥글대는 움직이지 않아 마치 글쇠를 잘못 누른 것처럼 '사람'이 찍혔다. 수동 타자기는 컴퓨터와 다르게 글쇠를 누르는 힘으로 활자대를 움직여 활자를 찍고 둥글대도 움직인다. 글쇠 누르는 힘이 모자라거나 기계부 상태가 나빠서 힘 전달이 제대로 안 되면 이처럼 자간이 맞지 않게 글이 찍힐 수 있다. 컴퓨터에서도 글쇠를 눌렀으나 잘 누르지 못하여 오타가 나는 것처럼, 타자기로 자간이 어긋나게 글을 친 것도 오타에 들어간다. 찍은 글을 곧바로 지울 수 있게 수정 테이프가 달린 타자기가 아니라면, 이렇게 찍힌 글은 수정액이나 수정 테이프를 입히고 그 위에 다시 글을 찍거나 손글씨를 써서 고쳐야 했다.
(출처: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2. 두째 세대 (1960년대))[23]

대량 생산·보급된 최초의 한글타자기로 1950년 1월 미국 언더우드사에서 제작된 공병우 타자기 시제품 3대가 인도되는 것을 시작으로 6·25 전쟁(1950~1953) 중 군용으로 일부 도입되기 시작하여, 1953년에 이르러서는 250대가 도입되기에 이르렀고, 이후 대량 생산되어 1965년까지 누적 판매량 3만대의 기록적인 위업을 달성했다. 또한, 1960년대까지 20년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대량 생산된 한글 자판에서는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가 사실상 원조로서 오랫동안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사실 그 이전 40~50년대 타자기가 한창 개발 중이었을 때에는 초성·중성·종성을 묶어 한 글자로 만드는 한글 조합방식을 타자기로 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한글은 기계화가 불가능한 문자”라고 여겼다. 때문에 나온 대안이 풀어쓰기. 다행히 1940년대 공병우 박사가 한글 창제 원리에 따라 초성, 중성, 종성을 한 벌로 배치하는 세벌식 타자기를 개발하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한글의 기계화가 성공하였고, 이로써 한글 문서의 생산 속도에 엄청난 진보가 있었다.

이후 개발된 두벌식이나 네벌식과는 달리 한글이 4개 열을 차지하고 있어 시프트를 누르는 횟수가 확연히 적었다. 공병우 박사의 자서전에 따르면 평문 타자 시 공병우 세벌식은 시프트키를 1%만 사용하지만, 네벌식은 10배나 더 많은 10%를 사용하고, 두벌식은 20배나 더 많은 20%를 사용한다고 언급하고 있다.(공병우, <공병우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 지식산업사, 157~161페이지) 더군다나 초성과 중성은 시프트 없이도 모든 자모음을 입력할 수 있어 윗글쇠 자리에 기호를 넣거나 영문을 넣어 한영 타자기로 만들 수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쌍초점이었다. 초점이 하나(단초점)인 일반적인 타자기와는 달리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는 초점이 2개인 쌍초점이었다. 1950년대 맨 처음 나온 공병우 타자기를 제외하고는 초성과 중성이 오른쪽 초점에 움직글쇠로, 종성이 왼쪽 초점에 안움직글쇠로 배정되었다. 이 쌍초점 방식은 1940년대 공병우가 직접 개발한 방식으로, 한국과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1950년대 타자기는 초성만 오른쪽 초점/움직글쇠였고 중성, 종성은 왼쪽 초점/안움직글쇠였다. 거기에 된소리를 나타내는 첫소리 겹낱자 ㄲ, ㄸ, ㅃ, ㅆ, ㅉ도 따로 글쇠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안움직글쇠를 적고 두고 첫소리 겹낱자를 두지 않는 구성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기호를 더 많이 넣을 수 있고 영문 타자기(모두 움직글쇠)를 공병우식 타자기로 개조하는 수고를 덜 수 있는 구성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른 속도로 글씨를 쳐나가는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의 등장은 남북 분단 이후 남한에서 한글전용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세로쓰기로 고착되어 있던 한글 정서법을 가로쓰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발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로 먼저 전환을 시작한 쪽은 북한이었으나, 정작 북한은 타자기의 개발이 늦어 1950년대 중반까지도 공문서를 수기로 작성하여 등사하는 방식으로 생산하였고 한글전용과 가로쓰기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였다. 기계식 타자기 1대만 있으면 당시로서는 엄청났던 속도로 문서 생산이 가능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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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가 효용을 발휘한 곳은 6.25 전쟁 중의 군대였다. 군대는 신속한 문서 생산이 생명인 기관이다. 군대에서 정말로 명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직무사항은 필히 양식 있는 문서화가 되어 하달된다. 명령이라는 게 워낙 강제성이 강하며 명령자/피명령자에게 명령을 내리는 순간부터 주어지는 책무가 커서 그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은 세벌식 타자기의 효용을 알아보고[24] 해군 본부에 이 타자기를 투입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였고[25], 이후 유엔군 사령부에도 이 한글 타자기가 들어가 역사적인 정전협정문 국문본 원본이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로 작성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참여하기를 거부하였기에 협정 당사자는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 뿐이었다. 따라서 정전협정문 국문본은 순전히 북한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북한에 타자기가 없었던 이유로 협정문 국문본을 유엔군 측에서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로 작성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거쳤던 것도 '군대 물건'이었던 타자기가 민간인에게 보급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세벌식 타자기의 빠른 타자 속도는 위에서 언급한 쌍초점 방식의 영향이 컸다. 일반적인 타자기는 '입력 딜레이' 가 엄청 심하기 때문. 활자가 한번 박혔다 다시 되돌아가기 전에 다른 활자가 들어오면 Jamming 현상이 발생한다. 이른바 '활자 꼬이는' 현상. 당시 타자능력검정시험 1급 기준이 제한시간 5분에 정타수 1,250타(분당 250타) 이상이었다. 하지만 쌍초점 방식은 종성 활자가 다른 초점에 찍히므로 빠르게 타자를 쳐도, 심지어는 앞 음절 종성과 뒷 음절 초성을 동시에 쳐도 활자 꼬임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벌식 타자기는 수동타자기의 구조적인 문제인 입력 딜레이 현상을 무시하고 빠른 타자가 가능했다. 그 외에 다른 한글 타자기에 비해 시프트를 덜 눌러도 된다는 장점으로 인해 속도 면에서도 손의 피로도 면에서도 세벌식이 유리했다. 1950~1960년대에 시행되었던 각종 타자 빨리치기 대회의 기록과 수상은 사실상 공병우 세벌식이 독식하였을 정도.

그러나 세벌식 타자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었다. 세대마다 자판 배열이 계속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정한 국가 표준에 의해 고정됐던 두벌식이나 네벌식에 비해 세벌식 타자기는 국가 표준도 아니었고, 공병우 1인, 혹은 한글문화원이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자판이 자주 바뀌었다. 거기에 문장용, 체재용, 속도용 등 사용 목적에 따라 자판 배열이 달랐다. 심지어 같은 세대임에도 배열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세벌식의 잦은 자판 변동은 타자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컴퓨터 세대로도 이어져 세벌식 자판이 3-90 자판과 3-91(최종) 자판 두 가지로 사용자가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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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세벌식 타자기는 문자 변조 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존재했다. 왜냐하면 받침이 있는 모음과 받침이 없는 모음의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일'로 수정하기가 쉬웠다. 이는 세벌식 타자기의 주된 특징인 빨랫줄 글꼴(탈네모꼴 글꼴)에 기인했다. 즉 네모꼴이 아니라 받침이 없으면 받침 자리가 아예 비어 버리기 때문에 받침을 적어 넣기만 하면 변조가 가능했던 것. 특히 이러한 빨랫줄 글꼴은 반듯한 네모꼴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대에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문자 변조에 관한 문제는 이 타자기 개발자인 공병우도 인지하고 있었을 정도.[26]

결국 세벌식 자판은 네벌식이나 두벌식에 비해 시프트를 훨씬 덜 누르게 되어 손의 피로도가 적고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이유로 국가 표준으로 채택될 수 없었다. 따라서 세벌식 자판이 표준이 되지 못한 이유가 박정희[27]나 전두환[28]의 폭압 때문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컴퓨터 환경에서도 세벌식 자판이 두벌식 자판보다 낫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에 당시의 엄혹한 시대에 대한 피해의식이 투영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적인 개발 덕분에 한글과 로마자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한영 타자기가 생산되기도 했다. 공병우는 정부표준 타자기가 고정된 상황에서 "정부표준 타자기가 못하는 것"을 찾고자 고심했는데, 세벌식은 네벌식보다 글자 수가 적어 글쇠를 잘만 배치하면 시프트 키를 아예 안 쓸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예 모든 한글을 아래쪽에 몰아주고 위쪽에 로마자를 배당해 한영 타자기를 만들어냈다. 현존하는 한영 혼용 타자기는 95% 이상이 공병우 세벌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외에 이윤온[29] 세벌식 타자기가 있는데, 겉으로는 두벌식처럼 보이지만 왼편에 받침 글쇠가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것도 엄연히 세벌식이다. 글씨체도 세벌식과 거의 동일하다. 그리고 전신 타자기에서는 세벌식이 강점을 보였기 때문에 1969년 네벌식이 표준으로 지정된 후에도 전신 분야에서는 여전히 세벌식이 표준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한글 기계화로 국민 문자 생활의 새 시대를 열어 대한민국의 산업화·정보화에 큰 역할을 하였고, 한글전용, 가로쓰기가 보급되어 정착할 수 있는 초석을 놓았을 뿐 아니라, 현대 한글의 컴퓨터·디지털화까지 이어지는 가교 역할까지 했다는 데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공적이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중 최초 모델 두 점이 2013년 등록문화재 제552-1, 552-2호로 지정되었다.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가 강세였던 1960년대까지는 타자기가 비싸고 보편적인 기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관공서나 군부대, 일반 기업에서 그나마 쓰이던 세벌식 타자기도 1969년 네벌식, 1983-84년 두벌식 표준이 제정되면서 상당수가 폐기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70-80년대에도 공병우 타자기는 지속적으로 생산됐지만 정부 표준이 제정되면서 수요가 급감하자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는 50~60년대 타자기 시장을 거의 독점한 양산 타자기임에도 잔존수량이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생산수량이 적었던 50년대 초 최초 생산분이나 90년대 초 최후 생산분의 세벌식 수동 타자기가[30] 대량 양산 제품치고는 상당히 희귀한 편이고, 60년대 김동훈 다섯벌식에 대항하는 제품으로 생산한 공병우 네벌식 반(체재식) 타자기나 1969년 정부표준 제정이후 생산했던 공병우 네벌식 등의 제품도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다.

5.2.2. 김동훈 다섯벌식

파일:다섯벌식 글꼴.jpg
다섯벌식 타자기의 글꼴. 인터넷상에 위 이미지가 첨부되어있는 몇몇 타자기 관련 게시물에서는 공병우 타자기의 글꼴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받침 유무에 따라 모음의 길이가 달라지는 것(이것은 네벌식도 같음) 뿐만 아니라, 위 이미지의 첫줄 '원조 자금을'을 보면 '조'에서의 'ㅈ'과 '자'에서의 'ㅈ'의 글자꼴이 다른데, 이렇게 모음의 위치에 따라 초성의 모양을 구분하는 것은 다섯벌식 타자기 뿐이다.
타자기 김동훈 다섯벌식 자판
1
%
?
















Shift


  [D]





⇧ Shift
Space
쪽으로 치우치는 자음」은 측에, 그와 호응하는 「ㅏ,ㅑ,ㅓ,ㅕ,ㅣ류의 모음」은 우측에 위치하며,
「위쪽으로 치우치는 자음」은 우측에, 그와 호응하는 「모음 ㅗ,ㅛ,ㅜ,ㅠ,ㅡ」는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중모음[32] 제외하고, 어떠한 초성/모음 조합이든지 왼손/오른손이 번갈아 쓰이게 된다.

1959년에 실용화되어 1960년대에 공병우 세벌식과 시장을 3:6으로 양분했다. 네벌식도 받침이 붙는 모음과 붙지 않는 모음은 구분하지만 모음이 붙는 위치에 따라 초성의 모양도 달라지는 것은 다섯벌식 뿐이기 때문에, 활자의 모양 자체는 다섯벌식이 가장 수려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예쁘게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행정기관이나 민간 기업들을 중심으로 많이 사용했다. 다만, 군에서는 속도가 빠른 세벌식을 주로 사용했고, 상급부대 보고용과 같이 예쁜 글씨가 필요한 경우에만 다섯벌식을 일부 사용했다.

5.2.3. 장봉선 다섯벌식



타자기 장봉선 다섯벌식 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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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다섯벌식 타자기 외에 장봉선 다섯벌식 타자기도 존재하는데, 장봉선 다섯벌식은 자판은 세벌식이지만 메커니즘은 다섯벌식인 타자기다.

5.2.4. 네벌식

파일:external/moogi.new21.org/1191587444.gif
네벌식 타자기의 한글 글꼴.
네벌식 타자기 타이핑 영상[33]

파일:네벌식타자기자판.jpg
네벌식 타자기의 자판 배열. 사진 속의 타자기는 동아정공에서 만든 마라톤 10TR이다.
타자기 네벌식 표준 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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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성
받침 없는 중성
받침 있는 중성
종성 기타
1969년 정부가 국무총리 훈령으로 공표한 네벌식.

현대 표준 두벌식 자판의 기원이 된 자판 배열로, 초성자음 한 벌, 받침이 없는 모음 한 벌, 받침과 함께 쓰는 모음(안움직임글쇠) 한 벌, 받침용 종성 자음 한 벌로 이루어진 글자 자판이다. (자음 2세트 + 모음 2세트 = 4벌)

1960년대까지는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와 김동훈 다섯벌식 타자기가 시장을 6:3으로 양분하고 있었고, 나머지 10%는 장봉선 다섯벌식, 백성죽 네벌식, 진윤권 네벌식 등 각종 형태의 자판이 난립하여 당시 한글 자판의 종류가 무려 13종에 이르렀다. 따라서 정부 표준을 제정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1969년 박정희 정부 당시 과학기술처 주도로 네벌식 자판을 국가표준으로 정했다. 이 네벌식 자판은 기존 세벌식과 다섯벌식의 장점을 취합해서 세벌식보다는 글꼴이 반듯했고, 다섯벌식보다는 글쇠가 적었기 때문에 다섯벌식보다 더 쉽게 배울 수 있었고, 더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세벌식과 다섯벌식의 장점만을 취합한 게 아니라 둘의 중간 형태일 뿐이라 세벌식보다는 속도가 느렸고, 다섯벌식보다는 글꼴이 반듯하지 못했다. 당시 세벌식과 다섯벌식이 시장을 양분하던 상황에서 이도저도 아닌 네벌식이 뜬금없이 표준 자판으로 지정되자 사용자와 업체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공병우 박사가 정부의 결정에 반발했는데, 정부는 그를 중앙정보부로 끌고 가는 등 강압적으로 불만 여론을 잠재웠고, 결국 1970년대에는 정부 표준 네벌식 타자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네벌식 타자기는 장점 중 하나는 초성 쌍자음 활자가 따로 있어 간단하게 컴퓨터와 같이 시프트를 누른 상태에서 입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두벌식이나 (극초기형을 제외한) 세벌식, 다섯벌식의 경우 초성 쌍자음 활자가 따로 없어 반스페이스를 적절히 쓰는 군동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판에 포함된 활자의 한계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ㅋ 받침을 입력할 수 없다. 'ㅋ'받침의 활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실 세벌식 타자기에도 받침 ㅋ이 빠져 있는 것도 있다. 다섯벌식은 네벌식처럼 ㅋ 받침이 없다. 받침 ㅋ을 바로 입력할 수 있는 타자기는 생각보다 흔치 않은 편이다. 현대 한국어에서 'ㅋ'받침이 들어가는 낱말은 '동녘, 서녘, 남녘, 북녘, 부엌, 새벽녘, 저녁녘, 키읔' 정도 뿐으로 소수이긴 하지만, 이 단어들을 입력할 때는 곤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어휘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 다만 정 입력하고 싶다면 방법이 두 가지 있기는 하다. 받침 ㅈ을 먼저 입력하고 백스페이스를 눌러 같은 자리에 받침 ㅈ과 같은 키인 받침 ㄱ을 진하게 덧씌우면 모양이 이상하긴 해도 받침 ㅋ을 만들 수는 있다. 그리고 아주 번거로운 방법도 하나 있다. 예를 들어 '녘'을 입력한다고 한다면, 우선 '녀'(ㅕ 모음은 받침 있는 ㅕ)를 입력한 다음 백스페이스를 한 번 누르고 롤러를 한 칸만 내려서 초성 ㅋ을 입력한 다음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다시 롤러를 원래 줄 올려 계속 적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타자기 교본에도 나와 있고, 모양도 제일 깔끔하기는 하나 상당히 번잡스럽다는 단점이 있다.

모음 'ㅒ'와, 아래에 받침이 있는 경우의 'ㅖ'의 경우에도 한 번에 입력할 수 없다(받침 없는 모음 'ㅖ'는 활자가 있다). 가령 "기" 같은 단어를 타이핑하려면 좀 귀찮아지긴 하지만, 타자 자체는 가능하다. 받침 있는 ㅖ는 받침 있는 ㅕ를 먼저 타자하고 받침 있는 ㅣ를 덧씌워서 타자. ㅒ는 ㅑ를 먼저 타자하고 백스페이스로 되돌아간 후 반스페이스를 누른채로 받침 없는 ㅣ를 타자하면 깔끔한 모양이 나온다. 다른 방법으로는 받침 있는 ㅖ의 경우 ㅖ를 입력한 다음 백스페이스로 돌아가서 치는 방법이 있다. ㅒ는 받침 있는 ㅑ를 누르고 반스페이스를 눌러 받침 없는 ㅣ를 눌러줘도 입력할 수 있다.

세벌식이나 다섯벌식과는 달리 네벌식은 정부 표준이었던 역사가 있어 경방 크로바나 동아 마라톤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되었다. 스미스 코로나나 올리베티, 브라더, 옵티마, 에리카 같은 해외 제조사들도 한글 네벌식 타자기를 생산한 바 있다. 코오롱 상사가 1980년부터 네벌식과 두벌식 올리베티 한글 타자기를 수입 판매했다. 놀랍게도 옵티마와 에리카는 당대 적성국인 동독산이었다! 그래서인지 제조국을 가리거나 지운 채로 나온 타자기도 있다.

영문타자기와 비교하면 안움직임글쇠(부동키)를 처리하기 위한 부품 가공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원가는 약간 더 비싸다.

5.2.5. 두벌식

두벌식 타자기 타이핑 영상[34]

파일:두벌식 타자기자판.jpg

1982년 컴퓨터 시대에 대비해 컴퓨터용 정부 표준 자판으로 제정된 두벌식 자판은 타자기에도 적용되어 1980~1990년대까지 가장 오랜 기간 생산되었다.

두벌식이라는 이름처럼 자음 한 벌, 모음 한 벌의 구성이며, 현재 키보드 배열에 쓰이는 두벌식과 자판 배열은 거의 동일하다. 차이가 있는 부분은 오른쪽 부분. 컴퓨터 키보드와는 달리 ㅒ, ㅖ, ㅢ 등에 할당된 키가 추가로 있다. 그 외에도 ㅘ 등에 쓰이는 ㅗ, ㅝ 등에 쓰이는 ㅜ를 위한 키도 있다. 애초에 영문 QWERTY 자판과의 호환을 염두에 두고 표준 제정된 자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인이 사용법을 직관적으로 익히기 쉬워 보인다.

그러나 1982년 제정된 자판을 타자기에서 사용할 때는 세벌식이나 네벌식에 비해 속도가 훨씬 느렸다. 그 이유는 컴퓨터에서와는 달리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받침을 자동 인식하지 못하므로 받침이 있는 글자를 치려면 '시프트(또는 받침)' 키를 누른 후 받침이 있는 글자의 모음과 받침을 쳐야하는 기계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글'이라는 단어를 전자식 이외의 두벌식 타자기로 입력하려면,
"ㅎ" - "받침" - "ㅏ" - "ㄴ" - "ㄱ" - "받침" - "ㅡ" - "ㄹ"
순서로 입력해야 한다.

왜 (ㅎ) - (ㅏ) - (받침키) - (ㄴ) 순서가 아닌지 의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입력하면 ㅏ가 받침이 없는 ㅏ로 입력되고 부동키 상태가 아니라 한 칸을 이동하게 되어 받침자가 오른쪽으로 밀린다. 종성 자음은 오른손으로 칠 수 있는 것 외에는 ㅏ~ㅣ와 ㅗ~ㅠ 중 어디에도 정확히 아래에 향하지 않고 애매하게 들어가거나 삐져나온다. 대부분의 자음 활자들이 ㅗ~ㅠ쪽에 그나마 더 가까이 위치하기 때문에, ㅏ~ㅣ 아래 종성을 예쁘게 치기 위해 스페이스바를 누른 상태(=반 칸 앞으로 나온 상태)로 자음을 친 뒤 다시 스페이스바를 떼는 스킬도 있다. 위 예시의 '한'을 이 방법으로 치면 ("ㅎ" - "받침" - "ㅏ" - 받침을 계속 누르며 스페이스바를 누른 상태로 "ㄴ" - 받침을 떼고 난 후 스페이스바 뗌) 순서가 된다. 이렇게 하면 스페이스바를 눌러도 한 칸이 더 띄어지지 않고 자모를 계속 칠 수 있다.

타자기 특성상 초성과 종성을 찍는 활자가 별도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만약 실수로 받침키를 누르지 않는다면 하ㄴ그ㄹ 이라고 나온다.

형태적으로는 자음 - 모음으로 구성된 두벌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성 자음 - 받침 있는 모음 - 받침 없는 모음 - 종성 자음의 네벌식 메커니즘이라 글꼴도 네벌식과 별다를게 없었다. 네벌식과의 차이점은 받침용 음소를 별도의 글쇠로 배정한 것이 아니라 받침용 Shift 키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기계적으로는 세벌식이나 네벌식과는 달리 시프트 키를 누르면 시프트락 키를 누른 것처럼 고정되었고, 이걸 풀기 위한 시프트락(Shift lock) 자동 풀림 장치가 추가되었다. 받침이 있는 글자를 칠 때는 모음을 치기 전 시프트락 글쇠를 누르고 짧은 모음과 받침이 찍히고 나면 시프트락이 해제되어 다시 초성 자음을 입력할 수 있도록 한 구조였다.(수동으로 풀려면 스페이스바를 눌러야 한다.) 이런 시프트락 자동 풀림 장치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생산단가는 더 높아졌고, 기계적인 구조도 더 복잡해졌다. 쌍자음 초성 입력도 시프트 키가 아니라 별도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35]

이런 이유로 두벌식 키보드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같은 두벌식 타자기를 치려면 적응하기 상당히 힘들고, 손목과 새끼손가락의 피로도가 높고, 타이핑 속도도 느리다. 표준 제정 당시에도 “컴퓨터용 두벌식 자판은 기계식 타자기에 부적합한 자판임에도 정부가 부당하게 타자기 표준으로 지정했다”는 논란이 많았으며, 이런 인식은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에도 두벌식-세벌식 진영 간 “우월한 한글 자판”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다만 네벌식과 비교했을 때 두벌식 타자기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두벌식은 네벌식보다 겹받침 글쇠가 더 많다. 네벌식은 ㄶ, ㅄ, ㅆ 받침만 별도 글쇠가 있지만 ㄲ, ㄺ, ㄻ 받침을 한 번에 타이핑할 수 있는 글쇠가 있다. 또한 네벌식과는 달리 ㅒ 글쇠가 있다. 다만 받침 있는 ㅖ는 네벌식과 같은 방식으로 입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ㅖ의 시프트는 받침 있는 ㅖ가 아닌 ㄶ 받침이기 때문. 그리고 ㅘ, ㅙ, ㅚ, ㅝ, ㅞ, ㅟ 등에 쓰이는 ㅗ나 ㅜ에 해당하는 글쇠가 따로 있어 조금 더 예쁘게 입력된다. 그리고 한국어에서 많이 쓰이는 ㅢ도 한 번에 입력하는 글쇠가 있다. 무엇보다 네벌식에서는 아예 입력이 불가능한 받침 ㅋ을 입력할 수 있다.

단점으로, 한국어에서 많이 사용되는 문장 부호인 작은따옴표(')가 없다. 네벌식에서는 숫자 8의 시프트로 있지만 두벌식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외에도 등호(=) 기호도 두벌식에는 없다. 사실 등호(=)는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받침 ' - ' 를 누르고 백스페이스를 누른 다음 받침을 고정시키고 한번 더 받침 ' - ' 을 누르면 좀 길지만 ' = '을 만들 수 있다. 받침 + 모음'ㅡ'를 치고 스페이스를 눌러 받침을 해제하고 백스페이스로 돌아가서 모음'ㅡ'를 치는 방법도 있다.

이 외에 외솔 두벌식 타자기도 있는데, 표준 두벌식 타자기가 네벌식 메커니즘의 두벌식 자판이라면 외솔 타자기는 세벌식 메커니즘의 두벌식 자판으로 되어 있었다. 입력 방법도 표준 두벌식 타자기와는 달리 받침 있는 글자를 칠 때는 '초성-중성-받침(시프트)-종성' 순으로 쳐야 했다. 외솔 타자기에서는 시프트키를 누르면 활자 뭉치가 내려옴과 동시에 하프 백스페이스 된다.

6. 유명 타자기 메이커 목록

6.1. 미국

타자기가 발명된 국가다 보니, 가장 많은 타자기 회사가 있고 가장 유명하다.(가다나순)

6.2. 독일

에리카나 아들러, 라인메탈, 그로마 등 2차대전 즈음에 타자기를 만들어 군 혹은 정부에 납품하던 회사들은 나치당 간부나 군인들의 편의를 위해 SS마크(ϟϟ)를 특수문자열에 넣었다고 한다...예를 들어 이 그로마 Modell N이 있다. 요약하자면 영국 공군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종전 후 베를린에서 정보기관 요원으로 일하던 자기 할아버지의 유품을 소개한 것이다. SS마크가 있는 숫자 '3'키만 유독 심하게 닳아서 자기도 소름 돋든다고......

6.3. 일본

6.4. 중국

6.5. 한국

6.6. 기타

위에 언급된 업체 외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간 생산 판매된 타자기 브랜드는 약 1,000개 이상에 달한다. 그 중에는 세계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지금까지도 타자기 애호가 및 수집가들 사이에서 명망 높은 브랜드들이 많이 있다.

7. 타자 학원

오늘날엔 타자기는 사무 현장에서 완전히 퇴출되었지만, 과거, 즉 20세기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도 모든 기업이 타자기를 사용했기에 타자 능력은 매우 유용한 기술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가 타자 능력을 가진 ‘타이피스트‘(타자수, )를 원하였으며 이들을 양성하는 타자 학원이 여러 나라에 생겨났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1950년대에 이미 타자 학원이 설립되었다. 제일타자학원, 뉴타자학원 등 유명한 타자학원들이 주요 도시에 개업해 타자 기술을 교육하였으며 졸업생들은 100% 취업이 보장되었다. 20세기에 타자 학원들은 수백만 명의 졸업생을 배츨하였으며, 서울 신촌, 영등포, 이어 강남역 등 비싼 땅에 학원 빌딩이 세워질 정도로 성업했다. 1980년대에 기계식 워드 프로세서가 등장하자 대부분의 학원에서 이를 커리큘럼에 포함시켰으며, 1990년대에 사무 현장에서 타자기가 거의 퇴출된 후에도 학원명을 ‘타자컴퓨터학원‘으로 바꿔 계속 학생을 교육했다. 당시 컴퓨터는 사실 스크린 달린 타자기 수준이었으며 정확하고 빠르게 키보드로 문자와 숫자를 입력하는 기술은 여전히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 액셀, 워드 등 사무용 소프트웨어 사용 기술이 커리큘럼에 추가되었다는 점만 달랐다.

국내에서 최초로 전문 타이피스트를 고용한 기관은 서울대학교라고 알려져 있다. 20세기 중반에 대외 문서를 수기가 아니라 타이프해 작성하도록 규칙이 정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서울대학교는 학생들의 학점 등 학사 기록을 외국(주로 미국)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외국 대학들은 이런 기록을 반드시 타이프라이터로 작성하도록 요구했기에 타이피스트가 필수였다고 한다.

이후 KBS, TBC, MBC 등 방송국과 신문사 등의 언론업계에서도 속기사 대신 속기 타이피스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어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사무 현장에서도 비서는 반드시 속기 타이프라이트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해 타이피스트의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8. 타자수(타이피스트)

PC휴대전화 등의 디지털 기기에 문자를 입력할 때 쓰는 키보드는 타자기 자판과 비슷하게 생겼다. 때문에 오늘날 이런 기계를 이용하는 이들은 과거 타자기 사용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건 연습만 좀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그러나 타자기는 디지털 기기와 달리 오타를 수정하는 기능이 없다. 타자 중에 실수하면 (1) 종이를 바꿔 처음부터 다시 치거나, (2) 수정액으로 오타를 지운 뒤 그 부분부터 다시 치거나, (3) 스트라이크스루를 타자해 틀린 글자를 지운 후 그 부분부터 다시 치는 방법을 써야 했다. 3번은 자기 개인 용도로 쓰는 문서(예: 작가가 직접 타자하는 원고)에서나 허용되는 방법이었으며, 2번은 수정액이 마를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다 공식 기록으로 남겨아 하는 문서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1번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었다. 즉 타자수는 한 번도 오타를 내지 않고 문서 한 장을 타자할 수 있는 집중력과 기술을 가진 전문가였던 것이다.

게다가 타자수는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칠 것이 요구되었다. 20세기 직업 타자수들은 최소 분당 80~90단어(영단어 기준)를 타자할 수 있어야 했다. 분당 110단어 넘게 타자할 수 있으면 고수 수준이었다. “이 정도는 나도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타자수는 오타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제한적이던 20세기에 타자수는 많은 여성들이 선호하던 직업이었으며, 사실상 모든 직업 타자수는 여성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서 타자가 많이 요구되는 기업이나 기관들은 수많은 타자수들을 고용했다. 타자수들은 특정 부서에 전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부(typist pool)에 속해있어, 타자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해당 부서로 파견되어 문서를 타자해주고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또한 특정 인물(간부급)에게 배정된 전속 비서가 타자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타자수가 타자하는 내용은 사람이 직접 육성으로 불러주는 경우도 있고, 딕타폰(dictaphone)이라는 녹음기에 타자할 내용을 녹음해 타자부에 보내면 타자수가 그 내용을 헤드폰으로 들으며 타자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스스로 문서를 작성하므로 전문 타자수의 수요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대량의 문자를 고속으로 입력할 수 있는 타자수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있다.

9. 대중매체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나온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타자기를 친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당연한 풍경이긴 하지만.

영화 샤이닝에서 주인공 잭 토렌스가 서서히 미쳐가는 것을 타자기를 통해 섬뜩하게 묘사한다. 작가인 잭이 겨울 내내 타자해놓은 수십 페이지의 원고는 전부 똑같은 내용(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만 반복적으로 타자되어 있었던 것. 이는 실제로 영화 제작진이 직접 타자했다고 한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서 세이브 포인트로서의 기능을 하는 타자기가 있다. 시대관이 컴퓨터가 있는 시절임에도 타자기가 버젓이 있는 묘한 느낌의 개성적 아이템으로 바이오하자드를 대표하는 예로도 충분하다. 세이브를 할 때에 클래식(4 이전)에서는 타자기에 필요한 물품인 잉크 리본 한 개를 소모해야 세이브를 할 수 있다. 자동 저장의 시대에서도 타자기 모양이 나오며, 2019년 발매된 바하2 리메이크에서도 하드 모드에선 잉크로만 저장할 수 있다. 참고로 디자인은 미국 로얄 사(Royal Typewriter Company)의 제품을 모델로 하며 상표는 구작은 아멘호테프(Amenhotep)[41]사, re시리즈부터는 렉싱턴 사(Lexington Typewriter Company)라는 가상의 회사로 어레인지되었다.[42] 주로 쓰이는 디자인은 로얄 10 혹은 로얄 포터블이 모티브로 1편 리메이크, 4편 원작, 오퍼레이션 라쿤 시티, re2, re3에서 이를 기반한 디자인이 사용되었다. 8편이나 일부 구작에서 다른 디자인을 사용하는 세이브 타자기들도 로얄 사 제품군에서 모티브를 딴 물건들이다. 이것이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re2를 발매할 때 한정판 구성품이 작중 등장하는 렉싱턴 타자기의 자판 부분과 똑같이 생긴 키보드였다.

명일방주에서 파죰카가 자신의 타자기를 무기로 활용한다.

바이오쇼크 시리즈에서도 사무원들의 책상에서 종종 보이곤 하나, 사용하기 키를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단순한 인테리어 소품일 뿐이다.

디스아너드 시리즈를 플레이하다 보면 굉장히 자주 볼 수 있고 상호작용도 되지만 진짜 상호작용만 되고 작성하지는 않는다. 종종 근처에 읽을 거리가 있다.

가면라이더 W에서 하드보일드한 느낌을 주기 위해 타자기로 사건을 찍어 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영어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준수한 표기로 나와 팬들에게는 있어 보이는 척 하는 장면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NCIS티모시 맥기가 소설을 쓸 때는 타이프라이터를 고집한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영화판에서 전지적인 작가이자 영화의 내레이터 레모니 스니켓이 타자기로 보들레어 삼남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걸로 묘사된다. 주드 로가 연기한 이 레모니 스니켓이 사용한 타자기는 Royal Quiet DeLuxe로 1950년대에 인기 있던 모델이다.

소중한 날의 꿈에도 공병우 타자기가 나왔다. 하지만 디자인이 위에 나와있는 두벌식 타자기라서 1000DLX 두벌식 타자기와 디자인이 로고 빼고 똑같다. (다만 두벌식만 생산된 건 아니고 네벌식도 생산되었다.) 하지만 공병우 타자기는 세벌식이다. 사실, 마라톤 타자기를 공병우 타자기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라톤 타자기는 1980년대 이후에야 나온 타자기라는 것.

일본 애니메이션 내일의 나쟈에서 나쟈 애플필드가 타자기를 사용하는데, 나쟈의 모어가 영어라 그런지 알파벳으로 찍혀 나온다. 작중 배경이 20세기 초 유럽이기도 하고... 반다이에서 나쟈의 타자기를 본떠 만든 모형을 판매하기도 했다.

일본의 라이트 노벨 바이올렛 에버가든 또한 타자기를 이용해 편지나 기록을 대필해주는 직업인 자동 수기 인형[43]을 중심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애니에서는 여러 유명한 타자기 모델들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묘사가 매우 정교하다. 그래서인지 앤티크한 매력이 되게 강하다. 오죽하면 그걸 진짜 산 사람이 있다 애니에 나오는 타자기들을 몇몇 나열하자면:

최초의 휴대용 타자기 중 하나인 언더우드 포터블 4뱅크 타이프라이터 데이터베이스

파일:KakaoTalk_20180630_201807099.jpg

파일:Cpqf7k3UEAALi1w.jpg

1930 LC Smith 8 타이프라이터 데이터베이스

다만 리턴 레버는 '타자기' 하면 떠오르는, 타자기의 대명사 언더우드 No.5의 것에 가깝다.#

파일:KakaoTalk_20180626_14205022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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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onky-alphabet-tbh.jpg

SCP-3043은 검은색 1937년형 올림피아 엘리트 타자기이다. 근데 문제는 이 놈이 보통 타자기가 아닌, 지성을 가진데다가 자신이 포함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이 이야기는 단순히 문서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의식까지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 SCP-3043을 떠올렸다면 그 의식을 편집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그 사람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작중에서는 비슷한 과인 SCP-3143[44]에게 총 두방을 맞고 무력화된다.

10. 기타

타자기 관리시에 사용하는 윤활유는 일반적으로 "미싱 오일"이라고 불리는 재봉틀에 사용되는 기름이다. 원래 명칭은 스핀들유. 오래된 타자기는 뻑뻑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사서 뿌려주면 된다. WD-40이나 일반적인 구리스는 처음에는 괜찮아도 시간이 지나면 도로 뻑뻑해지거나 떡이 되어 붙기에, 그리 추천되지 않는다.

타자기 내부는 여러가지 부품들 때문에 완전히 닦을려면 분해를 해야하는데 온갖 기계부품들이 가득한 물건이니 이런 것에 지식이 없다면 잘못했다간 고장날수 있으니 주의하자.

서양에서는 타자기의 특징[45]으로 인해 이 작업을 전문적으로 하던 업종도 있었으며 이들을 Typist라 불렀다.[46] 1970년대까지 존재했으나 PC의 보급과 함께 사라진 직업.

한중일 등 동아시아권에서는 원고지가 작가의 상징이라면, 구미권에서는 타자기가 작가의 상징이다. 특히 동아시아권처럼 일정한 원고지 양식이 없었던 구미권에서는, 타자기가 보급된 이후 타이프 용지 매수를 기준으로 한 원고료 책정이 가능해졌다. 타자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원고에 쓰인 단어의 수를 일일이 세어 원고료를 책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시기 서양고전은 만연체를 써서 단어를 많이 쓰거나 배경묘사가 쓸데없이 긴 경우가 많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 개수당, 작품 하나당 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대만, 일본은 타자기를 가지고 있어봐야 손글씨를 쓰는것과 큰 속도차이가 나지 않았으니 말할 것도 없고 한글 타자기가 이미 널리 사용된 1980년대까지도 국내의 원로 문인들에게는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 하지만 당시 소설가 장정일이 서술하듯, 젊은 문청들에겐 타자기가 머스트해브 아이템이자 일종의 로망이었다. 머지않아 워드프로세서와 PC의 시대가 와버렸지만…

한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찰서 등의 공공기관에 컴퓨터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종 공문서를 작성할 때 타자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특히 제5공화국과 같은 한국의 시대 드라마나, 투캅스 등의 경찰을 소재로 하는 한국 영화들에서 조사실을 배경으로 장면에서는 노란 백열등 아래의 책상에 타자기가 어김없이 놓여 있다. 영화 <투캅스>에서 어느 용의자는 조사 중에 이것에 머리를 들이박는 자해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당시에 일선 경찰서의 조사실에 녹음장치나 CCTV 같은 게 없었다는 점을 악용해서 조사관에게 고문 누명을 씌우려 했던 것.[47]오늘날에는 용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웬만한 경찰서 조사실에 음성이 함께 기록되는 CCTV가 설치되어 있기에 불가능한 일이다.

상업고등학교에서는 90년대 초까지 주산, 부기와 함께 타자기 사용법을 교육했으며 타자 급수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상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타자기는 필수품이었다. 이후 워드프로세서로 대체되긴 하지만...

프리드리히 니체는 시력이 악화되어 손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타자기를 연습하여, 눈으로 보지 않고도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친구 하인리히 코젤리츠는 "니체가 타자기를 이용한 이후 그의 글이 간결하고 탄탄해졌다"고 평가하며 "새로운 필기 수단으로 새로운 표현을 배운다"고 니체에게 전했고, 니체도 이에 동의하였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의 타자기는 아니고, 이렇게 생겼다.

2011년 4월 25일, 세계의 마지막 수동타자기 생산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가 세계적으로 유포되었으나, 해당 공장은 마지막 수동타자기 생산 공장이 아니었다. 수동식 타자기와 전기/전자식 타자기들은 다른 공장에서 아직도 생산된다. 수동타자기의 소모품인 '잉크리본(먹끈)' 또한 아직까지 생산된다. 수급 면에서나 가격 면에서나 구하기에 어렵진 않다. 국내에서는 과거 크로바타자기를 생산했던 경방 크로바#에서도 아직 자사 리본을 판매하고 있고, 중고나라에서도 수동타자기 리본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자가 있다.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이패드와 USB로 연동되는 타자기가 제품으로 선보여진바 있다. 가격은 만만찮지만 멋지다.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튜닝한 타자기를 약 700불 정도에 거래하고 있다. 굳이 아이패드가 아니라 모니터여도 상관 없는 듯. 기존 타자기를 이용해 만드는 킷(94불)을 사서 만들 수도 있다.

정보통신 보안의 문제로 인해, 정부기관에서 타자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프리즘 폭로 사건 이후 정보기관에서 보안문서 작성에 독일제 전자식 타자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FSO(연방경호국)의 타자기 20대 구매 문서이지만, 이 보도가 나오기 전부터 러시아 국방부, 정보기관 등지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각 타자기 별 필적을 조사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컴퓨터의 경우 해킹에 대한 방어가 100% 안전하다고 할 수 없기에 가장 원시적이면서 보안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타자기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독일 정부의 경우 미국 정보기관 NSA의 해킹을 피하기 위해 전자식 타자기도 아닌 수동식 타자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 알래스카 주정부는 2018년 주정부 전산망이 사이버 공격으로 마비되자, 캐비닛에 보관 중이던 타자기를 꺼내 업무를 수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위 영상은 다소 과장되었지만, 타자기로 타이핑을 하는 감각에 익숙해졌다가 이후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의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게 되자 타자기를 칠 때처럼 키를 세게 두드리는게 버릇이 돼놔서 키보드 적응이 어려웠다는 사연은 지긋한 중장년층 어른들에게서 종종 들을 수 있다.

실제로 IBM에서는 이것을 고려해 자사의 디스플레이라이터(DisplayWriter) 워드 프로세서의 키보드에 솔레노이드를 박아 키를 두드리면 솔레노이드가 작동하면서 소리를 내 타자기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자신을 비방하는 전단이 타자기로 쳐진 걸 확인하자 타자기 사용을 금지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같은 공산주의 독재자 아니랄까봐 엔베르 호자도 비슷한 짓을 저지른 적이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비서라고 알려진 여성 트라우들 융에도 주 업무가 타자 치는 일이었다. 타자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필경사들이 서류작성을 대신했는데, 타자기가 보급되고 나서는 여성들이 타자수로 고용되기 시작했다. 앉아서 타자기만 붙잡다 보니 '여성적인' 일로 여겨졌다고. 그 당시 '비서'의 주 역할이자 자격 요건 중 하나가 타이핑이었다. 타자수 자체도 당시에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전문직으로 꼽혔다. 타자수로 활동하려면 타이핑만 잘하는 게 아니라 문서를 작성하는 능력 자체를 일정 수준 지녀야 했고, 구술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므로, 이를 위한 숙련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업인 조안 리성심여자중고등학교 시절에 교장수녀로부터 타자기를 배워 문서 작성 심부름을 도맡았는데, 이때 익힌 타자 실력은 훗날 그녀가 미국에서 신혼살림을 꾸리는 데 크게 보탬이 되어준다.

마크 트웨인은 언론사에 순수 타이프 원고를 보낸 최초의 작가라고 여겨진다. 마크 트웨인은 타자기로 쓰여진 첫 소설이 자신의 <톰 소여의 모험(1876)>이라고 주장했는데, 타자기 수집가 대릴 레어는 그 주장이 오류라고 지적하며, 사상 최초로 타자된 책은 마크 트웨인의 <미시시피강의 추억>(1883)이라고 밝혔다.


그 특유의 소리를 이용해 미국의 작곡가 르로이 앤더슨(Leroy Anderson, 1908~1975)은 '타자기(The Typewriter)'라는 곡을 만들기도 하였다. 어떻게 된 게 르로이 앤더슨은 하버드 졸업에 명예의 전당 거리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의 엘리트인데 어쩐지 인터넷에서는 이런 식으로 '정신나간 괴짜'로 더 유명하다. 사실 이는 르로이 앤더슨 본인이 자초한(?) 부분도 있다. 물론 앤더슨은 흔히 생각하는 클래식처럼 '진지한' 곡도 많이 작곡했지만, 이 타자기 곡이나 사포를 연주하는 곡을 작곡하는 등 이런 식의 괴짜 짓 역시 많이 했기 때문이다.


마블머신으로도 유명한 스웨덴의 포크트로니카 밴드 Wintergatan의 일부 곡에서도 사용된다. 르로이 앤더슨의 곡에서는 타자기소리를 중심으로 곡이 진행되지만, Wintergatan의 곡에서는 타악기처럼 퍼커션 반주 역할을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위 영상에서는 1분 7초쯤부터 사용한다.)

수리 관련으로는 굉장히 좋지 못했는데, 타자기를 사용하던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 시절의 용산 수리센터와도 같았던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했다. 특히 수리할 때 가장 많이 비용이 드는 것은 활자부품으로 재질이 아연 합금이라 그런지 더럽게 잘 부러지는 데다가 고칠 때마다 부르는게 값이었다. 현재도 중고 타자기를 수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워낙 극소수인데다가 수리 값이면 웬만한 중고 타자기를 새로 살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대 중고라고 해도 수십년 묵은 것들이 많다보니, 적지않은 수의 타자기가 결국 언젠가 수리를 맡기기는 해야 한다.

헐리웃 배우 톰 행크스가 빈티지 타자기 수집가로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레고에서 레고 아이디어 라인으로 타자기를 내놓았다. 실제 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키를 누르면 캐리지 등 각종 기믹이 움직일 뿐 아니라 철컥철컥 찌익 하는 소리까지 제법 그럴 듯 하게 난다. 창의적인 작동부 구현에 빈티지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48]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https://www.lego.com/en-us/product/typewriter-21327


기계식 타자기를 마개조해서 리눅스 터미널로 만든 사례. 이 외에도 1930년대 사용되던 전신 타자기(텔레타이프)를 개조한 사례도 존재한다. 일단 타자기 자체는 문제없이 작동하지만 바로 글씨를 띄울 수 있는 컴퓨터 화면과 다르게 출력이 타이핑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필요하기에 실용성이 높지 않다.

10.1. 관련 문서


[1] 소비자물가지수를 이용한 화폐가치변화를 환산하면 2021년 기준 1,169,858원이다. 통계청 제공 화폐가치계산 참조. 아이폰12 128GB의 가격이 110만원 정도이니까 당시의 타자기는 거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모델과 가격이 비슷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일시불이 아닌 10개월 할부로 구매할 경우의 가격은 35,000원으로 17%에 가까운 할부 수수료가 추가되었다.[2] 등사기가 있긴 했다. 이쪽은 복사기에 더 가깝다.[3] 이 발명일자는 현재 국제 타자기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4] 참고로 현재 컴퓨터 키보드에 있는 엔터 키는 8비트 컴퓨터 시절만 해도 "리턴"키라고 불렀었다. 타자기의 리턴 레버가 위치하던 부분에 있던 키인데, 컴퓨터에서는 리턴 기능이 쓸모가 없으니 거기에 실행 명령을 부여한 것이다. 엔터라고 이름이 바뀐 것은 적어도 16비트 8088 XT 컴퓨터가 나온 이후로, 정확히는 IBM-PC 호환기종의 종특이다. 현재도 Apple에서 나온 컴퓨터는 여전히 리턴 키라고 써 있다.[5] 군부대 행정병들에 대한 가혹행위 중 무릎꿇고 이 무지막지한 무게의 크로버 군용 타자기를 머리 위로 높이 들고있게 하는 벌이 있었다. 당하는 병사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6] 약간이라도 부족하거나 넘친다면 활자가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7] 참고로 아스키 코드의 다른 제어문자인 LF도 '라인 피드'라고 해서 타자용지를 한 줄 위로 밀어올리는 동작(글자가 찍히는 위치를 한 줄 아래로 내려가는 동작)이다. 즉 윈도우 계열의 TXT파일에서 흔히 쓰는 개행(줄바꿈) 문자인 'CRLF'란, 타자를 칠 때의 줄바꿈 동작(용지를 한 줄 올리고, 캐리지를 맨 앞으로 복귀시킨다)을 그대로 코드화한 것이다. 한편 단순 개행을 CRLF라고 2바이트나 써서 표현하면 낭비이기 때문에 유닉스계열 OS와 리눅스는 개행문자를 그냥 LF만 쓰고, 맥은 CR만 쓴다. 평범하게 아스키나 UTF-8로 인코딩된 텍스트 파일을 유닉스나 맥에서 윈도우로 넘겨받아 열어보면 줄바꿈이 죄다 깨져있는 이유는 이것이다.[8] 다만 동일 기능을 가진 경쟁 제품들에 비하면 인쇄 속도가 느렸는데, 영상에도 나오듯 오른쪽 왼쪽으로 활자가 움직이면서 바로 다음 줄을 인쇄할 수 있었던 모델들과 달리 휠라이터는 한 줄이 끝나면 활자를 왼쪽 끝으로 다시 옮겨야 하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9] KED는 케드콤의 브랜드 명칭으로 삼성전자에 주문자 상표를 붙여 납품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로고 없이 KED 로고만 박힌 채로 출시된 타자기도 있다.[10] 물론 타자기로 쓴다고 해서 문서의 법적 효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타자기에 취미가 있는 경우 각종 제출물이나 법적 서류를 타자기로 작성해서(...)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때는 종이가 공문서 표준 규격인 A4와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한다.[11] 한국의 2012년 초반 수준이다. 다만 스마트폰 인프라가 다른 통신 인프라보다 빨리 깔리는 편이다.[12] 참고로 몽키즈 멤버였던 마이클 네스미스의 어머니다. 재산이 장난 아니였던지라 1980년 베티 타계 당시 외동아들이었던 마이클은 5천만 달러 이상을 상속받았다.[13] 윈도우즈에서는 캐럿. 당연히 마우스 커서가 아니다.[14] 다만 이원복 교수는 한자 타자기의 존재를 아예 몰랐기 때문에 이런 대사를 적어놓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아래 서술된 것과 같은 청타기 기기가 있는 것을 알았더라도 한글 타자기가 로마자 계열에 거의 버금가는 입력 편의성을 갖고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15] 단, 일본에서는 상황에 따라 가나로만 된 타자기가 쓰이기도 했다.[16] 這是一部中文打字機。 한국어로 하면 이것은 한 대의 중국어 타자기입니다. 중국어를 배웠다면 어?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사전에 남방어의 용례로 臺(기계의 양사.)의 대신으로 部의 용례가 있다. 고로 대만 쪽이라는 것도 확실.(현대 표준중국어에서 部는 서적, 영화의 양사이다. 例: 一部電影= 한 편의 영화.)[17] 대한통운, 동아건설을 소유한 동아그룹의 계열사였다.[18] 국무총리 훈령 제205호(1985.5.30.) 1985년 7월부터 4벌식 타자기 보급 중단[19] 국무총리 지시 제21호(1983.8.26.) 및 공업진흥청 고시 KSC-5715(1984.2.16)[20] 물론 위에 한자 타자기 문단에도 언급했듯, 일부층에서 사용되기는 했다.[21] 셜록 홈즈 시리즈신랑의 정체라는 에피소드에서 홈즈가 타자기의 글씨체가 달라질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해서 범인이 신원을 속이고 편지를 보냈다는 것을 간파하는 장면이 나온다.[22] 타자기 모델은 동아 마라톤 3000DLX. 최후기형 세벌식 타자기다.[23] CCL로 배포되는 사진은 아님. 교육·연구·토론이 목적일 때에 웹 게시판, 개인 블로그에 출처(글 제목과 웹 주소 등)를 밝히고 인용할 수 있음.[24] 공영우의 타자기 개발 철학은 자형을 희생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타자를 치는 것을 중시했는데, 서구에서 경력을 쌓은 손원일으로서는 이 철학에 적잖이 공감했을 것이다. 재밌게도, 이에 반해 간도특설대 등 경력을 일본에서 쌓은 육군의 백선엽 장군은 "타자기로 쓴 문서는 한자가 없어 알아보기 힘들다"며 공문을 펜으로 써서 올릴 것을 고집했다. 그러다 미국과 친한 이승만 대통령이 공문을 한글전용으로 해야한다는 담화를 발표하고 나서야 다시 육군에서 타자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25] 손원일은 이후 국방부 장관과 주서독 대사를 지내는데, 그래서인지 국방부와 외무부는 정부 부처 중에서 공병우 세벌식 타자를 가장 일찍 도입한다.[26] 다만 세벌식 타자기 글꼴 변조가능성으로 인한 피해사례는 실제 보고된 사례가 없다. 흔히 예시하는 ‘일’과 ‘이’의 문제는 아라비아 숫자로 대체하거나 숫자를 병기함으로써 쉽게 해결될 문제이고 굳이 한글로 쓸 이유가 없으며(세벌식 타자기는 숫자 입력을 지원한다), 계약서를 적더라도 변조가능성이 있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부분만을 당사자가 수기로 기재하는 방법도 있다. 위에 언급한 정전협정문이 대표적인 사례. 협정조항은 타자기로 작성한 후 체결, 발효 일시만을 수기로 적어넣었다. 그 밖의 문장가들의 문장에는 변조가능성이 문제될 여지도 없다. 따라서 세벌식이 배척된 데에는 단순히 탈네모꼴 글꼴의 ‘익숙하지 않음’이 가장 큰 문제였고 변조가능성은 핑계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오늘날 실질적인 한글전용이 이루어진 후 탈네모꼴 글꼴은 재평가를 받고 있고 오히려 가독성이 네모꼴 글꼴보다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27] 1969년 네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제정했다.[28] 1982년 두벌식 자판을 표준 자판으로 제정했다.[29] 공병우 박사의 타자기 회사에서 활동하던 기술자 중 한명이었다.[30] 3-90 자판 #[D] 이중모음에 쓰임[32] ㅘ,ㅙ,ㅚ,ㅝ,ㅞ,ㅟ,ㅢ 를 말한다.[33] 타자기 모델은 경방 크로바 810.[34] 타자기 모델은 경방 크로바 톱스타 10S.[35] 일반적인 소형 휴대용이 아닌 사무용 대형 타자기는 받침글자를 치면 자동으로 시프트락이 풀릴 때 '쿵' 소리가 나기에 타자를 치는 동안 '탁탁탁쿵'하고 방아찧는 듯한 소음이 났고 많이 쓰인 타자기는 시프트락 부품이 닳아서 받침 키를 눌러도 모음을 치고 난 다음 자동으로 풀려버리는 경우도 생겼다.[36] 국사책에 나오는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가 이 집안의 둘째 아들이고,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를 창업자한 큰 아들 존 토머스 언더우드(John Thomas Underwood, 1857~1937)는 동생의 부탁으로 경신학교 대학부(연세대학교의 전신)의 건립 비용을 낸 인연이 있다.[37] 다만 그 당시 북한이 공산권이었으므로 원 목적이 북한에 수출할 목적이었을 수 있다.[38] 현 그로웰전자(주)[39] 경방은 경성방직의 약자이다.[40] 공산권이었지만 독자 노선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도 생산했다.[41] 부활 지점이라는 의미에서 이집트 파라오의 이름을 딴 드립으로 보인다.[42] 얼핏 보면 그냥 아무런 이름이나 딴 것 같지만 렉싱턴은 IBM사의 휠라이터 타자기가 생산되었던 곳의 지명이며, 현재는 IBM이 분사해서 만들어진 LEXMARK버클링 스프링 방식 키보드를 생산하는 Unicomp의 본사 및 생산 공장이 있다.[43] 당연히 인형이 아닌 사람이다. 본디 대필 기계를 가리키던 단어가 대필 직업을 가리키는 걸로 의미가 확장된 것.[44] 험프리 보가트로 대표되는 느와르 탐정의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운 캐릭터. 자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자신이 등장하는 탐정물로 바꿔버린다.[45] 오타 수정이 어렵거나 불가능했기 때문에 한번에 오타 없이 제대로 문서작성을 해야 했다.[46] 당시 이들 사진을 보면 여초직업임을 확인 가능하다[47] 그리고 고참 형사는 역으로 자신이 자해를 한다. 당연히 용의자는 경찰폭행으로 가중처벌을 받을 판이라 바로 태도를 협조적으로 바꾸어 스스로 자술서를 쓰게 된다.[48] 언뜻 보면 진짜 타자기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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