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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09:55:43

플로피 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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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플로피디스켙.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Floppy_disk_2009_G1.jpg
LG 플로피 디스크 왼쪽부터 각각 8인치, 5.25인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다. 용량은 각각 50KB, 1.2MB, 1.44MB.

1. 개요2. 명칭3. 역사
3.1. 기원3.2. 대중화3.3. 2000년대 이후3.4. 현재3.5. 대한민국의 경우
3.5.1. 1980~1990년대3.5.2. 2000년대 이후
3.6. 컴퓨터 역사에 남긴 족적
4. 작동 원리와 구조5. 규격과 용량6. 경쟁/후계 제품
6.1. 퀵 디스크6.2. 플롭티컬6.3. ZIP 드라이브6.4. 슈퍼디스크6.5. Caleb UHD1446.6. HiFD
7. 드라이브 식별 문자8. 에뮬레이터9. 기타

1. 개요

Floppy Disk (Floppy Disk Drive) / 💾(유니코드: 1F4BE)

보조 기억 장치의 일종. Ecma International에서 규격 표준을 관장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Flexible Disk Cartridge라 부르고 있다.

2. 명칭

Floppy는 유연하여 팔락팔락거린다는 뜻이다. 얇은 합성수지 필름으로 만든 자기 디스크를 얇은 플라스틱 봉투 안에 넣은 구조라서, 손으로 잡고 흔들면 팔랑팔랑거리기 때문이었다.

흔히 디스켓(Diskette)이라고도 한다. Disk + -ette(작다는 뜻) = 작은 디스크라는 뜻이다. IBM이 1973년 IBM 3740의 별도 구성품으로 'Diskette 1' 저장 장치를 출시했던 것이 유래로, 자기테이프보다 작은 디스크 저장 매체를 뜻했다.

여담으로 3M은 한글 표기로 '디스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플로피 디스켓'이라고 겹쳐서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디스켓이라는 말 자체에 플로피 디스크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겹말이라고 할 수 있다.

3. 역사

3.1. 기원

1971년IBM에서 최초로 개발했다. 참고로 디스켓은 IBM이 등록한 상표명이다. IBM은 하드 디스크IBM PC도 만들어 현대 PC 환경의 기본을 확립하기도 했다. 플로피 디스크 초창기에 나온 것의 크기는 무려 8인치로, 5.25인치짜리를 크게 만든 것처럼 생겼으며, 용량은 50 KB로 2바이트 문자(한글, 한자)를 쓰는 원고지로 환산하면 400자 원고지 약 80장 정도의 문서를 저장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용량이 매우 작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당시 주로 사용했던 컴퓨터 저장 매체는 천공 카드자기테이프였기 때문에 플로피 디스크의 개발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1990년대 초반 연구소에서 8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파일:external/www.talktoanit.com/storage-8inch-floppy.jpg
8인치 플로피 디스크. 보다시피 사람 얼굴 정도의 크기다.

이후 8인치 플로피 디스크 용량이 메가바이트까지 올라갔지만, 1976년 Shugart Associates[1]에서는 더 작고 휴대하기 간편한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내놓으면서 8인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되었다.

이후 1980년소니에서는 3.5인치 크기의 플로피 디스크를 만들었다. # 그래서 구분법은 8인치가 표준 플로피 디스크, 5.25인치가 미니 플로피 디스크, 3.5인치가 마이크로 플로피 디스크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규격이 더 있지만 널리 쓰인 것은 저렇게 세 가지고 나머지는 전용 영역에서만 좀 쓰인 정도였다.[2] 한편,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는 8인치나 5.25인치와는 달리 헤드 윈도에 금속 보호캡이 있어 데이터 보존력이 좀 더 우수했다.

3.2. 대중화

파일:IMG_19377592015423.jpg
최초의 국산 플로피 디스크인 5.25인치 SKC MD1S(단면 플로피 디스크) 및
금성사 M-1D(단면 플로피 디스크) 및 M-2D(양면 플로피 디스크).[3]

소프트웨어 산업이란 것이 생겨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매체가 플로피 디스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퓨터의 여명기에는 소프트웨어는 컴퓨터(메인프레임, 미니컴퓨터) 하드웨어에 따라오는 것이었으며,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구매한다는 개념은 없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컴퓨터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어 개인용 컴퓨터(퍼스널 컴퓨터)가 대중화되자, 컴퓨터 하드웨어와는 별도로 소프트웨어를 장만해 사용한다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보관할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오늘날에야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받거나 USB 드라이브에 저장하면 되지만 당시엔 빌 게이츠처럼 천공 카드[4]에 담아 팔거나, 아예 소스 코드를 종이에 인쇄한 책을 사용자에게 판매해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컴퓨터에 소스 코드를 입력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5] 소프트웨어가 담긴 롬 카트리지(롬 팩)을 컴퓨터에 삽입하는 방식은 당시엔 카트리지 제조 비용이 비싸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6] 그러니 플로피 디스크는 소프트웨어를 담아 판매할 아주 편리한 수단으로 환영받았으며, 이후 1980년대 초까지 카세트 테이프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양분하다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내내 플로피 디스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20세기 말에 널리 퍼진 CD-ROM에게 밀려 서서히 일선에서 물러났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퍼스널 컴퓨터 뿐만 아니라 메인프레임에도 사용될 정도로 널리 쓰였으며, 오늘날 USB 드라이브, 이메일클라우드 스토리지가 담당하는 역할, 즉, 정보의 보관과 배포하는 역할을 모두 도맡았다. CD-ROM과 이메일이 등장하기 전에는 전자 문서를 타인에게 전달할 방법은 플로피 디스크가 가장 효과적이었으며, 데이터의 백업 역시 플로피 디스크가 가장 널리 쓰였다. 이메일에 1MB가 넘는 파일을 첨부하여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다. 게다가 당시에는 이메일이라는 것은 성능도 열악하고 사용료까지 있어서, 지금처럼 공짜로 빠른 속도의 이메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7] 계정 당 50~100MB의 메일함 용량을 제공한다는 것을 서비스를 시작한 포털의 주요 홍보 요소로 사용할 정도였다.#

CD-ROM 등장 이후에도 관공서 등 CD-ROM 드라이브의 보급이 더딘 곳에서는 여전히 플로피 디스크가 널리 사용되었다. 다시 기록 또는 기록의 수정이 자유로웠던 플로피 디스크와 달리 CD-ROM은 한 번 데이터를 기록하면 다시는 기록을 수정할 수 없는 매체인데다 비교적 비싼 가격과 맞물려 데이터 공유용으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다.[8][9] 그 덕분에 플로피 디스크는 CD-ROM 등장 이후에도 오랫동안 일선에서 활약했다. 1990년대 초까지 650 MB CD-ROM은 지금과 같은 모양과 캐디 형태[10]가 경쟁하고 있었고, 128MB 광자기 디스크가 시장을 넘보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최소 이십만원 이상에서 사오십 만원 정도 했다. 그랬으니 80MB 하드디스크를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80장에 백업하는 일은 종종 있었고, 파일 제어 블록(FCB, File Control Block) 영역과 트랙, 섹터값을 바꿔서 1.2MB를 1.44MB, 1.44MB를 1.72~2MB로 뻥튀기해 주는 유틸리티도 종종 이용되었다.[11] 물론 이렇게 하면 불량이 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멀티 볼륨 압축 유틸리티를 사용할 때는 한 장이 읽기 오류가 나도 나머지 볼륨에 저장된 파일은 풀 수 있도록 옵션을 지정해 주는 것이 중요했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하려는 사용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개발자들이 처음으로 격돌한 곳도 플로피 디스크에서다. 오늘날 DRM으로 대표되는 불법 복제 방지, 소위 ”카피 프로텍션“이 최초로 개발된 것은 플로피 디스크 복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주로 부트 섹터를 건드리는 방법으로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플로피 디스크를 복사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해커들도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카피용 도구(복사용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대항했다.[12]

3.3. 2000년대 이후

▲ 플로피 디스크를 저장 매체로 사용하던 소니 마비카 디지털 카메라.

1990년대 말부터 CD 레코더와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플로피 디스크 사용 빈도는 서서히 줄어든다. 큰 용량은 CD에 구워서, 작은 용량은 인터넷을 통해 전송했다. 그러나 환경에 따라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곳도 많았기 때문에 플로피 디스크의 사용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2000년을 넘어오며 이미 플래시 메모리 시대가 열리긴 했지만 위 영상처럼 소니 마비카는 플로피 디스크를 저장 매체로 사용했으며 비트매니아 III같은 아케이드 게임기에서도 플로피 디스크로 전적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플로피 디스크는 더이상 사용될 일이 없었다. 이미 1998년 애플은 iMac G3에 과감하게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없앴고, 2003년 HP도 컴퓨터 제품에 더 이상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며 급격히 위치가 흔들렸다.# 델과 HP의 결정에 따라 나머지 주요 제조사들도 2003~2004년쯤에 신제품 컴퓨터 본체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기본 장착에서 선택 사항으로 바꾸더니, 이후 2006년 즈음부턴 선택 사항 또는 외장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조차 사라졌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할 때라면 윈도우 98 같은 고전 운영 체제를 설치하거나, 바이오스 업데이트를 할 때의 부팅 용도로 필요한 정도 뿐이었다. 이외에는 대학교에서 자료 제출이나 수험용 답안 제출 등을 할 때가 전부였다. 메인보드 제조사들도 이미 CD나 USB 드라이브를 부팅 매체로 사용할 수 있도록 BIOS를 만들었으며, 그 이후 플로피 디스크 연결 포트를 제거하기도 했다.

영국의 최대 컴퓨터 유통업체인 PC월드도 2007년 1월 말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생산을 중단했으며, 동년 여름부터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내장된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PC의 판매도 중단했다. # 내장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2007년 이후로 용산전자상가에서조차 극소수의 업체만이 팔고 있을 정도로 사실상 멸종된 상태다. 2007년 1월 기준 생산되는 컴퓨터의 단 2%만이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설치된 컴퓨터였다.

하지만 아직도 플로피 디스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된 장치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산업용 PC나 대학교 연구소 등에서는 아직도 귀하신 몸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장비는 새로 업그레이드 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오래된 장비를 아직도 쓰는 일은 흔하며 또 대체할 장비가 마땅치도 않다보니 바꾸는 일 자체도 쉽지가 않다. # 굳이 일본이 아니어도 어느 나라든 오래된 설비에서는 여전히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고 있다. 미군도 2010년대에 와서야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SSD로 교체했다. #

3.4. 현재

현재 나오고 있는 완제품 PC들은 아예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없이 출시되고 있다. ODD조차 기본으로 달려있지 않은 컴퓨터도 많이 있는 것을 보면[13]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PCI 슬롯에 꽂는 플로피 디스크 컨트롤러가 출시된 적이 있으나# 저조한 수요로 얼마 못 가 단종되었다.

그래도 운영 체제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지원하고 있으며, 메인보드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포트가 없다고 해도 USB 방식 외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연결하면 잘 인식된다. VMware에서 윈도우 3.1과 95~98 가상머신을 생성하고 물리적인 플로피 디스크로 부팅하려면 시스템에 부착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문자를 할당해주면 된다. 즉 Floppy Disk 부분에서 Use A Physical Disk를 선택해주면 된다. 윈도우가 작동이 안될 때 사용하는 시동 디스크를 만드는 기능이 Windows 8.1까지 있었다.

플로피 디스크의 황혼기에도 윈도우 XP에서 메인보드바이오스를 업그레이드할 경우에는 필요했다. Windows XP가 한참 쓰이던 시절에는 부팅 CD는 지원하지만 USB 드라이브 부팅을 지원하지 않는 메인보드가 많아서 플로피 디스크를 썼지만, 일부 메인보드에서 하드 디스크가 아닌 USB 드라이브 등을 통해 부팅을 하면 CMOS에서 외부 장치를 플로피 디스크인 것처럼 에뮬레이션해서[14] 부팅 기능을 지원하다가, 차츰 USB 드라이브 부팅 기능을 정식으로 지원하면서 설 자리가 사라졌다. Windows 10의 설치 미디어도 USB로 출고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USB 드라이브에 밀려 사라졌지만, 이메이션이나 버바팀(Verbatim, 이후 미쓰비시에서 M&A) 등 일부 메이커에서는 2011년까지 플로피 디스크를 생산했다.

리눅스용 부팅 디스크조차도 이미 옛말이 되었다. 물론 찾아보면 사용 가능한 배포판도 나오지만 2020년대 기준 이미 20여년 이상 지난 배포판이고, 주요 배포판에서 리눅스 커널과 모듈만 해도 수십 MB 단위로 논다. 최적화를 위해 이것저것 뺐을 안드로이드에 들어가는 커널도 10MB이상이다. 물론 커널 용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각종 장치 드라이버이므로 GUI를 바라지 않고 비상 백업용으로만 쓸 수 있도록 이것저것 빼서 완벽히 맞춤형으로 커널을 짜서 넣을 수는 있겠지만 적지 않은 수고가 들어가야 하며, 그러고도 여기에 따르면 2011년에 나온 리눅스 커널 3.0에서 커널의 최소 사이즈가 800KB를 넘겨 지속적으로 오르는 중. 여기는 허접한 사이트가 아닌 실제 리눅스 개발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사이트이므로 대충 주먹구구식으로 나온 결과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의 주제는 '리눅스는 이미 임베디드 시스템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커진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므로, 저 사이즈에 맞춰 커널을 구성하면 일반 데스크탑에서는 부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게다가 커널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기 때문에 필수 유틸리티를 넣어야 하는데, 리눅스 시스템 구성요소를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았다고 할 수 있는 busybox가 이 때 나온 버전이 1.18.5로 역시 용량이 800KB가 넘는다. 물론 최신 버전으로만 시스템을 구성하라는 법은 없지만 어쨌든 최신 시스템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플로피 디스크로 리눅스를 구동시킬 수 있는 시절은 한참 지난 셈이다. 페도라 및 CentOS 계열 배포판에는 mkbootdisk라고 관련 패키지가 아직 있는데, 이것도 이미 부팅 CD 제작용으로 주 목적이 변경되었다. 이미 고대의 페도라 코어 시절부터 mkbootdisk로 부팅 플로피 디스크를 만들려고 했을 때 디스크 공간이 넘친다는 보고가 있었다.

64비트 CPU 아키텍처 상에서는 포인터 변수의 크기가 32비트 아키텍처 대비 두 배로 불어나는데 운영체제에서 포인터 변수를 얼마나 많이 사용할지 생각해 보자. 포인터 변수 뿐만 아니라 기계어의 전체적인 길이도 30% 가량 길어진다. 예전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커널을 사용하려 해도 아키텍처만 바꿨을 뿐인데 크기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나 버린다. 당연하게도 최신형 CPU는 지원하는 기능도 많아 각각을 설정하기 위한 코드들이 계속 덧붙여진다. 드라이버들도 64비트 바이너리로 컴파일되기 때문에 이것들도 크기가 커진다. CPU를 16비트 모드로 실행한다면 커널 다이어트가 가능은 하겠지만, ARM도 아닌 x86 계열 CPU에서 16비트 모드를 돌리면 FreeDOS만도 못한 폐기물이 된다.

간혹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있는 구형 PC를 돌리는 이들이 USB 저장 장치를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대신으로 쓸 수 있게 에뮬레이션하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버 에뮬레이터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쪽 에뮬레이터 제품중에서는 고텍(Gotek)이 대표 주자이다.

일반 사용자가 구할 수 있는 저장 매체 가운데 단위 용량 당 가격이 가장 비싸다. 옛날에 플로피 디스크가 주력으로 쓰이던 시절에는 쌌지만, 대중적으로 저렴한 것은 하드 디스크, 용량 대비 진짜로 가장 저렴한 것은 의외로 자기테이프다. 예를 들어 백업 테이프인 LTO(Linear Tape-Open)의 최신 규격인 LTO-7의 경우 비압축 시 6TB, 압축 시 약 15TB가 들어가는데, 약 12만원 정도 한다. 대략 1~2만 원에 1TB인 셈. 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테이프 카트리지나 하드 디스크 값이 수만, 십만 분의 1로 떨어지는 동안 플로피 디스크는 겨우 몇 분의 1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의성 등에서 뒤쳐지며 도태된 탓에 단종된 반면, 수요는 여전히 있어서 중고가가 비싼 탓도 있다. 비용 등의 문제로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구형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는데, 플로피 디스크는 소모품이다 보니 계속 새로 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군의 경우 2010년대까지 8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는 시스템이 남아 있었고 여객기도 보잉 747이 1969년에, A320이 1987년에 만들어졌는데 운항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나 내비게이션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할때 플로피 디스크를 쓴다. 실제로 이런 비행기는 조종실에 플로피 디스크 수납장이 있다. 물론 최근에 제작된 B777X, A350 같은 항공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파일:747NavDataFloppy.jpg 파일:floppy747.webp
보잉 747 내비게이션 데이터베이스 업데이트용 플로피 디스크 보잉 747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와 수납장

3.5. 대한민국의 경우

3.5.1. 1980~1990년대

1990년대 초반생의 경우, 말랑말랑한 5.25인치 모델은 단종되어 사라져가던 모델인지라 당시 기준으로 집에 486 계열 컴퓨터라도 있던 경우를 제외하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딱딱한 3.5인치짜리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 2000년대 중반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1980년대생부터 1990년대생은 어린 시절에 던지고 논 기억이 날 것이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위 쪽에 달려있는 슬라이드를 당겼다 놨다 하면서 놀기도 했다.

한국에서 널리 퍼진 플로피 디스크는 IBM PC XT 호환 기종 컴퓨터 시절에 주로 사용한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중 360KB짜리 2D와 1.2MB짜리 2HD. 2HD는 인텔 80286 및 IBM PC AT 호환 기종 컴퓨터 시대로 넘어온 뒤부터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사용하고 있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도 많이 사용했다. 이렇게 세 가지 형태 널리 퍼져 상업화 되었으며, 좀 마이너한 것까지 치면 MSX에서 쓴 3.5인치 2DD 플로피 디스크나 애플에서 쓴 1D, 2D 플로피 디스크도 있다.

3.5인치 2DD는 IBM PC에서도 쓸 수는 있지만 대부분 2HD로 바로 넘어갔기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 720KB짜리 2DD는 IBM PC에서 1.44MB짜리 2HD로 포맷해 사용하기도 했다. IBM PC 호환 기종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양자의 구분은 플로피 디스크에 있는 구멍[15]으로만 이루어졌기에 해당 위치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간단히 2HD로 변신이 되었다. 하지만 자성체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포맷해 데이터를 꽉 채워 저장하는 경우에 신뢰도가 떨어졌다. 자성체 밀도가 낮은 매체에 일부러 고밀도로 데이터를 저장하면 대놓고 날려먹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주 급할 때 임시로 사용하는 꼼수 정도로만 사용했다. 반대로 2HD가 대중화된 이후 2DD 플로피 디스크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신시사이저 등 구형 기기에서의 사용을 위해 종종 2HD의 구멍을 막아 2DD로 변신시키는 경우도 있다. 2DD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있는 전용 기기는 연식상 대부분 해당 검사를 하지 않지만, PC에서 미리 포맷을 해둬야 한다거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신형으로 교체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런 꼼수가 필요할 때는 여전히 나온다.

이밖에도 기타 여러가지 형태의 플로피 디스크가 더 있었지만, 그 나머진 거의 서버 백업용 등의 특수 업무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

MSX의 경우에는 독립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이 너무 비싸 이것이 잘 보급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 MSX 제품들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기본 사양으로 달려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별도로 구입하여야 했고, 가격 또한 터무니 없이 비쌌다. 1985년 당시 대우전자의 5.25인치 360KB 싱글/더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가격이 각각 50만 원과 80만 원에 육박했다. 당시 애플 II 호환기 전용 5.25인치 싱글 드라이브는 20만 원 전후. 그나마 1989년쯤 되면 MSX용 3.5인치 720KB 더블 드라이브(40만 원 가량)가 출시되어 5.25인치 드라이브를 대체하게 된다. 그래도 MSX II용 RGB 모니터와 비슷한 값. 그 당시 대기업 대졸 초임이 30만 원이었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도 200만 원을 훌쩍 넘는 어처구니없는 가격이었다. 이렇게 플로피 디스크가 잘 사용되지 않았으니, 응용 소프트웨어는커녕 게임조차도 매우 비싼 롬팩을 쓰거나 혹은 느린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해야 했다. 그나마 한국 MSX 기종의 사실상 최종판인 대우 X-II가 나오면서 내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덕에 조금 숨통이 트이며 플로피 디스크 사용자가 크게 늘어난 정도. 하지만 X-II 자체가 비쌌기 때문에, 컴퓨터 학원 등에서는 기존 기종을 쓰면서 외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한두 개 갖다놓고 여러 PC에서 돌려쓰는 등의 눈물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당시 IBM PC 호환기종 쪽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아서, 삼보컴퓨터 초기 제품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가격이 30만 원이었는데... 본체 모니터 모두 더하면 150만 원 가까이 되는 고가였다. 다만, 이 당시에는 PC 가격 자체가 전반적으로 현재보다는 비쌌다. IBM 5150은 초기 가격이 그 당시 미화로 1,500~3,000달러였다. 일례로, 1990년대 중반 미국 컴퓨터 업계의 큰 이슈가, 날로 떨어지는 컴퓨터 본체값이 500달러를 하향 돌파할 것이냐였다.

한국에 호환 기종으로 널리 퍼진 애플 II 플러스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탑재하고 나왔는데, 역시 이것도 별도 구입이었다. 본체에 달려있지 않고 외장으로 달려 있는 형태. 그러나 애플의 경우에는 세운상가 조립으로 많이 퍼졌기 때문에 MSX보다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이 꽤 저렴하게 나왔다. 1987년경에 약 30만 원 가량이면 Apple II+ 본체와 녹색의 단색 모니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까지 살 수 있었다. 이 값이면 MSX는 본체와 카세트 드라이브밖에 못 사고, 모니터는 TV에 연결해 써야 했다. 대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을 낮추려고 하다 보니 단면 전용 드라이브[16]였고, 용량도 2D 360KB의 절반도 안 되는 114KB만[17] 사용했다. 그래서 플로피 디스크의 복사 방지 탭을 반대쪽에도 펀치 등으로 뚫어 플로피 디스크를 뒤집어 넣어 뒷면에도 데이터를 기록해 사용했다.[18] 이 기억을 가지고 있던 일부 유저들이 IBM PC용 플로피 디스크에 똑같은 일을 벌이다가 데이터를 날려먹기도.. [19]

다른 소프트웨어가 담긴 플로피 디스크 예시

아래아한글 2.1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들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아래아 한글, MS-DOS, 윈도우,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훈민정음 등 많은 프로그램들을 플로피 디스크에 넣어 패키지로 판매했다. MS-DOS 시절에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보급률이 높아 프로그램 패키지를 깔 수단으로서 가장 널리 선호했다.[20] 심지어 상용 프로그램 구매 후에 혹시 모르니까 다른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를 해 두라고 권하는 컴퓨터 교재도 있었을 정도다. 왜냐면 플로피 디스크가 고장날 위험이 높았기 때문. 당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해본 사람은 전부 가지고 있는 기억이 중요할 때 플로피 디스크가 자료를 읽지 못해 망가져서 낭패를 본 것일 정도였고[21], 개인적인 보관을 위한 백업은 합법이기도 하므로 충분히 해볼 만한 행위였다. 다만 당시는 플로피 디스크 가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보려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람은 늘 있었고, 돈 문제가 없더라도 백업 자체도 번거로운 일이라 게을리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은 늘 나온다. 이는 플로피 디스크가 주류에서 밀려난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늘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편 읽고 쓰기가 간편한 장치이기 때문에 불법복제는 그 시절부터 늘 문제가 되었다. 불법 복제 방지 기술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이 중 고의적으로 플로피 디스크의 특정 영역에 불량 섹터를 만드는 식의 기술이 널리 쓰였는데[22],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 불량 섹터를 일부러 만드는 기능은 없었기에 프로그램에서 이 부분을 읽어보고 오류가 발생하지 않으면 복사본 취급을 할 수 있었기 때문. 물론 복제 기술도 당연히 거기에 맞게 발전했기에 실행 파일을 크랙해서 해당 부분을 제거하거나, 일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아닌 전문 복제 기기를 통해 불량 섹터까지 만들거나, 디스크의 수명이 무한하지 않으므로 데이터 반복 접근을 하는 등의 꼼수를 써서 불량 섹터까지 비슷하게 재현이 가능할 정도로 복제 프로그램이 발전하거나 하는 식으로 서로 경쟁해가며 발전했다. 결국 복사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컬러 복사기가 드문 것을 이용해 요상한 색깔을 넣은 매뉴얼의 특정 단어를 물어보는 방식의 프로그램도 나왔고, 병렬 포트 등에 연결하는 하드웨어 키도 있었다.[23] 다만 이런 방법을 써도 해커들이 해당 검사를 우회하도록 크랙해 대부분 뚫렸다.[24]

3.5.2.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 플로피 디스크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매체(CD-ROM → e-mail → USB 드라이브)가 있었지만, 그래도 플로피 디스크는 2005~2006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사용처는 컴퓨터 학습 및 과제 제출용이었다. 1990년대생들까지는 플로피 디스크를 학교에서 사용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시기까지는 초, 중학교 컴퓨터 실습 및 숙제/과제 제출은 대부분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주로 나이가 지긋하신 컴퓨터 과목 선생님들이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해서 수업을 하시는 바람에 굳이 플로피 디스크를 구해서 쓰는 수고를 하거나 집에 굴러다니던 낡은 플로피 디스크를 가져갔다가 작동이 안 되는 등의 짜증을 겪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일부 시대착오적인 교사들은 USB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인정하지 않기도 했고, 반대로 교과서의 내용이 시대에 뒤쳐졌다고 비난하며 그냥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가르치는 교사들도 있었다. 낡아빠진 학교 컴퓨터 앞쪽에는 USB 포트가 전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고생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뒤쪽에 있는 USB 포트에는 보통 마우스나 키보드 등이 연결되지만 일반 USB도 꽂아도 인식을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모니터나[25] 본체 도난 방지 때문에 앞쪽을 빼고는 뒤쪽은 볼 수 없었기에 앞쪽에 USB 포트 없거나 고장났다면 문제가 되기에 플로피 디스크를 쓴 이유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교사가 USB를 사용할 줄 모르거나. 2006년까지 플로피디스크를 쓰는 교사들이 있었다. 젊은 교사들은 90년대 말에도 수업시간에 이미 CD를 사용하거나 학생들에게 구워서 주기도 했다. 굳이 교사가 그러지 않아도 컴퓨터 과목 교과서는 시대에 크게 뒤쳐지는 경우가 많다. 비주요 과목이라 개정이 늦으면서 그 내용은 그 어떤 과목보다 빠르게 바뀌기 때문. 심지어 일부 학교는 아직도 1990년대 말에 만들어진 교과서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심심할 때 읽어보면 웃긴 부분이 많다.[26]가끔씩 USB 포트가 뒤에만 있는데 컴퓨터 책상이 잠겨서 못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림판 저장 실습 역시 2000년대 중반까지는 플로피 디스크로 진행했었다. 성인의 경우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컴퓨터활용능력, 정보처리기능사 등의 컴퓨터 자격증 실기 시험은 2006년까지 플로피 디스크로 제출하는 형태였다.[27] 또한 여러 컴퓨터 기사 필기 시험에는 항상 플로피 디스크의 사용법에 관련된 문제가 나왔었다.[28] 이 밖에 여러 공모전에서 이 시기까지는 플로피 디스크로 과제를 받았었다. USB와 함께 병행으로 제출받기도 했다지만 현실상 USB 드라이브의 가격은 제출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주 비쌌기 때문에 주로 제출용으로는 플로피 디스크와 CD가 사용되었다.[29]

이메일인스턴트 메신저가 등장하면서 물리적 미디어로 파일을 제출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이들이 플로피 디스크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1996년 핫메일과 1997년 한메일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개인 이메일을 갖기 시작했고, 1999년 MSN 메신저나 2000년 버디버디, 2002년 네이트온 등의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를 이용해 친구들끼리 서로 연결해 자료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000년경 ADSL(메가패스) 서비스가 시작되며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가 되었다. 1.44MB 정도는 온라인으로 손쉽게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 플로피 디스크 사용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당시 웹하드로 공유하는 파일은 플로피 디스크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이 아니었으므로 본 문서에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CD-RW ODD의 가격 하락으로 누구나 CD 레코더를 갖게된 후 사람들은 플로피 디스크를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플로피 디스크 10장으로 14.4MB를 보관/전송하느니, CD 1장으로 700MB를 담아 보관/전송하는 것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이 하락하고, 가격이 싼 MLC 방식의 메모리가 보급된 이후, USB 드라이브는 급속도로 저장 매체 시장을 잡아먹게 된다. 이 기점에서 플로피 디스크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다.[30] 그나마 학교 컴퓨터실의 오래된 조선컴을 통해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구멍을 볼 수는 있었지만, 2010년대 내구 연한이 끝난 컴퓨터 교체 작업 이후로는 정말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3.6. 컴퓨터 역사에 남긴 족적

파일:저장버튼.jpg
12살짜리 아들에게 오래된 플로피 디스크를 보여주었다....
그는 "와... 대단해요! 저장 아이콘을 3D 프린트했네요!"라고 말했다.

컴퓨터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플로피 디스크 = 저장 장치 이미지가 각인되어 여전히 각종 응용 프로그램에서 저장 버튼의 아이콘은 플로피 디스크로 되어 있다. Windows 10에서는 저장 아이콘이 플로피 디스크에서 내려받기 화살표 아이콘으로 바뀐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Microsoft Edge의 웹 메모 기능이나 그림판의 저장 버튼 등은 여전히 플로피 디스크의 모양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살면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플로피 디스크 아이콘이 무슨 그림인지 몰라 갸우뚱하는 일이 있어 일부 응용 프로그램 등에서는 하드 디스크 모양 등으로 바뀌었고, 진작에 UbuntuLinux 진영에서는 내려받기 화살표(📥)[31], 하드 디스크 혹은 CD 모양을 저장 아이콘으로 쓰고 있다. VirtualBox에서는 Secure Digital 이미지를 사용한다. Windows 3.1용 터보 C++는 저장 아이콘이 하드 디스크에 아래쪽 화살표가 있는 형태이다. 한 세대를 풍미하다가 철저히 밀려난 탓에 '이후 세대에 흔적만 남긴 전세대 하드웨어'의 대표주자 격이 되었다.[32]

플로피 디스크가 입지를 잃음과 동시에, 누군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If you know what a floppy disk is, it may be time for your cancer screening.
(플로피 디스크가 무엇인지 안다면, 암 검사를 받을 때입니다.)

4. 작동 원리와 구조

파일:external/computer.yourdictionary.com/FLOPPY35.gif
▲ 3.5인치 디스크의 분해도

플라스틱 덮개 안에 자성 물질이 도포되어 있는 필름 회전판을 넣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스핀들 모터가 회전판을 돌리면서 액추에이터로 전자기 헤드 위치를 제어해 자력을 감지하거나 자화시키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읽고 쓴다.

파일:attachment/플로피디스크/Diskettes.jpg
▲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자기 필름 회전판

덮개를 뜯어내고 내부의 자성 필름만 꺼낸 것이다. 저 상태라도 지문이 묻지 않게 장갑과 고무 캡을 씌운 핀셋 등으로 조심스럽게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 넣으면 문제 없이 작동한다. 물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잠금장치가 외부 덮개를 물고 들어가는 식이라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반쯤 분해해야 한다.

하드 디스크가 헤드와 표면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과는 달리 플로피 디스크는 둘이 서로 붙어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모가 너무 잘 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마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작업이 없을 때 헤드를 움츠리고 회전을 멈추었다가 읽기나 쓰기 작업을 하게 될 때서야 다시 돌린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를 읽고 쓰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리고 외부의 환경 요인에 데이터가 쉽게 손상되었다. 자성 물질이 도포되어 있는 필름이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보관을 잘못하면 시간이 경과할 수록 열화되어 데이터가 손상되었으며, 내구성이 약해 쉽게 접히거나 서랍 사이에 끼어 찌그러지기도 했다. 유머 중에는 먼 옛날 남편이 급한 일이 생겨 아내에게 책상 위 문서랑 플로피 디스크 좀 챙겨 달라고 했더니 사려 깊은 아내가 문서와 플로피 디스크를 같이 챙겨서 스테이플러로 집어놨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냉장고에다가 자석으로 붙여 놨다는 버전도 있다.# 3.5인치 규격은 외피가 딱딱한 플라스틱이고 금속제 셔터가 추가되어서 이 문제가 약간 개선되었지만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난 건 마찬가지였다. 의외로 디스크의 물리적 크기가 크고 자성 필름의 안정성이 높으며, 3.5인치 보다 기록 밀도가 낮은 5.25인치가 더 안정적이다. 그리고 플로피 디스크는 특성 상 충격 등에 디스크가 찍혀서 손상되는 정도가 아니면 충격에 의한 손상은 크지 않다. 단단한 덮개로 인해 튼튼해졌다기 보다는 낮아진 내구성을 그나마 보강하는 측면이라고 봐도 될 듯. 최소한 가방 안에 잘못 쑤셔넣어 구겨지는 일은 그래도 그나마 적어졌겠지만.

드라이브 램프에 불 들어온 상태에서 그냥 뽑아버리면 자료가 손상되기도 했다. 이걸 2010년대식으로 표현하면 USB 드라이브나 외장 HDD파일이 기록되는 도중 뽑아버린 것과 같다.. 더욱이 당시에는 부족한 성능 및 용량을 조금이나마 더 짜내는 게 더 중요했다. 때문에 데이터 손상 방지 기술 같은 건 지금에 비하면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이렇게 되면 플로피 디스크를 포맷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하드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통하여 기록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자석에 매우 민감하다는 단점이 있다. 자석에 한 번만이라도 접촉하면 안에 있는 정보는 사라진다. 그나마 하드 디스크는 금속으로 된 덮개라도 있어서 자석에 대한 위험성이 적지만, 플로피 디스크는 얇디 얇은 플라스틱 덮개가 전부라서 데이터가 손상된다. 거기다 5.25인치 이상의 플로피 디스크는 헤드가 데이터를 읽는 부분이 아예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에 먼지가 들어가기 쉬워서 종이로 된 덮개로 포장했다.

3.5인치 디스크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면 삽입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넣을 수 있는 8가지 방향(상하좌우*앞뒤)으로 넣는 대로 다 들어가는 5.25인치나, CD나 DVD, 블루레이 디스크도 뒤집어 넣는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세심한 부분이다.

초창기에는 구매 후 반드시 포맷 작업을 해야 했다.[33] IBM PC 호환 기종이 대세가 되기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는 다양한 기종의 컴퓨터들이 난립했고 이들은 대부분 플로피 디스크의 트랙과 섹터 규격이 다르기 때문에[34] 기종마다 다르게 포맷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기종으로 포맷된 플로피 디스크를 타 기종에 쓰려면 포맷을 다시 해야 했다. 이후 IBM PC 호환 기종이 대세가 되고, 플로피 디스크 규격이 통일되면서 이때부터는 공장에서 미리 포맷한 플로피 디스크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포맷이 된 플로피 디스크와 안 된 것이 따로 나왔는데 포맷된 것이 좀 더 비쌌다. 포맷된 플로피 디스크는 겉면에 Formatted라고 써 있었다.

별도로 벌크(Bulk) 플로피 디스크가 판매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사전 검수 없이 나온 플로피 디스크다. ODD나 하드 디스크 같은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정품보다 싼 가격에 팔렸지만 데이터 안정성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5. 규격과 용량

상용화되어 널리 쓰인 플로피 디스크의 규격과 용량은 다음과 같다.
<rowcolor=#fff> 디스크
크기
크기 규격
(가로×세로×두께, mm)
규격
이름
밀도 트랙 섹터
(트랙 당)
섹터
용량
(바이트)
용량
8인치 203.2×203.2×2.6 1D 단면(Single Sided) 단밀도(Single Density) 77 26 128 250KB
1DD 배밀도(Double Density) 77 8 1024 616KB
5.25인치 133.3×133.3×2.6 2D 양면(Double Sided) 배밀도(Double Density) 40 9 512 360KB
2HD 고밀도(High Density) 80 15 512 1.2MB
3.5인치 90×94×3.3 1D 단면(Single Sided) 배밀도(Double Density) 80 9 512 360KB
2DD[35] 양면(Double Sided) 배밀도(Double Density) 80 9 512 720KB
2HD[36] 고밀도(High Density) 80 18 512 1.44MB
2ED 확장 밀도(Extended Density) 80 36 512 2.88MB
1은 단면, 2는 양면을 의미한다.

Single Density (D) < Double Density (DD) < High Density (HD) < Extended Density (ED) 순서로 용량 밀도가 높다.

애플 II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헤드가 1개라 플로피 디스크 한쪽 면 만을 인식할 수 있어 2D 플로피 디스크의 경우 뒤집어 넣어 양면을 사용하기도 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경우 쓰기 금지 여부를 오른쪽 상단 탭으로(막혀 있으면 쓰기 금지, 뚫려 있으면 쓰기 가능) 구분했기 때문에, 왼쪽 동일한 위치에 펀치로 구멍을 낸 다음 디스크를 뒤집어 사용하곤 했다. 정확한 위치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전용 도구[37]도 있어서 파워 유저들이 사용하기도 했다. 반면 IBM PC나 호환 기종의 경우 플로피 디스크를 뒤집어 사용하면 안 됐는데, IBM PC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헤드가 2개라서 뒤집을 필요도 없었을 뿐더러, 풀로피 디스크 중심 부분의 회전 인식용 구멍을 이용하기 때문에 뒤집으면 인식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맨 위 사진에서 디스크 가운데의 오른쪽에 뚫린 조그마한 구멍이 그것이다. 디스크의 자성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구멍으로 빛이 투과되어 돌아가는 것을 인식했다.

위의 도표에서는 빠져있지만, 5.25인치에서도 단면 디스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디스크 뒷면에도 자성체가 발라져있기에 포맷만 해주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고, 당시엔 단면/단밀도 플로피 디스크가 가장 저렴했기에 애플 II 사용자들이 단면 디스크를 구입해 뒤집어 뒷면도 같이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다. 수입품에서는 단면 디스크가 없었지만 SKC 브랜드 중에 최저가가 바로 이 단면 디스크였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경우 2DD와 2HD의 자성체의 구조가 물리적으로 같고, 디스크 케이스의 구멍 여부로 2DD, 2HD를 구분했다. 그래서 2DD를 2HD처럼 쓰기 위해 케이스 일부에 구멍을 뚫어 2HD로 사용하는 꼼수가 있었고, 실제 정확한 위치에 깨끗하게 구멍을 뚫어 주는 펀칭 도구도 발매되었다. 다만, 2DD를 2HD로 변환한 디스크의 경우 2HD보다 불량 섹터 발생률이 좀 더 높았다. 본래 2HD용 페라이트 자성체의 크기가 더 작아야 하므로 2DD 디스크의 생산 여유성능에 의존하기 때문. 반면 5.25인치 2D(360KB)와 2HD(1.2MB)는 이런 차이가 없기 때문에 2HD를 지원하는 드라이브에 2D 플로피 디스크를 넣고 포맷하면 불량 섹터가 우르르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거기다 3.5인치에 비해 용량 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경우 100% 불량 섹터 크리. 물론 이 경우 다시 제대로 포맷하면 쓸 수는 있다. 이 때문에 AT로 넘어가던 시절 각종 컴퓨터 잡지에서는 XT에서 쓰던 플로피 디스크를 AT에서 포맷할 때는 꼭 /4 옵션을 주라는 팁이 주야장천 나왔다. 나중에는 플로피 디스크를 좀 더 고밀도로 로우 레벨 포맷하여 용량을 높게 만드는 유틸리티도 나왔다. 2HD(1.44MB)를 강제로 2ED(2.88MB) 포맷하거나, 2MB 가까운 중간 용량으로 포맷하여 쓰는 식.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도 윈도우 95 설치 디스크를 고용량으로 포맷해 배포했지만, 그 용량 규격을 운영 체제에 포함하지는 않았다.
플로피 디스크는 사용하면서 점점 자성 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초기에는 여유분의 자성 밀도를 가진 제품이 나왔으며, 오버버닝처럼 실용량보다 용량을 더 확장하기 위해 1.2MB의 5.25" 2HD 플로피 디스크의 경우 최대 1.6MB 까지, 1.44MB의 3.5" 2HD는 최대 1.8MB까지 포맷할 수 있는 유틸리티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360KB짜리 2D 플로피 디스크를 800KB로 포맷하는 800K, FDFORMAT 등 유틸리티가 있었지만, 안정성에서 무리가 많았다. 꼼수로 이걸 이용해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꽉 차 있는 내용을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한 장으로 복사하는 방법도 있었다. 용량을 늘리는 방법은 루트 디렉터리에 들어갈 수 있는 항목 개수를 줄인다든가, FAT 영역을 조절한다든가, 섹터나 트랙 수를 원래보다 늘린다든가, 걍 더 많이 기록한다든가. 읽기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섹터 배열을 나선형으로 포맷하는 꼼수도 있었다. 용량을 늘리기 위해 기본 데이터 구조를 너무 많이 변형하면 부팅디스크용으로는 쓸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에 나온 LS-240 드라이브는 1.44MB 플로피 디스크를 32MB로 포맷할 수 있는 전용 유틸리티를 제공했는데, 한 번 이렇게 포맷한 플로피 디스크는 포맷하기 전까지는 수정 및 재기록이 불가능했고 일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서는 읽을 수 없었다. 한편 OS/2는 3.5인치 1.44MB 플로피 디스크로 출시되었는데, 한국의 보통 PC는 5.25인치가 A드라이브로 잡혀있어 그대로는 설치가 불가능했다. BIOS에서 순서를 바꾼다거나 케이블을 꼬아 순서를 바꾸는 방법이 있었지만 다 불가능할 때 최후의 방법으로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1.44MB로 포맷해 복사해 설치했다.

이후 1.44MB보다도 더 큰 2.88MB(2ED)이 나왔다. 그외 다양한 경쟁/후계 제품이 나왔지만, 모두 시장에서 실패하였다.

6. 경쟁/후계 제품

후계 제품으로 21MB(플롭티컬), 120MB(이메이션 슈퍼디스크/LS-120), 144MB(Caleb UHD144), 150MB/200MB(소니 HiFD) 등 용량을 확장한 플로피 디스크도 나왔지만, 모두 대중화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장되었다. 이 플로피 디스크의 약점을 보완하여 아이오메가에서 만든 ZIP 드라이브도 마찬가지. 시대는 이미 플로피 디스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38][39]

6.1. 퀵 디스크

파일:Quick Disk.jpg
5.25인치나 3.5인치 말고도 퀵 디스크라는 이름의 2.8인치 플로피 디스크도 있었다. 퀵 디스크는 미쓰미 전기(ミツミ電機)에서 개발한 것으로, 주로 일본의 전자 기기에 쓰였다. 1980년대 일본에서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나 MSX, 신디사이저 등에서 쓰였다.[40]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의 경우에도 디스크 모양은 다르지만 알맹이는 퀵 디스크다. 퀵 디스크의 기록 방식은 다른 플로피 디스크들처럼 섹터와 트랙으로 기록하는 방식이 아닌, 마치 LPCD-DA처럼 나선형으로 순차 기록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다른 플로피 디스크들과 다르게 임의 위치로 데이터를 접근할 수 없었다. 즉, MS-DOS를 MSX에 이식했던 MSX-DOS의 시스템 호출 기능들을 전부 활용할 수 없었다.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했다. 퀵 디스크 드라이브는 카세트테이프 드라이브와 비슷하게 생겼고, 용량도 단면 64KB, 양면 128KB뿐이었다. MSX를 보유했던 사람들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비싸 꿩 대신 닭으로 퀵 디스크를 샀다가 좌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6.2. 플롭티컬

파일:floptical_21MB.jpg

21MB 용량을 가지는 플롭티컬 디스크(Floptical Disk) 라는 것이 출시되었었다. 크기와 형태는 3.5 인치와 완전히 동일하며, 플롭티컬 드라이브는 3.5 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대한 하위 호환성을 제공한다.

6.3. ZIP 드라이브

ZIP 드라이브 문서 참고

6.4. 슈퍼디스크

슈퍼디스크 문서 참고

6.5. Caleb UHD144

파일:Caleb_UHD144.jpg

144MB 용량의 Caleb UHD144

6.6. HiFD

파일:소니_HiFD_200MB.jpg
소니와 후지에서 개발한 150/200 MB 용량의 디스크 및 드라이브.
1998년 경 발매되었고, 2001년 쯤에 단종되었다.

7. 드라이브 식별 문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드라이브 문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여담으로 개그맨 심현섭개그콘서트 불사파에서 무식한 건달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이 드라이브 문자를 이용한 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다.[41]
"나가 일짜 도라이바 십짜 도라이바는 알겠는디, 도대체 씨 도라이바는 뭐시여?"
(내가 일자 드라이버, 십자 드라이버는 알겠는데 C 드라이브는 뭐냐?)

8. 에뮬레이터

산업 현장과 교육 및 훈련 기관 가운데 CNC 공작 기계를 교육하는 곳은 CNC 공작 기계에 NC 프로그램을 입력하거나 NC 시뮬레이터를 돌리거나 하는 경우에 아직까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많이 쓰이고 있다. 신형 CNC 공작 기계나 신형 NC 시뮬레이터들은 USB나 SD 카드 등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나온지 10년 이상 된 기계도 쌩쌩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는 실정을 반영했기 때문. 또한 CNC 공작 기계에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추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평균 1백만 원 정도 들어간다. 플로피 디스크가 사장된 지금에 와선 그냥 플로피 디스크를 통째로 에뮬레이션 해서 SD 카드 따위로 돌린다. 에뮬레이트보단 CNC 컨트롤러 자체가 외장 미디어를 지원해서 MTP 프로토콜만 지원되면 다 붙는다.

뿐만 아니라 연구 시설 등에서 사용하는 측정 장비나 실험 장비들은 플로피 디스크밖에 데이터를 입출력할 방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전문 장비들은 가격이 PC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정부지여서, 단순히 인터페이스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신형으로 바꾸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비싼 물건들이므로 큰 문제 없이 작동하는 이상 업그레이드한다고 갈아치울 만한 장비들이 아니기 때문. 단순한 반도체 전류 측정 장비가 신품은 소형차 최고 트림으로 몇 대를 구입할 정도의 가격이다. 물가를 환산해야겠지만 어차피 같은 작업이라면 그 가격을 보상할 생산성 차이가 나거나 더 나은 결과물을 바라지 않는 한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 신형 장비들은 USB 포트를 가지고 있고 윈도우 7을 돌려서 USB 드라이브나 CF 카드, SD 카드를 쓸 수 있다. 다만 안정성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일반 용도로 나온 것이 아닌 industrial이 적힌, 즉 산업용으로 출시된 것을 이용한다. 이런 최신형 기기들도 전부 플로피 디스크를 지원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1MB도 안 하는 데이터를 옮기는 데 USB 드라이브를 쓰기는 아깝다는 반응이 많아 플로피 디스크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편하기도 편하고.

과거 대한민국 국군에서도 종종 보안상의 이유로 3.5인치 디스크를 쓰는 경우가 있었다. 때문에 외부 자료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 프로그램도 USB와 플로피 디스크 모두를 지원하게 만들었지만, 이후로는 전방 사단을 비롯한 모든 제대가 CD-R 이나 DVD-R을 쓰도록 변경되었다. 보안 상의 이유로 1.44MB의 USB나 다름없는 플로피 디스크를 쓰기보다는 기록만 가능한 광학디스크를 쓰는 것이 보안상 이득이라는 군 내부의 조치로 인해 변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오래된 기기에서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구동 메커니즘 자체적인 한계 때문에 10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드라이브 자체의 구동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 경우는 USB 드라이브 또는 SD 카드 리더를 ISA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로 에뮬레이션하는 제품으로 변경할 수 있다. 아래에도 있듯이 기술적 난이도가 높지 않아 판매하는 제품도 제법 있는 편.

데이터 전송 속도가 프로토콜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특정 사이즈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읽기/쓰기 속도는 보통 일정하다. 기술 미성숙기에는 회전속도에 데이터 통신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서 딜레이가 걸렸지만 나중이 되면 대충 물리적 회전시간에 따라 상향 평준화가 되는 편. 거의 유일한 예외가 SONY에서 출시한 2배속 3.5인치 외장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인 MPF88 시리즈이다.

Windows 10 공개 전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기본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소문만으로 끝났다. USB 방식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연결해 보면 별도의 드라이버 설치 없이도 잘 인식하고 사용도 가능하며, 드라이브 아이콘까지 제대로 있다. 내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잘 동작한다. 다만 드라이버 제조년도는 2006년이다.

기술 자체가 아주 옛날 기술이라서 에뮬레이터를 만드는 건 쉽다. 오히려 SD 카드를 읽고 쓰는 쪽 회로가 훨씬 복잡하다. 라즈베리 파이의 GPIO핀들을 사용해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에뮬레이터를 쉽게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SD 카드 쪽 회로는 파이에 이미 다 들어 있으므로 드라이브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에만 집중할 수 있다. 사실 본인이 직접 만들 필요도 없고, 여기에 이미 만들어져 있으므로 받아다 쓰기만 하면 된다. 저 링크에서 인터페이스 기판에 IC칩 하나가 있는데 그냥 NOT 게이트이다. 라즈베리 파이의 GPIO 출력이 3.3 V라서 그걸 5 V 출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쓴 칩인데 저 칩 없이 트랜지스터만으로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부가회로는 풀업, 풀다운 회로와 노이즈 필터. 그리고 플로피 디스크 컨트롤러가 HIGH를 인식하는 Threshold voltage는 보통 2.5 V 정도이므로 저 인터페이스 회로를 전부 떼어내고 파이와 직결하다시피 연결할 수도 있다. 입력 쪽은 파이의 GPIO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3.3 V로 다운해 주는 회로가 필요하다. 전자과 학생이면 무슨 얘긴지 바로 이해할 것이다.

반대로 실물 플로피 디스크를 읽기 위해 드라이브를 구동하는 장치는 구하기 어렵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경우 비교적 나중까지 메인보드에서 지원된 덕분에 USB로 인식되게 하는 단순한 보드가 중국에서도 생산되고 있을 정도로 흔하며, 싸게 구할 수 있는 외장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들은 다 이 보드를 사용한다. 그러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경우 현재 메인보드에서는 지원하지 않는 SuperIO(CPU와 다양한 외부 장치들을 연결하는 기능을 통합하여 가진 거대한 단일 칩셋)의 기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요즘 시스템에서 읽으려면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케이블로 들어오는 전기 신호를 직접 조작하여 트랙/섹터 모터를 직접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전선으로 전송되는 디스크 표면 원본 신호(드라이브 센서가 아날로그로 읽는 자기장의 파형 그 자체)를 직접 MFM 통신 규격에 의해 해석한 다음 일종의 디스크 이미지 처럼 컴퓨터에 전송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전용 작업을 하는 보드들이 해외에 몇 종류 있으며, 소규모 제작 후 주문을 받는 거라 재고가 적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요즘엔 GitHub 등에 오픈 소스 형태로 회로 구성 등이 공개되는 것들도 있는 편.

9. 기타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보안사에 복무중이던 윤석양(이병)의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의 증거자료가 플로피 디스크 3장에 담겨 있었던 1303명의 민간인 사찰 카드였다. 이로서 보안사는 탈탈 털린 뒤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옛날 영화나 애니메이션, 혹은 특촬물 시리즈를 보면 시대가 시대인지라 근 미래 배경에 오버테크놀러지인데 아직도 플로피 디스크를 쓰는 2000년대 이후에 우스워 보이는 장면이 많다. 이는 비디오테이프도 마찬가지.

매킨토시는 플로피 디스크를 손으로 넣고 빼는 게 아니라 플로피 디스크를 드라이브에 반쯤 삽입하면 자동으로 수납되는 방식이었다. 당시(1980년대)에는 보기 드문 최첨단 방식이라 눈길을 끌었다. 플로피 디스크를 꺼낼 때는 데스크탑에서 플로피 디스크 아이콘을 마우스로 끌어서 휴지통에 집어넣으면 플로피 디스크가 배출되는 방식이었는데, 쓰레기통에 넣으면 플로피 디스크의 내용이 삭제되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초보 유저들이 많았다고 한다. 디스크 드라이브의 모터가 고장날 경우 플로피 디스크가 배출되질 않는데, 드라이브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놔 종이 클립을 펴서 구멍에 찔러넣으면 플로피 디스크를 수동으로 배출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분할 압축 옵션의 1.2MB, 1.44MB도 플로피 디스크의 용량 때문이었다. 파일을 디스크 용량에 따라 z00 하는 식으로 여러 개로 압축해서 이동한 파일이 복사 시 오류가 뜰 경우 미치고 환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한 경우 서울에서 분할 압축한 파일이 지방에서 읽기 오류가 떠버린다든지 하는 경우엔 지못미.

친구들 사이에 이를 이용한 사기를 치기도 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 실행 파일만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서 플로피 디스크에 넣어놓고 "야 인심 썼어. 스타 구워주마." 그리고 선물. 즉, 전체 구성 파일들 중 스타 실행파일인 starcraft.exe만 넣어 주는 식이다. 사실 컴퓨터 사용자들간에 있는 생각외로 흔한 착각 중 하나인 '실행 파일 하나만을 해당 프로그램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다른 프로그램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클래식 Mac OS는 그게 사실이지만 윈도우는 아니다. 사실 1980년대 8비트 컴퓨터 시절에도 실행 파일 하나가 해당 프로그램의 전부인 경우는 많지 않았다. 본문 상단의 게임 디스크가 그 예.[42] 그 반대로 정말 모르고 바로가기 파일만 복사해서 주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개그콘서트생활의 참견에도 나왔다.

당시에는 VCR의 청소용 테이프처럼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청소용 플로피 디스크가 따로 나왔다. 마그네틱 헤드에 이물질이 묻었을 경우 사용하기 위해 펄프에다가 세척액을 떨어뜨린 다음에 쓰는 물건인데 이거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옛날 컴퓨터 학원 좀 다닌 사람들일 것이다. 워낙 플로피 디스크 사용량이 많다 보니 이걸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청소하는 것도 일거리였다. 실제로 이걸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보통은 디스크 헤드를 열어 그 접촉 부분에 단방향으로 하얗게 잔뜩 붙어있는 먼지를 손으로 떼는 경우가 더 많았다.

파일:eZqpZaY.jpg
파일:8zC4Rpr.jpg
설치 방법
1. 컴퓨터의 전원을 끕니다.
2. 설치 디스크 1번을 드라이브에 삽입합니다.
3. 컴퓨터를 재시작합니다.
4. 화면의 지시사항을 따라 설치를 진행합니다.
이 플로피 디스크판 Windows 8.1은 장난으로 만든 것이다. 겉 박스는 플로피 디스크판 Windows XP의 것을 구해다 썼으며, 디스크 레이블은 자작한 것이다. 제작자의 트윗. 참고로 마지막으로 플로피 디스크에 담겨져 나온 윈도우는 플로피 디스크 39장에 담겨 나온 Windows 98이다. 인터넷에 디스크 26장에 담겨 나온 Windows 95사진은 종종 돌아다닌다.

파일:플로피 디스크로 촬영한 부분일식.jpg

플로피 디스크 속 자성체 회전판은 태양, 특히 일식 관측에 매우 좋다. 달리 말해 1회용 썬글라스 용도로 대박. 그래서 초딩들의 숙제와 일식 때마다 그나마도 얼마 안 남아있던 집안의 골칫거리 플로피 디스크들은 분해되었다.

정체불명의 중국제 플로피 디스크들은 데이터를 넣고 일주일 쯤 보관을 하고 있다가 다시 하드에 복사하면 이미 깨져 있다든지, 유지 시간이 몇 시간도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중국제 플로피 디스크의 신뢰도는 매우 떨어졌다. 플로피 디스크가 활용되던 당시의 물가를 기준으로 볼 때 질이 좋은 플로피 디스크들은 그 가격이 제법 높았던 편이기도 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전성기의 상급은 미국산 이메이션제이고, 중급은 국산 SKC제, 하급은 무명의 중국제. 이건 조금 후의 이야기이고 그전 최전성기에서는 이메이션 분사 이전 미국산 3M 오리지날 블랙 제품이 최고봉, 국산은 새한미디어 제품이 상급. 이 시기는 중국제 반입 이전이고, 마치 CD 케이스처럼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1장을 담는 전용 케이스도 있던 시절이다. 더 오래전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전성기 때(1982~1993년 즈음)는 미국산 3M 및 자기디스크 전문기업[43] 제품 및 독일산 BASF가 최상급, 일본 Maxell, 후지필름, 미쓰비시[44] 등이 중급, 하급이 국산 SKC제였다. 1980년대 중순까지만 해도 미, 일, 독 3국 기업 이외에 플로피 디스크를 만드는 기업은 SKC가 유일했다.

웹툰 오늘은 자체 휴강에서도 관련 소재가 나온다.

과학 교과서에서 자기 기록 매체로 MS 방식의 카드나 카세트테이프는 나오는 반면에 같은 자기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드 디스크가 대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형 매킨토시의 대표적인 특징이 전면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다. 맥은 IBM PC와 달리 처음 모델부터 디스크 배출 버튼이 없었고, 디스크 아이콘을 휴지통에 넣으면 플로피 디스크가 배출되는 방식이었다. 물론 고장 시에 핀을 넣어 강제적으로 디스크를 배출하는 기능의 작은 구멍은 있다. 이것이 오랫동안 맥의 아이덴티티였고, IBM PC 호환 기종 사용자의 부러움을 샀다. ODD에도 이러한 사용자 경험이 이어져 구형 맥 미니 등에 탑재된 슬롯형 광 디스크 드라이브도 이런 방식으로 디스크를 꺼낸다.[45]

2016년에도 미국 핵무기 등 국방 체계와 관련하여 1970년대 생산된 8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사용되는 시스템을 쓰는 곳이 있다고 하지만 곧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영문) 2019년 교체 완료했다.

1980~90년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딴 사람들은 논문을 제출할 때 여기에 담아서 제출했다.

플로피 디스크에 담긴 MIDI를 재생하는 기기도 있었다. 영상 덕분에 플로피 디스크로 나온 MIDI 음반들도 나오기도 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개조하여 SD 카드를 인식하게 만든 사람도 있다. 물론 겉모습만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일뿐 내부는 그냥 SD 카드 리더기이다.

메모리스틱도 삽입해서 쓰는 어댑터도 있다.# 일부 기기에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애플 II 당시 고전 게임 울티마 4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2장(양면)으로 나왔는데, 메모리에 전체 지도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지역을 이동함에 따라 플로피 디스크를 바꿔야 했다. Vesper 마을로 가는 길에서 3번 플로피 디스크를 뒤집어서 4번으로 넣고 이동하여 지역 로딩을 시키면 엉뚱한 데이터를 읽어들여서 지형에 버그가 생기는데, 이 지형에서 독초 밭을 찾아서 자정에 Search를 하면 Mandrake Root를 99개까지 무한으로 캘 수 있었다. 다시 앞면인 3번 플로피 디스크로 바꿔넣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깨지지 않은 원래 지역으로 원상 복구가 되었다.

워낙 구시대 유물이 되다 보니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 저장 버튼에 자판기 같은 그림이 있다는 말을 해 1990년대 이전 출생한 사람들이 설명을 해주는 웃픈 일이 생겼다. 원문, 기사

동방 프로젝트 게임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에는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서 판매했는데, 현재로서는 엄청난 희귀템이 되었다. 제작자 ZUN이 '혹시 초대작 동방영이전 플로피 디스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있다면 술 한잔 같이 하고 싶다'고 할 정도다.

현재도 플로피 디스크가 사용되는 분야 중에 하나는 항공기로 보잉 747-400의 경우 내비게이션 데이터 업데이트를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한다. #

일본의 일부 관공서에서는 2020년대까지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했다.# 관련 규정도 1900여건에 달할 정도로 플로피 디스크 사용을 기반으로 한 체계가 잡혀있다. 다만 일본 언론에서도 특종으로 다룰 정도로 공공기관의 플로피 디스크 이용은 이례적인 경우로 취급되고 있다. 특히 일본 언론들에 의해 플로피 디스크 자체가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행정 비효율성이 늘어난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결국 일본 디지털청은 2021년부터 플로피 디스크가 아닌 SSD, 클라우드 스토리지 등 첨단 저장 매체로 전환을 추진했으며, 2024년에 플로피 디스크 퇴출을 완료했다.#

독일 도이체반도 최소 2016년까지 열차와 역 간의 승객 정보 교환을 플로피 디스크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6] 역시나 흔한 일은 아니라 독일 언론에서 특종으로 다룬 바 있다. 이외에도 독일 내 관공서, 법원, 교통시설 등에서 종종 플로피 디스크가 활용되고 있으며, 2020년대 들어 첨단 저장 매체로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일본, 독일 등의 기성 선진국들에서 관공서, 은행, 발전소, 산업 시설, 국방 시설, 군사 장비, 교통 시설 등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 정상 작동하는 전산 체계를 바꾸는 게 예산 소모도 크고 안정성과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어서 유지하는 경우이다.

악기로 쓰기도 한다. Moppy 문서 참조. 제작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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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게이트 테크놀로지를 설립한 앨런 슈거트(Alan Shugart)가 더 이전에 설립한 컴퓨터 주변 기기 회사. 1977년 제록스가 인수 합병해 사라졌다.[2] 여담으로 미니, 마이크로로 명명하는 규격 명칭은 이후 SD, USB, HDMI등에서도 쓰였다. 마이크로보다 더 작으면 나노로 명명하는데 플로피 디스크나 SD카드는 화웨이에서 독자규격으로 만든 NM Card를 제외하면 표준 규격에선 그 이하의 물품이 없어 볼 수 없으며, SIM 카드 정도에서나 볼 수 있다.[3] 당시엔 이처럼 단면과 양면 플로피 디스크가 따로 있었다. 양면 플로피 디스크는 쓰기 허용 구멍이 좌우에 뚫려있고 단면 플로피 디스크는 오른쪽에만 뚫려있어 뒷면 사용을 막았다(쓰기 허용 구멍이 뚫려 있어야만 컴퓨터가 플로피 디스크에 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면 플로피 디스크들의 측면에 뭔가 은색 반창고 같은 것이 붙어있는데, 이것이 쓰기 방지 스티커다. 쓰기 허용 구멍을 이렇게 막아두면 실수로 플로피 디스크의 내용을 덮어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듯) 대부분의 개인 사용자들은 홀펀치로 플로피 디스크 좌측에도 구멍을 내서 앞뒷면을 다 썼다. 단면 플로피 디스크를 앞뒤 다 쓴다고 문제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었고, 플로피 디스크가 비쌌기 때문이다.[4] 지금 시험 등에서 사용되는 OMR 카드의 전신. 마이크로소프트 최초 제품은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만든 알테어 8800 마이크로컴퓨터용 BASIC 인터프리터였으며 이 프로그램은 천공 카드에 담겨 있었다.[5] 오늘날의 컴퓨터 사용자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이는 당시 흔히 사용되던 방식이다. 아래 이미지는 컴퓨터용 판타지 게임인 “퀘스트 1” 제품의 한 페이지이다. 사용자가 인쇄된 소스 코드를 직접 입력해 프로그램을 완성한 뒤 구동하는 방식이다.
파일:IMG_1234705.jpg
[6] 그러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용으론 대체제가 없었기에 널리 이용되었다. 닌텐도 패미컴, 아타리 2600 등 당대의 가정용 게임기는 모두 롬 카트리지 방식이었으며 게임 하나의 가격이 지금 돈으로 10만원이 넘었다.[7] 일단 이메일을 쓴다는 것 자체가 네트워크에 연결이 된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인데 대기업이나 대학교를 제외하고 개인의 인터넷 접속은 상당한 사용료를 내야 했으며 그 속도 또한 90년대 중반 최고로 빨라진 시기가 56Kbps 모뎀을 사용할 시기이다. 1MB 정도의 파일을 첨부해도 그것을 내려받는 시간만 에러가 없다는 전제 하에 5분 가까이 걸린다. 당연 에러율도 높았으며 그 56Kbps도 최후기의 상황이다. 1990년대 초만 해도 4.8Kbps도 감지덕지했던 시절이다.[8]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CD 라이터는 PC 몇 대 분의 비싼 가격이였다. Windows 95가 등장할 무렵 불법으로 이를 복제한 CD를 판매한 업체가 성행했던 배경인데 개인이 CD 라이터를 구매하기 어렵기 때문이였다. 후반들어 저렴한 IDE 방식 CD 라이터가 나와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대중화가 된 것.[9] 훗날 CD-RW이라고 다시 기록할 수 있는 CD가 나오긴 했다. 그러나 다시 기록이라 말 그대로 싹 지우고 전체를 다시 기록하는 방식이라 불편했으며 무엇보다 반사체의 반사도가 낮아 데이터 보존력이 떨어지고 기기의 특성을 많이 탔다. 이후에 패킷 라이팅 방식이라고 CD-RW를 마치 플로피 디스크나 하드 디스크처럼 자유롭게 파일을 넣고 지우고 할 수 있는 것도 나와서 드디어 플로피 디스크를 대체하나 싶었으나, 호환성과 수명 문제가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USB 드라이브가 널리 보급되면서 묻혀졌다.[10] CD가 투명한 플라스틱 덮개 안에 들어가 있는 형태이며, 드라이브에 덮개째로 집어넣어 돌리는 방식이다. 단가가 비쌌던 방식이었던 탓에 1990년대 중반에 CD를 트레이에 얹는 방식에 밀려 사라졌다.[11] Windows 95가 출시될 무렵에는 이런 뻥튀기 방식으로 플로피 디스크에 담겨 나온 것이 정품이였다. 한 30장 가까이 된다.[12] 디스크의 기록 제어권이 완전하게 하드웨어에 있고 운영 체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는 단지 데이터의 입,출력만 하는 하드 디스크나 USB 디스크와는 달리 플로피 디스크 전성기에는 소프트웨어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헤드 암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의 하드웨어 제어가 가능했다. 이것을 적극 응용하여 운영 체제와는 무관한 비 표준 기록방식 등으로 복제 방지를 했다. 이를 복사하려면 복사 프로그램 또한 디스크를 직접 억세스하여 데이터 열을 읽어내야 했고, 그 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일단 부팅은 되어야 소프트웨어가 실행 가능하므로 해커들은 최초 부트스트랩 단계부터 데이터를 읽어 분석, 프로텍트를 깨곤 했다.[13] 노트북 컴퓨터는 2020년 기준으로 ODD 있는 모델이 거의 없다. 일본 내수용 노트북 제품 일부는 아직도 ODD를 장착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도 극소수다. 데스크톱 컴퓨터 역시 ODD를 장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ODD 슬롯 자체가 없는 케이스도 많아졌다.[14] 이 경우 USB 드라이브의 드라이브 문자가 A:로 나타난다.[15] 쓰기 방지 스위치 반대쪽에 있다.[16] MSX 등과는 달리 오래된 기종이라서 애플 II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처음 출시될 시절에는 단면 사용 디스크만 있었고 이게 사실상 표준화된 것. 애플 II뿐 아니라 코모도어 64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단면 헤드.[17] 256 바이트/섹터×13 섹터/트랙×35 트랙. 애플은 Disk II를 저렴하게 만들려다 보니 성능이 뒤떨어져 안쪽 트랙에서 오류가 많았고, 애플은 이를 감안해 애플 DOS는 40 트랙 중 35 트랙만을 사용했다. 또한 트랙의 밀도도 떨어뜨려 트랙 당 13 섹터만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용량이 저렇게 되었다. 40트랙을 다 쓰려면 별도의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애플 DOS 3.3 이후로 업데이트하면 트랙 당 16 섹터로 밀도를 높여 140KB까지 사용할 수 있다.[18] 뒤집어 넣으면 자성체의 회전 방향이 반대가 되므로 앞뒤를 다 쓰면 쓸 때마다 회전 방향이 바뀌는 탓에 디스크 내부 부직포의 먼지 흡수가 잘 안되고 흡수한 먼지도 도로 드라이브에 떨어지는 바람에 플로피 디스크나 드라이브의 수명이 크게 단축된다.[19] 국내에 보급된 IBM PC 호환기종에 딸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이미 양면 지원이 기본이었다. 자동으로 헤드가 앞뒷면을 다 썼다. 이걸 수동으로 뒤집어 삽입하면 플로피 디스크 입장에서 자성체의 회전 방향이 반대가 되고, 이 상태에서 기록하면 데이터가 파괴될 것 같지만, 그전에 DOS가 디스크를 인식 못해 오류를 내고 멈춘다.[20] CD-ROM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문제와 호환성 문제로 모든 사용자가 CD-ROM 드라이브를 다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플로피 디스크와 CD를 동시에 판 경우도 있다. 윈도우 95도 CD와 플로피 두 형태로 모두 출시되었다. 여담으로 초창기 CD-ROM은 SCSI 방식으로 출시되었고, 이는 가격이 비싼 SCSI 콘트롤러 또한 있어야 하며, 동시에 해당 콘트롤러의 드라이버를 시스템에 올려야 했는데 이게 또 기종마다 달랐다. CD-ROM이 대중화가 된 것은 표준화되고 저렴한 IDE 방식 CD-ROM이 등장하고 부터이다.[21] 예를 들어 신해철도 사실상의 데뷔 무대이던 대학가요제 출전 당시 경험한 바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서사이저의 플로피 디스크가 읽기 불량을 일으켜 마음 속으로 온갖 신들에게 빌면서 다시 집어넣었더니 다행히 잘 읽혔다고 한다.[22] 프린세스 메이커 2도 이 방식이다. 플로피 디스크 6장이나 되었기 때문에 쉽게 복제하기 힘들었다.[23] 이쪽은 업무용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했다.[24] 애플 II용 게임 프로그램 등은 대부분 불법 복제 방지 검사를 우회하도록 크랙했다. 그래서 한국에 나도는 거의 대부분의 애플 II 게임은 부팅시 화면 어딘가에 cracked by XXXX 같은 문구가 들어갔다.[25] 모니터가 책상 안에 들어있다. 고개를 숙여야하기에 목 디스크 유발된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26] 단적으로 2000년대 초반에 사실상 거의 사장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함께 양대 웹 브라우저 로 소개해놓은 교과서가 2010년대 중후반까지도 쓰였다.[27] 컴퓨터 자격증 교재에 부록으로 플로피 디스크가 딸려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후에는 CD로 대체되었다.[28] USB가 플로피 디스크를 밀어낸 뒤에도 기억 장치의 속도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시험에 언급되고 있다.[29] 사실 지금도 USB 드라이브를 제출용으로 쓰기에는 비싸다. 가격이 하락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용량 대비 가격이 하락한다는 의미이고 용량과 무관하게 시판중인 최저가 USB 드라이브나 SD카드 등은 최소 몇천원은 된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으로 뭔가 자료를 제출하려면 2020년대 현재도 장당 몇백원 선인 CD-R이나 DVD-R 등이 가장 저렴하다. 물론 드라이브가 있다는 전제 하에.[30] 장당 가격이 매우 싼 CD/DVD만이 USB 드라이브 대비 가성비의 우위로 몇년 더 살아남는다. 8GB USB 드라이브가 널리 보급된 이후(2009년 전후), CD/DVD도 점점 역사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한다.[31] 클립 스튜디오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One UI 2.1 이상의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화면 캡처 후 편집'을 했을 때 나오는 화면에서도 저장 버튼이 화살표 모양으로 되어 있다.[32] 예를 들어서 스마트폰의 전화 아이콘이 수화기 모양인 것을 설명할 때도 예시로 플로피디스크가 딸려오는 식. 수화기를 쓰는 전화도 의외로 남아있는 만큼 플로피디스크만큼 극적으로 밀려난 사례도 사실 찾기 힘들다.[33] 안철수는 이걸 몰라서 밥 굶어가며 기껏 산 플로피 디스크가 인식이 안 돼서 한 달 가량 고생했다는 썰이 있다.[34]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장치가 서로 다른 경우도 허다했다.[35] 2HD 규격의 왼쪽 구멍(읽기/쓰기 탭이 없는 쪽)을 검은 테이프 등으로 가리거나 특수한 조건으로 포맷을 진행하면 이 규격으로 인식된다. #[36] 가장 널리 쓰인 규격. 현재는 사실상 이것 이외의 규격을 구할 수 없다.[37] Disk Notcher 혹은 Disk Doubler라 부름 파일:disk_notchers.jpg[38] 이런게 나올 무렵에 CD-R이 나왔다. 그당시 기준 CD-R의 쓰기(기록)는 일반인들이 구입하기에는 비싼 전문 레코더를 필요로 했지만 CD-ROM 자체는 많이 보급된 형태라 읽기는 수월했다. 700MB의 용량이라 전술한 확장 플로피와는 비교도 하기 힘든 큰 용량이였다. 게다가 몇년 지나지 않아 CD-R 기록장치의 가격이 많이 떨어져 일반인들도 쉽게 장착할수 있게 되었고, CD-RW까지 나왔다.[39] 대용량 플로피 디스크들의 가장 큰 약점이 어느 하나도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드라이브 자체가 모든 PC에 보급된게 아니니 내장형을 자신의 PC에 장착해 봐야 혼자서만 쓸 수 있으며(이러면 하드디스크에 비해 장점이 하나도 없다), 다른 PC에서 쓰려면 외장형 드라이브를 들고 다녀야 하는데 이건 또 무거운 본체는 물론 연결 인터페이스 장치까지 휴대해야 했고 연결 방법 또한 불편했다. 빨리 표준화해서 낮은 가격에 거의 모든 PC에서 기존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대신 장착하도록 했다면 대중화될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그사이에 CD-R이 더 먼저 대중화되었다. 이런 물건을 썼던 곳은 이른바 자주 읽고 쓰는 대용량 자료를 필수적으로 취급하는 소수의 분야에서 집과 사무실, 거래처 등에 동일한 형식의 드라이브를 장착한 경우다.[40] 예를 들어 아카이 사의 X7000 신디사이저에도 퀵 디스크를 썼다. 여담으로 신해철무한궤도 시절에 이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는데, 대학가요제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퀵 디스크가 문제를 일으켜서 큰일날 뻔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신해철/음악 활동을 참고하자.[41] 불사파 본편은 아니고, 코너 종영 후 특집 개그콘서트 때 앵콜 격으로 선보였다.[42] 8비트 시절에는 지금처럼 운영 체제가 PC를 지배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따라서 본문 상단의 게임 디스크 같으면 아예 자체적으로 부팅해서 직접 디스크를 억세스, 바이너리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읽던 시절이라서 '파일' 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이런 소프트웨어에서 실행 파일이나 그림 데이터 등을 추출하려면 파일의 복사가 아니라 전용 유틸리티가 동작하는 상황에서 디스크의 특정 트랙, 특정 섹터의 HEX값을 읽어서 분석해야 했다. 복사를 하려면 파일을 읽는 것이 아닌 트랙과 섹터 별로 HEX값을 불러들여 동일한 크기 플로피 디스크의 같은 위치에 그대로 기록하는 것을 데이터의 유뮤와 상관 없이 플로피 디스크 한 장의 모든 트랙 섹터에 대해 행하는 것이다.[43] Memorex, Dysan, Wabash, Nashua 등[44] 미쓰비시화성과 미국 Verbatim의 합작회사인 카세이 버바팀[45] 이 기능은 지금도 살아남아서 휴지통에 넣기를 이용해서 USB 드라이브나 외장하드 같은 비교적 최신 외장 스토리지 역시 마운트가 해제된다. 이외에도 내장 디스크, 네트워크 스토리지 등등 모든 형태의 스토리지가 전부 이 인터페이스를 통해 여전히 현역으로 작동한다.[46] Thiemo Heeg, "Der geheimnisvolle Datenträger", Frankfurter Allgemeine, 01. 0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