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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5:40:00

간 담화

일본 내각의 역대 전쟁 범죄 인정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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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colbgcolor=#f5f5f5,#2d2f34> 고노 담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식민지 지배 사죄
1998년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 식민지 지배의 가해책임 인정과 식민지 지배 사죄
2005년 고이즈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재확인 및 계승의지 천명
2010년 간 담화 한일병합의 강제성, 식민지 지배의 폭력성에 대해 인정과 사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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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전문

1. 개요

菅談話 (かんだんわ).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총리가 내각회의의 결정을 통해 2010년 8월 10일에 발표한 담화이다.

2. 상세

일본이 최초로 병합의 강제성과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인정한 담화이다. 민주당 내각 당시 간 나오토 총리가 발표했으며, 물밑으론 당시 오카다 가쓰야 외무대신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사과와 더불어 조선왕실의궤 인도를 추진했다.

고노 담화가 최초로 위안부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했고, 무라야마 담화일본의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사죄했다면, 간 담화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하고[1] 식민지배의 강제성폭력성을 인정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다만,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정확하게는 후술된 전문을 보면 알 수 있듯 아예 그런 쪽으로는 언급을 안 했다.[2] 일본 정부 차원에서 불법성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손해배상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민사적인 문제(법적 문제)가 따라오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언급 자체를 피했다는 시각이다. 일본 정부는 역대 어느 내각을 가리지 않고 과거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을 떠나 법적 책임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이미 종결되었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굳이 찾자면, 담화문에서 '사과'의 의미로 사용된 오와비(おわび)라는 표현은 법적인 책임까지 함께 진다는 의미의 사죄(샤자이, 謝罪)와 뉘앙스가 구별되기 때문에 문화재 반환 등 추가적인 법적 책임으로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즉 '도의적 측면에서 사과는 하지만 추가적인 법적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그럼에도 당시 국내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특히 2010년대 이후부턴 일본이 우경화되면서 이 정도의 담화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재평가받기도 한다.

3. 전문[3]

내각총리대신 담화 헤이세이 22년(2010년) 8월 10일

올해는 일한관계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백 년 전 바로 8월 일한병합조약이 체결되고, 그 후 36년에 이르는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하여 성실히 임하고자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가지고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데 솔직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측은 잊기 쉽고, 당한 측은 그것을 쉽게 잊을 수 없는 법입니다. 이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이에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이러한 인식 아래 앞으로의 백 년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인 일한관계를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또 지금까지 실시해 온 이른바 재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 봉환 지원과 같은 인도적인 협력을 앞으로도 성실히 실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통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해서 들어와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된 귀중한 도서를 한국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인도하고자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2천 년의 활발한 문화교류와 사람들의 왕래를 통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깊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의 양국교류는 매우 중층적이고 광범하며 다방면에 걸쳐 있어 양국 국민이 서로에게 느끼는 친근감과 우정은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해졌습니다. 또한 양국의 경제관계와 인적교류 규모는 국교정상화 이래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서로 절차탁마하면서 그 유대는 지극히 굳건해졌습니다.

일한양국은 지금 이 21세기에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하고 긴밀한 이웃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는 양국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래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축도 염두에 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세계경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핵군축과 기후변화, 빈곤과 평화구축 같은 범세계적인 과제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폭넓게 협력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동반자 관계입니다.

저는 이 큰 역사의 길목에서 일한양국의 유대가 보다 깊고 보다 견고해지기를 강력히 희구하는 동시에, 양국 간의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결심임을 표명합니다.
内閣総理大臣談話 平成二十二年八月十日

本年は、日韓関係にとって大きな節目の年です。ちょうど百年前の八月、日韓併合条約が締結され、以後三十六年に及ぶ植民地支配が始まりました。三・一独立運動などの激しい抵抗にも示されたとおり、政治的・軍事的背景の下、当時の韓国の人々は、その意に反して行われた植民地支配によって、国と文化を奪われ、民族の誇りを深く傷付けられました。

私は、歴史に対して誠実に向き合いたいと思います。歴史の事実を直視する勇気とそれを受け止める謙虚さを持ち、自らの過ちを省みることに率直でありたいと思います。痛みを与えた側は忘れやすく、与えられた側はそれを容易に忘れることは出来ないものです。この植民地支配がもたらした多大の損害と苦痛に対し、ここに改めて痛切な反省と心からのお詫びの気持ちを表明いたします。

このような認識の下、これからの百年を見据え、未来志向の日韓関係を構築していきます。また、これまで行ってきたいわゆる在サハリン韓国人支援、朝鮮半島出身者の遺骨返還支援といった人道的な協力を今後とも誠実に実施していきます。さらに、日本が統治していた期間に朝鮮総督府を経由してもたらされ、日本政府が保管している朝鮮王朝儀軌等の朝鮮半島由来の貴重な図書について、韓国の人々の期待に応えて近くこれらをお渡ししたいと思います。

日本と韓国は、二千年来の活発な文化の交流や人の往来を通じ、世界に誇る素晴らしい文化と伝統を深く共有しています。さらに、今日の両国の交流は極めて重層的かつ広範多岐にわたり、両国の国民が互いに抱く親近感と友情はかつてないほど強くなっております。また、両国の経済関係や人的交流の規模は国交正常化以来飛躍的に拡大し、互いに切磋琢磨しながら、その結び付きは極めて強固なものとなっています。

日韓両国は、今この二十一世紀において、民主主義や自由、市場経済といった価値を共有する最も重要で緊密な隣国同士となっています。それは、二国間関係にとどまらず、将来の東アジア共同体の構築をも念頭に置いたこの地域の平和と安定、世界経済の成長と発展、そして、核軍縮や気候変動、貧困や平和構築といった地球規模の課題まで、幅広く地域と世界の平和と繁栄のために協力してリーダーシップを発揮するパートナーの関係です。

私は、この大きな歴史の節目に、日韓両国の絆がより深く、より固いものとなることを強く希求するとと>もに、両国間の未来をひらくために不断の努力を惜しまない決意を表明いたします。


[1] 사실 한국만 특정하여 사죄한건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이 먼저긴 하다.[2] 물론 과거 일본제국도 바보는 아니라 한일병합 자체는 일단은 조약으로 맺은 것이니 합법 운운할 거리는 만들어둔 셈이지만, 현실은 이미 을사늑약부터 시작해서 정미의병, 남한 대토벌 작전 등 학살 수준의 사전 작업을 다해놓고 벌인 일이라 사실 허망한 소리긴 하다.[3] 출처는 위키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