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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革主義 / Reformism
1. 정치적 개혁주의
개혁주의가 전세계적으로 처음 부상한 이유는 공산권의 붕괴였다. 1990년대 당시 구미에서는 범 좌익 진영이 공산권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그 대안으로서의 이념을 모색해야 했고, 그에 따라 대안으로 제시된 이념이 개혁주의였다. 참고로 개혁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영미권의 자유주의(Liberal) 정당들과는 달리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좌파는 기존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고수하였고, 그러한 기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1.1. 개혁적 사회주의
개혁적(개량적) 사회주의는 수정사회주의라고도 한다. 한국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종종 단순하게 개량주의라고도 칭한다.
본래는 사회주의 사상 중 하나이며, 혁명적 사회주의의 폭력혁명을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로의 개혁과 진보를 추구하는 사상이다.
앞 문장을 읽었을 때 사회민주주의나 유럽공산주의를 떠올렸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다. 정치적 개혁주의는 그들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1.2. 중도개혁주의
자세한 내용은 중도개혁주의 문서 참고하십시오.2. 신학적 개혁주의
16-17세기 종교 개혁 주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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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ormed theology
영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 언어에서 과거형으로 표기된다. 종교개혁을 통해 “개혁된” 기독교라는 의미가 강하다.
츠빙글리, 부처, 칼뱅을 비롯한 네덜란드, 스위스, 프랑스, 영국, 미국 종교개혁가들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심을 두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한 그리고 영역을 크게 강조하는) 가톨릭 - 정교회[1] 개혁 정신을 따르자는 개신교의 신학적 사조를 일컫는 말. 개신교 내에서 '개혁주의'라는 용어는 장 칼뱅을 비롯한 개혁교회-장로회 신학을 일컬으며 칼뱅주의라 부르기도 하나 '개혁주의'란 표현이 훨씬 많이 사용된다. '칼뱅주의'라고 하면 칼뱅의 신학만 따른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보다 정교하게 분류하면, 칼뱅주의는 칼빈이 도출한 신학적 결과물을 가리키며 개혁주의는 칼뱅이 신학적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론을 가리킨다. 개혁주의는 중세의 종교개혁자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인간은 유일한 계시인 성경을 통해 신의 정확무오한 계시를 밝혀낼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인간이 성경에서 신의 계시를 밝혀낼 수 있는 원리와 그 절차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칼뱅이 확립했다.
다른 말로 하면 칼뱅주의는 칼뱅이 도출한 신학이고 개혁주의는 칼뱅이 확립한 성경관이다. 따라서 칼빈의 성경관을 부정하고 바르트의 성경관을 받아들인 통합이나 고등비평을 받아들인 기장은, 칼뱅주의의 한 계파라고는 할 수 있으나 개혁주의라고는 호칭하지 않는다. 개혁주의의 방법론을 정확하게 따를 경우, 칼빈과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칼뱅주의와 개혁주의가 동일하게 칼빈의 신학을 가리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칼빈이 대전제로 삼은 어거스틴의 신정론을 부정할 경우에는 다른 결론을 얻는다. 근세사에서 개혁주의를 철저히 따르려는 개신교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가 청교도다.
개신교계에서도, 비개신교계에서도 개혁주의가 훨씬 많이 쓰인다. 개혁주의자들도 개혁주의라고 부르지, 칼빈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천주교도 천주교 신자들이 가톨릭이라는 명칭을 더욱 자주 사용한다는 이유로 문서명도 가톨릭으로 통일되었다. 2022년 기준으로 구글 검색량으로 개혁주의가 629만 개, 칼빈주의는 40만 2천 개다. 정치적 개혁주의는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동교동계가 대부분 은퇴하고 바른미래당이 국민의 힘에게 완전히 흡수된 현재로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칼뱅을 따르는 개신교의 신학적 개혁주의는 대한민국 개신교의 주류인 장로교 교단의 75% 이상이고 타교단에도 개혁주의자들이 있다. 따라서 개혁주의 신학을 '칼빈주의'라는 문서명으로 지칭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다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목사 절반이 성도의 견인 교리를 믿지 많으므로 장로교 목사 중 개혁주의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 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
왜 개혁주의를 왜 칼빈주의(칼뱅주의)라고 잘 부르지 않는가? 개혁주의 신학의 구심점은 장 칼뱅이 맡았지만 개혁주의 신학의 시초는 울리히 츠빙글리, 마르틴 부처, 마르틴 루터[2] 등 칼뱅의 선배 종교개혁자들이었다. 게다가 개혁주의의 스펙트럼은 칼뱅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칼뱅의 신학을 원리주의적으로 지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칼 바르트 등 칼뱅의 신학을 개량하려는 이들도 있다. 게다가 감리회를 비롯한 웨슬리안 신학과 소통과 일치를 중시하는 개신교 교회일치주의자들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를 동시에 중시하는 웨슬리안 신학이라 개혁주의자와 대화가 가능하지, 아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면서 인간의 의지만 중시하고 하나님의 의지를 배제하려는 비 웨슬리안 아르미니우스주의자는 개혁주의자와 대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코넬리우스 반틸, 헤르만 바빙크, 루이스 벌코프 같은 근현대 개혁주의자들이 칼뱅의 신학을 그대로 읊조리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칼뱅이 생전에 다루지 못한 분야를 다루는 데 적극적이다.
개혁주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십자고상, 고해성사, 성변화(화체설),[3] 제단 위에 촛불 놓기,[4] 성상(성모 마리아상 포함), 성화[5] 등의 잔례들을 비성경적이고 인습적인 것으로 바라보아 철폐하였다. 반대로 당시의 과학기술과 학문에는 매우 긍정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진화론을 비롯한 종교와 역사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과학 이론들과, 계몽주의 · 휴머니즘을 위시한 모더니즘, 실존주의, (종교다원주의를 비롯한) 다원주의 등의 사상과 영향을 주고받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인해 무조건 긍정적이기보다는 신앙과 대립된다고 여겨지는 과학 이론들에 대해선 개인마다 의견이 갈리게 되었다.
대체로 교회 현장에서는 신앙과 대립된다고 여겨지는 과학 이론에 적대적인 것과는 별개로, 개혁주의 내부에서도 인간론, 물질론, 종말론 등에서의 견해가 다양하기에 신앙에 대립된다고 여겨지는 과학 이론에 대한 태도도 사실상 각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침묵의 나선 때문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신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묵살되어서 잘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창조과학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성도들에게 강요하는 일선 목회자들과는 다르게 개혁주의 신학계를 포함한 개신교 신학계에서는 자연과학계의 성과에 그다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진화론을 비롯한 자연과학계의 연구성과에 대한 개신교 신학계의 대체적인 의견은 이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흔히들 오해하는 게 후대의 개혁주의자들이 과학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을 싫어한다고[6] 과학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인데, 이는 결코 아니다. 신앙에 방해만 안 된다면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장려한다. 과학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개혁주의라기보단 극단적인 근본주의에 가깝다. 개혁주의는 과학을 비롯한 인간의 삶과 하나님을 따로 떼어내서 이원화시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7] 이렇듯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특성 때문에 개신교 중에서도 유독 세속에 호의적인 진영이기 때문에 개신교 외부에서도 개혁주의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8]
한국에 있는 개혁주의 계열 교단에 소속된 종합대학들에서도 과학계열 학과들이 멀쩡히 개설되었다.
인간의 삶에 충실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바라본다. 인간의 삶을 하나님과 분리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렇기에 돈에 관련된 경제활동을 정죄하던[9] 당시 가톨릭에 염증을 느끼던 중상주의, 자본주의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된다. 베버가 칼빈을 초기 자본주의의 시초로 바라본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삶을 강조한 칼빈이 자본주의를 주장한 것이라고 보면 위험하다. 칼빈은 삶에 충실하라고 했지 빈부격차를 비롯한 악을 방관하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라는 이름 때문에 개신교를 잘 모르는 사람은 사회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개혁은 '종교개혁가들의 개혁'이기 때문에 개신교 성경이 기준이다. 원어적으로는 '과거형'이지 '현재진행형'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16세기 가톨릭을 개혁한 칼뱅파 교회. 그러나 한국어로는 '과거형'이 아닌 것처럼 마냥 보수적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위험하다. 개신교 성경도 꾸준히 새번역이 나오는 것처럼 여기도 꾸준히 새로운 학설과 이론이 등장하는 엄연한 현역 신학이다. 장 칼뱅이 기준이지만, 교단차와 개인차가 매우 심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처럼 정치 참여와 사회 구원에 적극적인 곳도, 예장총공회처럼 전방위적으로 보수적인 곳도, 그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처럼 신학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면서 사회참여에 관심이 많은 곳도 있다. 교회 홈페이지나 소개문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나 도르트 신조 등 개혁주의가 표방하는 신조를 걸어두고 소개할 경우, 그 교회는 좋든 나쁘든 개혁주의 성향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개신교계 내부에서는 유대교의 바리새파와 자주 비교되는데, 장로회의 특성상 경험과 은사 위주의 신앙생활보다 경건함과 조직신학을 중시하는 신앙생활을 중시하는 목회자와 신학자가 매우 많아서 그렇다. 그래서 오순절교회와 자주 대립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한영)처럼 장로회-오순절교회 혼종 교단도 있기에 이런 특성도 모두가 다 적용된다고 보면 안 된다. 게다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조차 오순절교회의 영향을 받을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주의와 온건주의가 강해지는 추세인데다가, 오순절교회를 비롯한 웨슬리주의자들도 개혁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개혁주의와 웨슬리주의가 공존하는 한국 침례회를 떠올리면 편할 것이다.
2.1. 개혁주의 신학 계열 교단
자세한 것은 장로회 문서를 참조하라. 이하 내용은 대략적인 서술만 한다. 강경 ▷ 온건 순으로 서술한다.-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 국내의 정통교단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개혁주의 성향을 띄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산하 신학교는 체계적인 신학 교육을 하지 않고 수도원처럼 운영하고 있기에[10], 일부 교계에서는 예장총공회가 개혁주의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및 파생교단 및 출옥성도파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및 파생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및 파생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 교단 신학인 '생명신학'을 언급할 때 꼬박꼬박 개혁주의의 분파라는 것을 언급한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및 파생교단의 보수파 :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장로회 진영의 마지노선이라고 여겨진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 흔히들 후기 자유주의 노선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여기도 은사주의를 혐오하는 개혁주의 성향이 없잖아 있다.
- 타 개신교 주류 교파의 개혁주의 성향 목회자 및 신학자 : 대체로 장로교회 및 개혁교회에 비해 보다 온건한 개혁주의를 추구한다. 주로 교회론과 성령의 은사, 성례전에 관한 견해에서 장로교회와 차이를 보인다.
- 특수 침례회 : 개혁주의를 따르는 침례교. 역사상 침례교는 개혁주의를 따르는 특수침례교, 알미니우스주의를 따르는 일반침례교로 구분되고 있으나, 대부분 개혁주의인 특수침례교회가 주류를 이루었다. 일례로 존 번연, 찰스 스펄전을 배출한 영국의 특수 침례회와 개혁주의가 주류인 미국 남침례회를 들 수 있다. 한국 장로교 신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박형룡 박사를 비롯 국내 상당수의 장로회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미국 남침례회 신학교에서 유학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배웠고 배우고 있다.
- 초교파 독립교단(KAICAM, WAIC 등)의 개혁주의자 : 장로회가 절대적 우세를 점한 국내 개신교 환경 상 초교파 교단에서도 이들의 목소리가 꽤 크다.
2.2. 개혁주의 신학 계열 대학교
† 대한민국의 장로회 산하 고등교육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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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기전대학 | 전주비전대학교 | |||
[1] 백기환 목사가 창립한 정통교단. [2] 장로회 계열과 감리회 계열이 공동 운영함. [3] 재단이 장로회 계열이지만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않은 대학. 그러나 예장합동과 연관있는 경성대와 예장고신과 연관있는 창신대를 제외하면 모두 예장통합과 연관있다. |
2.3. 비판
자세한 내용은 개혁주의 신학/비판 문서 참고하십시오.3. 관련 문서
[1] 산발적인 수준이지만 정교회에서도 개혁주의 도입 시도가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무산되었지만. 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에서도 미약하게나마 개혁교회(장로회)가 존재한다.[2] 단 루터가 선배 종교개혁가인데도, 오늘날의 루터교를 개혁주의 교단으로 여기진 않는다. 루터교회와 개혁교회가 마르부르크 회담에서 성찬론으로 인한 견해차로 인하여 갈라진데다가 루터교회는 신학적 특성상 복음 자체에 관심을 두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관심은 약한 편이다.[3] 개혁주의의 성만찬 해석으로 보통 쯔빙글리가 주장한 기념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다만 칼뱅은 '영적 임재설'을 주장했다.[4] 제단 자체도 금했다. 다만 촛불을 샹들리에로 쓰거나 강대상 주변을 밝히는 등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허락했다. 전기가 보급되고 나서야 개혁주의 교회에서 제대로 양초를 없애는 것이 가능해졌다.[5] 원칙적으로는 십자가도 걸면 안 된다. 다만 교파별로 이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른 편.[6] 대표적으로 진화론에 관한 논쟁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개혁주의자마다 생각이 다르므로 모든 개혁주의자의 생각을 하나로 묶어서 말할 수 없다. 다만, 유일한 공통점이 과학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다.[7] 개혁주의를 포함한 신학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자연과학과 신학 간의 괴리를 형이하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 자연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보이기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러한 단점은 자연과학과 충돌하는 모든 종교의 신학에 있다. 하지만 신앙이 반드시 형이하학으로 해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신앙이 자연과학과 충돌하건말건 개의치 않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개혁주의 같이 기독교 내부에서 세속을 호의적으로 보는 진영을 비판하는 의견이 도리어 기독교 교회 내부에는 창조과학과 극단적 근본주의를, 세속적 일반 사회에서는 반기독교와 과학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기독교 교회와 세속을 연결하는 진영을 부숴버림으로써 기독교 교회의 고립을 의도적으로 부추긴다는 것.[8] 자유주의 신학의 시초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신학도 당대의 계몽주의 무신론 풍조에 맞서서 그리스도교 교회를 변증하기 위한 개혁주의 전통에서 출발했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다르게 특별계시(성경)과 특별은총(복음)을 더 강조한다. 다만 이러한 점 때문에 근본주의 신학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에 좀 적대적인 편. 근본주의 진영 중에서 세속에 적대적인 진영에서는 개혁교회-장로회 전통을 이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좀 있다. 이렇다보니 개혁파 근본주의(개혁주의 근본주의)는 세속에 대체로 적대적인 근본주의 노선을 지키면서 세속에게도 주어진 일반은총을 말해야하거나 특별은총만 주구장창 강조하면서 세속에 대해 노코멘트를 유지하며 근본주의를 자칭해야하는 꽤 까다로운 성립조건을 가졌다.[9] 가톨릭에서 탐욕은 고해성사 봐야 할 대죄로 여긴다.[10] 대부분의 개신교 신학교가 칼뱅의 제네바 아카데미 체계를 본땄을 정도로, 개혁주의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체계적인 조직신학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