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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3:15:34

김선일 피랍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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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김선일 피랍 사건
Kim Sun-il kidnapping accident
金鮮一 绑架事件
<colbgcolor=#bc002d> 발생일 2004년 6월 22일
유형 납치인질극
발생 위치
이라크 안바르 주 팔루자
사망 1명 (김선일)
1. 개요2. 피랍 (납치)
2.1. 피랍 이후
3. 발언 및 유언4. 피살
4.1. 사후
5. 범인 성명6. 가해자 처벌7. 그 외

[clearfix]

1. 개요

2004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유일신과 성전이라크에서 미군 군납 작업 후 숙소로 복귀 중이던 한국인 김선일을 납치하고 협박한 후 피살(참수)한 사건.

일본절대로 검색해서는 안 될 검색어3단계[1]에 위치해 있었지만, 단지 일본어나 한국어로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년 후 제외되었다.

2. 피랍 (납치)

파일:김선일 피살 사건.png
파일:The_Death_of_a_South_Korean_in_Iraq.png
2004년 5월 31일에 김선일은 이라크 팔루자의 미군부대에 군수품을 납품한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납치되었다. 식료품 배송 작업을 위해서 미군 캠프에 출장을 간 후 김선일은 미국 기업이었던 KBR 소속 차량 4대와 무리를 지어 돌아가고 있던 길에 피랍되었다. 김선일을 제외한 다른 직원이 피랍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불명이지만 외국인이 아닌 이라크인은 인질로서의 가치가 낮아 그냥 석방했을 가능성이 높다.[2]

당시에는 처음에 납치한 단체한테 돈을 받고 몸값 협상이 되질 않는다는 이유로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조직에게 그를 팔아넘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떠돌아다녔는데 이 때문에 가나무역 사장을 비난하는 여론들이 다소 존재했다.

2.1. 피랍 이후

유일신과 성전이 그를 인질로 붙잡고 협박하는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전세계적으로 1차로 배포되었다. "이 사람을 살리고 싶으면 가나무역과 한국군은 즉각 철수하고 추가 파병 계획을 철회하라" 라고 요구했으나 정부는 거부했고 결국 살해되었다.

정부의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선 당시 논란이 많았다. 정부 결정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고작 한 사람 때문에 해외 파병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철회하기에는 무리라는 의견이었고 반대 측에선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아무 죄 없이 붙잡힌 사람을 고작 남의 나라의 전쟁을 위한 파병 때문에 가만히 죽게 내버려두어야 하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김선일이 납치되어 살해당한 것은 전형적인 테러다. 테러와 인질극에 대해선 국가의 타협 없는 강경한 대응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데 그 이유는 만일 국가가 테러 단체와 협상하기 시작하면 테러 단체가 '테러는 나보다 강한 상대에 대한 효과적인 협상 수단이다.' 라고 인식하여 계속해서 테러와 인질극을 벌이는 악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고인과 유족들에게는 매우 미안하고 안쓰러운 말이지만 만일 대한민국 정부가 인질 한 명 때문에 파병 문제 같이 중요한 군사적, 경제적 사안을 철회했다면 테러가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론이고 테러 조직과 협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격이 실추되는 것은 물론, 동맹국인 미국과 다른 국가들로부터도 국제적인 비난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3][4]

한국군은 전투 병력이 아닌 치안유지 및 재건지원 명목으로 파병되었다. 평화 유지군이 아니다. 애초에 이라크에는 평화 유지군이 파병된 적이 없다. 미군이 원하던 전투병 파병은 일본이나 다른 친미 국가들도 상당수 거부해서 한국처럼 비전투 치안 유지군 파병을 하는 정도였고, 스페인은 대대적인 테러로 보복받으면서 전투병을 전면 철군하고, 파병을 결의한 여당이 다음 선거에 참패하여 결국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했다.

당시 협박하는 동영상이 배포되기 이전에는 무장 단체에 잡힌 뒤 아래에서 보듯, 그를 심문하면서 인적 사항이나 전쟁에 대한 생각 등을 묻는 영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살짝 긴장해도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선일이 약 3주 가량이나 피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대략 며칠 정도로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의 고용주인 가나무역 사장이 김선일의 신변을 파악하는 데 시일이 걸렸으며, 피랍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한국 대사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가나무역 사장은 이라크 현지 변호사를 선임해 독자적으로 구출 방안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3. 발언 및 유언

모든 발언과 유언은 테러 단체가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공개되었다.

<테러 단체[5]의 심문 동영상 중>

(전략) 한국에서 수학을 가르쳤다.[6] (중략) 조지 부시에게 말하고 싶다. 조지 부시가 진짜 테러리스트다. 왜냐면 한국에 있을 때 이라크 전쟁을 텔레비전으로 봤다. 부시와 미국이 석유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래서 난 조지 부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난 미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라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중략) 3일 전에 팔루자 미군 캠프에 갔을 때다. 미군들은 때때로 "어디서 왔나?, 직업이 뭔가?" 등을 질문했다. 몸을 뒤지고 나를 의심했다. 난 미국인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략) 비록 미군에 물건을 납품하긴 했지만 난 미국과 미국인들, 조지 부시를 좋아하지 않는다.[7] 지금 현실은 불공평하다. 미국인들은 팔루자 등지에서 착한 이라크인들을 죽인다. (중략) 난 이라크인들이 좋다. 이라크인들은 매우 친절하다. (중략) 바그다드에서는 나에게 구걸하는 이라크인들에게 돈을 주기도 했다. 나는 이라크인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알고 싶다. 내 생각에 그들은 전쟁 때문에 가난해졌다. (중략) 이라크 말도 배웠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다. 안녕하세요?[8]
미군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그가 동맹국인 미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은 진심이 아닌, 어디까지나 납치된 자신의 안전을 위해 한 발언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있으나, 김선일이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 미군의 만행을 언급하며 미군을 비판한 내용이 있었던 것을 보면, 완전한 거짓말을 지어내어 말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9]
<테러 단체의 철수 요구 및 협박 동영상 중>[10][11]

Korean soldiers! Please, get out of here, here, here..!
한국 군인들이여! 제발, 여기를 떠나세요! 떠나세요, 떠나세요…

I don't want to die! I don't want to die!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I don't want to live![12]
저는 살고 싶습니다!

Your life is important, but, and my life is important!
당신의 삶은 소중하지만, 내 삶도 소중합니다!

김선일이 한국군에게 철수를 권유하는 이 절규 이후 테러단체는 24시간 안에 한국군과 가나무역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4.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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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선일 참수.jpg
참수당하기 바로 직전의 김선일 (열람주의)
<테러단체의 인질 참수 및 협박 영상 중>

To president Roh Moo-hyun!
노무현 대통령님!

I want to live!
저는 살고 싶습니다!

I want to go to Korea!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Please! Don't send to Iraq Korean soldiers!
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마십시오!

Please! This is your mistake! This is your mistake!
제발! 이건 대통령님의 실수입니다! 실수입니다!

Many Korean people don't like that to send Iraq!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 군인(자이툰 부대)을 이라크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And, all Korean soldiers must out of Iraq!
모든 군인들이 이라크에서 나가야만 합니다!

Please! Please! This is your mistake!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건 대통령의 실수입니다!

Why do you send, Why do you send Korean soldiers to Iraq!
대통령께선 왜, 대통령께서는 왜 한국 군인들을 이라크에 보내십니까!

To my all people! All Korean people! Please support me!
여러분! 동포 여러분!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Please president! Please Bush! To president Roh Moo-Hyun!
부디 대통령님! 부탁합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

Please! I want to live! I want to go to Korea!
부탁합니다! 살고 싶습니다! 다시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김선일이 절규에 가까운 이 유언[13]을 마치고 화면이 바뀌어[14][15] 뒤에 서 있던 유일신과 성전 대원들은 자신들의 일방적인 성명을 발표하고,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칼로 그의 목을 옆부터 베어 참살하였으며, 자른 목은 몸에 올려놓았다. 이후 그의 시신은 2004년 6월 22일, 팔루자 인근 도로변에서 순찰 중이던 미군에게 발견되었다.

테러범들은 고인의 사체에 부비트랩을 장착하여 이를 수습하는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2차 폭탄 테러를 기도하였으나, 작동되진 않았다.[16] 사후 부검 결과에 의하면, 살해 직전 고문이나 외상의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17]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는 김선일을 참살할 당시, 그에게 오렌지색 죄수복과 눈가리개를 착용 시켰는데, 다른 국가의 인질들이 참수 될 때는 김선일과 똑같이 안대를 쓴 채로 참살 당한 유진 암스트롱과 잭 헨슬리가 있으며 미국인 닉 버그 혹은 영국인 케네스 비글리, 불가리아인 게오르기 라조프처럼 안대를 씌우지 않고 오렌지 색 옷만 입히거나, 아예 일본인 코다 쇼세이처럼 사복 차림으로 죽은 인질도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눈가리개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는 불명이다. 아마도 인질의 저항을 막거나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팔루자에서 버려진 시신 발견 당시의 사진을 보면 안대가 벗겨져 있었다.

4.1. 사후

파일:1205044635669419.jpg
당연히 유족들은 애통해했다. 사망 소식이 속보로 뜨자, 가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 통곡하며 울다가 쓰러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뉴스로 방영되기도 했다.[18] 가족 뿐 아니라 이웃들도 크게 슬퍼하고 분노해서,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 하루 전 김선일의 가족들이 간절함을 담아 집 담벼락에 걸어놓았던, 아랍어로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한국은 중동의 평화를 사랑합니다. 모든 한국인은 당신들의 친구입니다" 라고 쓰여진 호소문 플래카드와 이라크 국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19]

6월 26일, 김선일의 시신은 수습되어 고향으로 보내졌으며, 장례식은 6월 30일에 사직실내체육관에서 많은 추모객들이 보는 앞에 고인의 종교인 기독교식으로 진행되었다. 몇 년 후, 닉 버그의 아버지와 김선일의 아버지가 같이 만나 서로 악수를 하고, 같은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의 슬픔을 나누며 위로하는 장면이 뉴스에 방송되어 나오기도 했다.

김선일의 아버지와 누나 등 유족 4명은 2004년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7년 '김선일의 피살 과정에서 국가의 과실 또는 불법 행위는 없었다'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기사

이 때, 사건 6개월 전인 2003년 12월에 남극 세종기지에서 비상 상륙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가 사망한 전재규와 처우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고 개신교 측과 유족 측에서 반발에 나섰다. 전재규는 훈장이 추서되었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특별 위로금까지 지급된 데 반해서, 김선일은 그런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전재규는 국가에서 연구목적으로 공식적으로 파견한 연구원이었고, 다른 대원을 구출하러 갔다가 안타깝게 순직했으며, 김선일은 이라크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방문했다가 살해당한 것이니, 이를 동일한 선상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니 되레 역풍을 맞아 비난만 받았다. 결국 김선일의 유족도 그 점을 인정하여 국립 묘지 안장은 포기했다. 전술했듯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유일신과 성전 테러 단체는 그의 죽음이 담겨진 참수 장면비디오로 촬영하였다. 일부 이슬람권 웹사이트가 이 영상을 공개하여 닉 버그 때처럼 오그리쉬 닷컴 등 미국 일부 사이트를 통해 참수 장면이 담긴 무삭제 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으로 유포돼 문제가 됐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해당 영상에 대해 모니터링을 풀가동시켜 사이트 접속 차단조치를 내렸고, 포털사이트 업체들도 게시판을 단속하며 '참수'나 '피살', 'Beheading' 같은 단어까지 금칙어로 지정했다. 경찰 역시 해당 영상을 유포하거나 게시할 시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사법처리하겠다고 했다(참고 기사). 해당 영상을 입수한 지상파 방송사들도 김선일의 직접적인 유언 육성과 살해 장면은 방송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경로로 참수 영상을 본 사람들이 꽤 있었고, 네이버 6월 21일인기검색어에 '이라크참수동영상'이 7위로 뜨자 파문이 일었다. 또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엽기'라는 키워드가 뜰만큼, 인터넷 문화 초창기의 물살을 타고 자극적인 컨텐츠들의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였기도 했던지라 단순 호기심에 찾아보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인터넷 상에선 추모와 성토 분위기 일색이었다. 사망 전까지 전 세계에 김선일 무사귀환을 호소하던 네티즌들이 긴급 추모 촛불집회를 계획했고, 인터넷 게시글이나 메신저 등지에선 추모글이 넘쳐났으며, 추모 카페들도 속속 개설됐다. 반면 청와대정부기관 사이트에선 피랍 당시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항의하는 네티즌들 때문에 접속이 마비됐다. 프리챌은 사이트 로고까지 검은 리본 및 흑백으로 칠했고, 하나로드림의 하나포스닷컴도 흑백으로 된 추모사이트를 열었다. SK커뮤니케이션즈의 미니홈피 포털사이트 '싸이월드'에선 커버스토리 답글 달기 등으로 애도 분위기와 이라크 국군파병 찬반논쟁을 확산시켰으며, 팝플 역시 유저들이 검은리본을 달았다. 사건 이틀 뒤에 엔아트박스닷컴[20][21]도 김선일 추모 플래시를 제작하였다. 플래시

온라인 게임상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정치/경제 MMORPG 게임 '군주 온라인'은 피살 후 검은 리본과 국화꽃이 그려진 꼼지[22] 스킨을 만들고, 유저들이 가상으로 추모 집회를 열어 각 서버의 군주(운영자)들이 회의를 열어 애도 및 전쟁 중단을 결의했다. 씰 온라인도 자유게시판과 포럼에 추모글이 쏟아졌으며, 게임 내에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아이템 '검은 리본'을 추가했다(참고1, 참고2).

그가 사망하고 난 이후, 개신교 측에선 매년 추모도 이뤄주고, 이후 꽤 오랫동안 대중 매체 속에서 그를 노출 시켰다. 당시 대중들의 여론 중에서 일부는 "이왕 죽을 거면 마지막까지도 전도하는 순교자의 모습을 확연하게 보이고 죽어야지, 왜 계속 공포에 벌벌 떠는 모습만 보여주면서 추하게 죽었느냐"며 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자들의 경우도 꽤 있었다.[23][24] 그의 마지막 유언이자 모습은 순교[25]의 모습이라기 보단 살고싶어 하는 비명으로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결국에는 그를 순교자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인 듯 하다. 왜냐하면 그가 이라크에 간 목적의 이유가 궁극적으로 선교사로서의 뜻이 있었다는 점이 주 된 이유이다. 즉 순교자의 의미를 확장했다고 보면 된다. 묘비에도 '김선일 순교자의 묘'라고 적혀있다. 자세한 것은 링크된 의견들과 사후 공개된 이력서, 김우현 감독의 <팔복> 中 애통하는 자를 참고.[26]

그런데 정신 못 차리고, 그의 순교를 헛되게 할 수 없다며 이라크로 더 가야 한다고 주장을 내세우는 선교사들도 있었다(...). 아랍 정보통 목사 김동문은 2004년 초반에 이라크 선교사 파견을 촉구하는 국민일보 기사를 비난한 적이 있는데, "지금 여긴 현지 기독교인들도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데 죽으려고 오는 거냐, 그러다가 한국인 끔살당한다." 라는 글을 썼는데, 정말로 마치 예언인 것처럼 썼다. 그리고 몇 달 안 가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자국민이 피살당했으니 충격적이게 느껴질진 몰라도, 당시 이라크에선 전쟁으로 인해 여러 종파 기독교인은 물론, 무슬림들도 별의별 이유로 참수하는 일이 자주 벌어져서, 이라크인들은 이 사건을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사건이 벌어지자 김동문은 "결국, 내가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그런데도, 뭐? 김선일 희생을 잊지 말자? 한국 개신교계는 여전히 묻지마 아랍 선교를 외친다. 한심한 짓이며 그건 헛된 죽음이자, 나아가 현지에서 개신교에 대한 반감만 가져올 뿐이다. 그냥 다 같이 김선일 씨 명복부터 빌자." 라고 하며, 애도하는 자세만 취하였다.

여담으로, 2010년 11월에도 이라크 내 시리아 정교회까지 테러 공격을 받고, 지금도 이라크는 기독교인들의 헬게이트가 열려있다. 그나마 '아랍 토속 기독교'라고 다른 기독교보단 훨씬 인식이 좋은 '시리아 정교회'도 저 모양인데, 한국 개신교가 가면 당연히 비극이 되풀이될 뿐이다.

당시 민주노총 소속이던 LG정유 노조는 조선대에서 파업 도중 그의 사망 당시 모습을 패러디하는 퍼포먼스(일명 허동수 사건)를 했다가 욕을 먹었다.기사 서울 강동구의 모 중학교에서도 김선일 참수 모습을 패러디한 사진이 나왔다고.

한편, 이 와중에 김선일 사망만 부각된다고 여러 말도 많았다. 이를테면, 이 사건보다 먼저 일어난 이라크 파견 오무전기 직원 피살사건[27]으로 희생된 한국인 직원들 보상 및 언론의 관심이 너무나도 조용하던 것과 비교된다는 비난이 터져나왔고, 심지어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참수리 357호 참전장병 유족들도 이 사건을 거론하면서 전사 장병보다도 김선일만 부각된다고 한탄한 적도 있다.

한국 내 이슬람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면서 "무슬림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폭력과 살인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저들은 알라의 가르침을 제대로 어기고 있다, 왜 애꿎은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냐?!"라고 반발했으며[28] 이태원동에 있는 이슬람 사원은 혹시라도 있을 폭력 사태를 우려하여 경찰이 배치되기도 했다.[29] 그러나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들이 대다수이며, 세계 언론에서도 김선일을 깊이 애도하였다. 대부분 김선일을 살해한 무장 단체를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2004년 6월 26일, 일본에서도 도쿄도의 신주쿠역 히가시카와구치역 앞 광장에서 그의 추모식이 행해졌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그닥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같은 해 일본인미국인, 영국인도 이라크에서 참살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닉 버그코다 쇼세이 이라크 피살 사건케네스 비글리 피살 사건 문서를 참고.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던 논객 진중권은 김선일 대신 노무현 정권유시민 장관 등이 대신 납치되었어야 한다고 규탄하며, 결론적으로 이라크 파병과 참여 정부 옹호 세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기사 이런 글도 있다.

당시 피를 마시는 새 연재 중이었던 이영도는 후기를 통해 계속 김선일의 무사귀환을 기원했으며, 김선일이 사망이 확인된 후인 6월 23일에 올라간 피마새 21장 4편의 후기에서 "You damn murderer, George Bush. 챕터 끝났습니다. 좋은 밤 되긴 어렵겠군요."라고 상당한 분노를 토로했다. 대개 유머러스한 후기를 남기던 이영도의 후기 중에서는 이례적일 정도의 격한 감정 토로였다.

훗날 진중권개싸움을 벌인 황장수는 당시 이라크에 있어서 이 사건의 뒷수습을 했다. 기사1 기사2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이 피살 사건을 영화 평론하듯이 해설하기도 했다. 씨네21

2017년에 김선일의 시신 수습과 운구를 도왔던 국방무관 출신의 예비역 장교가 우울증 등을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등록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기사

김선일씨가 피살된 이후 감사원은 특별조사단을 개설하여 김선일씨 피살에 대하여 조사하기 위해 문태곤 조사단장을 필두로 외교통상부와 이라크현지에서 조사를 진행하였다.https://m.sedaily.com/NewsViewAmp/1HOAYGQ13D

본인이 김선일 참수의 계획과 지시에 앞장선 '오마르 하디드'라고 주장한 유일신과 성전 지휘관이 한국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인터뷰 내용에서 그는 김선일의 종교 활동보다는 미군 협조 활동이 그의 납치와 살해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인터뷰를 진행한 인물이 실제로 오마르 하디드인지의 여부와 인터뷰 진위 내용은 확인 불가하나, 정황상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며, 오마르 하디드라는 인물이 12월 팔루자 전투에서 미군에게 살해되기 전까지 알 자르카위 다음가는 2인자 인물로서 유일신과 성전을 이끌어온 거물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30]
2005년 12월 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견 연장 동의안 표결이 있을 예정이다. 김선일씨가 2004년 6월22일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당한지 1년 6개월 만이고, 자이툰부대를 최초 파병한 지 1년 4개월 만이다.

<코리아포커스>는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고 김선일씨 납치 살해 주범인 오마르 하디드의 인터뷰 동영상을 최초 공개한다. 이 동영상은 프론트라인뉴스서비스(FNS)(대표 강경란)가 지난해 9월 초 입수,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김선일씨 납치 살해 사건이 발생한지 1주기가 훌쩍 지났지만 한국은 아직도 미국과 영국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국가다.

명분없는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던 미국과 그 충실한 우방으로 세계의 비난을 받았던 영국에서도 이라크 철군 계획이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지금, 한국 정부는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군이 아닌 파병 재연장을 꾀하고 있다. 이는 무력을 앞세운 미국의 일방적 외교정책에 동조해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침략전쟁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헌법을 거스르는 일이며 자국민을 중대한 위협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김선일씨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이라크 등 위험 지역에 한국인의 입국 자체를 불허하는 방침을 자국민 보호책으로 내놓았다.

<코리아포커스>는 이번 동영상 공개를 통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문제와 한국 정부의 자국민 보호정책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라크 파병에 관해 한국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

우리는 이미 한국의 미디어와 한국 TV를 통해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에 메시지를 보낸 바 있지만 그들은 그 메시지를 방영하지 않았다. 이제 내가 직접 한국정부와 한국 대통령에게 내 메시지를 보낸다. 미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도구가 되지 말기를 한국인들에게 조언한다.

절실한 필요에서 비롯되지 않은 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며, 미국이 빠져든 것과 같은 수렁에 빠지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미국은 모든 동맹국들을 자신이 빠져있는 수렁에 밀어 넣고 있다. 한국 대통령은 자국민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며, 이라크 파병은 한국 군대와 국민들을 죽이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라크 파병은 한국과 이라크 두 국민을 갈라놓게 될 것이다. 이라크는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외국군이 이 나라에 주둔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

우리는 무슬림이고 이전에 우리 무슬림들이 살아왔던 것처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는 점을 한국 국민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웃 국가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점령당한다면 한국인들은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투쟁했을 것임을 한국민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한국 정부가 어떠한 병력도 이라크에 보내지 않도록 계속 압력을 넣기를 한국 국민들에게 부탁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한국인들을 미국인과 똑같이 취급해 납치하고 죽이고 다치게 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이라크인들과 맞서 싸우는데 이용될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점령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며 우리는 이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과 함께 이라크에 오는 자들과 맞서 싸울 것이다

문1) 납치 대상이 왜 김선일씨였나? 의도적인 것이었나?

“김(선일)에 대해 말하자면… 김이 팔루자 근처 기지에 있는 미군 지휘본부를 떠난 뒤 그를 납치했다. 김이 미군 기지를 드나들었다는 것은 그가 직간접적으로 미국에 협조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은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한 카드였다. 우리는 김선일을 납치함으로써 이라크에서 한국군을 철수시키라는 동일한 요구를 한국정부에 전달하고자 했다. 우리는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TV를 통해 밝혀달라는 김선일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보냈지만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인들 역시 김선일을 구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한국 정부, 그리고 이라크에 파병한 다른 나라에 요구한 협상을 위해 TV, 위성채널, 한국 정부로 보내진 테이프에서 김선일은 가나와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호소했지만 그들은 우리의 요구를 거절했고, 그래서 김선일을 죽였다.”

문2) 그를 납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선일을 납치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을 돕고 이라크에 추가파병을 하고 이라크를 점령하는 국가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김은 역시 미군의 협조자였다. 그가 소속된 회사가 그를 미군기지로 보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의논한 것이 그 증거다. 그는 미군과 연결을 갖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그를 납치할만한 충분한 이유였다.”

문3) 당신들의 요구는 무엇이었나.

“우리가 김선일을 납치했을 때 한국 정부에 이라크에서 철군할 의사가 있으며 48시간 이내에 철군을 시작할 것이라고 위성채널을 통해 발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모두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와 벌였던 교섭을 한국 국민과 언론에 숨겼다. 그들이 한국인들에게 진실을 숨겼기 때문에 우리가 보낸 메시지는 파병 철회를 위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데 쓰이지 못했다.”

문4) 당신들과 한국 정부, 또는 가나무역 사이에 어떤 협상이 있었나.

“그렇다. 우리는 가나무역에 공식적으로 대표단을 보내 이라크를 떠날 것과 미군과의 거래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우리는 가나무역을 통해 한국 정부와도 이라크 철군에 관해 협상했다. 하지만 그들은 요구를 거절했고 김은 참수당하는 운명이 됐다.”

문5) 한국 정부와 가나무역은 협상에서 어떤 입장이었는가.

“우리와 정부 간에 협상자는 없었다. 우리는 단지 우리를 대표할 사람을 골라 협상에 임하도록 했지만 우리가 한국 정부에 알린 것 외의 다른 어떤 요구도 없었다.”

문6) APTN 테이프와 알자지라 테이프에서 나타난 요구사항에 차이가 있다. 이유가 뭔가?

“우리의 요구는 알자지라를 통해 밝힌 한가지뿐이었다. 다른 요구사항은 없었다. 그것은 합법적인 요구사항이다. 우리는 이전에도 그런 요구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한국 정부가 군대를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는 한 비록 민간 기업이라 할지라도 같은 방식으로 취급할 것이다.”

문7) 당신들은 왜 알자지라에 방영된 테이프에서 한국 정부에 이라크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나?

“우리는 한국 정부에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해왔지만 그들은 거부했다. 한국 국민이 그들의 정부에 봉사하는 TV를 통해 어떤 허위 테이프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요구는 알자지라를 통해 발표된 한가지이다.”

문8) 왜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김을 참수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협상을 완료했고, 김선일은 보통 시민일 뿐이며 정부는 그를 위해 정책을 변경할 수 없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그의 목숨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으며 그를 위해 철군할 만큼 그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것이 김선일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 다음은 TV에서 본 바와 같다.”

문9) 유일신과 성전이 김선일씨를 납치하고 참수한 그룹인가.

“유일신과 성전이 김선일을 납치했고 한국 정부가 이라크 철군을 받아들이지 않은 뒤 그를 참수했다.”

문10)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가나무역은 김선일씨를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다고 보는가.

“한국 정부나 가나무역은 인질인 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를테면 유일신과 성전 그룹에 김선일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그의 납치에 관한 조건에 응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 정부와 회사가 김선일 구명에 관심이 없다고 여겨 그를 죽였다.”

문11)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한국 정부에 가능한 한 빨리 철군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한국 국민이 이라크에서 저항과 성전의 진실을 이해하기를 요청한다. 우리의 저항은 미국에 점령된 나라에서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것이다. 한국 국민은 미국이 이라크 내의 모든 미군을 철수하고 한국 정부 또한 이라크에서 군대를 철수할 때까지 미군에 협력하는 모든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

문12) 알자지라 방송이 나가기 전에 미국 측이 김선일씨 납치에 대해 알고 있었나?

“그렇다. 우리는 (납치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고 인질 석방을 종용하기기 위한 협상 테이프를 미군에게 보냈다, 그러나 미국은 철군을 막기 위해 한국에 강한 압력을 넣었다.”

문13) 미국 측이 김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김씨를 인질로 잡은 납치범들과는 타협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한국 정부나 가나무역 역시 분명히 미국이 김씨를 살리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문14) 한국 정부에 당신들이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우리의 요구를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우리의 요구는 단 한가지며 합법적인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모든 한국군을 이라크에서 즉시 철수시키고, 평화유지군이든 다국적군이든 어떤 명분으로도 이곳에 군대를 주둔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름들을 믿지 않으며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이 나라가 점령당했다는 것이다.”

문15) 납치가 당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

“납치는 저항이나 지하드의 한 측면일 뿐이다. 비무장한 사람들(이라크 국민들)은 그들을 치려고 들어온 엄청난 군대와 상대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그 군대를 공격하고 그들이 이 나라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납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며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정부라면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해서는 안된다.”

문16) 당신은 알 자르카위 그룹에 속해 있는가.

“유일신과 성전은 아주 잘 알려진 집단이며, 수장은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이다. 우리는 이슬람을 위해, 유일한 알라와 모하메드를 위해 싸우는 이 집단에 속해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문17) 당신들이 싸우는 목적은 무엇인가.

“점령 하에 놓인 국가가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슬람 조직인 우리는 유일신 알라와 그의 전령 모하메드를 위해 싸우며, 아랍국이든 다른 나라든 상관없이 이슬람과 이슬람 국가의 해방을 위해 싸운다. 또한 우리는 기독교도들이 전도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선교하는 것처럼 이슬람을 세계에 퍼뜨리기 위해 싸운다. 우리는 이슬람을 전도할 권리가 있다. 신의 도움으로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문18) 이라크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이라크의 미래는 이라크인의 손에 달려있다. 그들만이 이라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무슬림으로서 나는 이라크의 미래가 평화와 형제애, 선의, 인류의 협력 등에 기초해 건설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라크가 알라의 뜻에 따라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모든 이슬람군대의 기지가 되길 바란다.”

이상은 아랍어로 진행된 인터뷰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고 김선일씨 납치·살해 사건 일지]
2004. 5. 31 이라크 팔루자 인근에서 피랍
2004. 6. 3 APTN 바그다드 지국, 13분 짜리 김선일씨 동영상 테이프 입수. AP 서울지국 기자 3명, 외교통상부 정우진 사무관에게 이라크 거주 한국인 납치 사실 문의
2004. 6. 10 김천호 가나무역 사장, 원청업체인 미군복지지원단(AAFES)에 김선일씨 억류 가능성 문의
2004. 6. 11~17 김천호 사장, 이라크인 변호사 이맘을 내세워 납치단체와 협상 시도
2004. 6. 18 한국 정부, 이라크 추가 파병 공식 발표
2004. 6. 20 김천호 사장 모술행(이유는 밝혀지지 않음)
2004. 6. 21 오전 4시(한국시간) 알자지라 방송 김선일씨 피랍 사실 보도. 알 자르카위 관련 단체, 24시간 내 한국군 파병 철회 요구하며 살해 위협
2004. 6. 21 오전 10시(한국시간) 최영진 외교부 차관 “파병 원칙 변함없다” 발표
2004. 6. 21 사설 경호업체 NKTS 최승갑 사장과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이 이라크인 동업자 모하메드 알-오베이디에게 김선일씨 소재 파악 요청-->모하메드 알-오베이디가 “도움 주겠다”는 답변 얻었다고 전함
2004. 6. 22 오후 6시(한국시간) 알 아라비야TV, 한국인 억류 납치범 요구시한 연장 보도
2004. 6. 22 오후 10시20분(한국시간)께 바그다드 인근 팔루자 방향 35km지역에서 시신 발견
2004. 6. 23 알자지라 방송, 김씨 참수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방영
2004. 6. 24 APTN, 6월5일 입수했던 김선일씨 테이프를 5분가량으로 편집해서 공개

5. 범인 성명

이들은 김선일을 납치했을 때, 동영상을 통해서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에 이라크에 있는 한국군의 철군과 추가 파병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는 위협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김선일을 살해한 유일신과 성전의 지도자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이며, 그는 2년 뒤 미군에게 사살되었다.
<납치 당시 성명[31][32]>

남한 정부와 그 국민들에게 우리의 성명을 보낸다. 먼저 우리는 우리 땅에서 너희 남한 군대를 즉각 철군시키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 땅으로의 너희 군대의 추가 파병을 즉각 철회하라. 너희가 우리 요구에 따르지 않는다면 가장 높으시고 전능하신 알라의 뜻으로 여기 있는 한국인의 머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며 또한 우리 땅을 침략한 한국군 병사들도 모조리 목을 잘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우리는 너희에게 오늘 6월 20일 밤을 기준으로 우리 요구에 응할 24시간의 시간을 준다.[33]
<참수 직전 성명[34]>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자비로우신 알라께 찬미를 바치며, 선지자에게는 축복과 평화가 있기를, 유일신과 성전에서 남한[35] 국민들에게 우리의 성명을 보낸다. 우리는 너희들에게 경고했으나 너희들은 미국에 영합하기 위해 우리 경고를 무시했다. 우리는 너희들에게 이전에 이미 경고했으니 오늘날의 결과는 너희들의 손이 저지른 것이니라. 선지자의 추종자들이 "이교도들을 살육하라" 이르렀던 것처럼 우리는 너희 이교도들에게 이슬람은 언제나 이교도들에게 맞설 것임을 알리니라.

거짓말과 기만을 멈추라.[36][37] 너희 남한 군대는 이라크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주받을 미국을 위해 이라크에 온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사악한 미국을 돕는 모든 인간들을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전부 목을 잘라 그 머리들을 너희 이교도들에게 보낼 것이니, 그 각오를 해두어라.

김선일이 살해된 이후, 한국인들도 격앙되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군대를 보내 저 테러 집단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어차피 한국군이 전투하러 간 건 아니었지만.

6. 가해자 처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한국인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위해를 가했기 때문. 또한 소말리아 해적 출신으로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선장 석해균에게 총격을 가했다가 살인 미수로 기소된 모하메드 아라이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음을 고려하면, 이 사건의 범인들은 일반 가담자건 주동자건 관계없이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제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이라크 알 카에다 조직원이라는 사실과 목소리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히 '누가' 김선일 씨를 납치, 고문, 살해했는지는 알 수가 없기 때문. 그나마 조직의 수장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정도가 외부에 드러나긴 했지만, 그는 2006년 경 미군 폭격으로 죽어버렸으므로 더 이상 처벌이 불가능하다.

일단 검찰은 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한 뒤,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기소중지 처분한 상태이다. 물론 2015년 살인 사건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인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김선일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공소시효도 사라졌다. 다만 살인범의 신원은 커녕 얼굴조차 알아내지 못한데다가 20년이란 세월이 흘러 그 목소리조차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당시 유일신과 성전은 미군과 계속해서 교전 중이었고,[38] 미군이 유일신과 성전의 본거지인 팔루자에 대규모 공습을 여러 차례 가하면서 다수의 조직원이 사망했는데, 그 과정에서 김선일 납치와 살해를 직접 지시하고 계획했던 오마르 하디드라는 이름의 지휘관도 2004년 12월 23일 미군 공격으로 사망했으며, 알 자르카위, 아유브 알 마스리[39], 아부 오마르 알 바그다디 등 다른 유일신과 성전의 지휘관급 인물[40]도 모두 사망했기에, 김선일의 살해범들도 미군의 공격으로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라크 정부는 통치권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경고의 의미에서 인질 참수에 가담한 자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확인되는 족족 법정에 넘겨 사형에 처했는데, 김선일 살해에 가담했으나,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라크인 또는 다른 외국인에 대한 인질 살해죄로 이 때 사형을 당했다든지, 연합군에게 사살을 당하거나, 혹은 자살 폭탄 요원으로 소비되어 이미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 가능성이 굉장히 높으며, 사건이 20년이라는 시간과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생존해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피의자의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될 것이다.[41]

7. 그 외



[1] 실제로는 위험도 5~6에 위치해 있을만큼 매우 잔혹하다. 옛날에 3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이유로 영상을 시청하지는 말 것.[2] 다만 단순 무장 강도단이 아닌 유일신과 성전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무장단체는 이라크인이나 같은 아랍인, 무슬림이더라도 미군에게 협조한 사실이 분명했을 경우 배신자나 배교자로 간주하고 본보기로 참살하였다고 한다.[3] 예를 들어 다른 아시아 국가의 경우 테러 단체의 철군 요구를 받아들인 필리핀 정부는 인질 안젤로 크루즈를 살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4] 안그래도 당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좋지 못한 편이었기에 미국이 어떤 응수를 할지 예상할 수 없었기도 했다. 만약 그것이 확률은 적겠지만, 주한미군 철수나 경제적 보복이면, 한국이 당해낼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5] 해당 단체가 유일신과 성전이었는지 아니면 단순 무장 강도단이었는지는 현재까지 불명이다. 유일신과 성전은 공식적으로 그들이 김선일을 납치하고 살해했다고 밝혔으나 해당 영상이 아래의 협박 영상과는 다르게 매우 엉성하다는 점에서 아니라고 볼 정황도 충분하므로 진실은 알 수가 없다.[6] 한국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생전 카페에 올렸던 30문 30답에 따르면 8번째 질문에 고등학생 2명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고 적혀져 있다.[7] 전술한 대로 미군 군속은 이라크에서 미군과 별 다를 바 없이 위험하다. 김선일 씨가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엔 미군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참상이 언급된 바 있다.[8] 영상에서는 아랍어로 말했다.[9] 팻 틸먼같이 미군 자원입대한 사람들이 이라크전을 비판하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공과 사는 별개이기도 하고.[10] 편집 이유는 불명이나, 알 자지라 방송은 김선일의 구명 호소 발언 장면 전체를 내보내지 않고 일부 편집하였다. 편집된 장면으로는 김선일이 서둘러 조치를 취해달라고 촉구하는 내용과 ("Please, Please hurry.") 왜 한국 군인들을 이라크에 보내느냐고 묻고, 한국 국민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절규하고, 죽고 싶지 않다고 연이어 외치는 등 참수 직전 유언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의 절규를 했다. 이를 통해 추측 가능한 것은 김선일의 구명 호소 발언과 살해 직전 유언이 김선일 본인이 자의로 한 말 보다는, 테러 단체가 강요한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일신과 성전은 이후에도 인질들을 살해할 때 그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대본을 인질들이 읽도록 강요했다는 분석도 있다.[11] 구명 호소 육성뿐만 아니라 알 자지라는 김선일의 살해 직전 장면에서의 육성을 음소거 처리하고 영상만 내보냈다.[12] 발음은 이렇지만 문맥상 '살고 싶다'로 해석하는 것이 맞으며, 두려운 긴장감과 극도의 공포로 인해서 말이 헛 나왔거나 I'd want~를 의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3] 문제의 유언에는 김선일의 개인사는 일절 포함되어 있지 않고, 당초에 언급된 한국군의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만 담겨 있어, 유일신과 성전이 해당 내용을 강요했다는 정황이 매우 짙기에, 이것을 '개인의 유언'으로 봐야 할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14] 유언 당시엔 그의 뒤에 세 명이 서 있다가 테러 단체가 자신들의 성명을 발표할 땐 화면이 바뀌어, 위의 사진처럼 다섯 명이 되었다. 그리고 절규하던 김선일은 성명문이 낭독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부동 자세로 있는데, 이는 바로 몇분 전 절박하게 절규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그가 살해 직전 인사불성 상태가 되었거나 체념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15] 또는 ISIS가 그랬듯이, 유일신과 성전이 김선일에게 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말로 안심시키고, 미리 저항을 차단했을 가능성도 있다.[16] 국가정보원 최근 테러의 대상·수법·수단 분석, 2005. 9.[17] 이를 통해, 유일신과 성전이 물리적이나 신체적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고문 수단으로 김선일을 겁박했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수단을 통해 그를 협박했는지는 불명이다.[18] 그러나 사실 이는 유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울부짖으며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가만히 놔두면서 그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지,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그들을 슬픈 감정을 가진 인간이 아닌 '기삿거리'나 '찍기 좋은 그림' 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큰 실례이다. 허나 이 당시에는 이러한 보도 윤리가 그리 크게 고려되지 않을 때였다. 10년 후,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기레기 문제로 상당히 큰 논란이 발생하고 나서야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19] SBS 보도, 서울신문 보도, 당시 KBS 보도.[20] 아트박스에서 분사된 회사이다.[21] 2004년 6월에 제작된 것이며, 현재는 사이트가 폐쇄돼서 원링크는 사라졌지만, Wayback Machine 탐색 결과로 겨우 찾아낸 것이다.[22] 게임 내 미니홈피와 같은 역할. 현재는 서비스 종료.[23] 다른 국가들의 인질이었던 일본인 코다 쇼세이와 미국인 닉 버그, 유진 암스트롱, 잭 헨슬리, 폴 존슨, 대니얼 펄, 영국인 케네스 비글리, 아일랜드인 마가렛 하산, 터키인 두르무스 쿰데렐리, 무라트 유스, 불가리아인 게오르기 라조프 등을 비롯한 외국인 인질들의 경우에는 본인들이 스스로 모두 다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들은 살해 당하기 직전에도 비교 적 매우 침착한 태도로 유언을 발언하였다. 김선일은 그들과는 달리 죽기 직전까지도 통곡을 하면서 절규를 외치는 모습이 심각하게 부각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유언은 김선일이 자의로 발언한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며, 테러범들한테 감시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강요한 내용을 그대로 외쳤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해 영국인 인질이었던 케네스 비글리와 아일랜드인 인질 마가렛 하산 그들도 역시, 살해 직전 눈물로 절규하며 죽고 싶지 않다고 구명을 호소한 바가 있으며, 특히 비글리는 살해 직전 토니 블레어 총리를 저격하며, "그는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거짓말을 했다." 라고 직접적으로 영국 정부와 총리를 원망하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또한 자신의 개인사를 고국의 가족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서 자신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메세지로 전달해 알리고자 했다. 비록 비글리 역시 본인의 선택으로 이라크에 근무하러 간 것이기에 그에 따르는 책임도 가져야 했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김선일 만이 다른 국가들의 인질로서 담담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자신의 책임을 한국 정부 탓으로 돌렸다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어폐가 있을 것이다.[24] 이 당시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도 김선일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예수는 전도하고 죽었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8345[25] 그를 순교자로 봐야 될 지는 그 당시 교계 내부에서도 여러 사람들의 의견으로 논쟁이 갈라지곤 했다.[26] 영상 버전: #[27] 2003년 11월 30일에 이라크 전기 관련 공사 파견 업체 오무전기 직원 김만수·곽경해가 총에 맞아 숨진 참극이다. 하지만 오무전기는 영세기업이라 보상금도 제대로 못 주었고, 고용 업체인 미국 웨스팅하우스, 워싱턴 인터내셔널 사는 외면하고, 산재 보험도 거절당했다. 결국 유족들이 법정 투쟁을 벌여, 2006년에 와서야 미 법원 승소를 거두면서 미국 고용 업체들에게 보상금을 받았다. 이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직원 이상민은 이후 인터뷰를 통하여 김선일 사건을 거론하면서 "일부 교회들의 보상 관련 시위도 있던 김선일과 달리 오무전기 두 사람 이름은 잊혀지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참고로 오무전기는 그 뒤로 모든 비난을 다 뒤집어썼고(여기도 잘못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영세기업으로 일개 용역이었고, 법정 소송 중에 밝혀진 조사에 의하면,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정말로 보상금을 줄 여력이 아예 되지 못했다), 결국 사장은 홧병으로 쓰러져 몇 해 못 가 사망했다. 결국 사장의 부인이 사업을 이어나가게 되었다.#[28] 이슬람 사원 부근에서 인터뷰에 응한 무슬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집트 출신의 한 무슬림은 "아마도 미국인을 죽인 줄 알았는데, 왜 한국인을 (죽였는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내저었을 정도. 당시 보도 내용[29] 이때 당시의 국내 거주 아랍인들이 자주 다니던 이태원 일대에서는 아랍인들의 발길이 한시적으로 뚝 끊어지기도 했다. 레바논에서 유학을 온 어느 아랍인의 증언을 들어보면, 흉흉한 분위기가 걱정되어 학교나 가게를 갈 때 말고는 외부 출입을 절대적으로 삼갔다고 한다.[30] 출처[31] 출신 지역이 불명인 이라크인 대원이 아랍어로 발표하였다.[32] 위협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참수 직전 성명을 읽은 대원과는 다르게, 성명문을 낭독할 때 몇몇 부분을 지나치게 빠르게 읽거나 음정이 흔들리는 등의 실수를 하는 등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33] 이라크 주둔 한국군의 철군, 추가 파병 계획 철회라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중대 정치적 요구를 한 개도 아니고 두 가지나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24시간을 시한으로 정했다는 것은 유일신과 성전이 당초부터 협상 의지가 없었고, 정치 선전의 목적으로 인질을 살해할 뜻을 품고 있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인질 조기 석방을 기대하던 한국 정부와 언론의 긍정적인 전망과는 달리, 이라크 현지와 미군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었으며, 결국 이후에 사실로 맞아 떨어졌다. 이에 반해, 2007년 샘물 교회 선교단을 인질로 잡았던 탈레반은 비록 인질 2명을 처형하기는 했으나, 비교적 넉넉한 시한을 내걸었고, 조건을 계속해서 수정하며 협상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쳤으며, 한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시한을 연장하는 유동적인 모습도 보였다.[34] 역시 동영상을 통해 아랍어로 발표하였으며, 해당 성명은 팔루자 지역 또는 안바르 주의 토착민으로 추정되는 이라크인 대원이 분노와 위협에 찬 목소리로 낭독하였다.[35] 한국(كوريا)이 아닌 남한(كوريا الجنوبية)이라고 지칭하였다. 북한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남한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36] 한 박자 쉬고 해당 내용을 낭독한다. 성명문의 문단이 바뀌는 부분으로 추정된다. 아랍어 원문은 كفاكم كذبا ومخادعة이다.[37] 당시 노무현 정부는 김선일의 석방을 호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알 자지라를 포함한 아랍과 중동 지역 방송들에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전쟁 수행 지원이 아닌, 이라크 재건임을 강조하는 내용을 여러차례 내보냈으며, 아랍 언론들도 광범위하게 해당 내용을 보도했다. 유일신과 성전이 해당 사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그들 역시 해당 보도를 모종의 경로로 접하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재건이라는 목적을 미국을 돕기 위한 목적을 숨기려는 겉치레 그 이상으로 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38] 2004년 4월과 11월, 팔루자에서 이라크 무장단체와 미군과의 대규모 교전이 두 차례 있었다. 단, 11월 교전 때는 유일신과 성전의 수장 알 자르카위와 그의 추종자들은 목숨을 부지해 살아남아 저항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반감까지 강해지자 결국 빠져나갔다. 그의 2인자였던 오마르 하디드와 잔존한 유일신과 성전 조직원들과 인질참수를 방관하긴 했으나 가담하진 않은 반미성향의 일반 무장세력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갈 곳 없는 체첸계 용병들만 남아서 미군과 맞서 싸웠고, 이들 중 대다수는 전투 중 사망했다.[39] 이 인물 역시 유일신과 성전에서 알 자르카위 다음가는 인물이었으며, 알 자르카위가 사망한 뒤에 수장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김선일의 참수 영상에서도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위의 참수 직전 사진에서 가장 왼쪽에 위치한 자동소총을 든 체격이 큰 인물이다. 김선일 사건 이후에는 터키인 인질 무라트 이위제(Murat Yüce)를 직접 처형하고, 2006년에는 포로로 잡은 미 육군 병사 2명을 직접 참수하고 신체를 잔혹하게 훼손한 혐의를 받는 등 알 자르카위만큼이나 잔인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 역시 미군과 연합군의 집요한 추격을 받았고, 결국 2010년 연합군의 공격으로 티크리트에서 사살되었다.[40] 당시 테러단체의 비디오 촬영은 대부분 지휘관급 인물들이 맡아서 했다.[41] 이라크 법정에서 내려진 사형집행 건수는 이 시기 매년 100건이 넘어가는데, 일반 살인범도 없지 않았으나 대다수는 테러리스트나 납치살해범들이었다.[42] 김선일이 5월 31일에 피랍되었다.[43] 물론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큰 단체(본부) 밑에 있는 것은 맞으나, 그 하부 조직마다 약간 상이한 모양의 기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진 암스트롱과 잭 헨슬리를 참수한 단체는 김선일을 살해한 단체와 다른 하부 조직이다.[44] 무타왈리는 참수 직전 본인이 미군에게 도청 장치로 유일신과 성전의 기지 위치를 알려, 폭격으로 다수의 조직원이 몰살당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또한 미군이 강간할 이라크인 여성들을 납치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45] 그러나 일부 이라크인과 아랍인들은 유일신과 성전 같은 극단주의 세력을 미국에 맞서는 정당한 저항 세력으로 칭송하고, 미국이 이라크 무단 침공과 아부 그라이브 포로 학대 사건 등으로 먼저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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