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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3:02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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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지 I3. 일지 II4. 일지 III5. 일지 IV6. 일지 V7. 일지 VI8. 일지 VII9. 일지 VIII10. 일지 IX

1. 개요

이 지식 책은 데스티니 가디언즈/전시장, 슬픔의 왕관, 그리고 공물 전당에 숨겨진 병들을 찾아서 획득할 수 있다.

2. 일지 I

진정한 황제의 그림자 의원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항로를 바꾸지 못하는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선조들이 눈을 씻을 수 있도록 Y자 모양 잔에 담긴 물을 부었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모두 과거와 미래의 군주, 칼루스 황제께 바친다.

잃어버린 제국의 외곽을 지나쳤다. 리바이어던은 괴성을 내며 빠르게 비행하하다가도 어떤 날은 정처없이 부유한다. 산산조각이 난 운항 제어 장치는 아직 수리하지 못했고, 리바이어던의 건조를 명했던 황제는 정신 융합으로 아무런 지식도 알려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때 자신의 영토였던 곳을 벗어나자, 황제는 상황을 곰곰이 따져보는 모양이었다. 노발대발하지도 않고, 포도주를 쏟지도 않았다. 가울의 이름을 꺼내며 욕설을 퍼붓던 모습도 어언 1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황제의 생각이 새로운 형체와 색상을 띠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변화가 잘된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상대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주위에 펼쳐지는 기갑단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나는 눈시울을 적실 수밖에 없었다. 칼루스 치하에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은 이곳의 과학 신전을 방문하여, 기갑단의 영토와 그 너머에서 건너온 외계의 경이로운 문물을 보고 영감을 얻곤 했다. 이제 신전의 문은 굳게 닫혔다. 영감을 주던 유물은 간 데가 없고, 그 자리에는 흉측한 무기 생산 라인과 벙커 구조물만 남아 있었다. 분수대는 시커먼 연료를 내뿜고, 정원은 연기를 뱉는 굴뚝 아래 사라져 버렸다.

가울은 사람들의 정신조차 망가뜨리고 말았다. 기갑단이 우주 전역에 미치던 영향력을 단절하여, 사람들에게 투기장 전사처럼 자족할 것을 강요했다. 일개 병사들만 이해하는 무기. 전쟁망을 통해서만 오가는 언어. 아홉 번째 다리와 같은 불가사의를 건설했던 제국을 생각하니 비통하고, 기계 속의 톱니바퀴로 전락한 의존 종족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또한 비통했다.

그러나 내가 비통에 잠겼다면 나의 황제께서는 완전히 시들어버렸다. 기록 보관실과 관측실에 대한 관심마저도 잃어버리셨다. 당신을 괴롭히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도 사라졌다. 당신의 신성성마저 의심하고 계셨다. 정말 신이라면 어찌 이런 사태를 용납하겠는가? 이글거리던 분노가 사그러진 뒤에 무엇이 남았는지 당신도 알지 못했다. 황제의 정신 속에서 느껴지는 형체는 안개처럼 뿌옇고 잔잔했다.

나의 종족, 즉 사이온 종족 전체가 아닌 성배의 종족은 이러한 감정을 "달콤한 지하 감옥"이라 이른다. 안식처가 감옥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칼루스 황제에게는 아마 욕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기분일 것이다. 당신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호기심마저도.

의원들은 내게 황제를 알현하라 하였으나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행여나 황제께서 나의 비밀을 간파하신다면? 황제의 총애를 받던 차 상인도 이미 그분을 버리고 떠났다. 내가 아직도 옛 성배를 숭배하며, 기도문을 외울 때에도 그의 이름보다 먼저 언급하는 것을 알면… 황제께서는 이를 배신이라 여길 것인가?

그나마 이제 밤마다 고함을 지르지는 않으신다.

3. 일지 II

진정한 황제의 그림자 의원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항로를 바꾸지 못하는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선조들이 살결을 거칠게 만들 수 있도록 Y자 모양 잔에 담긴 소금을 부었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모두 과거와 미래의 군주, 칼루스 황제께 바친다.

우리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제국 변두리에서 공허를 차지하기 위해 함대가 격돌한다. 의회에서는 폭군 가울이 이 공허를 점유하여 침공의 충격을 완화하려 한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너무 얄궂지 아니한가? 이 적은 오로지 우리의 죽음을 원하는데, 우리는 허무하게 죽음으로써 그 원을 이루어주고 있다.

이는 칼루스 황제가 동족에게 베풀고자 했던 것의 정반대다. 심지어 새 기갑단의 우주선조차도 모두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찬란한 칼루스의 함대와 달리, 그것들은 흉측하고 조잡하며 경솔하다. 대원들은 방어구를 착용한 채로 임무에 묶여 생활하며, 오로지 전쟁망을 통해 밀반입한 음악과 게임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잊는다. 듣기로는 실제 기갑단 함선과 병사로 자신만의 "함대"와 "군단"을 구성하여 누가 승리를 가장 많이 거두는지 전우들과 겨루는 놀이가 인기 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부대를 뽑는 것은 운이 나쁜 것으로 여겨졌다.

적은 그보다 더하다. 사이온은 모두 정신의 세계에 산다. 나는 성배와 성배에 담긴 혼들을 믿는다. 혼의 존재를 매일 느끼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는 사물에서 다른 정신들이 남긴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군체에게는… 혼이 없다. 영혼이 메말라버렸다. 마치 끔찍한 용제가 증오심과 잔꾀, 생존 의지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녹여 버린 것만 같다. 그들이 죽음을 숭배하는 것은 오로지 죽음만이 존재로부터 구원받을 길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전쟁 의원들에게 칼루스 황제를 초대하여 가울의 모함이 군체 전쟁 위성을 공격하는 현장을 참관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면치례의 중요성을 아는 황제는 초대에 응했다. 그러나 모함의 형체조차도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자극하는 듯했다. 가울과 그의 폭군 동지 우문아라스는 자랑스럽고 독립적인 순양함(칼루스가 제국 권력의 수단이라 칭하던)을 버리고 거대 모함에서 젖먹이처럼 연료를 받아 먹는 구축함 무리를 택했다. 군체의 차원문은 우아한 벡터 기동을 할 시간도 공간도 허하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함선들은 직사 거리의 잔혹한 교전에 적합하도록 제작됐다.

우리는 다른 사이온들을 감지했다. 그들은 배신의 함대를 군체로부터 숨기고, 전쟁 위성의 경로 앞에 드릴과 탑승정을 뿌렸다. 표면을 공격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누군가가 위성의 내부로 행성 파괴 탄두를 가져가야 했다. 흥분에 사로잡힌 나는 전쟁 의원 하나를 붙잡고 군체처럼 강력한 고대의 존재에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냐고 물었다.

전쟁 의원은 기갑단을 해수면의 군함에, 군체를 잠수함에 비유했다. 적군이 형이상학적인 존재의 표층 아래로 잠수한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정상적인 우주의 현실 속에서 군체는 수면 위에 있는 잠수함과 같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무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선명하게 떠오른 잔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내심 놀랐다. 정말 우리가 끝내는 군체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다할 때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칼루스 황제를 초대한 것은 실수였다. 자신의 무력한 처지를 곱씹게 만든 꼴이었다.

4. 일지 III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바꾸지 못하는 항로를 받아들인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선조들이 글자를 말릴 수 있도록 Y자 모양 잔에 뼛가루를 담았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모두 과거와 군주, 칼루스 황제께 바친다.

리바이어던은 별도, 먼지도 없는 은하계의 공허 속을 가로질렀다. 천문학자들은 고대의 대격변으로 인하여 이곳에 있던 우주의 종양이 터졌다고 말한다. 나는 기압으로 인한 두통처럼, 혼의 부재를 느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려 하는 듯했다.

우리는 모두 희망을 잃고 있다. 하지만 잃을 것이 남아있다면 아직 바닥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사이온에게는 유머 감각이 없다고 한다. 유머란 예상을 벗어나는 데서 비롯하는데, 우리는 천리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 천리안으로 쿠데타를 예측하지는 못했으니, 유머 감각이 있을 만큼은 눈이 먼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은 우리 처지를 자조하며 웃을 수 있다. 호기심과 향락의 황제를 섬기는 수행단으로서 절대적인 무의 공간을 표류하는 처지를.

칼루스 황제는 관측 의자를 떠나지 않는다. 식사를 하거나, 정원을 거닐거나, 와인을 시음하거나, 책을 읽거나, 임페라티바 티타니카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자리를 뜨는 일도 없다. 주방에 새로운 요리를 제안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머나먼 행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으며, 카이아틀이 왜 자기 말을 듣지 않았는지를 혼잣말처럼 되뇌지도 않는다. 그저 공허 속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황제는 왜소해진 느낌이 드는 모양이었다. 우주는 대부분이 공허이며, 자신 역시 우주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이 흉터는 황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생긴 것이었다.

나는 오늘 정원의 흙에 Y자 모양 잔을 그렸다. 아무도 느끼지 못하도록, 정신으로 그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그렸다. 나의 종교는 우리 종족이 기갑단을 만나기 오래 전에 철저하고도 잔인하게 뿌리 뽑혔기에, 사이오닉 능력이 없는 종족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선조들은 우주에서 비밀을 가장 철저하게 지킨 종족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어찌하여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모른다. 다른 사이온의 얼굴을 볼 때마다 우리의 정신을 담고 있는 성스러운 Y자 모양 잔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믿음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칼루스 황제가 눈치챈다면? 내가 바로 그분을 시들게 하는 독이라면?

농담 하나 들려줄까? 아니, 내가 웃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어. 바로 이런 것이 사이온의 농담이다.

5. 일지 IV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성배시여, 우리 모두를 받아서 구원해주소서.

아무것도 없다.

신은 신에게 응답한다! 칼루스의 영혼 속 공허가 소리를 쳤고, 답이 왔다. 우리를 기다리는 '그것'을 보고 리바이어던의 제어 장치가 고장을 일으켰고, 우리는 그곳을 향해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칼루스는 관측실 안에 틀어박혔다. 황제가 내보내는 메시지는 '그것'에 부딪혔다가, 그 참을 수 없는 힘에 의해 훼손되어 되돌아온다. 의원들이 모여 정신 융합으로 의견을 나누고 상황을 파악하려 하였으나, 행여나 성공할까 다들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처럼 더듬거리고, 융합은 흩어진다.

이곳은 우주의 가장자리인가? 우주에는 끝이 있을 수가 없다. 무한하게 뻗어 나간다. 하지만 무한함 안에 구멍이 있으면 그것은 일종의 가장자리 아닌가? 일종의 결함, 흠, 공간 밖의 공간일 것이다…

침착해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OXA 기계가 생각난다. 영원히 상실되고 영원히 재건되며 문명에서 문명으로 전해 내려온 기계. 마치 우주선의 블랙박스 같다. 심연으로 넘어가고자 했던 군체 왕 오릭스의 전설적인 모험을 생각했다. 그 이야기는 우화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저 안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 것인가? 시공의 구조가 무너지고 우리 역시 엉킨 쇠사슬처럼 널브러져, 남은 인생을 찰나에 모두 경험할 것인가? 노령으로 죽어가는 나 자신을 돌볼 것인가, 아니면 뒤틀린 리바이어던의 미로 속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 경고의 말을 외칠 것인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영원히 나의 미쳐버린 정신을 읽으며, 내 미래의 광기를 맛보고 결국은 광기에 물들 것인가!

잔의 혼들도 광기로 내몰릴 것이다.

우리 중에 이런 광기를 환영하는 자는 하나뿐이다.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내가 어찌 신을 예측하거나 이해하겠는가?

우주선 전체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들린다. 칼루스가 안락한 관측실에서 웃는 소리가 방송되고 있다.

6. 일지 V

진정한 황제의 그림자 의원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황제의 변덕에 따라 방랑하는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선조들이 운을 점칠 수 있도록 Y자 모양 잔에 주사위를 담았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모두 과거와 미래의 군주, 칼루스 황제께 바친다.

오늘 관측실에 있는데 황제가 내게 다가왔다. 본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반쿠데타를 위해 황실군의 명단을 추리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망가진 고대 항성 의체의 거울이 4억 킬로미터 아래의 파란 태양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구겨진 손수건 같다. 그것들은 아주 천천히 떨어지고 있으며, 그것을 만든 이들은 이미 영겁의 세월 전에 죽었다.

이곳 리바이어던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났다. 경비 회사 직원들은 방어구에 반짝반짝 광을 냈다. 함선은 우리의 명령에 제대로 반응하고 있으며, 함선의 엔진과 공장이 어찌나 활발히 돌아가는지 그 연료를 대기가 버거울 정도다. 정원에서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정원사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나무를 손질하고 잡초를 뽑는다. 칼루스 황제는 주방에서 향신료를 손끝으로 집어보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다시금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이다.

나는 가장자리에 다가가던 그날 이후로 일지에 생각을 담지 않았다. 그때 칼루스 황제는 기쁨에 찬 모습으로 관측실에서 걸어 나왔다. "끝이다." 황제는 첫 앞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처럼 들떠서는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근사하다. 가히 신적이야. 이것은 나의 존재를 초월한다! 매치, 모든 것의 끝이 왔다!"

나는 겁이 났다. 그날은 우리 모두 겁이 났다. 우리는 아무도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행여나 우리의 기억이 한데 고여 무시무시한 진실을 이루지 않을까 싶어 정신 융합도 피상적으로만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공허에서 칼루스 황제는 존재의 목적을 다시 찾은 듯했다. 황제는 우리에게 지시하여 함선의 항법 장치를 초기화하고 배신자들의 파괴 공작으로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여 제어 능력을 회복했다. 나는 칼루스가 얼른 고향 행성으로 귀환할 거라 생각하였으나, 황제는 빼앗긴 왕좌를 되찾겠다는 욕심을 잃은 듯했고… 한때 앞장서서 이끌던 개혁에도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제 우리는 은하계를 방랑하며 "향락의 전쟁"을 치른다. 우리는 날것 그대로의 분노와 귀한 향락을 맛보고 다닌다. 칼루스는 한때 통치에 쏟았던 호기심과 욕심을 이제 쾌락에 쏟아붓는다. 나는 제정신이라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칼루스가 포식하는 광경을 보았다. 황제가 손목을 한 번 휘젓자 잔에 담긴 차가운 헬륨-4 초유동체가 10년 동안 소용돌이를 그렸다.그리고 그는 10년 후에 돌아가서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뿐만이랴. 황제가 삼킨 완두콩 크기의 뉴트로늄은 안개를 가르듯이 그를 찢어발겼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그것이 아주 쫀득한 캐러멜 같은 맛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에 여기 있었다. 추락하던 항성 의체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미의 가치를 아는 황제였고, 휴지처럼 구겨져 빛을 찬란하게 반사하며 청색 거성으로 떨어지는 수백만 장의 돛과 같은 모습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영겁의 세월 전에 누군가가 파란 태양 위에 거울을 설치했고, 한동안 그들은 태양이 선물한 낙원에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나는 물었다.

"질문이 틀렸구나, 매치." 그는 관측실을 회전시켜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거울 하나에 초점을 맞췄다. 살아있을 때 저 돛은 행성과 그 위성을 이을 만큼 넓었겠지만, 죽어버린 지금은 번뜩이는 회전금속이 마치 엉겅퀴처럼 아무렇게나 뭉쳐 있는 모습이다. "그들의 죽음을 내가 왜 기뻐하는지를 물어야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수긍했다. "이들은 우리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지도 않았고, 우주를 찢고 그 상처 안으로 기어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낡은 기계의 가호를 갈구하지도 않았지요… 그들은 물질적인 야망과 물리 법칙, 그리고 생명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들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우리 또한 죽는다는 징조입니다."

"바로 그거다." 칼루스는 묘하게 관대하게 말했다. "그들은 한때 위대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자신들이 영생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지.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배은망덕한 일 아니겠느냐?"

나는 분수 앞에 앉아 선조들의 혼을 따르며 인도를 청했으나,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이후 첨언: 이 일이 있고 나서는 칼루스 황제를 실제로 뵙지 못했다.)

7. 일지 VI

진정한 황제의 그림자 의원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황제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선조들이 상처에 감을 수 있도록 Y자 모양 잔에 붕대를 담았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모두 과거와 미래의 군주, 칼루스 황제께 바친다.

우리는 클립스를 정복했다.

칼루스 황제가 통치했던 여러 종족, 황제가 우리의 위대한 문화에 받아들이고자 했던 여러 종족 중에서, 클립스는 황제가 매우 아끼는 종족이었다. 그런데 클립스가 귀환하는 황제를 미사일 포격으로 맞이하자, 황제는 끔찍이도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칼루스 황제는 비죽거리지도 성을 내지도 않았으며, 한밤중에 신호를 보내어 해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것이 황제의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철학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황제는 발루스 노르에게 리바이어던과 승선 중인 병력만으로 클립스를 재정복할 계획을 세워 실행하라 지시했다. 그다음에는 내게 쿠데타 이후의 클립스 역사를 설명하라 지시했다.

칼루스는 클립스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겼다. 클립스는 외계 생물체가 득실거리는 생물권과 끝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 생물권은 향하는 곳마다 공포를 낳았다. 칼루스 황제는 이런 끝없는 전쟁을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군사 지원을 하는 대신 클립스에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문화를 가꾸려고 했다. 클립스는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가울의 반란 이후 도미누스는 그 고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함대를 파견하여 신의를 얻으려 했다.

당연하게도 군단병은 행성 자체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파괴적인 이 생태계를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군단의 노력은 클립스와 그곳 사람들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백 년 동안 기후 공법과 독성 쇼크 공격, 터무니없는 "박멸 및 관리"를 시도하고 실패한 끝에, 가울은 결국 고통받는 클립스가 "이제 제국의 전략 안보에 중요하지 않다"라고 선언했다.

내 생각에는 클립스가 칼루스 황제에게 저항하면 다시 가울의 환심을 얻을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혹은 클립스를 정복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발루스 노르는 단 6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클립스의 군사 중심지이자 위성인 카가 클립스에 상륙했다. 클립스는 8주에 걸쳐 지상에서, 그리고 궤도에서 그녀의 병력을 공격했고 로봇 요격기들을 동원하여 리바이어던을 에워쌌다. 비록 나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펼쳐졌던 정신 융합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로 뭉친 정신의 힘은 융단을 정전기로 가득 채울 정도였다. 나는 계속해서 기시감을 느꼈다.

노르가 앞으로 튀어나가 급습을 시도했다. 리바이어던에 폭격을 요청하여, 미리 위치를 파악해 두었던 핵심 지휘 본부에 미사일을 퍼붓자 클립스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클립스는 마지막 발악으로 리바이어던에 특공대를 투입하려 했다. 클립스의 특공대를 태운 탑승정은 리바이어던의 센서를 피해 접근하는 데 성공했으나, 정신 융합체가 선내에서 그들의 불타오르는 복수심을 감지했다.

칼루스 황제가 사격을 가하려는 우리를 막았다. "나는 그들의 노력을 높이 산다. 그들의 혼을 보고 싶구나."

나는 황제의 의중을 묻고자 전화를 했다. 마지막으로 직접 용안을 뵌 것이 언제였는지 헤아리기도 힘들었다. "매치, 나를 따를 이들을 선별하는 중일세. 내가 드리울 그림자들을 생각하는 중이야." 황제가 대답했다.

물론 클립스의 기습 공격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생존자가 하나 있었다. 룰이라는 자였다. 룰이 칼루스의 용안을 보았다는 소문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진정 황제의 얼굴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카가 클립스를 손에 넣자 클립스를 파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칼루스는 투항의 대가로 룰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클립스를 괴롭히는 끝없는 전쟁을 종식시킬 열쇠였다.

그것은 종잇장이었다. 칼루스가 혜성의 물과 향기가 좋다는 황실 정원에서 기른 면화로 만드는 두껍고 가장자리가 거친 종이였다. 룰은 칼루스와 약 2시간 동안 면담한 끝에 종이에 서명했다. 리바이어던의 공장들이 부르르 떨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호화로운 자족형 생태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인구가 영속적으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소세계였다.

룰이 선택한 자들이 생태도시에 안전하게 자리 잡은 후에, 카가 클립스의 수많은 무기가 클립스 고향 행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선택을 받아 생태도시로 이주한 생존자들이 수많은 동포의 삶을 계승할 것이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잿더미가 되어 평화를 얻었다. 끝없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거울에 비치는 잔에게 기도하며 답을 구했다. 그러나 응답한 것은 칼루스였다.

"매치." 칼루스는 마치 사이온처럼 내 머릿속으로 바로 목소리를 전했다. "나는 룰에게 진실을 알려 주었다. 곧 모든 것이 끝난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최후의 순간이 닥치기 전에 행복과 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오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 수십 억의 생명이 고통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존엄과 목적 없이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삶이 아니다. 그건 바이러스고, 저주다. 군체처럼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

룰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우리와 함께 우주를 여행하게 되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차마 보기 힘들어서였을까.

8. 일지 VII

진정한 황제의 그림자 의원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기근의 현장을 지나가는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선조들에게 다시는 금속이 부족하지 않도록 Y자 모양 잔에 리튬을 채웠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모두 과거와 미래의 군주, 칼루스 황제께 바친다.

오랫동안 일을 하느라 바빠서 일지에 소홀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은하계의 숲 안에서 불타고 헐벗은 공터를 지나고 있기에 생각할 짬이 생겼다.

그래서 황제가 다시 나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제조하는 복제 로봇은 그의 모습을 묘하게 빼닮았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그를 닮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의 실제 황제는 내가 알던 황제의 모습과 전혀 다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쩌면 이제 입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미소를 짓고, 웃음을 터트리며,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어버리는…

그러나 나는 칼루스에게 아직 영혼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면, 황제가 왜 굳이 나를 찾겠는가?

칼루스는 관측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 기계 몸체의 구조를 감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이 어찌나 강력한지, 마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아는가?" 그가 물었다.

"아주 오래전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입니다." 나는 그의 광채에 내면의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별이란 스스로의 중력이라는 욕심을 벗어나지 못하여 구의 형체를 이룬 폭발의 잔해이다. "운이 나쁘게도 초신성이 흩어지면서 이 지역에 금속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흐릿한 별과 죽은 행성, 그리고 수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빈곤한 곳이군." 황제가 말했다. "묘지랄까."

"죽음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군요, 폐하."

"죽음을 아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기 때문이지." 그는 마치 친구의 부재를 의식하듯 벤치를 가볍게 두드렸다. "저 밖을 보거라. 저 별에 살던 엄청난 수의 생명을 상상해 봐라. 그중에 행복했던 자가 있을까?"

"그랬기를 바랍니다."

"왜지, 매치? 어째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군가는 불행해야 하지?"

"금속을 더 많이 갖고 있었나 보죠." 나는 건조하게 대꾸했다.

"바로 그거다!" 황제가 희희낙락하며 손바닥을 마주치는 바람에 나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행복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부유한 남자가 자신보다 재산이 10배쯤 많은 여자와 함께 산다면, 남자는 결혼을 하고도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여자를 볼 때마다 빈곤한 기분이 들겠지. 생물학적 기본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도 대조가 필요하다. 갈증이 없는 것, 허기가 없는 것, 고독이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건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리는 철학입니다." 나는 따지고 들었다. "고통을 알아야만 쾌락을 안다고요? 잃은 것이 있어야 얻는 것이 중한 줄 안다고요? 그건 약자의 논리입니다. 폐하께서는 한때 이런 철학은 비참한 자가 자신의 불행에 대한 변명으로 내세우는 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한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걱정한다고 복이 오지도 않고요. 진정한 만족은 그 자체로 진정한 법이지요."

그는 대단히 흡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통찰에, 자신의 지혜가 담긴 나의 말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매치, 나의 제국에는 무슨 결함이 있었지? 가울이 나를 폐위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지?"

첫 번째 생각한 대답은 이것이었다. 그의 범우주적인 개혁으로 인해 소외받고 분노한 자들이 황제의 등뒤에서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황제가 이런 대답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감지했다. "폐하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그거다! 나는 양팔을 벌려 나의 백성을 포용하고, 모두에게 한없는 소비와 끝없는 축전을 선물했다. 별들조차 달콤하고 찬란하게 빛이 났고, 나는 별마저도 죽는다는 것을 잊었지." 그는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의 인조 피부 밑에서 아궁이 같은 온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네 말이 맞다. 진정으로 행복한 이들은 고뇌와 고통이 없어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그들은 불가피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한 순간 한 순간을 만끽한다.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다시 의미가 생겼다, 매치! 나는 우주의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는 다가오는 미래를 보았다! 남아 있는 순간 순간의 가치를 깨달았어!"

그는 미소를 띠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 보였다. "너도 나와 함께 그 순간 순간을 가치 있게 보냈으면 한다. 그래서 말인데…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네 인생을 앞으로 완전히 바꿀 만한 것 말이지. 오해는 마라. 곧 끝이 온다. 그 후에는 후회되는 일이 있더라도 바로잡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체하지 말고 말해 봐라."

내가 무슨 변명을 둘러대고 그 자리를 피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9. 일지 VIII

성배의 사제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나의 사원이 서 있는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오늘 나는 선조들이 황제의 배포를 알 수 있도록 Y자 모양 잔에 과거와 미래의 군주 칼루스 황제에 대한 칭송을 바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디에서 죽음에 대비할지 결정했다. 리바이어던은 여행자가 기다리고 있는 먼 태양계로 항로를 돌렸다. 그의 그림자들은 이미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가울을 죽이러 가는 중이다. 이 종말의 시간에 어찌 황제가 말해 달라고 요청한 비밀을 지키면서 배신자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왕립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는 황제를 찾아갔다. 그의 대리인들은 황제의 옛 형체만큼이나 탐욕적이었기 때문이다. 동물 사이에 금기가 없듯이 이제 우리 사이에도 금기가 없었기에, 나 또한 옷을 벗고 황제가 발산하는 안락감을 느끼며 그의 곁에 앉았다.

"폐하, 제가 비밀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선조와 선조의 혼이 담긴 성스러운 성배를 숭배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심 황제보다도 나의 신념이 먼저였음을 인정했다.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는 완전한 정신적 침투를 통해 우리의 선사시대를 지배했던 고대의 신적 정신들이, 평범한 사람에게서 신의 불꽃을 본다는 이유로 나의 신앙을 철저히 없애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내가 말을 끝내자 황제가 말했다. "매치, 너는 범죄를 저질렀다. 내가 곧 형을 선고하리라. 하지만 먼저 한 가지만 묻자. 클립스에 대한 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나는 시인했다.

"너무 많은 생명을 소멸시켰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하지만 어차피 모두 곧 끝날 생명이었다. 나는 대다수를 죽임으로써 소수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그나마 최선을 택한 것이 아니겠느냐?"

"폐하, 제 신앙의 눈으로 보면 클립스가 함께 고통받던 것이… 소수가 행복하게 살아남는 것보다 공평해 보입니다. 제가 클립스인이었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심판이 아니라, 공평한 기회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연민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다. 나도 공평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매치. 계급과 종족을 불문하고 백성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넘쳐나는 행복을 주는 제국을 건설하려 했지. 군주가 신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군주가 존재란 곧 제로섬 게임이라는 증거를, 그것도 절대적인 증거를 찾았다면 어떨까? 모두에게 공평한 삶을 제공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는 증거를 찾았다면? 그렇다면 선택받은 소수에게 특권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나는 답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모르겠다고 했다.

"괜찮다. 확실한 대답을 요구한 것은 아니니." 황제가 자세를 바꾸자, 욕탕에 작은 물결이 퍼져나갔다. "쿠데타 이후 나는 오랫동안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무의미함을 보았다. 한이 없는 우주에는 칼루스도 무한히 존재하며 내가 보는 공허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겠지. 내가 그처럼… 보편적이라면 내가 어찌 신일 수가 있겠느냐?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를 목격한 이후로,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치,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닌 존재가 적을수록 내가 더욱 중요해진다. 나는 이 우주에 가장 마지막으로 남는 바람직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직접 동료들을 선택하고 모아서, 끝이 오기 전에 고통을 최대한 줄일 생각이다. 죽음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고자 하는 황제들이 있지. 나는 그런 황제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진실하다. 그리고 매치, 너도 그러하지."

그는 크지만 부드러운 손으로 내 등을 다독였다. "나의 의원 매치여, 너에게 죄가 있다면, 내가 너에게 선물을 줄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오너라. 네 마음에 드는 위치를 보여다오. 필요한 규모를 알려다오. 네가 두려움 없이 너의 신을 섬길 수 있도록 사원을 지어주겠다. 그 대가로 내가 부탁하는 것은 기도를 올릴 때 나를 기억해 달라는 것뿐이다."

10. 일지 IX

진정한 황제의 그림자 의원 매치의 정신 기록이다. 종말의 장소에서 안식하는 리바이어던을 타고 있다. 나의 잔을 채워 주신 선조들께 감사드린다. 내게 삶의 목적을 주신 황제께 감사드린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비밀이 없으니 일지에도 소흘해졌다. 나의 황제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 기록을 남긴다. 칼루스가 손님으로 받은 한 수호자 무리가 앞다투어 요구를 늘어놓았다. 우주선을 하나 내놓아라, "어둠"을 정확히 설명해 달라, 여행자가 방문했던 별의 목록을 달라, 지구 방위를 목적으로 기갑단 제국과 협약을 맺고 싶다, 칼루스의 실체를 보고 싶다, 문제가 생긴 무기들을 고쳐 달라 따위의 요구였다.

칼루스는 수호자들을 총애한다. 황제가 높이 사는 것은 그들의 활력과 생기, 그리고 보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자세다. 그들의 춤사위도 매우 좋아한다. 자신의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면 금세 샐쭉해지는 모습도 사랑스럽다고 한다. 황제는 삶의 낙을 찾으라고 그들을 독려한다!

또한 그들이 스스로는 절대 깨우치지 못할 것을 당신께서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수호자들을 총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과거의 칼루스를 닮았다. 자신의 존재가 유한하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것을 칼루스께서 가르쳐 주리라. 그들은 불멸의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모두 나의 황제처럼, 그리고 나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날이 머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이 사라지듯, 이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그처럼 추구하던 것, 즉 힘과 미래, 그리고 끊임없이 더 이루겠다는 욕심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들도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룬 야망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하며 느끼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미래의 위대함을 위해 했던 일들이 모두 무로 돌아가리라. 최후의 셈에서는, 결국 우리에게 의미와 기쁨을 주었던 것만이 중요할 것이다.

나는 칼루스를 신뢰했기에 기쁨을 찾았다. 또한 나의 선택에 따라 평화로이 죽을 것이다.

성배의 혼에게 축복 있으라. 우리에게 영혼을 부어준 그날에 축복 있으라. 그리고 우리를 끝까지 이끌어 줄 황제께 축복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