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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3 20:50:31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이름 없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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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천국인가 지옥인가3. 신조4. 고향, 1부5. 고향, 2부6. 고향, 3부7. 고향, 4부8. 끝맺지 못한 일, 1부9. 끝맺지 못한 일, 2부10. 끝맺지 못한 일, 3부

1. 개요

이 지식 책은 갬빗 프라임 현상금을 완료할 때마다 얻을 수 있다. 갬빗 프라임에 대한 정보는 데스티니 가디언즈/갬빗 프라임 참조.

2. 천국인가 지옥인가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내게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내가 "선택받은 자"라 부르는 존재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찾은 다음에는, 그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를 살려 두는 것이 목표였다. 격동의 시기였다. 최후의 도시가 세워지기 전, 인류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전의 시기. 나는 죽일 각오도, 죽을 각오도 되어 있었다." —암흑기의 고스트


그는 밤공기 속에서 눈을 뜨고 고르게 숨을 쉬었다. 얼마 동안 잠들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본능적인 반응은—

"달아나요."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달아나야 돼요."

남자가 저녁의 빛을 받으며 일어섰다. 자기 몸을 내려다본 그는, 누가 자기에게 수의를 입혀 놓은 것을 알아챘다. 그는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지만, 우습다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이 고원에서는 승천자들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움직여야 해요."

그는 그제야 공중에 조그만 드론이 윙윙거리며 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드론 중앙의 눈이 파란 태양처럼 번뜩였다. 드론은 의체를 왼쪽으로 홱 틀어서, 멀리 있는 마을의 빛을 가리켰다. "서쪽으로 가세요. 거기 제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들이 우릴 도와줄 거예요."

남자는 드론을 바라보고 인상을 쓰더니,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예요? 이봐요!" 목소리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는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양쪽에서는 키가 큰 풀이 스쳐 지나갔다. 들리는 소리라곤 자신의 숨소리, 그리고 발에 밟힌 풀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꺾이는 소리뿐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뛰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목소리가 다시 한참 뒤에서 그를 불렀다.

그때 굉음이 들렸다. 그가 미처 보기도 전에 오른편의 무성한 풀밭에서 탈것이 폭발하듯 튀어나와 그를 깔아 뭉갰다.

**

그는 밤공기 속에서 눈을 뜨고 고르게 숨을 쉬었다.

"당신 죽었어요." 드론이 머리 위에 떠서 설명했다. 드론은 진한 색의 걸쭉한 액체에 뒤덮여 있었다. "제가 당신을 되살렸어요."

그는 일어서서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옷은 똑같았다. 다친 곳도 없었다. 그를 죽인 거대한 탈것이 몇 미터 밖에서 산산조각 난 채 뒹굴고 있었고, 그 아래의 푹 꺼진 땅은 검게 그슬려 있었다.

갑옷을 걸친 남자의 몸뚱이가 연기를 뿜는 조종석 위에 늘어져 있고, 남자의 헬멧에는 조그만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은 꼭… 그 드론만 한 크기였다.

"이제 제 말 좀 들으실 건가요? 저랑 같이 친구들에게 가요." 드론이 말했다. "이 지역엔 이 사람 같은 약탈자가 득시글거려요. 당신 같은 승천자가 그들을 이끌죠. 당신이 모르는 게 아주 많아요."

"넌 대체 뭐야?"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전 당신의 고스트예요. 제 유일한 목적은 당신을 돕는 거예요." 드론이 대답했다.

"내 부하라는 건가?"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이건 사후 세계인가?"

"말하자면 그런 셈이에요." 드론은 이렇게 말하며, 다시 서쪽의 빛을 가리켰다. "이제 갈까요?"

"저쪽으론 안 가." 남자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드론은 높은 풀을 밟고 사라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다음엔 하늘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하고 일그러진 구체를 빤히 바라보고는, 모듈식 방어구의 궤도를 약간 조정했다.

드론은 급히 남자 뒤를 따랐다.

3. 신조

그는 거의 기어가고 있었다. 고스트가 그 위의 공기를 조용히 갈랐다.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남자가 바닥에 대고 따졌다.

"굶어 죽어 가는 거예요." 고스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난 널 믿지 않아." 그는 코웃음을 치고 몸을 질질 끌다시피 바위 위로 올라갔다.

"제가 고쳐 드릴 수 있는데요." 고스트가 말했다.

"너 따위 필요 없어." 남자가 말했다. "나 혼자 할 수 있어."

"이름 안 정하세요?" 고스트가 물었다. "다들 이름은 정하는데요."

"말이 너무 많군."

"고스트 이름을 정해 주는 사람도 있어요. 이름을 안 정하겠다면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남자는 기절해 있었다. 해가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쬐었다. 하늘에서 활활 타는 구슬처럼. 전갈이 엎어져 있는 남자의 몸뚱이를 쏘고 하루가 지나서, 그는 죽었다. 고스트는 그러도록 두었다. 아예 다시 시작하는 편이 더 쉬울 터였다.

**

그는 눈을 뜨고 고르게 숨을 쉬었다.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고스트가 물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스트를 보았다. 그리고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배가 고파."

4. 고향, 1부

"빛은 선물이 아니야. 모든 걸 빼앗아 가거든. 몽땅 잊게 만들어. 추억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까지도." —암흑기의 한 방랑자


이튼에 외부인이 찾아온 건 몇 년 만이었다.

저메인은 갑옷을 두른 남녀가 은빛 탈것에서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승천자였다. 무슨 수를 써도 죽일 수 없는 존재라는 그들은, 이튼의 경계 밖 어디선가 서로 끝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강철 군주라고 불리는 이 집단은 새로운 이념을 내세우며, 자기들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싸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드라이든이라는 남자를 필두로 나타나서, 일주일 동안 머무는 대가로 집집마다 몇 달치의 물자와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붉은 남자"라고만 알려져 있는 승천자를 기습할 계획이라고 했다.

2주 전만 해도 생존 자체가 위태로웠다. 이제 강철 군주가 베푼 후의 덕에, 작은 마을이 겨울을 넘길 수 있을 터였다.

저메인의 친구인 저드슨이 인근의 헛간에서 나오더니, 성큼성큼 걷는 승천자들에게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저메인은 큭큭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지내나?" 저드슨이 손가락을 높이 들며 승천자들에게 말을 건넸다.

"진정해, 저드슨." 저메인이 소리쳤다.

"닥쳐, 저메인." 저드슨이 손을 높이 든 채로 받아쳤다. "네 이름도 바보 같고, 너도 바보 같아."

저메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슬픈 듯이 웃었다.

저드슨은 마을 사람들에게 협상에 응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식량은 자기가 구해 오겠노라고, "강철 변태"들은 문제만 일으킬 거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이튼 사상 최고의 사냥꾼일지도 모를 그는, 말라 버린 언덕에서 용케도 사슴과 오리, 황소를 잡아 왔다. 하지만 그런 저드슨조차도 최근 몇 달은 성과가 없었다. 이튼 너머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한층 치열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굶어 가며 아이들에게 밥을 먹였다. 그대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곧 꺼져 주지." 지나가던 강철 군주 하나가 저드슨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에서 그녀의 헬멧과도 같은 차가운 금속성이 느껴졌다. 저드슨은 침을 탁 뱉았다. 그리고 마을 변경의 매복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마을을 가로지르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5. 고향, 2부

"이건, 정말 끔찍하군요." —암흑기의 한 방랑자


유는 아홉 살이었고 자주 찾아왔다. 유의 가족은 저드슨 옆집에 살았고, 혈기 왕성한 이웃 청년이 유난히 공격적인 날이면 유를 저메인의 집에 보내곤 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저메인은 개의치 않았다.

"저드슨 아저씨는 강철 사람들을 우리 마을에 들인 게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유는 저메인이 흙바닥에 벌여 놓은 카드 게임을 밟지 않으려고 신경 쓰면서 오두막 안을 천천히 왔다갔다했다.

"알아. 하지만 저드슨은 그것 말고도 말을 많이 하잖아. 그리고 가끔은 단호하게 결정을 해야 하는 법이야. 그 사람들이 식량을 얼마나 많이 줬는지 봤지?" 저메인이 카드를 하나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오두막 역사상 가장 높이 쌓인 배급 식량 더미 옆에 있는 등불이 깜박였다.

"저드슨 아저씨는 총 쓰는 법을 알잖아요. 제가 봤어요. 어쩌면 아저씨가—"

"아니, 안 돼. 저 밖에 있는 그것들은 죽일 수가 없어. 그 생각은 당장 버리렴."

유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채 계속 서성거렸다.

"식량이 많은 건 좋지만, 저드슨 아저씨는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죽을 거라 생각해요. 아저씨가 떠나 버릴지도 몰라요." 유가 말했다.

저메인은 카드를 또 하나 내려놓았다. "주어지는 것을 감사히 받아들여야지. 너희 부모님은 너에게 주려고 저녁을 굶고 계셨어. 승천자들이 그걸 해결해줬지. 당분간은 말야. 그러니까 여기 있게 해줘야 해."

유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더니, 금속판으로 만들어진 천장을 바라보았다. "난 죽기 싫어요."

"안 죽을 거야." 저메인이 말했다. "부모님이 뭐 하시는지 보러 가지 그러니? 나는 조금 피곤하구나."

"알았어요." 유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아이가 나갔다.

저메인은 배급 식량 더미에서 조그만 물통을 꺼내서 깡통에 부었다. 깜박이는 등불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서 유는 몰랐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저드슨이 마을 경계에 있는 문을 최대한 조용히 닫았다. 그의 입김이 밤공기를 만나 수증기로 변했다. 조금이라도 떨면 낡아 빠진 문짝이 흔들리면서 유의 가족이 깰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저드슨은 손잡이를 꼭 붙잡고 문을 제자리로 밀었다. 그는 이튼 계곡에서 빠져나오는 오솔길에 서 있었다.

뒤돌아선 그는 저메인과 똑바로 마주쳤다.

"거기 있는 줄 몰랐네, 친구." 저드슨이 이웃의 목덜미를 팔꿈치로 가격하기 직전에 간신히 멈추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딱 한 걸음.

"이 늦은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저메인이 물었다. "친구."

"왜 이래? 바보야? 총질이 시작되기 전에 여기서 빠져나가는 거지."

"드라이든 경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하고 있을 거라 믿어야지." 저메인이 말했다.

저드슨은 고개를 내저었다. "너랑 협상에 응한 사람들 때문에 마을이 죽고 말 거야. 이놈들은 소문보다 더 악질이라고."

"내가 승천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너도 잘 알잖아. 하지만 이번 주는 놈들 덕에 살았어."

저드슨은 코웃음을 쳤다. "승천자들이 우리와 똑같이 생겨서 아무도 안 믿겠지만, 놈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널 죽일 거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야. 그건 자기들도 어쩔 수 없는 본능이야."

"딱 한 놈만 덮치겠다는 거 아냐. 딱 한 놈. 그게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면 돼. 그 정도 규모의 전투라면 아무리 승천자라도 자제할 수 있을 거야."

"비켜줄 거야? 아니면 내가 널 들어 옮길까?"

저메인은 옆으로 비켜섰다. "내가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니지. 그런데 어딜 가려는 거야? 저긴 어딜 가나 전쟁터야. 놈들의 먹잇감이 오고 있고."

"추적이 내 직업이잖아. 네가 마을에 오기 전에 수 년간 사람들을 먹여 살렸어. 난 괜찮아. 오고 있다는 승천자도 사람 한 명쯤 지나가는 건 개의치 않겠지. 난 숨길 것도 없고, 그냥 여길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니까. 죽은 놈들의 전쟁에서 미끼 노릇을 하고 싶다면야, 잘 살아보라고."

저메인이 큭큭 웃었다. "뭐가 우스워?" 저드슨이 예의 낮은 목소리로 코웃음을 쳤다.

"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존경스러울 정도야."

"무슨 말이야?"

"넌 겁이 없잖아. 잘 살아, 친구. 볼 일 있으면 또 보겠지." 저메인은 문으로 돌아갔다.

6. 고향, 3부

"넌 누구냐?"

"이름을 말한다고 알까?"

"네 고스트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잡지는 못했지만 추적기에서 확인했지."

"뭐? 내가 너희 족속이라 생각하는 거냐? 친구, 완전 잘못 짚었어."

"그러면 왜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거지? 몇 킬로미터 거리 안에 식량도 물도 없는데."

"그럭저럭 구할 수 있어."

"좋은 말로 할 때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

"이 지역의 전쟁군주 세력은 남쪽 계곡까지 오지 않았어. 여기 근처에 마을이 있나? 계곡이나 산골에 틀어박혀 있는 마을 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베기 시작하겠다."

"당신이 뭔가 놓친 건지도 모르지."

"따라 와. 혼자 계곡을 정찰하려 했지만 친구를 데려가는 것도 괜찮겠군."

**

일주일 후, 승천자 전쟁군주가 저드슨을 이튼으로 데려오자 저메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전쟁군주는 보이는 대로 땅을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 절반이 그들을 보러 나왔다.

그들 중 한 명은 드라이든과 군주들이 기다리던 그 전쟁군주와 인상착의가 일치했다.

승천자는 제대로 무장만 갖춘다면 혈혈단신으로 군대 하나를 초토화할 수 있다고 한다. 승천자 둘은 고스트의 지원만 제대로 받는다면, 무한한 군대와 무한히 싸울 수 있다.

전쟁군주 여섯이 무기를 뽑아 들고 마을 중앙에서 일렬로 탈것에서 내렸다. 그들은 그들 앞에서 저드슨의 무릎을 꿇렸다. 묶여 있지는 않았다. 다친 곳도 없어 보였다.

"이 약골을 데려갈 사람 있나?" 붉은 남자가 물었다.

"우리가 데려가겠습니다." 저메인이 말했다. 사람들이 탄식을 뱉었다. 유가 저드슨에게 뛰어가려 했지만, 부모가 아이를 붙잡았다.

"먼저 질문에 답해라." 붉은 남자가 말했다. "강철 군주들은 어디 있지? 놈들의 고스트를 하나 봤다. 이런 것 말이야." 그는 주민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주위를 날던 자기 드론의 칼날 달린 철갑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녀석들은 간섭하길 좋아하지. 놈들이 식량을 가져다줬나? 그게 아니라면 이런 황무지에서 살아남지 못했겠지. 하지만 놈들의 목적은 마을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장담하지." 붉은 남자는 말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고스트가 머리 위에서 빙빙 도는 동안 군중을 훑어보았다.

"강철 군주들은 확고한 질서를 뒤흔들려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마을을 해방하러 왔다. 이제 우리가 마을을 보호하겠다. 자, 놈들은 어디 있지?"

저메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자 그는 직접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맞습니다. 그들이 여기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떠난 지 오래됐죠. 우리는 물자에 대한 값을 치렀고, 그들은 일주일 전에 떠났습니다."

"그런가?" 붉은 남자가 핸드 캐논을 들더니 유의 아버지의 이마를 쐈다. 사람들이 모두 움찔하며 서로 붙어 섰고, 남자는 뒤로 쓰러졌다. 유의 어머니는 분노의 고함을 지르면서도 아이를 꼭 안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합니다." 저메인은 이렇게 말하며 숨어 있는 강철 군주들이 움직이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붉은 남자가 총을 높이 들고 주민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머지 전쟁군주들은 손에 든 무기를 번뜩이며 지평선을 살폈다.

그 숨막히는 순간을 틈타, 저드슨이 전쟁군주의 탈것에서 몰락자 전기 검를 당겨 뽑았다. 그는 의기양양한 고함을 지르고 가장 가까이 있던 갑옷 입은 승천자의 목을 베었다. 그자가 서서히 쓰러지는 동안, 저드슨은 붉은 남자의 등에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세 번째 전쟁군주가 저드슨의 손에 들린 검을 빼앗고, 건틀릿에 달린 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르더니 뒤에 있는 탈것 위로 내팽개쳤다.

그 순간 주위의 언덕에 숨어 있던 강철 군주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고, 저메인의 주위는 난장판이 됐다. 주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쓰러진 전쟁군주들은 찬란한 빛의 기둥 속에서 다시 일어섰고, 손에 들린 무기는 다시 포효하며 예광탄을 뱉었다.

**

고스트는 높은 곳에서 이 혼란을 지켜보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숨는 데는 이골이 났다. 그뿐만 아니라 선택받은 자가 익히라고 지시했던 별의별 잡일에도 이골이 났다.

저 아래에서 총성과 빛이 폭발하는 소리가 옹기종기 모인 판잣집과 오두막 사이로 들려왔다. 총알과 이 세상 것이 아닌 불길이 난무하는 가운데 마을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났고, 언덕에 숨어 저격을 하던 강철 군주들은 마을 중심에 있는 전쟁군주들을 향해 서서히 거리를 좁혀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고스트는 남자 하나가 아이를 감싸 안고 오작동하는 폭발 장치의 잔해를 헤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는 그나마 안전한 오두막 뒤로 숨어 무릎을 꿇고 아이의 얼굴에 귀를 댔다. 여자아이는 말을 하려 하고 있었다.

갑옷을 걸친 기수 하나가 마을 광장에서 한 손으로 중화기 기관총을 들더니, 이튼 구석구석으로 금빛 예광탄을 쏘아 보냈다. 기관총의 포효와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이는 바람에, 고스트의 시야에서 주민들이 사라졌다.

곧 감각을 마비시킬 듯한 파괴적인 폭발이 일어났고, 고스트는 고도를 높였다.

고스트는 전투가 잠잠해지고 살아남은 승천자가 모두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다. 어느 쪽이 이겼는지도 알기 힘들었다.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황혼이 내렸다.

7. 고향, 4부

남자는 눈을 뜨고 고르게 숨을 쉬었다. 그가 기억하는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이튼은 없어졌다. 폭발에 휘말리고 파편에 묻혀 사라졌다. 마을 대부분을 이루고 있던 오두막과 판잣집이 무너지지 않은 건, 오로지 온화한 날씨 덕분이었다.

그러나 빛 대 빛의 폭풍은 땅을 그슬리고 그림자를 남겼다. 죽은 자의 뼈와 함께. 황혼은 피처럼 붉었다. 고스트가 남자 위에 떠 있었다.

남자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큭큭 웃으려 했지만, 기침이 나왔다.

"괜찮아요?" 고스트가 물었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꼿꼿이 섰다. 구부정한 자세를 하면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저메인?" 고스트가 물었다.

"그건 내 이름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불렀잖아요."

남자는 돌아서서 고스트를 바라보았다. "그건 내 이름이 아니다. 전쟁군주 하나가 고스트를 봤다던데. 네가 실수한 건가?"

고스트가 끄덕였다. "미안해요. 당신한테 알려 주려고 새로운 가축 공급 경로를 찾다가 방심했어요."

"많은 걸 요구한 것도 아니잖아."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삽. 삽을 찾아 와."

고스트는 잔해와 재 사이를 스캔해서 까맣게 탄 삽을 찾은 다음, 빛의 올가미로 들어 올렸다.

남자는 천천히 주위의 뼛조각을 주워 모은 다음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말인데요. 유 말이에요." 고스트가 말을 이었다.

"입 다물어." 남자가 대답했다.

"아이가 뭐라고 했죠? 마지막에 아이와 이야기하던데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고스트에게 답을 말한 것은, 몇 번의 삶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그는 기억했다.

"당신이 아이를 구할 수도 있었잖아요."

삽이 흙에 한층 세게 부딪혔다. "입 다물라고 했지."

"사람들을 다 구할 수도 있었어요."

남자는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생각보다 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는지, 뼈를 묻을 만한 크기의 무덤을 파자마자 웬 목소리가 고함을 쳤다. 그는 삽을 떨구고 텅 빈 마을 광장을 가로질러 연기를 뿜는 디아스네 헛간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이튼은 죽었다. 이제 비밀을 지켜 봐야 의미가 없다.

그는 이웃 사람들이 보았다면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순식간에 광장을 가로질러 모퉁이를 돌았다. 저드슨이 바닥에 쓰러진 채 헛간 문에 기대 있었다. 저드슨의 손에는 캐논이 들려 있었고, 남자와 고스트를 알아본 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저드슨이 덜덜 떨리는 주먹으로 무기를 들었다. 반대쪽 손은 검붉은 얼룩이 진 옆구리를 붙잡고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렸어요." 고스트가 그 위로 빛을 비추며 말했다.

"너도 처음부터 놈들과 같은 족속이었군." 저드슨이 코웃음을 쳤다.

남자가 큭큭 웃었다. "내 평생 그랬지, 친구."

"너 때문에 우리가 죽었어, 이 개—"

남자는 전혀 다급한 기색 없이 저드슨의 손에 들린 무기를 걷어찼다. 그는 무릎을 꿇고 손가락을 뻗었다. "아니, 아니지. 그건 너 때문이었어. 네가 전쟁군주들에게 잡혔잖아. 결과는 뻔했잖아. 마음 같아서는 널 막고 싶었지만 내게 그럴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저드슨이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잡으려고 했다. 남자는 대신 그의 손을 으스러지듯 쥐며 악수를 했다. 저드슨은 인상을 쓰며 발버둥을 쳤지만, 그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체격에 비해 힘이 셌다.

남자는 태양 빛이 이글거리는 반대쪽 손을 들어, 저드슨의 상처에 댔다. 과거의 친구는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남자의 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저드슨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스트에게 말했다. "이거 봐. 절대 포기하지 않잖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 겁이 없어."

"저 밖의 승천자들?" 남자는 상처의 지혈을 마치고 갑작스레 차가워진 손을 어둑해지는 밤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놈들이 이 녀석이었다면 진작에 죽었겠지. 놈들은 전쟁밖에 몰라. 반면 이 남자는 살아남기 위해 애쓰지."

저드슨이 꼴깍거리는 소리를 냈다. 저드슨이 저항을 포기했는데도 남자는 여전히 그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이 사람을 구하고 싶어했지? 이게 성공하더라도, 이 친구가 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진 못할 거다. 자신처럼 사는 방법은 말이야. 그건 너 때문이지."

고스트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빙빙 도는 방어구의 궤도를 세밀하게 조정하여 마을의 폐허를 빛으로 스캔했다. 근처에 남아 있는 전쟁군주나 강철 군주가 있다면 달아나야 할 터였다.

남자가 일어섰다. 저드슨은 죽어 있었다.

"이 사람이 잡을 수 있게 일부러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가축을 잡아 와서 풀어 주고 있었다고 말해야 했는지도 모르죠." 고스트가 말했다.

"이 친구가 얼마나 흡족해하는지 봤나? 이 친구뿐 아니라 모두들 말야. 다들 그걸로 배를 채웠지." 남자가 대답했다. "쫓을 대상을 주는 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주는 것과 같아."

"한심하네요. 이게 당신의 꿈이에요? 난민들과 소꿉장난이나 하는 만성 거짓말쟁이요? 이 사람들은 우리 때문에 죽었다고요!"

"난 이 사람들과 함께 여기 살았어."

"당신은 훨씬 큰일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이 가진 빛의 진짜 위력을 보여줄 수 있어요."

남자는 고스트 옆을 지나쳐 저드슨의 시신을 마을 중앙으로 운반했다. 남자는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을 장악하고 있는 부풀어 오른 구체 모양의 껍데기가 남자의 눈에 띄었다. 한동안 그의 삶에 끼어들지 않은 그것이, 그날 밤따라 땅에 훨씬 더 가까워 보였다.

그는 고스트가 바라보는 가운데, 손을 들어 손가락 하나로 그것에게 인사를 했다.

"잘 지내나?" 그는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8. 끝맺지 못한 일, 1부

"나는 절대 용서하지 않고, 절대 잊지 않는다. 나는 힘든 인생을 살거든, 친구." —암흑기의 한 방랑자


우 밍의 술집은 늘 붐비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오후만큼은 사람이 많았다. 우 밍은 돈을 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했지만, 술집의 손님은 대개 승천자였다. 메뉴가 특히 승천자의 취향에 맞기 때문이 아니라, 펠윈터 봉우리라는 산의 발치에 술집을 냈기 때문이었다.

펠윈터는 전쟁군주였다. 산 전체를 혈혈단신으로 지켜 낸 유일한 전쟁군주였다고 한다. 그는 이제 강철 군주들과 손을 잡았고, 펠윈터 봉우리는 강철 늑대들의 영토였다. 그들은 우 밍에게 술집 건축 허가를 내준 적이 없었다.

우 밍이 내 달라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오늘의 손님들은 거의 하나같이 고스트가 없었다. 거센 바람과 무자비한 추위 때문에 고스트가 없는 자는 이곳에 거의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전쟁군주들이 이곳에 돌아왔다는 소문이 일반인에게 퍼진 터였다. 총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은. 하지만 그 소문만으로도 빛이 없는 빈민들이 멀리서까지 우 밍의 술집에 찾아왔다. 강철 군주가 술을 한잔하고 있을 공산이 높은 곳이니까. 우 밍은 개의치 않았다.

문이 다시 활짝 열리더니 갑옷을 입은 형체 셋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세상의 끝에 잘 오셨습니다." 서빙을 하던 프레임이 인사를 건넸다. 전쟁군주들은 55-30을 어깨로 밀치더니, 카운터에 있는 우 밍에게 곧바로 다가갔다.

"뭘 드릴까요?" 우 밍이 가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선두에 있던 전쟁군주, 머리보다 더 큰 어깨 보호구를 걸친 거인이 말했다. "음식. 있는 대로 다 가져와."

우 밍이 한쪽 눈썹을 치켰다. "그러죠. 미광체는… 꽤 많이 내셔야 할 겁니다."

"뭘 모르는군." 거인이 우 밍의 방수복 깃을 잡고 말했다. "뒤에 숨긴 걸 모조리 내놓지 않으면 네 내장을 빼내 산 채로 먹어 버리겠다."

"어이, 사이탄." 여자 목소리가 말했다. "덩치가 비슷한 사람을 괴롭히지 그래."

모두의 눈이 사이탄 뒤에 헬멧을 쓰고 서 있는 사람에게 향했다. 여자의 머리는 거인의 가슴팍에 닿을까 말까였다.

"여제 에프리디트." 사이탄이 중얼거렸다.

강철 여제에게 머무르던 우 밍의 눈길이 바 앞에서 빛이 없는 손님들 가운데 서 있던 세 전쟁군주에게 옮겨 갔다. 그는 숨죽여 욕설을 내뱉고 몸을 숙였다.

9. 끝맺지 못한 일, 2부

우 밍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쟁군주들은 홀로 있는 강철 여제를 둘러쌌다.

"세상의 끝은 늑대의 땅이야." 에프리디트가 말을 하고 있었다. "펠윈터 봉우리 전체가 그렇지."

"이제부턴 아니야." 초승달 모양의 빛이 전쟁군주들의 손바닥 사이에서 튀었다. "약탈자 군대와 승천자 화력팀이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어. 너희들과 손을 잡다니 펠윈터가 제정신이 아닌 거지."

헬멧 아래 사이탄의 눈이 강철 여제에서 그 뒤에 있는 전쟁군주로 옮겨 갔다. 옆에 섰던 전쟁군주가 육중한 핸드 캐논을 들어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발사한 총알이—

사이탄의 가슴에 꽂혔다. 에프리디트가 순간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여제는 왼손에 들린 캐논을 오른쪽으로 휘둘러, 굉음과 함께 뒤로 두 발을 쏘아 뒤에 있던 전쟁군주의 머리를 박살 냈다. 여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을 쏘는 모습을 우 밍은 똑똑히 보았다.

세 번째 전쟁군주의 기관단총이 총알을 흩뿌렸고, 에프리디트가 몸을 굴리자 총알은 바닥에 후드득 박혔다.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우 밍은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끝난 후였다. 세 번째 전쟁군주가 구겨지듯 쓰러졌다. 에프리디트의 태양 단도에 머리가 갈라진 것이었다.

"멈춰!" 고스트 셋이 주인 위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자, 여제가 캐논으로 천장을 쏘며 호통을 쳤다. 그녀의 어깨 위로 나뭇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번에는 우 밍이 밖으로 들리도록 욕설을 했다.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그녀가 쩌렁쩌렁 소리를 쳤다. "너희가 승천자를 되살리기 전에 너희 모두를 쏘아 버릴 수 있어."

여행자의 아이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금속으로 만든 꿀벌처럼 의체가 공중에서 공격적으로 빙빙 돌았다.

"너희는 가도 돼."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너희 승천자는 나와 함께 있을 거다. 강철의 칙령을 따르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고스트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전쟁군주들에게 전해라."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펠윈터 봉우리는 늑대의 땅이라고."

고스트들은 주인이 들어왔던 길로 술집에서 나갔다. 손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늘 순발력이 뛰어난 에프리디트의 고스트가 음악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옛 찬송가를 부르는 여제 스코리의 목소리였다.

손님들은 세 구의 전쟁군주 시신으로부터 물러나서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이야기 소리가 서서히 공간을 채우더니, 이내 왁자지껄한 소음이 되었다. 음악 덕이었다.

"이것 때문에 오라고 한 건가?" 에프리디트가 무기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돈이 되는 일이 있다고 했잖아."

"그랬지. 당신이 방금 그 일을 마쳤고." 그는 미광체 한 움큼을 내밀며 대답했다. 강철 여제는 헬멧 아래에서 얼이 빠진 듯한 얼굴로 주먹을 바라보았다.

"당신한테는 누가 돈을 지불하는 거야?"

"다 방법이 있지." 우 밍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나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친구. 내가 부자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약속하지."

여제는 그의 손에서 사파이어빛 육면체를 가로챘다. 미광체는 순수한 물질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펠윈터는 데려오지 않았군." 우 밍이 말했다.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 "강철 군주의 공식적인 용무가 아니면 봉우리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 사람에겐 무슨 용무지?"

"그보다 이따 뭐 해?" 우 밍이 뜬금없이 물었다.

"몰락자 사냥. 녀석들이 보일 고개에서 말썽을 피우고 있거든. 해가 질 때까지 사냥해야 해." 에프리디트가 헬멧을 입 바로 위까지 들어 올리고 카운터 뒤쪽에 있는 술잔을 들더니 우 밍이 한 잔 가득 따른 몰트를 꿀꺽 들이켰다. 여제가 트림을 하고 물었다. "같이 할래?" 그녀는 헬멧 바로 아래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우 밍이 큭큭 웃었다. "됐네요. 목숨이 하나뿐인 사람더러 승천자들 싸움에 끼라고? 방해만 될걸." 그는 잠시 가만히 생각했다. "가기 전에 춤이라도 출래?"

"됐네요." 여제가 그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헬멧이 내려왔다.

그가 고개를 들고 몸을 바짝 기울이며 물었다. "잠깐, 내가 뭐라고 했는데?"

"가기 전에 춤이라도 출래?" 여제가 다시 말했다.

"좋지." 그가 대답한 뒤, 팔을 활짝 펴고 다가섰다.

슬쩍 몸을 피한 그녀는 아래에서 그의 한쪽 다리를 걷어찼다. 그는 비틀거리다 바닥으로 쓰러졌고, 누군가 그 위에 술을 쏟았다.

"싫으면 어쩔 수 없고." 그는 여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바닥에서 소리쳤다. 여제의 헬멧 꼭대기가 군중 위로 삐죽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문을 반쯤 빠져나갔다. "시체 가져가!" 그가 바닥에 널브러진 채 고함을 질렀다.

**

그날 밤 그는 세 시간이 걸려 봉우리에 올랐다. 그는 긴 코트를 입고도 덜덜 떨고 있었다. 고스트가 없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추위에 굴복하고 말았을 터였다. 고스트는 물론 숨어 있었다.

그가 정상에 올랐을 때 무거운 성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엑소 하나가 검고 매끈한 두개골에 박힌 눈을 번뜩이며 문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엑소가 코트 안으로 손을 뻗어 무기를 꺼내는 순간, 우 밍이 양손을 높이 들고 다가갔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 친구."

10. 끝맺지 못한 일, 3부

펠윈터의 고스트가 우 밍을 위해 벽난로에 불을 붙여 주었지만 안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다. 그는 예전의 전쟁군주를 마주했다. 둘 다 고딕 양식의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넌 누구냐?" 펠윈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이웃 사람이야. 저 아래에 사는데, 한 달째 당신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애를 썼지." 우 밍이 씩 웃었다.

"원하는 게 뭐지?"

우 밍이 잠시 생각했다. "당신이 사람을 잘 죽인다고 들었어."

"붕괴 후의 삶에서는 불가피한 일이지."

"아니, 승천자 말이야. 완전히 죽여 버리는 것 말이지. 최근에 그건 완전히 금기가 됐어. 강철 군주들이 상황을 바꾸고 있지."

"넌 대체 누구냐? 솔직하게 말하는 것 같지 않은데." 펠윈터의 목소리가 석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우 밍은 의자에 기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손이 덜덜 떨렸다.

펠윈터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 밍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지 않는 이상, 이 엑소가 영영 그대로 앉아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고스트." 우 밍이 불렀다. 세상에 하나뿐인 친구가 공중에 나타났다.

"감탄해야 하는 건가?" 펠윈터가 조금도 비꼬는 기색이 없이 물었다. "이런 게 아니고서야 살아서 여기까지 올라왔을 리가 없지."

우 밍이 헛기침을 했다. 고스트가 그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다시 묻지." 우 밍이 터무니없는 의자에서 몸을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강철의 칙령을 어길 생각이 있나? 진짜로 죽일 생각이 있어?"

"나는 전쟁군주 시절, 자랑스럽지 않은 일을 많이 했다. 지금은 강철 군주의 교전 규칙을 엄격하게 따르지." 펠윈터가 말했다. 갑옷을 걸친 껍데기 안에서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고스트는 공격 대상이 아니다."

"당신이 옳고 그름, 그리고 정의의 실현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어."

펠윈터의 눈이 문득 밝게 빛났다.

"그보다 인간적인 행위는 없지."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정의를 실현할 권리가 누구한테 있는지 나도 몰라. 하지만 복수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있으니, 부탁이 있어."

펠윈터가 자기 턱을 톡톡 두드렸다. "무슨 부탁이지?"

우 밍은 이미 오래전 강철 군주의 시대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이튼이라는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드라이든이라는 군주가 마을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을 가져다주면서, 근처에 있던 전쟁군주를 끌어들여 기습하기 위한 미끼가 되어 달라고 했다. 우 밍은 이것이 강철 군주의 설립자인 라데가스트 경이 제정한 규율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라이든은 빛이 없는 인간들을 강철 군주의 일에 끌어들이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긴 것이었다. 강철 군주들은 바로 그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친 것이었으므로.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래를 받아들였다. 달리 무슨 수가 있었을까? 그런데 기습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표적이었던 전쟁군주가 화력팀을 끌고 온 것이었다. 이튼은 철저하게, 또 완전하게 사라졌다. 우 밍은 드라이든이 전투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휘하의 군주를 모조리 잃었으며, 고스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분노에 사로잡힌 나머지, 쓰러진 전쟁군주들을 영원히 죽이는 죄까지 저질렀다. 우 밍은 그 후로 드라이든이 이 사실을 숨겼으며, 드라이든과 그의 고스트가 군주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얻어 살라딘 경이나 여제 에프리디트 같은 떠오르는 용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펠윈터는 얼어붙은 듯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 밍의 말을 듣기는 했는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당신이 거짓말하는 건 아닌지, 어떻게 알지?" 마침내 공허한 목소리가 물었다.

"녹음해 놓은 게 있거든." 우 밍이 대답했다. 그의 고스트가 펠윈터의 고스트에게 데이터를 전송했고, 펠윈터의 고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튼… 그곳 사람들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였지?"

"아무 의미도 없어. 유령일 뿐이야."

"전혀 관심도 없던 사람들을 위해 복수를 하겠다고?"

"강철의 다크호스를 고용할 수 있을까?"

펠윈터는 일어서더니, 나가 달라는 뜻으로 우 밍에게 정중하게 손짓을 했다.

우 밍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하고 석실을 나섰다. 이제부터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엑소는 코트 자락을 걷고 옆구리에서 긴 청동 산탄총을 뽑았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의 고스트가 물었다.

"드라이든 경에게 연락해라. 내 강철 깃발 무기를 준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