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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8 17:20:20

부디카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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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만티아 전쟁 파일:external/b66a81d7e3c5440cfef450e3309a2b4b425f1dcd788e510bd84b747e2e2573be.png 아레바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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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센과 페터르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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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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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14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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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카의 난
영어: Boudican revolt
파일:부디카의 난.webp
시기 60년 ~ 61년
장소 브리타니아
교전 세력 파일:attachment/mon_256.png 로마 제국파일:attachment/mon_256_10.png 이케니
지휘관 파일:attachment/mon_256.png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카투스 데키아누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파일:attachment/mon_256.png 포에니우스 포스투무스†
파일:attachment/mon_256_10.png 부디카
결과로마 제국의 승리.

1. 개요2. 사료3. 배경4. 경과5. 이후

[clearfix]

1. 개요



서기 60~61년,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로마 제국 총독들의 학정에 분노한 브리타니아의 켈트브리튼 부족들이 부디카 여왕을 중심으로 뭉쳐 봉기하면서 벌어진 대규모 반란이다.

2. 사료

브리타니아의 켈트계 부족들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부디카의 반란에 대한 사료는 로마 제정기의 역사가인 타키투스의 《연대기》와 디오 카시우스의 《로마 역사》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둘 다 봉기에 대해 광범위한 이야기를 전하지만, 일부 세부 사항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타키투스가 사건에 더 가까운 시대에 살았고, 당시 브리타니아에 있었던 장인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로부터 반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대 역사가들에게는 더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부디카와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가 결전 직전에 한 것으로 전해지는 연설은 모두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고대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청중에게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가상의 연설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전하곤 했기 때문이다.

3. 배경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반 로마 봉기의 원인이 이케니 부족과 왕가의 굴욕에 있다고 기술했다. 이케니 부족은 현재의 이스트 앵글리아 지역 북부에 거주했다. 프라수타구스는 서기 43년 로마 총독에 의해 이케니족의 왕으로 선출되었고, 60년에 사망할 때까지 통치했다. 그에게는 아내인 부디카와 두 딸이 있었는데, 죽기 전에 부족의 영역을 두 딸과 로마 황제 네로에게 동등하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남겼다.[1] 타키투스는 프라수타구스가 로마 제국이 이케니족의 안위를 보장하고 가족을 지켜주길 희망했기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총독 카투스 데키아누스의 지도하에 이케니족의 영토를 로마 제국 속주의 일부로 취급하고, 이케니족 귀족들의 땅을 강탈했다. 심지어 부디카를 채찍질했으며, 그녀의 두 딸을 강간했다.

로마 제국은 공화정 시절부터 동맹국의 왕이 후사 없이 죽으면 그 나라를 합병하곤 했다. 가부장의 권리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여성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두 딸만 남은 이케니 왕가는 단절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케니족을 잔혹하게 대우하고 부디카를 학대하며 두 딸을 강간한 건 심각한 범죄였다. 하지만 이것만이었다면 반란이 브리타니아 전역에 확산될 이유는 없었다. 타키투스는 반란이 커진 또다른 원인으로 트리노반테스족을 추방한 것을 들었다.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브리타니아 침공 이후, 로마 제국은 퇴역병들을 위한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그런데 트리노반테스족의 수도인 카물로두눔(현재 콜체스터)에 도시를 건설하고, 트리노반테스족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는 원래 그곳에 주둔했던 제20 군단이 실루리아족과 싸우기 위해 서쪽으로 이전하면서 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 트리노반테스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을 로마인들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데 대해 심한 반감을 품게 되었다.

여기에 서기 54년에 독살당한 클라우디우스 1세를 기리기 위해 카물로두눔에 사원을 건설할 때, 사제들이 카물로두눔의 원주민들로부터 사원 건설을 위한 특별세를 악착같이 뜯어내면서 민심이 더욱 악화되었다. 카물로두눔(콜체스터)에 있는 로마 요새의 도랑에서 6개의 두개골이 무기에 의해 생긴 것으로 여겨지는 심각한 상처와 함께 발굴되었는데, 이는 로마인들이 지역 주민들을 거칠게 취급했음을 시사한다. 타키투스는 트리노반테스족이 이 사원을 영원한 폭정의 본부로 보았다고 기술했다.

디오 카시우스는 이케니 왕가에 대한 학대나 트리노반테스족에 대한 잘못된 처우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세네카를 비롯한 로마인 채권자들이 브리튼 주민들을 상대로 돈을 강제로 빌려주면서 반란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그에 따르면, 세네카는 브리튼 주민들로부터 원금만 따져도 무려 4,000만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악착같이 뜯어갔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브리타니아 총독이었던 카투스 데키아누스는 클라우디우스 1세가 브리튼인 귀족들에게 제공한 선물을 모조리 빼앗았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데키아누스는 이 돈이 단지 대출일 뿐이며, 상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디오 카시우스는 이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카투스 데키아누스의 상환 요구는 제5대 황제인 네로의 통치하에서 정부 지출이 증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역사가 크리스토프 M. 부스트는 타키투스와 디오 카시우스의 기록을 조합해, 데키아누스가 클라우디우스 1세로부터 하사된 선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이케니족 귀족들의 영지를 빼앗아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타키투스가 로마의 금전적인 요구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징수하는 잔인한 절차만 언급한 건 로마 측의 도덕적인 범죄를 언급하는 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한편, 일부 역사가들은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드루이드의 성지인 모나 섬(지금의 앵글시 섬)을 파괴한 직후 부디카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드루이드는 브리튼인 사이에서 존경받는 이들이기에, 그들을 박해하는 로마 정부에 강한 반감을 품고 반란에 가담했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다른 역사가들은 브리타니아 사회에 대한 드루이드의 영향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4. 경과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부디카가 이웃 부족인 트리노반테스족을 설득해 반란을 일으켰고, 다른 이름없는 부족들이 여기에 합류했다고 한다. 반면, 타키투스는 《아그리콜라》에서 섬 전체가 로마인들에 대항하여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디오 카시우스는 그저 브리타니아 전체라고만 기술했다. 현대 역사가들은 《연대기》에 서술된 대로 이케니족과 트리노반테스족이 주축이 되어 반란을 일으켰고, 다른 부족들이 여기에 합세했을 것이라고 본다.

당시 로마군은 웨일즈의 모나 섬에 가 있었기 때문에, 브리타니아 본토에 남아있는 로마군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부디카는 이 틈을 타 봉기하여 여러 초소에 흩어져 있는 로마군을 급습하고 로마군의 요새를 습격했으며, 트리노반테스족은 별도로 카물로두눔의 퇴역병 식민도시를 공격했다. 이 식민도시에는 방벽이 없었고, 소규모의 방어 수비대만 있었기 때문에, 총독 카투스 데키아누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무장이 덜 된 병사 200명만 보냈고, 그들은 반란군에게 섬멸당했다. 카물로두눔은 곧 함락되었고, 그곳에 살던 로마인 전원이 학살당했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9군단 히스파나를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하려고 했으나 참패하여 보병을 전부 잃고, 기병과 함께 요새화된 진영으로 후퇴해야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데키아누스는 공포에 질려 갈리아로 도망쳤다.

브리튼인들은 카물로두눔을 파괴한 뒤 오늘날의 런던인 론디니움으로 이동했다.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는 모나 섬에 주둔한 군단에게 론디니움으로 서둘러 진군하여 반란군보다 빨리 도착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곳을 지키기에는 병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파울리누스는 론디니움을 버리기로 하고 주민들에게 자신과 함께 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많은 주민은 정착촌을 떠나지 않고 남았다가 반란군에게 모조리 살육당했다. 반란군은 론디니움을 철저히 약탈하고 불살랐다. 그 후 부디카의 군대는 와틀링 스트리트를 따라 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은 카투벨라우니족이 거주하는 베룰라미움으로 진격하여 역시 약탈하고 파괴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약 70,000명의 로마인 및 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은 브리튼인이 반란군에게 피살당했다고 한다.

파울리누스는 14군단 게르마니아, 20군단 발레리아 빅트릭스와 보조 부대로 구성된 약 10,000명의 병력을 보유했다. 그는 엑서터에 주둔하고 있었던 제2 아우구스타 군단에 합류를 명령했지만, 군단장 포에니우스 포스투무스는 가망이 없다고 보며 거부했다. 파울리누스는 주민들과 함께 브리타니아를 완전히 떠날 지, 아니면 운명을 건 일전을 벌일 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전력상 절대 열세이지만 로마군의 전투력을 믿고 회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 파울리누스는 숲을 배경으로 협곡과 접한 평야를 전장으로 선택해, 매복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탁 트인 평원에서 반란군 앞에 섰다. 전투 장소가 어디 인지는 타키투스가 기록하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으나, 현대 학계는 양 군대가 런던을 북서쪽으로 연결하는 와트링 스트리트를 따라 나란히 진군하다가 애서스톤 또는 맨케스터 인근에서 만났을 것으로 추정한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로마 군단병은 중앙에 배치되었고, 양익에 보조병을 배치했으며, 극좌익과 극우익에 기병을 배치했다고 한다. 반면 브리튼인은 무질서한 무리를 이루었으며, 후방에 수레 무리를 가득 배치하고 아이와 아내들을 그 위에 올려놓아서 전사들이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타키투스는 전투 직전에 부디카와 파울리누스가 긴 연설을 했다고 서술했지만, 현대 학계는 타키투스가 꾸며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로마 군단은 처음에 협곡의 엄페물에 움직이지 않고 서서 반란군이 필룸의 사정거리에 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반란군이 무질서하게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필룸을 일제히 던져 기세를 꺾어놓은 뒤 쐐기 형태의 진형으로 돌격했다. 보조군과 기병도 따라서 진군하여 공세를 펼쳤고, 양측은 곧 격렬한 접전을 벌였다.

브리튼군이 압도적인 숫자[2]로 밀어붙였지만, 숲과 협곡을 잘 활용하여 진형을 갖춘 데다가 조직력과 전투력, 그리고 무장이 우월한 로마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 시간이 지나자 체력이 바닥나 밀리기 시작했다. 파울리누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전군에 돌격 명령을 내렸고, 브리튼인은 로마군의 기세에 밀려 패주했다. 그러나 후방에 배치해둔 수레 때문에 도망도 제대로 못 쳤고, 도망자들과 그들의 아내 및 아이들은 로마군에게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전투에 참가한 80,000명의 대다수가 죽었지만 로마군의 사상자는 4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디카는 전투가 끝난 뒤 음독 자살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타키투스의 기록이 과장되었다고 보지만, 로마군이 이 전투에서 완승을 거둔 것만은 분명하다고 여긴다.

디오 카시우스의 기록 역시 타키투스의 기록과 유사하다. 다만 그는 브리튼인이 행한 잔혹성을 상세하게 밝혔다. 그에 따르면, 반란군은 로마 귀족 중 가장 고귀한 여성들의 옷을 강제로 벗긴 뒤 유방을 베어서 강제로 물게 한 후 입을 꼬매서 뱉지도 못하게 한 뒤 꼬챙이로 꽂았다고 한다. 디오 카시우스는 이러한 잔학 행위는 안다테 여신 등에게 바치는 인신공양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디오 카시우스는 파울리누스가 처음엔 브리튼인과 싸우길 원치 않았고, 본국에서 지원군이 올 때까지 농성하고 싶어 했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식량이 점점 떨어지고 반란군이 더 많은 압력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전투에 나섰다고 했다.

디오 카시우스는 최후의 전투 때 파울리누스가 맞닥뜨린 반란군의 규모가 230,000명에 달했다고 서술했다. 파울리누스는 반란군의 병력수가 너무 많아서 전선을 적과 나란히 두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고, 적에게 포위될 것을 우려해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싸울 수 있도록 군대를 3개 사단으로 나눴다. 디오 카시우스는 타키투스의 《연대기》에서와 같이 파울리누스와 부디카의 연설을 재현했다. 연설이 끝난 후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양 군대가 서로에게 천천히 접근하다가, 신호가 떨어지자 로마군이 전속력으로 전진했다. 로마군은 브리튼군을 돌파했지만 곧 포위되어 사방에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전투력과 무장을 갖춘 로마군은 결국 우위를 점했고, 많은 브리튼인을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었다. 몇몇 브리튼인들은 탈출에 성공한 뒤 다음 전투를 준비했지만, 부디카가 그 사이에 병에 걸려 죽자 그녀를 묻은 뒤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한편, 전투에 참가하길 거부했던 포에니우스 포스투무스는 파울리누스가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자 제2 아우구스타 군단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것에 수치스러워하며 자살했다.

5. 이후

부디카와의 결전에서 대승을 거둔 파울리누스는 이케니족과 트리노반테스족에 대한 징벌 원정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가 브리튼인을 학살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접한 네로 황제는 또다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파울리누스를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투르필리아누스로 교체했다. 페트로니우스는 더 이상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고, 브리튼인들을 좀 더 온건하게 대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네로는 부디카 반란 사건 후 브리타니아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한다.

이케니족은 로마군의 엄격한 통치를 받았지만, 서기 80년대에 다시 자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학정을 일삼다가 대규모 반란을 초래하게 만들어놓고 갈리아로 도망친 카투스 데키아누스는 총독직에서 경질되었고, 반란 진압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가 새 총독으로 임명되어 브리타니아의 서부와 북부에서 정복 활동을 벌였다.


[1] 일각에서는 부디카가 이 유언장에서 후계자로 언급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프라수타구스와 부디카가 로마 제국의 점령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졌을 것이라고 본다. 즉, 부디카는 남편과는 달리 로마 제국에 적대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영국사의 첫 번째 여왕으로 거론되는 카르티만두아는 로마 제국에 맞섰던 카라타쿠스를 로마군에 넘겨줄 정도로 친 로마 성향이었던 반면, 남편 베누티우스는 로마 제국에 대항해 두 차례나 반란을 일으켰을 정도로 적대적이었다.[2] 타키투스에 따르면 80,000명에 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