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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07:24:41

오기노 타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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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시즌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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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기노 타카시 · 1 후지와라 쿄타 · 3 카쿠나카 카츠야
22 그레고리 폴랑코 · 23 이시카와 신고 ·
25 오카 히로미 · 38 타카베 아키토 · 50 아이토
51 야마구치 코키 · 61 야마모토 다이토 · 63 와다 코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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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드래프트 제도 미시행 오츠카 야스오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소노다 요시노리 무라타 쵸지 아리토 미치요 마에다 고스케 히에이 다다오미(5)
1971년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이노우에 케이이치 다테 야스지 사토 히로마사 박덕용(키쿠무라 토쿠요) 다나카 요시오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모리 시게카즈(5) 하카마다 히데토시 후쿠마 오사무(4) 다케모토 유키오(5) 아이코 다케시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이베 야스지 이시카와 마사루(4) 히가 요시토모(4) 가사하라 에이이치 이시다 마사히코(4)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세키 기요카즈 이라부 히데키 마에다 유키나가(4) 코미야마 사토루(4) 고이케 히데오(5)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요시다 아츠시 타케무라 준이치로 가토 다카야스(3) 사부로 사와이 료스케(4)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시미즈 마사우미(3) 와타나베 마사토 고바야시 마사히데(3) 다카하시 카오루(3) 다나카 료헤이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키타 타카시 니시오카 츠요시 우치 타츠야 쿠보 야스토모(3)
테지마 사토시(3)
야나기타 마사토시(1)
네모토 슌이치(2)(6)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오미네 유타(1)
코베 타쿠미(2)(6)
카라카와 유키(1)
핫토리 야스타카(2)(4)
키무라 유타 오기노 타카시 이시미네 쇼타(4)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후지오카 타카히로 마츠나가 타카히로(4) 이시카와 아유무 나카무라 쇼고 히라사와 타이가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사사키 치하야(4) 야스다 히사노리(4) 후지와라 쿄타 사사키 로키 스즈키 쇼타(4)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마츠카와 코 키쿠치 리쿠(4) 우에다 큐토(4)
(1) 고교생 드래프트
(2)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4) 하즈레 1라운더
(5) 지명 후 미입단
(6) 1순위가 아니지만 그 해 첫 번째로 지명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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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021 NPB 퍼시픽리그 골든글러브(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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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NPB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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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NPB 퍼시픽리그 도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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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NPB 퍼시픽리그 최다안타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4번
호세 오티즈 (2007~2008) 오기노 타카시 (2010~2016) 후지오카 유다이 (2018~)

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0번
오기노 타다히로 (2007~2014) 오기노 타카시 (2017~)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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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롯데 마린즈 No. 0
오기노 타카시
荻野貴司 / Takashi Ogino
생년월일 1985년 10월 12일 ([age(1985-10-12)]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촌
포지션 외야수[1], 유격수[2]
투타 우투우타
신체 172cm, 75kg
학력 코오리야마고교 - 간세이가쿠인대학
프로입단 2009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10~)
등장곡[3]1, 2타석 : 아라시 - 白が舞う
3타석 : HIKAKIN & SEIKIN - 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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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구단 자작곡[4]
SNS 인스타그램
연봉 2024 / ¥90,000,000

1. 개요2. 커리어
2.1. 2018 시즌2.2. 2019 시즌2.3. 2020 시즌2.4. 2021 시즌2.5. 2022 시즌2.6. 2023 시즌2.7. 2024 시즌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3.2. 주루3.3. 수비
4. 연도별 성적5.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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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프로야구 선수.

NPB 퍼시픽 리그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외야수.

2. 커리어

대학야구 시절 춘계대회 도루 신기록을 세우는 등 맹활약했으나 일본프로야구 진출 대신 사회인야구토요타 자동차에서 2년간(2008~09) 뛰었고 3번 타자로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2009년 드래프트 1순위로 치바 롯데에 입단하였다. 여담이지만 학창시절엔 내야수였던 것과 달리 사회인 야구에선 주로 외야수로 뛰었고 결국 외야수로 지명되었다. 이때 사회인 야구에서 3대 외야수 최대어로 꼽혔고, 마침 대학 외야수 팜이 박살이 났기 때문에 즉전감 외야수는 저 셋 정도로 꼽혀 여러 구단에서 상위픽으로 꼽았다고 한다. 참고로 다른 최대어 둘은 키요타 이쿠히로쵸노 히사요시. 물론 쵸노는 무조건 요미우리 아니면 입단 안 한다고 했기에 다른 구단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었고, 키요타는 예상과 달리 지명이 안 되다가 롯데에 하위픽인 4라운드로 지명됐다.[5] 여담으로 당시 고졸 최대어는 세이부, 한신, 야쿠르트, 라쿠텐, 주니치, 닛폰햄 등 6개 구단의 지명을 받은 키쿠치 유세이였으며 고졸 타자 중 가장 높게 평가받았던 이마미야 켄타는 소프트뱅크의 단독지명을 받았다.

데뷔 시즌부터 큰 기대를 받으며 25년 만이 되는 팀내 신인 외야수의 개막전 선발을 이루었고 이후 경이로운 페이스의 도루,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신인왕, 도루왕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시즌 중반에 무릎 반월판을 다치면서 시즌아웃되었고 우승 반지도 끼지 못하게 되었다.[6] 2010 시즌이 끝난 뒤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하던 주전 유격수 니시오카 츠요시가 해외진출을 하자 구단은 그를 유격수로 전향시켰다.[7] 유격수로써 무난한 활약을 펼치나 싶었지만 2011년에도 무릎 통증이 문제가 되면서 시즌을 일찍 접어야 했다. 신인 시절의 세 차례 무릎 수술로 인해 오기노는 차세대 1번타자에서 애증의 노망주로 전략하고 말았다.

2012년에는 다시 외야수가 되었다. 빠른 복귀보다는 회복을 중점으로 시즌을 준비하였고 6월 중순 경에 1군에 복귀하였지만 부진하였다. 2013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 2할대 중후반 타율에 26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3년간은 풀타임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실력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크고 작은 부상이 잦았기 때문이었다.[8] 유리몸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상실감을 느낀 오기노는 하다못해 부상이라도 제로였으면 좋겠다면서 4번이던 등번호를 0번[9]으로 교체했다.[10][11]

2017년에는 시즌 초반 여타 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죽을 쑤면서 커리어 로우를 찍는가 싶더니 어느새 페이스를 되찾으며 타율 0.264에 5홈런 26도루를 기록했다.

2.1. 2018 시즌

올 시즌이 끝나면 FA를 맞이하게 된다.

개막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볼넷 1도루를 기록했다.

3월 3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도루를 기록했다.

4월 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을 기록했다. 팀은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다.

4월 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4안타 2타점 1도루로 맹활약하였다. 중간에 주루사로 찬물을 끼얹기는 했지만.

4월 4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타율은 .435를 유지하며 타율 2위를 기록중이다.

그 후로 계속해서 전 경기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중.

4월 10일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이겼지만 본인의 타율은 3할 4푼대까지 떨어졌다.

4월 11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4월 12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끝내기 병살타를 쳤다.

점점 더 타율이 떨어지면서 타율 탑 5에서도 밀렸다.

4월 17일에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또한 1사 3루에서 얕은 플라이를 치면서 타점도 내지 못했다.

4월 26일 5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으로 활약했고 팀도 이겼다.

4월 28일 3타수 1안타. 근데 그 1안타도 2루수의 실책성 플레이 덕분에 운 좋게 내야안타를 친 거라.[12]

점점 타율이 떨어지는 중.

5월 5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왔지만 5타수 무안타로 처절하게 말리고 있다.

결국 내려갈 타율은 내려간다고 5월 14일 기준 타율 .255로 추락. 도루도 2주째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5월 20일 기준으로 타율을 2할 7푼대까지 다시 끌어올렸다. 놀랍게도 팀내 2위이자 퍼시픽리그 20위 안의 기록. 얼핏 부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준수한 테이블세터나 다름없다.

6월 3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타율을 3할까지 올렸다. 퍼시픽리그 타율 5위를 마크.

6월 16일 기준 타율 .301 기록.

6월 17일 결정적인 상황에서 도루자를 기록. 타이밍은 아슬아슬했는데 머리를 태그당하는 바람에 슬라이딩을 잘 했으면 살 수 있는 순간이어서 매우 아쉬움을 주었다.

6월 23일 2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타율을 .308로 끌어올렸다. 현재 퍼시픽리그 타율 5위.

좋은 활약 덕에 올스타전 멤버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손가락 부상으로 2개월 재활 판정을 받는 바람에 7월 10일 1군에서 말소. 대신 올라온 선수는 이시미네 쇼타.

말소 시기 성적은 78경기 타율 .287에 20도루.

참고로 시즌 100안타를 기록한 해가 한 해도 없었는데 올해 91안타를 치고 재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연 시즌 막판 복귀 후에 100안타를 치게 될 지가 궁금하나 재활이 더딘 건지 1군에 안 올라오고 있다. 아마 사실상 시즌아웃으로 보인다.

2.2. 2019 시즌

이구치의 쓸놈쓸 덕에 대주자로만 나오다가 4월 3일 1번타자 중견수로 첫 선발출장했다. 이날 2루타 하나를 쳤다.

4월 14일 2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2루타 하나를 치긴 했으나 1사 1,2루 득점권에서는 포수 플라이나 치면서 팀의 스윕패에 공헌했다.

시즌 초의 이구치의 1번타자 계획이 다 실패하면서 결국 대주자 전용에서 다시 주전 1번 중견수 자리를 되찾았다. 현재 3할대 후반의 고타율을 기록하면서 날아다니는 중.

4월 28일 기준 1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본인의 실력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4월 29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14경기 연속 안타. 타율은 현재 .355로 좋다.

5월 1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를 기록. 막판엔 라인드라이브 병살까지 나왔다. 연속안타가 14경기에서 끊겼다.

5월 8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날 기준 25경기 92타수 28안타 타율 .304에 1홈런 8타점 7도루를 기록하며 순항중.

꾸준히 1번타자 중견수로 나오면서 타율 2위까지 찍는 중.

6월 23일 1번 중견수로 나와 멀티히트를 쳤으나 멀티도루자로 팀의 혈을 다 끊어먹었다.

7월 1일 기준 타율 .336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타격왕 경쟁을 하면서 커리어하이를 찍을 기세다. 이 활약 덕분에 올스타전에도 뽑혔다.

올스타 브레이크 시기 기준 73경기 타율 .330에 6홈런 28타점 18도루 OPS .892로 순항중. 타율은 현재 1위이며 5안타만 더 치면 데뷔 첫 1시즌 100안타를 기록하게 된다.

7월에 결국 데뷔 최초의 시즌 100안타를 달성하였다. 아쉬운건 7월부터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타율 1위를 모리 토모야에게 빼앗겼다.

만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시즌 내내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결국엔 규정타석 3할과 두자릿수 홈런[13], 도루를 기록하였다. 자신이 괜히 1라운더 출신인게 아니라는 것과 부상만 아니었으면 리그 탑급의 리드오프가 될 수 있음을 거의 10년만에 증명한 셈이다.

FA를 드디어 획득했으나 결국 잔류했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3. 2020 시즌

어느덧 팀내 최고참 외야수가 되었다. 이번 시즌 역시 많은 경기에 출장해 팀에 공헌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또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회복이 되었는지 2군 연습경기에는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끝도 없이 미뤄지는 상황이라 개막전 합류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막전에 3번 좌익수로 나왔으나 한 경기만에 후쿠다 슈헤이가 부상을 당해서 다시 1번 중견수로 돌아왔다. 매년 1번 타자/중견수 자리를 타 선수에게 빼앗기는데 시즌이 개막하고 좀만 지나면 오기노가 주구장창 1번 중견수로 나오고 있다.

6월 2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타점은 끝내기 몸에 맞는 공으로 낸 것.

그 후로 7월 초까지 7도루를 기록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7월 중순 12도루로 여유롭게 도루왕을 찍나 싶더니 바로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결국 8월 중순에야 2군 경기에 복귀하면서 또 한 달을 날렸다. 결국 올해마저도 사실상 부상으로 시즌을 꽤 날린 셈. 워낙 벌어둔 도루갯수가 많아서 도루 1위를 꽤 길게 유지했으나, 같은 팀의 대주자 전문 와다 코시로가 선발로 나온 3경기에서 5도루를 하면서 14도루로 도루 1위를 역전했고, 매년 도루왕 후보인 닛폰햄의 니시카와 하루키도 12도루까지 따라오면서 현재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빨리 복귀하지 못하면 결국 올해도 도루왕은 어려워 보인다.[14]

2군 경기에 복귀하고도 한 달 이상 어영부영하다가 9월 25일 겨우 1군 경기에 복귀했다. 사실상 부상때메 시즌의 절반을 날리면서 올해도 부상악령에 발목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복귀하고 10일 남짓 지나 10월 6일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시즌 후 2년 계약을 맺었다. FA 신청 대신에 맺은 느낌.

2.4. 2021 시즌

다행히도 2021년에는 지난 시즌에 겪었던 힘든 순간들을 딛고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중견수는 아무래도 체력이나 기량 면에서 어려운지 좌익수 출장이 많아졌다. 6월 16일 기준 타율이 0.309로 요시다 마사타카에 이어 퍼시픽리그 타율 2위다. NPB 전체 타율로 따져도 요코하마의 사노 케이타와 공동 4위다. 게다가 안타는 무려 84개를 기록하며 NPB 전체 1위를 기록중이다. 작년 악재가 있었음에도 리그 정상급 타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건재함을 드러내고 있다. 출루율도 0.364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12위에 등극하였다. 이대로 시즌을 마감한다면 2021년은 오기노에게 최고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8월 15일 기준 15도루 9도루자로 도루성공율 63%를 마크중이다. 도루는 사실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8월 30일 기준 타율 0.303으로 퍼시픽리그 6위를 기록중이다. 3부터 6위까지 차이가 근소하여 충분히 5위권 안에는 들 수 있는 상황이다.

타율보다 눈에 띄는 건 안타 갯수다. 8월 30일 기준 퍼시픽리그 안타 120개로 요시다 마사타카와 공동 1위를 기록 중이다.(2,3루타 제외). NPB 전체로 따졌을 땐 한신의 치카모토 고지(123안타)에 이어 공동 2위다.

하지만 도루는 여전히 좋지 못하다. 성공률이 명성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게 문제.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며 주루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쉬운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루왕을 따내며 커리어 첫 도루왕 기록을 세웠다. 또한 최다안타상도 수상하며 2관왕.

시즌 후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2.5. 2022 시즌

스캠 도중에 코로나에 재감염되는 바람에 몸이 늦게 만들어져서 개막 엔트리에 들지도 못했다. 2군 경기에도 시즌 초 결장하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페이스가 안 올라오는 듯.

결국 시즌을 한참 보내고 교류전까지 시작한 5월 27일 금요일 한신과 홈경기에서 콜업되어 선발 2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후 타격감이 바닥을 치는 중이었으나 7월 초 기준으로 2할대 후반까지 타율을 끌어올리는 등 조금씩 제 실력을 되찾는 중이다.

그리고 마침내 통산 1000안타 달성에 성공했다.

2.6. 2023 시즌

시범 경기부터 15경기에 출전. 타율.302, 2홈런, OPS.813을 기록하며 개막전 1번 우익수로 출전하며 꾸준히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그놈의 유리몸 기질 때문에 시즌 중 다리 부상만 2번을 당하며 시즌 50경기 출전에 타율 0.240, 1홈런-1도루에 그치고 말았다. 노쇠화가 확연했던 시즌이었는데, 특히 프로 입단부터 계속해서 기록하던 연속 두 자릿수 도루는 13년 만에 중단되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소프트뱅크와의 1차전에서 선두 타자 홈런을 치며 1999년 일본 시리즈의 아키야마(당시 다이에 호크스 소속)의 37세 6개월의 기록을 갱신했다.

2.7. 2024 시즌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파일:external/blogimg.goo.ne.jp/232babe5d78cda02ae99412406ae846a.jpg

배트를 짧게 쥐고 어느 코스의 공이든 유연하게 반응하는 타격을 한다. 2011년 까지는 우완 투수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2013년부터 좌투수 상대 성적이 더 좋아졌다. 선구안도 좋은 편이다. 커리어하이라고 할 수 있는 2013년 시즌에는 볼넷이 삼진보다 많았을 정도.
똑딱이 이미지가 강한 선수지만 오카다 요시후미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펀치력은 있다는 평이 많았고, 실제로도 해마다 서너개씩은 담장을 넘기곤 했다. 2019년에는 10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3.2. 주루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66a5a58d.jpg

오기노의 최고의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야구 선수의 주력을 평할때 쓰는 50미터 기록은 6초가 안 되는 정도로 준족급 선수 치곤 그렇게 빠른 기록은 아니다.[15] 하지만 최고 속력까지 올라가는 가속력 하나만은 일본 최고다. 스카우트가 평하길 '20미터를 일직선으로 달린다면 일본에서 제일 빠를 것' 이라고. 우타자임에도 1루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3.5초를 기록했다.[16][17][18] 그런 주력을 살려서 우전안타에도 2루까지 가거나, 외야 플라이에도 1루에서 2루로 터치업하는 빈틈없는 주루를 한다. 통산 도루 성공률도 매우 좋은편이라 2010년에는 .893으로 양 리그 통합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19][20] 참고로 통산 도루 성공률이 86.9%로 상당히 높고, 18시즌의 도루 성공률도 76.5%나 된다.[21] 다만 폭발적인 스피드에 비해 주루 중 무릎이 나가거나 근육이 파열된다거나 하는 부상을 많이 당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 육상 코치와 함께 개인훈련을 하며 달리기 자세를 교정하고 주법을 연마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2021년 현재는 도루성공율이 60%대 중후반에 그치며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웃긴건 도루성공률이 가장 안 좋았던 2021년에 커리어 첫 도루왕을 수상했다.[22]

3.3. 수비

파일:IMG_7683.jpg

외야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본인은 우익수 수비를 가장 자신 있어 하지만 중견수로 출장할 때가 조금 더 많다. 빠른 발 덕분에 수비범위는 리그 최상급이며[23] 어깨도 좋은 편이지만 송구의 정확성이나 수비 기본기 면에서는 엉성한 모습도 종종 보인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0 치바 롯데 마린즈 46 175 .326 57 9 2 1 17 29 25 18 .383 .417
2011 23 91 .264 24 4 0 0 10 14 14 8 .320 .308
2012 61 165 .224 37 5 0 1 8 18 13 16 .293 .273
2013 102 335 .275 92 14 3 4 28 56 26
(4위)
41 .351 .370
2014 40 142 .261 37 10 2 3 12 26 15 8 .300 .423
2015 82 279 .269 75 9 2 2 13 42 18
(4위)
20 .317 .337
2016 71 192 .250 48 11 1 3 21 35 16 18 .314 .365
2017 103 356 .264 94 22 1 5 24 53 26
(3위)
27 .315 .374
2018 78 317 .287 91 15 3 2 25 52 20 22 .330 .372
2019 125 508 .315
(3위)
160 35
(1위)
7
(1위)
10 46 76 28
(4위)
48 .371 .470
2020 53 203 .291 59 17 0 1 10 52 19 26 .370 .389
2021 143
(1위)
570
(1위)
.296 169
(1위)
33
(5위)
5
(4위)
10 45 86
(2위)
24
(1위)
65 .367 .425
NPB 통산(12시즌) 927 3333 .283 943 184 26 42 259 513 244 317 .343 .392

유리몸인게 얼마나 뼈아픈지 보여주는 산증인. 2010년 데뷔할 시기부터 올해 도루왕은 오기노라는 소리를 들어왔으나 매년 부상 등으로 달성하지 못하다가 데뷔 12년차에야 겨우 도루왕을 달성했다. 여담으로 공동 도루왕이 4명이나 나왔으며, 역대 최저 도루갯수 도루왕이자[24] 역대 최고령 도루왕이다.[25]

5. 이모저모


[1] 옛날에는 주로 중견수를 봤으나 현재는 나이와 후지와라 쿄타, 타카베 아키토 등의 등장으로 좌익수나 우익수를 본다.[2] 대학 시절 및 신인 시절 얘기고 현재는 외야만 본다.[3] Clock Strikes를 4년 동안 쓴 것을 빼면 등장곡을 상당히 자주 바꾸는 편이다. 2021년~2022년은 아라시의 노래들을, 2023년에는 슈퍼전대 시리즈 노래들을 썼다.[4] ラララ…駆け抜けろホームまで荻野貴司 打て荻野 タ カ シ!(앞질러 가라 홈까지 오기노 타카시 쳐라 오기노 타 카 시!). 준족 이미지를 잘 살린 곡이라 평이 꽤 좋다. https://youtu.be/ZniPL7V3lhw[5] NPB는 KBO랑 달리 일반적으로 신인드래프트에서 4-8명 정도밖에 지명을 안 한다. 근데 이 해에 롯데는 드래프트에서 4명,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1명을 뽑았으니 사실상 최하위픽만 겨우 면한 셈.[6] 입단 동기이자 그보다 한참 늦은 순번으로 지명된 키요타 이쿠히로가 일본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우승 반지를 꼈고, 만년 백업요원인 미나미 류스케, 코베 타쿠미도 일본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서 반지를 얻은 걸 생각하면 이 부상이 매우 뼈아팠다.[7] 거기다가 2010년 드래프트에서도 중견수 자원인 이시미네 쇼타를 1라운더로 뽑아서 중견수는 이시미네에게 줬다. 즉 어지간하면 잘 하지 않는다는 똑딱이 외야수 1픽을 무려 2년 연속 한 셈. 거기다가 이시미네가 데뷔시즌에 30도루를 넘기면서 한때는 오기노가 이시미네한테 입지가 밀리기도 했었다.[8] 그런 와중에도 빠른 발 덕분에 해마다 두자릿 수 도루를 기록하기는 했다.[9] 공교롭게도 후술할 팀 선배 투수인 오기노 타다히로의 등번호였다.[10] 이 유리몸이 진짜 뼈아팠던게 오기노와 동갑이었고 같은 대졸사회인 출신에 같은 발 빠른 똑딱이 중견수였던 오시마 요헤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그 키요타 이쿠히로보다도 기대치가 낮아서 5라운드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지명되었는데, 오기노와 다르게 부상이 거의 없던 선수라서(10년 연속 규정타석 돌파) 누적기록은 오시마가 훨씬 우위다. 거기다가 오시마는 발만 빠르지 주루센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도루성공률도 통산 71.3%로 낮은 등 건강한 오기노와 비교하면 오기노에게 확실히 밀리는 선수인데(컨택과 장타력 OPS 등은 크게 차이가 안 나지만 주루면에서 오기노가 압도적인 우위다. 오기노의 도루성공률은 82.4%. 한참 높다.) 정작 오시마는 도루왕 경험이 있고 오기노는 없다가 2021년에 겨우 처음으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참고로 도루왕을 기록한 시즌에서 오시마는 32도루 17도루자로 도루성공률 65%를 찍었다. 이 정도의 도루성공률이면 그냥 자기 도루왕 따려고 시도만 엄청 한 거지 오히려 팀에는 -라는 것이 정설. 실제로 시도횟수 자체가 1위였다.(웃긴 건 오기노도 노쇠화로 도루 실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간신히 도루왕을 기록한거라 2021년의 도루성공률은 68.6%로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타이틀홀더를 한 번 더 따는게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곳이 프로야구인만큼 오기노에게는 유리몸이 정말 뼈아픈 것. 거기다가 오시마의 경우는 2023년 2000안타를 찍고 기어코 명구회 입성을 해내면서 누적 성적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오기노는 명구회 도전이 당연히 불가능하다.[11] 오기노는 원래 데뷔 첫 해부터 올해 도루왕은 당연히 오기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루에서 극찬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 퍼시픽리그는 카타오카 야스유키가 3년 연속 도루왕+2년 연속 50도루를 하면서 제패하던 시절이었고 2010년에는 카타오카가 건재할 때였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그 해 카타오카는 59도루로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대놓고 오기노가 카타오카를 제칠 것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 실제로 첫 해 오기노의 주루실력은 70도루는 무난하고 80도루도 노릴 만한 성적이었으니 무릎 부상이 정말정말 뼈아팠다.[12] 1루수가 송구를 받을 때 베이스에서 한 걸음 나와서 송구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악송구를 했다.[13] 여담으로 10홈런 중 5개가 1회 선두타자 홈런이다.[14] 결과적으로, 그 해의 도루왕은 호크스의 대주자였다가 주전 도약에 성공한 슈토 우쿄가 차지했다.[15] 라고 하는데 50m 기록이 5.6초라고 스카우팅 리포트에 나와 있다. 그리고 1루 도달 시간뿐만 아니라 50m 기록도 오카다 요시후미가 은퇴하면서 팀내 1위다.[16] 마이크 트라웃이 우타자인데 1루까지 3.97초 만에 뛴다면서 엄청난 스피드라고 칭찬받으며, 이 기록이 메이저리그식 20-80 평가에 의하면 80점이다. 오기노의 스타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상급이라는 수준.(또한 마이너에서 1시즌 150도루를 기록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4년 연속 50도루+통산 300도루를 넘긴 빌리 해밀턴이 홈에서 1루까지 3.35초 걸린다. 이 사람은 스위치 히터라 우타석 기준으로는 3.55초라 봐야 하며 이러면 오기노보다 느리다!) 참고로 우타자는 좌타자보다 1루까지 0.2초 가량 더 걸린다.[17] 스카우팅 리포트는 3.5초라고 하는데 퍼시픽리그TV에서 오기노가 내야안타를 쳤을 때 1루까지의 기록을 측정한 영상을 보면 3.3초까지도 기록했다![18] 1루까지의 도달 속도만 놓고보면, 퍼시픽리그 전체에서 우타자 중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좌타자까지 포함시켜도 오기노를 능가하는 선수가 몇 없다. 타팀의 준족들을 보자면 주력 하나로 1할 치고도 프리미어 12 국가대표까지 승선한 소프트뱅크의 슈토 우쿄가 3.7~3.8초, 2015년과 2019년에 두 번 도루왕을 차지한 세이부의 카네코 유지(스위치히터라 좌타석 기준)와 2010년과 2011년에 두 번 도루왕을 차지한 현재 소프트뱅크 코치인 혼다 유이치가 3.6~3.7초, 2012년 도루왕을 차지한 야구해설가 히지리사와 료와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아키야마 쇼고가 3.5~3.6초, 2015년 도루왕을 차지한 닛폰햄의 나카시마 타쿠야가 3.5초, 현재 퍼시픽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야나기타 유키가 3.4~3.5초, 2014년, 2017년, 2018년 3번이나 도루왕을 차지했고 통산 도루성공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니시카와 하루키는 3.1~3.2초를 마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전부 좌타자들이다. 스위치히터인 카네코도 저 기록은 좌타석 기준. 오기노가 최대 3.3초까지 기록했다는 것은 좌타자였으면 NPB 통산 도루성공률 1위 기록을 갖고있는 니시카와 하루키와 거의 동급이라는 셈.[19] 반면 오기노와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했던 니시오카 츠요시오카다 요시후미, 하야사카 케이스케(이쪽은 2009년을 제외하면 테이블 세터보다는 대주자 요원이었지만)는 순수주력은 오기노보다 빨랐지만 주루센스가 그에 못미친 탓에 적지않은 도루실패를 기록하였다.[20] 참고로 오카다의 1루까지 뛰는 시간은 3.4~3.5초이다. 니시오카의 경우는 초반 가속력 보다는 최고속도가 빠른 스타일이다보니 1루까지 뛰는 시간은 3.54~3.9초 정도로 살짝 느린 편.[21] 팀내 다른 선수들의 도루 성공률을 보자면 오카다 요시후미는 73.7%, 이시미네 쇼타는 73.6%, 카쿠나카 카츠야는 73.1%, 키요타 이쿠히로는 68.6%, 카토 쇼헤이는 67.6%, 나카무라 쇼고는 64.7%, 네모토 슌이치는 59.3%, 스즈키 다이치는 56.1%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한때 같은 팀에서 뛰었던 니시오카 츠요시는 70.3%, 대주자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하야사카 케이스케는 68.4%를 기록.[22] 다만 22시즌에 15도루 3실패 성공률 83.3%를 기록한 걸 보면 도루왕을 하려고 무리하게 도루를 하는 바람에 성공률을 많이 까먹은 것으로 보인다.[23] 그러나 2019년 UZR에서는 수비범위가 -를 찍으며(오시마 요헤이 다음으로 안 좋았다.) 송구와 실책 쪽에서는 +를 찍고도 종합은 -로 끝났다.웃긴 건 그래놓고 골든글러브 수상.[24] 세-파 합쳐서 지금까지 역대 최저 도루갯수 도루왕은 24개이며, 2021년 파리그는 타이기록이다. 파리그만 보자면 31도루 도루왕이 역대 최저였는데 이것을 갱신했다.[25] 만 36세 10일. 이전 기록은 만 35세 2개월의 이토이 요시오.[26] 이전엔 오기노 타다히로가 선배라서 그냥 OGINO를 먹었기 때문. 오기노 타다히로는 14 시즌 이후 방출당했다. 입단 직후 3년간 마무리도 하면서 필승조로 활약했지만 2010년부터 부상으로 사이버투수가 된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뷰에 의하면 2014년 시즌이 끝날 즈음에 재활이 완료되었다고. 그래서 히타치 제작소에 입사해서 2년간 실업야구를 하다가 완전히 은퇴하고 현재는 스포츠 메디컬 회사를 차려 투수들의 부상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아마야구를 돌아다니면서 지도하고 있다.[27] 의외로 둘이 친구라고 하는데 중학교 시절 오기노는 공부한다는 이유로 야구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처음 입단한 프로팀 등은 다 달랐기 때문에 같이 있던 시기는 짧다. 고등학교가 갈린 이유도 오기노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명문 고등학교로 갔고, 코쿠보는 야구부는 최강이지만 학교 자체는 중하위권인 PL학원고교로 갔기 때문.[28] 참고로 대학 시절에는 오기노도 유격수였고, 코쿠보와 오기노가 모두 대학 국가대표팀에 뽑힌 적이 있었는데 오기노가 코쿠보의 백업 멤버였다고 한다. 프로에서는 오기노가 더 성공했지만.[29] 시즌 두 달간 대주자로만 나오면서 9도루를 기록했고, 선발로 3경기에 출전하면서 3경기 5도루(1경기는 그나마 0도루라 2경기에서 5도루 했다.)를 기록하며 14도루로 8월 20일 기준 도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 참고로 도루자는 그 동안 겨우 1개였다.[30] 2020년 까지만 해도 동갑에 생일이 더 빠른 우치 타츠야가 있었으나 2020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