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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袁宏
(328 ~ 376)
예주 진군(陳郡) 양하(陽夏)현 사람으로 자는 언백(彦伯)이고, 소자(小字)는 호(虎)며, 원유(袁猷)의 손자다. 젊을 때 가난했지만 문장에 뛰어나 영사시(詠史詩)를 지은 일로 사상(謝尙)의 눈에 띄어 참군(參軍)이 되었다.
이후 승진하여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 막부의 기실(記室)이 되었다. 환온이 그의 문필을 존중해 서기(書記)를 총괄하게 했다. 일찍이 말을 타고 글을 지었는데, 순식간에 7장이나 적어나가 놀라게 했다. 사안(謝安)이 양주자사(揚州刺史)로 있을 때 동양태수(東陽太守)가 되었다.
후한기를 지었는데, 내용이 충실해서 후한의 역사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시인으로서 300여 편의 작품이 전하며, 저서에 『죽림명사전(竹林名士傳)』 3권과 『삼국명신송(三國名臣頌)』 등이 있다.
삼국시대 명신 20인을 평가한 삼국명신서찬이 문선에 수록되어 있는데 20인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