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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 Guerre civile centrafricaine Central African Republic Civil War | |
기간 | |
2012년 12월 13일 ~ (진행중) | |
장소 | |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 |
원인 | |
프랑수아 보지제의 독재 정치 |
들어가서 보기 |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내전 현황 및 각 세력 준동영역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 (2012~)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정부 |
반 발라카 |
셀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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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War in the Central African Republic (Full Length) |
2. 배경
프랑수아 보지제가 2003년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뒤, 전국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나며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7년에 연이은 평화 협정으로 잠시 안정기를 맞이했으나 정부가 평화 협정을 지키지 않자 대다수가 무슬림인 반군 연합 셀레카는 반기를 들기 시작했으며 결국 수도를 점령하고 만다. 그로인해 당시 대통령인 프랑수아 보지제는 해외로 피신한다. 그렇게 권력을 잡은 셀레카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기 시작하며 이에 반발한 기독교인들이 셀레카에게 대항하기 위해 반 발라카 민병대를 만들어 맞보복을 하기 시작했다. 이로서 부패한 독재자에 맞서기 위해 시작한 운동은 종교와 인종 간의 학살로 번져 서로 간의 큰 앙금을 계속 만들고 있다.3. 전개
프랑수아 보지제 중아공 대통령 | 셀레카 반군의 지도자 미셸 조토디아 |
2013년 3월 말에 이슬람 계열 셀레카 반군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군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수도를 장악하면서 보지제 대통령은 카메룬으로 탈출해 베냉에 망명하게 된다. 이후 셀레카 반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미셸 조토디아가 스스로 대통령에 올랐으나 은자데르 등 다른 반군 지도자들이 반기를 들었다. 당연히 미셸 조토디아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출범하고 미셸 조토디아가 셀레카 반군 해산명령을 내렸을 때도 따르지 않았고, 통제되지 않은 셀레카 휘하 부대는 곳곳으로 퍼져 반 셀레카 성향의 민병대와 무장충돌이 벌어지고, 학살과 보복학살이 벌어져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사태 초기 2일에만 280명이 넘게 사망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
2012년 12월 27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프랑스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프랑스군이 내부 정치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며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미 250명의 프랑스 군인이 방기 포포 국제 공항에 주둔해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전직 프랑스 군인은 "우리는 내전 발발 이전에 충분히 막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주민들을 보았다. 끔찍하고 처참했다. 전투 승인을 해 달라고 여러번 요청하였으나 프랑스 정부로부터 단지 '기다려라'라는 답만 받았다. 우린 최신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 군대였다. 그러나 상부 명령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방기 사태를 방관한 것에 대해 프랑스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회상했다.
후에 프랑스는 UN 안보리 결의안을 등에 업고 더이상의 학살을 막기 위해 프랑스군 1600명을 파병하였다.
그렇게 2012년 12월 발발한 중아공 내전은 2013년 12월 경에 잔혹성이 절정에 달했다. 유엔은 이곳에 긴급구호 단계 최고 수준인 '응급경보 3단계'를 발령했는데, 응급경보 3단계 지정국은 중아공 외에 시리아, 남수단, 이라크와 에볼라 발병국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의 국가 밖에 없다. 현지인들과 구호 단체의 증언에 의하면 곳곳에서 민병대와 반군, 반군과 유엔 평화유지군 간 전투가 끊이질 않아 공포에 떨며 며칠 동안 집밖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도 생긴다고 한다. 또한 유니세프 본부 소속 교육정보관리관 김예라는 부임할 때 목격한 끊임없이 이어진 대규모 난민촌의 모습을 보았으며 전쟁에 동원된 소년병이 1만여명에 달한다고 증언했다
2014년 들어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셀레카 계열 군대와 반 셀레카 민병대의 충돌이 더욱 극심해지는 가운데 2014년 1월 조토디아 대통령은 결국 사퇴했고, 여성 변호사 출신의 카트린 삼바 판자가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에도 평화유지군의 주둔이 무색하게 사회 혼란과 충돌은 멈추지 않아 무려 1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취약국가지수도 2006년 13위에서 2015년 3위까지 급상승했다. 그 위에 있는 나라는 남수단과 소말리아뿐인데, 우열을 가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의 막장이다.
16개월 간 지속된 내전 끝에 2015년 11월 말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곳을 방문해 융화를 호소한 이후, 2014년 7월 24일, 내전 주체인 이슬람 반군과 기독교 민병대 양측은 이웃 나라인 콩고 공화국에서 드니 사수 응게소 콩고 공화국 대통령의 중재로 평화협상을 벌인 끝에 휴전에 합의했다. 양측은 이후 무장 해제와 정치 일정 등에 관한 추가 협상을 이어갈 예정. # 간신히 휴전이 이루어졌으나 내전 기간 수만 명이 사망하고 전 국민 460만 명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이 난민 신세로 전락한 비참한 상황이 얼마나 개선될 지는 의문이다.
2016년에 들어서 프랑스의 입김에서 벗어나 헌법을 개정해 3선연임까지 추구하던 투아데라 대통령과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던 러시아간의 협정으로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이 중아공 내전에 참전하였다. 바그너 그룹은 중아공에서 천연자원을 수탈하고 반군 포로들과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친정부 현지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민간군사기업을 통해 현지 권위주의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정책은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친러적 중립 태도를 이끌어 내는 원인이 되었다. # NBC탐사보도
2018년 11월 16일에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알란디오라는 도시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충돌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최소 37명이 숨졌다.#
2019년 2월 1일 AFP, 로이터 통신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정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
2020년 4월 29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북동부 은델레에서 무장단체간 충돌로 50명 이상이 사망했다. #